박형룡박사저작전집 전12권

2014.08.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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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박형룡박사저작전집 전12

저자 : 박형룡

출판사 :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서울, 1983

일찍이 프린스턴 신학교 유학시절 보수주의의 거장 그래샴 메이첸 박사로부터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 온 동양 학생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학생이라고 평가받았던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를 말씀 위에 바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시대의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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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삼열, 곽안련, 이눌서, 구례인을 비롯 구학파 전통에서 선 선교사들과 그들에 의해 설립된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개혁주의 정통보수신학을 그대로 한국교회에 계승해 주었다는 점에서, 구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보수주의 거장 메이첸 박사 밑에서 직접 신학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도전 앞에서 당당히 한국교회의 보수주의를 파수하고 지켜내었다는 점에서, 거의 50년동안 초지일관 신학교육에만 헌신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신학자로는 처음으로 방대한 조직신학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의 저작전집에서 인용되는 신학인물들의 글들과 내용들은 거개가 개혁신학의 계열에 있는 검증받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 이름의 목록을 보면 존 칼빈,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게르할드 보스, 존 머레이, 윌리엄 커닝햄, 챨스 핫지, A. A. 핫지, 그래샴 메이첸, 헤르만 후크마, G.C. 베르까우워, W.브라켈, 마코비우스, 꼬미르, Schmid, Schultz, 어거스틴, 반틸, 루이스 벌코프, 조나단 에드워즈, A. H. 스트롱, 존 오웬, 하이데거, Heppe, 버스웰, 워필드, 에임스, 다비니 등이다.

 

신학적 대결과 교파 분열의 와중에서도 그는 초지일관 한국교회 정통신학 수호에 일생을 바친 고독한 학자였고, 한국교회가 낳은 송죽(松竹)같은 위대한 학자였다.

전집 출간 박형룡 박사의 말씀

 

저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취가 각권에 보일 것입니다만, 이 모든 문서들에서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정통신학을 보수 전달하려는 일편단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전국교계가 알아 주시면 합니다.

이 정통신학을 보수 전달하려는 단심의 노력이 어떤 정도의 효과를 내었는지 저자 자신은 몹시 의문됩니다. 그러나 이 노력을 후계하여 바른 신학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정병들이 이 땅에 많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진리의 참된 교훈이 이 땅에서 영속하기를 하나님께 비는 저자의 기도는

생명의 끝날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전 땅의 그루터기가 되기를 바랍니다.[중략]

-19779월 서울 봉천동에서.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신학으로 메이첸이 그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을 상당히 강조하며 가장 보수적인 신학체계를 가지고 있다.

 

박형룡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신학은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한 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그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은 그가 신학사, 신학석사를 마친 1923-1926년 사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비롯되었다. 박형룡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유학한 1923년은 미합중국장로회가 소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렸던 시기였으며, 구 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첸 박사가 <헬라어 첫걸음>(1921),<바울종교의 기원>(1921)에 이어 <기독교와 자유주의>(1923)를 출간하고 당시 자유주의 또는 근대주의와의 논쟁에서 보수 연합세력의 지도자로 부상한 해이기도 하다.

 

미 합중국 장로교회 안에서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이 격돌하던 바로 이 시기에 박형룡 박사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사와 신학석사를 마쳤다. 후에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평양신학교에서 교수하는 동안 그의 제자 박윤선을 프린스턴 신학교에 추천하지 아니하고, 당시 프린스톤 신학교의 신학적 좌경화를 지적하고 메이첸박사를 중심으로 새로 출발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도록 권한 것은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조직신학자로서 박형룡 받사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흔히 그의 글의 인용으로 출발한다. 그의 면모는 1977년에 발간된 <박형룡박사 저작전집>에 가장 잘 담겨있다. 전체 20권으로 되어 있으며, 이중 제1권부터 제7권까지가 교의신학 7권에 해당한다. 그의 <교의신학> 7권은 그의 창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그는 일찍이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1941년판)을 번역하여 신학교의 교재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그의 <교의신학> 7권은 벌콥의 <조직신학>에 전적으로 의존한 번역 또는 번안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벌콥의 <조직신학>과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을 외형적으로 비교만 해 보아도 잘못된 편견임이 금방 드러난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은 세계 교회에 "한국신학"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저작전집 제7권에 해당하는 <교의신학 내세론>은 그 명칭에서부터 서구의 타신학자들의 것과는 구별된다. 벌콥의 <조직신학>에 서는 종말론이라 이름한데 비해, 박형룡박사는 이를 <내세론>이라고 명명했고, 하 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이미와 아직"(already but not yet)의 구속적 관점 에 비추어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의 교의 신학 내세론을 전체적으로 시종일관 역사적 천년기전설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시대론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배격하고 나머지 견해를 개혁주의 교회가 모두 수용할 수 있음을 밝히고, 특히,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신학적 전통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내세론>은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의 틀 안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턴 신학으로 대표되는 영미 계통의 장로교 신학과 화란 계통의 개혁신학의 조화를 일구어낸 신학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교의신학은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을 기초로 하고 다른 권위자들로부터 재료를 수집하여 종합함으로써 되어진 저술이다. 그의 교의 신학은 기초적으로 바빙크-벌콥 게통을 따르고 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수학한 프린스턴 신학교의 충실한 계승자들, 특히 찰스 핫지,A.A.핫지,워필드,메이첸 등의 교수들의 글에서도 널리 인용하고 있다. 그가 이미 영미 계통의 신학뿐만 아니라, 이에 화란계통의 신학을 접목함으로써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 칼빈주의, 청교도적 장로교주의 신학 전통을 한국교회에 정착시킨 점에 있어서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신학적 업적은 바르게 평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