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가라지 비유

 

1980. 2. 7. 목새

 

본문: 마태복음 13장 38절-39절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에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밭은 세상이요 한 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 말합니다. 세상은 사람이  중심이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렇게 발달돼  나가고 타락해 나가고 또 문화가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져 나가고 모든 인간의  행위가 이렇게 저렇게 쌓여져 나가는 그것을 가르쳐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밭은 세상이라는 심판에 대해서 사람과 관련 없이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자는  마귀요 우리 사람은 두 종류인데 불택자와 택자로 나누어서 두 종류로 되어있는데  불택자들은 말할 것이 없고 택자들의 관하여서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택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지 불택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에 안 믿는다고 불택자라고 인정하지는 못합니다. 죽는 그 시간까지  불신하던 사람이 죽기 전 몇 분을 두고 회개하고 세상을 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안 믿는 모든 사람들도 이 사람도 택한 사람인지 모르니 택한  사람으로 보고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택자와 불택자는 은밀히는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 것입니다.

 택한 한 사람 이것이 좁은 범위에서는 밭입니다. 택한 한 사람은 좁은 범위에서는  밭이요 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넓은 범위에서 말하면 한 가정이  밭입니다. 또 조금 더 넓게 말하면 가정교회들이 모여 있는 이 서부교회 동일교회  뭐 이 교회들이 밭입니다. 또 더 넓게 말하면 한 교파가 한 교파 교파가 밭입니다.

또 넓게 말하면 온 전국교회가 밭입니다. 또 더 넓게 말하면 세계교회가 밭입니다.

또 아주 넓게 말하면 아담 해와로부터 주님재림 하실 때에까지 믿는 모든 교회들이  다 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좁은 범위에서도 가라지와 좋은 씨를 구별해야 하겠고 그리고  아주 좁은 범위 자기 한 사람에게서도 가라지와 좋은 씨를 구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심사는 넓은 범위에서 좁은 범위로 이렇게 들어오는 순서도 있겠고  좁은  범위에서 넓은 범위로 나가는 순서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냥 슬기로운 방편은  좁은 범위 자기에게서 먼저 착수해서 이 일을 구별하고 그 다음에 차차 넓은  범위로 나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마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네 눈에 티를 빼고 난 뒤에 형제의 눈에 밝히 보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라 그러면 네 눈에 있는 것은 형제의 눈에 발견한 것보다도 더 큰 것이 발견되니  네게 큰 것을 들보 같이 큰 것을 다 네가 해결 짓고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것을  해결 지워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좁은 범위 자기에게서 곡식 씨 가라지를 이렇게 구별해서 우리는  처리하여야겠고 그 다음에서는 차차 넓은 범위에서도 이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넓은 범위에서 좁은 범위로 들어오는 일이 있다는 그 말은 우리가 역사의 교회를  예를 들면은 천주교가 어떻게 해서 저렇게 타락이 되었는가 감리교는 어떻게 해서  감리교가 저렇게 생겨지게 되었는가? 성결교는 어떻게 해서 저렇게 다 정통으로  보지마는 교리적으로는 틀렸습니다. 저렇게 되었는가 그런 것을 찾아서 우리도  그런 탈선의 교리를 가지지 안 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성결교교리는 완전주의입니다. 중생 된 사람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중생을 영만이 중생하는 것으로 보지 안하고 영육이 다 중생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렇게 봤습니다.

 이래서 성결교의 교리로서는 '중생 된 사람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다 그것이  중생이다' 하는 것을 우리 한국에 있는 성결교에서는 그것을 많이 주장하고 전적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생 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은 중생은 본인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치 바람이 부는 것이 바람  부는 것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아니하나 바람 지나가는 그 결과를 보고 말하고  조금 불었다 많이 불었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 분들은 한사람이 잘못 깨달아  그것을 주장해 가지고 그것이 그만 교리가 돼 가지고 완전이 되어지는 그것이  중생이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요 3:7--8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그 성결교 교리가 언제 고쳐지게 되었는고 하니 왜정말년에 성결 교리를 가장  주장한 분이 이 명식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신학교 교장입니다. 이 분이 주장을  했는데 왜정말년에 하나님이 그것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그 분과 그 주장하는  분들이 다 신사참배를 다 했습니다. 다하니까 신사참배를 할 대로 다하니까  신사참배를 하고 할 때는 그것은 국가의식이니 무엇이니 이렇게 말했지마는 해방이  되고 나니까 확실히 범죄라 하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러니까 그분들이 중생 된 사람은 다시는 범죄하지 안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그  사람이 그 일 계명과 이 계명을 범한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는 그 교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그러면 자기의 교리대로 말하면 중생 되지 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중생은 그것이 아니라 잘못 깨닫고 영이 중생이요 심신은 죄 아래 있는  로마서 8장에 있는 이런 성구들을 몰라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성결교에서도 교리는 그렇게 되어 있지마는 그 교리를 믿는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교회사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초대교회부터 어떻게 교회가 되어 나왔노?  그 교회를 교회 형편들을 간추려 알려주고 있는 것이 교회사요 교리사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이치를 그때는 어떻게 생각하고 믿었느냐? 하는 예수 믿는 이치를  그들이 깨달은 그 깨달음을 간추려서 써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교리사입니다. 교리의 역사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넓은 범위를 봐서 자기가 큰 거물에 갇힐까 갇혔는가 갇힐까? 이면을 구별해야  되겠고 또 좁은 범위에서 이런 교파 저런 교파가 있으니까 어느 교파에 내가  붙어야 되겠느냐? 하는 교파에 대한 것을 내가 구별해야 되겠고 또 교파 안에서도  어느 교회는 어떻고 어느 교회는 어떠니까 내가 교회를 옮겨서 어디로 가야 구원을  이루겠다.

또 교회와 교회를 구별해야 되겠고 또 좋은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 '이 사람은  가라지에 속했고 이 사람은 좋은 씨에 속했으니까 이 사람은 내가 멀리해야 되겠고  이 사람은 내가 가까이 해야 되겠다' 또 그렇게 생각해야 되겠고 한 가정 안에서도  우리 아버지는 좋은 씨가 되겠고 어머니는 가라지가 되어있고 어머니는 좋은 씨가  되어있고 아버지는 가라지가 되어있고 형도 동생도 이러니까 또 이것도 잘 살펴서  해야 되겠다.

요셉의 형제들이 분명히 그 요셉은 좋은 씨요 다른 아들들은 가라지가 다 되었는데  그들이 가라지와 곡식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이지만 그러나 어느 것이 옳으냐  틀렸느냐 이것을 구별했더라면 요셉이를 그렇게 반대하지는 안 하는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그 전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 아닌 다른 데에서 곡식과 가라지를 이렇게 구별하는  것인데, 암만 그것을 구별해 봤자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구별하는 것은 이것을 알아 자기가 가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라지에게 속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씨가 되기 위해서 구별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안에 자기 안에 가라지는 마귀의 자식을 말하고 또 좋은 씨 곡식  씨는 천국의 아들들을 말한다고 예수님이 해석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아들도 사람이요 마귀의 자식도 사람입니다. 악한자의 아들들도 사람입니다.

 이런데 우리 한 사람 속에 영은 하나지마는 영은 하나이지마는 한 사람 속에  마음이라는 이 마음은 여러 개가 합해 가지고 우리 마음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몸뚱이는 하나지마는 이 몸뚱이 속에는 여러 지체로 되어져 있고 한 지체 속에도  손가락 하나 속에도 세포를 분류하면 여러 수천이 아니라 수만 아니라 수억이  된답니다. 손가락 속에도 그 세포로 분산을 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통틀어 한 마음이지마는 이 마음이 이런 것을 접선하면은 그만  이런 마음이 되어져버리고 저런 것 접선하면 저런 마음이 되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접선하면 이런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이 되고 저런 것을 접선하면 저런  마음을 가진 저런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똑똑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 내게 생겨지고 또 그 다음 시간에는 마귀의 자식이  생겨지므로 이렇게 우리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진다는 것을 이렇게 교훈해서  우리를 구별하도록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접촉하는데 따라 내 속에 이런 사람도 생겨지고 저런  사람도 생겨집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깨끗한 주부가 그만 다노모시나 이런 것 해  가지고 못된 여자들에게 걸려서 저 한번 음식점에나 가고 또 저 한번 관광이나  한번 구경하러 관광이나 한번 가고 그런 것은 또 죄라고 볼 수가 없다 말이요.

그러다가 보니까 한번 또 춤추는 데도 가고 이래가지고 그 접선하는 가운데서  아무작도 몹쓸 창녀라 창녀와 같은 창녀와 같은 이런 그 부인이 된다 말이요. 아주  깨끗한 그 아주 주부가 아주 현모양처가 이렇게 창녀 같이 몹쓸 사람이 되어질 수  있다 그거요

그것은 접선하는 데에서 그와 같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계를 하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계 속에는 못된 방탕한 여인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자들 계 속에는 방탕한  여인들이 들어가 있고 남자들이 직장계 하는 것은 관계가 없겠지 해도 직장계를  하면 푼돈을 모아 가지고 목돈을 모으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보여지지마는 그  사람의 분수 이상의 모으고 모아도 분수 이상의 돈이 자기에게 한몫 부딪쳤기  때문에 이 돈을 관리하는 데에 역량이 부족하니까 그 돈을 모아 보아도 몽땅 다른  사람에게 떼이기 쉽습니다. 이 돈을 모아 가지고 잘못 활용하기 쉽습니다.

이래가지고 대개는 그걸 해 가지고서 돈에도 결과적으로 손해 갑니다. 그래 모이  가지고 하니까 그 속에는 (생명)이 다 들어 있는데 또 그러니까 그것이 들어  가지고 되어지니까 모든 생활 방편과 경제에 대한 처리를 그런 방편을 쓰니까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이 궤휼적이며 기만적이며 다 미혹적이며 그 협잡적인 그런  방편을 쓰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사람이 한번 그것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 보다도 더 큰 것은 자기가 접선할 수 없는 그런 류의 사람, 자기 분수 밖에  사람을 접선하는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몹쓸 사람으로 그렇게 변질돼 나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우리 속에 곡식비유와 가라지 비유할  때도 자기 속에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자의 아들들을 요것을 구별하는 요것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떤 사람을 접촉하고 보니까 그만  세상 욕심이 가득 차여 가지고서 이제까지 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은 다 후회가  되어지고 나도 뭘 보고 살걸 뭘 할걸 뭘 할걸 이래 가지고서 그만 세상 욕심의  사람이 되어져 버리고,  또 어떤 사람을 접촉하니까 그래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많게  적게 그것을 조절해 줄 터인데 우리가 그것만 바라보고서 진리도 구속하신  하나님도 생각지 안하고 사는 것은 이것이 모두 변해졌다 아무 것이도 그래 살다가  죽을 때는 후회하더라 나도 후회하는 생활했다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의 신앙이나  모든 인격이 진리적이며 구속적이며 하나님적으로서 깨끗해지고 온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속에 그 가라지와 같은 몹쓸 사람이 자기 들어 있는 것과 자기 속에  참 하나님처럼 성자 성녀처럼 좋은 사람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요것을 우리가  첫째 구별해야 됩니다. 내 속에 가라지와 곡식이 있는 것을 요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첫째라 말은 큰 첫째라 말입니다. 큰 첫째는 깨어있는 그것이지요 요  안에서 첫째로 자기 속에 가라지와 곡식 씨가 있는 것을 자기 속에 몹쓸 사람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 좋은 사람이 들어 있는 요것을 첫째로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요것을 구별할 때에는 자기가 평소에 구별할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런데 현실을 만날 때 현실을 만날 때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아 그 상대방이  그만 어떻게 하고 상대방이 너무 억울하게만 하고 또 상대방이 애매하게만 하고  나를 찧고 빻고 이렇게 하니까 내 속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내 속에  굉장히 악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럴 때에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그만  분이 폭발되는 것이 저놈이 날 저렇게 하니까 내가 저놈을 어떻게 할꼬 싶은 그런  악독한 사람이 자기 속에 폭발되어 나오는 것이 있다 말이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때 나옵니다.

또 자기는 아주 강퍅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떤 그 사람을 만나니까 불쌍히 여겨서  그 사람을 인해서 동정의 눈물이 나오더라 이기요 아 내 속에도 이 자비의 사람이  들었구나 또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거요. 또 자기가 씨름하는데 가니까  텔레비젼를 보면 씨름하는 사람 보니까 씨름하는 사람되고 싶고 또 뭐 아주 뭐  하는 사람 보니까 뭐 하는 사람되고 싶고 노래부르는 사람 보니까 노래 부르는  사람되고 싶고 이런 것 접선하는데서 자기도 그런 것을 부러워하는 그런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을 또 발견을 한다 거기요  자기가 아주 큰 재물을 턱 만났는데 이것은 한번만 만나면 일생동안 경제의  대해서는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데 큰 재물이 내 곁에 탁 닥치니까 그러면 자기가  오늘은 일생동안 경제가 여기에 달렸는데 주일을 범해볼까 주일 지키려면 이것 다  헛일이고 이것으로서 자꾸 흔들리는 것을 자기가 알았다 말이요 그럴 때에 '하,  주일을 철두철미하게 변동시키지 안하고 지켜 왔는데 주일을 지킬까 말까하는 이런  가라지가 내 속에 들었구나' 또 발견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자기 속에 곡식 씨와 같은 좋은 사람 가라지와 같은 몹쓸 사람 자기 속에 좋은  사람 몹쓸 사람이 들어있는지 없는지 몰랐었는데 닥치는 그 현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접선하는 거기에서 자기 속에 좋은 사람이 들어 있는 것도 발견이 되고 나쁜  사람이 들어 있는 것도 발견이 됩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그것을 잡고서 뭘 하라 했지요? 거기에 명찰을 딱 붙여 놓아라  내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명찰을 딱 붙여 놓아야 된다 그런 것은  푯대를 단단히 세워 놓아야 된다 내 속에 이런 사람이 있다 그것을 자기가 기록해  놓든지 해 놓고서 내 속에 아무 때 아무 때 보니까 이런 사람이 내 속에 기어  나오더라 그것을 자기가 똑똑히 발견하고는 놓지 말고 명찰을 붙여서 내가 이런  이런 때에 이런 사람이 나오더라 이렇게 해 놓고 그것을 뽑으려고 애를 써야 되지  예사롭게 지나가면 그것 안됩니다.

내가 그때 이인제 목사님하고 창원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제가 강사로 가서  집회를 하는데 창원교회에 이인제 목사님이 계셨는데 재건교회 교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이라니까 말하기를 '마귀당은  물러가라' 이라면서 가버렸어요. 그라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이제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받아가고 이인제 목사님은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속에 분명히 마귀당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라면서 웃으며 지나가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이 어른이 많이 자기를 반성하고 사는구나' 그걸 제가 느꼈습니다.

우리 속에 이런 현실 저런 현실 만나는 거기에서 자기도 모르는 자기 속에 좋은  씨와 같은 자기 속에도 성자와 같고 성녀와 같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새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속에도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현실을 만날 때에 자기 속에 자기도 모를 만치 놀랄 만치  자기에게 참 사기꾼이 들어 있고 거짓뿌리가 들어있고 악독한 자가 들어있고  욕심꾸러기가 들어있고 이런 몹쓸 사람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곡식 씨와 가라지 씨를 자기 속에서 첫째로 있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어디에서 이런 형편에서 발견하고 저런 형편에서 발견해서 그것을 발견했으면 자기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글로 써 놓든지 대개는 글로 써 놓든지 그렇습니다.

자기가 글로 딱 써서 어떤 사람은 책상 위에 오랫동안 돌아다닙니다. 그걸 써서  책상에서 언제든지 보면 볼 수 있도록 어떤 사람은 벽에도 써 붙이고 이렇게 해서  어떤 사람은 집에도 쓰고 '나는 아무 때 보니까 요런 사람이 나오더라 요런 큰  자가 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살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떤 죄 가운데 빠졌더라도 그  사람을 조롱하기가 부끄러워 조롱하지를 못합니다. 그 사람을 그걸 보니까 그걸  보고 조롱하고 하고 있으니까 '아, 내 속에도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한번  뒤벼 보니까 있었다' 하고 뒤벼 보니까 분명히 있은 것이 자기에게 나오니까 남을  보고 교만하지를 못하고 그 사람을 보고 낙심하지를 않습니다. 나도 그와 꼭 같은  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시키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도 안 되는 것이 뭐  있겠느냐?' '과거에 우리가 그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던 자가 아니냐 이것 하나 둘 뽑을 라고  애를 쓸 때에 주님이 뽑아주신 것이 아니냐?' 이래서 그 표를 붙여서 자기 속에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이걸 뽑도록 노력하고 이런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이 사람을 세워서 이 사람을 길러 가지고 이 사람으로 장성해지도록  할려고 애를 쓰는 이것을 첫째로 우리가 자기 안에서 가져야 되겠고,  둘째로 가질 것은, 그러면 이 사람이 어디서 생겨졌나 이 사람이 생겨진 것이  아담하와로 말미암아 타락한 원죄에서 이것이 생겨졌나 또 원죄가 아니고 이것이  본죄에서 생겨졌나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떤 일을 잘못할 때에 이런 사람이 내 속에  그때에 생겨졌나 누구의 말을 들을 때에 이 사람이 생겨졌나 잘못된 설교를 들을  때에 이런 사람이 생겨졌나 어떤 사건을 접촉할 때 이런 사람이 생겨졌나? 대개 살펴보면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제일 많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제일 많소 농장에서 이런 것이 생겨진 것이 별로이 없고 자연계에서  이런 것이 생겨진 것이 별로이 없고 보면 인간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장 터에서 또  이 사회에서 또 친구에서 모든 사업에서 많은 그 교인들이 모인 데에서 이런 저런  유명한 사람의 설교에서 그 청문에서가 아니라 그거요.

이런 데에서 사람에게서 섞인 것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에게서 제일 많이 들어 왔고  그 다음에는 명예나 영광이나 향락이나 이런 데서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물질  이런 데서 들어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많이 산 사람들은 부득이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접선하는 것이지 인간 보다 자연이 아름다워서 다 자연을 찾아서 구경하러  가는 그것이 인간에게서 많은 해독을 입었고 입혔고 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인간을 떠난 이 자연을 접촉할려고 하는 본능이 생겨진 것이 너무 많이 상하고  맞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속에 이 곡식과 가라지 이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돼  왔나 이것을 찾고 이것이 앞으로 제대로는 이것이 앞으로 어떤 때에 발동이 되어  가지고 나를 절단 낼 것이냐 속에 가라지 같은 나쁜 것이 한번만 나오면 자기를  절단 내니까 자기 명예를 절단 내지 시간을 절단 내 모든 신임을 절단 내 덕을  절단 내 뭐든지 자기 사회에 구정물을 일으켜.

이러니까 미래적으로 어떻게 작용을 하겠느냐? 하는 이면을 연구해서 이것을  연구하면 가라지를 발견하고 가라지가 들어온 구멍을 막고 있는 가라지가 어떤  기회에 발동이 될 건가? 이것을 찾아서 해결하도록 이렇게 가라지 발견, 가라지가  들어온 입문, 가라지가 앞으로 어느 구멍으로 들어오고 어느 구멍으로 나가는지  가라지가 나갈 구멍 이런 것을 찾아 가지고서 우리가 해결을 짓는 이 생활을 해야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자는 사람들은 넘어지고도 넘어진 줄을 모릅니다. 그  사람은 자는 사람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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