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1987. 6. 13. 새벽 <토>

 

본문: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 가르친다는 사람이 있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이 구원 도리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늘 그렇게 붙여서 말하지 안할지라도 신구약 성경에는 온갖 종류에 대한 말이 있지마는 이 말씀은 택함을 받아 구원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택한 자들에게 한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대한 말씀인데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냐? 우리는 다 양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가르침을 받는 위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가르치는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증거를 받고 증거를 하는 그런 것이 우리들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위에 가르친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모든 좋은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라는 말은 가르치고 가르침 받은 그것들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물론 이것을 말할 때도 있고 저것을 말할 때도 있지마는 그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같이 행하라 그말이오. 하라 그말은 행하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자도 자기가 행한 것을 가르치고 행하면서 가르치고 또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자기가 행하지 못한 것은, 소원을 가지고 있는데 행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는 지금 이거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자도 자기가 행할라고 가르침을 받아야 되고 또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해야 되고 이래야 되지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행함과 결합이 안 되면, 행함과 결합이 안 되면, 행함과 연합이 안 되면 거게는 큰 부작용이 생깁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잘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무슨 자기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의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둔해서 거게 대해서 별 구별하지 안하지마는 그것은 반드시 그 결과에 좋지 못하는 자기 속이는 일이 되고 맙니다.

가르치는 자는 언제든지 자신이 그 가르치는 것을 자기가 행하는 것을 가르쳐야 되고 행한 걸 가르쳐야 되고 행하지 못했을지라도 행할 그 소원하는 그것을 가르쳐야 되지 행함과 아무 관련 없는 그것을 가르치면 안 되고 또 가르칠 때에도 상대방에게 어짜든지 행하도록 하려는 이 목적에서, 행하면 뭣 하는데? 행하면 구원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상대방을 행하도록 해서 구원이 되도록 하려는 이 동기와 목적에서 이렇게 해야 되지 그것이 아니고 다른 자기의 무슨 소개나 자랑이나 뭐 자기의 권위나 나타내려는, 이 세상에서는 대개가 그런 게 많습니다. 그런 거와 같은 그것을 가지고 가르치고 또 배우기가 쉽습니다. 배우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6절에 말씀은 가르치는 것과 또 가르친 그대로 행하는 거와는 이것은 떨어지면 사망입니다. 이게 떨어지면 사망입니다. 그 기묘하게 잘 몰라도, 너무 기묘해서 어두운 심령으로는 모르지마는 요게 하나가 되지 안하면 그만 거게서는 사망이 움터서 망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가르치는 사람도 그 사람으로 행하여 구원 이루기 위해서 가르쳐야 되지 딴 몫을 가르치면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자기는 가르침 받아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행해서 구원 이루기 위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되지 물론 가르침을 받는 데에는 세상에는 별별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이게 바로 가르치나 안 가르치나 그런 것은 조심해서 자기가 먹어야 되는 그거는 언제든지 그 주의로 따라붙어야 됩니다.

이런 그저 둔한 짐승들도 뭐 마구잡이로 먹는 줄 알아도 먹으면서 그 혀의 감각과 또 그 코의 그 모든 취각으로서 먹을 걸 안 먹을 걸 낱낱이 가려 가지고서 그렇게 먹습니다. 소 먹여 보면은 이놈이 풀을 먹었다가서 혹 안된 풀이 들어갔으면 막 입을 이 삑삑거려 쌓으면서 다 뱉아 내 버립니다. 뱉아 내트리고.

그것 모양으로, 우리가 물론 가르침을 받을 때도 이게 바로 가르치나 안 가르치나 이것을 살펴야 되겠고, 또 가르치는 데도 내가 가르치면서 이거 잘못 가르치면 멸망시키는 것이니까 내 가르침이 바르나 안 바르나 이걸 조심해서 옳고 그른 이걸 항상 조심해 주의를 가지고 해야 되고,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자도 자타가 행하여 구원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자도 자기의 행하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되지 다른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데에 붙들리면 자기는 실패합니다.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이라 말은 위에 가르친 그런 것을 다 좋은 것이라. 성경 말씀을 가르치니까 좋은 것 아닙니까?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다음부터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 행하는 길이 하나 있고 가르침을 받고 행하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옳은 가르침을 받고 행하지 아니하고, 옳은 가르침을 받고 행하지 않는 그 길이 있고 또 바로 가르침을 행하는 그 길이 있으니 가르침을 받아서 행하지 않는 그 걸음은 누구의 인도를 받는 자인가? 자기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자기 주관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또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거게서부터 가르침을 받고 가르침 받은 것을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 행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그러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움직이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가르친 그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 가르치는 대로 행하는 그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주관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또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지도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지도하도록 그 지도를 받는 자입니다.

그러면 가르침을 받았을 때에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도받는 것이고 진리의 지도받는 것이고 영감의 지도를 받는 것이고 행하지 않는 자는 제가 가만히 송장 모양으로 그래 있지 않고 움직이기는 움직이니까 이대로 하지 않는 자는 자기에게 지도를 받고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그러면 행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책임을 자기 책임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자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 책임을 자기가 지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소원대로 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는 자다. 자기를 자기가 책임지는 자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말은 네가 너 속이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네가 너 속이는 게 뭐이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에게 맡기는 자는 속는 자가 아니고, 자기를 속이는 자가 아니고 자기를 참 복되게 하는 자가 되고 가르침을 받은 것을 지켜 행하지 않는 자는 그자는, 다른 사람에게 속는 게 있다 하지마는 그거 분석하면 전부 자기에게 속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이 자기를 망칩니다.

자기를 망치는 건 누가 망치느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 그것이 망칩니다.

옛사람 그것이 망칩니다. 악령 악성은 뭐인데? 그것은 그만 자기 위주 자기 중심 그것이 악입니다. 그놈이 들어서 망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면 자기를 자기는 망치는 자고 자기를 주님에게 맡겨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이 말은, 왜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는 이 말은 왜 여게 나왔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아라. 하나님은 지극히 공평된 심판을 가지고 계신다.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은 멸망할 자를 멸망시키고 구원할 자를 구원시키고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네 한 걸음 한 걸음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기면 하나님께 멸망을 받든지, 네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든지 네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하나님의 멸망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는 세밀하고 아주 빈틈없이 요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한다” 여게는 하나님이 벌써 착수해 가지고서 그 심판을, 하나님이 심판을 여게다 포함시켜 가지고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거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십니다. 멸하시기 때문에 시키시는 대로 안한 그것은 완전히 멸망됐습니다.

이것을 자꾸 전체로, 나누지 말고 전체로 날뛰고 말하고 있지마는 그 자기 현실에는 자기의 그 현실에 해당되는 자기의 정력이 있었고, 심지어 정력만 아니라 거게 해당되는 모든 사물들이 있었고 이랬는데 그 현실에서 말씀에 순종한 것은 다 영생이 돼 버리고 순종하지 안한 것은 영원한 멸망이 돼 버렸습니다. 멸망이 됐어.

멸망이 됐는데 하나 희망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순종하지 안했으면은 멸망의 기능을 만들었습니다, 멸망의 기능. 땅에 있는 기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그 현실에서 투자된 그 정력과 만물이 멸망의 기능을 만들었든지 구원의 기능을 만들었든지 둘 중에 하나 만들어집니다. 요것도 자꾸 만들어져, 기능이 만들어집니다. 기능이 만들어지는 자도 있고 안 되면 춤추는 기능을 만들어도 만듭니다. 안 되면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죄 짓는 기능을 만들어도 만듭니다.

그거 만들어지지 안 만들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행동하고, 그거는 남을 해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에 나쁜 것은 제게는 없지 하지마는 그 행동할 때는 반드시 그거 기능이 만들어지고 그리 안 하면 바보같이 누워 자든지 하면 그거는 아무것도 없지마는 기능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기능은 제게 붙어 있습니다. 정력은 그건 떨어져 나갔어도 정력으로 만든 기능은 자기에게 붙어 있어, 자기에게.

그러니까 도적질 하는 그 일을 했으면 도적질한 그 정력은 없어졌지마는 정력 그것이 도적질 하는 기능으로 기능화돼 가지고 자기에게 있습니다. 한번 도적질 하고 또 하면은 또 두 번 하면 자꾸 익숙해지는, 뭐이든지 익숙해지는 그것 뭐이냐 하면 그 기능이 자기에게 쌓여 있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것이 자기가, 그러면 그거 멸망할 기능이 돼 가지고 멸망할 기능화돼 가지고 자기에게 쌓여 있으면 그것은 어찌 되느냐? 그거는 멸망이 되는 것인데 한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뭐이냐? 그 기능을, 그 기능을 생명의 기능이 잡아먹고 생명의 기능의 양식으로 삼으면은 아주 멸망의 기능의 그 망하는 것을 잡아먹어서 생명의 기능화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은 베드로는 주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 저주까지 했으니까 그것은 그 시간에 만들어 놓은 그 기능은 주님을 저주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부인하는 기능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는데 그것을 베드로는 멸망할 기능 만든 그것을 구원 얻는 기능에다가 잡아먹어 가지고 구원 얻는 기능에 양식을 삼았습니다.

자기는 닭이 울 때마다, 전설에 들으면 ‘나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나는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다.’ 요것을 자꾸 씹어먹고 자꾸 씹어먹고 씹어먹고 씹어먹으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을 부인치 않는 그 영생하는 기능이 더 장성해졌기 때문에 잡아먹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 죄지은 그 모든 기능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요거는 멸망의 기능이 됐기 때문에 요걸 어짜든지 죽기 전에 요걸 내가 잡아먹어서 영생 얻는 기능의 양식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 요 도리를 깨닫고 그 도리대로 하는 자는 삽니다.

요게 문제라 그말이오. 요런 걸 깨닫는 게 문제라. 뭐 우리가 그만 신구약에 전 기본은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이면 거기 다 들었습니다. 또 신관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에 대해서 우리가 열 가지를 말하고 열두 가지 말한 데는 싹 다 들었어. 그 안에 환하게 다 들었어. 신구약 성경이 다 들었습니다. 다 들었으니까 이제 둥치는 다 들었으니 여게서 새싹이 나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이 새싹나는 요게 문제라. 그것 없으면 묶은 둥치로 그대로 있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때부터 하나님이 그저 “하나님은 업수이 여김을 받지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오. 하나님은 여게서부터 착수하신다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을 벌써 듣고 그 행치 않느냐 듣고 행하느냐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고 그다음에는 들은 대로 네가 행하라 하시는 그 역사까지는 전부 구원하는 역사인데 거게서 행하지 아니하면은 그거는 구원하는 역사를 부인하고 나가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는 행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역사로 하나님이 도우시고 행하지 않는 자는 심판해 가지고 멸망의 역사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이 말은 과거를 당신이 했기 때문에 그 현재에 하나님을 거부하면 거부하는 그대로 당신이 복수하신다 그말이오. 아무리 택한 자에게라도, 아무리 택한 자라도 행하지 않는 그걸 하나님이 구원하는 길이 없어.

그러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 예를 듭니다.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무엇으로 심든지 그말은 무엇으로 행동하든지 그대로 보응받는다. 그대로 하나님이 보응을 시키신다. 그대로 갚으신다 그말이오.

그대로 거둔다 말은 갚으신다, 제가 콩 심었으니까 콩이 나 가지고 콩이 엽니다.

그거 하나님이 콩을 심은 자에게 콩이 나서 자라 가지고 익어서 그에게 콩 그 수입을 가지도록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 그말이오. 얼마나 정확하게 하십니까? 얼마나 정확하게 하고 그뭐 철저하게 하고 신실히 하십니까? 이거 그런 것만 그라는 줄 알지만 그것보다도 인간 구원은 더 크다 말이오. 곡식 심으는 것보다 인간이 행하는 그것은 더 고차원이라. 근본이 더 높은 것이라.

이래서 “무엇으로 심든지” 무엇으로 행하든지 “심든지” 말은 행하든지, 왜 행하는 걸 행한다 하지 심는다 하는가? 그 심는 것은 심은 것에, 사람이 기독자들이 행하는 것에 그 행하는 것 행하는 것으로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행한 그것은 서숙알 하나를 심으면은 여러 수천 알이 맺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네가 행동한 그것은 그 행동한 것에 수천 배의 결과가 맺는다. 그런 줄 알고 살아라 그말이오.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대로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 보응하신다. 하나님이 그런 걸 모르고 빠주고 있는 줄 알아도 암만 바빠도 빠주지 안하고 그분은 뭐 분망도 없고, 복잡도 없고, 착오도 없고, 착각도 없다. 변함도 없다. 이걸 말합니다.

그러면 8절에, 그러면 이 행하지 안하는 자 그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인데 그자는 어떤 자이냐? 자꾸 밝힙니다.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그것이 곧 육체 섬기는 것입니다. 위한다 말은 섬긴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육체를 섬기는 자, 육체를 선생님 모시듯이 모시고 지도자로 모시고 자기 부모로 모시는 것처럼 여게 육체를 위한다 말은 육체에게 속한다 말이요, 육체에 지도받는다 말이요, 육체를 섬긴다는 말이요, 육체를 따라서 산다는 말입니다.

육체를 따라 산다는 것은 이 육체는 이거는 뭐이냐? 이것은 심신을 따라 산다 그말입니다. 심신을 따라서 산다. 심신을 따라서 산다. 그러면 자기 마음 자기 몸의 모든 소욕대로 자기 마음의 소욕대로 사는 데 그 몸에는 뭐이 배여 있느냐? 악습이 배여 있고 마음에도 악습이 배여 있고 또 몸과 마음에는 악성,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자기에 벌써 본성이 되어 있다. 원죄와 본죄가 되어 있다. 악습은 본죄를 말하고 악성은 원죄를 말합니다. 이러고 또 그 속에는 깊은 속에는 악령이 들어 있다.

네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안하면 결국은 자기 따라 산다. 자기 따라 사는 것은 곧 악령 따라 사는 것이다. 그 속의 주인공은 악령이다. 옛사람 따라 사는 것인데 옛사람은 원죄만 있지 안하고 원죄에는 반드시 그속에는 악령이 들어 있고 악습 속에는 악성과 악령이 들어 있다.

이래서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를 위해서 사는 자는, “육체를 위하여” 육체를 따라 산다. 육체의 지도를 받는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도를 받느냐 네가 그 육체 지도 받느냐? 하나님의 지도받느냐 악령 지도받느냐? 하나님의 지도받느냐 악령 지도받느냐, 중생된 영의 지도받느냐 고기덩어리의 지도받느냐? 어느 걸 받느냐? 둘 중에 하나라 그말이오.

하나님은 거기 대해서 쉬거나 자거나 그거는 내비두지 안하고 낱낱이 심사하신다.

찰나 찰나를 심사는 계속되고 심사하시는 그대로 하나님의 보응도 계속된다.

하나님이 뭐 하시는가? 불의는 멸하시고 의는 세우신다.

불택자에게는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분깃을 세상 분깃 받아 그렇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피 흘려 구속했기 때문에 두지 않고 즉각즉각 멸할 것을 멸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멸망과 구원이 동시에 둘 중에 하나가 이루어진다.

이것을 말하는 거, ‘그렇게 쪼개서 자꾸 한다’ 쪼개는 게 옳습니다. 그래, 뭉칠 거는 뭉쳐야 옳고 쪼갤 거는 쪼개야 옳지, 뭉칠 걸 쪼개도 죄가 되고 쪼갤 것을 뭉쳐도 다 멸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썩어진 것이라 말은 뭐냐 하면, 썩어진 것이라 말은 뭐입니까? 썩어진 것이라 말은 이 세상에 속한 땅에 속한 것을 다 총칭해서 썩어진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암만 세상에서 세계에 제일 많은 재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거는 썩어진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의 암만 조롱을 받아도 영감과 진리대로의 행동한 것은 세상에게 조롱받고 또 세상에게 미움을 당해서 죽임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거는 썩이진 게 아니라 영생이다. 우리가 요렇게 평가를 정확하게 해야 되지 껍데기 평가만 해 가지고 자꾸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찾고 찾고 따지고 따지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죽는 날까지 해도 어려운데 제가 저를 이래 해 가지고 ‘너무 심하게 뭐 힘 다 들일 게 뭐 있나? 구별 더 할 게 뭐 있나? 이만큼 하고 말자.’ 네가 네게 속아서 멸망받았다 그말이오! 정신차려야 돼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을 섬기는 자, 성령의 지도를 받는 자, 성령에 속한 자 이것을 말해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 성령 위하여 심는 자가 뭐이 성령 위해 심는 자입니까? 뭐이 성령 위해 심는 자요? 벌써 어제 금요일날 오후까지 종강이 되니까 벌써 양성원 학생들도 집에 돌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로구만, 내가 보니까 안 보이는 사람 더러 있는데. 속아, 속아. 속아. 이리 안 하면 이 세상에 미혹이 가득 찬 세상에서 미혹을 다 헤고나 가지고서 생명을 얻을 수가 있겠느냐? 수많은 학자들이 꽉 찼어. 왜 꽉 찼는데 중생된 영에 대해서 정관을 하지 못했는가? 왜 구원에 대해서 정관하지 못했는가? 그들이 다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알아.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 불법 행하는 자는 제가 진리대로 살지 안하는 그게 불법 행하는 자고 넘어지게 하는 자는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이 간절하게, 더 열심있게, 다 기울이게 이렇게 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자꾸 감소시켜 감퇴시키는 거라. 열심을 감퇴시키는 거라. 해 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어리석어.

뭐 될 거는 되고 안 될 거는 안 돼요. 암만 양성원에 와서 공부해서 안 될 거는 안 돼. 내나 그게, 그게 그거 되고 그거 되고 변화 안 될 거는 안 되고 되는 거는 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성령으로부터” 그러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이 역사해 만들어. “성령으로부터” 성령 역사해 만들어.

성령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역사해 만들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어떤 자인데?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행하는 자가 성령을 위하는 자지. 그자가 하나님의 구원의 도움을 받는 자지. 그거 안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멸망을 받고 있는 자지 둘 중에 하나라.

어제 아침엔가 언제 아침에는 그 쪽발로 걸어가는 걸 말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 이 쭉 둘 중에 하나라. 이러니까 이거냐 저거냐 이걸 해야 되지 사람들이 어리석게 셋으로 나가면 헛일입니다. 넷으로 나가면 더 헛일이고, 다섯으로 나가면 더 헛일이고.

꼭 우리는 성경에 말하기를 “둘로만 구별해라, 둘로만.” ‘이게 나 위함이냐 하나님 위함이냐?’ 그래만 구별해야지 ‘이것도 이리 저리 하면 하나님 위함이 된다’ 그렇게 단서를 붙이고 하지 말고 꼭 둘로만 구별해야 돼.

여게 영감이냐 악령의 감화냐? 요게 땅의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늘 것을 위해 하는 것이냐? 요거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냐 이게 구속 외 인간으로 하는 것이냐? 이것 뭐 둘로만 구별하면 아무리 등신이라도 다 알 수 있어요.

이런데 마귀란 놈이 ‘너는 명철하기 때문에 둘로 말고 서이 너이를 가지라’ 하는 데서 멸망받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영생을 거두리라”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면 이렇게 가르침 받은 대로 행하면 영생은 뒤에 죽었다가 부활하고 나 영생을 얻는 줄 압니까? 아니오. 바로 현실이 영생입니다. 바른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행하는 그거는 바로 그 행하는 행할 때에 행한 그게 영생이오. 행한 그게 영생이라. 행한 그 기능이 영생이고 행한 그 행위가 영생이고 다 영생이라.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선은 또 뭐인데? 선이 내나 가르침 받은 그대로, 그것이 선이라. 그게 좋은 것이라. 선이라 좋은 것이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모든 좋은 것을 행하되, 가르친 그대로 행하되, 하나님 중심 위주로 행하되, 이모로 저모로 말하나 같은 말이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이 선을 행하는 이 생활 하는 것은 피곤해. 피곤해.

피곤하기 때문에 낙심하기 쉬워. 피곤해서 낙심하지 말아라. 피곤해서 낙심하면 헛일이라.

왜 피곤해? 행하면 또 피곤하고, 대적도 많으니까 피곤하고, 아니라고 유혹하는 것도 많으니까 피곤하고, 이러니까 자꾸 죽이니까 못 죽이구로 이래 다른 사람 못 죽이구로 또 이래 가뤄 줘야 되지, 방어해야 되지, 구출해야 되지, 저는 또 자꾸, 그뭐 행하구로 도와주면 하지마는 멸망할 행위는 자꾸 행하도록 도와 주고 구원 얻을 행위는 온 세상은 행하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합니다. 방해하는데 하나님만이 도우십니다.

왜 방해하느냐? 방해하는 그것은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라 할 때에 이거 속에서 벌써 고거 부화가 됐으니까 생명이 들어서 막 숨도 못 쉬게 갑갑해 죽을 지경이라. 죽을 지경이니까 삐약삐약 막 이래 야단을 지기고 이라는데 이걸 못 나오게 딱 껍데기가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방해해서 속에서 하다하다 못 견디니까 원청 발동을 하니까 껍데기가 툭 튄다 말이오. 세모잡이로 톡 튀어. 그 계란이 톡 튀어, 터지는 것 보면. 보면 톡 튀어 가지고 빠꼼하게 튀어 나와.

구멍이 뚫혀.

그거 뭐이냐 하면, 에미 닭이 나는 는 줄 알았어. 는 게 아니라. 어릴 때는 는 줄 알았어. 는 게 아니고 부화장에 하는 거는 아무 지도 안하는데도 제대로 속에서 막 힘을 내니까 툭 터져버린다 말이요, 툭 터져. 툭 터진 그게 뭐이냐? 제가 뚫고 나와야 이 공간 넓은 공간에 살지 그리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방해하는 그걸 제 힘으로 이걸 다 능가하고 나와야 그 하늘과 땅의 것을 통일한 그 나라에 가 가지고서 살 수가 있다 그말이오. 영생이 될 수 있어.

“낙심하지 안하면 때가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거 순서대로 다 되면 이제 성공한다 그말이오. 시간 다 됐는데 혹 뒤에 더 할란지 모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양성원 학생들, 잘 배워야 됩니다. 잘 배우는 데는 자기 속에 자기가 왕이 돼 있는 그놈은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제가 속고 말아. 예수님의 구속, 예수님의 것이 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어짜든지 뭐, ‘살든지 죽든지 어짜든지 바로 믿어보자, 잘 믿어보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보자. 옳게 구원 이루어 보자.’ 있는 걸 다해야 되지 다하지 안하고 벌써 조절하면은 자기가 스스로 속는 사람 되고 맙니다.

반사 선생들은 이 공과를 자꾸 외우고 새김질하면서 명상하면서 거게서 능력이 나와야 돼. 지난밤에 그 설교를 또 잘하데. 내가 별미 먹으라고. 수요일밤에도 ○목사님 설교 했는데 아주 세밀하게 구별 있게 잘했고 또 지난밤에도 세밀하게 구별 있게 잘했는데, 지혜를 구하라 하는 지혜는 그거는 전부입니다.

지난밤에도 보니까 ‘영감과 진리로 모든 걸 충만을 다 주신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라 하는 건 영감과 진리가 지능이다. 지능을 다 구하라.’ 그러면 지혜 구하라 말은 하나님의 충만이 네게 무엇이든지 부족한 거는 다 구하라 그말이오.

이래서 이 명상하면서, 이 공과를 명상하면서 자기가 거기서 힘을 얻으면 ‘이걸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되지 이거 모르면 큰일 났다.’ 이게 뭣이 감각이 있어야 심방할 힘도 있고 심방해 권면할 힘도 있고 또 권면할 때 성신이 같이 하지 그런 것 하나도 없는 게 가 가지고 심방할라고 이라면 성령이 같이 하지 안하고, 제가 가르칠 것 없는 자가 뭐할라고 사람 데려오고 있어? 그러니까 데려올 마음도 없고 또 그 영물이기 때문에 ‘네한테 가 봐야 배울 것 하나도 없는데 갈 필요가 없다.’ 해서 안 와요. 사람은 영물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영물.

그러니까 반사들이 요 공과를 자꾸 외우고 명상하고 이래 가지고 기도하면 거게서 자기 속에 ‘이래야 되겠다. 이거 모르면 큰일 났다.’ 이게 속에 있어야 돼. ‘이 안 되면 큰일났다. 안 가르치면 큰일 났다.’ 이거 있어야 뭐이 되는데 그거 없이 공연히 뭐 형식만 가지고 하는 그런 것은 다 죽은 행동이라. 아무 소용 없어.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어째 됐든간에 들은 대로 꼬박꼬박 자꾸 자기 구원을 이루어서 옛사람 그놈 자기는 죽이고 예수가 살아야 되지. ‘나는 죽고 주님 살아 최고 영광이라’ 그 참 복음성가 그거 아주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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