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신앙

 

1982. 4. 23. 금야

 

본문 : 눅 1:34-38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기독교의 시작도 예수님이요 또 결말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 이위  하나님이신 말씀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접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이신 말씀이 인간을 접할 때에 제일  먼저 접한 분이 마리아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말씀이신 이 하나님이 마리아와  연결된 이것이 제일 첫 순서로 된 것입니다.

 제일 첫 순서로 될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전하는 말이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하는 이 말을 전할 때에 마리아는 크게 놀랐습니다. 놀란 그  이유는 유대 종교법에서 처녀가 음행 하면 돌로 던져서 사형을 합니다. 결혼하지  아니한, 아직 결혼한 때가 되지 못한 이 어린 마리아에게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하는 그 말은 너는 돌무더기 속에 매장되어 사형 받을 자라 하는 이런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이 마리아에게 너무도 저주스러운 말이요 참 그 이상은 망할  수 없는 절단되는 말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놀라고 거부했습니다. 이런 말이,  어떻게 내게 이런 말하느냐 말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마리아 자신이 아는 대로 자기가 요셉으로 더불어 약혼은 했지만, 그  나라에서는 어린아이가 나면 벌써 부모네들이 약혼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약혼한 요셉이는 있지만 요셉으로 더불어 동침이나 이런 일은 없고, 또 때가 되면  공식으로 결혼식을 하고 나서 부부가 되지 그렇기 전에는 될 수 없는 일이요  그런 부정한 일이 없는 것을 본인이 알기 때문에, 나는 사나이가 없는 아직까지  미혼 여식인데 어떻게 내가 아이를 낳을 수가 있느냐 하는 것으로 거부를  했습니다.

 첫째 거부한 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하는 말이 아주 마리아를 멸살 시키는  이런 말이기 때문에 거부했습니다. 또 둘째는 역사에 남자 없이 아이 낳는 이런  일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에 거부했습니다.

 그 거부를 당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증거를 댔습니다. 보라. 사가랴의  아내,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이요 나이 늙은  노인인 것을 네가 알지 않느냐. 그러나 그가 잉태되어 벌써 여섯 달이 지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이렇게 천사 가브리엘이 증거 할 때에  마리아는 거기에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아무리 유대나라의 종교법에 그런  형편에서는 돌무더기에 묻혀서 사형 받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터인데 내가 하나님 말씀을  거부할 수가 있겠느냐.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게, 내야 죽든지 사형을  받든지 어찌 되든지 그것은 나는 모릅니다, 내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뜻대로 하실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칩니다.

 또 하나는, 처녀가 남자 없이 아이 낳는 일은 안 되지만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없는 데에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만든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또 생산도 할 수 있는데 하필 남편 없다고 하나님이  하시려면 못할 게 있겠느냐 하여, 자기도 부인하고 모든 역사의 통계도 부인하고  모든 이 자연계에 있는 인간의 경험 체험 지식도 다 부인하고 말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하나님이 마음대로 죽이려면 죽이시고 살리려면 살리시고,  이렇게 사용하시려면 이렇게 사용하시고 저렇게 사용하시려면 저렇게 사용하시고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실 하나님의 것이오니,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자기를 바쳤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시작이 된 셈입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접하는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모든 예언도 선지자도  구약 교회도 신약 교회도 다 헛것입니다. 구약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이 접선되는  이 접선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신망을 해 놨고, 신약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이 접한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구약은 미래에  있는 이 사실을 소망했고 신약 교회는 과거가 되어 있는 이 사실을 소망하면서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첫 아담에게도 여인이 관련되어 있었고 둘째 아담에게도 여인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관련된 여인 하와는,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세웠으므로 그에게 속한 자들은 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담과 관련된 이  여인 마리아는 첫 아담에게 관련된 여인과 정반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세워 복종했습니다. 이러므로 둘째 아담에 관련된 이 여인으로는 그 자손이 다,  첫째 여인으로 인하여 멸망 받은 인류가 둘째 여인으로 인하여 다 구원을 받게  됐습니다.

 둘째 여인, 말씀이신 하나님이 구약 교회 신약 교회를 구원하시려고 제 일차  순서로 사람을 접선할 때에 일어난 이 형편과 사정, 이 순서는 꼭 같습니다.

그때만이 아니고 구약 시대에도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 방편이나 순서는 이러했고  신약 교회도 동정녀 마리아 탄생인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자는  방편과 순서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을 접해 가지고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을 접하지 아니하고 직접 구원할 수가 있다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온 예수님이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접해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에게 온 이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의 중보자라, 이 하나님을 가리켜서 우리의 중보자라 말합니다. 이  중보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구원도 마리아에게 접했던 이 하나님이  그 중보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접선되어 예수님이 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새로  창조된 새 사람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보자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나와 접선이 될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거와 같이 우리에게는 새  창조가 된 이 새 사람이 우리에게서 출생하게 되고 또 출생된 자가 이 접선을  통해서 성장됩니다. 없는 가운데서 새로 생겨지는 기독교의 소망도 하나님과  사람이 접해 가지고 생겨지는 것이고, 이미 생겨진 구원이 성장되는 데에도  하나님과 사람이 접선되어 가지고 성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으로도 안 되고  사람만으로도 안 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접선되어 가지고 새 구원이 시작도 되고  시작된 구원이 성장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없는 건설구원의 그 종류가 새로 발생되는 것도 이 두  접선에서 되고, 이미 생겨진 구원이 견고하게 성장되는 것도 이 두 접선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접선이 없으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이 접선이 될 때에  첫째 아담이 하나님과 접선되는 그 접선의 길이 있고 둘째 아담이 하나님과  접선되는 접선의 길이 있으니 하나는 사망이요 하나는 생명인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접선은 시발이 그 아내 하와에서부터 시발됐는데 그 시발이 자기를  세우고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세웠고, 둘째 아담의  시발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부터 시발됐는데 둘째 아담의 시발은 인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따라 복종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불변의 진리요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건설구원, 이 성화구원에 있어서 (졸지 말고, 졸면 안돼.

안다고 해도 그러면 능력이 안 들어가. 졸면서 뭐 하나님을 섬기려고 대하고  있어.)  건설구원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 한 종류가 새로 창설이 되는 데는,  새로 출생되는 데는 반드시 신인 접선이 있어야 하고, 이미 출생되고 창조되어  있는 그 종류의 건설구원의 것이 견고해지는 것이나 성장되는 것도 반드시 신인  접선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신인 접선을 할 때에 첫째 아담에게 소속이 되는 방편으로 행하는 자도 있고  둘째 아담에게 소속하는 방편으로 행하는 자도 있으니, 자기의 행동에서 첫째  아담에게 속하는 것과 둘째 아담에게 속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인  접선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여 그를 따를 때에는 둘째 아담에게  소속되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구원이 자기에게 오게 되고, 신인  접선이 될 때에 자기를 세우고 하나님을 부인할 때에는 거기에는 사망과 고통이  그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 둘이 접선되는 이 접선이 없이는 건설구원의  새로운 부분이 시발도 못되고, 또 이미 움싹이 트듯이 시발된 이 구원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접선되는 이 접선이 없이는 성장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나와 접선되는 그때는 나에게 생사가 결정되는 때요 성패가  결정되는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고 자라며 어떻게 하면 죽고 망하는가 그것은  간단합니다. 신인 접선할 때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를 부정하면 내가 하나님을  따르게 되고 나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면 나는 하나님 배반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멸망과 구원은, 자라고  자라지 못하는 것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접선하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이 진리의  법칙으로만 나에게 접하지 이 진리의 법칙을 떠나서는 접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진리는 함께 있고 함께 동하고 정하고 함께 하기 때문에, 내가  진리를 영접함이 하나님을 영접함이요 진리를 부정함이 하나님을 부정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전 시간이요 전  생활이기 때문에 우리의 크고 작고 성글고 복잡한 모든 생활은 빈틈없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순서입니다. 빈틈없이 우리 구원을 이루는 순서라는 말은 빈틈없이  하나님과 나와 접선하는 순서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하는 것으로  꼭꼭 박혀서 있습니다. 조그만한 틈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 접선하는 이  접선으로 꽉 짜여서 죽는 날까지 되어 있는 우리의 여생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이 없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이  접선을 잊어버려서 없는 것으로 보여지지 실상은 없는 찰나도 없는 것입니다.

벌써 없다고 보여지는 때는 자기는 살았으나 송장 같기 때문에 자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접선은 계속하고 있는데, 이 계속하고 있는 이 접선은 하나님을  부정하느냐 나를 부정하느냐, 하나님을 긍정하고 내가 따르느냐 나와 어떤  피조물을 긍정하고 따르느냐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그 순서가  통과되지 이루어지지 않고 통과되는 순서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건설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우리들인데, 이 건설구원은 없는  것이 새로 구비되는 것도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에서만 생겨지고, 없는 것이  생겨진 이 구원이 자라서 강건하게 되는 이 성장도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에서만  성장되는 것이지 다른 데서는 성장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이 아닌 찰나도 밤이나 낮이나 없는 우리의 여생인데, 우리  구원을 위한 전 여생인데 이 여생은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의 전 여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의 여생은 전부가 내 구원을 이루는 전 시간이요 전부라는  것을 기억하는 동시에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는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이 하나님, 이  하나님과 천한 내가 접선하는 이 접선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창조주 하나님과  나와의 계속 새 접선이 접선되고 그 접선에서 하나님과 나와에 원수가 되든지  화친이 되든지 결정되고 현실이 지나가고, 또 하나님과 나와 접선해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배반함이 되든지 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영접함이 되든지 이 순서로  지나가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의 여생은 전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여생이요,  우리의 여생은 전부가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으로 계속하는 여생이라, 그 접선은  중복적이라, 우리 여생에 닥치는 일은 내가 그 공간에서, 그 집에서, 그 장소에서,  그 일터에서 그 사람들을 접촉해 가지고 변동 없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자기의 현실은 같은 현실은 없습니다. 전부가 또 새 현실입니다. 현실은 지나갔고  다시 새 현실이 오고 현실은 지나갔고 또 새 현실이 오고 이렇게 그 현실이  외모는 같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고, 속은 같은 것 같으나 외모는 다르고, 이래서  다른 현실로 바꾸어져 가는 우리의 여생의 순서이기 때문에 현실이 바꾸어질  때마다 하나님과 나와의 새로운 접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접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남은 세상을 사는 데에는 수만의 현실, 수만 개의, 수만 개의  현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만 개의 현실이 하나 둘 차례 차례로  나에게 바뀌어 옵니다. 하나 내게 왔다가는 지나가 버리고 또 하나 새 현실이 또  한 개 오고 이 한 개가 또 지나가면 또 한 개가 오고 이렇게 수많은 나열되어  있는 이 현실 한 개 한 개가 지나가는데, 이 한 개 한 개의 현실은 내 건설구원의  한 개 한 개를 만들어 내는 현실이요 만들어 내 놓은 이 구원을 성장시키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한 개 한 개 다른 현실로 줄을 지워서 일관되어 있는 수많은  개수의 현실은 수많은 내 구원을, 수만 개의 구원을 이루는 현실이요, 수만 개의  구원을 이루는 현실은 수만 번 하나님을 부정도 하고 하나님을 긍정도 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도 하는 이 순서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수없이 자기를 부정한 자는 부정을 당하고 당하니까 이제는 자기는 꼼짝 못하고,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이 그렇게 그만 시들어져서 죽어버립니다. 많이 부정을  당하니까, 한 번 두 번 부정당할 때에는 이게 뻔뻔스럽게 낯을 들지만 너무 심히  부정을 당하니까 이게 힘을 씁니까 힘을 못씁니다. 마지막에는 부정을 당해서  말라 시들어서 죽은 것 같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 사람은  점점 신앙생활이 갈수록 자기라는 것은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건드리면 픽  자빠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대항해서 내가 왕이다 내가 왕이다 이렇게  대적할 만한 그게 되지를 못하고 약하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은 자기에게 긍정을 받고 환영을 받고 섬김을 받아 복종함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에게 세도가 강합니다. 강합니다. 한 번 환영받아  또 받아 또 받아, 또 환영 또 환영, 또 영접 또 영접, 또 모셔 순종 순종 이러니까  하나님은 자기에게 세력이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나 첫째 아담의 신인 접선과 같은 이 접선으로 하는 사람은 한 번 자기를  긍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따라서 살고, 두 번째 자기를 긍정하고 이  피조물 인간들과 자기를 긍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진리를 부정하니까,  하나님은 자꾸 부정만 당하니까 거기서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기가  죽어집니다. 하나님은 부정을 당하니 세도가 없습니다. 자기가 긍정을 당하고  자기 주장대로 따르니까 자기는 점점 강해집니다. 이래서 어떤 자는 예수 믿어  감으로써 점점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함으로 자기가 점점 강해지는 자가  있고, 어떤 자는 하나님을 긍정하고 자기를 부정함으로 자기는 약해지고 하나님은  강해지는 이것으로서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수많은 내 미래가 긴지 짧은지는  몰라도 내 앞에 있는 미래는 어떤 것으로 되어져 가지고 있는 것이냐. 내 앞에  있는 미래는 구원이냐 멸망이냐 하는 이것이 조성되는, 구원에 쓰여지고 멸망에  쓰여지는 요 미래로 여러 수많은 한 개 한 개가 첩첩이 줄을 달아서 있습니다. 이  현실은 한 개 지나가면 멸망이 됐든지 구원이 됐든지 구원과 멸망을 이루는  현실로, 내 앞에 쌓여 있는 이 현실은, 이 현실은 하나님 부정이냐 나와 피조물을  부정하느냐, 하나님을 부정하느냐 피조물 부정하느냐, 피조물을 부정한다 말은  여러분들이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피조물이라 말하지 실은 자기 하나면 됩니다.

인간을 뭐 위해서 하는 것도 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부정이냐 자기 부정이냐, 하나님 긍정이냐 자기 긍정이냐,  자기 긍정하면 자기 행동은 자기를 따를 것이고 하나님을 긍정하면 자기 행동은  하나님을 따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긍정이냐 자기 긍정이냐 요것으로 현실은  하나 하나가 결정되어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내가 첫째 아담에 속한 현실로 또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현실로, 내 현실은 반드시 둘 중에 하나로 결정을 지워서 지나가는  이 사실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오늘밤에 말씀하시기를 이 마리아에게 이 일이 왔습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들을 때에 이 말은 도무지 인간 이치에 맞지를 않습니다. 인간  이치에 맞지를 아니하고 역사에도 맞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전 통계에도 맞지를  않습니다. 안 맞는 일입니다.

 어떻게 남편 없이 아이를 낳는 일이 어데 있습니까. 이거 안 맞는 말이오. 안  맞는 말을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전했습니다. 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과 접선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첫 접선이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이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이 접선을  시킵니다. 도무지 인간 이치에 맞지 않는 접선입니다. 통계에 맞지 않는  접선입니다. 역사에 맞지 않는 접선입니다. 찰나에 맞지 않는 접선입니다. 이와  같이 맞지 않는 접선을 하랍니다.

 너 남편 없이 아이 밴다, 이 접선을 받아 들여야 될 터인데 도무지 이거는  이치에 맞지 않는 접선을 가브리엘 천사가 척 갖다 주면서 이 접선을 해야  구원이 이루어지니까 이 접선을 하라 할 때에 마리아는, 이런 이치가 어데 있나,  나는 사나이를 알지 못하는데 이런 이치가 어데 있나 거부를 했습니다.

 또 이치가 없어서 거부를 할 뿐만 아니라 이 가브리엘이 전하여 주는 신인  접선은 이 접선이 된다고 하면, 되는 이치도 없지만, 이치에도 안 맞지만 이  접선이 된다면 마리아 저는 박살납니다. 마리아 저는 박살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신인 접선을 통해서만 구원 이루어지는 것인데,  신인 접선의 첫째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맞지 않는 접선을 갖다 주고,  둘째로는 이 접선은 접선하는 자에게는 전멸을 당하는, 전멸을 당하는 비참한  접선을 갖다 줍니다. 이러니까 마리아가 부정했습니다. 이런 말이 내게 해당치  않다, 어디 이런 말이 있느냐. 천사라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념은 평생동안  천사를 한번 만나 본 사람이라면 그 민족 가운데서 이렇습니다. 이런 천사, 천사  중에도 복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이 가브리엘 천사가, 큰 천사가 왔는데 이  마리아가 거부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꼭 그와 같습니다. 내 구원이 되는 내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이래 하나가 접선이 되어야 되겠는데, 둘이 들어 붙어야 되겠는데, 하나가 되어야  되겠는데, 접선이 되어야 되겠는데, 현실에서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의 하나  되려고 하면 하나 되는 이것은 세상 이치에 도무지 맞지 않는 생활입니다.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맞지 않는 일입니다. 맞지 않는 처리입니다.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와는 하나인데 하나님과 나와 접선하는 이  접선을 우리가 우리 인간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우리 인간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합니다. 마리아도 그렇게 거부했습니다.

 또 인간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되는 이 일은 이치에만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이  된다면, 이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고 한 덩어리가 된다면, 하나님과 접선이 된다면  두말할 것 없이 나는 박살 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나는 박살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접선만 되면 그는 당장 돌 조산에 가서 파묻혀서 죽어야  합니다. 이러니까 마리아가 부정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되는 일을 현실 현실마다 해  나가야 되는데, 현실 현실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해서 자기를 따라서  현실 행동하고 지나가고 있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마리아와 꼭 같습니다.

마리아가 두 가지 느낀 것과 꼭 같소. 뭣 때문에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 하는  것을 거부했느냐. 거부한 거와 같이 오늘 우리 현실에도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하는 이 일을 현실에서 갖다 줄 때에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하고 이렇게 멸망하는 길을 자취해서 나가게 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하는, 하나님과 진리와는 하나인데 이 진리와 나와 하나  되어서 진리와 나와 함께 동하고 정하는, 진리와 나와 함께 움직여지는 이  움직임은 세상 이치에 전혀 안 맞는다 그말이오. 세상 이치에 맞지 않아.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부정합니다. 진리와 같이 해 가지고는 안 돼, 그래  가지고는 일이 낭패 돼. 안 돼. 될 일이 없어. 이치에 안 맞는 일이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마리아와 같습니다.

 그러면 이치에 안 맞는 그것이 이 세상 이제까지에 있는 이치, 인간이 알고 있는  이치, 이제까지 모두 역사에 되어진 이치 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고,  또 이대로 하면 자기가 당장에 박살이 나기 때문에 박살나는 그 일을 취할 수가  없어서 부정을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 두 가지 이유로 부정한 거와 같이 오늘도 우리 기독자들이 이 두  가지 이유로 부정하고 있는 이 단계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럴 때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향해서 증거했습니다. 마리아야, 네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을, 너거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을 알지  않느냐. 엘리사벳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라. 그가 젊을 때도 수태 못  했는데 늙어서 노인이 되어 있는 그 엘리사벳이 어떻게 잉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잉태를 시켜서 잉태된 지 6개월이 됐다 하는 이 증거를 말해 줄 때에  마리아는, 아 엘리사벳은 젊어서 수태 못한, 나이가 늙어서 할머니가 된 이  노인이 잉태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인간 이치에 없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인간 이치에 맞지 않으나 하나님이 하시려면 하실 수  있다 그러면 인간 이치 범위 밖에 있는 하나님 이치가 있다 하는 것을 마리아가  믿고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주여,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내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지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인데 내가 뭐 유익되고 손해보고 할 것이  뭐 있으며, 또 내가 아는 지식이 얼마나 좁으며 인간들의 아는 지식이 얼마나  좁겠습니까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주님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니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이다 할 때에  마리아에게는 이제까지의 부정 없이 잉태되는 일이 없는, 역사가 부정하는 인간  지식을 전부를 다 꺾고 부정하고 잉태됐습니다. 잉태가 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인간 지식을 부정하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꺾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성취되는 것을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자기를 바쳐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할 때에 여기서  이 능력이 왔습니다.

 만일 그때에 마리아가, 아닙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가 부정하고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말을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할 때에 그때에 이 역사는  이루어지지를 못합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 지식을 깨뜨리고 능력대로 이루어져서 잉태됐습니다. 잉태되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때부터 아이가 뱄습니다.

 조그만한 처녀가 아이가 배어 놓으니까 배가 불러서, 몸이 크면 하지만 아직까지  시집갈 때도 안된 처녀가 아이를 배 놨으니까 배가 부를 것 아닙니까. 배가 뚱뚱  부르니 이것이야 아무가 봐도 아이 밴 줄 압니다. 아이 배면 표 안 납니까.

 이러니까, 아이 밴 것이 표가 나니 동정녀 마리아에게는 마귀가 와서 자꾸 유혹  줍니다. 유혹을 줬을 것입니다. 마리아야, 야, 너 배부른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

배부른 것을 다른 사람이 안다. 알면 너는 돌조산에 모여 가지고 사형 받는 줄  알지. 너 지금 배부른 걸, 아이 밴 걸 다른 사람이 안다. 숨기라, 숨어라, 유혹을  시킵니다.

 마리아에게는, 유대나라의 종교법에서 처녀가 아이 배면 어떤 사형을 받는 것을  네가 알지. 네가 잉태된 것을, 지금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벌써 네 배가 부른  것이 아무가 다 볼 수 있지 않느냐 이러니까 네가 어디로 피해서 숨어라 너는  지금 사형 받는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초자연의 역사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  이 일이 성공이 되는 동안에는 마귀라는 놈은 계속적으로 너는 망한다, 너는  망한다 계속적으로 이와 같이 유혹을 줍니다.

 그럴 때에 마리아는 세상 지식으로 생각하면 아이구, 배가 부른데,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들 낳아 가지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유대나라의 법이 어떻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데 유대법이 어떻게 할 것이며 로마정권의 법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을 믿을  때에 배가 부른 배를 뒤로 하며 더불떵 더불떵 하면서, 내 뱃속에 만주의 주가  들었다, 구세주가 들었다, 내 배부른 걸 봐라. 담대히 자랑하고 다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 라는 이 말씀을 믿지 못할 때에 마리아는 당장  사형 받을 일이기 때문에 그는 오그라집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열 달 동안, 하나님과 사람과의 접선한 이 일이 완성이  되기까지에 열 달이 지났는데, 열 달 동안 수많은 미혹이 있었지만 그 미혹을,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다. 네가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무엇을 손해보든지 세상에서 백 배를 더 주마 말씀하신 그대로다.

네가 내 말을 그대로 순종하면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말씀하신  그대로다. 네가 목숨을 살기 위해서 나를 버리면 잃을 것이고 나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반드시 목숨을 찾으리라 말씀하신 그대로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믿을 때에 권능이 자기를 보호하여 세상 모든 제도와  법도와 지식과 사상과 권세는 가까이 오지를 못하고 다 밀려나가고 종이 되어,  세상은 종이 되어서 이용이 되어지고, 믿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은 밀려나가고  세상 세력은 자기를 와 가지고 점령해서 멸망을 시키는 것이 이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마리아 된 거는 우리의 하나의 첫 열매입니다.

 여기서 그는, 세상은 하나님과 접선한 것을 접선으로 인해서 멸망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와 가지고 그로써  인간 구원을 이루고 이 두 가지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 라는 이 말씀을 믿는 믿음을 요동치 아니하고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뱃속에 있는 밴 아이 때문에 자기는 돌무더기 속에 들어갈 것인데,  들어갈 터인데 믿을 때에 뱃속에 든 아이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보호를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잉태된 예수님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마리아를 보호하고  있습니까. 믿을 때에 예수님이, 그 안에 든 예수님은 마리아를 보호했고,  부정하면, 부정하여 버렸을 때에는 자기는, 자기가 보호한다고 인정했을 때에는  두려움과 환난이 들어오고 뱃속에 있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는 그는 평안했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베들레헴에서 해산을 했을 때에 먼 사람도 아니고 자기 가까운  동족, 자기 집안끼리, 집안끼리 모여 가지고 그 가운데서 마리아가 이이를  낳았으니까, 시집가지 아니한 아이가 아이를 낳았으니까 이거는 얼마나  사형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알지 않습니까.

 다른 외처에 가서 낳았으면 결혼한 사람인지 안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자기 친족  자기 집안만 모인 그 가운데서 낳았으니까 알 것 아닙니까. 이렇지만 마리아를  처녀로 잉태했다고 유대의 그 칠계 법을 적용시켜 가지고 사형주지를 못했습니다.

사형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론이 난 일도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헤롯이 죽이려고 한 것은 만 왕의 왕이 났다고 하니 저의 왕권 빼앗길까 싶어서  그런 것이지 이제 종교법에서 오는 박해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오늘 우리가 신인 접선으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이 신인 접선은 인간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인간 이치를 다 부정해야 비로소 영접할 수가 있지  인간 이치를 부정하기 전에는 영접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치를 다 부정하고 영접하면, 인간 이치를 부정하고 영접하면 무슨 결과를  맺느냐. 인간 이치를 부정하고 영접하면, 진리와 영감과 현실을 동행하면 무슨  결과를 맺느냐 동행하면, 마리아 속에 예수님이 잉태되었습니다.

 잉태됐는데 마리아가, 아이구 내가 배부른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알겠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이 사실을 믿지 못했을 때에 잉태된  예수님이 낙태가 되겠습니까, 안 자라고 이제 유산이 되겠습니까 또 돌에 맞아서  죽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없는 일이지만 추론도 할 수 있고 추상도 할 수 있고  추측도 할 수 있습니다. 추론할 수 있소. 만일 동정녀 마리아가 믿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그는 예수님을 탄생할 때까지 마리아 저는 지옥 생활입니다. 지옥  생활이오. 항상 죽음에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알고 오늘이나 돌조산에 묻힐까  내일이나 돌조산에 묻힐까, 자기는 해산할 때까지 그는 지옥 생활이 계속될  것이오. 그러나 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그대로 성장됩니다.

 그러나 이 마리아가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그는 평안했습니다. 믿을 때에 그는 아무런 해 받은 일 없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해 받을 일이 없지만 부정 할 때에 저는 지옥 생활하게 되겠고  긍정할 때에 그는 천국 생활로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베들레헴에서 순산을 해 가지고 우리의 구주 된 것이 이것이 신인  접선의 구원의 시발입니다. 이게 원형입니다. 이게 원형이오. 전부는 다 요대로의  형상대로 되어 나갑니다. 마리아에게는 영감과 진리대로의 예수님이 잉태했지만  우리 속에도 영감과 진리대로의 예수님이 잉태합니다. 우리 속에서 새사람이  잉태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신인 접선에 부정하지 아니하고 긍정하는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신인 접선으로 현실이 통과되어 버렸소. 현실이 통과되어 버렸소.

통과됐으면 아이는 했습니다. 통과됐으면 구원은 됐습니다. 된 구원은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해하지 못하고 이 구원이 점점 커집니다. 자기 뱃속에 밴 구원이 커집니다.

이것이 커지면 마귀라는 놈은, 신인 접선으로 이루어진 구원이 차차 차차 한 사람  두 사람 알게 커지니까 마귀라는 놈은, 너 이러다가는 죽는다, 이러다가는 죽는다.

마리아에게 미혹 주는 그 미혹과 같은 꼭 같은 미혹을 우리에게 계속 주고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그때에 부정하려고 이미 통과되어서 이루어진 구원을, 이것을  자기가, 이 구원을 이대로, 이 구원 때문에 나는 망한다 한다고 해서 이루어 놓은  구원이 절단 나는 줄 압니까. 그 구원은 그대로 이루어 나갑니다. 그대로, 그  사건은 그대로 이루어 나가. 자기가 신인 접선으로 어떤 일 하나 턱 해 놨으면,  신인 접선으로 그 일을 하나 턱 해 놨으면 해 놓은 그 일은 변동 못 합니다.

그대로 커 나가. 그 일 때문에, 네가 아무 자리에서 그 말을 한 그것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다, 그말 때문에 너는 조사 당한다, 그말 때문에 너는 죽는다 해도  그 일은 변동 못하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질 때에 그때에, 마리아에게 유혹시키던 유혹을 우리에게 계속 미혹을 줄  때에 우리는, 내가 진리와 영감으로 접선되어 가지고 이루어진 구원, 이루어진  구원이 점점 역사해서 큰 역사를 이루려고 확대돼지고 성장되는데, 성장될 때에  그때에 마귀는, 이 구원으로 인해서 너는 지금 돌조산 속에 들어간다 하는 것  모양으로 너는 망한다 이렇게 마귀가 유혹을 할 때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 사실을 믿으면 이루어 놓은 구원이 평안한 가운데서 점점  영광되게 성장되고, 믿지 못하면 구원은 그대로 성장되어 나가지만 자기는 지옥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고통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마리아에게 당한 일이 우리에게 당한 일과 꼭 같은데, 마리아가  예수님이 그 속에 잉태하고 난 다음에는 껍데기로 보기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뱃속에다가 모시고 지금 보호하고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 이치로 보면  그렇지만 실상은 뱃속에 계시는 하나님이 마리아를 보호하기 때문에 유대법이  꼼짝을 못했소. 유대의 종교법이 해하지를 못했어. 이분이 막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입도 막혀졌고 눈도 막혀졌고 손도 가리워서 해하지를 하나도  못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 경과 이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탄생한 것이 비로소  인간의 구주가 됐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같이 성장해 가지고 탄생되는 것이 이와같이, 성장해  가지고 탄생되는 것이 자기의 구원도 되고 남의 구원도 됩니다. 자기 구원도 되고  남의 구원도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리아의 구주도 되고 남의 구주도 된  것처럼, 요 순서대로 성장된, 신인 접선으로 통과된 현실 통과 요것이 성장  과정에는 반드시 믿느냐 의심하느냐, 성장되는 과정에서 세상 지식을 인정하느냐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느냐,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든지 세상 지식을  인정하든지 현실에서 신인 접선으로 통과된 것은 이미 되었다. 이미 구원이  되었다. 되었기 때문에 이 구원이 지금 날개를 치고 활동해 나갈 때에 이 구원에  대해서 네가 믿으면 이 구원이 성장되어 나가되 네가 평안한 가운데에서 이  구원은 성장되고, 네가 민지 못하고 의심하면 이 구원은 그대로 성장되어 나가나  너는 믿지 못했기 때문에 너만은 지옥 생활 한다. 이러면 구원은 그대로  성장되지만 너만은 지옥 생활 한다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왜정말년에 신사참배 때도 그랬고, 아마 가정마다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현실에 믿음으로 탁 통과해 놓으면 그때는  그만 통과했지만 그 뒤에 생각하니까, 아이구 내가 그때 왜 그랬던고. 이것  때문에 이제 큰 낭패 당하네. 그때 공연히, 주일날 가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하는  것을 그만 주일날 주일 안 지켰으면 되는 건데, 주일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는  것을 그래도 주일을 지켜야 된다 하고 나와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주일을 지켰는데, 그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현실을 지나갔으니까 벌써 잉태됐소.

구원은 잉태됐습니다. 잉태됐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주일 지킨 것으로 인해서  뒤가 지금 쐐기를 틉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말인지 자꾸 모르는데, 말해도. 이제 요거는 말하면 알 거라.

 주일을 지킨 것 때문에 쐐기를 틉니다. 주일을 지킨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쐐기를 틉니다. 가정에서 쐐기를 틉니다. 지난주일 범하지 아니하고 신인 결합의  접선에서 접선 통과한, 지난 주일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가슴이 도곤거리면서 주일  지킨 것으로 인해서 지금 돌조산에 묻히는 그 환난이 월요일부터 시작합니다.

 어제 주일 범했지, 회사에서 야단이 납니다. 가정에서 야단이 납니다. 남편에게서  야단이 납니다. 주인에게서 야단이 납니다. 여수 거래에서 야단이 납니다. 어제  주일 하나 지킨 그 일로 인해서 내게는 이제 돌조산에 묻혀 죽는 거와 같이 크게  낭패되는 큰 환난이 지금 일어납니다. 요것을 마귀란 놈이 자꾸 말해 줍니다.

 말해 줄 때에 인간 지식을 가지고, 어제 내가 그만 그렇게 하지 말고 어제 한  주일 범하는 게 나은 건데 공연히 내가 어제 그랬지, 이렇게 되어도 어제 주일을  지킴으로 이루어 놓은 구원은 그 구원이 날개치고 점점 성장되어 나갑니다.

이러나 자기는 어제 주일 지킨 걸 인해서 지옥생활 하고 있습니다. 고통이오.

회사 가도 눌리고, 자기는 고통 생활 지옥 생활합니다.

 그런 순서가 올 때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일 지키면 복받는다 했고 주일 지키면 잘 된다 했고 주일 지키면  구원 얻는다 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그대로 됩니다. 내가 어제 주일을 지켰기  때문에 나에게는 복이 온다, 성공이 온다, 평강이 온다,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요것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자기에게는 평강이 오고, 믿을 때에  평강이 오고, 믿어 놓은, 믿어 놓은 하나님이, 믿어 놓은 그 진리가 자기를 보호해  줘서 자기가 평안하지만 믿지 않을 때는 이 보호를 입지 못하니까 자기는 지옥  생활로 고통으로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요. 요거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의를 행해 놓고, 의를 행해 놓고 그 의로 인해서 마리아가  이렇게 안보 받는 것처럼 안보 받는 이 비밀이 있고 참 기적이 있는데, 이 기적의  이 비밀을 힘입지를 못하고, 이제 구원은 이루어 놨지만 부정하는, 자기를  긍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을 긍정하고 하나님 부정하는 가운데서 자기가  만든 지옥의 고통에서 이와같이 고통되는 사람이 있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자기에게 와서 역사할 수가 없어.

 이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 라는 이 사실을 자기가 긍정하면 하나님의 안보가 자기가 주일  지킨, 주일 지킴으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접선된, 접선된 그 하나님이, 접선된  그 진리가, 이루어 놓은 그 의가, 의는 불타지 않는데 그 의가, 하나님과 진리와  이루어 놓은 의 이 셋이 자기를 안보하니 그 안보는 피조물보다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 안보를 입을 수 있는데 긍정 안 하면 안보를 할 수 없습니다. 안보를  못하니 이루어 놓은 구원은 그대로 있지만 자기는 지옥 행위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역사 할 수가 없어. 믿을 때에 하나님 안보가 자기를 안보하기 때문에 이  안보의 혜택을 입어서 자기는 평안하게 돌아다닙니다.

 배가 불러 가지고 돌아다니니까 참 많은 사람이 볼 때에, 마리아 저거 위험한데,  마리아 저거 위험한데, 누가 저 말을 하지 않느냐 보는 사람마다 마리아는  위험하고 참 불쌍하고 가련하고, 마리아를 보면 마리아보다 다른 사람이 떨려서,  다른 사람이 떨려서 가는 데 마다, 아이구 저거 언제 저게 폭발되어 가지고 지금  돌조산 맞을 건가.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지 마리아는 평안합니다. 마리아는 더  떠불떵거리며 다니요. 배가 불룩해 가지고 지뿍지뿍 돌아다닙니다. 뭣 때문에.

하나님 능력의 보호를 입습니다. 이래 돌아다니요. 다른 사람이 겁을 내요.

 이렇지만 겁내는 그 사람들의 겁대로 과연 위험성이 있었느냐. 아무 위험성 없이  순산했고, 순산하되 자기 가까운 집안 속에서 순산해도, 자기 집안이 알면 그  종족의 모욕이 되기 때문에 자기 집안에서 부모네들이 먼저 돌로 던져 가지고  죽이는 것입니다. 친족 속에서 했지만 친족도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위험한 길  다 돌아다니고 위험한 데 다 돌아다녀도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제 삼자들이  놀랐지 본인은 평강 가운데 지낸 요것이 기독교의 종자요 기독교의 첫  열매입니다. 오늘의 모든 생활도 이러합니다.

 올 때는 반드시 이 세상을 긍정하느냐 하나님을 긍정하느냐, 어느 것을  긍정하느냐. 여기서 이것을 부정하면 하나님을 긍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자기 속에 와서 이루어지는데, 이 구원이 이루어지면 이루어  놓은 이 구원이, 이루어져 놓은 이 구원이 나타납니다. 이루어진 이 구원이  나타나요. 이루어지는 이 구원이 한 사람 알고 두 사람 알고 세 사람 알고 네  사람 알고,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도곤도곤 하도록 마귀는 만듭니다. 그럴 때에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역사해서 자기는 평강 가운데 살고, 못 믿으면  이루어진 구원은 그대로 역사 하지만 자기만 지옥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인정하는 데에서 역사하고 그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인정치 아니하고 행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역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세 가지를 말하려 했는데 한 가지밖에 말  못했습니다. 두 가지는 말하지를 못했습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내일 아침에  말하겠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이 사실은, 이것은 우리의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신인 접선으로만 이루어지지 신인 접선을 통과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인 접선에서 어느 것을 부정하고 어느 것을 긍정하느냐  여기에서 멸망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첫 아담은 자기를 긍정함으로 멸망했고 둘째 아담은 하나님을 긍정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이 구원이, 이 구주가, 마리아가  된 이 구주는 자기 구주요 남의 구주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현실에서  순종함으로 내게 이루어진 구원은 내 구원이요 이 구원이 남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이 다른 사람 구원하는 구원이오.

 이런데 이 구원이 내 속에서 이루어져 성장될 때에는 마리아의 형편과 입장과  꼭 같은 형편과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그럴 때에 마리아가  긍정하는 여기에서 평안하고 세상을 발로 밟았고, 세상 법칙을 밟았고, 권세를  밟았고 권능으로 나타났고, 긍정 못하고 부정할 때에는 그 이미 잉태된 권능은  그대로 자라지만 그 안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리아는 지옥 생활 고통 생활로  지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모형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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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마귀/ 요한복음 5장 24절-27절/ 831224토새 선지자 2015.10.29
391 마귀의 역사/ 요한계시록 20장 1절-15절/ 880626주후 선지자 2015.10.29
390 마귀가 입고 활동하는 갑옷/ 마태복음 10장 36절/ 890518목새 선지자 2015.10.29
389 마귀의 미혹 세 가지/ 창세기 3장 5절-7절/ 890604주후 선지자 2015.10.29
388 마귀의 미혹을 방어하라/ 창세기 3장 1절-6절/ 861011토새 선지자 2015.10.29
387 마귀의 역사/ 요한일서 3장 8절-10절/ 830206주후 선지자 2015.10.29
386 마귀의 유혹을 방어하는 법/ 창세기 2장 15절-17절/ 880210수새 선지자 2015.10.29
» 마리아의 신앙/ 누가복음 1장 34절-38절/ 820423금야 선지자 2015.10.29
384 마음/ 베드로 전서 2장 1절-2절/ 790926수새 선지자 2015.10.29
383 마음/ 베드로 전서 2장 1절-2절/ 790926수야 선지자 2015.10.29
382 마음 깊이 살아라/ 마태복음 5장 1절-4절/ 850918수새 선지자 2015.10.29
381 마음 눈 밝히기/ 마태복음 6장 19절-24절/ 820127수새 선지자 2015.10.29
380 마음 눈이 밝아야/ 마태복음 5장 13절-16/ 870918금새 선지자 2015.10.29
379 마음 눈이 밝아야/ 마태복음 6장 19절-24절/ 871014수야 선지자 2015.10.29
378 마음과 뜻/ 요한계시록 2장 22절-23절/ 820723금새 선지자 2015.10.29
377 마음과 영의 생애/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7토새 선지자 2015.10.29
376 마음을 깨끗하게 하자/ 요한계시록 2장 23절-25절/ 860113월새 선지자 2015.10.29
375 마음을 나누지 말라/ 고린도전서 7장 31절-35절/ 8703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9
374 마음을 넓혀라/ 요한복음 14장 1절 상반절/ 871222화새 선지자 2015.10.29
373 마음을 들고 살아라/ 마태복음 10장 16절-23절/ 850819월새 선지자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