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선지자선교회 1979년 9월 26일 수야

 

본문: 베드로 전서 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을 택자와 불택자 두 종류가 있는데 불택자들은 희망이 금생뿐이고  내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살이를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  아무래도 마지막은 멸망이기 때문에 불택자가 세상에서 잘돼 봤자 2, 30년 후에  멸망받고 잘못되면 2, 30년 안에 멸망을 당하는 2, 30년이지마는 그 시간  문제지마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2, 30년 문제가 아니고 영원 무궁한 멸망과  구원, 금생과 내세의 승패, 또 존귀하고 비천해지는 것, 영광스럽고 수치해지는  이런 것이 이 세상에서 결정이 됩니다.

 잘돼 봤자 몇 십년 못돼 봤자 몇 십년이라면 그 짧은 몇 십년 기간이니까  이것이나 저것이나 별 수 없지마는 택한 자들은 영원히 잘되고 못되는 이것을 이  세상에서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희망을 가진 자의 택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택한 자는 이 소망이 있는 자인고로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불택자는 그만 두고 택자에게 관해서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택자들의 금생과 내세, 자체와 모든 소유 이것이 승하고 폐하고  귀해지고 천해지고 또 살고 죽는 이 원인 어디 있느냐? 이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택자들은 다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여기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택자들의 생사, 승패, 존비귀천, 금생과 내세의 전부가 그 마음이  어떻게 활동하느냐 하는 데에 다 근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잘못  날뛰면 제가 아무리 소원해도 전체가 실패되고 마음이 바로 활동하면  성공합니다.

 영은 이미 바로되어 있지마는 영과 이 마음이 관계가 잘 맺어져서 마음이 영의  지도를 받으면 되겠는데 이 마음이 영의 지도를 받지 아니하고 제대로 날뛰기가  쉬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굉장히 빠른 속도를 가졌고 또 힘을 가진 것입니다. 육체의  힘으로는 상상도 못할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일초 동안에  이 우주를 몇 바퀴라도 돌 수 있는 그런 속도를 가진 것이 마음입니다. 또  마음은 이것이 하나에만 집중되어 가지고 한다면 이 물질계에서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인간 범위내에서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학문도 다 통달할 수 있고  기술도 통달할 수가 있고 어떤 성공이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런 아주 강한 힘을 가진 마음을 가진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못나도 그 사람이 일생동안 그 마음을 어떤 정치에 어떤 정권을 자기가  빼앗아 보겠다 하고 일생에 그 마음을 거기다가 집중하면 정권을 빼앗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이런데  저런데 다 허비하고 또 그 활동하는 그것이 많은 모순을 가지기 때문에 제  마음이 제 마음을 힘을 제재하고 방해해서 일이 안되는 것이지 일관만 된다면  굉장한 것입니다.

 지금 심리학자들이 연구한다고 해도 그 마음의 위력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는  심리학자들이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인간의 마음이 이 자연  수평선 이하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것만 재료로 삼아가지고 저희들이 말하고 있지  아직까지 이 마음이 하나로 집중된 그런 마음이 별로이 없고 또 그런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저희들이 체험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심리학자들은 아직까지 없는 셈입니다. 그들이 심리 철학이라는 것이 그것이  약간 여기 더듬기는 더듬지마는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이란 굉장한 위력을 가졌고 민활한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은 한 시간에도 굉장한 범위를 달리고 있으며 굉장한 종류를 거치고  있습니다. 한 시간을 그 마음을 단일 집중하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을 연습해 가지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르쳐서 혹은 묘기라 혹은  마술이라 이렇게들 말하고 있으니 그 일부분의 마음이 집중되는 것이지 그  마음이 하나로만 단일되어 한다면 굉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마음은  수백 수천의 고깃 덩어리의 힘보다 더 강한 위력을 가진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이 타락전에 하나로 집중될 때는 그 영의 지배를 받아서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었는데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 마음세상을  혼잡시키고 번거롭게 해서 이것이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든 것이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이 마음을 하나에 집중을 시킬  수 있는 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참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는 길을  모르는 달음질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리 가다가 저리 가다가 길을 모르니 걸어갈  마음만 가지고 멍하고 있는 것이 참선입니다.

 그 참선하는 자들은 갈 길을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자기를 찾아 만나는  철학이라는 노정을 통과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없는 무아라고 하는 이  허무로 돌아가게 됩니다. 허무로 갔다가는 그 마음이 자기의 주체의 그 하나에게  부딪쳐 가지고 그것으로 일생을 끝마치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전진하는 그런  길은 없이 마지막으로 하나의 추상과 추론에서 일생을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이 마음은 바른 마음이지마는 민활한 마음이지마는 이  마음이 일생을 달리고 달려도 끝을 보지 못하는 노선에 섰습니다. 궤도에  섰습니다. 자기 마음이 연구에서 연구로 사고에서 사고로 또 감동에서 감동으로  암만 달려도 끝을 보지 못하는 이 무한의 궤도위에 서 가지고 있는 것이  구속받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이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방종해서 허탄한 길을 걷는  이것을 방어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을 이렇게나 저렇게나 제 마음이 가고  싶은대로 두면 큰일납니다. 이것은 뭐 순간도 쉬지를 않습니다. 자기 갈 길을  옳은 길을 정해놓고 마구 내몰아서 힘이 쭉 빠지기까지 달리면 무한을 향해서  달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되지 이 마음이 달릴 길을 잡지 못하고 세상 이런 길 저런 길 허탄한  돈을 향한 그 길을 잡아봤자 순간에 가면 끝이 나버리기 때문에 또 딴데로  향방을 돌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시작은 돈을 향하여 달리나 그 사람의 그 마음의 달음질이 돈을  향하여 달리는 것은 극히 하루 스물 네 시간이라면 아주 희박한시간입니다. 아주  극히 단축한 시간입니다. 권세를 향하여 달리는 것도 그 마음이 이리 저리 다  빠져버리고 엉터리로 줄기만 가지고 나는 권세를 잡아보겠다 가끔 가다가 한  번씩 생각하지 그 마음은 딴 데로 자기 가고 싶은 데로 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첫째는 우리 마음이 이렇게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심히  민활한 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 마음에서 모든 생사화복, 승패, 금생  내세의 그 모든 것이 마음의 활동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이것을 알아야 하겠고 또  세상에서는 석가모니같은 그런 사람은 마음을 많이 집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 후배들이 지금 아무리 연구해도 그의 갔던 자리까지  닦아놓은 길도 가지 못할만치 그만치 많이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이 막힌  길이요, 사망의 테두리 안에서 마치 개미 쳇바퀴 돌 듯이 돌았지 이 자연을  초월한 이런 길은 저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의 추상에서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무한한 길을  열어놨습니다. 무한한 자를 향하는 무한의 존재인 완전의 존재인 이 하나님을  향하여 달리고 달리고 억억만년을 달려도 종착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영원히 없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이런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장원한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우리는 심히 유한한 무능의 존재이지마는 예수님의 이 칭의와  새생명을 주신, 인간은 단독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영으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 가능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이  도를 받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심히 민활하고 심히 위대한 속도의 힘을 가진 마음이라  하는 이것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굉장한 것입니다. 이  마음은 절대 늙지 않습니다. 마음이 늙는다는 것은 이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벌로 날뛰다가 이 마음이 이 밧줄에 매였고 저 밧줄에 매였고 이 함정에 빠졌고  저 구렁텅이에 빠졌고 이 돛에 치이고 저 돛에 치여서 그렇지 이 마음이라는  것은 늙는 것이나 쇠약해지는 것이나 이런 것 아닙니다. 이 마음은 굉장한  위력을 가진 빠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둘째로는 우리의 금생과 내세, 영원무궁의 생사, 승패, 기본적으로 우리 영과  육은 영원히 영생을 가졌지마는 우리에게 속한 것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영생을 받느냐 하는 이 구속을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금생과 내세의 모든 생사, 성패, 화복을 이 마음의 움직임에  달렸습니다. 이 마음의 작용에 근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알아야 하고,  셋째로는 불택자의 마음은 그것이 갈래야 더 갈 수 없는 테두리를 넘지를  못하지마는 택자들의 마음은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존영과 무한한 승리의 그  부강을 향하여 찾아갈 수 있는 이런 가능성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소유를 단속하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단속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자기가 자기 소유를 잘  이용하는 그 유익보다 자기 몸을 잘 활용하는 유익보다 이 마음을 잘 활용하는  이 유익이 지극히 큽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마음이 이렇게 빠른 마음이 벌로 날뛰지 못하도록 이  마음을 단속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마치 고삐풀린 천리마와 같이 이것은  아랫도리 힘이 있고 그 성격은 달리는 그런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밧줄에  매여가지고 있으면 제가 죽어도 꼼짝 못하지마는 놔 놓으면 산이고 들이고 죽는  그 시간까지 뜁니다. 탄탄하게 좋은 길을 만나면 하루 천 리도 천오백 리도  다닌다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을 제대로 내비두면 이 마음이 돈을 향하여 달리거나  권세를 향하여 달리거나 지위를 향하여 달리거나 향락을 온갖 그 욕심을 향하여  전쟁에 달리는 용기있는 말과같이 달립니다. 그런데 벌로 날뛰면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첫째 순서가 뭐냐 하면 이 마음을 벌로 제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이 마음을 단속을 해야 됩니다. 여기 본문에 단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마음이 어떤 길을 가는 것을 가지 못하도록 이제 고삐를 붙들어 매야 되느냐?  첫째로 이 마음이 악독을 향하여 가는 것을 악독을 사모하는 이 마음이 악독을  향하여 달리는, 악독을 사모하는 이것을 금하라 했습니다. 악독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마음이 자기 중심, 어떤 피조물 중심,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으로 이 마음이 달리는 마음이 달리는 것은 마음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달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연상에서 연상으로  생각에서 생각으로 달리는 것이 찰나에 우주를 몇십 바퀴라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상이 아니고 그것이 다 달리는 그 궤도가 있고 다  달린 값이 있습니다.

 독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피조물을 피조물 중심으로 달려 자타를 해하는 그  마음을 가르쳐서 악독이라 이래 말씀했습니다. 악독을 사모하는 이런 것을 사모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단속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노동하는 것도 전체가 자기  중심입니다. 그것이 자기 망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타를 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만이 아니고 독을 하나 붙여서 악독이  됩니다. 또 모든 궤휼로 달리는 것, 이제 이렇게 저렇게 꾀를 써 가지고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 꾀를 써 가지고, 꾀를 쓰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다른  사람을 해해 가지고 무슨 성공하려고 하는 것, 바르고 옳지 않는 그런 깨끗지  못한 방편을 가지고 성공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궤휼인데,  그러므로 이 궤휼을 사모하는 이 궤휼을 향해서 네 마음이 달리는 여기  못가구로 붙들어 매고, 악독을 못하도록 붙들어 매고 외식에도 못가도록 붙들어  매고 외식에 못가도록 붙들어 맨다는 말은 외식은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그것이 다 껍데기 장식이라 말이오. 껍데기 꾸미는 것, 껍데기 꾸미는  것인데 이 껍데기 꾸미는 이것에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마음이 여기에  이것을 향해서 달리는 이 외식을 사모하는 이런 마음이 되지 아니하도록 붙들어  매야 된다는 말입니다.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 가져가지 못하고 내 행위는 가지고 갈 터이니까 선악간의  행위는 가지고 갈 테니까 이래서 행위를 향해서 그 마음이 달려 행위를 연구하고  행위를 사모한다면 그것은 외식은 안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는 마음도  외식이 아닙니다. 또 내세를 향하는 그 마음도 죽음을 향하는 그 마음도 모든  존재의 영원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거기에 기울이는 그 마음도 외식에 기울이는  것은 아닙니다. 외식으로 달리지 못하게 하고 시기로 달리지 못하게 하고 시기는  동등 위치에서 좋은 줄 알고도 싫어하는 그것이 좋은 줄 알고 남의 것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그것이 남의 행복을 싫어하는 것, 좋은 줄 알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시기입니다. 요것은 이상한 죄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도록 마음이 그 면으로 달리지 못하도록 그보다 더  더러운 것, 이제 다른 사람을 삣고 깎아 저를 북돋우려 하는 이런데 마음이  기울여지는 이런 것도 나가지 못하도록 마음이 여기에 가지 못하도록 볼끈  붙들어 매라는 말입니다. 여기 나가지 못하도록 마음을 볼끈 붙들어 매어가지고  그러면 이 마음을 어느 길로 뽑을 것인가 이 마음을 어느 길로 지금 달리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이 마음이 달릴 길은,  2절에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도를  사모하라, 영감도리를 사모하라. 영감도리에 네 마음을 집중시켜서 영감도리에  이렇게 위력을 가지고 민활한 마음을 영감도리라는 영감도리를 사모하고  연구하고 하는 이대로 마음이 되도록 해라. 제가 암만 용감스러워도 달리고  달려도 제 힘껏 달려도 끝을 보지 못하지마는 무한을 향하여 달리기에 만족히  달릴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러면 이 구원이라는 말은 완전이라는 말인데 완전에 네가 도달하도록 완전에  도달하는 완전 성공을 네가 하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마음을 다스려서 성경이 말씀하는 거기는 가면  안된다는 그 길을 이 마음이 가지 못하도록 그것을 생각지 못하도록 그것을  사모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도록  단속을 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영감도리를 사모하는데 여기  집중시키도록 해라.

 그러면 영감도리에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이 도리가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실지로 연구해 보십시오.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또  하나님을 만나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의 하나님을 만나보면 이런 하나님을  상대해 보면 또 하나님이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자기가 알게되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성경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은 성경을 소개하고 이제 여기는 참 이  마음이 마음껏 해도 부족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만족하고 피곤하지 아니하고 이  마음이 후퇴하지 아니하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꾸 가도 가도 새것이 되고  새것이 되고 하기 때문에 권태가 나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이 마음이 달리고  달리게 되는데 이렇게 마음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은 마음을 소개해서 이  둘을 만나게 되면 이 둘은 나에게 상대해 주는 것이 우리들에게 상대해 주는  것이 두 가지로 상대해 줍니다. 말씀도 두 가지로 상대해 주시고 하나님도 두  가지로 상대해 주십니다. 상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상대해서 하시는 것이 너는 이렇게 해야 된다. 이것을  하면 안된다. 그 두 가지로 우리에게 상대해 주시오. 또 이 말씀도 우리가  상대하면 이 말씀도 역연 같습니다. 너는 이렇게 해야 되고 이렇게 하면 안된다.

이 두 가지로 상대해 줍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하는 이 두 가지 길이 우리에게 나서게 됩니다. 나설 때 처음에는 '아, 과거에  내가 이렇게 해야 되는데 해서 이렇게 했다' 하는 과거의 후회가 나옵니다.

 또 앞으로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소원이 나오게 됩니다. 후회와  소원이 생기게 됩니다.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는 이 주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고 성경이 나에게 말씀해 주는 이 두 가지  말씀에 거기에 나는 필연적으로 순응하게 되어서 그때 내게는 무엇이 나오느냐?  '아, 이것은 해야 된다 이것은 안해야 된다' 그것이 내 소원이 되는데  미래적으로는 해야 된다는 것은 해야 된다는 그 소원이 되고 안해야 된다는 것은  안해야 된다는 소원이 되고 안해야 된다는 것은 안해야 된다는 소원이 되고  과거적으로는 '아, 이것은 해야 되는데 이것은 못해서 후회된다 이것은 안해야  되는데 했으니 후회된다' 이제 과거에 대해서 후회가 나옵니다. 이것이  첫단계입니다.

 후회와 소원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얼마동안 지체를 합니다. 머물게 됩니다.

후회하고 소원하는데 후회하고 소원해봤자 천 번 만 번 백 년 천 년 후회하고  소원해 봤자 안해야 될 것은 안하지는 못하고 해야 될 것은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면 해야 될 것을 하기는 언제 해야 되겠느냐 안해야 될 것을 언제 안하게  되느냐? 요것이 나오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이것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나오게 될 때 해야될 것을 하는 것은 소원해야 소용없구나 후회가지고  소용없구나 안해야 될 것을 안하는 요것도 후회가지고 소용없구나 소원가지고  소용없구나 그러면 해야 되는 것 안해야 되는 것 요것이 그러면 언제 해야 되고  안해야 되겠느냐? 요것은 연실이라는 현실에서 요것이 되는구나 요것을 잡게  됩니다.

 잡으면 이제 잡아서 요것을 잡아 가지고서 현실에서 자꾸 자꾸 달리면 자꾸  마음에 일거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달리다 보니까 이것이 마음에 넘어졌습니다.

넘어졌을지라도 이 마음이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어쨌든 기독자들이 여기 말씀하신 대로의 이 탈선의 길을 갈려고 하는  이것이 다 탈선의 길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가지고 삽니다.

이것은 사망의 법칙입니다. 탈선의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불택자들은 내나  탈선의 이 길이 자기들의 길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종말이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이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 택한  자인 줄 알고 전도하지요. 그러므로 불택자들은 그것이 길이지마는 택자들은  우리 길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는 이런 탈선의 길을 우리 마음이 거기  못가도록 붙들어 매는 이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위력이요 안 가여 되는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맸으면 이것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 실은 큰 것을  점령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강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고 유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이라고 말하면 지금 말하면 나라라는 말이요. 나라를 얻은  것보다 낫다 말이오.

 이런고로 우리 마음을 탈선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것이 소극적으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것이 위력이요 이것이 참 할 일이요 이것이 중대한  일이요 이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이 사람이 세상도 차지하고 내세도  차지합니다. 가는 길을 가지 못하도록 자기 마음을 단속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성경에 말씀한 그 순전한 이 길, 신령한 길 이 영감의 도리를  어린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과같이 네가 사모해라. 다시말하면 이 순전하고  신령한 영감도리에만 네 마음을 다 기울여서 영감도리만 사모하고 생각하고 찾고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이 말씀이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이 이 말씀을  소개해서 하나님을 만난 것만치 진리를 만나게 되고 진리를 만난 것만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리와 하나님을 만난 것만치 하나님과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과 진리를 안 것만치 자기를 알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자기를 알게  되요. 하나님과 진리를 안 것만치 자기를 알게 되고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를 안  것만치 모든 사람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모든 사람을 안 것만치 이 세상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에 이 하나님과 진리가 하라 하지 말라는 요것을 또 자기가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자기가 하고 안할 것을 소원과 후회가지고 안되니까  현실에서만 이것을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자연히 현실에 할 것과 안 할 것을  찾습니다. 안 할 것을 찾아서 방비하는 것이 금생과 내세의 멸망을 방비하는  것이요, 현실에서 자기가 해야 될 것을 진리와 하나님이 하라는 그것이 영육과  금생 내세의 성공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쉽고 모자라는 것 다 하나님께서 보충해 주시는 보증자가 있는데  제일 문제는 자기를 꺾어서 부인하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자기를 꺾는 것이  제일 문제요. 자기를 꺾어서 이놈만 꺾어서 이것만 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도에만 복종시키면 어떤 사람이라도 금생과 내세에 성공을 하지 못할 기독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므로 암만 들어야 실행안하면 소용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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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마음 눈 밝히기/ 마태복음 6장 19절-24절/ 820127수새 선지자 2015.10.29
380 마음 눈이 밝아야/ 마태복음 5장 13절-16/ 870918금새 선지자 2015.10.29
379 마음 눈이 밝아야/ 마태복음 6장 19절-24절/ 871014수야 선지자 2015.10.29
378 마음과 뜻/ 요한계시록 2장 22절-23절/ 820723금새 선지자 2015.10.29
377 마음과 영의 생애/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7토새 선지자 2015.10.29
376 마음을 깨끗하게 하자/ 요한계시록 2장 23절-25절/ 860113월새 선지자 2015.10.29
375 마음을 나누지 말라/ 고린도전서 7장 31절-35절/ 8703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9
374 마음을 넓혀라/ 요한복음 14장 1절 상반절/ 871222화새 선지자 2015.10.29
373 마음을 들고 살아라/ 마태복음 10장 16절-23절/ 850819월새 선지자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