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넓혀라

 

1987. 12. 22. 새벽 (화)

 

본문:요한복음 14장 1절 상반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우리가 이 마음을 밖에서부터 움직여 가지고 안으로 향하여 들어가는 마음이어야  하고 또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그 마음이어야 되지 마음도 그것만 가지고 그  안에도 아무 연결이 없으면 그 마음은 무익한 마음이요 죽은 마음과 같습니다.

이래서 마음은 보이는 것만 상대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는 마음은 그 껍데기 몸으로 이렇게 자꾸 진출해야 합니다.

이런데 이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는 것은 그들은 보이는 육안으로  보이는 것, 육안으로 보이는 여게서만 머물고 있고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육안에 피동되는, 또 육으로 들리는 데에 피동되는, 또 이 모든  접촉 감각에서 피동되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마는 그것이 안에서 움직여 거게서  나오는 그 안에게 피동되는 것이면 좋지마는 그것이 내부와 연결 연락이 없는,  연결이 없는 것은 다 사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라는 사람은 몸이 있고 또 몸 안에 크게 말하면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라면 마음의 뜻도 마음이요, 생각도 마음이요, 감정도 마음이요, 욕심도  마음이요, 기억도 마음이요, 그 정신도 마음입니다.

사람이 이 몸으로만 움직이고 몸 안에 마음이 활동하지 안하면 그 몸의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완전히 타락이 되어서 무능해지는 것입니다. 또 마음으로만 움직여서  마음과 몸이 이렇게 하나되어서 움직이면 세상 사람으로서는 슬기로운 사람이요  아주 민첩한 사람이요 능력 있는 사람이요 잘난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능률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마음 안에 있는 자기 영과의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리  해 봤자 물질계라는 그 수평선 이하의 것만 그는 접하지 그 이상 것은 접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 믿지 안할 때에는 영은 죽어서 완전히 기능적으로는  없는 것과 같이 그렇게 영의 기능이라는 것은 하나도 활동 작용이 없었고  심신으로만 살게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욕심이라 육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다 소경 같아서 사망만 향하고, 타락만 향하고, 자살만  향하는 것이지 그것은 아무런 생명적인 역사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생된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중생이라 말은 죽어서 기능적으로는 아무 작용 없는 그 영이 이제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은 이  세 가지로 살아났는데 영의 힘은 뭐이냐? 그러면 중생된 영의 힘은 뭐이냐? 영의  힘은 진리가 영의 힘이 됐고, 또 영감이 영의 힘이 됐고, 예수님의 열여섯 가지  구속이 영의 힘이 됐습니다. 그러면 영은 뭘로 자라가느냐? 이 세 가지로만  자라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온전하다 그 사람이 병들었다 하는 그말은 병든 것은 어떤  것이 병들은 것이냐 하면 영과 육이 하나가 돼 가지고 살지 안할 때에는 병든  것입니다. 영만 작용하고 육이 작용치 않는 것, 육만 작용하고 영이 작용치 않는  것 그런 것은 다 병든 것입니다.

그러면 육만 작용하면 그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가 안 믿을 때와 같은  그런 사람으로만 작용하게 될 것이고, 또 영만 작용한다 하면 로마서 7장에 있는 말씀대로 항상 영은 탄식만 하지, 이  심신과 결합이 안 됐기 때문에 영의 작용은 하나도 나오지 안하니까 그저 영은  탄식만 하고 고통만 하는 것이지, 영의 역사가 마음을 통하여 나오고 마음이 몸을  통해 나와서 영과 마음과 몸,  혼과 몸이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혼이라 말은 곧  우리의 마음 부분을 가리켜서 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가 돼 가지고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사람병 들었다 그렇게 말하고  사람병을 고쳐 달라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영육이 하나가 돼 가지고 움직이면  영은 뭘로 움직이는가? 영은 진리로 움직이고, 영은 영감으로 움직이고, 영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영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은 영원히  죽지도 안하고, 쇠해지지도 안하고, 낡아지지도 안하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영은  그 양은 적으나 질적으로는 온전이요 영원이요 불변입니다.

그는 완전이고 영원이고 불변이라는 것은 영 자체에 그런 게 아니라 영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움직이는 전 움직임이 이  셋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영의 움직임은 산 움직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은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다 말은 죄를 영원히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죄를 영원히 짓지 않는다는 말은 죄는 하나님과 떨어져 가지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삐뚤어진 것이 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움직이는 그 영은 삐뚤어진 게 없습니다.

삐뚤어진 게 없고 언제든지 옳고 바르게 역사하는데 그 영과 육이 결합이 돼  가지고서, 영이 육을 따라서 피동되는 게 아니고 몸이 마음을 따라서 피동되고,  마음이 영에게 피동되고, 영은 피와 성령와 진리에게 피동되는 이것이 정상의  사람이요 그러면 다 일초 일초 사는 그 생활이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인데  그렇지 안할 때에는 그것이 다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는 몰랐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지식인 이 온전한 지식을 우리가 받았고,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의 이  은혜를 받았고, 또 주님의 피공로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올바른  비판과 평가를 가지고서 늘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으로 힘쓰는 것보다,  몸으로 힘쓰는 것보다 마음으로 힘을 더 쓰고 또 마음으로 힘을 쓰는 것보다  영으로 힘을 더 쓰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영으로 힘을 더 쓰려고 애를 쓰는데 영이라는 존재는 그 신비한, 하나님과 마음과  그 사이에 들어서 사람들의 주격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경에 영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영의 존재를 인정은  하고 영은 말하지마는 영이 뭐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영에 대해서 올바른 정의를  내린 그런 신학자들이 없습니다.

이래서 칼빈도 영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성적 존재라 그렇게 한 말이 제일 밝은  말을 한 것이고, ‘마음이라’ 또 ‘양심이라' 이래서, 이성도 내나 마음에 속한  것입니다. 마음에 속한 것인데 ‘이성과 같은 존재라’ 이렇게는 말했지 영을  달리는 말 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악령은 우리를 계속 쉬지 않고 우리를 자꾸 아래로 끌어  내려가도록만 애를 씁니다. 악령은 우리를 자꾸 끌어 내립니다. 타락을 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또 악령은 우리를 자꾸 껍데기로 나가도록 자꾸 이렇게 애를  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를 향해서 올라가도록 자꾸만 이렇게 권면을 하고 또 안으로  기어들어가도록 노력을 하고, 차차차 안으로 기어들어가도록 노력하고, 안으로  기어들어가 가지고는 기어들어가는 것만치 거게서 자기보다 그 안에 있는 그  온전함에 피동이 돼 가지고서 피동되는 것을 밖으로 내품으려고 애를 씁니다.

밖으로 내품어서 자기 몸이 그와같이 활동하고, 또 몸의 활동이 몸의 활동에서  그치지 안하고 몸의 활동이 그 모든 사물의 활동까지, 사물을 또 그렇게 움직여서  사물 속에서 활동까지 해서 이렇게 자꾸 역사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는 이 노력과 또 안에서 나오는 그 나오는 것을  받아서 내가 거게 피동으로 움직이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그 양면을 늘 겸해서 보고, 보이는 면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 면의 능동으로 되어지려고 애를 써야 되고 또 보이지 않는  면은 보이는 면까지 다 이것을 피동시키려고 애를 쓰는 그런 역사가 우리에게는  있는 그것이 정상의 자기의 신앙 생활이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제자들은 그저 보이는 주님, 또  보이는 이 현상 세계 이 제도와 형편과 모든 존재들만 생각을 하고 그것을  표준으로 삼아서 전부 희로애락을 거게다 붙여놓고 있고 소망을 거게다 붙여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앞으로 없어질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은 없어질 것들이요 보이지 않는 데서 그게 나왔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큰데, 큰 것은 잊어버리고 자꾸 외식입니다. 마귀란 놈은 자꾸  이렇게 작용합니다.

이래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처음이요 그다음이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랬는데 타락 후에는 자꾸 보이는 것만 위주로 삼아서 이러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또 이 세상에서는 죽으면 그만 그것은 끝장나고 망한다  이렇게 세상 법칙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지금 모든 서기관과  제사장들에게 정죄 받아 가지고 내가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다’  하니까 지금 모두가 절망이 돼 가지고서 지금 근심에 가득히 싸였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보이는 이 세계에 갇혀 가지고서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는  세계 그 위, 그 안에, 그것보다 더 온전하고 더 실존적인, 이것은 한 그림자와  같고 안에는 그 실상 실체와 같은 그런 그 이면의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게  따라서 근심하고 있는고로 너희들이 근심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였으면 내가 가는 것을  기뻐하였으리라” 이래.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였으면 내가 가는 것을  기뻐하였으리라 이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나를 믿으니 하나님을 믿으라 하지 안하고, 내라는 것은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인데 나를 믿으니 하나님을 믿으라 이렇게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나라고 하는 이 주님은 제자들이 보고 있고 다 믿고 의지하고 정도 들었고  또 든든하고 이렇게 하고 있지마는 주님보다 더 크신 아버지는 그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렇게, 하나님은 곧 아버지인데.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보이는 나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먼저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은 나만 너희들이 믿는데, 나만 믿는데 나 믿는 것보다 아버지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나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다.

크시다 말은 성부와 성자와 대소의 크고 작은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은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가 된 이것으로 사람됨을 인해서  이제 신성으로만 계시는 하나님과 차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인성 가져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은 신성으로 말하면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인성으로 말하면 완전한 사람이지마는 신인양성일위가 된 이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지 하나님에게 능동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땅위에 오실 때도 그렇고, 오셔 가지고서 양성일위로  생애 하실 때도 그러하고, 또 양성일위로 부활하셔 가지고서 영원히 존재하실  때도 그러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이렇게 역사하시지 능동으로  역사하시지를 아니합니다. 능동으로 역사하시면 역리가 돼. 진리를 거스림이 되고  지위를 바로 지키는 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이라”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이래 말씀했어. 동등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언제든지 그 피동으로 이렇게  삼으셨습니다.

이래서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는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피동되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고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물 아래 있는 모든 것으로서 무릎을 그 아래 꿇게 하고 또 그를  주라고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피동으로 성공하고 피동으로 존귀해지지 피동이 끝나 버리면 우리와  같이 범죄함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은 변치 않지마는  인성은 변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보이는 나만 너희들은 자꾸  상대하고 이 보이는 이 육안으로 보는 여게만 너희들이 갇혀 가지고 앉았는데 이  감옥에서 나오라, 흑암에서 나오라, 매인 데서 나오라. 흑암에서 나오고 매인 데서  나와야 되지 거게 붙들려 매여 가지고 있으면 항상 그것이 무형의 감옥 속에  들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는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은 믿고 하나님은 믿지 않는데 또 과거에는 그들은 하나님은  믿었지마는 주님은 믿지 않습니다. 이거 다 헛일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지금도 여기 안 믿는 사람 뭐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 그 존재를  부인하지마는 일반인들은 다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려고 애를 쓰나 주님을 믿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믿는다는 것이. 또 주님을 보이는 주님 이 보이는 주님만 그 제자들이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안하면 그것도 헛일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지킬 때에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성경에 또 보면 이  말씀대로 행하면 그만 그것은 바로 되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만 지키면 또 갈라디아서에 보면은 “말씀만 지키면 그 사람은  율법 아래 있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모시고 섬긴다 하지마는 이 나타난 계시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것도 거짓말 하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볼 수 있는 주님으로 이렇게  오신 것이 가장 주님이 외부적으로 역사하셨고 우리가 접촉하기 쉽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주님으로 오셔서 볼 수 있는 주님으로 하셔야  될 그 모든 일을 다 완성한 것이 십자가의 사활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볼 수 있는 이런 주님이 오셔 가지고서 볼 수 있는 이 외부의  모든 것을 다 완료한 그 공로를 설정하시고 그다음에는 이제 거게서 더, 완료를  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그런 주님으로 이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시기 전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그 주님과 또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그 주님은 한 주님이신데 이 외부에 있는 이 모든 외부적인 모든  역사를 다 완료했기 때문에 한층 더 한 계급 더 올라가서, 한 계급 더 승격이  돼서, 더 올라가서 이제는 볼 수 없는 면에서 지금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믿는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함께 하시는 이 주님은, 그러면 어떤 주님으로 계십니까? 신이신,  하나님이신 하나님으로만 계십니까 사람으로도 계십니까? 어쩝니까?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같이 계시는 이 주님은 하나님으로 우리와 같이 계십니까 사람으로  우리와 같이 계십니까? 사람으로 같이 계십니까 하나님으로 같이 계십니까?  하나님으로? 하나님으로 계셔? 하나님으로만 우리와 같이 계신다고, 하나님으로만 우리와 같이 계신 줄 이렇게  믿는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며 사람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하나님과 사람, 신성 인성 양성일위의 주님으로 우리와 함계 계시는  것을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바로 됐어. 우리는 이렇게 믿어야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러니까 보이는 주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데 보이는 주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너거에게 더 필요하고  중요하고 더 큰 일을 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아버지 집에는 주님이 가서 살 곳입니다. 그러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도다” 거할 곳이 많다 하는 이 말은 한 말로 말하니까 많다고 말했으나 크다,  또 넓다, 또 질적으로 높다, 또 가치적으로 높다, 그러면 이 세상보다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좋고 완전하다 그런 것을 한 말로 표시해서 “거할 곳이 많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다면 우리는 잘못하면 그 공간이 넓어서 이곳에서 있고 저곳에 있고 공간이  넓다고만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공간이. 거게는 ‘이 예배당은 지금  삼층보다는 여게 거할 곳이 많다’ 이러니까 면적이 넓다 이런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넓다는 것은 거할 곳이 많다는 것은 거게는, 세상에는 죄악이 있는  곳이지마는 거게는 죄가 없는 곳이니까 죄 있는 곳보다는 죄 없는 곳이 더  가치적으로 높고, 또 질적으로 높고, 또 거게는 모든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에게  혜택적으로 높다 그런 뜻을 여게서 말합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하는 말은 거게는 죄 없는 곳이요,  의가 있는 곳이요, 마귀가 없는 곳이요, 사망이 없는 곳이요, 고통이나 아픈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는 곳이요, 다 생명과 평강과 영원함이, 온전함이, 불변함이,  다시 쇠해지거나 낡아짐이 없는 그런 곳을 가리켜서 “거할 곳이 많다” 이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꾸 여러분들이 이것 공부를 한 대로 요한복음 14장을 자꾸 읽으면서  그걸 하나를 자꾸 생각해 봐야 되지, 그저 우리는 뻐뜩거리면 어데로 갑니까?  저절로 가지는 것은 어뎁니까? 저절로 가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집니까  보이는 세계로 가집니까? 보이는 세계로 가집니다, 자꾸 보이는 세계로.

저절로 가지는 것은 넓은 데로 가집니까 좁은 데로 가집니까? 좁은 데로 자꾸  가집니다. 그러면 저절로 가지는 것은 큰 걸 향하여 갑니까 작은 것을 향하여  갑니까? 작은 것을 향해서 자꾸 가게 됩니다. 요것을 알아야 돼. 그러니까 점점  타락입니다.

이래서 마지막에는 다 가다가 모든,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모든 이웃도 다  잊어버리고, 또 이 모든 우주의 존재도 잊어버리고, 가면 나중에 거기 들어가서 그  들어간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어뎁니까? 어데 가 들어가 있습니까? 어데  들어가 있지? 어데 들어가 있어, 여게? 여게는? 모르나? 사람? 어데로 들어가?  하나님도 없고 다 이러면? 나중에 가서는 자기로 들어갑니다. 자기에게로  들어갑니다. 자기에게로 들어간 것이 마지막 이제 거의 종착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로 들어가서 이제는 자기 중심이 돼 버립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이라는 자기가 되어지는 것인데, 자기가 되어지면 그 자기 밖에는 자기보다  큰 것이 많이 있는데 자기보다 큰 것은 다 부인하고서 똘똘똘 뭉쳐 가지고서  자기 속으로 기어들어갑니다. 자기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그다음에는 어데로  들어가느냐? 자기도 제법 크지마는 자기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다음에 자기의 요소 중에서 한  요소로 기어들어가 버립니다. 한 요소 기어들어가면 어떤 것은, 이것은 사람이  물질도 필요하고 물질도 알고, 인간도 알고, 정욕도 알고, 명예도 알고, 지위도  알고 이렇게 모든 것을 아는데 이제 모든 것을 다 두고 하나로 기어들어갑니다.

하나로 기어들어가는 그것이 어데서부터 생겨졌느냐 하면 하나님 계시고 또 모든  피조물 우주 안에 있는 피조물을 다 아담 하와가 상속을 받아서 대리 주인을  해서 “모든 것을 다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렇게 했는데 이제 하나님  다 내놨지, 모든 이 피조물 다 내놨지, 이러니까 나중에 가서 기어들어가다서는  자기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 중심의, 자기 중심 그것이 무슨 죄입니까? 자기  중심이 무슨 죄요? 원죄를 가리켜 자기 중심이라 해.

자기 중심으로 기어들어가고 나니까 더 좁아져 가지고, 하와가 좁아져 가지고서  어데로 들어갔습니까? 선악과만 보게 됐어. 딴것 안 보여. 선악과만 보여졌어.

그러니까 자기 마음도 신경도 정신도 욕심도 소망도 전부 선악과로 다  기울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게 망하는 것 아닙니까, 벌써? 선악과로만  기울어졌으니까 선악과 외 딴것이 없어.

이러니까 그것만 취하면 좋을 줄로 전심 전력이 다 거게 기울어져 가지고서 그놈  노력하다가서 선악과 취해서 딱 따먹고 나니까 어찌 됐습니까? 완전히 멸망하지  안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라.

사람들이 자꾸 나중에 들어가서, 자기 중심으로 하면 벌써 그 사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라. 여러분들이 이 모든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모든 것을 접촉할 때에 그 사람이 뭐 중심이냐? 그래도 인류  중심이면 좀 큰데, 인류 중심이 나중에 줄어져 가지고서 나중에 자기 혈육 중심이  됩니다. 자기 핏줄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많이 좁아졌어. 핏줄 중심이 됐다가서  또 지방 중심이 됐습니다. 그러면 많이 좁아져 버렸어.

나중에 그러다가는 ‘요 사람은 다른 것 다 없다. 돈밖에 모른다.’ 돈 중심이 돼  버렸습니다. 아주 좁아졌습니다. 많은 것 가운데 돈 중심, ‘그 사람은 명예뿐이라,  권력뿐이라.’ 어떤 자는 또 그 정욕, 음욕, 성욕, 또 고것 중심이라, 그리 똘똘  걸렸어. 이제는 거기 들어가보면, 거기 들어가면 뭐 다른 것 아무것도 몰라. 자꾸  좁아져 가지고. 좁아지면 좁아진 것만치 자살 행위는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이제, 그대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것이 안 되니까 갈  곳이 없어. 갈 곳이 없어 그래 가지고서 나오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뾰족한 쐐기 속에 들어가듯이 꼭 끼여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세상을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마지막에는 다 고통을 취해, 고통을 받아요.

이러니까 모든 욕심대로 다 취하지만 마지막에 고통받고 이제 헤어날래야  헤어나지 못하고 그때 한 말로 말하면 그저 지옥의 고통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게 살지 안하고 자꾸 세상에 살 때에 넓어서, 내게서 넓어져서  모든 이웃에게로, 이웃에게서 넓어져서 진리에게로, 진리에서 넓어져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예수님의 대속에서 자존자 하나님으로, 자꾸 이래서,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에 들어가면, 하나님 다음으로 큰 게 목적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큰 게  하나님의 목적이오. 이것 무슨 말인지 알아져요? 하나님 다음으로 큰 것이  목적이라. 목적보다 큰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이야.

이러니까 우리 구원이, 우리 구원이, 예택이 뭐입니까? 예택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라. 목적에서 이제 더 들어가면 이제 하나님이시라.

이러기 때문에 여게 자꾸 보이는 감옥에 갇힌 데에서 이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이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계시 1장 5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뭐라  했습니까?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 죄에서  해방했다 말은 우리가 삐뚤어짐으로 망했는데 이 삐뚤어진 데서 해방시킨다  말이오. 이게 얼마나 큽니까? 이러니까 이것을 말로는 “죄 사했다” 하지마는 죄 사했다 말은 우리를  삐뚤어진 그 모든 삐뚤어짐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셨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죄  사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 읽어내려 가면서 자꾸 보이는 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커.

이래서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엿새 동안에, 엿새 동안에 지으신 것이 우주인데, 엿새  동안에 지으신 게 우주인데 우주 이까짓 거야 줄라 하면 당장 줄 수 있습니다.

이런데 예수님께서 뭐하려고 영원 전부터 역사하셔 가지고, 당신이 역사로만 해  가지고 안 되니까 친히 하나님이 피조물 돼 오셔 가지고, 또 피조물 돼 오실 뿐만  아니라 죽으시고, 또 죽으실 뿐 아니라 또 피조물로 다시 영원히 있어야 되는  이런 신인양성일위의 사활의 이 역사, 이래 가지고, 예수님이 이 일을 시작하신 지가 창세기 1장에 “물 위에  운행하시니라” 에덴 동산에 그렇게 가신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성자 예수, 메시야 그리스도십니다.

이런데 거게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이것 하기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셨고  창조하셨고 이랬는데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하셨고 창조하셨으니까 우리 구원은  창조보다 크고, 창조보다 큰 것은 예정이고 예정보다 큰 것은 뭐입니까? 예정보다  큰 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선택보다 큰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이고,  목적보다 큰 것은? 하나님이시라. 자존자라. 우리 구원이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이 구원을 아는 자들이 땅위에  피조물을 보고서 뭣을 두려워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만일 이렇게 영원 무궁한 완전한  세계,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이 생명 세계, 이 가치가 말할 수 없는 고차원의 이  세계가 없으면 “너희들에게 일렀으리라” 이 세상의 이것 줬을 거다 그말이요,  너희들에게.

그러면 뭐하려고 내가 애쓸 것 없이 이것 주지. 이거 뭐 세상에 피조물 우주 줄라  하면 그까짓 것 뭐 애쓸 것도 없이 당장에 주시면 그만 되는 거라. 당장에 주시면  돼.

이런데 우리에게, 독생자 주기가 쉽습니까 엿새 동안에 지은 것 만물 그것 주기가  쉽습니까, 뭣 주기가 쉽소? “독생자를 너희들을 사랑함으로 주신 분이  너희들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시지 않겠느냐?” 뭣 때문에 이걸 염려하고 물질에  종이 돼 가지고 직장의 종이 돼 가지고서, 여게 앞에 나오는 여선생 하나 있었는데 그 어북 제법 잘 나오고, 나오기도 잘  나오고 또 얼굴도 좀 예쁘게 생겨서 ‘조게 뭐 어떤 좋은 하나님의 남종을 하나  받드는 아내가 될 건가?’ 요렇게 생각하는데 안 보여. 그 안 보여 나는 ‘그거  왜 안 보이노?’ 이러니까 직장에 취직했대, 취직. 취직하니 돈밖에 더 돼요?  돈뿐 아니라 보면 알아. 귀신에게 홀키면 헛일이라. 미혼 계집아들은 그만 그렇게  홀켜서 깨끗함을 버려 버리면 헛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일렀으리라” 만일 이 세계가 없으면, 이 세계가  없으면 땅위에 이것 엿새 동안에 만든 것 너거 다 주지, 뭐하려고 택한 자에게  주지 안 줘? 뭣 때문에 세상에서 예수 믿는 걸음이 이렇게 모든 온갖 파란 곡절  여러가지에 모든 시련들을 다 거치게 합니까? 이것은 무궁세계가 좋은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이것은 연단받는 세상이요 배우는 세상이요 영원을 마련하는  원인의 세상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세상이라.

요 시험해서 맡길 만하다 하면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노라” 그렇게 말씀했어. 째끄맨한 것. 이러니까 큰 것 맡기도록,  많은 것은 하늘나라는 많아, 무한해.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큰 것을 맡기겠다”  그렇게,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다 이랬어, 많은  것으로. 그 많은 것이라, 내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해라” 많은, 그 많은 것이나  여게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하는 것이나 꼭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렀으리라”

이러니까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 보지도 못하는  것, 이해도 못 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지식을  뛰어난” 우리의 지식에 뛰어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니까 이것은  말해야 듣지도 못하지, 알지도 못하지, 보지도 못하지, 이런데 듣고 알고 보려면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인정하고 실행해 보면 ‘아, 과연  그렇구나.’ 이렇게 경험하고 체험하면 아멘이 될 터인데 이렇지도 안하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 만들었는데 그까짓 거야 그런 것 만드는  것은 뭐 하나님은 전능자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데 우리를 이것 믿도록  만드는 이것이 제일 어려워. 제일 어려워. 또 당신의, 그러면 집어던져 버리면  좋겠는데 목적이 우리였기 때문에 이걸 버릴 수도 없다 그말이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뭣 때문에 박혔어? 로마 군병들에게 박혔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못박혔어. 안 박힐 수가  없어. 안 박히면 우리가 멸망하기 때문에 부득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제물이  되어져야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좀 마음을 넓혀요. 여러분들이 자꾸 땅에 보이는 여게다가 욕심을 품어  가지고서 붙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지를 안해, 암만 말해야. 이것 벌써 이  말씀한 지가 얼마 됐지? 이래도 물으면 장 몰라. 내가 뭐 딴 말 하는 것 아니고  장 일관된 진리를 말하는데 물으면 또 몰라.

아이들은 가르쳐 주면 그만 알아. 아이들은 가르쳐 주면 잘 아는데 박사들이 제일  몰라. 그것은 뭐이야? 길가밭이거든. 세상에 마귀 지식이 꽉 찼기 때문에 그놈이  자꾸 부인해.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지극히 크신 존재인데 이 과학자들은 뭣이냐?  하나님을 부인해. 그 과학이라는, 아주 새털만도 못한 그런 좁은 그런 지식,  어두운 지식, 그것 가지고서 거게 맞춰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신다  그거요. 여러분들이 그 욕심을 버려야 되고 그 모든 걸 다 마귀에게서 얻은  타락성 그것을 버려야 됩니다. 그걸 버려야 이 도리를 깨달아지지.

도리를 깨달으면 누가 땅위에서 순생 안 할 사람이 누가 있어? 다 이것 위해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치지. 순교 안 할 사람이 누가 있어? 소원이 밤낮  소원이 그것인데. 눈이 어둡기 때문에 아직까지 모든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고로 가치 없는 썩을 걸 보고 탐하고 이제 완전한 것은 보고 탐하지를  안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사다리를 만들어서 밟고  디뎌 올라서려고 지금 애쓰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사다리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 종의 종이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 그 사람이 하늘나라 본  사람이라. 하늘나라는 꺼꾸로 돼.

이러니까 모두 여러분들이 다 세상 일 보면 이 성경대로 보면 그것 다 비정상의  사람이라. 정신이 없는 비정상의 사람들, 비정상의 사람들, 이제 가치 없는 것은  크게 가치 있게 봅니다. 가치 있는 건 가치 없게 봐.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가치 없게 보고 예수 믿는 것을 다 말살시키는 것은 가치  있는 걸로 보고, 이러니까 여기 처녀들 많이 있지만 어짜든지 예수 믿는 신앙  구원을 박살시키는 그 총각이라야 가치 있다고 해 가지고 막 목을 달아맨다  말이오. 이제 자기 영원한 구원에 도움이 될 그런 총각들은 시시하게 본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의 평가가 뭘 봐? 마귀 평가대로지.

마귀가 평가하는 대로 그대로 평가하고 마귀가 비판하는 그대로 비판하지,  하나님이 비판하고 평가하는 대로 그대로 비판하고 평가하지를 않기 때문에 항상  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제 죽는 일만 하고 있어.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생각해라 땅의 것을 생각지 마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우편에 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마음을 확 넓혀야 돼. 이 자꾸 감옥에서 자꾸 헤쳐 나와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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