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심(사욕)이 원수

 

1987. 12. 4. 밤 (금)

 

본문: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 형은 유업이 많고 나는 없으니 그  형에게 말해 가지고 그 유업을 나와 같이 나누도록 그렇게 말을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꾸짖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삼가 조심해서 말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사람의 사는 것이 재산 넉넉한 데 거기에 기인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게 생명이라 이랬으나 그것은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행복되게 사는 것은 재산 많다고 행복되게 사는 것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넉넉한 그것 가지고 사람이 행복되게 잘 사는 것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과 문답한 이 사건이 의외에 돌발적으로 생겨진 것  아닙니다. 벌써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 일이 다 예정되었고 예정된 그대로  이렇게 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묻는 것도 저는 그런 사건이 있어서 주님에게 물었지마는  주님은 벌써 창세 전에 이런 사실을 예정하셔 가지고 이 사실로써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이런 역사적인 형식을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방편으로 썼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사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 하는 그것을  여게서 배우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 내용을 자기가 외우고 아무리  단단히 기억한다 해도 거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여게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가, 이 사실에서 구원을 이루는 이치를  가르친 게 뭐인가 하는 그 이치를 깨닫고 그대로 사용해야 되지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그 부모의 유업을 ‘나도 좀 나눠 주라고 그렇게  말해 주십시오.’ 부모의 유업이라면 서로 형제끼리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니까 예수님께서 ‘그래, 형 저 혼자 해 되는가? 좀 나눠  주지.’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실 터인데 예수님은 그런 말씀하시지 안하고  거기다가 말씀하시기를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이래.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네가 조심해서 탐심을 물리치라. 네가 조심하지 안하면 그만 탐심의 사람이 돼  가지고 네가 너를 망치게 된다. 네가 정신 바짝 차려 가지고 탐심의 사람이 되지  말아라. 탐심의 종이 되지 말아라.

사람의 사는 가치도 소유가 넉넉한 거게 인간 살이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의 행복도 소유 넉넉한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금생의 행복도  그러하고 영원 내세의 행복도 소유 넉넉한 거기에 인간 살이의 가치 있고 행복된  것도 아니고 또 소유가 가난하다고 해서 인간의 살이나 모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소유의 넉넉하고 가난하고 한 거기에 인간의 생의 가치가 많고 적고 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또 거기에 행복이 있고 불행이 있고 거기에 기쁘고 즐거움과  고통과 슬픔이 있는 것 아니다. 이것은 딴데 있다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16절에, 한 부자가 자기 농장에서 아주 추수가  많아졌습니다. 추수가 많으니까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아이구 이렇츰 추수가  많으니 많은 추수를 어떻게 할꼬?’ 걱정을 하다가 생각하기를 ‘내가 한 지혜를  얻었다.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가지고 이 추수를 거게다가 다 쌓아둬야  되겠다.’ 이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또 그가, 이거 비유입니다.

자기 수입을 곡간을 헐고 크게 짓고 거게다가 가뜩 쌓아두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이렇게 많이 곡간에 가뜩 저축해 놨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하게 살자.’ 그렇게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랬는데 그날밤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이렇게 주님이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씀하시를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소유만 많이 마련하면 되는 줄로 알고 소유를 많게 하는 거게만  힘을 쓰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부요하기를 사람들이 생각지를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에 결론을 지웠습니다.

요것이 본문에 된 내용인데 그러면 탐심은 무엇이 탐심인가? 이  탐심이 어떤  일을 했는가? 탐심이 한 일은 자기 소유가 많아지니까 ‘곡간을 더 크게 만들어  가지고 거게 쌓아두자.’ 자꾸 이 탐심이 그 일 했다. 수입이 많으니까 곡간을  헐고 또 쌓고 또 수입이 많으니까 곡간이 적으면 또 헐고 또 크게 지어서 쌓고  또 모자라면 곡간 더 헐고 또 크게 지어 가지고 쌓고 일생 동안을 이 일 하게  했다.

탐심이 그 사람을 어떻게 했느냐? 탐심은 그 사람을 소유가 많아지니까 또 곡간  헐고 또 가득 채우고, 또 소유가 많으니까 곡간이 모자라니 또 헐고 또 크게  만들어 가지고 또 채우고,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날밤에 죽는 날  밤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그날 죽을 터인데 죽는 그날까지 자기의 소유를 많게  하려고 전력을 기울이도록 탐심이 만들었고 또 전력 기울여서 소유가 많아지니까  곡간 헐고 크게 지어 놓으니까 또 곡간이 다 안 찹니다. 안 차니까 ‘곡간이 아직  덜 찼다. 또 부지런히 해 가지고서 곡간을 채우자.’ 또 열심히 해 가지고서  곡간을 채우고 또 곡간이 모자랍니다. 또 곡간을 헐고 새로 짓고 또 곡간에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주력해서 많은 소유를 수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 여기 탐심은 그 사람이 일생 동안을 소유를 많게 하고자 하는 이것을  일으켜서, 소유를 많게 하고자 하는 이 욕심을 일으켜 가지고 소유를 많게 하는  데에 전심전력 기울였고 또 곡간이 작으니까 더 키워서 쌓도록 하는 곡간을  작으니까 곡간을 더 크게 하는 여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였고, 그러면 이 탐심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탐심이  이 사람에게 몇 가지를 시켰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시켰습니까? 이것  하나도 모르네. 탐심이 그 사람에게 몇 가지 시켰습니까, 손가락으로? 모르면 안  가르쳐 줘. 뭐 만날 가르쳐 줘 봐야 헛일 자꾸 입 아프구로 자꾸 말만 하고 있어? 탐심이 그 사람 죽는 그날까지 몇 가지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도록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다 아는 사람들 들어. 뭐 안 들어, 안 들기를?  뻐뜩 들어 봐요, 모두. ○○○집사님이 기도실에 가더니만 인제 신경통을 고쳤는가  영 뭐 이래 드네, 이래. 두 가지 시켰어.

탐심이 죽는 그날까지 그 사람을 두 가지 시켰습니다. 두 가지를 시키니까 뭐 잘  때도 그 마음, 깰 때도 그 마음, 밥 먹으면서도 그 마음, 그저 밤이나 낮이나 탐심  그놈이 들어서 그 사람을 두 가지를 시키는데 하나는 소유가 많아지도록 자꾸  하는 거게 전심전력 기울이게 했고, 또 하나는 쌓을 곳이 없으니까 곡간을 더  헐고 크게 짓는 그 일 시켰고, 죽는 그 시간까지 그 일을 하다가 구원 준비는  하나도 못 하고 그 일만 하다가 망한 것을 여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영원 전  예정한 가운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예정한 대로 그때에 그런 형제가 있었고, 그  형이 그말 했고, 예수님께도 그 비유를 하셨고 요렇게 역사적인 요 형식을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서는 하나도 부요치 못하다  했으니까 하나님께 대한 준비는 하나도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준비는  하나도 못 했소.

여기 안 그랬습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하나님께 대해서는  가난배기라. 하나님께 대해서는 하나도 준비 못 했어.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대해서는 하나도 준비 못 하고 일생 동안 소유를 많게 하는 것, 곡간을 또 헐고  더 크게 하는 것, 이 두 가지에 죽는 그날까지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기울이고 이제는 ‘이만하면 넉넉하다. 넉넉하다.’ 이제까지 이 두 가지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눈코를 뜰 사이 없이 이 두 가지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한  것이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까?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까? 탐심  그놈이 했습니다. 탐심 그놈이 했어.

그날 밤에 죽을 터인데, 그날 밤에 죽을 터인데, 하나님이 찾는다 했으니까 죽지  않습니까? 그날 밤이 죽는 날 밤인데 이제 죽는 날 그날 밤에는 그 사람이  있다가 ‘어라, 소유를 넉넉하기 위해서 인제 힘쓸 필요가 없다. 소유 넉넉을  위해서 힘쓸 필요가 없다.’ 그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또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을 필요가 없다.’ 이제는 소유에 전심전력 기울이는 일과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는 일에 전심전력 기울이는 일을 이제는 그만 하자 했습니다.

그만 하자 했습니다.

그만 하자 했는데 그 사람이 그전에는 이 두 가지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는데  이제는 이 두 가지에 전심전력 기울일 것 없이 인제 거기 대해서는 할 필요가  없다 이러니까 어떤 놈이 갔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뭣이 없어져서 그 사람이  이제는 거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하는 그 사람이 됐습니까? 전심전력을 기울일 때는 뭣이 들어서 그 사람을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했으며  이제까지 일생 동안 전심전력 기울이던 그 일을 이제는 그만 해라 하고서 이제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안하도록 그렇게 했으니 전심전력 기울이게 한 것은 그자가  뭣입니까? 그자 이름을 말해 보십시오. 그자가 뭣입니까? 그자 이름이 뭣입니까?  저 뒤에도, 그자 이름이 뭣입니까? 모르면 죽어! 예사로 알 게 아니라. 그놈의  이름은 탐심입니다, 탐심.

이제는 탐심이 붙들고 그 사람을 그렇게 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하나도  없이 ‘야, 더 소유를 넉넉하도록 하기 위해서 뭐 잠 못 자고 힘쓰고 그렇게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또 곡간 또 헐고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전심전력 기울이던 일을 그만 두도록 했으니 어떤 놈이 그만 두도록 했습니다.

어떤 놈이 그만 두도록 했소? 어떤 놈이 그만 두도록 했습니까 좀 대답해 봐요,  저 뒤에? 예? 저기도 모르는 소리라.

자, 전심전력을 죽는 그날까지 기울이도록 한 자는 어떤 자며 일생 동안  전심전력을 기울이던 그 일을 ‘이제는 그만 해라’ 했으니 그만 하라 한 자는  누굽니까? 저 뒤에 한번 대답해 봐. 누굽니까, 고함 한번 질러 봐. 누굽니까? 저  몰라, 공연히.

자, 아는 사람은 한목 대답해 봐요. 전심전력 기울이는 일을 ‘그만 해라’ 하는  자는 누굽니까?  한번 더 큰 소리로?  저게도? 한목해 봐, 한목. 시작.  시작.

시작.  시작.  시작.  이걸 예사로 여깁니까? 탐심 그놈입니다.

이놈은 죽는 날까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안 믿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 아니라. 안  믿는 사람이야 그 상관 없어. 다 그러다가 지옥 갈 사람들이니 무슨, 불택자는  지옥에 가. 안 믿는 사람이 지옥 가는 게 아니라 불택자들은 지옥 갈 터인데 뭐  그것 말할 필요가 없고.

중생된 믿는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을 헛일 하게 하는 그놈이 탐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얘, 너거 형 재산을 나누는 그것보다도 네 일생을 망칠 자가  탐심인데 네가 지금 나더러 유업을 나누어 좀 주라고 그렇게 하십시오 하는  그놈이 바로 너 일생을 망칠 탐심 그놈이다. 그놈이 원수인 걸 네가 알아라.

그놈을 네가 물리쳐 그놈하고 이별해야 되지 그놈하고 이별 안 하면 너는 죽는  날까지 땅위에 사는 생활은 다 헛생활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탐심이 무엇입니까? 탐심은, 탐심은, 이것 참 탐심 어려운데. 탐심은,  탐심은, 이것 해석이 나오기가 참 어려운데. 탐심은, 탐심이 뭣일까? 탐심은,  오십점짜리는 됐어. 탐심은, 탐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욕심 외의 것 전부가 다  탐심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욕심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성령의 소욕. “이것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또  탐심은 뭣입니까? 탐심은 뭣입니까? 육체의 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

육체의 소욕이 다른 말로 하면 뭣입니까? 육체의 소욕이 뭣이지? 알면 참  무던한데. 알면 목사 자격 있어. 육체의 소욕. 하나님이 주시는 욕심이 아닌 자기  욕심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자기 욕심. 자기 욕심이오. 자기  욕심은 죄인 줄로 생각지 안하지?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다 그 구덩이 빠져서 다  죽지. 자기 욕심.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분주한 것이 무엇 때문에 분주한가? 자기 욕심 때문에  분주합니다. 사람들이 좋은 인인 관계를 왜 그렇게 원수를 맺고 시비를 하고  벌어지는가? 자기 욕심 때문에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을  다 싫어하는데, 죄 짓고 싶은 사람 없어요. 악을 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 없어요.

공산주의도 요번에 KAL기에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는 그것 취미삼아 죽였는데  그것도 자기딴에는 아주 복있는 일 유익된 일 한다고 예산이 꺼꾸로 가 가지고서  그와 같이 지금 배우기를 꺼꾸로 배워서 공산주의 사상을 배웠기 때문에 그래.

남한에도 공산주의 사상이 지금 십분지 육이나 된다 해요. 천지도 모르고 지금  좋다고 하며 지금, 공산주의 사상이라 하면 뭐 무슨 별것이나 있는 줄 알고 지금  좋아서, 꼭 공산주의가 오기는 와야 될 거라. 와서 뚜드려 패고 아주 이제 있는 것  다 뺏기고 고생을 통통 해야 그때나 알지. 그때는 알아봤자 소용 없어. 그때  알아봐야 소용 있습니까? 그 사람들도 다 자기딴에는 좋은 일 한다고 하는 거라. 복있는 일 한다고. 가치  있는 일 한다고. 그리고 그 만일 그러다가 붙들려서 탄로돼서 벌 말 하면  손해가니까 딱 붙들리면 약을 톡 털어 넣으면 다시는 그만 말 못 하는 그만  병신이 돼서 죽어도 말 못 해. 그런 약을 딱 만들어 주머니 넣어 가지고 있다가서  붙들리면 톡 털어넣어 버려, 그만. 그렇기까지 각오하는 것도 자기딴에는 복있는  일 한다고서 그래 합니다.

제가 알고 저 망할 일은 아무도 안 할라 합니다. 손해가는 일은 안 할라 합니다.

그러나 마귀 그놈에게 꼬임받아 가지고서 자기가 자기 망치고 자기가 자기  속여서 절단내게 하는 그게 뭣이냐? 그게 탐심이라는 그놈입니디. 탐심 그놈이  들어서 전부 우리를 망칩니다.

전부 이해 관계, 시비, 원수맺는 것, 싸우는 것, 이 전부는 다 탐심 그놈이 들어서  그렇게 합니다. 탐심 그놈이 들어서. 땅위에 있는 사람들이 탐심 그놈이 다  그렇게 하는데 탐심 그놈이 사람을 고생스럽게만 만들지 하나도 유익은 주지  못합니다.

그 탐심을 가진다고 자기가 호리라도 더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릇을 딱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그릇에만 차지 이상 차지 않습니다. 딱 정해 놨어.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릇은 가만히 누웠어도 그 그릇은 찹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이루어 나가야 될 터이니까 그 안 되면 하나님 예정이 안 될 것 아닙니까?  성취가 돼. 알고 보면.

사람을 일생 동안 탐심 이놈이 들어서 몇 가지 일 시키느냐? 두 가지 일  시킵니다. 소유가 많으면 행복될 줄 알고 소유를 많게 하는 것, 많은 소유를  단단히 곡간 헐어 크게 지어 놓고 저축하면 행복될 줄 알고.

여게 말씀하시기를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몇 가지 하자 했습니까? 몇 가지 하자 했습니까? 네 가지  하자 했는데, 네 가지 하자 했는데 네 가지 중에 몇 가지 했습니까? 네 가지 중에  몇 가지나 했습니까? 세 가지 했소, 두 가지 했소, 네 가지 다 했소? 예? 몇 가지  했어? 한 가지도 못 했지? 한 가지도 못 했어. 이 말이 무슨 말이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자기 소유라는 그것을 일생 동안 전심전력 기울여 했지마는 소유는 자기의  평안을 호리만치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호리만치도 주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대학자가 되니까 이만했으면 나는 평안하다 하지마는 네 학문에 부요가  너에게 평안을 주리라고 너는 생각하지마는 천부당 만부당하다. 역사에 있는  인간이 자기의 지식 부자로, 권세 부자로, 물질 부자로 기술 부자로 평안 누린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인해서 제가, 평안의 반대는 고통이오. 평안의  반대는 고통입니다. 고통만 당했지 평안은 추호도 당하지 못한다. 이말 맞습니까? 이 권세 잡으려고 막 야단인데 그것은 권세 부자라. 권세 부자 되면 평안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거워하리니 이래 하지마는 그것 가지고 평안도 추호도 못  누리고 고통이요 또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잘 먹고 잘 마실 줄 알아도 잘 먹고  잘 마시지는 하나도 못 합니다.

그분들이 이 노동자들이 찬 물 둘러마시는 것만치 그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소.

없어.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즐거움도 없소. 언제든지 죽나 사나 하고서 번민  고통 가운데에서 매일매일 지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쳤소.

평안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네가 했지마는 요 지금 탐심  가진 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마련했는데 그 마련한 것을 자기가 평안에나 먹는  데나 마시는 데나 즐거워하는 데에 혹 얼마라도 여기 썼습니까 못 썼습니까?  하나도 못 썼습니까 얼마를 썼습니까? 요 비유에는 하나도 못 썼지요? 하나도 못 쓴 요것을 요 비유로 하신 것은 인생들이 그렇게 하면 그걸 쓰는 줄  알아도 실은 따져보면 하나도 쓰지 못한다 하는 것을 여게 말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걸 깨달아져야 돼. ‘그것 부자면 밥 배불리 잘 먹지 않는가?’ 싶지마는,  아니오.

내가 언제도 말했지마는 음식은, 음식은 비지떡이라도 맛있는 음식이 고급이지  아무리 고량진미라도 맛 없으면 고급 아니라. 하나님이 아무리 고량진미라도  맛없게 만들면 그 사람 맛있는 음식 평생 못 먹어요.

일생 동안 이것이 두 가지로 분주하게 해 가지고서 자기에게는 하나도 유익이  없는 그것을 헛일을 일생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도록 탐심 이놈이 만드는데  탐심 이놈이 그 사람을 이제는 붙들고 망할 일만 자꾸 시킵니다. 밤낮으로 망할  일만 시켜. 망할 일 두 가지 시켰어.

시켰는데, 시키다가 이제는 ‘됐다’ 하고서 해방시켜 주는 때, 탐심이 해방시켜  주는 데는 언제입니까? 탐심이 해방시켜 주는 때는 언제입니까? 죽음 직전입니다.

죽음 직전이오. 요걸 우리에게 알려요. 요걸 뼈아프게 느껴야 됩니다. 죽음  직전이라.

그러기에 사람이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에 탐심을 물리쳐서 탐심에게 완전히  자유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고, 탐심에게 자유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님에게 꼼짝 못 하고 붙들리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탐심에 자유 있는 사람이라니? 탐심은 잡아 부려야 됩니까 죽여야 됩니까?  탐심은 죽여야 됩니까 잡아 부려야 됩니까? 탐심을 잡아 부려야 됩니까 죽여야  됩니까? 죽여야 돼, 죽여야 돼. 여게는 물리치라 하니까 없애버려야 돼, 없애야 돼.

탐심은 없이 해야 돼. 죽여버려야 돼.

탐심이 무엇입니까? 탐심은 자기 욕심입니다. 자기 욕심이오. 자기 욕심을 죽이라  하면 이것은 사람이 마구 시비하고 이해 안 된다 할 겁니다. 아니오. 틀림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죽여야 됩니다. 인간이 일생 동안 자기 욕심 그놈이  들어서 밤낮 마음 정신 생각 육체 쉴새 없이, 잠도 옳게 자지 못하게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헛일하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 탐심입니다. 그것이 제 욕심입니다, 제  욕심. 이것 참 알려면 어렵소. ‘제 욕심이라니?’ 우리 나라 보배가 한 분 죽었는데 이병철씨는 우리 나라 보배입니다. 그분은  보배요. 그분은 죽는 그날까지 보배로운 일을 많이 했으나 그도 탐심에 붙들려서  밤낮 전심전력 기울였는데 그로 인해서 결단코 평안이나 호의호식이나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밤낮 쉬지 못했소. 또 그러면 그것 유익이 있습니까?  자기에게 아무 유익 없소.

자,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것 뉘것 됐습니까? 그 사람의 것 됐습니까 그 사람의 것 안 됐습니까? 그  사람의 것 안 됐어. 요것 알기 어려워요. 그 사람의 것 하나도 안 됐습니다. 또  저의 평안이나 호의호식 즐거워하는 데에 하나도 쓰이지 안했습니다. 하나도  쓰이지 안했다는 그걸 여러분들이 해석을 할 줄 알아야 돼. 하나도 쓰이지  안했어.

세상에 진시황 같은 그런 정권 가진 사람은 전무후무라 할 수 있는데 진시황  같은 사람이 그 정권 가지고 정권에 부자인데 정권에 부요로 인해서 그분이  즐거움을 누렸다고 생각합니까 못 누렸다고 생각합니까? 그분이 참으로 평안히  재미 있게 먹고 마시고 쉬웠다고 생각합니까 어떻습니까? 못 했어. 평안을 못  누렸어. 요것을 가만히 생각하면 과연 그렇다 하는 요것이 아멘이 돼야 되지  아직까지 아멘이 안 되면 인간의 그 비밀을, 속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세상 것은 취하기까지는 욕심이 나고 다 그렇지만  취하고 난 다음에는 다 후회됩니다. 취하고 난 다음에 만족이 되는 줄 압니까?  아니오. 만족 안 되기 때문에 만족이 안 되니까 또 새로 취할라 하는 거라. 만족  안 되니까 또, 그걸로 만족이 안 되니까 또 새것 취할라 하는 거라. 요 성경이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요걸 믿어요.

하나도 제것은 삼지 못했다. 저에게 필요 있게는 하나도 쓰지 못했다. 이놈은  언제 해방을 줬느냐? 바로 죽음 직전에사 해방 줬다. 이놈이 나가고 나니까 그만  ‘이렇게 뭐 전심전력 기울여서 소유 위해서 곳간 헐기 위해서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데 그놈이 있을 때에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해야 된다 했습니다. 그놈이  떡 나가버리니까 ‘이제까지 한 것 이제는 할 필요 없다.’ 이렇게 탐심의 종이  돼 가지고서 그놈이 인생을 붙들고 일생을 망치고 만다는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돼요. 요것 비밀을 알아야 돼요.

탐심은, 요거대로는 알기 쉬워. 탐심은 죽는 날까지 자기의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두 가지 하게 했다. 요건 다 이해가 되지요? 요건 다 이해가 안 돼요? 요 두  구절로 말하면. 탐심은 요 두 가지를 죽는 그 시간까지 전심전력 기울여서 두  가지 하게 했어요? 소유 많게 하고 곳간 헐어 크게 만들고 하는 두 가지 하게  했지? 그것은 맞지요? 또 그렇게 많이 해 놓은 것이 제것이 됐습니까 제것이 하나도 못 됐습니까?  제것이 하나도 안 됐다 하는 그것도 또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두 가지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평안,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 요 네 가지를 그것이 요 네 가지를  줬나 안 줬나 하는 요것은 이해되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이 비유에는 요 네 가지, 네 가지에, 자기 모두 많이 쌓아 놓은 것이 이 네 가지에  도움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비유에는 도움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도움이  안 됐지? 안 됐지요? 도움이 안 됐는데 이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을 알 사람은  여게도 많지를 못해. 그 사람은 제법 인생 걸음을 걸어본 사람이라야 알아. 그  사람은 세상을 점령해 본 사람이라야 알아.

점령 못 한 사람은 ‘저 사람은 내가 없는 돈 있으니까 참 평안하고, 참으로  즐겁겠고, 참으로 잘 먹고, 잘 입겠다.’ 이래 생각하는데 잘 먹고 잘 입는 건  맛이 있어야 잘 먹고 잘 입지? 부자 쳐놓고 잘 먹고 잘 입는 사람 맛있는 음식  먹는 사람 없습니다. 없어. 일반인이 맛있는 음식, 그 일반인이 가진 맛, 일반인이  가진 맛 부자가 가진 줄 압니까? 못 가져. 권력자가 가져? 못 가져.

요것 알기 어렵고, 알기가 어려운데 성경에 그래 놨으니까 그래도 믿어야 돼.

우리가 틀렸지 성경이 틀리지 안해. 그러니까 ‘그렇다’ 하는 것을 믿고 참말로  그러나 안 그런가 따져봐야 돼. 따져봐서 ‘과연 많은 소유 그것이 제것은 하나도  안 됐다.’ 비유에 그래 놨거든. 하나도 안 됐거든. 이와같이 안 됐다는 그것이  이해가 돼야 돼.

제일 어려운 것 하나 남았어. 뭣이냐? 탐심이 무엇인가? 탐심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욕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욕심이 아니고 제게서 나온 제  욕심이라, 요게 탐심이라. 탐심의 해석을 바로 했는데, 자기가 가진 자기 욕심,  이것이 자기를 망친다 하는 요것은 이해가 안 돼. 요것 제일 이해하기가 어려워.

요것을 이해하기가 제일 어려워. 요것은 안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이해 못 해.

한 사람도 이해 못 해. 성령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어.

탐심은 육체의 소욕이 탐심입니다. 탐심은 자기 욕심이 탐심입니다. 탐심은  사욕이 탐심입니다. 사욕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그 결과가 뭐라고요? 사망이라. 사망이라. 요것은 믿기가 어려워.

‘탐심은 나쁜 욕심이지 뭐’ 자기 욕심이 탐심이라. 그거는 알기 어려워.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체의 소욕 그것은 바로 자기 욕심이요, 사욕이요,  하나님이 ‘요 욕심 가지라’ 하고서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라고  주시는 그 욕심 아닌 욕심은 전부 그것은 탐심입니다.

요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해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다 들지 말고, 다 안  되면서, 뭐. 목사님들은 되고 장로님들이나 될까? 정말로 자기 욕심, 자기 사욕,  하나님이 주시는 욕심이 아닌 인간 제 욕심, 제 욕심 그것이 탐심이라는 것이  확실히 이해가 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렇게 돼요? 이러면 다 여기  하늘 사람들만 보였네. 여러분들이 손은 들었지마는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원수가 무엇입니까? 우리 원수가 어떤 것이 우리 원수입니까? 곧  우리 원수는 악이 우리 원수입니다. 악이라니? 자기 중심이 우리 원수입니다.

자기 중심이 우리 원수요. 자기 위주의 욕심이 우리 원수입니다. 자기 욕심.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말을 해도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말하고 무슨 인인 관계도 자기 중심으로,  사물 관계도 자기 중심으로, 천하에 사람이 전부 다 자기 중심으로 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하는 것은  구원은 하나도 안 됩니다. 안 믿는 사람 전부가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것은 전부  멸망이지 그 사람에게 유익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밤에 내가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가 혼자 있든지 여럿이 있든지, 가정  일을 계획하든지, 무슨 연구를 하든지, 경영을 하든지, 또 무슨 건설을 하든지,  무슨 해결을 하든지 할 때에 거기에 두 가지 있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  중심 있고 그 외에 것 하나 있는데 그 외에 것은 무엇입니까? ○○○조사님이  알까, 어려운 문제인데? 주님 중심 하나 있고 그 외에 것 하나 있는데 그것은  뭣이지? 뭣이지? 나의 중심이라? 안 됐어. ○○○조사님? 저런 게 잘 알아, 저거.

시시하게 보지마는, 학생들도 시시하게 보지마는 저게 잘 알아. 피조물 중심이야.

알겠어? 창조주 우리를 구속하신 창조주 중심 하나 있고, 나라 중심도 피조물 중심, 민족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가정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제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피조물 중심. 우리를 구원하신 주 하나님 중심과 그 외에 것은 전부  피조물 중심이오.

피조물 중심 그놈이 우리의 원수라는 것을 똑똑히 지식하고, 똑똑히 지식하고  요것이 원수인 걸 깨닫고 요놈을 죽이려고 날마다 애를 써도 힘듭니다, 잘 안  됩니다. 요것을 원수인 줄 모르고 그놈이 저인 줄 알고, 그놈이 자기인 줄 알고  그놈 소원대로 했으면 제 성공한 줄 알고 이래 사는 자에게 건설구원은 천리  만리 거리가 멉니다. 안 됩니다.

오늘밤에 지금 증거하는 것은 그것이오. 우리의 욕심은 하나님 중심의 욕심이  있고 피조물 중심의 욕심이 있으니 욕심이 둘이라. 중심이 둘이라. 피조물 중심의  욕심 그게 뭐이냐? 그것이 탐심이라. 하나님 중심의 욕심 그게 뭐이냐? 성령의  소욕이라.

피조물 중심의 욕심은 민족을 위했든지, 이십세기의 문화를 위했든지, 전인류를  위했든지 뭐, 인류 전인류 위하면 좋은 건 줄 압니까? 전인류를 위했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중심이 아닌 것은 전부 자기를 일생 동안 밤낮 쉬지 못하게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자기 망치는 일, 자기의 정력과 시간을 다 허비하게 하는 일,  하나도 자기 것은 되지 안하는 헛일하게 하는 일, 평안이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데는 하나도 쓰지 못하는 일 그 일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게서 뭐 별별 일을 모두 많이 하고 왔는데 그것 단단히 따져서,  이러니까 한 자리에서 둘이 일하지마는 껍데기는 꼭 같이 일하지마는, 아니오 .

하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했고 하나는 피조물 중심으로 했고, 하나는 하나님  욕심으로 했고 하나는 제 욕심으로 했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에 또 내가 말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자기 위주의 요놈이  원수라는 것을 요것 알아야 될 터인데 요걸 원수라는 것을 모르고 항상 어데  가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내 중심으로 얘기를 해 주고, 내 중심으로 일을 해  주고, 내 중심으로 운동하면 모두 다 좋아합니다. 모두 다 좋아하요. 감사합니다.

자, 그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까 자기를 살리는 것입니까? 저 ○집사? 자기를  죽이는 것인 줄 알아?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 요것만 딱 판정해 놓고 그대로 해  나가.

요게 대해서 확정을 짓지 못한 사람, 확신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은 항상 주위  환경에 끌려서 갈지자 걸음 걷다가 일생을 망치고 벌거벗은 자로 하늘나라 가게  됩니다. 요게 대해서 확정을 지운 사람은 그 사람은 남이 모르는 날마다 싸움이  있을 것이오. 날마다 근심 걱정 고통이 있을 것이오. 그것이 영원한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항상 기뻐하라 했으니까 뭐 이 세상 사람이 기뻐하듯이 그래  기뻐하는 줄 압니까? 울음 속에 있는 그 기쁨을 말한 것이오. 근심 속에 있는 그  기쁨을 말하는 것이오. 염려 속에 있는 그 기쁨을 말하는 것이오. 한없이 번민  고통 속에 그 속에 들어 있는 그 기쁨을 찾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누구든지 개인을 대하든지 뭐 사물을 대하든지 자기 중심의 자기  위주의 그놈이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에 내 심신을, 요것 어려운  말이지마는. 내 심신을, 내 심신을 피와 성령과 진리가 주관할 때만 내 심신이  살았지, 주님의 피공로를 자기가 생각하면서 피공로로 인하여 자기 마음이나 몸이  움직일 때에, 성신의 감동대로 움직일 때에, 성경 말씀대로 움직일 때에, 요 셋이  합해서 몇입니까? 하나입니다. 하나 뭐이요? 주님이시오.

주님으로 인할 때, 주님으로 인할 때, 주님으로 인한 마음, 주님으로 인한 몸,  주님으로 인한 언행심사, 요것이 아니고 가다 보면 주님은 잊어버렸고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지금 마구 대화하고 있습니다. 사건하고 나하고 둘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나?’ 물건하고 나하고 둘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잊어버렸소.

주님을 잊어버리고 사람하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물건하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일하고, 그러면 그 사람, 그 일, 그 물건이 내게 대해서 무엇이지요? 내게 대해서  뭐라요? 뭐? 피조물 중심? 그건 그건데, 그게 뭣이요? 그게 뭣입니까? 주님 대신  했으면 그게 뭣이요? 주님은 쫓아내 버리고, 주님은 쫓아내 버리고 그것이 지금, 내 언행심사가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돼서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고,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돼 가지고서 주님으로 인해서 사람도 만나보고 대화하고,  물건도 대하고, 일도 상대하고 이러는데 이래 하다가 주님은 잊어버리고 물건하고  사람하고 일하고만 상대하고 주님은 잊어버렸소. 떨궈버렸어, 잊어버렸어.

그러면 그때에 내가 주님하고 상대해 가지고서 이랬었는데 주님은 없어져  버렸으니까 그때에 주님 없애고, 나는 주님하고 나하고 그것을 상대했는데 주님  잊어버리고 그것하고 내하고 단둘이 붙었으니까 그것은 내게 대해서 뭣이  됩니까? 그것 뭣이 되지요? 우상.

따라합시다.우상!우상!사람 우상!일 우상!물건 우상!그것을 가리켜서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말했습니다. 그 말씀 어데 있어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장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돼서 내 언행심사가 주님으로 인해서 될 때는  영생이 되는 것이고, 내 마음과 몸이 주님하고 연결이 돼 가지고 주님으로 인해서  피동될 때는 이 심신이 주님의 지체가 되고, 주님의 몸이 되고, 주님의 성전이  되고, 다 영생을 가졌고, 주님 떨어져서 내 마음 내 몸이 주님과는 상관없이  피조물하고 상대해서 할 때에는 피조물은 자기를 주관하는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  대신 섬기기 때문에 이래서 요한일서 5장에 “우상을, 네게서 우상을 멀리 하라.

네 스스로 우상을 멀리 하라. 네게서 우상을 멀리 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에 많은 말 한 것은 요지를 하나를 위해서 한 것이야. 언제든지  ‘나, 나, 나. 어, 나를 해친다. 나를 욕한다. 나를 미워한다. 나를 위한다. 나를  좋아한다. 나를 높인다.’ 주님과 관계 없는 나, 내 중심, 내 위주, 내 욕심,  요것으로서 자기 욕심,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자기로 인한 것, 모든 것을 자기로  인해서 시발되는 것, 자기라는 것, 무슨 일 하든지 자기가 주격이 돼 가지고  날뛰는 것, 자기가 주격이 돼 날뛰는 것 그놈이 자기를 영원히 망치는 원수라는  것을 요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확고히 잡아서, 그러기 때문에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자기 욕심, 자기 마음, 자기  생각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 자기, 자기 좋아하는 대로,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욕심으로, 자기, 요놈이 원수인 줄 알고 요놈을 죽이려고 평생  우리가 싸워도 안 되는 것인데 이놈이 원수인 줄 모르고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자기인 줄 알고 그놈 욕하면 싫어하고 그놈 편들어 주면 좋아하고.

그놈이 뭣인데? 그놈이 뭣이 몇 가지가 뭉쳐 가지고 그놈 됐습니까? 몇 가지가  뭉쳐 그놈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 뭉쳐 가지고 그놈 됐어. 악령하고  악성하고, 또? 악령은 귀신이오. 악성은 뭣입니까? 원죄. 악습은 뭣입니까? 본죄.

이것은 내가아닙니다. 내가 아니오. 내 심신을 이놈이 붙들고 내 심신을 지금  죽이고 있습니다. 이놈만 쫓아내 버리면 내 심신은 깨끗합니다. 완전합니다.

이런데 마귀란 놈이, 악령과 원죄와 본죄 뭉텅이 이놈이 내 마음을 붙들고  있으면서 주인인 척하니까 이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는 원죄 그게 저인 줄  알고, 본죄 그게 저인 줄 알고, 마귀 그게 저인 줄 알고, 제 원수인데. 요것을  구별해서, 그놈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데서든지 옛사람을  구별해 가지고서 옛사람을 원수라는 걸 깨닫고 옛사람으로 더불어 언제든지  싸우는 요게 없으면 헛일입니다.

“내가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하지 않는다” 누구하고 싸운다 말이요?  자기 심신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 악성 악습 그놈하고 싸웁니다. 그놈하고 싸워서  그놈에게서 내 심신을 빼앗아서 그놈이 내 심신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제는 내 심신을 뺏들어 가지고 누가 주장하게 합니까? 내 심신을 누가  주장해서 합니까? 내 심신을 누가 주장해야 됩니까? 주님인데 주님이 몇 가지로?  세 가지. 진리가 내 심신을 주장해야 되고, 성신의 감동이 주장해야 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주장할 때만 내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것된 나, 영감의 것된 나, 진리의 것된 나. 진리로  사는 나, 영감으로 사는 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사는 나, 주의 것된 나, 이게  내입니다! 이게 내요! 이걸 벗어버리고 제 마음이 제 마음, 제 몸뚱이가 제 몸뚱이, 제가 제것, 자기가  자기 것이라고 하는 그놈은, 그놈은 참 자기입니까 자기 아닌 원수입니까?  원수라. 참 자기 아닌 원수라. 요걸 우리가 알고 요걸 굳게 잡고 요놈으로 더불어  평생 싸워야 되지 이걸 잊어버리면 다 헛일입니다. 우리 생활은 다 썩은  생활돼요.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십시오. 또 지하철  위해서 기도합시다. 오늘 소식 들으니까 이제는 이 부산시내 있는 모든 지하철  쇠말뚝 다 빼고 난 다음에 우리 문제를 논의하자고 그렇게 책임자  ○○○집사님하고 그렇게 이제 약속을 했답니다. 인제 엔간히 됐어. 아예 뽑지는  안할 터이니까 아예 그런 줄 알고 하라고 이래 단정을 지웠답니다. 기도 안 하면  안 돼요. 기도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하면 다 영웅 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 하면 암만 잘난 사람이라도 병신 다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기 그놈을 원수인 줄 알아야 돼요. 자기를 원수인 줄 모르면 헛일입니다.

진리의 자기, 영감의 자기, 예수님의 피공로의 자기, 진리 영감 피공로에 붙들려  움직이는 그것이 자기지, 거게 팔려서 그것의 것이 돼 가지고, 진리의 것이 된  것이 자기요, 피의 것이 된 것이 자기요, 영감의 것이 된 자기요 그 외에, 제  몸뚱이 제 몸뚱이라 하는 그거는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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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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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타락과 구원의 순서/ 요한복음 5장 25장-27절/ 1980. 12. 7. 주일 오후 선지자 2015.12.30
10 타락의 요소/ 히브리 12장 1절∼2절/ 1981. 2. 24. 화새벽 선지자 2015.12.30
» 탐심(사욕)이 원수/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1987. 12. 4. 금저녁 선지자 2015.12.30
8 탕자비유/ 누가복음 15장 1절-32절/ 1986. 2. 18. 화새벽 선지자 2015.12.30
7 택자에게 주신 안식일의 복/ 창세기 2장 1절-3절 / 1986. 10. 23. 목새벽 선지자 2015.12.30
6 택자의 생애 방편/ 신명기 28장 13절-15절/ 택자의 생애 방편 선지자 2015.12.30
5 택한 자가 의인/ 로마서 1장 17절/ 1986. 4. 20.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4 통일된 실상이 있는 자는 이긴다/ 요한계시록 17장 12절-15절/ 1983. 8. 29. 금저녁 선지자 2015.12.30
3 특수 창조물/ 창세기 1장 26절-27절/ 1989. 5. 3.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2 특수 창조물/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1989. 4. 4. 오전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30
1 특효약/ 요한계시록 1장 3절/ 1987. 3.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