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선지자선교회 1983년 12월 4일 주후

 

본문 : 계 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에 일절에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이가 가라사대' 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사데 교회는 아주 형편이 없는 그런 타락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르쳐서 말하고 일곱 별은 하나님의 종들을, 아무리  타락한 교회의 종이라도 하나님의 종들을 주님께서 장중에 잡으시고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아무리 사데 교회가 이렇게 비참하게  됐지마는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관리하시는 이 역사가 있기  때문에 힘만 쓰면 된다는 그 소망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다' 그 말은, 영은 중생하므로 살아났습니다. 중생된  자라도 그 심신은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살아났습니다. 법적으로는  그 심신의 기능들이 다 산 데 속했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다 인정을 받아서  산 것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그렇게 예수님의 대속을 심신이 입고 있지마는 실상은  죽었다 그 말은 법적으로는 입고 있지마는 법이라는 것은 실상을 따라가는  것인데 아무리 법적으로는 입었다 할지라도 실상으로 벗어 버리면 그 법은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법이 되어 있어도 실상이 없으면 법은 무효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실상을 따라서 사는 것인데 법적으로 주님이 대속의 공로를  입히셨을 때에 그 사람이 실상으로 그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되는데 자기가  실상으로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리면 법적으로 대속해 놓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법적으로 대속해 놓은 것이 실상으로 그 대속의  공로를 제가 벗어 버렸기 때문에 구원해 놓은 것이 허사가 된 것을 가르쳐서  법적으로 살아났던 자가 다시 두 번째 죽었다 해서 둘째 죽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이 우리 영을 살리셨습니다. 영은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산 영으로 되어 있는 그 사람의 마음과 몸, 이 심신의 기능은  아직까지 살아 있지 못하고 죽어 있고 또 심신은 다 사망에 매여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지공한 심판에서 벌써 산 자로 인정받아 가지고  공심판은 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심판은 일반적인 심판이요 전 인류를  심판하는 심판인데 그 심판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다 심판을  면제해 가지고 산 자로 인정해서 공심판을 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어  가지고 있는데 죽어 가지고 있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현실을 통해 가지고 이제  실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법적으로 입은 그 구속을 실질적으로 현실을 만났을  때에 자기가 벗지만 안하고 입은, 법적으로 입은 구속을 자기가 그대로 입은  대로 실행만 하면 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보다도 하나님의  법이 제일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는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을  하나님이 세우신 입법자기 때문에.

 그런고로, 법적으로 삶을 입은 공심판을 면제한 자에게는 악령이 왕노릇을 못  합니다. 악령은 왕권을 가지고, 왕노릇 못 한다 말은 악령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주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죄도 주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망도 주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다만 옆에서 미혹을 시키는 것뿐이지 주권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강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은 악령과 죄악과  사망이 왕노릇하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그걸 벗어 날라 해도 벗어나지 못하게  강제를 하고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기 때문에 사망을 벗어날 자도 없고  죄를 벗어날 자도 없고 마귀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 성경에  말하기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너희들에게는 죄가 왕노릇하지 못 한다  사망이 왕노릇하지 못한다 마귀가 왕노릇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왕노릇은 못 하지마는 언제든지 와서 미혹시켜서 꾀우는 것은 얼마든지 꾀울 수  있습니다. 꾀울 때에 본인이 그것을 받아 들여 가지고 그 꾀움에 빠지면 에덴  동산 해와가 꾀움에 빠져 가지고 죽은 거와같이, 살려 놓은 것이 꾀움에 빠지면  다시 죽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법적으로 살아난 것이 실상으로 살아나는데는 행위를 통해서만  살아납니다. 행위를 통해서만 살아납니다. 그런데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법적 구원은 얻었지마는 '죽은 자로다' 네가 그  행위에서 죽었다 '네 행위를 아노니' 하는 것은 그 행위에서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데 네가 그 행위에서 살아나지 못하고 법적으로 살아난 것을 네가  죽여 버렸다 그러기 때문에, 이름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  2절에 '너는 일깨워' 너는 다시 깨어서 깨라 말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것이  우리기 때문에 깨라 말은 네 속에 생명있는 그 생명이 활동하는 자로 살아라  송장과 자는 자가 다른 것은 송장은 그대로 썩어 버리고 말고 깰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지마는 속에 생명이 있는 자는 깨어 날 수도 있고 활동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자는 깨어날 수도 있고 활동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안하면 이제 죽게 됩니다. 그러기에, 깨라, 자지 말고 깨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생명이 활동하면 죽은 송장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활동하지  안하면 숨만 깔딱 깔딱 쉬지 그 언행 심사나 그 모든 이목구비 수족은 송장과 꼭  같이 됩니다. 우리가 힘을 쓰고 조심하고 정신을 차리면, 우리 생명이신 영감과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영감대로 진리대로 살면은 그것은 다 산 사람의  생활이요 그건 다 깨어 있는 것이지마는 아무리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다  할지라도 성령과 진리의 행동을 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죽은 자인 것입니다.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너는 다시 깨서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지금 다 죽고  남아 있는 것이 얼마 남아 있는데 남은 그것도 자꾸 지금 계속 죽어 가니까,  벌써 많이 죽었고, 벌써 많이 죽었고 남아 있는 그것도 지금 계속 죽어 가고  있으니 계속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네가 죽지 않도록 노력해라 계속 죽어 가고  있는 것을 죽지 안하도록 네가 노력을 해라 그 말입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것은 죽지 안하도록 하라. 남은 것을 죽지 안 하도록 하는  것은, 남은 행위는 네가 안 죽는 행위를 해라 법적으로 살려 놓은 그 삶을 네가  저버리지 말고 그 삶을 네가 입고 살아라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내 하나님 앞에' 우리 행위는 인간끼리 하든지 저 혼자  단독이 하든지 우리의 행위는 전부 하나님 앞에서 지금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그 행위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 였노니' 그  행위가 온전한 행위가 되어야, 온전한 행위가 되는 그 현실에서, 온전한 행위  그것이 뭐이냐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행위인데,  온전한 행위라 하는 것이 사죄 받는 행위요 칭의받은 행위요 화친 행위니까  온전한 행위라는 것은 죄없는 행위요 하나님께 피동되는 의로운 행위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위가 그것이 온전한 행위인데 네 과거에는 이런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구속받은 구속을 네가 다 벗어 버렸다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네가' 사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사는 방법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 영감을 우리가 받았고 권능을 받았고 여러 가지로  깨달음을 받았고, 그런 것은 다 성신의 역사로 받은 은혜입니다. 자기가 깨달은  것 또 자기가 그렇게 실감적으로 느낀 것 또 그런 권능을 받은 것 은혜를 받은  것 그런 게 다 받은 건데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해서 자기가 알게 된 그걸 말합니다.

들은 것이나 네가 읽은 것이나, 읽은 것이든지 들은 것이든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생각하고 또 '지키어 회개하라'  자기가 얻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한 그것은 사용을 해라 네가 들어서 깨달은  그것은 네가 그대로 행하고 네가 받은 것은 네가 그대로 사용해라 받은 것도  사용하고 들은 것도 사용해라 들은 것은 네가 그것을 들은 대로 지켜 행하면  되고 들은 것은 네가 지켜 행하면 되고 받은 것은 사용하면 된다. 받은 것은  사용하면 된다. 받은 것을 어떻게 받았는지 네가 생각을 해봐라 너에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네가 깨달은 그런 깨달음도 네가 네 본인이 알 것이고  또 네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권능으로 동행해 주시는 것도 그것도 네가 알  것이고 네게 대아서 온갖 은혜를 줘 가지고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역사하신 것을 네가 알지 않느냐? 그러니까 받은 것을 네가 그걸 내버리지 말고  다시 생각하떤 나온다 받은 것을 생각하면 나오니까 받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것은 네가 하나씩 둘씩 꼬박 꼬박 지켜라 그러면, 남은 바 죽게 된 것이 죽지  안하고 그 남은 것은 다 완전히 살아나게 된다.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만일 이 말씀을 듣고 받은 것을 네가  생각하고 또 들은 것을 지켜 이렇게 하면, 들은 것은 지키고 또 회개하고 요렇게  하면 네가 된다 받고 들은 그대로 네가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면 된다 아무리  잘못됐더라도 회개하면 되고 이제 들은 대로 그것을 생각해 보고 또 사용해서  지키면 된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도적  같이 이른다 말은 도적이 오는 것은 모든 보배를 다 빼앗아 갈라고 훔쳐 갈라고  도적이 오는 것입니다. 네가 요렇게 지금 깨닫고 일어서지 안하면 네 일생이라  하는 것은 다 도적맞는다 네 현실 현실에서 영원히 네가 사용할,그 것 참 어떤  보배로서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기능을 네가 다 도적맞는다 마음의 기능도 마음의  민첩도 또 지혜도 지식도 능력도 의지도 생각도 옳은 모든 비판도 평가도 모든  것 그것을 다 도적맞게 된다. 네 심신의 기능을 완전히 도적 맞게 된다. 심신의  기능은 현실에서 네 것을 만들어 놔야 현실에서 만든 그것이 영원히 네것이  되지.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네가 현실로 만 들어야  네것 된다는 것이지 네것 만들 수 있는 그 자본을 내 준 것인데 네가 현실에서  지키지 안하면 네 심신의 기능을 살 희망있고 산 데 속했지마는 네가 들어서  다시 두번 죽음으로 죽여 가지고서 영원히 네가 가지지 못할 그런 네 기능이  된다. 그러면 자기 기능을 다 죽여서 부활할 때에 기능없는 부활이 않습니다.

부활은 꼭 같이 하지마는 부활할 때에 기능이 없는 그런 부활이 많고 기능있는  부활이 많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부활할 때에 권위있는 부활,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자기도 받기를 위해서 힘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 짤막한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에도 실력 있는 사람과 실력 없는  사람이 차이가 많습니다.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의 발새의 때 만도  못합니다.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의 그 사람의 뭐 발새의 때 만도  못합니다. 그 사람의 벗어내 버리는 양말짝만도 못합니다. 얼마나 천합니까!  하루밤 나그녜에서도 천하다 귀하다 천한 것을 모욕이라 생각하고 영광을  부러워하고 이래 하거든 하물며 영원 무궁토록 변하지 안하는 그 세계에서 인간  차이가 그렇게 많은데, 구원 얻은 차이가 그렇게 많은데.

 구원얻은 차이가 그렇게 많은 그것은 왜 많으냐?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무슨 죄를 짓고 돌아다녀 돌아다니기를? 정신 차려. 하나님이 아셔.)  네가 현실에서 영원히 사용하고 영원히 보배가 되는, 영원히 보배가, 네 보배가  되어지는 그 기능을 세상에서 현실 현실에서 살리면 무궁 세계에 네가 기능 있는  사람이 될 건데 실력있는 사람이 될 건데, 네가 현실 현실에서 네가 들은 대로  지키고 받은 대로 사용하고 이라면 될 터인데, 네가 받은 것을 다 저버리고 들은  것을 다 저버리고 이래 가지고서 현실 현실에서 영원한 네 보배인 네 실력  영원한 네 실력인 그 보배를 현실 현실에 자꾸 도적맞고 마니까 '내가 도적같이  임한다' 주님이 도적 같이 임한다. 주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고 현실에서 구원하실라고 했는데 현실에서 자꾸 죽습니다. 그 현실에서  법적으로 살아 있던 것이 현실에서 죽고 현실에서 죽고 자꾸 현실에서 죽으니까  부활할 때에는 기능없는 그런 몸뚱이만 살아 있지 능력없는 그런 자가 되고  맙니다.

 내가 언제 며칠 전에 들었는데 ○○○이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키가 일미터  오십이라던가 얼마라 하던가 그 참 보니까 외국 손들하고서 둘이 섰는데 보니까,  땡땡한 게 똑 얼굴이 조금 풍기가 똑 있는 사람 비슷해 가지고 땡땡하이 요만해.

요만해. 요만해도 그것이 팔억만 인구를 실권을 거머쥐고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실력이사 그 말이요. 그 용모가 볼 거 없지마는 그렇게  실력있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원 무궁 세계에 자기의 실력을 이 현실에서 다  도적맞지 안하고, 이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 현실에서 실력을  전부 도적 맞는다 말이요. 도적맞는 건 누구한테 도적맞는가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이런 낭파된다' 또 '하나님께  받은 것 그건 네가 공연히 꿈이고 네 생각이고 네 감정이고 네 무슨 최면술에  걸린 것이고 그런 것이지 실상이 아니다' 이렇게 꼬아 가지고 어쨌든지 그  현실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꼬우는 그자가 영원한 우리의 실력을  도적하는 도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것은  다 우리의 원수요 도적인데 내가 그 현실에서 그것에게 지지 아니하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나는 그로 인해서 실력을 얻었고 빙해  하는 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이겼으니까 더 큰 실력을 얻어서 이제 방해하는  그것이 완전히 영원히 내 것이 되어지고 내 점령이 되어지고 내 종이 되어지 그  내 이용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기가 어려운 환경을  줍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기면 이긴 실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무궁 세계의  실력이 더 강한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간에 이를지 모른다. 그러면 이 시간도 주님이 도적 같이 이릅니다. 내가  실행을 안 하면 이 시간도 주님은 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죽는  데로 밀어넣어 버립니다. 이 시간에 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이 나를 살리러 오셨지마는 내가 배반할 때에는 그거는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주의 말씀 들은 대로 받은 대로 일깨워 생각하고  지켜 행하면 이 현실에서 기능이 살아날 터인데 안 살아나면 죽습니다. 살아나는  것은 주님이 살려주신 그 법적 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그 구원을 벗지 않는 자요.

그러면 현실에서 사죄를 벗지 안하면 살아나고 칭의 벗지 안하면 살아나고  화친을 벗지 안하면 살아납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버리지 안하고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가 없고 이 세 가지만 갖추면 그 현실에서는 영원히 죽을  것이 영원히 살아나 버리고 맙니다. 영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다 영생이 마련되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 말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언제 아무 날 시에 갑자기 온다 그 말 아닙니다. 계속 주님은  오고 계십니다. 계속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그래 요한복음 14장에 보면은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내가 데리고 가겠다' 계속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는데 뿌리고 마다하고 도망쳐 버리니까 할 수 없어 떨구어 버린다 말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서,  아 하나님 안 따라 갈랍니다. 나는 딴데로 갈랍니다. 하면은 강제할 수는 없다  말이요. 강제할진데 그까짓 거 하나님이 강제하면 대번 뭐 어떻게라도 하지마는  강제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안해. 하나님과 같은 그런 존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강제는 못 합니다. 강제할 권리가 없어 그런 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므로 강제를 안 하시게 됩니다. 이러니까 같이 데리고 갔는데 그만  배반하고 뿔거져서 딴 데로 가 버리면서, 만일 못 가구로 가지 말라 그리 가면  죽는다 할 때에는 권리가 있어 가지고서, 왜? 내 마음대로 내 맘을 내 마음대로  하지 뭣 때문에 그라느냐고 내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고  싶은 대로 말지, 하나님은 꼼짝 못한다 이거요. 그게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임할런지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4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니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이 몇 명이 있다' '그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나하고 지금 동행하고 있다'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흰옷 입고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이 사데 교회 몇이 있다' 옷을 더럽히지 안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죄를 더럽히지 안했다는 말이요 사죄를 더럽히지 안 했다는  말이요 칭의를 더럽히지 안했다는 말이요 화친을 더럽히지 한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과 화친을 더럽히지 안하고 화친 그대로 보수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과 화친했던 자가 하나님을 배반해서 하나님과 현실에서 원수  행동을 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이 입혀 주신 의를 더럽히지 안하고 그 의를  그대로 가지고, 의를 가진 것은, 의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나님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것.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의인데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하나님에게  순종 생활을 저버리지 안하고 더럽히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순종 생활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의를 그대로 입고 있는 것입니다. 또 사죄라, 아무리 죄짓게 해도  그 죄를 짓지 안하고 죄를 없애 주심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죄없이 해 주심을  그것을 보수해서 주님이 죽기까지 해서 나를 죄를 없이 해 주셨으니 내가 다시  죄를 입을 수는 없다 죄를 없이 해 주신 이 사죄를 내가 벗을 수는 없다 그  사죄를 벗지 안한 것이 옷을 더럽히지 안한 것이요 칭의를 벗지 아니한 것이  옷을 더럽히지 안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화친시켜 준 그 화친을 벗지 않는 것이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나와'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닌다' 그 사람은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화친을 입고 그 사람은 죄없는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하나님과 화친을  입고 나하고 동행하고 다닌다 동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상이 달라 들어서 그  사람의 옷을 더럽힐라고 온갖 노력을 해도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빼앗겼으면 빼앗겼지 이 흰옷을 자기가 더럽히지 안합니다. 벗지 안 하고 이  흰옷을 더럽히지를 아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그 말은 흰옷을 더럽힌다는 것이 벗는다는 말이요 벗는다는 말이 더럽힌다는  말이요. 때를 따라서 그렇게 같은 말을 이렇게 알기 쉽도록 표시해서 말씀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이렇게 이 사데 교회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은 것 또 받은 것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받고  하나님의 도를 듣기만 듣지 뭐 이걸 다 현실에서는 다 저버려 버리고 현실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잘 믿고 현실이 닥칠 때에 그 현실에 필요한 말씀은 다  버립니다. 현실에서는 다 버리고 현실에 필요없는 말은 다 가지고, 현실에  필요없는 말은 다 가지고 그 현실에 해당되는 말은 착착 버려 버립니다.

필요없는 말은 그래도, 다를 때는 열심히 암만해도, 너는 꼭 칠계를 네가 이겨야  될 터인데 할 터인데 그 칠계를 딱 범할 때 가 가지고는 그만 칠계는 치워  버리고 딴 거는 잘 믿고 네가 요때는 거짓말 안 해야 되는데 거짓말 딱 하는  이런 죄를 짓고서 또 다른 계명은 제가 지키고 있고 그러니까 그 시간에  해당되는 말씀은 버립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말로 예수 믿고 또 생각으로  예수 믿고 형식으로 예수 믿고 이라는 그 속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데  교회는 다 그렇지마는 그 가운데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렇게 더럽히지 아니한 자를 기억합니다. 낱낱이  기억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안한 자가 몇 명이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은 다 하나님의 복음에 합당한 자이기 때문에 합당한  행위를 하므로써 흰옷을 더럽히지 안했고 흰옷 입고 주님과 동행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이기는 자라 말은 무엇을 가르쳐 이기는  자라 말이냐 하면은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이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어떤 죄를 짓고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죄 가운데 깊이 빠져 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배운 말씀  읽은 말씀 이 말씀을 자기가 힘써 지킬라고 애를 쓰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새로 사용해서 자기 힘을 기울여 가지고서 잘못된 것을 고쳐서  회개를 해라 그게 이기는 사람이라. '이기는 자는' 회개하는 자는 그 말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회개하는 자요 이긴 자는 회개한 자요. 이기는 자는  회개를 하고 있는 자요. 이긴 자는 회개를 한 자입니다. 그런고로, '이기는  자는' 그 말은 이긴 자가 아니고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라 말은 회개를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긴 자는 이긴 자, 이겨서 끝마친 자, 이겨서 완료한 자.

그러나 요 이기는 자라 말은 계속 지금 회개를 하고 있는자라 말이요. 회개를  하고 있는 자는 열 가지 가운데에 한목 다는 못 이겼을지라도 열 가지 가운데에  한 가지를 이기고 그 다음에 두 가지 이기고 세 가지 이기고 네가지 이기고 다섯  가지 이기고 그래 가지고 이제 열 가지를 다 이기는 이 기는 자, 이기는 자는  계속 회개를 하는 자를 가르쳐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나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렇게  흰옷을 벗지 안하는 그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천사 앞에서도' 하는 그 말은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시인하지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면 못할 것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건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도와셔서 불에서 타지 안했고,  사자 구덩이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이 도우셔서 사자가 해하지 못방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도우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 쭉 지나갈 때에, 이  사람은 하나님이여 도우셔야 됩니다. 이 사람은 도우셔야 됩니다. 이 사람은  회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옷을 더럽히지 안 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사자의 입을 막아 가지고서 구원하셔야  됩니다. 이 사람은 이런 낭패가 당하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도우셔야 됩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아노라 할 것이고 천사들은 또, 하나님의  수종드는 것이 천사인데 천사들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는 일이 아니고  천사들을 시켜 가지고서 운동하시는 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전부 한 사람에게마다 천사가  하나씩 따라 붙었고 마귀가 하나씩 따라 붙어 가지고 있는데 이제 모든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있는, 사람을 맡아 가지고 있는 그 천사에게 이 사람은  인정해라 이 사람은 인정해라 인정해라 하니까 그 사람은 인정하게 됩니다.

 제가 거창서, 거창서 그때에 6·25 지내고 난 다음에 산에 있는 공비가  거창읍에 와 가지고서 사흘 동안을 전부 점령을 해 가지고서 군청 재판소 뭐 또  세무서 경찰서 싹 다 태웠습니다. 싹 다 태웠는데 그때 그러니까 다 태웠으니까  어떤 사람이 빨갱이 인지를 모른다 그 말이요. 전부 지금 잡아서 무조건 그때  죽여야 되기 때문에 마구 토벌대가 와 가지고 지금 죽이는 판인데 그때 가  가지고서 참 신용 할 만한 사람이 있다가서 쭉 거석할 때에, 이놈 너는, 모두  전부, '아, 나는 죄 없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에 가담 안 했습니다.' 안 그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신용을 해 줍니까? 신용을 안 해  줍니다. 신용 안 해 주는데 ○○○아들이 그때 붙들렸는데, 이래 들어 가는데  거기에 마침 아는 경관 하나 있어 가지고서, 이놈을 '이놈 네가 여기 빨갱이지'  이러니까 그분이 있다가 말하기를, '아, 이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잘 아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 아주 똑똑한  민주주의자입니다.' 이러니까, '고만 나가라', 그 때 그 사람이 하나 말해 주는  데서 그 ○○○인데 그분의 아들이 그때 자기, 어떤 사람이 하나 인정을 해  줌으로서 무사히 살아 나왔다고서 그 뒤에 이야기를 하면서 감사하는 말  들었습니다.

 내가 그때 말했습니다. 그거는 살려 줘도 잠깐 있다가 떠난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나님 심판 앞에서 변호하고 천사들이 지금 모든 역사 가운데서 이는 내가 안다  이는 내가 아니까 이는 그런 이 아니라 이는 도와 줄 자다 이는 면 해야 될 자다  이는 도와 줘야 될 자다 이 자는 승리를 해야 된다. 이거는 실패 할자다 이렇게  증거하는 그것은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과 그 천사들 앞에서 내가 아노라 할  만한 그것은 네가 어떻게 생각했느냐 그 ○○○의 부인에게 내가 대해서 그  이야기를 내가 질문 했습니다. 그라면서 그때 그것을 그에게 좀 심각하게 말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흐리지 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때  그분이 인정하는것, 그때 죽느냐 사느냐 이제 승리 하느냐 안 하느냐 이 사람을  천사가 도울까 말까 이 사람을 도울까 말까, 우리가 앞으로 당하는 시험은 우리  힘으로 못 이깁니다. 우리 힘으로 못 이기는데 그때에 천사가 도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예수님 단독은 승리를 못 했습니다. 승리를 못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천사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 예수님께서 비로소 그 기도를 완전히 관영하고 해 가지고서 통과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모든 생활에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과 이제 천사가 내 몰라라 하는 것과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우리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같으면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다 천사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그 세가지  시험을, 시험을 당할 때에 그때에, 세 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에 그때에 마귀가  물러가고 나니까 천사들이 와서 수종들었다 이래, 천사들이 수종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야 되고 천사들이 우리를 인정해서 도와 줘야  되는 것이니까 이것은 주님이 도우라 말아라 그놈은 찡그트려 버리라, 아합왕  그놈은 벌을 내려서 그놈을 이제 전쟁에서 죽게 해라 이랬는데 아합왕이 크게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하기를 천사에게, 야 너 아합왕을 보느냐 아 그놈  죽일 놈 아닙니까? 예 뭐 죽이겠습니다. 얼른 죽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합왕을 요새 봐라 그가 지금 길을 바로 걷지 못하고 머리를  들지 못하고 그 걸음을 천천히 하고 지금 그가 과거가 원통해서 그렇게 회개하는  걸, 네가 보느냐 그러니까 그래 하지 말고 용서해 둬라 그럴 때에 아합 왕이  그때 죽음을 면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러니까 성령이  모든 교회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불변하는 법칙을 말씀하시니 그저 누구든지 이  법칙대로 살길 가면 살고 죽을 길 가면 죽고 실패할 길 가면 실패하고 승리할 길  가면 승리하고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제가, 이 말씀을 오전에 증거할라고 했는데 공과  가르칠 때에 너무 그걸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의로운 행위를, 모든 선한 행위하는 그것은, 그 선한 행위하는 그것은 세상에서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복을 받는 기 아니다. 선한 행위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복을 마련하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복을 잘 마련하면은 그걸 보고 하나님이  재미있게 여겨서 자꾸 세상 복 마련할 수 있는 자본을 준다 새 자본을 주시는  것이고 그 의로운 행위한 그 값은 의롭게 한 것인데 그것은 생명에 속한 것인데  죽고 썩고 없어질 것이런 것으로 갚아 주지 않는다 그것을 구별하도록 위해서  오전에 다시 그것을 재독을 했습니다.

 요거 오늘 오전에 할라 한 말씀인데 요 말씀의 제목은 그렇습니다.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자,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자,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도 천사 앞에서도 주님이 시인을  합니다. 또 '그는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는다' 그 말은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는다  말은 무슨 말을 가르쳐서 말하는 건고 하니 생명책에 등록이 되면은 영생을  합니다.

 우리 영은 생명책에 등록이 됐습니다. 중생된 영은 생명책에 등록이 됐지마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현실에서,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적으로 심신의 구속을 다  받은 심신의 기능이지마는 현실에서 그가 법적으로 받은 대속을 벗어 버린다  말이요. 벗어 버리니까 그때에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흐려 버립니다.

'생명책에서 흐린다'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흐린다 말은 뭉케  버린다 말이요. 뭉케 버린다 법적으로 그 기능이 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는데  현실에서 그 사람이 그 흰옷을 벗어 버리면은 생명 책에서 흐려 버립니다.

이러니까, 생명책에 전부 기록해서 일생 동안 죽는 날까지 그의 기능이 다  살아서 생명책에 다 기록하고 있지마는 그 현실에 자꾸 그려 버리고 그려 버리고  그려 버리니까 나중에 보니까 산 것이 없습니다. 없는데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않겠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흐리지 않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흐리지 안한다는 것은 흐리지 안할 수 있는 계속 승리 생활을 가르쳐서 말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기는 자는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이기는 자요 다  회개하고, 바울이 떠날 때에 이제는 모든 싸움 다 싸웠고 선한 믿음을 지켰은즉  이제는 내 앞에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하는 그것이 다 이긴 자입니다.

이긴 자. 그때에는 우리가 마지막에 종결로 이기지만 지금은 이기는 중에 도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흰옷 입고 다니는 것은 어떤 게 흰옷 입고  다니는 것인고 하니 불로 가지고 시험을 할 때도 이스라엘 모두가 다 옷을 다  벗었지마는 서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사자구덩이 시험있을 때도 입고 있었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가 있을  때에도 그때도 흰옷을 벗지 안하고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 6·25때도 또  있어도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자기 사적으로 개적으로 남 모르는데 혼자  있는데, 경제적으로 사업적으로 또 언어적으로 인간의 교제적으로 모든  사건적으로 환난적으로 모든 사이비해서 구별하지 못하는 구별적으로, 모든 면에  대해서 흰옷을 입고, 흰옷을 입고, 하나도 죄되지 않게, 흰옷은 삐뚤어짐이  없이, 사죄는 삐뚤어짐이 없이, 삐뚤어짐이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세 가지 공로를 입고 주님과 항상 동행하리라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새 이름을 기록한다 성전  기둥이 된다. 새 이름은 개혁을 말하는 것인데, 왜정 말년에 교회들이 다 많이  있었지마는 그때 다 깨어지고 다 절단났습니다. 절단나고 그때에 이제 새로  개혁적인 새 신앙이 나타날 때에는 승리한 그 사람들은 다 들고서 일하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자 흰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얼마나 존귀한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만났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다  놀래 떠는데 모세나 여호수아 갈렙 그런 사람들은 기뻐 즐거워서 입이 벙긋 벙긋  거리며, 아 하나님의 솜씨를 보자, 이렇게 다른 사람이 불의에 대해서, 악의  세력과 불의의 세력 앞에서 떠는데 이 사람은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권위며 천인 만인이 범죄하지 안할 수 없는 그 어려운 역경에서 이  사람은 죄짓지 안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존영한 것이며 모든 사람을 다  하나님이 내 몰라라 했는데 주님이 그 사람을 내가 아노라 하고서 당신이  거머쥐고 동행하시는 것이 얼마나 존귀한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는 것 주님과 동행을 어디서 하느냐? 흰옷 입은  사람은 다 동행한다 흰옷 입은 사람은 다 동행한다 흰옷 입은 사람은 다  동행하는데 흰옷을 어떻게 입을 수 있나? 흰옷은 우리가 다 입을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그게요. 우리 믿는 사람은, 택한 사람은 다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 길을 다 가르쳤습니다. 할 수 있는 것.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셔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데 그  길을 게을리 하고 교만해서 교만해서 하지 못하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오늘도 흰옷을 입고 다닐 수 있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승리를 가져올 수 있고 어디서든지 평안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담대할 수 있고 어디든지 승리할 수 있는 이것이 어디서 되어지느냐 받운 것  들은 것 그것을 일 깨워 생각을 하고 그대로 지키어 회개 할라고 하면 됩니다.

그것은 다 할 수 있는 일이라 말이요. 못하는 게 아니라 다 할 수 있어.

 그러기 때문에, 연약한 힘이지마는 그 힘 가지고서, 뭐 쉽어보지 말고 연약한  힘이지마는 계속하는, 이 신앙 걸음이라 하는 것은 꼭 토끼 걸음이 아니고 거북  걸음입니다. 신앙 걸음은 거북 걸음이요. 거북 걸음이지 토끼 걸음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연약한 힘이라도 쉬지 안하고 자꾸  이렇게 계속하는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계속의 말을 지켰은즉 이 계속하는  데에서 신앙이라 하는 것은 승리가 있는 것이지 계속하지 안하고 어떤 세력  있으면 왈칵 왈칵 벌컥 벌컥 그렇게 위대한 일 굵닥 굵닥한 일만 한다고  제딴에는 하는 그런 사람은 사람 보기에는 위대한 것 같지마는 그 영광과 명예는  제가 다 따먹어 버렸고 속은 알맹이는 죽습니다. 그렇게 큰 일을 뭉텅 뭉텅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 이용만 당하고 다른 사람 살리는 데 이용만  당하지 제 모가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있는 것 조차도 칭찬받고 세상에서 영광  받았기 때문에 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기에, 부지런히 계속하는 노력, 이제 하나님 앞에 받았으면 자기가 경헙도  받았고 체험도 받았고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자기가 또  체험했고 경험했고 안한 사람 없을 거라 말이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기도 들으면 그만하면 다 아니요? 또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는 걸 다 체험했을 것이라 말이요,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혜를 주  시는 것을 알 것이고 깨닫게 감동시키는 것도 알 거고 또 말씀을 직접들은 것도  있고, 어떻게 받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받은 걸 말합니다. 또 들었다는  것은 이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든지 듣든지 하는 그걸 말하는 것이고 받은 것은  하나님에게 직접,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역사하시는 그 은혜를 받은 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 모르고 자기가 안다 이거요. 이 받은 것들은  것이대로 그저 지켜 행할라고 애를 쓰는 이것으로 인해서 승리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지켜 행할라고 힘을 쓰기만 쓰면 도와 줄라고 책임자로 나선  분이 몇이지요? 이렇게 우리만 할라고 애를 쓰면은 거기에 도와 가지고서  부족함이 없이 책임을 지고 우리를 도와 주기로 책임지고 나선 분이 셋이 있는데  나선 분이 셋이 뭐이 뭐인지 압니까? 자 크게 해 봅시다. 하나님이 아니고  성령님, 둘째로는 진리, 셋째로는 주님의 피공로. 우리만 할라 하면 이 셋  보증자가 역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만 할라 하는데 우리만 할라 하고 애를 쓰고  우리가 소원하고 우리 힘대로만 애를 쓰고, 제가 소원하기를 백분지 일을  소원하나 십분지 일을 소원하나 하는 것은, 소원하는 증거는 뭐이냐 하면은 자기  있는 힘으로 다하는 것이 다 소원한다는 증거요 반 힘밖에 안 들이는 것은 반  소원밖에는 안 한다는 것이요 입으로만 소원하고 행동은 하나도 안하는 것은  입만 소원 하지 속에 실상은 소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원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남은 것 없이 전부 다 기울여서 소원만 하면 그 나머지기는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피공로가 책임을 지고 역사합니다. 다 소원하면 그 사람이  소원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저 도와 주실 수 있지요. 그러나 본인이 소원하지  안하는 것은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강제라 그 말이요. 본인이 소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도와 주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애가 터져서 표시하기를 '문 밖에서 두드린다 두드리니까 문을  열어라' 이 말은 내가 도와 줄 터이니까 소원을 해라 소원해라 소원하는 그것이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을,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죄를 벗고 칭의를 벗고 하나님 배반했던 것을 벗어 버리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요 소원하는 것이 영접해 들이는 것입니다. 그라면 내가 들어 가  가지고서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내가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고 너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이제 둘이 서로 도 와  가지고서 하나님은 그를 돕고 그는 우리는 하나님 돕고, 우리가 하나님 돕는  것이 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돕는 것은 우리가 소원하는 그게 하나님 돕는  것이요 찍해야. 뭐 도움이 당신이야 받을 게 뭐 있습니까? 우리 소원하는 그것이  당신을 돕는 일이라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이 일을 우리가 하지 안하고 게을리 하면은  우리는.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모든 것 다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앞으로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내가 며칠 전에 역부러 그날 바람이 부는데 비틀 비틀거리면서 저게 충혼탑  이라고 충혼탑이라 하는 저 탑에 가 봤습니다. 탑에 가 보기를, 나는 갈 때에 뭣  때문에 갔느냐? 이것이 언제 뭘로 화해질런지 모르겠다 이라면서 한번 가 봤어,  가보니까 아주 웅장하게 웅장하게 했어요, 그런데 거기 들아갈 때에, 여기에는  정신을 가다듬으십시요 조심을 하십시요 엄격한 마음을 가지십시요 이렇게 해  놨어. 거기 가니까. 그런데 그 위에 좀 있으면 물이 쿨쿨 널찔 것이고 아주  시커머이 이렇고 인자 앞으로 때나 끼면 시커머이 이러니까 아주 거기에서  귀신이 나올것 같고 앞에 신이 나올 것 같고 좀 엄장하다 말이요. 거기다 떡  이거 뭘 한개 떡 만들어 놓고서, 여기 가서 전부 부산 시내 사람들은 다 여기  와서 절을 하십시요 국민 단합을 위해서 다 충신을 위해서 하십시요 하면은  그때, 지금은 마음대로 가지마는 그때는 그 앞에 오면은 벌벌 떨릴거라 그  말이요. 그래 내가 한 번 삥 돌면서 이것이 무엇이 될런가, 주여 만일 무엇이  되면은 어찌 될 것입니까? 무엇이 되어도 이것은 주님이 이기게 해 주셔야  이기지 그리 안하면 못 이깁니다. 알게 해 주신 주님이여 어떤 게 온다고 해도  요동이 되겠습니까? 그저 여기에 대해서도 기도하고 준비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말을 하고서 비틀거리며 내려왔습니다.

 지금도 문을 열면 그 딱 보이요. 보일 때에 저것이 이제 부산 시내에 있는  교인들을 시험할거, 공산주의로 시험하는 것은 공산주의 오면 이 주일학교  학생들이 다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그 시험을 안 하실 것같애요. 그게 오면  주일학교 학생들이 다 절단나, 이러니까 주일학교 학생들 때문에 공산주의  저거는 못 옵니다. 아, 이 어린 것들, 와 놓으면 그거 뭐이 되겠습니까? 지금  자꾸 자라고 있는데, 이러니까 무더기 죽음을 하지 아니하고 이제 수십년 동 안  예수 믿으면서 교만한 사람들을 딱딱 끌어서 쳐박아서 예수를 딱딱 부인해  버리고 이제 예수 믿는 이제까지 생활한 것 다 틀틀 털어서 마귀에게 다 바쳐  주고마는 이런 시험은 그 지방 내에서 있는 것이요 국내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과거에도 단군 신사에 대해서 그런일 있었고, 왜정  말년에는 천조 대신이라는 그 일본 신을 그래 놓고서 그렇게 그때 시험을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그런 '전체적인 시험은 안 오고 이 개별적인  시험이 올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서 한번 빙 둘러보면서, 지금은  경치좋다고 사람들이 혹 오지마는 나중에 가서는 두려워 떨려서 얼마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나고 무슨 절단이 나고 뭐 또 사형이라도 뭐 어떤 사형이 날런지 뭐이  날런지 모른다. 그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원하지 안하지마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변동을 시킬지 모른다 그 말이요. 변동 시키면 변동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동상을 갈 때에 동상 갈 때마다 저 동상이 앞으로 아떻게 될런가 이상 한 곳만  있으면 어떻게 될런가 그것을 하나도 생각을 아니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  말이요. 왜정 말년에 어떻게 거기에서 고통을 당하고 거기에서 마찰을 받았든지,  천조 대신이라 해 가지고서 예배당마다 여기 뒤에 다 붙였습니다. 여기 천조  대신이라 이렇게 요 똑 기와집 같이 요래 딱 만들어, 아따 그 오래 되어서  이름이 뭐인지 잊어 버렸는데 요래 똑 그래 나무 요래 딱 걸쳐 가지고 딱 요래  가지고서, 여기 수원지 그때 그게 있었는데 그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리아라  하는가? 뭐이라 합니까 그거? 도리야? 도리? 네, 인자 그게 있었는데 저는 거기  갈 때에 언제든지 저리 돌아 갑니다. 거기 갈 때에는 저리 기둥 밖으로, 기둥  밖으로 가고 그 밑으로 가기가 싫어서, 언제든지 갈 때에는, 그랬는데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 말이요.

 그러기에 모두 다 '백설이 분분한데 낙낙장송되리로다' 하는 그 시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가 다 주님을 배반하고 마귀와 그 죄악 앞에서 벌벌 떨면서  그 앞에 굴해서 오만, 천조 대신 이름으로 세례 받으라 하면 세례 받고 이라라면  이라고 그렇게 마귀에게 붙들려 가지고 조롱이 되는 그런 때에 그때에  신앙으로서 하나님의 천사가 지켜 주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오직 흰옷을  더럽히지 안하고 입고 다니는 그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런고로, 우리 서부 교회 주일학교나 장년반이나 전부는 다 흰옷 입고 주와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지금부터 준비하떤 못할 사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도회에 다 참석하도록 그렇게, 그래서 저도 밤마다  이렇게 비틀거리며 다 내려 옵니다. 내려 와 가지고서 인자 쪽 한번 살펴보고서  또 여기 와서 기도할 때도 있고 바람이 덜 불 때에는 옥상에 와서 기도하고,  그저 어짜든지 우리 신앙생활은 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는 거기에서 성공이  있는 것이지 왈칵 왈칵 신앙생활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하는 우리의 다하는 우리 인격 우리를 원하지 만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당신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 하나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해진 것은 우주보다 귀하다 그것이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크다는 것인데, 그게 덩어리 생명 그까짓 거야  우주랑 내두고 뭐 조그만한 섬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그게 덩어리 생명이야  수천만도 죽지 않습니까? 그걸 말하는 걸 아니요. 한 사람의 생명은,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 연결은 우주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단단히 작정합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어짜든지 겸손히  작정합시다. 이 하나님 앞에는 그저 딴 거는 서지 못합니다. 노아 때에 방주  그것만이지 딴 게 무슨 소용 있었습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1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 12. 4.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2
»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 12. 4.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9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년 50공과 선지자 2016.01.12
8 힘써야 할 다섯 가지/ 마태복음 28장 18절/ 1980. 7. 22.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7 하나님을 영화롭게/ 로마서 1장 18절-23절/ 1983. 9. 13.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6 하나님의 능력 받는 법/ 에베소서 1장 18절-22절/ 1983. 11. 9. 수새벽 선지자 2016.01.12
5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고린도전서 2장 3절-5절/ 1983. 11. 19.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4 하나님의 원수-범죄케 하는 것/ 민수기 31장 1절-8절/ 1983. 7.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3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 1983. 11. 1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2 하나님의 진노(징조)와 우리 할 일(회개)/ 요한계시록 12장 10절-11절/ 1983. 6. 17. 금저녁 선지자 2016.01.12
1 하나님이 복 주시는 조건/ 신명기 28장 1절-68절/ 1983. 6. 19.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