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영화롭게


선지자선교회 1983년 9월 13일 화새

 

본문 : 롬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이 신불신자간에 믿는 사람이든지 안 믿는 사람이든지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 놓으셨습니다. 자기 안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설치를  해 놓으셨고 또 자기 밖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그런 설치를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몰라서 못 섬겼다 그렇게 핑계할 수 없도록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알도록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참 지극히 크신 분이시요 또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 사람이 사는 것인데, 하나님이 제일 크신 분이신 것을  자기 안에도 알게 하는 장치가 되어 있고 자기 밖에도 알게 하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알도록 하나님이 해 놓으신 것은 하나님이 제일 크시고, 또 제일 권위가  있고, 제일 능력 있고, 제일 공평되고, 또 제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요  그분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으로 이렇게  높여 섬기는 그게 있어야 될 터인데 이것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높여  섬기는 이것이 없고, 또 '감사치도 아니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젓인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함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크게 두 가지 분노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다  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분히  여기시고 그 다음에는 전부 하나님의 것인데, 심지어 사람을 통해서, 국가라면  국가를 통해서 사람에게 혜택을 입히는 그런 것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는 국가도 만드셔서 국가도 자기에게 혜택 입히는 한 기관으로  만드시고, 또 사람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은혜 베푸시는  기관으로 만드시고, 모든 자기에게 필요한 물질도 그 물질이 직접 자기에게  필요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것도 있고 또 그 물질을 통해서 간간접으로 모든  것이 다 종합적으로 해 가지고 자기에게 은혜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세밀히 만  드셔서,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신 이도 하나님 한 분이시요, 또 있는 것을 있는  것들에게 서로 돕고 유익이 되도록 그렇게 섭리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전부  하나님 혼자 이래 하시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안하고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그 영화를 피조물을 영화롭게 할 때에 하나님은 정죄하시고  심히 분히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또 피조물이 피조물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것이 변해서 피조물 영화롭게  할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피조물에게 대해서, 영화롭게 한다 말은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이는 참 나에게 이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역사를 하신  분이시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찬송을 하면서 섬기는 그일입니다. 한 말로 말하면  감사 하면서 섬기는 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섬기며 그를 항상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그분에게 무엇이 거슬리지  안하려고 제일 그분을 높은 분으로 여겨서 이렇게 감사하며 섬기는 그런 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어떤 피조물이든지 피조물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한  영화롭게 하는 그 성질의 그 본질과 본성의 것은 피조물에게 하면 안 됩니다.

부모에게도 하면 안 되고 아무것에게도 하면 안 됩니다.

 다만 사람에게 대해서 영화롭게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있지마는 사람 중에 이  사람은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실 때에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신 그 시은의 기관으로, 시은의  도구로, 시은하는 데에 하나님이 그를 쓰셨기 때문에 시은의 기관으로 시은의  도구로 그렇게 감사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제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해라' 하는 그것도 그것 왜 부모를 공경하라  했느냐? 하나님이 자기라는 존재를 땅위에 있게 하실 때에 부모를 시은의  기관으로 쓰셔 가지고 베푸시기 때문에 첫째는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안 됐고  둘째로는 그 부모가 아니었다면 자기에게 그 은혜가 전달돼 올 수가 없다는  이것을 알고 그 위치, 그 성질, 그 가치, 그 존귀의 정도의 것, 그 정도의 것  그것을 부모에게 바쳐 효성을 해야 되지 그 위치를 묵살하고 하나님에게 할 것을  부모에게 하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피조물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뭐 감사할 게  뭐 있느냐?' 안 됩니다. 은혜의 기관으로 우리가 감사해야 될 그 감사는  하나님에게 돌리면 안 됩니다. 은혜의 기관에게 돌려야 됩니다. 또 하나님에게  돌려야 될 그 감사는 하나님에게 돌려야 되지 그것을 피조물에게 돌리면 안  됩니다.

 이랬는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이것을 다 혼돈을 시켰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혼돈을 시켜서 영화롭게 하는 것과 감사치도 아니하고 감사하는 것을 다  변화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알아서 이 숭배하는 것, 하나님으로 알아서  이렇게 하나님으로 알아서 섬겨 숭배하는 그것이 없는 것이 제일 큰 죄고,  그러면 하나님을 숭배할 것을 누구를 숭배하느냐? 하나님 숭배하는 것을 첫째는  자기를 숭배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모든 인간을 숭배하고, 또 그보다 사람이  타락해 놓으면 물질을 숭배합니다. 점점,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  다음으로 큰 자요 만물 위에 있는 자요.

 하나님 숭배하던 자가 인간을 제일 존귀한 것으로 여기면 벌써 하나님을 빼놓은  그만치 인류에게로 좁아졌습니다. 인류만 아는 인류의 감옥 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러다가 인류 중에도 저만 아는 자는 자기라는 조그만한 감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이러면 차차 차차, 저만 아는 자는 저도 그 요소가 많고 부분이 많고 이래서 참  자기라는 것도 넓습니다. 이래서 어떤 철학자는 '자기는 작은 우주라' 할 만차  자기에게는 복잡한 요소들이 있고, 기관들이 있고 조직들이 있고, 관련성들이  있고 이래 가지고 있는, 인간이 되어 있는 그 인간의 몸의 구조도 그것을 사람이  알려고 하면 요새는 뭐 한 손가락에 세포가 수억만인지 수천만인지 그것  모르겠습니다. 수가 많고 또 마음의 요소는 더우기 더 그러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만 차차 차차 좁아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피조물로 좁아져 가지고, 피조물로 좁아져 가지고는  자기에게로 좁아지고, 또 자기에게로 좁아지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자기의  수많은 요소들이 있는데 그 요소 중에 혹 몇 가지, 자기 이성으로 좁아지고,  이성으로 좁아지면 그것은 제법 넓습니다. 이성으로 좁아져 가지고 이성보다 더  좁은 욕심으로 좁아져 버립니다. 욕심은 이성이 보고 아는 것을 모릅니다.

욕심으로 좁아지고 난 다음에는 욕심 중에도 눈으로 보는 욕심, 귀로 듣는 욕심,  또 자기의 몸으로 접촉하는 욕심,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그 정서로, 정으로  좁아지고,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신경으로 좁아지고, 이리 되면 참 그것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아무런 영광될 것이 없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하나의 신경  중에도 말초신경에 붙들려 그 감옥에 들어 가지고 거게 붙들려서 일생을 된 줄도  모르고, 바쁜 줄도 모르고, 늙는 줄도 모르고 죽는 줄도 모르고 거게 붙들려서  일생을 살게도 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마귀는 자꾸 우리를 눈을 가리워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에덴동산에 그렇게 먹기 좋은 과실을 많이 만들어 놨고 또  생명과실도 만들어 놨는데 그건 것은 하나도 안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 보이고 나니까 모든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이 보이지 안하고 꼭 자기  망치는 선악과 그것만 하나 딱 보고 딴것은 하나도 안 보여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그러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대로 '아, 이분이' 자기 속에 알게  하는 게 있다 말은 자기 속에 양심이 있다 그말입니다. 또 자기 밖에 알게 한다  그말은 만물이 다 그것을 알게 합니다. 자기와 만물과의 관계를 보면 자기가  아무리 나무를 심어 놓고도 그 나무가 자기에게 하나도 소용이 없게 되면 그것은  자연히 끊어버리지 그 무슨 관상으로 관상수로 쓰든지 열매를 쓰든지 무슨  약품으로 쓰든지 아무데도 소용이 없으면 '땅만 허비할 게 뭐 있느냐?' 베어  내버리는 것입니다.

 짐승을 기르는 데 그 짐승을 공이 암만 들어도 자기에게 필요가 있고 유익이  있는 짐승이면 애를 써서 기릅니다. 자기 집안에 자기 자녀에 게는 여간 아프다  해도 그걸 그만 예사롭게 여길지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짐승이 있다고 하면 그  짐승은 좀 아프다 하면 마구 신경을 다 기울여 가지고 자기 가정에 오히려  가족보다 대우를 더 많이 받는다 그거요, 주인에게 필요한 그런 짐승이라고  하면.

 저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제가 뭐 키운 것도 아니고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내나 하나님이 내놓은 걸 잠깐 보관해 가지고 하나님의 것 가지고 잠깐 관리하고  기르는 수고를 하면서도 자기에게 필요 없으니까 다 멸해버리고 그것 다 나무도  캐내버리고 짐승도 필요없는 짐승 해독이 있는 짐승이면 당장 뭐 죽여버리고  없애버리고 이럴 줄 알면서,  모든 걸 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먹이고 입히고 하는데  당신에게 필요 없는 게 되면은 당신이 제거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 당신에게  대적으로서 당신의 원수로 당신의 대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으례히 그것은  박멸을 시키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제가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 하는 그것으로써  하나님을 능히 알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 양심이 가르쳐 주고 만물이 다 가르쳐 주는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안하고 또 '감사치도 아니하고' 그러면 그만 하나님 떠나버립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안하면 하나님 떠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은 떠나시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부하지 안할 때에 반드시 거게는 하나님 대신 자기에게 대우받지  못할 것, 대우받지 안할 것 대우받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반드시 자기에게  대우를 받는 대우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이렇게 제일로 섬겨 살아야 되는 것이 인간인데 하나님을  제일로 삼아 섬기지 안하면 자기? 는 아무것도 안 섬기고 살 수 있는 줄 알아도  그러면 즉시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면 다른 것을 섬기게 됩니다. 다른 것을 무슨  이종교 모양으로 무슨 물질, 요다음에 보면 짐승이나 모든 이 물질의 물형 이런  걸 가지고서 섬기는 그런 걸 섬기든지, 자기를 섬기든지, 어떤 인간을 섬기든지  섬기는 것인데, 섬기는데,  인간을 섬기든지 자기를 섬기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될 하나님 섬기는  그것을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대신으로 이렇게 섬기는 어떤 것을 섬기든지  그것은 자기가 섬기는 섬김을 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섬김을 받을 만한 공로도  없고, 또 암만 섬겨봤자 하나님이 저 회에게 해 주시는 그런 일을 해 줄 수 없는  자입니다. 순전히 이것은 속혀서 마귀에 속혀서 그런 것입니다.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감사치 안하면 차차 어두워집니다.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안하고 에덴동산에 있을 때에는 뭐 땅을 간다  흙을 판다 그런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무슨 일 했느냐?  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 높이고,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지체와  같이 하나님의 바로 그 다음 위치를 가지고 만물 위 하나님 직속 밑에 거게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할 때에 거게는 창조주의 권위와 그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시은자의 권위와 그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피조물이 아담 하와에게  속해 가지고 아담 하와의 말하는 대로 되고 아담 하와의 관리하는 대로 다  되는데 그때는 사람이 뭣이냐? 영물입니다. 생령이 됐다' 이랬습니다. 사람이  영물입니다. 영물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만 섬기고 자기에게 있는 영인  사람의 영이 주격이 되고 모든 이 심신이라는 육은 영의 소유가 돼서 영에게  소속한 게 되어서 하나님의 그 모든 은혜가 영에게 와 가지고 영의 것이 그  육에게 와서 육이 바로 육 밖에 있는 모든 만물들세게 전달돼 가지고 이렇게  하고 살았고 거게는 땅을 파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3장에 보면 사람이 변질됐을 때에 '그의 근본인 땅을 갈게 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저의 근본인 그말은 흙뭉텅이라 그말이오. 자기 조상은  흙이라 그말이오. '저의 근본인 자기가 그 땅에서 나와서 땅은 자기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기의 근본인 흙을 갈게 했다.' 그 다음부터는 자기의 근본인 흙을  먹지 안하면 그게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에 흙을 갈아 가지고 흙을 먹도록  그렇게 했다.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근본인 땅을 갈게 했다 하는 자기  근본이라는 것은 벌써 사람이, 선악과 먹은 타락 후는 그 영물이 아니고, 영물이  아니고 순전히 육체가 됐다 물질이 됐다. 물체가 됐다 그말입니다. 물체가 됐다.

'자기 근본인 우리 영은 땅에서 나온 것 아닙니다. 우리 영은 땅에서 나온 게  아닌데 우리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서 하나님께 특수 창조로 된 그것이지  이것은 이 피조물 우주 안에 있는 어떤 것을 이용해 가지고 된 겆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그 심신인 육덩이는 이 물질이 근본이요 물질로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반들었지마는 우리 영은 어떤 물질로 인해 된 것 아닙니다. 우리  영은 물질 그것보다도 탁월한 위에 고차원의 것으로서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물질을 지으시는 그보다도 더 고귀하게  고상하게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을 지을 때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의논을 해 가지고  지은, 우리 사람의 영을 지을 때에는 다른 창조물과 다른 특수점이 있는 그  특수점은 어떤 것이 특수점이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의논해 가지고 지은 것이  특수점이요,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지은 그것이  특수점이요, 또 모든 피조물을 다 주관하고 정복하고 관리하도록, 모든 피조물을  그것을 제어하고 정복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그런 모든 피조물을 탁월한 그 권위로  지은 것이 사람의 영인 것입니다. 그러나 육은 흙으로 지었습니다. 거게 보면  지은 것이 두 번 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 이렇게 말씀했고 또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하는 것은 육을 말씀한 게 아니고 그 영을 지을 때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른 만물 지을 때는 그렇게 의논해 짓지 안했습니다. 의논해서 짓지  안하고 성자 예수님이 그것을, 예수님의 신성이 지었습니다. 제 이 위가  지었는데 말씀이 지었는데 흙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을 지을 때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의논을 해 가지고서  우리가 어떻게 이 사람을 지을까 하는 건 사람의 주격을 말합니다. 어떻게  지을까 의논할 때에 의논해 가지고 짓는 것이 '우리 형상대로 지어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을 다 정복하며 다스리게 짓자 그러니까 특수 의논이 있었고 거게  짓기를 모든 피조물에 탁월한 자존자의 그 모형으로 지었고 모든 피조물을 다  정복한다 말은 그것을 누르고 있는다 그말이오. 피조물을 다 꺾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다 말이오. 복종을 시킬 수 있고 그것을 또 정복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로 지음을 받은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그후에 하나님과 끊어지니까, 선악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니 그 다음부터는 그 영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니까, 영은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써만 움직이고 그 영은 하나님만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사람의 영이 타락했으니까 마귀가 이용할 수 있어서  마귀의 도구로 하나님께 이용당하던 게 마귀에게 이용당한다 그렇게 망령된  소리를 합니다. 하나님의 모형은 마귀가 침노를 못 합니다. 다만 그것이  죽었습니다.

 왜? 하나님과 연결이 됨으로 하나님만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능력만 힘입고,  하나님의 모든 지혜만 힘입고, 하나님의 뜻만 나타내고, 하나님의 소원만  나타내고, 원형인 하나님의 것만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  사람의 영인데 하나님과 그 관계가 딱 끊어졌으니까 영은 단번에  죽어버렸습니다.

 단번에 영이 죽어서 영이 있기는 있지마는, 영이 없어진 게 아니고. 여게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그것이 작용적으로는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것과 갈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 적으로는 있습니다.

 이러니까 존재적으로는 있지마는 기능 역사가 전혀 없으니까 죽은 것과 같이 돼  있고 순전히 활동하는 것은 육이 활동하고 있다. 물질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물질이 활동하고 있으니, 물질이 활동하고 있으니 물질 그것은  물질을 먹어야 되고 물질에 나왔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께는 하나의 창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하나님의 모형이나 하나님의 형상이나 그런 관계는 없기  때문에 자기의 근본인 땅을 갈게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오늘도 그러합니다. 오늘도 사람이 영이 살아난 사가 영으로  살면, 영으로 살면 땅을 갈지 않습니다. 몇으로 살면 땅을 갈지 않는다 그말은  영으로 살면 순전히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을 피조물들에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을 안 갈면 안 되기 때문에 땅의 소망을 가지고서 갈고 땅의  혜택을 입으려고 가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을  피조물에게 능동적으로 그에게 호령치는 그것이 영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같이 한 자리에서 땅을 파고 농사를 짓고 하지마는 하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생명 역사를 나타내고 있고, 하나는 그것이 딴에 소망을 가지고 땅  아니면 죽는 자로 땅에 소망을 가진 자로서 땅에 속해서 땅을 파먹고 사는 일을  하고 있고 하나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으로 사는 그 삶을 가지고 땅을  다스리고 땅에서 그 일을 해서 땅을 새롭게 만물을 살게 하는 그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 성도의 생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 외모로 보기는 꼭 같은 생활하는 같지마는 하나는 땅에  속해 살고 하나는 땅을 다스려 살고, 하나는 땅을 죽여 살고 하나는 땅을 살려  살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꼭 같은 자리 있지마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해서 하늘나라로 옮겨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해서 땅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3장에 '그의 근본인 땅을 갈게 했다 하는 그 말씀은 오늘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근본인 땅을 가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으로 사는 영의 생활을 이 땅에서 합니다.

 다 같이 조그만한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팔고 있어도 사탕 팔고 있는 그 사람이  하나는 땅 갈고 하나는 물질 바라고 사탕 파는 사람 있고 하나는 하나님 바라고  사탕 파는 사람 있고, 하나는 사탕이라는 크 사탕 시키는 대로, 사탕에서 자기  먹고 살 양식이 나오기 때문에. 사탕에 속해 가지고서 사탕의 법칙대로 사탕  시키는 대로 활동하고 있지마는 한 사람은 사탕을 팔고 있지마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믿음 생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 하나님의 뜻을 거게서 이루고 있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써 하고 있고 하나님을 바라는 하나님의 것을 얻으려고서 하나님을  소망하고 있고 하나님의 것을 받고 있고, 그러니까 다 같은 사탕 장사지마는  하나는 죽어가고 있고 하나는 살아가고 있고 하나는 썩은 것을 춰하고 하나는  영원히 썩지 안한 것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사망 속에서 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 기독자요, 죄악  속에서 의를 이루고 있는 것이 기독자요, 변하는 세상에서 영원 불변의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이 기독자인데 그러니까 세상이 그것을 뭣인지 모른다 그거요.

우리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고 세상은 우리기 무슨 생활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는 것을 요한일서 3장에 말씀했습니다.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그  생각이 허망해집니다. 허망해진다 말은 그 생각이 이제 참을 잡지를 못하고,  참을 잡지 못하니까 그 다음에는 사람이 뭘 잡을지 모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잡아야 되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고, 하나님께 붙들려야  되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되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보니까 이제는  붙은 데가 없으니까 어데가 붙을지 그만, '허망한 것, 허망해졌다 하는 허라 그  말은, 허라고 말하는 것은 빌 허(虛)자를 말함인데 이제는-아무것도 잡을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으니까 그 다음에는 뭐이냐?  망령돼진다. 망령돼지니까 그저, 하나님과 끊겨지고 나니까 결국은 자기 마음,  만물보다 거짓된 마음밖에는 없으니까 마음대로 잡습니다. 마음대로 이것을, 이  사람은 이것 붙들고 이것은 이것 붙들고, '이게 내게 제일 필요하다. 이것이라야  살린다. 이게 나를 살렸다. 이것이 나를 낳았다. 이것이 내가 숭배할 존재다.'  이래 가지고 그만 허망해 집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조직 없는 생활, 계통 없는 생활, 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절대적인 불변적인 질서와 조직에 속해 가지고 그 궤도에서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안해,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은혜를 생각해서 감사하지 안하고 자꾸 그것만, 하나님 은혜를 생각해서 거기  감사함으로 '요것도 누가 하느냐? 요게 하나님께로 왔구나.'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하나썩 생각해서 감사하기 시작하면 전부가 하나님께 대해 감사할  것뿐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살아가는 길을 하나님이  생명길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니까 모든 게 형통해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없는 고생하고 있는 것은 전부 제가 저질러서 고생하지 하나님이 그  고생을 주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고생하는 것이 일을 안 함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일을 많이 함으로 망합니다. 안 할 일을 많이 해서 망하는 것이지 할 일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병이어로 오천도 먹고 남았습니다. 올해 내가 뭐 그게  사실인지는 몰라도 금년에는 풍년이 들어서 우리나라에 생산되는 양곡만 해도  우리가 먹고 남을 수 있다. 몇해 전에도 그 말 한 걸 제가 기억합니다. 박  대통령이 말하기를 '이북에 식량이 모자라면 좀 식량을 보내 줄 수 있다.'  그때는 외국의 식량이 안 들어오고 말이지, 그때 우리 식량 가지고 족하고  오히려 남아 있었다 말이오.

 그런데 그것 내가 신문을 보면서 '봐라, 이거 산아제한 하는 이것도 공연히,  저거가 죄는 짓고 죄의 값은 안 받으려고, 죄는 짓고 죄의 값은 안 받을라 하는  것이 산아제한이다. 죄는 짓고 죄의 값을 받지 안할라 하는 것이 산아제한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뭐 이 인구가 자꾸 배로 증가해 나가도 하나님이 주시면  얼마든지, 논 한 마지기에 벼 한 섬 나던 것 두 섬 나면 될 것이고, 두 섬 나던  것 넉 섬 나면 될 것이고, 넉 섬이 여덟 섬 나면 될 것이고, 여덟 섬 나던 젓  열여섯 섬 나면 될 것이고 뭐 하나님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데 그게 다  인간들이 나쁜 소리고 자기의 말초신경에 더러운 것을 연습하고 숙달시키고,  자기를 그 감옥에서 좀 탈피하라 그말이오 그 감옥에서 탈피해서, 네가 목적하는  그런 걸 목적하고 살 게 아니라. 네 소망은 그게 아니라. 네 취미는 그게 네  취미가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취미가 되고, 또 모든 만물을 봉사하는  것으로 취미가 되고,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 가지는 이 존귀하고  고귀한, 모든 만물이 너 아니면 못 산다 하는 이렇게 주님을 모든 만물들이 다  당신 아니면 안 된다고 주라 시인하는 그분이 뭐 성욕 생활 하나도 안 했습니다.

그분이 성을 발달시키지 하나도 안 했어. 우리 가치 있는 일은 거게 있는데 이  갇혀 가지고 헛된 일을 자꾸 하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안하면 어만 것,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또 미련해집니다. 미련해지는 것은 아주  둔해져 버린다 말이오. 미련한 마음이 둔해져 버려. 아주 둔해져 버리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제 깜깜하게 어두워져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아무것도 그 마음이 무엇을 정평 정가를 할 줄을 몰라. 그 마음이  정평도 할 줄 모르지 정가도 할 줄 모르지, 이러니까 일생 동안 죽도록 일해  봤자 뭘 하고 있느냐? 어떤 자는 죽도록 일생 동안 날뛰는 것이,  제가 한번 열차에 보니까 아주 떨어진 옷을 거지가 하나 올라오는데 뭐 얼굴도  얄궂게 찌그러졌고 그것 좀, 자꾸 기뻐하면 이 얼굴이 기뻐지고 화색이 있을  건데 그거 아니야. 찌그러지고 얄궂게 병신이 되고 눈도 어떻게 이래 되고 이래  되고 이뻤는데 옷도 떨어졌는데 바이올린을 가지고 타요.

 바이올린을 가지고 이래 타는데, 인제 구걸하러 올라왔어. 올라와 가지고 이래  타다 보니까 그만 그래 놓으니 신명이 나서 재서 하다보니까 이러다 보니까  손넘들 다 정차해 가지고 다 내리는데 마지막 종착역이니까 다 내리는데 저는  그래 가지고 미쳤어. 뭐 이래 가지고 이래 쌓더니마는 나중에 떡 끝나고  구걸할라 하다 보니까 사람 다 내리고 없거든. 그러니까 밥도 못 먹어서 미쳤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하나의 자기의 청각에 미쳤어. 청각에 미쳤고 자기 귀에  들어오는, 귀에 들리는 그 들리는 소리에, 미쳤다 말은 정상이 다 아니고  변질됐다 말이오. 미쳤고 또 자기 손으로 이래 지금 해 가지고 손으로 이래  움직이는, 손에 움직이는 거기에는 그것은 연습을 해서 움직이는데 거기 미친 건  아니고 이래 가지고서 그 소리가 나는 소리에 미쳐서 정신없어 가지고 이러다가  그만, 금방 구걸하러 올라온 자기 차가 정지 전에 구걸해야 된다는 그것도 금방  잊어버렸으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대한 정상적인 일을 무엇으로 하겠느냐  말이요. 완전히 미친 자가 아닌가? 그와 마찬가지로 그자가, 그래 내가 그걸  보고서 '저 사람은 저게 붙들리고 저기 미쳤고 저 감옥에 붙들려 가지고 저렇게  일생을 망친다.'  그것 모양으로 어떤 자는, 그때 여기 중국 요리집에 있는 주인하고 재일  교포하고 이렇게 둘이, 내나 그것이 내나 성생활이오. 여자 하나 두고서 둘이  이러다가 그래 가지고 그만 망치로 뚜드려 죽임을 받아 가지고 그만 우물에 갖다  던져 죽였다 말이오. 묻어 버렸어. 감췄다 말이오. 또 그자도 또 뒤에 죽인 재일  교포도 또 사형을 받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를 그렇게 죽여도 죽이는 줄도 모르고 거게 빠져 가지고,  그러니까 자기의 이런 요소 저런 요소, 조그만한 요소 거게 갇혀 가지고 일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거게서 탈피해서 탈피해 가지고 자기라는 감옥을  탈피해 가지고서 인류라는 광장으로 나오고, 인류라는 광장에서 탈피해 가지고  창조주의 거게까지 떡 가면 그분 그 이상이 없기 때문에 그분과 연결 딱 돼  버리고 그분에서 살면 더 이상 넓을 데도 없고 후회할 것도 없고 완전이고  영원이라 그말이오. 이런데 마귀란 놈이 자꾸 그렇게 좁게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다른 것 다 보이지 안하고 선악과만 보게 해 가지고 좁게 하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이니까 '나는 지금 어떤 감옥에 들어 있나? 내가 지금 무엇을  지금 바라고 살고, 무슨 취미로 살고 있고, 무슨 목적으로 살고 있고, 무엇을  숙달하고 있고, 무엇을 지금 하고 있나? 그러면 그게 가치가 어느 정도 있느냐?'  그걸 좀 보고 살라 그말이오. 실은 사람이 똑똑히 알면 성경에 말하기를 결혼할  필요가 없다 이 랬어. 왜? 음행할 연고가 없으면, 음행 안 할 자는, 음행 죄를  범하지 안할 자는 결혼할 필요 없다 이랬어.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네가 재혼하는 것은 음행죄를 짓는 것이다. 재혼을 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지마는 네가 재혼하는 것은 음행죄를 짓는 것인데 그래도 재혼 안 하는  것보다 재혼을 하는 것이 나은 수 있다. 왜? 네가 혼자 산다 하면서 공연히  사회를 어지럽히고 인류를 유혹시켜서 네가 은밀히 음행죄를 이 사람 저 사람  짓고 돌아다니는 그것보다는 뚜렷이 하나를 정해 가지고 한 놈에게만 짓고서  재혼하는 게 낫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허망하여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절대자의  법칙이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요 시간 하나님이 요래 버리면 그만 코르르  팩 쪽 뻐드러져 송장돼 버리고 또 요래 버리면 그만 병신이 돼 가지고 그만 뭐  문둥이가 되련지 암병자가 되련지 뭐이 되련지 그만 그렇게 돼 버리는 아무  실력이라 하는 권리가 눈꼽재기 만치도 없는 그것이, 또 하나님 대주재의 법칙과  제도와 그분의 절대성인 움직여 나가는 대운영, 대운영이 불변적으로 절대적으로  이래 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 제가 미래적으로 이래야 복이  있겠다 저래야 복이 있겠다.이 지혜라 말은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미래를 '이떻다. 이러니까 나는 이래 살아야 되겠다. 저러니까  저래 살아야 되겠다.' 네가 초지장 한 장의 너머 미래도 모르는 네가, 모르는  네가 뭐 네가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느냐? 네가 미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네가 논평하고 계획 세우고 이렇게 하고 있느냐? 어리석은 자야.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아주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 돌리고,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 높이고,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두려워하고, 그의 법칙에 맞주고 그의 뜻에 따라서 움직여 그의 은혜로만  살아야 될 것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이제 하나님 대신  사람을 세웁니다. 어떤 자는 사람에게 속해 삽니다. 어떤 자는 보니 저거  남편에게 속해 살아. 남편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남편에게 일생 동안  남편에게만 꼭 피동돼 가지고 삽니다. 어떤 자는 아내에게만 똑 피동돼 가지고  삽니다. 어떤 자는 어떤 상관에게만 피동돼 가지고 삽니다. 상관이 저를 영생 줄  수 있소? 심판을 면케 할 수 있소? 남편이 그럴 수 있소? 이러니까 그것도  욕심이라 그말이오.

 내가 언제 하나 말 들었는데, 그거 지금 나한테 하도 말을 들어서 말만 그렇게  말쟁이만 돼 가지고 말을 하는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있다가 '너는  빨리 결혼해야 된다. 빨리 결혼을 해라. 결혼을 해야 네가 안정이 되고-하나로  정해 버리니까-안정이 되고 이렇지 그리 안 하면 여기 결혼할까 저게 결혼할까,  어째 볼까 장 이렇게 흔들리겠으니까 결혼해라.' 하니까 '나는 아직까지는 결혼  안 할랍니다. 결혼을 하면 나만 못한 사람에게 결혼할 겁니다.' 그 말 한 마디  아주 듣기 어려운 소리라.

 이것 뭐 처녀들에게 중매를 암만 할라 해 봐도 저는 한 치 되는 것이 한 자도  넘은 걸 바랍니다. 넘은 걸 바라. 그거 왜 그래 바라느냐? 속담에 말이 있기를  '여자는 버드나무 팔자라' 버드나무 냇물에 떠내려가는 것이 잘 걸리면은 좋은  데 걸리면 굉장히 무성하게 자라고 잘못 걸리면 일생 동안 명 해 동안이라도  바위 속에 걸려 놓으면 거게 바위 속에서 그래 생명만 유지했지 자라지는 하나도  못합니다. 그것과 갈이 버드나무 팔자라, 이러니까 '욕심만 내고 크게만 하면  된다' 하는 그런 여성들이 허영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데 '나만 못 데  결혼한다' 그말은 좋은 데 결혼한 사람 보니까 그게 우상이 돼 가지고도 그렇고  또 왕이 돼 가지고, 왕이 된다 말은 막 강제로 누른다 말이오. '복종해라. 오늘  가거라. 오늘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거게 꽉 그 명령에 복종해 가지고 꼼짝  못하는 왕을 장만하고, 상전을 장만하고 또 자기의 감옥을 장만하고, 또 어떤  자는 거게 미혹받아 가지고 거게 미혹받아 가지고 거게 그만 매력에 미혹받아  가지고 사니,  어쨌든지 저거 둘이라는 인간 감옥 밖에 있는 건 깜깜 모르고 거게 대해서  하나도 관계를 못 하고 있으니 '그저 결혼한다면 양심 자유를 할 수 있고, 신앙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 자유를 할 수 있는 자유할 수 있는 거게를  가야지 꼼짝 못하는 그런 데는 싫다.' 그 아주 놀라운 귀한 소리를 들었어.

조금, 정말로 그말 하는 것 같으면 어리석지 안하고 사람을 하나님으로 바꾼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좀 아는 사람의 말인지 모르겠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런 것 가지고, 그런 걸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면 뭐냐 하면 버러지 생활,  버러지 생활 짐승 생활, 찍해야 사람 생활, 알겠소 사람 생활이라 말은 육체  생활이라 말이오. 사람은 하나님 생활 해이 돼요. 사람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피조물로서 하나님 생활 하는 것이 사람 생활이라.

 이런데 찍해야 그게 그래 봤자 사람이라 하는 것을 다른 데 해석해 놓은 걸  보면 '사람이 육체가 됐다' 영이 주장이 되면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모형은  하나님 모형은 버려버렸고 이제 고기덩어 심신과, 심신 둘로만 주장돼 있는  고기덩어리, 육체,  고등동물이오. 짐승보다는 고등동물입니다. 사자보다도 고등동물이오.

배암보다도 고등동물이오. 아주 앙코라라 하는 사람만치 커다란 그 원숭이보다도  고등동물이오. 이렇지마는 그것 내나 고등동물이라, 사람도.

 하나님을 사람과 바꿨고 또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과 바꿨고 짐승과 바꿨고  버러지와 바꿨어. 버러지같이 사는 인간도 있고, 짐승갈이 사는 인간도 있고,  고등동물로 사는 인간도 있고 이렇게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영화릅게 하지 안하면 그리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만물은 나쁜 것 아니오. 만물은 나쁜 것 아니라. 만물은 죄가  아나오. 만물은 죄가 아닌데 만물을 이용하는 그 속에 만물의 왕이 들어앉았으니  마귀 그놈이 만물 안에 들어앉았고 인간도 처음에는 죄인이 아니었는데 인간  속에 마귀가 들어앉았고 마귀가 주관하는 인간들이 이 만물을 지금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만물이 더러운 자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에 만물이 더러워졌고,  만물이 악한 자에게 붙들렸기 때문에 악한 것이 되어졌고, 만물이 악의 결과를  맺기 때문에 그게 더러워진 것이지 그 자체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한데 사람이 바로 깨닫고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자꾸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어떤 사람이, 좀 시험이라도 해 봐. 그것도 말이요, 뭐 그런 경험  없으면 안 믿는 사람입니다. 저도 경험 많고 예수 믿게 됐어. 믿으면서 믿는다고  하지마는,  그전에는 그랬어. 내가 그때는 예수 믿고 나서 술도가는 다 정리해 버리고  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지을 때는 내가 일등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면내에서  제일 일등 농사를, 일등 농부라. 이랬는데 딱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딱 하고 난  다음에는, 유급의 전도사는 아니지마는 그때는 내 속으로 '하나님께 바쳐서  일하겠다' 이러고 난 다음에는, 내가 뭣 이든지 봅니다. 벌을 좀 하니까 벌을  어떻게 잘 됐는지, 벌에 대해서 관심 없이 누가 한 통 줘서 갖다 놨더니마는 이  벌이 어떻게 늘어 가지고 뭐 꿀이 어떻게 나는지?  그래 생각에 '이것 벌만 몇 통 가지면' 나는 그때 소원이 '이 세상 가족만 어서  그저 생계만 유지하구로 그만 떼 맡길 수 있으면 그만 섭자가 깃대 거머쥐고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호별방문 전도나 하고 이것으로서 여생을 바치겠다'  이랬는데, 벌이 그게 되겠다 그거요.

 그래 벌을 그래 가지고 되겠다 해서 마음을 딱 먹고 이러니까 우리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말하기를 '아이고 또 집사님이 벌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정성 들이는 것  보니까 벌 그것 다 망하겠습니다.' 아니, 그해에 꿀 하나도 못 얻었어. 망했다  그말이오. '그 이상하다.' 또 하도, 그만 하나님께 바쳐 살라 하니까 심심하다  그말이요, 옛날에 하던 버릇이 있어서. 농사지으며 활동하던 버릇이 있으니까  심심해 안 되니까 공연히 성경보고 이래 앉았다가 떡 나와 가지고 채소밭에  갑니다. '채소밭에 가서 보며 들여다보면 좀 피로가 풀리고 좋을 것이다.

채소밭에 가 이래 좀 봅니다. 보면 또 나와서 말하기를 '아이고, 채소밭을 슬쩍  한번 소풍하고' 구경하는 게 아니고 거게 벌써 그 신경을 기울이는 것 보니까 그  채소 또 망하겠습니다.' 이삼 일 지나니까 벌 거지가 팍 달라들어 싹 다  헐어진다 그말이오. 뭐이든지 다 그래.

 또 소를 거석하고 이러니까 '아이구 거기 또 자꾸 거게 신경 너무 쓰니까 또 소  망하겠습니다.' 소가 덜컥덜컥 여게서 큰 소가, 요새로 말하면 뭐 백 몇싶만  원이니 뭐 삼백 몇십만 원이니 하는 그런 소가 털컥 죽고 여게서도 털컥 죽고,  죽고 난 다음에는 가 보지도 안합니다. 회개를 해서. '그까짓 죽으면 죽고 안  됐다.'  이랬는데 어떤 말 들으면, 조그만한 거라도 말이지요, '네가 예배보러 일찍  오라. 일쩍 와서 앞에 앉아야 되지 그래 되느냐? 그저 전날 다 일을 해 놓고서  그래야 되지 주일날 무슨 일이 바빠서 그러느냐? 전는 다 해 놓고 와야지.'  이러니까 '그러면 일은 주일날 하면 안 되는가? 그러면 주일날 내가 일찍 일을  해 놓고 가 볼란다'  그래 장을 그날 담으면서 '내가 주일날 장을 이래 주일날 담고 일찍 가 앉으면  될 것 아닌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주일날 일하는 것을 금지할 터이니까  한번 보자.' 그래 장을 담아놓고서 '장이 무슨 고장이 나는가 보자.' 하루가  지나고 난 다음에 가 보니까 장맛이 안 들었더래요. 또 사흘인가 지나고 난  다음에 가보려고 하니까 어디서 왔는지 달팽이기 와 가지고서 뭐 장독에  소복하게 들어앉았는데 나중에 거게, 한 되니 너머 되는 달팽이가 들어 알았어.

나중에 보니까 저 장이 찌꺼기 저 밑에 메주 안에도 달팽이가 들어 가지고  있더래. 그래서 '아, 참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이제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자기가 참으로 알아보려고 하면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가 꽉 찼습니다.

 내가 위산 가서 목회할 때, 처음에 그때 목회로 이 년 만에 거기 갔었는데,  첫해는 딴데 하고 또 이태만에 거기 갔었는데 그 집에 개미가 어떻게 많은지  밥솥에 밥할라 하면 개미가 꽉 찼어. 그래 내가 있다가 그걸 '그 개미를 하나님  앞에 없도록, 네가 자꾸 죽야봐야 안 되니까 개미가 없어지도록 기도를 해  봐라.' 기도를 하니까 그만 개미가 한 마리도 없어버려,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  마리도 없어. 그래라도 표적이 그게 표적이라. 안 믿으니까 믿구로 해 주는 거라  말이오. 우리 집에 큰딸 아기가 한번 보니까 여게 이만한 혹이 솟았어. 여게  이만한 혹이 하나 솟아서, 여게, 여게. 처녀가 이만한 혹이 솟았으니까  병신이니까. 그 하필 보기 좋은 데 또 여게 똑 참 코때기 같은데 여게 딱 혹이  났는데 이만치 혹이 솟았어. '야 너 언제 이러노?' '얼마 전에 우연히 이래  솟았는데,' 그래 그러니까 부끄러워 장 이래 가지고 있어 그래 나중에 부끄러워  이래 가지고 있는 데 보니까 거기 혹이 솟았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있다가 '네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네가 하나님을 아직까지  똑똑히 믿지 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 하나님께서 너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려 주고 네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걸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걸 치료해 주실지 모르니까 네가 기도해 봐라. 요래 손을 들어얹고 기도를  해라.' 이랬는데 며칠 지나고 난 다음에 '야 보자-이름이- 순희야 너 오너라  보자. 너 팔뚝 보자.' '아, 이게 언제 없어졌노? 아, 이게 없어졌다. 언제  없어졌노?' 본인이 없어진 줄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없어지기를 기다리지도  안하는 데도 하나님이 들어서 없애 줘. '언제 그래 없어졌노? '언제 없어졌는지  모릅니다. 언제 없어졌노?' 저도 모르는 거라.

 이렇게 하나님을 꼭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알려 주시는 게 전부인데  사람들의 마음이 허망해져 가지고 자꾸 어만 것을 찾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다' 참으로 제가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하고서  이러면 몇 번이든지 증거를 해 주고 나중에 그걸 또 증거 보고 나면 믿지, 증거  보고 난 다음에 믿을 일이지 또 안 믿고, '하나님 요번에만 보여 보여주십시오.'  요 짓 하다가 망한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다 망했어. '그때는 그랬지마는 요번에는 될란가? 하나님이 해 주실란가?  요번에만 해 주면 믿지요.' '요번에만 해 주면 믿지?' '예, 믿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딱. 해 주고 나면 그 다음에 또 안 믿고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 성전 밖마당으로 처리해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멸망받은 그 사람들이 불택자라고 하지 못하요. 택자라도 광야에서 멸망받았다  말이오. 이 세상에서 다 망하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전 밭마당은 이 세상살이에서 망하고 이 세상에서 무궁한  하늘나라를 준비해서 썩는 세상에서, 죽는 세상에서, 떠나는 세상에서 세상  알맹이를 솔빡 거둬 가지고 가는 사람이 기독자라 그 말이오. 어리석지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나' 제가 한 시간 다음의 일도 모르는 것이 무슨 제가  미래를 제가 알겠다고 미래를 제 생각대로 경영을 한다 말이요? 하나님이 '너거  인생 미래는 이렇다' 하면 그 말씀에 따라서 준해서 살 일이지 제가 하나님이  미래를 말씀하신 그 외에 딴 구멍을 뚫어 가지고서 '내 미래는 이러니까 내가  이래 살아야 지혜 있겠다 저래 살아야 지혜 있겠다' 암만 해 봤자 썩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습니다.

 모두 대가리가 커다란 부자 장로들, 모두 지금 똑똑한 장로들, 모두 좀 학식  맒은 박사들, 학자들, 박사 그까짓 거 다 똥박사요, 똥박사. 왜? 그건 자기를  죽이는 거라. 박사가 좋지마는 박사를 때려잡아 가지고 박사를 제가 이용을 해야  되지, 가죽을 벗기려 해도 이용할 수 있어야 되지 그 박사에게 붙들려서 하면  호랑이한테, 박사라는 호랑이한테 잡아먹힌다 그말이오. 박사라는 호랑이한테  벌써 물렸어.

 바울이 그것 말했어. 사자의 잇빨 속에 내가 물렸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자의  잇빨에서 건졌다 그는 이 세상을 사자의 잇빨로 자기를 물고 자기를 삼킬라 하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세상에게 하나도 지지 안하고 '내가 모든  싸움을 싸워서 이겼으니 면류관이 있다' 이렇게 말했어. 깨어 살아야 됩니다.

어리석게, 어리석으면 안 돼요.

 새벽에도 그런 사람은 하나도 안 나와. 자기네들은 '우리같은 귀골이 새벽에  가? 우리같은 귀골이 새벽기도 '가?' 네가 귀골이면 얼마나 귀골이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보자. 다 네가 사랑하는 귀때기도 끊겼고, 눈도 빼였고, 발도  끊겼고 다 그렇고, 기능적으로는 끊겼다 그말이오. 기능적으로는 다 끊겨버렸고  이제 형태만 부활하고 있지오 이러기 때문에 '손이 범죄케 하거든 손을  끊어버리라' 그말은 손을 범죄케 하거들랑 범죄케 하는 기능을 완전히  죽여버리라. 또 이거 끊어버리고라도 범죄 안 하는 그게 낫다 그말이오.

어리석지 맙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 예배당에서 결혼식 상담이 있는데 인제 이 결혼식 상담  안 하겠어요. 다음 주일에는 광고를 해서, 그래 할 수 없이 그래 해야 되겠어.

뭐 그것 연애 결혼이 아니니까. 자기 마음에 '나는 어떤 여자가 내게  필요하니까' 필요하다고 신고함에 써넣어라. '나는 어떤 총각이 필요하니까'  신고함에 써넣어라. 그거는 자기네들이 연애하는 게 아니고 우리더러 중매해  달라 하는 것이니까, 자기 마음에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걸 취급해 가지고 해야 되지 이 구역장들 취급해 가지고 안 되겠어요.

구역장들은 보면 전부 허영이 있어 가지고서 저거 구역에 있는 딸은 똥덩이라도  금덩이같이 보고 저거 구역에 있는 총각은 똥덩이라도 금덩이 같이 보고, 남의  구역에 있는 처녀는 금덩이라도 똥덩이같이 보고 남의 구역에 있는 총각은  금덩이라도 똥덩이갈이 보니까 전부 제 구역의 것은 좋은 걸로 이래 보고 이라기  때문에 일이 안 된다 그말이오.

 '왜 거기 말 안 하노?' '거게는 안 됩니다.' 그게 다 관념이 틀려서 안 되는  것이니까 아예 앞으로 결혼 이거 결혼 상담 암만 해야 소용없어. 자꾸 시간만  허비돼 버리지. 이러니까 다음 주일에는 그걸 광고를 할겁니다. 광고해 가지고  '누구든지 자기 원하는 대로의 사람을 신고함에 써내라.' 그러면 그건 다른 사람  보이지는 안해. 내가 그것 보고서 마음에 그럴듯하면 이래 말해 가지고, 이래야  될 터인데 암만 결혼 상담에 구역장들 모여봤자 내놓지 안해. 총각도 안 내놓고  처녀도 안 내놓소. 자, 누구에게 이래 기록만 써내놨지 누구하고 할 사람  내놓으라 하면 할 사람 안 내놔. 미혼자 신고는 해 놨지마는 '이 처녀에게  해당된 총각 내놔라' 하나도 안 내놔. '이 총각에게 해당된 처녀' 하나도 안  내놔. 이러니까 그것이 어디서 사고가 났느냐? 구역장들이 자기의 사욕대로  관념이 틀려서 안 됐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제는 광고해 가지고서 자기네들이 원하는 대로 그라면 그대로 해요.

원하는 대로 해 가지고 잘된 것 많애 ○○○선생하고 이 선생하고 결혼할 때에  ○선생은 요만하요. ○선생은 뻔들뻔들 하게 미꿈합니다. 이런데 그래 ○선생이  '저는 ○○○선생님하고 결혼하면 싶습니다.' 연애 결혼 아닙니다. 근방에도  가지 안한 것이오.

 그래 속에는, 나는 ○선생을 그때 조그만하고 그만 그것만 봤지 알차기는  알차요, 이래 보니까. 일을 시켜 보니까. 그런데 ' ○선생이 듣겠나? 그렇지만  말하니까 한번 말이나 해 봐라. 내가 구역장에게 한번 말이나 해볼께.' 말하니까  또 ○선생은 '그거는 목사님이 시키면 하겠습니다.' '나 시키는 대로 할 게  아니고 네 마음에 있거든 해라.' 얼마 기도해 보겠다고. 기도해 보더니만 딱  됐어.

 그랬는데 아주 좋은 부부요. 하나는 주일학교 총무요 하나는 주의 일을 보는데,  중간반 반사를 말하니까 '총무는 다른 사람 시키고-자기 아내가  ○선생인데-○선생을 중간반 반사시키면 어떻겠습니까?' '뭐 하려고 그러노?'  '그러면 좀 더 복 있는 일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일편단심 하늘나라의  복이라. 중간반 반사하면 중간반 반사 중에는 내가 지금 아는 대로는 일등  됩니다. 제일 일등 돼.

 이러니까 광고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중매하는 것이 그뭐 연애결혼 아니니까,  그러니까 누가 그런지 알아야지? 나만 알고 이래 가지고서, 이새 그때 좀 이래  맞혀봐야 되지 이거 자꾸 장가보내고 시집 보내야 되겠는데 총각들과 처녀들은  구역장만 바라고 있는데 구역장은 그 천리 만리 생각도 없고 멀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이거 어찌 되겠어? 구역장들 이제 복도 있지마는 그 일로써 하나님  앞에 채찍 맞을 것 많을 것입니다. 아주 사욕이 강해요.

 결심해요. 감옥에서 나와요. 탈옥을 해요. 감옥에서 벗어 나와요. 어리석은 데  그만 짐승 생활 버러지 생활, 육체 생활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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