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1983. 11. 19. 토새

 

본문 : 고전 2:3-5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예배 끝나고 십 분 기도 후에 저 삼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아직 까지도 기도록에 등록된 사람이 삼천칠백육십구 명밖에는 등록이 안 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은 사람들에게 권해서 다 등록하고 기도회에 참여해서  오늘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평강을 누릴 것을 기어코 그 모든 환난과 고통을  자취해 가지고 영육이 실패하는 그런 길을 취하는 그런 강퍅을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됩니다.

 사도행전 1장에도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권능을 얻으면 예수님의 복음도 증거할 수 있고 예수님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또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본 말씀에도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전할 때에  지혜로운 말로 전하려고 애를 쓰지를 아니하고 그거는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는  대로 전하고, 다만 자기의 전하는 것이 성령님이 자기와 함께 해서 성령님이  친히 전해서 그 전하는 모든 도가 받는 사람이 지식으로만 받지 안하고 능력으로  받는 자 되도록 하려고 바울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능력을 가진 능력 있는 설교를 해야 되겠고 능력 있는 지도를  해야 되겠는데 그 능력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만 능력이 온다 그렇게만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만 능력이 온다"  믿음으로만 능력이 온다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지난밤의 말씀과 같이 첫째는  인정 믿음입니다. 이번에도 회개 스무 가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이  회개를 하자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만 사랑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 되도록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만 바라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가 되도록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만 순종하지  아니하고 구별 없이 그저 주위 환경에 따라서 피동됐던 그런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자 되도록 회개를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제일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사탄의 깊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탄의 깊은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최고의 인간 지식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은 인간의 최고의 지식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무식해도 좋다 그말입니다. 말은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이 이미 네가 믿고 행하는 그대로 행하면 된다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요 기로를 잘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설교를 할 때나 또  내가 개적으로 전도를 할 때나, 내가 하나님의 도를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지식이요 하나는 능력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지식 받기를 원하고 능력 받기를 원하지 아니한 사람이 되든지  지식은, 물론 지식이 있어야 되지마는 지식과 함께 능력 받기를 원하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자기가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 지식을 읽어서 아는 것이 그것이  지식을 받는 것입니다. 지식이 필요하기는 필요하지마는 자기가 지식에 중점을  두고 주력을 하는지 또 그렇지 않으면 능력, 하나님이 자기와 같이 하는 능력에  대한 중점을 두고 주력을 하는지 이것은 우리가 항상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아주  미끄러지기 쉬운 유혹들입니다.

 그러기에 "육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지식 많은 그런 사람 들이 많지를  못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식 많은 사람들이 많지를 못하다. 그러면 혹은  대학자나 이런 사람들만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대학자가  아니라도 제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능력으로 간 사람은 가장 평신도에  많습니다. 가장 무식한 사람들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으로 받으려고 애를 쓰지 안하고 지식으로만 받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그 지식으로 자기는 망하고 있는 것을 현저히 봅니다. 있는  것은, 자기는 그 말만 전하면 다 된다고 생각을 가집니다.

 이래서 '노트에 기록한 꼭 그대로 옮기는데 뭐 은혜가 더 있고 덜 있고, 또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 한다는 크 말이 이해가 안 된다'고서 그렇게 사람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만 들으면 뭐 성경을 녹음해 놓고 녹음을 들으면 그것으로 되지요.

그러나 녹음을 해 놓고 들어도 거기서 같이 능력을 자기가 영접하기를 힘을 써야  되지 능력 영접하기를 힘을 쓰지 않으면 앵무새 모양으로, 녹음기 모양으로 말만  전하면 다 됐다 내가 주력을 하기를 설교할 때에 요 지혜로운 설교를, 또 백  목사의 그 설교를 은혜 있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백 목사 설교를 하나도 가감  없이 요대로만 전하려고 애를 쓰기를 하는 그것도 좋지마는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아주 껍데기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지를 못합니다.

 이러기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 얻고"부터 말했어. "권능얻고 그라고  난 다음에 증인된다" 말씀을 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씀을 했고, 바울은 전할 때에 "내가 전하는 것이 지혜로운 말로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말로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은 지혜로운  말을 위주로 삼지 않는다 그 말이오. 아무나따나 지혜 없는 그런 말 말한다는 게  아니고. 말에 전할 때에 전하는 말에 지혜로운 것을 위주로 하지 아니하고  성신의 감동이 오는 것을 내가 위주로 한다. 왜? 이러는 것은 내가 전하는 것이  너희들에게 지혜로운 말에 있지 안하고 권능으로 너희들에게 임하기를 원해서  그리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 이 말에다 주력하고 말만 이제 됐으니까, 말만 됐으니, 설교 준비에  이 말만 됐으니까 이 말대로 전하면 되겠다. 이제는 준비 다 했다. 말만 됐으니  준비 다 했다, 설교 준비에 말만 됐으니 준비 다 했다. 또 말을 자기가 해  보면서 요렇게 내가 외워서 말할 수 있으니 됐다.

 우리는 거기에 있으면 외식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쉽고 또 그 대로 안  전해 줘도 됩니다. 그대로 안 전해 줘도, 꼭 그것이 성경 아닙니다. 안 전해  줘도 능력이 와 가지고서 전하면 자기가 비로소 그 지혜로운 말씀을 알게 될  것이고, 또 선배가 잘못 말했으면 수정할 것도 있을 것이고,  그저 내가 전하는 것은 첫째는 성경을 가지고 전하고, 또 그다음에 내가 성경을  알지 못하는 그런 점은 선배들이 깨달은 것을 참고로 해 가지고 전하나 다만 이  전하는 것이 권능으로 전해지고 말로만 전해지지 아니하고, 듣는 사람들이  말로만 들어 가지지 아니하고 권능을 받아 가지도록 하려는 이 마음이  설교자에게 어쨌든지 자기가 아는 대로 중심이 돼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력이 되어야 되지, 그러면 하나님의 권능은, 말은 무신론 자가 아주  독실한 기독자의 설교도 얼마든지 한 수가 있습니다. 이북에도 열렬한 설교가가  있고 또 소련에는 더우기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 왜 그 사람들을 열렬한 기독교 설교를 하도록  내비두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자 중에도 믿을 수 있는, 그는 참  철두철미한 무신론자 유물주의자, 믿을 수 있는 그 사람들을 기독교와 합리화해  가지고 기독교를 유혹시키기 위해 가지고서 그렇게 전한답니다. 그들은 믿지는  안하는 사람이오. 이러니까 그런 사람들 이라도 얼마든지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신론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전할 수는 있지마는 권능은  도적질을 못 합니다. 지혜로운 말씀은 도적질을 할 수가 있어도 권능은  도용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그 행함에 성령이 동행해야 그것이 참 자기 구원을 이루고 참 믿음이 되는  것이지 자기가 전하는 말이나 행동하는 그 법칙이 행동에 있고 성령이 거기에  동참해 주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믿음도 아니요 그건 외식이요  자기도 속았고 다른 사람도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능력은,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능력은' 하는 건 하나님의  능력이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진리의 능력입니다. 진리의 능력도, 진리도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한 그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사람보다  무한히 높습니다. 무한히 높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거기에서 중보 역할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진리에게 다 지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는 사람들에게 도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종으로  쓰여지지를 안합니다. 또 도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제가 진리를 증거할 때에 '진리가 뭐 도용 당하든지 안 당 하든지 이용 당하든지  안 당하든지 내가 진리를 내 입으로 전하니까 전해졌는데' 말하지마는  어리석습니다. 진리를 제 입으로 전한 그것이 전부 자기를 총총 얽어서 매서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되고 말지 그 진리는 결단코 그이의 전한 대로 복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말로만 전한 것은 그 전한 말이 자기를 정죄하고, 구원 얻는다 하는  그 구원 얻는다는 것이 자기가 전한 그 말 그대로 자기는 능력으로 행하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은 그 말씀이 자기를 정죄함이 된다 이랬습니다. 정죄함이  된다.

 자기가 말을 해 놓고 그와 같이 행하지 못했으니까, '이와 같이 행해야 구원  얻는다. 이렇게 행하지 안하면 멸망받는다.' 이렇게 말했는데, 구원 얻는데  구원을 못 얻었으니까 그 말이 자기를 정죄합니다. 심판할 때는 네가 전한 말이  첫째는 심판할 것이고 다음에 전체적으로 심판할 때에는 하나님이 전한 이  말씀이 심판하지 심판할 때에 딴 법칙이 나오지를 많습니다. 이미 있는 이  법칙으로 심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권능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니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에게 이용당할 그 권능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데는 믿음뿐입니다. 믿음이라야 역사합니다. 믿음은 첫째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진리를 자기가 인정을 할 때에, 인정을 할 때에 하나님에게  소개가 됩니다. 인정을 할 때에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참 인정을 할  때에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인정한다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인정하는 것이 뭣 때문에 인정하느냐? 인정하므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이 겨우 그의 영접을 받습니다. 그의 영접을 환영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자에게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것을'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회개할 것 네 가지를 말하는 것도 삼위일체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할 것. 그러면 모두 다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내가  이래 하다가는 시험에 들라" 또 이래 하면 그 사람에게 오해를 받을라? 이  사람이 그래 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미끄러질라?' 하는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두려워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복수할까 두려워 하고, 모든  그 두려워함은 다 가짜요 껍데기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주권자시요 주재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때문에 행동하기가 두렵고, 하나님 때문에 말하기가  두렵고, 하나님 때문에 그 사람 말 들으너까 그까짓 게 이 말하는 것이야 그뭐  하루 종일 말해 봤자 개짖는 소리와 같이 그까짓 거 말할 게 뭐 있는가? 이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도, 미치괭이가 지나가면서  말하는 것도 그 말이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그 말이 내게 두려움이 되고 견딜  수 없어 두려움이 되어서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것이, 범사에 두려움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내가 두려워 져야 되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안하고 다른 이런 것 저런 것 하나님 떼놓고 두려워했던  그거는 전부 옛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요 그것이 다 부패성이 두려워하는 것이지  참된 새사람이 두려워하는 두려움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지 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것.'  '하나님만을 사랑치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 사랑하는  것도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뭣 때문에 사랑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 분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그분을 대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대접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행동할 때에 사람에게 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되지 하나님 떼놓은, 인간 사랑 아무 소용이 없어. 제가 인간을  사랑해서 어떤 뭐 몸과 생명을 다 바친다 해도 아무 소용 없다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없는 건,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사랑 없다 그말은 인간에게 무슨 사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아니한 것, 무엇을 자기가 이 사업을 하는 것 '이 사업을 하면은 이  사업으로서 내가 성공하겠다, 이라면 되겠다.' 되겠다 하는 그것만이라면 그  사람은 무신론자입니다. 그 사람은 그게 우상되고 맙니다. '내가 요 사업을  하면, 요걸 하면은 내가 유익을 보겠고 성공을 하겠다.' 했으면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 하나님을 소망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시니 되겠다'  하나님을 소망함으로 거기에 소망을 해야 되는 것이지 하나님은 소망하지 안하고  그것이 철통같이 백의 백이 다 성공이 될 수 있는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안 해 주시도 성공 됩니다. 성공이 된다 해도 그 성공이 들어 자기를  망치는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십시오. 요새 듣는 그런 것도 다  깨달으면 다 깨달을 수 있다 그말이오. 브레즈네프의 그 아들이 포프 그 수상을  총으로 쏴서 뭐 팔인가 어디인가 맞아서 상했다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철통같이 하나인 줄 알고 그때까지는 그저 이 대외적으로서 남의 나라, 침략할  것만 생각하고 이것만 죽자껏 날뛰었는데, 날뛰었는데 뜻밖에 자기 안에 내란이  나 가지고서, 사람들 마음이 뒤비지니까 내란이 났다 그말이오. 오늘까지는 내가  철통같이 이 사람하고 약속한 것이 '이건 천지는 변해도 변할 수 없다.' 신용할  수 있는 그 사람의 마음도 한 시간에 쾌 뒤비져서 정반대로 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인간 심리 세계를, 인간 심리 세계를 주님이 홀로 주권하고 계십니다.

 요사이 보니까 소련이 미국의 기술을 도용해 가지고 지금 준비한다 하는 그것  나는 보고서 나는 웃습니다. 미국이 정말로 기술이 위에 있어서 미국 기술을  도용하고 있는지 자기네들이 해 놓은 그것이 정말로 옳고 이 세계에 우위에  올라가는 일등인데, 우위에 올라가는데 이 마 음이 뒤비져 가지고서 오히려 그만  못한 것으로 악용을 하는지? 잘못 보고 이것을 잘못 이용해 가지고 망치는 일  하고 있는지 오른다 그 말이오.

 이것 보고 '미국의 기술이 높으니까 이 기술을 이제 우리 이것 모든 것을  미사일을 다 이거 고쳐야 되겠다. 이 기술대로 고쳐야 되겠다. 그분들은 기술이  우리 기술보다 훨씬 낫다, 낫다.' 이라며 지금 고친 답니다. 전부 고치고  있대요. 고치고 있는데 고치고 있는 그것이 참으로 저거가 해 놓은 것보다 더  좋게 고쳐지는 것인지 그것이 미국 기술을 잘못 보고, 열에 아홉은 보고 한 가지  안 봤으면 한 가지 안 본 것으로 다 깨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잘못 보고 지금  저거 해 놓은 것을 전부 고장을 내어서 저거 해 놓은 것을 전부 깨지도록 이것을  다 절단을 내고 있는 건지 그것 모른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인간의 심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제 마음에는 '요것이 꼭 사는 것이다.

이게 꼭 성공되는 거다.' 이렇게 제 마음에는 백프로 그렇다 해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삐틀트려 놓으면 그 마음이 삐뚤어져 가지고 제 마음에 '꼭 이거는  성공이다' 싶은 것은 실패하는 것은 성공이다 싶으고, 자기 망할 것은 자기  흥하겠다 싶으고, 자기가 지금 올라가겠다 싶은 것은 자기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겠다 싶으고,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계시니 그분이 우리  마음을 이래서 금방 먹으면 죽을 약을 '이 약을 먹으면 이저는 만세 장수한다'  장수한다 그렇게도 보여질 수 있다 말이오.

 인간의 마음 그까짓 거 죽는 것을 사는 것으로 보게 할 수도 있고 사는 것을  죽는 것으로 보게 할 수도 있고, 옳은 것을 틀린 것으로 보게 할 수도 있고 틀린  것을 옳은 것으로 보게 할 수 있으니까, 이 모든 마음이 우리의 심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심리 세계를 당신이 주권 하고 계시는데 그분을 멸시하고 뭘 자랑할  것이 있소? 뭘 자랑할 것이 있고 뭘 나타낼 수가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안한 그 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 아무리 좋아도, 어떤 것이라도 말로만, 하나님은  꾀임을 받지 많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하면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방해를 하신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봐야 방해 하지 아니할 터이니까 공연히 제가  '이거는 철통같다. 이만하면 됐다. 이거야 됐다.' 그 사건을 자기가 믿고 또 그  속에 참모장이 되어 있는 자기를 믿고 하나님은 껼데기로 떡 대접을 해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이여 하나님 당신이 안 해 주면 되겠습니까?'  얼마나 발람 선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연구해야 됩니다. 발람 선지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자지마는 그 속에 무서운 자기 중심의 그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했소. 하나님을 이용했지마는 하나님은 발람을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가지고서 발 람은 갔지마는 하나님은 발람을  이용해 가지고서 결론은 발람이 맞아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죽임을  받았소. 칼에 맞아서 죽어버렸습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하나님만을 소망하지 안하는 그 죄를 회개하여, 자꾸 회개할  때만 우리가 그냥 서 있지 회개하지 안하고, '이러면 하나님만 나는 바라본다'  할 때는 벌써 타락이오. 벌써 타락입니다. 우리에게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만 복종하지 안하고 구별 없이 그저 어데든지 자기 현실에, 하고  나서 보니까 이 현실에 내가 피동됐고, 저 사람에게 피동됐고, 저것에게  피동됐고, 나는 피동된 자라. 그러면 구별 없이 '이것이 정말로 내가 상관에게  피동이냐, 이것이 상관에게 피동이냐, 국령에 피동이냐, 내 가족에게 피동이냐,  선배에게 피동이냐, 친구에게 피동이냐, 뭣에게 피동이냐?' '이것 피동은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데에는 피조물이지마는 실은 그 피동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 아니면 나는 피동하지 않는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사람 보기에는 사람에게 피동되고 뭐 이런 환경에  피동되지마는 하나님 한 분에게 나는 피동한다.' 구별 엾이 복종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복종하는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간추려서 이 네 가지를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능력인데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해야 오는가?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그 소개자는 뭐입니까? 소개자는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소개자가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제가 아무리 하나도 안 빠지고 말씀대로 철두 철미하게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것이 없으연 그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율법에서 정죄받아 죽는 것뿐이지 권능은 오지  않습니다.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인정을 할 때에, 그 말씀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인정을 할 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또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인정하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인정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만치 인정할 때에 반드시 거기에서 처음 나오는 것이 그분은  두려우신 분이라는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에 제일 처음에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크심이 자기에게 인정될 것이요, 하나님의  크심.

 늘 기도하고 설교할 때에는, 설교할 때는 이것 이 설교를 해야 되겠다 해도 또  보면 교인들은 자꾸, 그 말만 평생해도 모자라고 평생 들어도 모자라는  말씀이지마는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또 할 수 없어 그들에게 조화를  맞춰 가지고 할 수밖에 없는고로,  하나님 두려움, 하나님 두려움을 그저 참 시작하는 그 시간부터 죽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은 두렵다 하나님은 두렵다' 하나님 두려우심을 이 증거를 해도  마땅하고 또 들어야 되겠고 제일 중요한 것이지마는 사람들은 다 벌써 부패성이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강한 치료가 되지 안하는고로 다른 말씀 하지,  하나님만을, 하나님 두려운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가 신구약 성경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소개받으면 첫째가 하나님  두려울 것이오. 그러면 하나님 두려움 어디서 나는가? 하나님 크심. 하나님의  크심을 자기가 노래하고, 하나님 크심을 자기가 또 인정하고,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인정치 안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크심을 인정하고, 하나님 크심을  인정할 때에 그 나타나는 결과는 뭐 인가? 피조물 중에 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크심을 인정할 때에 피조물에게는 큰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될 때에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될 때에 땅위에서는 바라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야 바라볼 만하지 않느냐?' 바라봤지만 그것이 일시에 훼딱 뒤비져  가지고서 그것을 바라봤던 그것이 하나도 바라볼 수 없는 그런 것으로 화해질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돈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축복해야 그 돈이  복되고, 권세도 축복해야 복되고 지위도 축복해야 복되고, 직장도 축복해야  복되고, 당신이 축복하지 안하면 복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 여러분들, 뭐입니까? 인간 망하는 것이 돈 가지고는 망하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까? 돈 가지고도 망한 사람 있습니다. 펀세 가지고도 망한 사람 있소.

지위 가지고도 망한 사람 있습니다. 화목 가지고도 망한 사람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는 천하 인류가 다 화목했지마는 화목이면 제 일입니까?  하나님이 축복 안 하면 망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같이 해서 복되게 해 주지  안할 때에 복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되게 해 주실 때에 해로운 것이 뭐 있습니까? 사망도 하나님이 복되게 하시면  그 사망이 복됩니다. 감옥도 복됩니다. 가난도 복됩니다. 하나님이 복되게 해  주시면 복되지 안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보지  안하고 그분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어.

 이런고로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하심을 자꾸 새기고 새겨서 알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 주신  그 소망을 우리가 연구해서 알고 알아야 될 것이고, 이러면 자연히 거기에  대해서 욕망이 되어서 하나님이 이 사실을 이루는, 이 사실을 한 말로 말하면  우리의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그 방편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해  주셨으니 구체적인 그 방편을 우리가 버릴 수가 없고 그 방편을 인정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방편을 인정할 때에 그 인정함으로 하나님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 인정함으로 그 방편 인정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성령과 진리와 피는 하나라 했어."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라 이 셋이 증거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교만으로 망합니다. 된 줄  알아도 자기는 자기의 죄를 모릅니다. 자기는 자기의 그 어두운 것을 모륨니다.

자기는 자기가 빠져서 죽을 함정을 자기는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면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은 알 수 있는 그것을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보고 아는 것보다도 진실하면 자기가 자기를 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가 자기를 제일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에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는 것만치 자기를 보지 안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아주 때가 가깝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권능이  나와 같이 하는가 자기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권능이 같이 하는가 보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소원하는 것이 있고 경영하는 것이  있으니까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몰라서 어두움에 빠질 때에 당신이  나를 붙들어 주심이 있는지? 과연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함이 있는지?  나에게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있는지? 점점 하나님의 크심이  나에게 점점 나타나는지?  하나님은 점점 가리워지고 나만 커지는지? 내가 뭘로써 지금 활개를 치고  다니는지? 내가 무엇을 믿고 지금 자신하고 있는지? 내가 뭘 믿는지?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떤다 했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자기를 비판하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간단하게, '내가 전하는 말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내가  원한다" '내가 전해서 너희들에게 전한 전도가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 얻어야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증거할 수가 있지  능력 얻지 않으면 증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같이 할 수 있도록, 내가 그분을 참 인정하는지?  경외하는지 안 하는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 내가 하나님 앞에 나를 강퍅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나를 강퍅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교만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나를 떨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울은  '너희들 가운데 내가 떨었다 이랬습니다. 사람 무서워 떤 것 아니오. 그는 항상  하나님에게 대해 하나님 두려워서 떤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워서 떤 것.

 베드로전서 3장에, 말을 전함으로써 믿지 않는 그 남편이 아내의 두려움을  인해서 그가 회개했다는 그 두려움은 그 남편 두려워서 벌벌 떠는 그건 줄 알고  있습니까? 아니야. 그 하나 하나의 행동이 하나님 눈 앞에서 자기가 하나님에게  거리낄까? 하나님이 노여워할까? 하나님이 손을 세실까? 하나님이 섭섭해 할까!  전부 그분 한 분을, 이는 무신론자라서, 무신론자라서 모든 것 말하는 것을  비쭉거리고 비웃고 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의 하는 행동을,  자기 보게 하는 행동을 볼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보지 안할 때에 은밀히? 숨어서  볼 때에 그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그 사람 두려워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계시는갑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가보다.'  이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이 놀래서 하나님을  찾아서 회개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했습니다.

 너무 우리는 교만합니다. 교만해서 말을 척척 벌로 합니다. 유다서에 "권세를  업수이 여기며 지위를 멸시한다"고 말했습니다. 멸시한다고. 여러분들이  교역자들이 떡 모여 가지고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 평해서 삐쭉거리는 그걸  힉개하기 전에는 절대 그에게, 어떤 사람은, 그 권능 오는 것이 권능 오는 것이  뭐이 권능이냐? 남 구원시키는 권능 그것 자기에게 아무 소용 없어. 아무 소용  없어. 남 구원시키는 그 권능 자기에게 암만 와 봤자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당할 수 있어. 남을  회개시켜서 남을 구원시키는 그 설교의 권능도 좋지마는 그것보다도 자기를  회개시켜서 자기를 구원시키는 권능이 와야 됩니다. 자기를 구원시키는 권능이  와야 돼.

 우리는 이렇게 목회해서 교회가 부흥이되고 목회가 되면은 됐다 싶으지마는  목회가 돼서 구원이 아무리 돼도 자기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부산 와 가지고서 탄식을 하는 것은 뭣 때문에 탄식하느냐? 내가  부산 온 것을 내가 탄식을 하고 참 마음에 고통을 가진 것은 교회는  부흥되지마는 내 자체의 성화는 되지를 않습니다. 내 자체의 성화는 되지 안해서  늘 고민 고통이었습니다.

 나는 이 부산이 나는 사지라. 내가 올 때에 이사 떡을 하니까, 이사 떡을  했는데 송편을 했는데 송펀을 밤에 늦게 밤에 쪄 가지고서 한 데다 내 놨는데  아침에 보니까 빨개. 빨개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먹어 보니까 맛은 괜찮은데  껍데기가 빨개. '내가 이 부산 가는 이것이 완전히 내가 껍데기가 썩어 버릴  것이구나. 완전히 변색이 되겠구나.'과연, 그것이 무슨 계시는 아니지마는 하나  그것도 형식계시에 내 깨달음 내게 대해서는 내 깨달음에서는 그것도 하나  깨달음으로 줬다 말이오.

 부산 와 가지고서 완전히 껍데기는 완전히 변색됐어. 그러나 속에 깊은 속에  주님이 주신 그 은혜는 변해지지를 안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구원해서,  누가 말하기를 '목사님이 부산 와 가지고서 이렇게 교회도 큰 교회가 됐고 또  많은 교회들이 다 일어나게 됐고 많은 후배들도 생겨졌고 이러니까 그 유익이  아닙니까?' '아니야. 나는 부산 와서 망했어.' 망했어 하는 말을 내가 수천 번  했을 것입니다. 내가 수십 일, 뭐 수년 동안을 늘 말하면서도 애를 써도 내  성화가 되지 안해. 내 구원은 되지 안해. 그러니까 권능이 나를 구원서키는  권능은 안 온다 말이오. 나를 구원 시키는 권능 안, 와. 다른 사람을 구원시키는  권능은 오지마는 나를 구원시키는 권능은 오지 안해.

 이랬더니마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나를, 구원시키는 권능을 하나님 께서 주셔서  나를 구원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시키는 역사를 해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같이 하고 구원하신다 하는 그것을 내가 스스로 내가 느끼고-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무교파주의가. 무교회주의가 한국 교회를 휩쓴다, 무서운 그  이단이 들어와 가지고 한국 교회를 삼킨다는 그것을 나는 몰랐는데 당신이  사람을 데려다가 나에게 알려 주고 또 알리고 난 다음에 내가 또 거기에 대해서  범위가 좁으니까 더, 어슴하게 아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도록 알려 줘서, 그것도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으로서 내가 알고,  무교회주의는 무교파주의가 됩니다. 그게 내나 그겁니다. 무교회주 의는  무개인주의입니다. 무개인주의는 이것은 전체주의를 말하고 있 지마는  무전체주의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저거 눈이 어두북서 거기서 착각되고 있는  것이지. 일본에, 일본의 교회들이 왜 힘을 못 쓰느냐? 왜 일본 교회가 비빔밥  교회가 되고서 힘을 쓰지 못하느냐? 못 하는 것은 내촌감산씨의 그의  무교회주의의 독소가 많은 사람들에게 침투돼 가지고서 큰 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래서 일본에 있는 모든 학자들은 대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  없습니다. 믿으나 그 사람들은 다 무교회주의입니다. 무교회주의. 자기가 신구약  성경은 '성경은 예수 믿는 성경인데 이 성경도 인정한다' 하면은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이렇게 알고 믿는,  이래 가지고서 그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일본에는 그 모든 지식의 세력에 따라서  교회가 안 됩니다.

 일본 교회는 절대 부흥 안 됩니다. 그걸 원수인 줄 알고 그걸 뽑아 버리고, 이  무교회주의를 원수인 줄 알아서 몇 사람이 죽고 그걸 대항해 가지고 이래 해서  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지 그것을 용납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나옵니까? 이것이 한국 교회에 왔습니다. 지난밤에 '인본주의를 우리가 삼가자,  성전 밭마당을 삼가자, 신신학을 삼가자.' 이렇게 말했는데, 요새는 한국 교회에  제일 정통이라고 하는 그 신학교에 가니까 교수가 말하기를 '요새는 너거가  옳으니 그르니 콩이니 팥이니 이래 자꾸 이래 그렇게 하면은 교회가 안 되고 안  되니까 그저 그런 것 하지 말고 다 모두 다 똘똘 뭉쳐 하나되는 그거라야  된다'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항의를 하고서 그 자리에  나와 버렸다고.

 거기에서도 뭐 인본주의니 신본주의니, 세상주의니 천국주의니, 신신 학이니  정통이니 하는 그런 말에 대해서 아무 관심 안 가집니다. 그것 말하면 아주  그거는 못난 사람이고 시대에 떨어진 사람이고 교회가 안 될 줄 압너다. 지금은  가장 이것을 주장빼야 될 때입니다. 빌리그레함이 와 가지고서 한국 교회를 한번  싹 쏠어서 한번 쑥물을 먹여 놨습니다. 엑스포 74 모임이 와 가지고서 먹여  놨습니다. 산업 선교라 하는 것이 먹억 놨습니다. 대학생선교회 선교단이라 하는  것이 먹여 놨습니다. 이렇게 모두 다 만 교회 운동이니 대단히 선교 같지  마는서도, 아레 나는 그 말을 들었어. 한국에서 지금 중공 선교니 뭐이니 해  가지고서 그 선교하는 돈을 일본으로 통해 가지고서 그리 들어가 가 지고서 지금  선교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일본 와 가지고 그 돈을 가지고서 자기의  기업체를 마구 만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저의 다 기업체 만들고, 거기 들어가서  또, 겨우 중공에 가면 중공에 있는 사람들이 그 돈 가지고 자기 기업체 만들고  이렇지 교회라는 것은, 복음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공에 교회는 일어나서 교회 수자는 일억이라는 그 신자들이 생겨지고  있다. 그거는 그 속에서 참 죽으면서 고통당하면서 지하에서 그 신앙 정조  지키려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병신도 되고 하는 그 사람들의 지하의 기도로, 그  사람들이 하나 둘 말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지 뭐 선교라는 간판 줘은 그런  간판을 가지고 날뛰는 그것 가지고 일어나는 것 아니다.

 그 사람들이 일으켜 놓으면 이것들이 가 가지고 그만 제가 한 것처럼 떡  모가지를 전부 잡아 주 엮여 가지고서 똘똘 뭉쳐 가지고 호주머니 집어넣는,  대가리 열매는 제가 따먹습니다. 이런 원수들이 오늘 땅위에 생겼다 그말이오!  무슨 선교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한 사람이 예수 믿고 전도하고 두 사람이  전도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되어졌지 무슨 그 외에 요새 선교하는 그런 것이  비성경적이라 그말이오.

 그저 자기가 믿으면 자기가 믿은 대로 가서 전하고, 또 한 사람이 전하면 두  사람이 믿고, 두 사람이 믿으면 그 사람이 전하고,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이 믿고  전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지금 나가야 될 터인데 이것을 조직을 해 가지고서  유식한 사람들, 권세 있는 사람들, 간판 좋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전부  이것을 다 모가지를 꿰어서, 마치 어릴 때에 고기를 잡으면은 꽁이를 이만한 꽁이를 합니다. 아무 그릇이  없으니까. 꽁이를 장드레미 넝쿨로 꽁이를 해 가지고 고기 한 마리 잡아서 딱  꿰고 한 마리 잡아 딱 꿰고 한 마리 잡아 딱 꿰고, 딱 꿰어 가지고서 딱 꿰어  이래 들어 가지고 이래 들면 다 들립니다.

이것 모양으로 이제 이 사람이 전도한 것 저 사람이 전도한 것 다 가 가지고  환영을 하면서 속에는 이리가 들어 가지고 그걸 뀁니다. 하나 둘 꿰어 가지고  전부 다 제것을 만들어서 자기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떠나고 난 다음에는 너회들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을 자기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아주 바르지 안한 그런 말을 너희들에게 할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내가 말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가 말 아니오.

여러분들 각자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운동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인간 구원을 위하는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다면 인간을 위함 이요 하나님과 인간을 위하면은 복음을  위함입니다.

 위함인데, 그 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를 위주로 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닌 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내가 지난번에 아파 드러누웠을 때에 어떻게 우리 진영에도 대장들이 있는지?  이래 가지고 여기서 나가면 저 양성원에 가 가지고는 슬슬 나 훼방합니다. 내가  훼방받을 만한 그런 일이 있거든 말을 하십시오. 말을 해서 논평을 해서 나에게  말을 해 가자고서 그것을 평가를 해서, 나를 자기 선배로 알면 내가 잘못됐으면  말해서 정죄해서 고치도록 해야 되지 심판대까지 가도록 할 것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악에서 나왔다는 것을 내가 확실히 압니다! 악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그에게 대해서 상당한 보응이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에는. 다 자기 중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삼가야 합니다. 지금 어느 때며 어떤 때인지? 뭐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뭐 공산주의가 밀려가고 갈 줄 압니까? 공산 주의가 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힘 있게 하시면 힘 있고 힘 없게 하시면 힘 없고, 아무래도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는 한번은 불로 사뤄야 될 것입니다. 한번은 불에 태워야  될 것입니다. 한번은 구워야 될 것입니다. 한번은 구워야 인본과 신본이 나오지.

한번은 구워야 신신학과 정통이 나오지.

 왜 우리가 예수교 장로회라 하는 이 장로회를 붙이느냐 하면은 세계에 선포되고  있는 교리 중에는 장로교 교리가 제일 건전하고 바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교리를 믿는다는 것으로서 장로회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 하나님이 밀었다 당겼다 했는데, 지난밤에도 그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못 알아들어. 알아듣기가 힘 들어.

 어떤 사람은 망하는 것 보고 살고 어떤 사람은 흥하는 것 보고 산다. 어떤  사람은 일곱 머리 중에 상하는 것, 상하는 것 보고 살고 '상한 것 나았는데?'  나았지마는 상했던 그것 보고 삽니다. 나은 것 보고 살고, 나은 것 보고 사는  자는 다 땅에 속한 자요. 상한 것 보고 사는 사람은 '조것이 주님의 진리에  조렇기 때문에 상한다! 상한 것이 나아도 진리에 위반된 것이 상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앞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로 연단한다고 말씀하신  것갈이 '천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받을 이 모든 시험들이라. 그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치 않게 한다.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이 기회에 똑똑히 회개하고, 이 기회에  기도하고, 이 기회는 지금 뭐 전도하는 것 좋지마는 전도보다도 자기 회개해야 되고 자기가  참 진실되이 권능받아야 또 가짜가 없어지지 권능 안 받고 해 놓으몃 해 봤자  결국은 마귀 수입만 되고 또 권능 받은 사람들의 것만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어쩌든지 오늘 아침에 간단한 말씀으로서, 그 다른 걸 간 주려서 한  마디로 말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또 설교를 하든지, 개인 전도를  하든지 우리는 그 전부 행동으로 하는 것도 있 지마는 첫째는, 행동도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행동하지 않습니까? 말과 권능 이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있으니까, 내 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권능이  정말로 나와 같이 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회개를 하는지? 하나님 미워하시는 것을 이것을 다 끊어버리고  제해버리고 이것을 던져버리는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기 속에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서,  악이라, 악성 악령 악습, 이것 내가 말한 것 아니오. 내가 말해서 깨달은 것  아니오. 하나님이 알게 해 줬소. 내가,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이라는 그것 이 말한 것 내가 스스로 말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셔서  말했소. 알려 주셔서 말샜는데 말하고 난 다음에 살피고 살펴보니까 정확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 중심이라는 이것, '내가 어떻게 하니까 어떻게  하니까,-시험할 수 있어.-내가 어떻게 하니까 성경 말씀에 인정되는 정도가  강해진다 약해잔다, 내가 어떻게 하니까 성경 말씀을 인정하기는 한다 하지마는  성경 말씀을 인정하는 정도가 강해진다 약해진다.' 알 것이오.

 또 '내가 어떻게 하니까 하나님이 내게 보여지는 보임이 내게 더 확실하다  흐미해진다' 알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니까' 영감을 여러 분들이 다 압니다.

영감은 오면은, 딴것 아니고 영감은 오면은 우리에게 알게 하고 인정하게 하고  그대로 행하게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러니까 '내가 이러니까 영감이 더  온다 영감이 덜 온다.' 내가 내나 기도하러 가도, 기도해도 '어느 날은 영감이  더 왔고 어느 날은 영감이 덜 왔다. 내가 영감이 덜 올 때는, 어떻게 하니  영감이 더 오고 어떨 때는 영감이 덜 왔다. 어떨 때는 기도가 안 됐다. 내가  설교할 때에 영감이 더 왔다 덜 왔다. 내가 그 설교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수가 높았다 낮았다. 내가 그리 가니까 자꾸 나만 우쭐해지고 하나님은 안  보이고 나만 우쭐해지더라. 세상만 높아지고 커지더라.' 내가 가는 것, 접하는  것, 말하는 것 이것으로써 영감이 더해지는지 덜해지는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더해지는지 덜해지는지 하나님과 가까와지는지 멀어지는지 환하게 압니다.

왜 모릅니까? 환하게 압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구원해야 되지, 스스로 구원해야 되지 누가 구원할 자  있습니까? 이래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진다' 하면 틀렸소.

하나님과 멀어진 것을 발견할 때에 가까와진 것이 발견되고, 멀어진 것을 배격할  때에 가까와지는 것이 되어지지 일방으로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이것이 우리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이오. 각 교회에서 다, 서부교회 따라 하지 말라  말이오. 따라 하지 말고 각각 자기네들이 이래 깨달아서 이 기도에 힘쓰고,  회개에 힘쓰고 믿음을 지금 새롭게 해야 될 때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이요, 그저 이 교인들이 많지마는, 많지마는 내 구원 하나가  중요하고, 왜? 내 구원 하나, 내가 뭐 구원이 되야 다른 사람 구원을 뭐 하지 내  구원이 안 되면, 모든 사람 구원보다 내 구원이 제일 중요해. 모든 교회  부흥보다도 내가 맡아 있는 그 교회 부흥이 제일 중요해. 모든 세계보다도 한국  교회가 살아나는 게 제일 중요해. 이러기 때문에 차차 이것이 하나님과  나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이렇게 번져 나가야 되지 겉에서부터 나가는 그런  외식에 우리가 빠지면 안되겠습니다.

 그런고로 혹 여기에서 생각하기를, 그저 진리가 하지 안하고 내가 한 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충고를 해 주십시오. 직접 면을 대해서 하지 못하거들랑 글을  써 가지고, 자기 글씨가 알아서 그럴 상바르거든 좌 서로 쓰든지 어짜든지 써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신고함에 넣어서라도 나를 살려야 되지 내가 삐뚤어지게  내가 인본적으로 말하는 것이면 살려야지요. 인본적으로 해서 내가 잘못 말하면  살려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선배를 살려야 될 것 아니겠소? 그래도 해 줘야  되고, 그런 것을 내가 원합니다.

 그런 것을 내가 원하고 있지, 내가 몰라서 내 중심으로 말했으면 말했지 내가  알고는 내 중심의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은 내가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내  중심으로 말하는 것은.

 그러기 때문에 뒤에 앉아서 논평해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누가  만들어 내? 만들어 낸 걸 보고서 내가 가만히 내비두요. 가만히 내가 그것을  치료하지 안하고 가만히 내비둘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다 자기가 만든 것  자기가 당하지 뭐 별것 있습니까? 안 당하면 옳게, 옳게 하려고 하면은 옳게  하는 사람에 마찰은 있는 것입니다. 또 마찰당하는 것이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서  마찰당하는 것, 나쁘게 만들어 가지고도 마찰당하는 것. 인제 훼방하니까 훼방이  절로 생겨지지. 내가 잘못해서 여러분들에게 생겼다고 나는 보고 있고 그걸 찾고  있어. 여러분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 후에 후배가 또 잘못된 것이 생겨졌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쨌든지 깨어서 회개해서 깨끗하게 만듭시다. 자기를 깨 끗하게 해야  되지, 앞으로는 권능이 지키지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권능이 안 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어. 권능이 안 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어.

 늘 그말 하는 것은 자랑하는 말이 아니고 여러분들에게 알라고 하는 말이라  그말이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폭풍이 불어왔을 때에 신사 참배를 안 하고  그때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어제도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제는 다 모두 다 세상 떴고, 신앙의 은 다 세상을 떴고 신앙의 용사가 마산에  손명복 목사님 한 분 남아 있다'고 그분이 말합디다. 그분이 옥중에 들어가서,  신사참배 안 하고 옥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만치라도 알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분은 신사참배에 대한 문제를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도 다 횝쓸렸어. 그럴 때에 피해서 망명한 사람, 숨어 산 사람, 그때에  나타나게 목회하는 사람으로서 신사참배 안 한 사람은 지금 인제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또 그때에 신사참배보다도 동방요배가 제일 중요했는데, 황거요배가 중요했는데  황거요배를 안 한 사람은 지금 한국에 몇 사람이나 남아 있는지 모릅니다.

황거요배도 안 하고 신사참배도 안 하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거는  모르겠소. 그것 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 어졌지 인간의 힘으로 된 것 아니라  그말이오.

이재순 목사가 개명교회 있었지마는 신사참배 안 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해야지?  개명교회가 제일 유명한 교회인데. 왜 안 했어? 저 거는 남의 그늘 밑에서  지냈어. 나하고 싸우기 때문에 저거들에게 싸 움이 가지를 안했어. 나하고  싸워서 내가 잡아 넘겨져야지 내가 허락지 안하고 내가 그 책임자인데 이래 하고  나갔어. 그것 가지고서 신사참배 안 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6·25때도 깨끗한 승리한 사람은 별로이 없어. 다 그럴 때," 내 신실한 충성된  종 안디바가 우상 있는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 그때에 너희들이 내 복음과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얼마나 그때 신앙 지키기가 어려운 줄 압니까?  지금 해방 후에, 또 6·25 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예수 믿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  개인적으로 예수 믿기 위해서 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고, 자기 신앙 지키기  위해서 참 떡이 되게 맞은 사람도 있고 개적으로 그런 역경을 거쳐서 믿는  사람들은 다 신앙을 가졌지마는 술술 예수 안 믿는다고 자꾸 오히려 말하고 예수  믿으라고 권하고 하는 이런 참 온상 속에서 신앙 생활하는 그걸 가지고서 됐다고  생각지 마시고 어 짜든지 그걸 회개해야 됩니다.

 깨끗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무슨 역경이 안 옵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 그렇지마는 그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어. 홍해  바다와 애굽의 군인들의 추격이 그렇게 두려웠지마는 참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어, 기쁘고 즐거웠지. 같이 한자리에 있는 사람은  녹았지마는 그 사람은 기쁘고 즐거웠어. 6·25 때도 기쁘고 즐거웠고 아무  두려움이 없었어.

 이것이 오늘에 두려워하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바바보지 못하는 것을 수정하고, 주님에게 대해서 인정하지 못한 주님의 크심을  인정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소망으로 준 그 소망을 소망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그분이  방펀으로 주신 이 방편을 쓰지 못한 걸 회개하고, 자기에게 자기가 거리끼다고,  자기가 요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회개하고 하는 자에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하는데 그에게 악이 올 것입니까? 사망이 올 것입니까? 사망은  생명을 해하지 못합니다. 어두움은 빛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역경을 당한 그것도 좋지마는 어두움 속에 역경이  오지 못해. 역경이 가까이 오지 못하고 역경 속에도 자유 자재로 시온의 대로로  걸은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회개할 때입니다. 오늘은 뭐 명예니 지위니 권세니 간판이니  남의 인정이니 그까짓 썩은 것은 탐할 때가 아닙니다. 깨끗이 회개해야 되요.

 압니다. '내가 이 걸음을 걸으니까 설교에 권능이 줄어진다' 제가 모르면 '내가  이라니까 교인들에게 대해서 이거 은혜받는 면이 자꾸 약화되어져 간다.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전체가 욕망스러운 이것이 차차 식어지고  약해져 간다. 이것이 변해서 땅의 것에 대한 눈을 뜨고서 거기에 대해서  보여지는 것이 자꾸 눈이 뜨여진다.' 알 것이라 말이오. 왜 모릅니까, 모르기를?  그걸 모른다면은 그렇게 둔한 심령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자기가  연구하고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겸손히 회개하고, 지금은 회개할 때입니다. 우리 진영에도 아주 교역자들 다  죽었습니다. 다 죽었소. 교역자들 다 모두 이래 죽고 저래 죽고, 이 사람은 이래  죽고 저래 죽고 전부 이 말만 지혜의 말만 가지고 됐다고서 말만 팔아먹고 있지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있는가 살펴봐야 될  것이오.

 부흥이 되면 능력이 됩니까? 설교를 하니까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으니 능력이  됩니까? 아니오. 자기에게 있는 능력은 자기를 구원하는 능력이 참 능력입니다.

자기는 구원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은 자기는 버린 자식이라  그말이오. 도구로 인정한다, 생명이 없는 자로 인정한다 그말이오.

 정말로 하나님의 권능이 나에게 와서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게 하고, 떨게 할  대로 떨게 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갈급할 대로 갈급하게 하고, 그러니까 그분 한  분에게 전부가 갈급도 다 가는데 딴데 갈 여가가 어데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절로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기에 밖에는 기울어질 여가가 없어. 거기만 하지 딴데 갈 여가가  없어, 남은 여분이 없어.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온전해야  성화가 되어지는 것이지 온전치 안하고 무슨 성화가 되어지는 줄 압니까 안  됩니다. 다 옛사람이 예수 믿고 있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권찰님들도 자기가 심방하고 전도해서 자기에게 속한 성도라면 그저 두말 할 것  없이 저녁으로 여기 와서 기도회에 참석해서, 돈벌이를 못 해도, 상점을 못  봐도, 그것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사람의 사는 것은 재산의 넉넉함 가지고  사는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걸 못 해도 이 기도회에 와 가지고서, 보니까 버스를 세 번 갈아  타고 오는 사람들 있소. 세 번 갈아 타고 와 가지고 꼭 그날 밤에 꼭 와, 하루  밤도 안 빠지고 와. 왔다 가면 돈벌이보다 나은 것을 제가 알 것입니다.

돈벌이보다 나은 것을.

 우리가 살아야 되지 그까짓 거 아무리 그래도 나중에 톨톨 털어서 다 원수에게  빼앗기면 자기 죽고 자기 소유 다 절단나는데 좋은 것이 뭐 있습니까? 지금은 깰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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