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1983. 11. 13. 주전.

 

본문 :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이제 배워서 아는 대로 과거 우리 살 때는 사람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또 어떻게 인생이 났으며 또 인생의 먹고 마시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 줄도  몰랐고, 그저 원치 아니하는 늙음과 죽음이 오면 슬퍼하 다가 어디로 갈 것도  모르고 죽는 것으로 인생이 끝마쳐지는 줄만 알고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참 인생 생활에 지척을 분별 못 하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수많은 과거도 알게 하시고 또 영원한 미래도 알게 하시고  현재가 무엇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은 피조물 중에는  최귀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만물들은 이 물질이 저 물질로 변종되고 또 저 물질이 이 물질로  변해서 다른 종류가 되다가 죽으면 원소로 돌아가고 또 원소가 이것 저것으로  화해서 다른 종류들로 개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사람된 자는 사람에서 영원히  변해지지를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또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일생의 생애에 자기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 세밀한 것까지  전지하신 하나님은 다 살 피시고 여기에 대한 공평된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에서 행한 대로 갚으시려고 할 때에 물 속에 죽은 자는 물에서 나오고  땅 속에 죽은 자는 땅 속에서 나오고, 이런 저런 음부 속에서 있는 자들도 다  나와서 자기의 언행심사의 행동이 자기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다 심판을 받아서  어떤 자는 하늘나라, 어떤 자는 지옥 층층이 가서 고난받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거기에는 표시하기를 유황불 구렁텅이라, 유황불 못이라,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는 고통만 세세토록 있는 곳이라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현실에서 자기 양심에 조금 거리끼는  것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거슬리는 것 그런 것만 삼가할 줄 알고 막살이의  생활을 해서 그날 그날에 자기 욕망만 이루어지면 성공의 날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았었습니다.

 또 이중 삼중의 어떻게 꺼풀을 쓰고 거짓되이 살지라도 그 시간만 무지한  사람들에게 인정이나 받고 다행이 되면 다행으로 그렇게 생각했지 자기의 마음의  뜻과 생각과 행동의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그 행동록에 촬영되고 다 녹음되고  기록되어서 그대로 심판받을 것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이 심판은 인간들이 수많은 법칙을 세워놓은 그 법칙을 따라서 심판을  한다고 하면 혹 사람들이 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입법을 해 놓은 그런 것을 하나님이 전혀  무시합니다.

 무시하시고, 없는 가운데에서 우리를 지으셨고 또 우리를 기르시고 주관하시는  인류의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그분의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법칙이 있으니  이 법칙을 가지고 심판을 하십니다. 또 누구나 큰 자나 작은 자나 이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범하고 또 이 자연인 일반인으로서는 이 법칙을 안다  할지라도 이 법칙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자는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전 자연인을 대표한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약속한 약속을 어겨서 그 원죄로 인해서 다 사망받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어두움에 살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도 몰랐고 없었고 그 벋칙은 더군다나 몰랐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속에 자기를 멸망시키려고 산 영을 죽이고 대신 이 원수가 들어앉아  악령이 사람을 주관해서 악령의 소욕은 인생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대럼되고, 자기같이 망하고 자기같이 저주받고, 자기같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서 자기가 머무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영원히  고난받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요 목적이기 때문에,  이 원수가 사람들 마음 가운데에 들어서 모든 일을 감동시키고 다 감각시켜서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법도에 정반대되는  언행심사와 소원을 가지도록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인생 스스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해서 구원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멸망 가운데 빠지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우리가 영원 전 택한  사람이었지마는 택한 사람이 이 타락한 그과정욜 통과할 때에는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아니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라는 죽으면 영원한 지윽 갈  사람들이요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세세토록 그  고난의 연기가 영원토록 솟 아오르는 그런 비참하고 가련한 우리였습니다.

 뭐 아무리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도 소용 없고, 배짱 좋은 사람도 소용 없고,  민첩하고 권력 있는 사람도 소용 없고, 자존심이 있어서 딱딱해도 소용  없습니다. 강건해도 소용 없고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갈 우리들인데 우리를 이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곧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망에서  구출해서 악령의 자식이 된 여기에서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주재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는가? 하는 그것을 요한 일서 3장 1절에 기록한 것을  우리가 이 시간 봉독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만물 가운데에 제일 비참한 존재로 창조함을 받은  인생이었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지극히 존영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죽음을 면하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감옥인 지옥을  면하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멸망할 불의 세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생명과  평강의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우리가 유업으로 받게 됐습니다.

 우리가 조금 있으면 죄지은 값으로 늙기 싫은 것 다 늙어 쇠해지고, 죽기 싫은  것 다 죽어 쇠해지고, 자기의 소유권을 암만 자기가 가지고 있지마는 늙어지니까  그 소유가 내가 늙어지니 젊은 소유가 내게 소용 없고, 내가 쇠해지니까 창창한  내 모든 소유들이 내게는 필요 없습니다.

 내가 노쇠하고 죽어지니까 수많은 재물이 있어도 고 재물이 한 푼도 소용이  없고 아름다운 모든 풍경들이 있지마는 하나도 보지 못하는 그런 참 불쌍한 자로  쇠퇴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늙음을 슬퍼하지 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음을  슬퍼하지 안할 수 없고 사람이 죽음을 고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필연한 것입니다. 왜? 다 같은 물질 속에 살면서도 젊어서는 그것을  얼마든지 자유로 취할 수 있는데 늙어서는 있어도 못 취합니다. 내가  노쇠해지니, 색동저고리가 원하지마는 못 입습니다. 인생이 제일 그리운 것이  뭐냐 하면은 사십대 자유하던 것보다도, 이십대 울룩뿔뚝하던 것보다도 십세에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분주하게 놀던 것보다도 인생이 제일 그리운 것은 어머니  그 품속에서 아기노릇 하던 그것이 제일 그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사람들이 과거를 회고할 때에 그저 자기 고향에서 중우 벗고  작대기 말 타고 이렇게 여기에 저게 다니던 그것, 이렇게 하던 그것이 제일  그립고 회상되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사람이 점점 노쇠 해지는 것을  슬퍼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데 이런 참 슬프고 기막히는 이 죽음을 주님이 면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늙지 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죽지 안합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병들지 아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쇠하지 아니하고 낡아지지 아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첫째 아담에 속한 겉사람 고기덩어리는 이것이 쇠해지고 더러워지고  점점 송장화되어지지마는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우리 심령은 날로  새로와집니다. 이래서 겉은 노쇠해서 송장이 되어가도 속에는 청청한 영생의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런 구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어떤 그 계곡에 가 가지고 며칠을 울었다고 합니다. 왜?  아무리 봐도 거기에 있는 나무도 수명이 나보다는 길고, 거기에 있는 암석도  수천 년 지냈지마는 생생하고, 인생이라 하는 것은 그저 칠십이 옛날부터  드물다, 인간 칠십은 고래로부터 많지 못하고 드물다.

 이렇게 백 년 이내의 짧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비참해서 '너무도 인생이  비참하다. 인생이 불쌍하다. 인생이 가련하다.' 하는 그 말을 계곡에 가 가지고  여러 날을 울고, 또 자기 침대에 누워 가지고 여러 날 울고 인생을 비관하는  그런 사람들을 저도 더러 접촉을 했습니다. 이렇게 울어도, 힘써도, 각오해도,  조심을 해도, 아무러 준비를 하려고 해도 인생 이 영원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노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우리 주님이 이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참 요사이도, 그뭐 그래 살아봤자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조금 차이는 있기는 있지마는 눈 밝은 사람이 보면은 세 살을 속이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저 사람은 오십 세인데 저 사람은 사십 세 청년 같다'  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오십 세를 딱 들어맞줍니다.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아무리 위생 주의를 하고 뭐 영양을 어떻게 골고로 섭취하고 한다고 해도  인간이 나이를 속이지 못합니다. 늙음을 속이지 못합니다.

 또 사람이 다문 한 해라도 더 살려고 뭐 장수한다면 그 까다로운 것이나 피곤한  것이나, 시간이 드는 것이나, 모든 정성이 드는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장수법을  취하려고 사람들이 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이 귀한 줄도 알고,  젊음이 귀한 줄도 알고, 쇠하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하고, 더러워지지 안하고,  병들지 안하고, 죽지 안하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마는 인생 스스로는 이 문제를  해결 아무도 못 합니다. 이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죽음의 원인되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대행으로서 의를 입혀 주셔서 의인들이 받는 그 축복에  우리가 함께 참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면 멸할 것이기 때문에 피해서 멀리 피해서 몇해 동안 있다가 육칠십  년이 되면은 하나님의 법대로 심판받아 죽는 것이 인생인데 하나님을 우리의 친  아버지 만드셔서 하나님과 우리와 친부자의 관계로서 우리가 구하면 당신이  우리의 소리를 듣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어떨 때는 기도는 하기는 하지마는 '이것조차  들어 주실까?' 한 데도 다 들어 주십니다.

 만유의 대주재되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무엇을 이루어 준 그것이 큰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만물의 때 같은 내가 자존자 창조주 대주재 되신 이분이 내  아버지돼서 이분에게 내가 무엇을 구할 때에 그분이 내 말을 듣다니! 나하고  대화하시기를 원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이 들으신다는 증거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그것을 생각할 때는 참 어떻게 감사해야 될런지! 마음 가운데에  감격해서 그뭐 눈물 밖에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유기도 장로님이 신사참배 때에 일본 사람들이 데려다 놓고 고문과 고형을  하면서 신사참배를 하라고 이러니까 그분이 울면서 말하기를 '내가 일생 동안  사는 동안에 내가 구하는 것을 한 번도 안 들어 주신 일이 없고 나를 한 번도 내  몰라라 하고 버리신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내가 그분을 버리겠습니까? 나를 이  자리에서 죽여 주십시요. 나는 그분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참 대성통곡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감옥에서 내놓고 신사참배 안 하고  감옥 밖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황보 기 장로님 그분이, 강제로 붙들어 차에 태워 가지고 모든  교역자들을 다 신사참배 하는 데로 싣고 갈 때에 그분이 암만 안 가려고 해도  힘이 모자라서 강제로 끌어다가 신사 앞에다가서 머리를 숙일 걸 생각하니까  죽기까지 자기를 위해서 구속해 주신 이 주님을 '내가 어떻게 버린 사신 우상  원수 악마의 마귀의 이 신당 앞에 내가 절을 하겠느냐?' 하는 그 마음을 생각할  때에 가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든지 그만 가다가서 차 안에서 기절해  죽어버렸습니다. 보니까 빳빳하이 죽어서 송장이 되어 가지고 있어서 할 수 없어  병원 응급실에다가 입원을 시키고 다른 사람들만 데리고 갔습니다. 몇 시간  지나고 난 다음에 그분이 다시 희생이 되어서 깨어나서 집에 돌아가라고 오히려  위로를 하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그분이 신사참배를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황거요배는 해도 신사참배는 안 했습니다.

 이렇게 참 우리가 힘써도, 울어도, 원해도, 절제해도, 결심해도,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도무지 바라볼 수 없는 이 지극한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에 이 정죄되어서 지극한 권능으로 영원한 사망과 노쇠의  멸망이라는 이것을 우리에게 이 지공법을 범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이 일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이것을 주님께서 우리를 벗겨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셨나?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하나만 되는 독생자를 우리의 대속 제물로 아버지는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으로 우리의 온갖 면에 대속을 하시는  그것만을, 그 아들이야 어찌 됐든지 그것만을 원하시는 이 소원 가지고 아들을  땅위에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것을 보면은 늘 기도할 때마다 그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하신 것이 '아버지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시옵소서.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소원, 영원 전부터 소원하시는 소원, 아버지의 창조하신 이  택자들을 멸망에서 구출하는 이 소원을 가지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소원대로  하시읍소서. 내가 죽어도 고난당해도 어떻게 돼도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늘 기도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했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도 기도했고,  어데서든지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이것을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 소원하시는 이 소원을 어쩌든지 땅위에서 이루어 가려고  뭐 다른 소원 하나도 없고 이것만이 주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  멸망받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소원 이것만 이루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침내 삼십삼 년 사 개월이라 하는 그 시간을 거쳐서  아버지의 소원을 완전히 이루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아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주님이 이루신 그 공로를 인해서  우리가 구원된 구원입니다.

 우리가 과거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도 인생을 알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를  더텼습니다. 수많은 종교의 좀 위인이라 실력가라 하면은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인생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알아보려고 오만 종교의 그 유력한 인물마다  찾아다녔고, 또 대접도 했고, 선물도 했고, 물어 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인생관이 제게는 의문되는 점이 많아서 도무지  해결이 되지를 안했었습니다.

 이러다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비로소 예수교라는 이 예수님의 구원 도리를  인해서, 내가 알지 못해서 성경을 하루에 적어도 백 장 이상을 봤고 이렇게  했지마는,-그때'나는 예수 믿을 때 아닙니다.-봤지마는 뭐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몰랐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이 대주재가 계시면 대주재가 나타나서 나에게  알려달라'는 허망한 기도를 공중에 뛰웁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성신의  감동,-지금 보면 성신의 감동이지요.-감동이 와 가지고 나에게 뭐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깨닫는 깨달음을 주시고, 소망하는 이 소망을 주셔서 그때부터 한 십이  년 동안 수수께끼로 고민 중에 있던 그 십삼 년 되는 이십오 세 되는 때에  비로소 예수님 믿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 저도 모든  세상 생활 다 단번에 정리하고 모든 소유도 다 정리하고, 참 예수 믿게 되니까  어떻게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지 '남은 때는 주의 도대로 한번 살아보겠다'  하고서 출발해서 오늘까지 살아왔으니까 사십팔 년 사십구 년 동안을 살아  왔지마는 이래도 항상 그저 앉은뱅이 누운뱅이 모양으로 그렇게 마음에 만족된  신앙을 가져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두운 가운데 있었는데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뭐  안 찾는 사람도 억지로 하나님 말씀을 일러 듣겨 가지고 "인생은 하나님이라는  자존자가 지은 자다. 짓기 전에 너는 하나님의 예택 속에 있었다. 하나님이  예정할 때부터 너는 구원할 자로 예정이 돼서 예정에 참여했다. 창조될 때부터  구원자로 창조함을 받았다."  "무궁한 하늘나라가 있다. 인생의 언행심사에 심판이 있다. 하나님의 이 계시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신실하고 절대성 있는 하나님의 이 교훈과  계약과 예언의 말씀이 있다. 네가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더불어 의논하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  "영원한 멸망도 네가 멸망에서 구원해서 다시는 사망이나, 주리는 것이나,  목마르는 것이나, 병드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늙는 것이나, 쇠하는 것이나,  더러워지는 것이나 낡아지는 것이 없는 소망이 네 안에 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네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더듬어서 네 갈 길을 찾고  거기에서 신앙 양심을 써서 성신의 감동을 받으면 진리 보고 네가 깨닫는 것보다  더 확실히 깨닫고, 네가 믿는 것보다 더 확실히 믿고, 네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인정하고, 인간이 할수 없는 인간을 초월할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 너에게  신앙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네가 체험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이 은총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 생명의 도는 세계에 한쪽 모퉁이가 되는 저 팔레스틴 유대의 조그만한  땅에서부터 시작된 이 도입니다. 그 도를 거기에서 예수님은 증거하시고 우리의  대속의 공로를 지존 지성하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관계를 가지는 이 계약  완성을 다 하시고 모든 우리의 대속의 공로를 다 베푸시고 이 사랑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당신은 승천하시면서 십이 사도들에게 부탁을 하시고 칠십  문도들에게 이 생명의 도를 부탁하고 승천하시고, 지금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같이 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보이지 않는 이제  신성으로, 보이지 않는 다시 부활한 선인양성일위로 너희들과 같이 해서' 왜?  보이는 주님으로 같이 하면 거칠 때가 많아, 걸거칠 때가 많아. 걸거칠 때가  많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신인양성일위로 우리와 언제든지 밤낮 동거  동행하시겠다고 이 생명의 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이 도를 받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주님의 이 대속하신  사랑을 깨달아서 그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전하고 전하고 전해서 온 도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도 예수 믿게 됐습니다.

 참 천주교가 교리적으로는 타락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교파를 앞잡이로 세워서  이렇게 험악한, 반세 반천, 반은 세상이요 반은 천국인 이런 것으로서 먼저 모든  험악한 것을 토벌케 하시고 그다음에 진리와 영감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역사를 보면은, 순교자 복 자전이라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순교당했습니다. 뭐 그  입에다가 화약을 재놓고 터쳐서 온 전신이 파괴되면서 그래도 주님의 도를  배반치 아니하고 주님의 도를 전하고 떠남으로 한 생명이 떠남으로써 그걸 보고  한 사람 두 사람이 예수 믿게 되고 이래서 전부 생명으로 생명으로 전달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그 교회사 역사가가 말하기를 '교회는 피로 세운다. 교회는 피로  세운다. 예수님의 피를 따라 흘리는 성도의 피가 없으면 교화는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피로 세운다. 그러기에 인간 구원은 피값으로만 구원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거의 다 동감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도 어떤, 여기 그 청년 여기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왔는데,  '네가 요새 신앙을 지키지 안하고 하고 있다 하니까 네가 그래 되겠나? 우리  서부교회가 ○○교회에서 나올 때에 ○○교회가 신사 참배 하고 속화돼 가지고  그래 있을 때에 거기에서 개혁해 나올 때에 너거 선조가 수많은 눈물과, 수많은  애로와, 수많은 고독과, 수많은 마찰과 박해를 받아 가면서 이 서부교회를  세웠는데 그 핏줄을 타고 난 네가 어떻게 그 신앙을 배반해 가지고 되겠느냐?'  하니까 그 사람도 '예, 제가 교회 나가겠습니다.' 하는 그런 말을 들었는데 오늘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  우리가 그 전설에 들으면 토마스 목사가 우려 나라에 와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고 중국에서 이 한국 말로 성경을 번역해 가지고 그 성경을 한 배 싣고  오다가 이쪽에서 그것을 적이라고 대원군 시대에 그만 활을 쏴서 그 배가 화살에  다 무거워서 잠기게 될 때에 그 배는 물에 잠기고 거기서 헤엄쳐 나와 가지고 한  목사가 나와 가지고 그러니까 올라오는 것을 도끼로 쪼아서 죽이려고 도끼로  쪼을라고 하니까 그래 그 목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죽어도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  얻은 사람이요 영생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나는 자기의  본문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도끼로 나를 쪼아 죽이십시오. 그러고 이 책 한  권만 부탁하니까 이것만을 전해 주십시오.' 하는 그 책이 신구약  성경이었습니다.

 방방 곳곳마다, 민족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그 사소한 조그만한 시골  교회마다 그 교회에 복음이 들어갈 때에는 참 예수님의 이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수많은 남 모르는 눈물, 남 모르는 고난, 여러가지 애로를 거쳐 가지고 교회가  섰지 그렇지 않고 교회 선 곳이 없습니다. 또 예사롭게 다 전도가 된 것  같지마는 그 가정에 수많은 애로와 고생을 한 어떤 한 제물이 없이는 그 가정이  예수 믿는 가정 된 가정 없습니다. 그저 아무나따나 이러면 오히려 예수 안  믿으면 도리어 안 믿는다고 꾸중을 하고 믿으라고 하는 그런 대대로 믿는 그  가정에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맛을 모릅니다. 안 믿는 가정에 홀로 예수 믿는  그 사람이 이 복음을 그 가족에게 들려 주기 위해서 알려 주기 위해서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 사람이라야 예수 믿는 맛을 다소라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극한 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니 우리만 구원받아 가지고-이 구원을 받았으니 이렇게  힘들여 우리에게 구원을 전해 줬으니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하는 데도 우리가 힘을  들여야 합니다. 이 구원을 내가 받아서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아버지로부터 어떤 그 어려움을 당한 그것을 우리가 연상해서  우리 구원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우리가 그렇게 성의 없이 힘 안 들이고  지나가게 돈 벌이만 못한 힘, 자기 출세만 못한 힘, 취직만 못한 힘, 자기  직장에 바치는 것만 못한 힘, 자기 가정에 희생으로 바치는 것만 못한 성의,  성심, 힘, 이런 정도의 것을 가지고 주님이 이렇게 주신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참 우리는 부끄러운 일이요 황송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더 우리만 이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이 큰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떠하심같이 그 구원을 받은 우리 선배들이 그 구원의 사랑을 깨달아 자기에게  도가 전해 온 그 도의 전함의 어떠함같이 자기도 '생명을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사람에게 이 복음을 나도 이와같이 전 해야 되겠다' 해서, 먼저 믿은 민족이나  국가는 더 행복스럽게 살고 있는데 행복된 그런 자기의 본토를 떠나서 미개한  그런 나라에 가 가지고' 이 복음을 전 하느라고 참 모진 고통, 매, 헐벗고  굶주림 이래 당하다가 그 자리에서 그저 죽어도 한 두 사람 얻거나 말거나 하고,  또 그러면 유언해서 '네가 내 자식이라면은 내가 전하는 이 도를 네가 계속해서  다시 전하라' 해서 이 대 만에 자녀들이 좋은 호화로운 세상 다 두고 그곳에 와  가지고 다 바쳐서 또 선교하고, 또 거기도 달성 못하니까 삼 대 만에 사 대  만에, 우리 나라도 사대를 계속해서 이 민족 위해서 이 복음으로 자기의 모든  행락을 다 버리고 이곳에 와 가지고 복음의 제물된 사람들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세상 이런 사람들이 인식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 가는 것은 의례히 갈 줄 알지마는 예수 믿는 일이야  전연히 무식해 놓으니까 인식 못 했으니 아주 무 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를  몇해 동안이나 믿는 사람도 이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해서 누구를 믿어 주는  것처럼, 권찰들이 가면은 믿어 주는 것처럼 이렇게 하고 있고, 오히려 신앙이  장성한 사람들도 자기를 믿게 한 그이의 늙은 진액까지라도 다 뽑아서 자기가  차지할라고 어찌됐던간에 무엇인가 도움이나 덕택이나 정신적 도움이라도  받으려고 하는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사랑의 원리입니다.

그 무례한 것이 아니고.

 이런 식물들도 밑에 있는 떡잎은 위에 새 잎을 위해서 희생해서 떨어지고 또 새  잎은 또 그다음에 나는 새 잎을 위해서 희생해 떨어지고 하는 것이 식물의  이치요 모든 동물들의 이치요.

 고동이 제가 새끼를 사랑함으로 다른 것 먹일 것 없으니까 제 살을 깎아  먹이다가서 마지막에 다 먹이면 그 새끼가 다 커서 이제 에미는 다 갉아먹어  버리고 아무것도 없고 이러니까, 속담에 말하기를, 그 다 갉아먹고 나니까 에미  고동이 두루룽 떠내려 가니까 '어미 지금 물에 떠나간다' 이러면서 그래 보고  있다 하는 말과 같이 모든 그 원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런 추운날 아침에도 그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뭐  다 같이 학교 다니는데, 학교 다니니까 얼마나 뭐 피곤하겠소? 피곤하지마는  아침에 벌써 다섯시에 일어나 가지고 와 가지고 기도하다가 다섯시 반에 예배에  참석하고 다섯시 사십오분 되면은 그만 출발해서, 출발해서 가면은 어디 뭐 기쁜  데가 있습니까? 환영을 하고 있습니까? 누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뭘 줍니까?  가면 욕밖에 받는 게 없고, 밉상밖에는 받는 게 없고, 반박밖에는 받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작으나 크나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자기가 깨달아  느낄 때에는 오히려 거기에서 자기 당하는 희생은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해서 이 어린 학생 이것을 멸망에서 구출할까? 그저 뺨을  맞아도 좋고, 욕을 얻어먹어도 좋고, 어쩌든지 이 학생만 보내줘 가지고  구원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속에 역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로 우리가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큰 사랑의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도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어떤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했는가 하는 그걸 생각해서 우리도  어떠한 힘을 써 가지고 내 구원을 이룰까 하는 그것도 생각해야 되겠고, 또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으니 나도 이 구원을 어떠한 사랑으로  형제에게 전해야 되겠다는 그것도 우리는 각오를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씀했습니다. '그는 근본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됨으로 우리를 부요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다 그랬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부자가 옷 한 벌을  입을 수 없기까지 가난해졌습니다. 이 구원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는  당신의 부요를 누리고 당신의 부요를 우리 위해서 희생하지 안하면 우리가  구원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존영입니다. 당신의 그 높으심을 우리 위해서  낮아지는 희생이 아니면 우리를 구원 못 합니다. 당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순종하는 그 일을 하지 안하면 못합니다.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죄  아닌 온갖 것에 순종하는 이 순종 아니고는 구원 못 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 부요가 가난해지시고, 그 존귀가  낮아지시고, 그 주권의 자유가 종처럼 복종하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생명까지  죽지 안하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온 구원은 큰 부요를 희생한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소유나 무슨 소유의 관계라고 해 가지고 이 구원을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유의 어떤 게 다 희생돼 내가 거지 거지 어떤 거지의  어떤 거지에 이르러도 이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그 가난이 되 어져도 이 구원은 내 줄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 우리는 낮아진다 할 지라도 낮아지지 않기 위해서 이 구원 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을 위해 거지를 각오하고, 아주 천하고 낮아짐을  각오하고, 말할 수 없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에게도 이 복음을 위해서 내가  그에게 순종하는 죄 아닌 일은 순종해서 말단의 인간에게도 내가 죄 아닌 데는  내가 순종하는 이 순종을 각오하고, 마지막에는 몸과 그 생명이 죽는 데에  이를지라도 우리는, 이 구원을 등한히 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크게  역사해 가지고 주신 이 구원을 나는 이걸 희생하기 싫어서 이 구원을 우리가  저버리고 이 구원 이루는 것을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요와 높음과 모든 자유하는 자주장과 모든 우리의 생명을 다 희생해서  우리는 이 구원 이루어야 됩니다. 죽어도 이루어야 됩니다. 어디까지 천해져도  이루어야 됩니다. 어떻게 천한 복종이라도 내가 이 복종을 함으로 구원이  된다면은 복종 못 할 것 없습니다. 내가 어 데까지 거지가 돼도 이 거지가  됨으로 구원 얻고 이 거지 안 되려 하면 구원 못 얻는다,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하면 어디까지 거지가 되어도 우리가 이 구원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어디까지  낮아져도 이 구원은 놓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렇게 이룰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구원을  알았으니 이 구원을 전하는 데도 우리는 그러합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학생을  하나 심방을 한다든지 우리가 한 형제를 구원하려고 하면은 각오해야 됩니다. 이  구원이 전달해 오기를 근본 부요하신 분이 가난해짐으로 전달해 왔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낮아지심으로써 이 구원이 전달해 왔습니다. 주권하고  자유하는 잘난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종의 종이 됨으로써 이  구원이 전달해 왔습니다. 몸과 그 생명이 다 희생됨으로써 전달해 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구원을 받았으니 조심해서 우리 자신의 구원도 이 네  가지에 어떤 희생이 있어도 우리 구원을 등한히 하거나 뒤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또 우리가 형제를 구원하는 데도 아예 이 네 가지 성질의 투자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네 가지 성질의 희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예 한 형제를 구원하려고 하면은 내가 똥이, 내가 이렇게 높은 사람이라도  똥같이 천해져도 천해짐이 없이는 거기에 꽃이 피지 않습니다. 열매가 맺지  않습니다. 내가 천해지는, 천해짐이 아니면 안 됩니다. 아무리 내가  고관대작이라도, 고관대작이라도 내가 구원할라고 하면은 거기에서 내가 당연히  높은 지위에서 높은 자리 있지마는 내가 구원하기 위해서는 낮아지고 낮아지고  천해지고 천해져도 천해짐이 없이는 향기가 안 나옵니다. 천해짐이 없으면 이  복음이 전해지지를 못합니다. 천해지지 안하면 이 복음을 받지를 못합니다.

 참 우리 교회는 그저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반사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고 저도 기도할 때에 제일 처음에 기도하는 것이 유치반 위해서  기도합니다. 둘째로는 중간반 위해서 기도합니다. 셋째로는 장년반 위해서  기도합니다. 넷째는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섯째는  우리 혈육의 가족들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반사들은 참 그 희생하는, 가만히 생각할 때에 그저 마음에 안됨이  많습니다. 왜? 다른 교회는 모두 따뜻하게 난방 장치를 해 가지고 그  주일학생들이 볼볼 떨면서 가면은 그저 후끈후끈한 그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  있고 장년반도 그럴 수 있는데 그 어린 것들이 와 가지고 아무 온기 없는 아주  차디찬 의자 위에서, 그렇지 않으면 마루바닥 위에서 거기에서 앉아서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게 마음에 안됐지 마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마는 그렇게 하려고 하면은 열 평 짓던 예배당을 다섯  평밖에는 못 지을 것이고, 또 천 명 구원하는 그것이 오백 명밖에는 구원 못 할  것이고 이러니까 그저 그 면이 좀 안됐지마는 저희들도 어려도 예수의 사랑에  깨달아지고 주의 은혜에게 부탁하고 주님에게 부탁하고 그저 힘있는 대로  한평이라도 더 지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자, 왔던 사람이 자리 없어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래 그래 해 나가다 보니까 참 다른 교회의 짓는 반 면적의 값이  안 들어 있습니다. 지금 여기다가 다른 교회와 같이 그렇게 참 오는 그  학생들에게나 또 교인들에게 이렇게 어려움 없이 예배를 드리도록 하려 하면은  지금 지은 것 이만치 돈이 들어야 됩니다.

 얼마 전에도 와 가지고 서서 예배를 보지 또 장소가 없어서 저 뒷 구석에 있다  가지 이래서 '아무래도 안됐다. 우리가 어쩔 수 없으니까 의자 연보를 해  가지고' 돈이 없을지라도, 뭐 예배당 짓는 데도 많이 연보했으니까 돈 없지마는  어쩔 수 없이 '또 연보를 해 가지고 의자를 만들자' 해서 의자를 천삼백 몇 개를  맞췄습니다. 지금 한쪽머리에 만들고 있는데 십이월 말 안으로 일충과 사층에는  의자가 다 와서 들어설 것입니다.

 그러고 장년반에 대해서도 이거 좀 미안하지마는 어쩔 수 없으니까, 과거에  우리가 이 방석을 해 봤습니다. 방석을 해 보니까 뭐 사람만 앉아서 빼꼭 차니까  방석을 해놔야 잴 곳이 없습니다. 이 방석을 해 가지고 얼마 좀 해 가지고 이  밑에 지하실에 재어도 안 되지 잴 데가 없어. 이래 놓으니까 할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잴 데도 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고 그저, 그 말도 있습니다. 뭐 요만한  손바닥만한 것이라도 해서 깔고 앉도록 그렇게 하려 해도 그것도 간수하기가  그렇지. 이러니까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이, 손바닥만해도 여기 않는 데만 대면  위생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그막씩 해 가지고 가볍게 해서 책보에 같이 넣어  가지고 와서 그걸 앉아 깔고 앉아서 그렇게 좀 너무 차운 비위생적인 그런 것은  좀 면하도록 해 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거 뭐 누가 책임 없고 우리가 다 연보를 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연보야  냈지마는 사람 구원에 급급하니까 언제 그런 걸 그래 만들 여가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 이 강단도 이래 놓고 다른 사람이 오면은 ' 강단을 저래 놓고? 강단  저래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묻는 사람 많습디다. '목사님, 강단을 저래 해  놓은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말하기를 대답을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녜, 강단을 잘 만드는 것이 좋은데 아직까지 여가가 없어서 그걸  만들 그만 형편이 안돼서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다 따시고 얼마 전에도 '저게다 뭘 피워야 안됩니까? 세멘인데  좀 피워야 안 됩니까?' 이래서, 그러나 다 그래도 같이 피우면 같이 피우고 같이  따시지면 갈이 따시게 지내야 될 터인데 온 교인들이 다 그러니까 이제 강단만  짜다라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 그거요.

 우리는 이러기 때문에 다른 데는 예배당 백 평 지었다 하면은 사람 앉는 것은  그저 한 사오십 평 되고 나머지기는 다 부속 건물로 달리 됩니다. 여기에는 강단  외에 여기까지 빼꼭 찹니다. 자리가 모자라니까. 이것은 우리가 자꾸 돈을  내지마는 교회가 자꾸 계속해서 가속도로 이래 커 나가니까 언제 그런 절 할  여가가 없고 또 우리가 또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자꾸 연보만 많이 하면은 뭐  오히려 그 사람들 구원에 지장될까 싶어서 이걸 말도 안 하고 이러니까 뭐 수에  비해서 연보가 적게 나오는 셈이고 또 먼저 나온 사람은 있는 대로 다 바치고  햐지마는 자꾸 사람이 불으니까 식구가 불으니까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에는 첫째가  하나님의 부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난해진? 요것을 배웁시다. 우리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고기 먹던 사람이면 나물  먹고, 밥 먹던 사람이면 죽 먹고, 그것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는 그 정로입니다.

 이러므로 가난해지는 것, 낮아지는 것, '내가 이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나  위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낮아졌는데 내가 암만 지위야 높으지마는 내가 이  형제들에게 높은 지위의 자세를 부리지 못하고 높은 지위에서 형제 구원을  위해서, 의무와 책임은 내가 다 감당하지 마는 내가 천하게 낮아지게 낮아지게  내가 낮아짐으로써 그들에게 구원이 되고, 낮아짐으로 그들에게 은혜가 되고,  낮아짐으로 이 복음이 전해지고 한다면 내가 못 낮아질 게 뭐 있느냐?' 낮아지는  것을 두 려워하지 맙시다. 낮아지는 것을 원하고 원하고 합시다.

 우리가 주의 복음 위해서 가난해지고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는 것 일 안 해서  가난해지는 것은 우리가 죄지마는, 또 능력 없어 가난해지는 것은 죄지마는,  주님의 축복 없어서 가난해지는 것은 죄지마는 우리가 이만침 부요할 수 있어도  이 복음 위해서 가난해지는 것, 죄로 가난 해지는 거 아니라 주님은 부요하신  분이 우리 위해서 가난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위해서 좀 가난하게, 또 원하고 원해서 이 복음을 위해서  낮아지고, 또 이 복음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내가 복종하는 것, 이  복음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것.

 이런 것을 예수님의 사랑을 고요히 묵상하는 거기에서 마음이 우러나서 '내  구원은 내가 이렇게 주신 구원을 내가 그 빈부 문제, 높고 낮은 제, 종되고  자유하는 이 주권 문제, 나를 위하는 이 모든 얻고 잃는 이 모든 득실의 문제,  희생 문제 이것 가지고 이 구원에, 내가 이 구원 이루는 데에 이것 때문에 내  구원에 지체한다면 나는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죄인이다. 지옥 가야 마땅할  죄인이다. 이렇게 큰 사랑으로 구원 주신 이 구원을 나도 힘껏 이루어야 되지  않겠나? 나만 이룰 뿐 아니라 나도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그저 힘있는 대로는  차차 해서 나도 주님과 같이 이 복음 위해서 다 가난해지고, 다 낮아지고, 다  천해지고, 다 희생되고 가련.' 하는 이것을 하지 못해도 소원은 우리가'해야 될  것이고 기도하고 기도해서 마지막에는 이 길을 우리가 걷고야 말아야 될  것입니다. 이 길을 걷고 가야 될 것입니다. 이 길을 걸음으로써 끝을 마쳐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공로를 아는 사람은 부요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자기가 왕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초신자를 위한 기도}  주님, 측량 못 할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 택자들을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구원을 인간 스스로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이 구원을 이루어 갈 수도  없습니다. 악령과 죄악과 사망의 방해가 우겨싸 덮고 있는 이 가운데서 오늘도  여러 형제를 거기에서 해방시켜 구출해 주님 앞에 나오게 됨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이미 성령으로 감동시켜 불렀사오니 성령으로 감동시켜 저가 지극히 크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과, 지옥에서 하늘나라 시민이 된 것과, 겉사람은  죽으나 주님 오시면 부활하여 영생할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믿는데 있게  하시고, 이럼으로 이제부터는 말에나 행동에나 마음의 생각 모든 전생활을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주님의 기뻐하심을 생각하고, 주님의 법도를  생각하여 주만 바라봐 주의 영육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깨끗이 믿음으로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고, 저들이 무슨 소원을 의논을 주님에게 할 때에  주님은 낱낱이 들어서 이루어 주사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에도 잘 참고 견딘 진실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  전체가 다 믿게 하시고 전부가 주의 축복과 은혜로 평강 안에서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 종들에게도 주님의  구속의 이 사랑과 우리에게 도를 전해 준 무수한 성도들의 그 모든 희생을 밝히  깨닫고 이대로의 자신도 모든 투자의 형제도 구원하고 자기 구원도 이루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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