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지 하면 보혜사 성령주신다

 

1987. 12. 23. 밤 (수)

 

본문:요한복음 14장 14절∼2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우리 기독교는 믿음으로 모든 구원도 이루고 모든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에 전쟁에 큰 용기가 돼 가지고 승리한 것도 다 믿을 때에 그런 용맹이 돼  가지고 승리를 했고, 또 원수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믿음으로 앗수르 십팔만오천의  그 군대가 다 전멸이 돼서 승리를 했고, 또 믿음으로 이 구원 때문에 진리 때문에  불속에 던지움을 받았을 때에도 불에서 타지 안하고 구출이 됐고, 또 사자굴에  던지움을 받은 데서도 믿음으로 그들은 다 하나님 능력의 구출을 받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 외에도 믿음으로 죽어서 썩어 있는 자가 살아남을 받았고, 또 믿음으로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여 명이나  되는 그런 사람들이 다 먹고 남았던 것입니다.

히브리 11장에 보면 전부 “믿음으로 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기독교의 유일한 능력입니다. 이래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음이라고 그렇게 말한 데 대해서 잘못 알고 내가 믿는 그 마음, 내가 믿으면 내  믿는 마음에서 그런 온갖 살아나는 일과 또 승리하는 일과 또 성공하는 그런  일이 다 내 믿음 안에 있는 줄로 그렇게 사람들은 오해를 하니까, 자기가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인데 자기가 생각하는 그 믿음 속에 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자꾸 의심을 합니다.

“믿음이 능치 못함이 없다” 또 “모든 성도들이 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했다” 이렇게 말씀하는 그 믿음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주신 것이 하나님이요, 우리에게  여러가지 모두 다 계약으로 선포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이렇게 선포한 것은 신구약에 기록한 이 모든 것은  주님과 우리와의 계약되어 있는 계약입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이 계약을 선포해 놓은 이 사실을 우리가 계약  선포해 놓은 대로 주님이 나에게 대해서 ‘네가 이리이리 하면 내가 요 계약대로  이루어 주시겠다’ 하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걸 믿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믿는 것이오.

이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그 믿음입니다. 그걸 믿으면 됩니다.

믿음이 뭐 별스러운 게 아니고, 예를 들어서 이 육신의 아버지가 내가 너에게  지금 뭣을 하나 사 준다든지, 또 내일 학교 갈 때 내가 학비 그러면 등록금을  얼마를 필요하다 하면 내가 등록금을 내일 아침에는 내가 학교 갈 때에  주겠다든지, 그래 주겠다 할 때에 ‘아버지가 내일 아침에 등록금을 주시려고  했으니까 내일 아침에 학교갈 때에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말해야 되겠다. 말하면  주실 것이다.’ 그래 그걸 믿고, 아버지가 준다는 그 말을 믿고 자기가 그냥 학교 가지 안하고서  아버지를 찾아 가지고 ‘지금 학교를 가는 걸음입니다.’ 하면 그 아버지가 학교  갈 때에 등록금을 주시마고 약속한 그 등록금을 줍니다. 그와 꼭 같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가 학교 등교할 때에 등록금을 주신다고 갈 때에 아버지에게  들리라고 하셨으니 내가 들려야 되겠다.’ 그래 들리면 아버지가 줍니다.

그러면 자기가 ‘학교 갈 때 아버지에게 들리면 아버지가 등록금을 주신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들리기만 하면 아버지가 등록금을 주실 것이다.’ 요게 믿는  겁니다. 주실 줄 믿고 들리는 것, 주실 줄 알고 아버지에게 들려서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 ‘만나려고 가면 아버지가 등록금을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믿고 바라고 아버지 만나러 가는 것이 그것이 우리로 말하면 믿음입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학생이 암만 어떤 사람에게 간다고 해 가지고 돈이 나옵니까?  아버지가 신실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신실로 인해서 그 아이가 학교 갈 때에  아버지에게 들리면 아버지가 등록금을 줍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그만 잊어버리고  아버지에게 들리지 안했으면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지마는 그 등록금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어데까지가 믿는 것이냐 하면 ‘아버지가 내일  학교 갈 때에 들리면 등록금을 주시려고 했다’ 하는 요것이 알고 인정하는, 알고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알고 인정하는 믿음. 알고 인정하고 또 그리고 행하는 것은  뭣입니까?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만나러 가는 것이오. 그것이  행하는 것이오.

아버지를 만난다고 돈이 되며, 또 어데 아버지가 줄 거라 인정한다고 돈이 되며,  또 아버지가 줄 것을 안다고 돈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그렇게 하는 그것  가지고는 돈이 안 되는데 아버지가 돈을 줘야 돈이 제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꼭 요걸, 믿음을 구별해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을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에 나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다 이행해 주신다’ 하는 것을 ‘뭣 뭣 뭣 약속했다. 약속한 것은 뭣 뭣  약속했다.’ 약속한 것을 자기가 알고 ‘무엇은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다.’ 약속한 것을 알고, 약속한 그걸 알아야 되지 약속 안 한  것은 소용이 없어. 약속 안 한 것을 제가 달라고 죽어도 주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뭣 뭣 얻을 것은 약속한 걸 알아야 약속하신 것은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면 약속한 것을 알고,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가 말했으니까  틀림없이 주신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다음에 행하는 것은 뭣이냐 하면  ‘요것을 받는 데에는 네가 어떻게 하라’ 하는 그런 모든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네가 얻기까지 나한테 계속 기도하라든지, 또 네가 요것을 얻는 데에는  무엇 무엇을 고쳐야 된다든지.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돈 줄 때에 그 학생이 아버지가 돈을 주면 등록금 받아  가지고 그만 노는 판에 가 가지고서, 뭐 전자오락이라 했나? 전자오락인가 뭐  그것 보러 가고 그러면 아버지가 돈을 줄 리가 없다 말이오. 그걸 고쳐야 주지.

고치고 바라면 틀림없이 주는 것 마찬가지로 그렇습니다.

사람은 변할지라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그것이 되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는  그런 모든 조건이 구비됐기 때문에 해 주시기는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돼요.

그러면, 그런데 우리가 알기는 알고도 아는 그걸 ‘그까짓 거 뭐’ 무시하는  그것은 이 사실을 안 믿기 때문에 그렇지 인간이 할 수 없는 걸 하나님이 해  주시마고 했는데 그 사실을 믿는다고 하면 억지로 강제로 뺏들어도 뺏들 건데 뭐,  해 줄라 하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데 모르면 안 되고, 인정 안 하면 안 되고, 또 네가 요렇게 하면 내가 주마  하는 그 행동을 안 하면 안 됩니다. 그 행동을 해야 됩니다. 알고 인정하고 그  행동 요것만 하면 그것 하면, 그것을 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 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것 하면, 알고 인정하고 주님이 하라 하는 대로 그대로 행동하는 그것은  그 세 가지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 가지는 누가 하는 겁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내가 해야 되는  것으로, 내가 한다고 하는 걸 아는 분 손 들어 봐요. 손을 들라면 버뜩 들어. 내가  안 하면 안 돼.

그러면 내가 한다고 해서 내가 한 그것이 불 속에 타지 안하는 것이 됩니까?  내가ㅡ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그와같이 했다고 해서 불  속에,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한 그것이 불에 안 타는 일이 됩니까? 그게  불에 안 타는 일이 됩니까? 그것이 불에 안 타는 일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안 된다고 아는 분 손 한번 드십시오. 안 돼. 안 돼. 안 되는데 안  타게 하신 것은 주님이 안 타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자에게 뜯기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러면 주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 하는 일이 각각 다르니 우리 할 일만 하면은  주님은 틀림없이 당신 할 일을 당신이 한다 그거요.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렇게 우리가 세 가지 믿으면 이것이 뭣이 될 줄  알고 있어. 믿으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안하고 제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 그것이 무엇이 되어지리라고 이렇게 자꾸 믿는 사람들은 암만 해 봤자  ‘내가 알고 인정하고 그와 같이 행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능력이 있어  되겠나?’ 이러니까 이 믿음이 생겨지지 안해. 그 세 가지는 우리가 하는 것이고  그 세 가지를 우리가 하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이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 가지 이것 하는 것은, 세 가지 하는 것은 이 일을 이루는   것입니까, 세 가지 하는 것은 이 일을 성사를 시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계약하신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도록 내 몫에 태인 내가 할 그 계약을 내가 이행하는  것입니까, 내가 그 일을 되게 하는 것입니까? 일을 되게 하는 것입니까 내가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해 주마’ 하는,  하나님과 계약된 그대로 내가 할 그 의무와 책임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그  일을 성공하는 그 능력이 믿음입니까, 뭣입니까? 만일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안 해 주면 그 일이 됩니까 안 됩니까?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랬으니까 이걸 사람들이 자꾸 똑똑히 알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러니까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 다 된다’ 행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 일생 동안 만 번 행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이러니까 우리의 믿음이 무엇을 하는 게 아니고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도록 우리가 계약 이행을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계약을 이행해.

그러면 쌍방 계약을 했는데 을이라는 사람이 계약을 지켰으면 갑이라는 사람이  계약을 안 지키면 갑이 위약자니까 거게 처벌을 당해야 됩니까 안 당해야  됩니까? 어찌 돼요. 을이 계약을 지켰으면 갑은 계약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만일 을이 계약을 지켰는데 갑이 계약을 지키지  안하면 계약 위약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됩니까 안 받아야 됩니까? 처벌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처벌받아야 돼요.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계약한 그대로 우리 할 일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그러면 그 세 가지 했으면 쌍방 계약인데 그  세 가지 했으면 우리 할 일은 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우리 할 일은 다 했어.

그러면 누구의 할 일이 남았습니까? 주 하나님 하실 일이 남았다 그말이오.

내가 그와 같이 했는데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하나님은 뭣 됩니까? 위약자 안  돼요? 위약이면 죄입니까 의입니까? 위약이면 죄입니까 의입니까? 죄. 하나님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없어. 요걸 알고 우리들이 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데 계약에 선포해 놓은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믿으면서도 행하며,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서, 행하면서도 ‘이 일이 되겠나? 이 일이 되겠나?’ 이렇게  만일 의심을 한다고 하면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라 했는데 인간 할 자기  책임을 한 것입니까 못 한 것입니까? 못 한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그와 같이 해도 ‘이래도 되겠나? 내가 이렇게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 된다 하지마는 되겠나?’ 이렇게 의심하면 누구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누구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이 일이 되겠나 안 되겠나 일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거짓말 한 일이 있습니까? 우리를 속인 일이 있습니까? 당신이  계약한 대로 우리만 이행하면 하나님은 척척 이행해 주시기를 원하고 원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시고 부활까지 하셔 가지고 이 일 하셨는데 우리가  우리 할, 우리에게 담당된 우리 의무를 착 책임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뭐  꺼리겠습니까 지체하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해 주시는 것을 꺼리겠습니까 좋아하시겠습니까? 어떻겠소? ‘야,  너무 네가 착착 알고 인정하고 행하니까 내가 그대로 해 줄라 하니까 너무  손해가 가서 안 됐다.’ 착착 그렇게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 주님이 해 주시기가  좀 힘이 드니까 꺼리십니까 원하고 원하십니까? 자, 꺼리실 것이라, 꺼리실 것이라고, ‘햐, 이것 그만 큰일 났네. 또 아는 대로  알고 계약한 대로 계약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고 이러니까 또 해 줘야 될세? 또  해 줘야 될세.’ 그래 자꾸 해 주면 해 줄 수록 당신이 좋아하시겠소 싫어  꺼리겠소? 좋아하셔. 요걸 믿어야 돼.

그런데 이것 ‘자꾸 이랬는데 자꾸 또 받고 또 받고 이러니까 주님이  귀찮아거리고 그 꺼리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을, 주님을 의심하는  것이고 주님에게 능력이 뭐 제한된 줄 알고 주님에게 소유가 제한된 줄 알고,  소유가 제한 되지 안해. 무한이라. 얼마든지 만들어 내요, 얼마든지. 막 우리를 복  속에 파묻혀서 드부렁드부렁 떠내려 가도록 얼마든지 만들어 놓을 수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독교는 전부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믿음으로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그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내가 요대로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 하는 것을 믿는 요것이 믿음인데 그런 사람마다 전부 다 이루어졌어.

계약한 것은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나 다 이루어졌어요.

죽어 썩어 내음새 나는 그 사람이 살아나는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데 있겠소?  그것도 약속했기 때문에 다 이루어졌다 그말이오.

지금 요번에 공과인데 여러분들이 요것 자꾸 읽고, 간추려서 말합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이 열여섯 가지 구원을 생각함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공연히, 공연히 여게 다른 모든 이종교들 믿는 사람들이 이 신을  사랑해야 된다 하니까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에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큰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이 사실을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열여섯 가지 구원 주신 이 구원을 주신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

열여섯 가지 구원을 주신 주님을 사랑하고, 손가락을 꼽아요. 열여섯 가지 구원을  주신 주님을 사랑하고, 둘째로는 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이 나에게 단단히  부탁하고 나에게 일러 듣기고 나에게 명령하고 요구하고 한 그 계명을 둘째로  지키는 거라. 둘째로 지키는 것.

그러면 몇 가지 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킵니다. 그 계명을  지켜. 요것 둘만 하면 돼요. 요것 둘만 하면 돼요. 요것 둘만 하면 그 속에 딴것이  자꾸 좋은 것이 자꾸 나옵니다.

열여섯 가지 구원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나에게 참 큰 구원, 지극히 큰 구원을  주님이 큰 희생을 해서 나에게 주셨다.’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이 구원  나에게 주기 위해서 다 내놨고, 하늘의 부요도 내놨고, 하나님이 또 피조물인  사람되어 오셨고, 또 하나님이 이 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고, 안  죽으면 안 되니까 안 죽으면 안 될 때에 죽기까지 하셨고, 또 죽기만, 죽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 다시 죽은 가운데서 나에게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죽은  가운데 다시 부활하셨고, 영원히, 부활하신 것은 창조주가 영원히 피조물의 꺼풀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사람을 입고 계시는 것이 우리가, 우리가 이 송장 껍데기, 막  썩어서 철철 내음새가 나오는 송장 껍데기를 우리가 입고 있는 것과 주님이  피조물인 인간 꺼풀 입은 것과 어느 것이 더 낮아지는 것입니까? 어느 게 더  천해지는 것이요? 우리는 뭘로 형언할 수 없어. 우리는 송장 같은 그런 것보다  그거보다 얼마나 천한 걸 우리가 입어도, 주를 위해 입어도 주님이 나 위해서  사람되신 것만 못해요.

이 사랑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내가 주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요 두  가지만 하면 돼요, 자꾸.

주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하고 보니 그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그 계명은 무슨  계명이냐 하면 어떨 때에는 ‘네가 요 일은 아무리 네가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 계명은 보니까 삐뚤어진 일을 하지 말라는 그 계명이요, 옳고  바른 것은 하라는 계명이요, 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는 계명이요, 또 하나님을  배반치 말라는 계명이요, 마귀에게 미혹받지 말라는 그런 계명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이 거게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큰 힘 들였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걸 대번에 다 지킬 수가 있습니까? 조그매 지키면,  주님을 조금 사랑한 것만치 그 계명은 조금 지키고, 또 주님을 또 조금 사랑하는  것만치 그 계명을 지키고, 이래서 계명 지킨,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꾸 그러면  차차 차차 커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차차 차차 커져.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차차 커지면 또 계명 지키는 것은 차차 커지겠습니까  작아지겠습니까? 커지지. 그렇지 않소? 주님을 사랑함이 커지고 사랑함이 커짐에  따라서 계명 지키는 게 차차 차차 커진다 말이오. 요것 두 가지만 하면 돼요.

요 두 가지 하면 뭘 주시는고 하니 첫째로 주시는 것이 보혜사 성신을 주신다  여기 말씀했어. 보혜사 성령을 주신다. 보혜사 성령은 오늘 아침에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다 몰라도 그만 보혜사라고 알고 자꾸 행해  봐야 알아요.

보혜사라 하는 것은 성령의 이름입니다. 성령의 이름을 보혜사라 이랬는데  보혜사라는 건 성령의 직책을 말한 거라, 성령의 직책. 보혜사라 하는 것은 도울  보자, 돕는다고 보호할 보자, 도울 보자, 보호할 보자. 보호하고 돕고, 보호하는 것.

보호할 보자, 또 은혜 혜자, 은혜 혜자. 공짜배기로 은혜로 우리에게 주는 것, 은혜  혜자. 또 사자는 스승 사자. 보혜사.

그러면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을 다 공짜배기로  줘. 필요한 것을 공짜배기로 주시는 성령님이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으로  줘요.

필요한 것을 공으로 주니까, 공으로 주니까 값이 헐해서 공으로 주는가 그 값을  우리가 낼 수 없는  너무 이 피조물로서는 가질 수 없는 너무 값이 커서  우리에게 공으로 주시는가, 값이 헐해서 공으로 주시는가? 자, 값이 헐한 것이라서 우리에게 공으로 주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다 유한한 것, 불완전한 것, 다 썩을 것, 없어질 것,  더러워질 것 이런 것들인데 이 은혜로 주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것,  완전한 것, 영원한 것, 불변한 것, 다 이런 것이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댓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댓가가 없어. 우리에게는 줄 만한 댓가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에게 모든 걸 은혜로 주시는, 모든 걸 우리에게 은혜로 우리에게 갖다 주시는  이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 있는, 우리에게 필요 있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을 우리에게 공짜배기로 갖다 주시는 분의 그분의 이름이 누굽니까?  보혜사.

그 모든 걸 갖다 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서 아무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영원히 우리를 지켜 주실 이가 누굽니까? 보혜사 성신님이요.

또 우리는 뭐 아무것도 모르는데 옳고 바르게 참되게 우리는 잘 가르쳐서 바로  인도해 주실 이 그분이 누굽니까? 보혜사라.

이렇는데,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첫째로 보혜사를 너희들에게 주겠다  이랬어. 알겠습니까? 요걸 믿어야 돼요. 요것 얼마나 중요한데 믿어야 돼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여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15절에 “계명을 지키리라” 지키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분이 항상 우리와 같이 있어.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실 그분이 항상 나와 같이 있지, 나를  모든 피조물의 해에서도 사망에서도 마귀에게서도 다 나를 보호하시는 그분이  항상 같이 있지, 또 내가 모르는 것 전부 옳고 바르게 다 가르쳐 주시는 그  선생님으로 같이 계시지.

그러면 보혜사가 자기와 같이 있으면 문제될 게 뭣 있습니까? 다니엘이가 그때  모든 술객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졌던 것이 뭣이냐 하면 선생님을 잘 만났어.

요셉이가 아무 공부 안 했는데 역사에 전무 후무한 세계의 대국의 통치를 제일  잘 하는 그 통치의 지혜를 그분이 누구한테 배웠어요. 요셉이가 누구한테 배웠어?  저 ○선생? ○○○중고등학교 선생? 보혜사한테 배웠어, 보혜사한테. 다니엘도  보혜사한테 배웠어요, 보혜사한테.

이러니까 이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 어데서든지 그분이 보호하면 피조물  아무것도 해하지 못해요. 이런 절대 보호자가 나를 보호하고 함께 계셔. 내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다 공짜배기로 주시는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시요. 그분을  나와 함께 계시도록 하는 데에는 뭣 하면 돼요? 몇 가지 하면 돼요, 손가락으로?  한번 더 들어 봐요, 손가락으로? 그래. 두 가지, 두 가지.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것 요것 하면 돼요. 요거 굳게 잡으십시오.

요것 지금 주일 공과인데 요것하면 제일 처음에 주시는 것이 뭣이냐 하면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서 밤이나 낮이나 항상 우리 안팎에 계신다 했어.

우리 속에도 계시고, 우리 속에 절대 보호가 계시고, 절대 은혜가 계시고, 절대  선생님이 계시고, 우리 안에도 계시고 우리 밖에도 계신다 했어. 요렇게 해  주시요. 두 가지만 하면 요렇게 해 주시요.

또 그다음에는 뭘 해 주시는고 하니,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알기를 어째 알아요?  하나님과 나와,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이와같이 하는  것을 우리가 어째 압니까? 이 보혜사가 오면 우리에게 알려 줘. 이 보혜사 선생님  오면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쳐 준다 말이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23절에,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몇 가지 하면 됩니까?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했으니까 몇 가지 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리니” 두 가지라, 내나  두 가지. 두 가지.

지키면 어찌 된다 말이요?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이러면 두 가지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또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우리가’ 하는 것은 누굽니까? 김가 이가  박가입니까 누구요? ‘우리’는 누구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이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서 우리와 밤낮 함께 계셔. 하나님이 함께 계셔.

이러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자 따라합시다.동거!동거는 같이 있다 말이오.동행!같이 행한다 그말이오.동역!같이  일해요.

이러니까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밖에 계시니까 우리는 그분이 움직이는  대로 피동돼 가지고 못 할 게 없어.

이러니까 두 가지만 하면 첫째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항상 같이  있게 하시지 그다음에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주님에게 사랑받고,  성령님에게 사랑받고, 거처를 같이 하고, 동거 동행 동역하고, 또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것 무슨 말이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해.

우리 나라에 요번에 대통령은 ○○○씨가 됐는데 ○○○씨가 정권을 잡아  가지고서, 정권을 잡아 가지고 일할 때에 ○○○씨가 하는 모든 일은, 경상도에  하는 것이나, 뭐 충청도에 하는 것이나, 전라도에 하는 것이나, 강원도에 하는  것이나 어데든지 하는 것이나, 경제면이나, 이 과학면이나, 모든 문화면이나,  교육면이나, 국방면이나 모든 면을 어떤 사람을 사람을 통해서 하면,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한다면 그 사람의 권력이 어떻습니까? 자, 그러면 ○○○ 대통령은 대통령이지마는 자기 하는 모든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모든 온 전국에 무슨 노릇 합니까? 무슨 노릇  하요? 무슨 노릇 하지? 누가 하노? 대통령노릇 하지. 속에 대통령은 들어  있지마는 실은 대통령은 그는, 그 사람은 온 전국에 대통령노릇 합니다. 그렇지  않소? 자, 주님은 대통령만 못합니까? 주님은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보이는 것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것을 다 당신이 하시는데 “나의 행하는 것을,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당신이 하시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와같이 나타낸다 하니까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그 사람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돼 가지고 있습니까? 여게, 그전에 빵장사? 그 사람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것을 하시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하니까 그 사람이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뭣노릇  하는 사람이지? 왕, 하나님이지? 왕노릇이 하나님노릇이지. 그렇지 안해? 하나님.

하나님노릇이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는 말씀은 그 사람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노릇 하게 하리라 하는 말씀과 틀립니까 옳습니까? 거기 조그매 거짓말이  좀 들어갔소? 거짓부리가 있어? 없어.

자, 보혜사,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동거 동행 동역, 또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넷째로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뭣 하면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까, 몇 가지? 손가락으로, 몇 가지? 뻐뜩 들어 봐요, 얼마나 좋소?  막 뛰지 뛰어.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 한번 만났는데 말이요, 전화로 만났는데 나한테  그라기를 ‘어짜든지 기뻐하이소 기뻐하이소. 어짜든지 기뻐하이소.’ 기뻐하라고  자꾸 부탁을 자꾸 해. 얼마나 기쁜지 기뻐하라고, ‘기뻐하이소 기뻐하이소.

언제든지 항상 기뻐하이소. 얼마나 기쁩니까? 기뻐하이소.’ 참 뭐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얼마나 기쁜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데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요 일을 자꾸 해 나가면 여게서 몇  가지 나와요, 이번에? 몇 가지? 이러면 몇 가지 얻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가지? 다 잊어버렸구만. 네 가지 얻어, 네 가지. 네 가지. 실지로 해 봐요,  되는가 안 되는가? 되는 것만치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요것을 양 되는 대로  하면 자꾸 요 두 가지가 싹이 트면, 요 두 가지가 싹이 트면 몇 가지가 싹이  틉니까? 네 가지가 싹이 터. 두 가지가 자꾸 자라가면 네 가지가 자라가. 이 두  가지가 연한 순같이 자꾸 무럭무럭 자라가면 이 네 가지가 자꾸 자라가요.

이러니까 이 기독교는 잠깐 완전자가 되고, 이러기 때문에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이랬어. 나중된 자라도 의심없이 요 두 가지를  믿고 요대로 전심 전력 기울여서 요 두 가지만 실행한다면 잠깐 커 올라가  버려요. 잠깐 올라가. 사람이 못 따라가요.

이러니까, 이런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 뭣 때문에?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이렇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이것 때문에  우리를 대속해서  죽으셨어, 살으셨어.

이러니까 요것 두 가지를 놓지 말고, 여러분들이 다 이제 차차 차차 요 두 가지를  하면 거게서 내부가 차차 차차 세밀해지고 자꾸 온전해지고 이래 되는데 우선 요  두 가지만 알고 그대로 하면 저절로 그만 자꾸 자라 나가요, 그대로 하면.

그대로 하면 ‘아, 요게 대해서는 내가 모르겠다. 요게 대해서는 모르겠다. 성경  봐야 되겠다.’ 싶으면 성경 보니 그렇거든. ‘됐다!' 자꾸 이래 가지고서 성경을  자연히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지고 자꾸 또 ‘요러니까 한번 해 보자.’ 해  보니까 또 증거가 나오고 해 보니까 증거 나오고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이래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게 되면 그러면 거게서  점점 자기의 경험의 지식과 체험의 지식이 자꾸 생겨져요.

이러니까 오늘 저녁에 이제 공과를 한번 재독했는데, 우리가 몇 가지에다가 전심  전력 기울여야 됩니까? 두 가지에 전심 전력 기울이요.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몇 가지 주십니까? 네 가지 주셔. 두 가지에 전심 전력 기울이면 주님이 네 가지  주시요. 두 가지를 자꾸 기르면 조그매 크면 네 가지가 또 네 가지를 좀 큰 것  줍니다. 또 더 크면 더 큰 것 줍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이러니까 깨달은 사람 이 외에 딴것을 택할 게 없어. 그러기 때문에 “만일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위엣 것만 생각하면 저절로 되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대로 사니까 떡은 저절로 생겨. 저절로 생겨.

말씀대로 살면 자꾸 부자될 행동만 하거든. 말씀대로 살면 형통할 행동한다  말이오. 말씀 어기면 돈을 탐하지만 저 망할 짓만 자꾸 한다 그말이오. 저 망할  짓만 자꾸 해요.

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광고 한번 더 하겠습니다. 이것 복잡해서 잘 모를지 모르겠는데. 주일학교는  이십오일 오전 여덟시 삼십분에 본교회에서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 분교에  있는 모든 연사들이 있어요. 탄일 축하하려고 준비한 모든  선생님들 전부 여기  와서 다 해야 돼. 본교회 와서 다 해야 돼. 이십오일날 여덟시 반에 이 본교회로  분교에 준비한 그 선생님들 전부 다 모이요.

‘아이구 그러면 여기 한 군데 어찌 다 하겠나?’ 하는 것은 여러분들 할 게  아니니까 모이기나 모이요, 모여. 보리떡 다섯 덩어리를 오천 명도 먹이고  남았는데 그뭐 찍해야 돼 봤자 만 명 미만되는 그것 여기서 못 해요? 다 할 수가  있어. 다 할 수 있으니까  어짜든지 이십오일날 여덟시 반에는 분교에서 거게서  축하하려고 준비한 모든 준비 다 가져 와야 됩니다. 준비 다 가지고 여덟시 반에  여게 다 모여야 됩니다.

그러고 또 중간반은, 이 주일학생은 이십오일날 아침 여덟시 반에 모이는데 이  중간반은 이십사일날, 이십사일날 밤 일곱시부터 축하를 드리고, 난 다음에는  구역장들과 권찰님들, 남녀 권찰님들이 중간반 학생들을 전부 여기서 일곱시 모여  가지고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는 그 학생들을 전부 인도해요. 인도해 가지고 저  모두 떡국 잔치 하는 데로 데리고 가요. 가서 요번에 톡톡히 대접해. 대접을  잘해서, 요번에 대접을 잘해서 진뜩 먹여놔야 앞으로 일하지. 떡국을 많이 먹이요.

떡국은 먹이지도 안하고 대접은 안 하고 만날 그 심방을 아무데 가라 아무데  가라. 가지 말아요, 그 밉상지겨 그러면. 나는 그 심방을 안 합니다. 내가 전도해도  내가 그럴 거요. 오늘도 그런 말 많이 있던데 보니까. 인간 구원이 그렇지만 인간  구원이지 자꾸 제가 또 제 자녀로 기를 수 있고 또 있는데 제 자녀를 자꾸  대접도 안 해 줄 것 뭐 있는가? 떡국을 잘 먹이요.

이번 이 성탄을 통해서 어떤 구역은 막 반사들이 구역장에게 뭐 그만 졸졸  따라붙고 좋아서 못 견디는 그런 것 있고 이게 있을 거라. 이러니까 아예 자기  구역장이 싫은 교인들 많아요. 자기 구역장을 싫어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이걸 또  놓지는 안해. 거머쥐고 놓지 안해. 죽을 지경이라.

이래 놓으니까 이사를 간다, 역부러. 장년반은 얼마라 하더라? 장년반이 얼마지?  석 달이가? 장년반 석 달이니까 ‘이것 석 달이 지내야 다른 구역으로 갈 수  있으니까 에, 석 달 동안 안 나갈란다.’ 석 달 동안 역부러  안 나오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 이제 석 달 지냈으니까 딱 날짜 돼 ‘석 달 지냈으니까 이제 다른  구역으로 갈 수 있겠지’ 하고서 떡 나가니까 딱 거머쥐고서 ‘하, 나왔느냐'고.

이것 또 밉상이 또 걸렸다 말이오. 밉상스런 구역장이 또 걸렸어. 이러니까 할 수  없이 ‘어라 안됐다. 딴데로 가야 되겠다.’ 다른 교회로 가는 거라. 그래 하지  말아요. 사람 죽이는 일 하지 마.

아예 봐서 안 될 상바르면 좋게 ‘너 아마 너 은혜되는 구역으로 가 가지고서  신앙 생활 하도록 해라.’ 이래야 그 사람을 구원해. 그래야 주님이 보시고 ‘이  사람은 참 제 구역 문제가 아니고 인간 구원이 목표로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기뻐할 것 아닙니까? 어짜든지 그 벌써 식구는 지금 마음이 떠 가지고서 지금 이래 가지고 있는데  기어코라도 석 달 동안 안 나오다 나와도 붙잡고 저거 구역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그런 그 행세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내가 여기 알아요, 다. 안면들 다 안다고.

손 들어 보라고. 벌을 받아야 돼, 벌을 받아. 그것 안 돼요, 그것은. 그것은  양도둑이라, 양도둑. 양도둑이지 선한 목자는 아니라. 그짓 하지 말아요.

올해는 이제 자기 구역을 다른 구역으로 암만 다니더란대도 구역을 바꾸고 싶다  하는 사람은 이제 광고해 가지고 신고함에 써넣어요. 신고함에 써넣은 사람은  그대로 다 바꿀 것이오. 바꾸고, 이제 하나 하나 내가 접해 봐서 혹 그 식구가 또  오해해 가지고 그런 것도 있거든. 잘못해 오해해 그런 것이니까 오해한 것은 내가  타일러 가지고 얘기를 하면 그분이 이제 안 가는 게 유익하면 안 가는 게 유익될  그런 사람은 안 가도록 내가 말할 것이고 옮겨야 될 사람은 옮기도록 해야 돼.

옮기면 살 터인데 옮기지 안해 가지고 죽인다 그거요.

저 어떤 분, 자기 자부라고, ‘우리 자부기 때문에’ 기어코 잡으니까 그  시어머니가 밉상이라 교회 나오기 싫은데 자꾸 거머쥐고 이러니까 그것 교회를  안 나오고 그만 죽이는 거라. 내가 ‘그리 말고 자부라고 그래 하지 말고 다른  데로 구역을 옮겨 줘라.’ 그것 좀 소견이 있어 놓으니까 옮겨 줬다 말이오.

옮기고 나니까 얼마나 잘 나오는지? 그것 그렇게 제 구역으로 세울라 하는 그런 사욕이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해야 되지 자기 구역 삼기 위해서만 그 사람을 어짜든지 그래 하면 못 씁니다.

내가 암만 공이 들어도 또 하나님께서 옮길 때는 옮기는 것이니까 그 마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니까 그럴 때는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해 줘야 돼요.

○○○집사, 저 ○○○가 외동딸같이 키웠어. 외동딸같이 키웠어요. 참 희생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 심리를 주관하시니까 ‘나는 구역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구역 옮겼어. 구역 옮기고 나니까 그 집이 그 옮기기 전에는  그렇츰 ○이 사랑하고 위해 줘도 자꾸 망하고 안 되는데 구역 딱 옮기고 난  다음에는 자녀도, 그 거지가 지금 부자가 됐어. 거지가 부자가 됐지, 자녀들도  신앙 좋지, 온 가족이 신앙으로 열심있지, 그런데 그것 만일 못 옮겼으면 어짤  거라? 그런 구역장들 많이 있어요. 그리 말아요.

그래서 어짜든지 이번 이런 기회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부터 먼저 붙여 놔야  그다음에 일이 돼. 그렇기 때문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취하라” 화평부터 해  놔야 그다음에 뭐 거룩이 되어지지 화평하기 전에는 거룩이 안 돼. 서로 적이 돼  가지고 무슨 거룩이 됩니까? 또 이십오일 새벽 찬양은 두시에 출발합니다. 두시 출발해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대원들이 책임맡은 집은 한 집도 빠지지 말고 다 가요. 그러니까 널리  지역을 못 차지해요. 못 차지하니까 좁게 좁게 해 가지고서 다 가서 그 찬양을  하도록.

그라고 우리가 선물은, 그 뭐꼬? 튀밥이라 하나? 뭐, 박상이라 하나? 뭐? 뭐라  그것 인제 이름이? 내나 강냉이로도 튀우고 쌀로도 튀우는 것. 튀밥? 박상?  박상이라? 박상. 그래 박상. 박상이면 족해요. 나도 여기 오기 때문에 아마 이거  여럿이 오면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많이는 오지 말아요. 스무 봉지 준비는 해  놨어. 박상 스무 봉지. 나 딴거 안 했어. 스무 봉지 준비는 해 놨는데 오면 한  봉씩밖에 안 줘요. 그래도 열 집 가면 열 봉지, 그러면 한 보따리 주지 안해요?  그거 돈 많은 것 찰밥 그런 것 먹으면 나중에 고장도 나고 안 됩니다. 이것 박상  이것은 암만 먹어봤자 병도 나지도 안하고 또 부풍하이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면  재미 있고 그러니까 모두 선물은 박상 하는 그거 저, 뭐꼬? 튀운 것. 그걸로 하는  게 좋습니다. 표준은 그것이요, 뭐 절대는 아니고 뭐 제 개인 자유로 하기는  하지마는 그러면 안 돼. 다 일반적으로 그래 해야 되지.

그러면 장년반 예배는 이십오일날 주일학교 마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예배  봅니다. 열시도 좋고, 열한시도 좋고, 열두시도 좋고, 거기서 주일학교 축하하는 걸  구경하고 은혜받고 같이 축하 같이 하고 그다음에 이어서 장년반 예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성탄 연보도 하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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