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지 행동 분류

 

1988. 4. 16. 토새벽

 

본문 : 마태복음 10장 19절-20절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함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전 생활을 분류한다면 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주관적으로,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여야 할 일 있고 또 객관적으로  다른 것에게 피동되어 행할 때 있고 두 종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내가 주장해 가지고서 이랄까 저랄까 하는 일 있고 또 내가 아닌  상대방이 어떻게 해서 내가 거기 피동되는 그런 때가 있고 두 가지 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내가 경영하고 내가 시작하고 내가 무엇을 처리하든지  이래 할 때에는 내가 능동이 돼 가지고서 내가 시발이 돼서 내가 일을 하게 될  때에는 그때는 성경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생각하라’ 이랬습니다. ‘생각하라’  또 오늘 아침에 하신 말씀은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할까 또는 무엇으로  말을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내가 여기에 대해서 동하고 정할까?’ 이렇게  하지 말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한 군데는 ‘어떻게 행할 것을 네가 자세히 생각하고 세밀히  생각하고 주의해서 하라’ 무슨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주의하고 그렇게 하라  이래 놓고, 또 여기에는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어떻게도, 어떻게 할까  하지 말아라. 무엇을 할까 하지 말아라.

 한 군데는 심각하게 주의해서 생각하라고 하시고 또 한 군데는 하지말라 이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은 이렇게 구별 있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만  성경이야 뭐라 하든지 자기대로 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행동을 두 가지로만 꼭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래 놔야 간추려지지 그렇지  안하면 그 마음대로 이래 해가지고는 되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두 가지로만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내가 동할 때 있고 다른 이에게 피동될  때 있다 말이오.

 그러면, 내가 뭣을 움직여서 동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럴때는 자세히  주의해서 지혜 없는 자와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 이랬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생각해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세히라 말은 아주 세밀히 말입니다. 자잔한 것까지 다 생각해야  된다. 자세히 생각하여 지혜 없는 자와 같이 그렇게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 이렇게 말했어.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고 세밀히 조심하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때는  우리에게 이미 명문되어 있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동할 때에는 성경 말씀대로 생각해서 동해라.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없는 자는 어떤 자를 가리켜서 지혜 없는  자라고 말하는 고 하니 땅위에 있는 인류 전부를 가리켜서 지혜 없는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어, 전부.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그라면 지혜 있는 자가 누군가?  지혜 있는 자는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혜 있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은 지혜 있게 했는데 예수님은 그라면 지혜 있게 했으면  어떻게 했는가? 아버지의 주신 이 계명대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이  계명대로, 이미 명문되어 있는 성문 의지, 성문 의지대로 했다 말이오. 성문  의지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두 가지 있는데 성문 의지, 이  글로 써 가지고 우리를 지도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성문 의지라이랍니다. 이룰  성(成)자 글 문(文)자, 글자로 이루어 가지고 우리에게 기록해서 딱 가르쳐  주시는 성문 지도가 있고, 성문 지도가 있고 또 은밀 지도가 있습니다. 은밀히,  성경에 기록하지 안하고 은밀히 지도하는 그런 일이 있어.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  지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문서 지도 영감 지도 있는데 우리가 동할 때는 그때는 이미 명문되어  있는 하나님의 도리가 있기 때문에 그 법칙대로 우리가 자꾸 뭐를 자세히  생각해야 됩니다.

자세히 생각하는 것은 세밀히 생각하라 말인데 성경 여기에도 맞춰보고 저게도  맞춰보고 자꾸 성경으로 이리저리 맞춰서 ‘내가 이래 해야 되나 저래 해야  되나’ 그렇게 성경에 맞추는 것은 제맘대로 하는 것 아니고 주님의 이 계명에  주님의 지도에 맞추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도에 맞추는 것.

 이래서, 주님의 지도에 맞춰서 이렇게 하고 또 ‘너를 넘겨 줄 때에’ 넘겨 줄  때는 제가 주동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피동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지금  나를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내가 거기에 지금 따라서 동해지는 것, 내가  주관으로 하는 게 아니고 객관의 세력에 따라서 내가 지금 움직여지는 것이라  말이오. 내가 능동으로 동하는 게 아니고 저 객관의 세력에 따라서 내가  피동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능동과 피동, 주관과 객관 이렇게 이 둘로 나눠서 이 두 가지 종류  외에는 없다. 그러면 그게 이해가 됩니까? 두 가지 종류 외에는 우리 하는  전생활이 그 두 가지로 분류하는 그 외에는 없으니까 그 외에 뭐 있습니까? 그  외에 또 있습니까? 요걸 똑똑히 믿어야 돼요. 요 두 가지 외에는 없어요. 그걸  모르니까 자꾸 뭐 망라해 가지고 벌판으로 하기 때문에 일이 낭파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 믿어서 깨달은 사람들은 그 사람 말 한 마디 딱보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어. ‘요 말은 산 말이고 요 말은 죽은 말이다’ ‘요 말은 주님과  결함이 됐는데 요 다음 말에 가 가지고 주님하고 멀어져 버렸다’ 그 멀어지면  그거 사망이지 뭐 할 수가 없어.

 그러면 자기가 능동으로 움직일 때 자기가 주관으로 움직일 때 그때는 그러면  제맘대로 해야 되느냐? 아니야, 그때는 성문 의지대로 해라. 성문 의지. 문서  의지대로 그대로 해라. 문서 의지가 성경에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했으니까 자세히 주의해서 성경에 이렇게 말했나 저렇게 말했나 자꾸 성경을  따라서 이렇게 하라.

 그러고 하나는, 네가 주동적으로가 아니고 그 객관의 세력에 따라서 네가  움직여야 될 때에는, 움직여야 될 때는 그때는 어떻게 해? 그때는 성경에 이랬나  저랬나’ 이래 가지고는 안 된다 그말이오,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행할 것을, 어떻게 대답할 것을, 어떻게  상대방을 상대할 것을 거기에 대해서 전연히 생각지 말아라, 거기에 대해서  생각지 말아라. 인제 생각 안 하는 게 순종이라. 생각지 말아라,  왜? 그럴 때는 자기에게 지금 넘겨주고 잡혀가고 또 원치 않는 사건들이 턱  부딪히고 이렇게 하니까 그때에는 자기의 주관이라 하는 것이 나서 가지고서  바쁘게 서둘어야 될, 서둘 때라 말이오. 알겠어요? 바쁘게 서둘 때라. 이래  놨으니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어째야 되노 자꾸 생각할 때인데 그때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너는 생각지 말아라 이랬다 말이오. 생각지 말아라.

 자꾸 또 생각해라, 또 생각지 말아라 요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우리생활은  그래요. 생각을 해야 될 때 있고 생각 말아야 될 때 있는데 생각해야 될 때는  어떤 때에 생각해야 되느냐? 내가 주동적으로 주관적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에는 생각을 해야 된다. 또 내가 능동과 주관과 주동적으로 하지 안하고  피동이 될 때에, 객관 세력에 내가 부딪혀져서 움직여야 될 때에는 그때는  생각지 말아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이때는 지금 피동입니까 주동입니까? 넘겨줄 때에는  객관 세력입니까 자기의 주관 세력입니까? 네, 요렇게 구별을 해야 된다 말이오.

 이러면, 그러면 네가 주동으로 주관으로 능동으로 할 때에는 자세히 생각해서  해라. 자세히 생각해라. 자세히 생각하면은 제 생각입니까 이것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이미 주님께서 다 그런 것은 구별해서, 성문 의지라 말은 글로 써  놨다 말이오. 신구약 성경 말씀이 성문의지라. 하나님의 뜻이라. 이것을 생각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요래 자세히 생각해 가지고서 그렇게 네가 해라.

또, 네가 주동적으로가 아니고 피동적으로 객관 세력이 너를 어떻게 이렇게 할  때에 그때에 네가 피동될 때는, 그에게 피동될 때는, 그에게 끌릴 때에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고 원치 안하는 일이나 그들이 내게 대해서 이렇게 행동할  때에는 네가 그때에 어떻게 지금 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아라, 무엇을 할 것을 생각지 말아라. 그때는 생각하면 안된다. 생각지  말아라. 요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통에 다 실패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은 종류를 분류하면은 뭐 천 가지 만가지지마는 그  종류를 분류하면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자기가 능동이 되든지 다른 사람이 능동이 돼  가지고 나한테 상대를 하든지, 그러면 내가 내 주관으로 그것을 하든지 다른  사람의 그 사람의 지금 주관으로 해서 객관이라 한다 말이오. 내 주관은 내가  하는 주관이라 말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이리저리 하는 것을 그걸 객관이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그 피동이라고 말하고 내가 할 때는 능동이라고 이리  말하는데,   그러면, 내가 능동이 될 때는 어떻게 성경에서 하라고 했습니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생각을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해야  되는데 생각할 때에는 무엇대로 생각해야 됩니까?’ 생각해야 되면 그 생각은  지식에서 나오는 건데 생각은 지식에서 나오요. 지식은 또 몇 가지요?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 두 가지인데, 생각할 때에는 그때는 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 하나는 배암 지식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이니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지식이요 배암 지식은 신구약 성경 외에 것은 다 배암 지식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그때 생각할 때에는 뭐 무슨 지식으로 생각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지식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 그거요.

 또, ‘너를 넘겨 줄 때에’ 네가 그 세력에게 피동 될 때에 다른 사람이  주관하는 그 객관 역사에, 내가 피동 역사에, 그럴 때에는 성경 말씀대로 생각을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성경 말씀이  뭐라고 했노?’ 그때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까? 생각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다 안 드니까 알기는 아는 모양인데 그래도 지금은 성경이 여기 와 가지고  빛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 마음을 밝게 해 주시니까 알지마는 떠나면 모른다  그거요. 떠나도 알아야 돼요.

 그러면, 그럴 때에는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라 이랬다 말이오.

생각지 말라. 그러면 생각 안 하면 어짤라고 지금 다른 사람이 내게 큰 무슨  사건을, 턱 부딪혀 놨는데 그때 ‘이랄까 저랄까 어떻게 할까’ 그렇게 객관  세력에 내가 피동될 때에는 네가 생각지 마라. 네가 주동할 때에는 네가 자세히  생각해라. 요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만판 그 사람은 인본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잠깐만 봐도 이것은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알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인본주의는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거 보면. 그만 아는 거라.

‘이게 이 운동이 지금 인본주의다. 이거는 또 신본주의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편지를 쓴 편지를 그걸 다 읽어보고 그 한 마디만  쓸 말이 있어도, 한 마디만 쓸 말이 있어도 놀랍니다. 한마디만 쓸 말이 있어도  지혜 있는 사람은 ‘이 말은 자기 말이 아니고 이건 하나님이 접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그만 그래 또. 고고 다음에 보면 또 고건 또 아니라  그말이오. 그럴 때에 모든 데서 다볼 수 있어.

 그러면, 이 결과 어떻게 된다 하는 것을 환하게 알 수 있고 이게 인본이다  신본이다, 이거는 사망이다 이거는 생명이다, 이거는 구원이다 이거는 마귀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다 환하게 알 수가 있어.

 그런데, 자기가 ‘너를 넘겨 줄 때에’ 요걸 똑똑히, ‘넘겨 줄 때에’ 이거는  객관 역사라 말이오. 피동 역사라 말이오. 그럴 때는 내가 생각을 성경말씀  가지고 ‘성경에 이러니까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성경 말씀가지고 생각을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그때에 사람들이 다급하니까  안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급하니까 다 모두 생각할 때이니까 생각은 또  말라 했다 말이오, 그럴 새 생각하기 쉬워.

 그러면, 생각하지 말면 어짤 건가? ‘생각하지 말고’ 그말은 네 주관이라,  네가 지금 주관에 콱 부딪혔기 때문에 네 주관으로서 이랄까 저랄까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손해갈까 이렇게 생각지 마라.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라. 자기의 주관과 사욕과 모든 것을 다 부인해 버려라. 자기 부인하는 게  그때 할일이라.

 자기만 부인하면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자기를 부인하면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무엇이 콱 벼락같은 일이 부딪혔어. 부딪혀서 그때 부딪히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만 자기 주관 가지고 이럴까 저럴까 하기 쉬워, 이럴까 저럴까 할까  싶어서 자기 주관이 이렇게 저렇게 할 것을 생각해 가지고 딱 이래 하니까  아무리 성령이 와 가지고서 그에게 이래라 한다 해도 성령이 자기 주관만치  강합니까, 자기에게?  자기 주관은 막 강하지만 성령은 그저 감화로 이래 주는 것인데 그때 자기  주관이 강하게 이라니까 성령이 와 가지고서 이래라 저래라 할라해야 하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때에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성령님 지도받는 것은  전지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요 전능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요 책임을 지고 시키는  분의 지도를 받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홍해 바다로 건너가라 하는 그분은 뭐 다 빠져 죽구로? 건너가라  하는 그분이 지도했으니까 지도하신 그분이 책임질 거다 하고서 건너간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건너가기 때문에 살았다 그거요.

 그와마찬가지로 그럴 때에 이제 주님이 나를 어떻게 여기에 대해서 생하라고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지 그분의 지도와 인도를 받아야 될 터인데 그분의 지도와  인도를 받는 데에는, 그분의 지도와 인도를 받는 데에는 우리가 무슨 운동을  해야 됩니까 뭣을 간구를 해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것밖에 없다 말이오.

 요 성경에, 신앙생활은 요렇게 구별이 돼 있어요. 그때는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자, 그때는 자기가 나올 때입니까 안 나올 때입니까? 주관이 아니고  객관에게 무슨 사건이 부딪혀서 큰 일 부딪혀 ‘너를 넘겨줄 때에 넘겨 줄  때에’ 그때 객관 역사로 피동 역사로 되는 이런 현실을 당할 때에는 그새에  자기에게 대한 것을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까 자기 책임을 자기가 짊어지고서  자기 사건을 자기가 해결할라고서 자기가 나타나기가 가장 쉬운 때 아닙니까?  이해가 돼요? 가장. 쉬운 때요 강한 때입니다.

 그런데 그때에는 ‘너는 어떻게 무엇을’ 어떻게도 생각지 말고 무엇도 생각지  말고 완전히 너를 부인해라. 고때는 부인해라.

 그러면, 내가 주관적으로 주동적으로 내가 계획적으로 무엇을 내가 시발할 때,  내가 시발할 때에는 자세히 생각하고, 네가 시발하지 안하고 상대방이 시발돼서  상대방 시발에 네가 피동될 때에는, 피동될 때에는 생각해야 됩니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주의 인도를 기다려야 됩니까? 주의 인도를 기다려야 돼.

인도를 기다려야 돼.

 그러면, ‘어떻게 무엇을 네가 할 것을 생각지 말아라 그때에’ 20절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때에 그렇게 되면 네 속에서 이찌 해라 저리 해라  하는 그 지도가 있다. 네게 이래라 저래라는 지도가 있을 터이니까, 그 지도를  따라서 해라. 그래야 너를 지도하신 분이 책임을 지고,   네가 주관대로 하는 것은 네가 이리저리 할 수 있지마는 객관세력에게 부딪혀  끌릴 때에는 그 객관 세력이 너보다 약하면 네가 주관을 하지만 너보다 약하지  안하고 다 강하기 때문에,   객관은 강합니다. 주관이 강하요? -이런 것도 뭐-주관이 강합니까? 객관이  강합니까? 모르지? 주관이 큽니까? 객관이 큽니까? 주관은 나뿐이지마는  객관이라 하는 거는 내 밖에 있는 거 모든 거 전부 객관의 다 하나입니다. 뭐 몇  억억억억만 배가 큰 것이오. 이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말이오.

 모르고 그만 자기가 그걸 대항해서 제가 어떻게 해 볼라고서 하는 것, 벗은  몸으로 있으니까 이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입는 그게 다 뭐이냐 하면은 제가  제 책임을 짊어지고 하는 것이라 말이오. 무한한 큰 객관 그 뿌리가 크고 몇  억억만 배도 더 되는 그 객관이 나를 이래서 내가객관에게 내가 피동될 때에,  객관에게 피동될 때에 그때에 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제 생각대로 요래도 조래도  하는 것은 제 몇억만 배도 더 되는걸 제가 달라들어 할라 하기 때문에 죽을  것밖에 없다 그것이오.

그럴 때는 이제 어떻게 할까 성경 말씀대로 문서 계시대로’ 생각지도 말고 너를  완전히 부인하고 너를 중생시키신 그 성령, 너를 중생시키신 성령 그분은  전능자이기 때문에 이 모든 객관 세력이 크다 할지라도 그분은 그보다 크기  때문에 그런 걸 다 주관할 수가 있으니까 그분이 너를 어떻게 시키는 고 그분  시키는 대로 해라. 어떻게 무엇을 이렇게 네가 자꾸 주동적으로 이래 하지 말고  그거 치워 버리고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너를 중생시키신 그분이 너를  지도하는 그 지도를 딿도록 네가 해라.

 그러면, 그분이 이렇게 저렇게 너를 지도하리니 그 지도는 곧 네 속에서 너를  부인하고 네 속에 나오는 거, 너를 부인할 때에 네 속에 나오는 영감은, 영감은  그거는 피조물의 힘이 아니고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 그렇게  하시니라.

 그러면, 이렇게 자기가 피동되는 객관 능동이 돼서, 자기가 주관으로 능동이  되지 안하고 시발이 되지 안하고 객관 시발 능동으로 될 때에는 그때는 그 일을  누구에게 맡기라 했습니까? 그 일을 아버지의 성령에게 전능자에게 맡기라  했습니다. 전능자에게 맡기고,  또 자기가 주관적으로 이렇게, 주관적으로 자기가 시동이 될 때에 자기가  시발이 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된다 했습니까? 자세히 생각해서 문사 계시대로  하고,  네가 피동되는 그런 입장에 있을 때에는 문서 계시대로 해 가지고는 안 된다.

문서 계시를 두고 너를 부인하고 그 전능자 그분이 지도하도록 그렇게 해라.

그라면 아버지의 성령이 너를 주관해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시키실 때에 그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은 된다 그겁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전 일을 종류로 분류하면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네,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

 분류할 수 있는데 그러면 처음의 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 남에게서 시발된 것  있는데 자기에게서 시발하는 것은 생각을 하라 했습니까?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까? 예? 생각을 하라 했어. ‘자세히 생각하라’  또 객관 세력에서 내가 피동되는 그럴 때에는 생각을 하라 했습니까? 하지 말라  했습니까? 그 생각하지 말면 그만 마음 놓고 이래 돌아다녀야 되는가? 자기를  중생시킨 자기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지도하는가? 그 분밖에는 일을 못  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맡겨야 되니까 그분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으니 영감을  기다려야 된다.

 영감 기다려서 영감대로 하면은 그 일을 책임은 누가 집니까? 주님이 져.

전능자가 책임져. 성령이 책임져.

 이러기 때문에, 이제 그 피동되는 역사에는 네가 그 일 네가 감당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겨라. 네가 주관되어 될 때에는 네 맘대로 하지말고 하나님의  지도대로 그와 같이 해야 네가 그 일을 바로 경영하고 바로 시발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문서 계시대로 할 때, 문서 계시대로 하지 안하고 영감 계시를 받아야  할 때,  영감 계시를 가리켜서 영감 계시라 은밀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은밀 계시.

그것이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요 문서계시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이 아니고 그 문서라는 걸 통해서 이렇게 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지도해 주는 것이라.

 그러지 때문에, 문서 계시보다 영감 계시가 더 세밀하고 광대하고, 그러니까  운서 계시를 통과한 다음에 영감 계시를 받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사건 당할 때에 그때에 지금 다 생각하기를 자기가 능동으로 동할  때에는 성경 문서 계시대로 하지는 안하고 이 배암 지식으로 한다 말이오.

 자기가 능동으로 시발될 때에, 시발될 때에는 지식이 둘뿐인데 시발될 때에  하나님의 지식으로 시발하는 사람 있고 자기 지식으로 시발하는 사람 있고 둘  있으니까 자기 지식으로 시발하는 사람이 백의 구십 구라 말이오. 모두 다 그래.

자기 지식으로 시발하면은 좋다 하고 다 그거 다 제게 맞으니까 막 쭉쭉  딿습니다. 그때에 엉뚱이같이 자기 지식으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 지식대로  하면은 다 부인하요.

 이러기 때문에 부인해 선지자가 마지막에 저 혼자 외롭게 순교를 당하고 마는  것이라. 이걸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돼요.

 또 이제 피동되는 그 역사에는, 피동되는 역사에는 어떻게 돼요? 피동되는  역사는 사람들에게, 백의 백이 피동될 때에 그때에 닥칠때에는 뭣이 나와서  역사해요? 뭣이 나와 역사해요? 뭐이 나와 역사해? 자기가 나와 역사해. 자기가  나와서.

 뭣이 콱 부딪히면은 그때 ‘어짤꼬’ 하고서 다 자기가 나와 역사하는 것이  백프로라 그말이오. 그럴 때 어째야 돼요? 그럴 때는 자기를 딱 부인하고,  부인하고 가만있을 건가?  부인하고, 주님이 지금 여기에 대해서 승리하는 그 전능의 역사가 있으니까  그분이 뭐라 하는 그분에 귀를 기울이자. 그분에게 귀를 기울여서 그분이 뭐라고  하는지 그분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기울이자.

 그분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기울여야 되는데 귀를 기울이는 그 귀는 뭐이요?  주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기울여야 되는데 그 귀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 귀는  무엇이지요?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양심입니다. 양심. 그때 잘못하면  자기 욕심이 자기 주관이 날뛰기 쉬운데 그게 날뛰면 낭파고 전멸이 돼.

 그럴 때에는 양심의 귀를 가지고서 주의 음성을 들어야 돼요. 양심의 귀를  가지고서 성신의 지도를 받아야 돼.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 돼요.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그대로 해. 그러면 성신의 감화로 감화시켜 주신 그분이 전능자라.

그분이 일을 책임맡아.

 이러니까 우리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껍데기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생활한 것이나 모든 행동한 걸 보면 ‘저 사람이 아주  껍데기 생활 하고 있다. 저 사람은 고 속에 좀 깨닫기는 하는데 속껍데기, 고  속에 있는 속껍데기 생활하고 있다. 속껍데기 생활하다가 바깥으로 튀어 나와  버렸다. 속껍데기 생활에서 그 사람이 계속하고 더 속에 알맹이와 하나 되어  한다.’ 그게 뭣이냐 하면 성령의 감동대로 하는 것이라 말이오.

 ‘저 사람이 성령의 감동이 비취기는 비췄는데 이라면 희망이 있는데’  그랬다가 딱 떠버립니다.

 이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껍데기 나타나는 것만 보고 하기 때문에 세상은 다  결과를 보고 처리합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결과를 보고 처리하고 이 하나님의  도에는 결과를 보고 처리하는 게 아니고 그 속에 움직인 시발하는 동기를 보고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를 동기를 중하게 여기고 이 세상은 결과를 중하게  여겨서 결과 따라서 처리하고서 모두 다 판단하고 기독교는 동기를 따라서  ‘이게 어데서부터 나왔느냐’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성경은 세밀히 가르쳤는데 사람들 이걸 모르고  마구잡이로 하지. 마구잽이로 해 가지고 전부 한다는 거 똘똘 뭉쳐서 다, 아마  콤퓨터에 찍어 놓고 다 이래 통계를 맞춰보면 전부가 저거 주관입니다. 전부가,  도덕주의든지 그리 안 하면 물질주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공명을 위한  정치주의든지, 도덕주의든지 정치주의든지 이 껍데기에 맞춰 가지고 다  움직이는데 이 껍데기에 움직이는 이걸 다 부인하고 그 속에 움직이는 대로 할라  하니까 성경말씀을 배울 때는 ‘좋다. 진리야 좋다. 교훈이야 좋다. 이 이상 더  어데 교훈이 있느냐? 좋다. 행정이 틀렸다. 행정이 틀렸다.’  그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는 꿀과 같이 달지마는 뱃속에 들어가니까  쓰더라 이제 실행을 해 볼라니 안 됐거든.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 듣고 행동은  제맘대로 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행동을 말씀대로 하라 하니까 ‘정치가  틀렸다’ 반대된다 말이오. 그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한계시 11장에 성전 밖마당이 어때요? 크고 넓어요. 그거는  측량하지 말라 했어요, 마혼 두 달 동안 이 이방에게 세상에게 짓밟히게 하라  했는데 마흔 두 달을 뭘 가리켜 말한다고 했지? 신약시대 전부.

 세상에게 짓밟혀. 그 사람들은 세상에게, 예수교는 예수교인데 세상에게  이용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에게 이용당하기 위해서.

 그러기에, 기독교가 이 세상 정치 운동이나 이 모든 세상 운동 이것을 바람을  타고서 이것을 피동돼서 세상 그 모든 세력들에게 피동돼 하는 것은 그건 다  멸망입니다. 오직 주님에게 피동돼 가지고 하는 것만 구원얻는 것이오.

 이러니까, 요게 아니면 안 되는데 이제 이 모든 세상으로 말미암아 피동되는 건  안 되고 위에서 오는 세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고것만이 영생이다 이라니까 이게  좁은 길인데 다 좁은 길을 싫어해. 나는 그런 좁은 길은 못 간다. 인간들이  이해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인간들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고 인간들의 지식과 과학과 물리에 다 일치되도록 하는 그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말이오.

 그거, 그것 속에, 그것 속에, 비합리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또 비통계적이요,  비인류적이요, 비인간 지식적이요, 다 아닌데 그 속에 있는 하나님적인 것이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것이 있다 그거요. 그거라야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래도 그저 아무나 따나 벌로 배운 사람들은 몰라요. 이거 모르면 해봤자  헛일입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아요. 이거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라 하니까 귀찮다고  욕을 해요. ‘삼십 분 기도는 무슨 놈의 삼십 분 기도? 백지 쓸데없는 걸 말해  가지고 지금 사람들을 괴롭히지.’  이래 놓으니까, 총공회 여기 말하는 그대로 하면, 그대로 하면 사람들이 세상  일 아무것도 못 한다. 그 성경에 자꾸 맞춰서 꼼짝을 못하게 하니까 그대로  하면은 아무것도 못 한다. 세상 일 아무것도 못한다, 그걸 주장해.

 또 그래 믿으면 놀 시간이 하나도 없다. 놀 시간이 하나도 없고 재미가 없다.

놀고 먹고 뭐 이래 해야 되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다.

 그 옳은 말 했어요. 이러니까 다만 틀림 건 넓으냐 좁으냐 하는 것이지 딴거는  없는 것입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안 하면 안 됩니다.

 그 나타난 열매 보면 환하게 다 알 수 있어. 그렇츰 알 수 있어도 제가 옳은 줄  알고도 딿지 안하는 그게 뭐입니까? 옳은 줄 알고, 평가해서 옳은 줄 알고 딿지  안하면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지요? 그게 성령 훼방죄라. 그거  사함 받아요 못 받아요? 사함 받아요 못 받아요? 사함 못 받아. 그거는 회개를  해야 되지 사함은 못 받는거라.

 그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하고는 말해도 안 되겠습디다. 영 세계가  다르고 지식이 달라놔서, 전부 그 사람들 말하는 거 보니까 세상 교수들이 하는  말이요 세상 학자들이 하는 말이요 세상에 지혜있어 꾀 많고 요리 수단 방법하는  그 말들이지 성경 말씀을 말하니까 그 도무지 해도 못 알아듣더래. 장로도  말해도 못 알아듣고 말 못 알아, 전연히 모릅디다. 어떻게 그랄지 전연히 말을  모릅디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더래요. 여러분들 그래요.

 이러니까, 여기에서 한 이삼 년 어데 갔다 와 놓으면 그만 그 사람 뒤에 말을  못 알아들어. 말귀를 못 알아들어. 말귀 못 알아들으니 이 말은 틀린 말이고  저거 말은 맞거든. 이러니까 그것으로서 제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렇게  만들어서 그런 자 저런 자 생겨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엊저녁에도 요새 늘 공부하는데 공부하는 거 인간들이 생각하는  대로 해야 돼요 그 속에 옳은 알맹이 길은 속에 들어 있어요? 속에 들었기  때문에 뚫고 들어가고 뚫고 들어가고 뚫고 들어가야 이제 죽고 사는 그것이  똑똑히 나타나는 거기 있지 껍데기 있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껍데기에 발려  있는 거 아니야.

 


선지자선교회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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