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지가 있어야 귀있는 자


선지자선교회 1987년 4월 26일 주일오후

 

본문:요한계시록 2장 1절∼3장 22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가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전에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옥토에 뿌리운 씨는 그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밭으로 땅으로 길바닥으로 이렇게 하는 거는 밭도 땅이요 길바닥도 땅이요 덤불 밑도 다 땅입니다. 거게 땅이라, 밭이라, 흙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은 곧 우리 중생된 자들의 육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마음과 몸 이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켜서 밭이라, 흙이라, 또 길바닥땅이라, 덤불 밑에 흙이라 이렇게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옥토에 뿌리운 씨는 그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 사람의 수는 열이 만수요 ‘열’ 하면 또 `열하나' `이십' 하면 또 `이십일' 열을 만수로 하는 것이 사람의 수요 또 마귀의 수는 여섯으로 만수하는 것이 마귀의 수입니다. 이래서 계시록에 육백육십육이라 하는 것은 마귀 수를 열 번 하면 육십이요 백 번 하면 육백이요 한 번 하면 여섯이라. 또 하나님의 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삼수로 성경에 말한 데가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 구원 도리를 듣고 길바닥으로 비유한 그 방해를 벗어나고, 또 돌밭으로 비유한 그 돌밭의 방해를 벗어나고, 또 가시덤불이라고 비유한 그 가시덤불의 해를 벗어나면 옥토에 뿌리운 씨와 같이 우리의 들은 말씀은 다 옥토에 뿌리운 씨가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한 이 말씀을 자기가 듣고 이대로 살려고 할 때에 반드시 이 세 가지가 방해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방해를 하는데 이 세 가지 방해만 받지만 안하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된다.

백 배는  인간의 만수 만수입니다. 그러면 인인 관계의 생활에는 만만점으로 완전 행위를 할 수 있다. 인인 관계의 행위는 완전 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것도 뭐 얼마나 존귀한 가치인지 모릅니다. 인인 관계의 행위는 완전을 할 수 있다. 또 마귀와의 관계도 완전을 행할 수 있다. 예수님은 오셔서 마귀와의 늘 접촉했지마는 마귀와의 관계에서 완전 관계를 했지 한번도 실수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옥토의 심신을 만든 사람은 인인 관계도 완전, 마귀와의 관계도 완전, 하나님과의 관계도 완전 이라면 뭐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인데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럴 수 있는 이 희망이 있습니다.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의 이 소망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래서 베드로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큰 소망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극히 큰 소망이 뭐인데?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읍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한다 말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한다 말은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자 된다 말입니다.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과 꼭 같고, 지혜도 지식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꼭 같고, 진실도 거룩도 하나님의 진실과 거룩과 꼭 같고, 의도 하나님의 의와 꼭 같고, 권세도 하나님의 권세와 꼭 같은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뭐 이 이상 더 우리가 원할 것도 없고 이보다 더 존귀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같이 되면은 그 이상 원할 게 뭐입니까? 하나님같이 된다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성이 우리에게 확고합니다. 또 우리가 이 비유가 아니라도 다른 모든 성경을 우리가 열람해서 궁구할 때에 믿는 사람이 자기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깨달은 요대로, 요동치 안하고 깨달은 요대로만 완전 실행을 한다면은 그는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됩니다.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는 이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이요 또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으로 주신 이 말씀을 가지고 넉넉히 이렇게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 “거룩하심같이 거룩하라” “깨끗하심같이 깨끗하라”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거 다 이런 계약의 말씀인데 이것은 뭘로 되느냐?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들입니다. 이 셋으로 중생된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 영은 벌써 이와같이 온전함을 얻었는데 우리 심신이 지금 구원 이룰라고 하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그러면 우리 심신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하나님의 도리를 읽고 듣고 깨달은 요것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뺏기지 안하고 요대로 실행만 하면은 이렇게 영광스러운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실행할 수가 있는데 실행에 방해하는 적이 셋입니다. 실행할 때 방해하는 적이 셋이라. 방해하는 적이 셋인데 이 셋 방해하는 적을 우리가 없애고자 하면 없앨 수 있습니다. 그걸 여게 말합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이렇게 된다는 말씀하는 것은 옥토에 뿌린 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지 되지 않는다는 걸 말씀한 것 아닙니다. 이거는 우리에게 될 수 있는 것을 다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적은 세 가지 적인데, 세 가지 적인데 하나는 모든 수천 년 동안 건설해 내려온 역사 건설, 모든 건설되어 있는 역사, 인간의 역사, 뭐 오백년사니 천년사니 이천년사니 그렇게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이력, 역사.

많은 사람들로 만들어져 있는 이 모든 인간 역사, 일할 역자 역사가 아니고 역사 력자 력, 세월 력자 력, 또 사기라는 사자, 역사. 또 오늘까지 건설해 나오는 문화, 문화 건설. 사람들은 문화 건설은 가치 있게 여기고, 과학도 문화 건설이요 예술도 문화 건설이요 이런 저런 모든 족보들 그런 것은 다 역사들이요 그 모든 역사와 문화 건설 이것에게 피해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이런 것들이 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피해를 받지 안하고 이런 것을 부인해서 이런 것과 하나님 말씀과의 가치를 비교할 때에 천하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다 똘똘 뭉쳐도 하나님 말씀의 획 하나를 못 당합니다. 요렇게 믿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요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믿는 사람들은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한 말씀도 어기면 망하는 줄 알고 땅에 있는 전인류의 지식을 다 해봤자 그까짓 거 안전에 두지 않습니다. 아예 그것을 저절로 알아지지 그까짓 걸 안전에 두지 않고 가치로 두지 않습니다.

이것에게 하나님의 이 도리의 이 권위를 빼앗기지 않도록, 내가 말씀을 행할라고 할 때에 인간 말을 들어 인간 말에 방해받아 가지고 행하는 걸 중단되든지 행하는 것이 손해를 보든지, 역사에 이런 역사 있다 저런 역사 있다, 이런 과거 있다 저런 과거 있다 모든 역사 얘기서 그런 것을 듣고서 하나님 말씀 실행하는 데 조그마치라도 손해보는 그런 거는 다 길바닥 손해입니다.

또, 돌밭의 손해는 이것은 곧 자기 아닌 자기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자기라는 것이 자기 사정 때문에 말씀대로 못 삽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못 살고, 자기에게 손해가기 때문에 못 살고, 자기 주장이 있기 때문에 못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 몸을 자기 몸이라,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이라, 또 자기를 자기 것이라, 땅위에 있는 이 모든 돈 이런 거 무엇이든지 그런 것을 다 자기 것으로 아는 그것은 옛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모든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아는 그것은 옛사람인 줄 아십시오.

요것도 어떻게 깊이 들어 있는지 요거 누구든지 들으면, 요거 들으면 이단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열한 가지만 내것이지 딴거는 내것 아닙니다. 열한 가지만 내것입니다.

뭐? 예수님의 구속의 열한 가지. 열한 가지. 택함만 내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요것만 내것이요,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만 내것이요, 또 죄에 자유해서 죄에 대해서 자유하는 요 자유만 내것이요, 사망에 자유하는 것이 내요, 또 마귀에게서 자유하는 것이 내요,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대로 영생하는 것이 내요, 영감대로 영생하는 것이 내요, 하나님의 제사장된 나요, 선지자된 나요, 왕된 나요, 요것만 내것입니다. 요것 외에는 내것 하나도 없습니다.

몸 요것도 다 주님의 것이요 마음도 주님의 것이오. 요 열한 가지만 자기 것 되어 있고 열한 가지만 자기 것인 줄 아는 그것이 참 자기요 열한 가지만 자기 것인 줄 알고 열한 가지 요것만 잘 단속하고 열한 가지를 길러가고 열한 가지를 잘 보호해 나가는 그것이 참 자기입니다.

이 외에 어떤 것이든지 ‘이 가정은 내 가정인데, 또 이것은 내 몸뚱인데, 이것은 내 재산인데, 뭐 내 영광인데 내 권세인데.’ 네것이 어데 있나?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입니다. 요거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르요.

이래서, 돌밭에 뿌리운 씨라 말은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요것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요것이 방해하는 그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 이 밭에 돌을 뽑아서 개간한 것입니다.

또 역사와 문화 그것에게 내가 방해받는 그 방해를 다 물리치고 그것을 부인하는 거, 하나님 말씀 지키는 데는 역사고 문화고 다 부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데에 그런 것이 필요하고 이용될 때는 내가 얼마든지 이용하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고 나설 때는 문화고 역사고 그까짓 거 똥같이 다 치워 버립니다.

이래서, 그런 것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거, 옛사람 자기에게 방해를 받지 않는 거, 이 세상에게 방해를 받지 않는 거, 이 방해받지 않는 것은 그것을 내가 없애버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그런 것을 부인해 버리면 그 방해를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 할 때에 그런 것이 방해하면 그까짓 걸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 이 세 가지가 방해할 때에 이 세 가지만 부인하고 말씀대로 살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합니다. 인간에게 대해서 완전, 마귀에게 대해서도 완전, 하나님께 대해서도 완전. 잘못한 게 뭐 있어야지, 완전히 행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이 씨뿌리는 비유에 말씀했습니다.

오후에 증거할라 하는 것은 거게 보니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그러면 안 들으면 소용 없어. 못 들으면 길가 문제가 무슨 소용 있으며, 돌밭 문제가 무슨 소용 있으며, 덤불밭 문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안 들으면 소용 없습니다. 귀 없으면 못 듣습니다. 귀 없으면 듣겠습니까? 귀 없으면 못 듣지. 못 들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지.

오후에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일곱 교회에 대한 기록을 제가 다 낭독했습니다.

이 일곱 교회는 신약 교회 전체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 승천 이후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땅위에 있는 교회에게 대한 모든 것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했어.

그래서, 여게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연구해서 안 자라 하면은, 일곱 교회에 대한 것을 연구해서 다 아는 자라 하면은 말세 교회를 다 아는 자라 하는 말이 됩니다.

일곱 교회, 말세에 신약 교회 시대의 시험도 알고, 마귀도 알고, 어려움도 알고, 쉬움도 알고, 승리도 알고, 방편도 알고, 영광도 알고, 존귀도 알고, 권위도 알고 완전히 다 아는 사람이라. 요 일곱 교회의 것을 다 받은 사람이라 하면 신약 교회의 축복을 다 받은 사람이라. 일곱 교회 것을 다 성사했다 하면은 신약 교회 일을 자기로서는 완전히 성사한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이런데 그 일곱 교회마다 제일 중대한 말씀을 말씀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뭐이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이기는 자들은 이렇게 된다” 말했습니다.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까 듣는 것이 중요합니까? 자, 손 들어 봅시다.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까 듣는 것이 중요합니까?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이제 몇 안 드는구만.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그것도 또 안 들고. 그러면 뭐인고? 제일 중요한 것이 듣는  것입니까 이기는 것입니까? 자, 이제 내가 물을 터이니까 듣는 것이라고 하면은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까?’ 할 때 손을 들고 또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면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까?’ 할 때에 손을 드십시오. 그라면 내가 여러분들 속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지 그걸 내가 좀 알겠습니다. 너무도 모르겠어.

자, 인제 묻겠습니다.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이겨야 되지 이기지 않으면 소용 없는데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알기는 알았어.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해. 안 들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들어야 믿지요. 들어야 알지요. 알아야 행하지요.

행해야 뭐 승리도 있고 뭣도 있지. 듣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듣는 것.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자 귀 없으면, 귀가 없으면, 사람에게 이 귀를 없애 버린다고 하면은 들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귀 없어도 듣습니까? 귀가 없어도 듣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지. 귀 없으면 못 들어.

귀 없으면 못 들어.

일곱 교회에 대한 것도 말씀한 데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 없는 자는 못 들어. 귀 있는 사람만 듣지.

이 귀가 무엇입니까? 이 귀가 곧 양심입니다. 신앙 양심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말은 신앙 양심이 있는 자는 들으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앙 양심이 없는 사람은 못 듣는다 말입니다.

신앙 양심이 없는 자는 못 듣는다는 말인데 신앙 양심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서 듣게 해 주시지 않는다는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도를 인간이 듣고 싶으면 들을 수 있습니까? 인간이 듣고 싶으면 들을 수 있습니까? 못 듣습니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지배할 수가 있겠소?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제맘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무한이요 무한의 말씀을 유한한 우리들에게 들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완전의 성령이 듣게 해 주셔야 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떻게 들으리요” “보내지 안하면 어떻게 가리요” 보냄을 받아야 가고 갔어야 전하지.

이게 전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 들은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듣고자 하나 하나도 듣지 못한다. 그들이 강퍅함으로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게 했고 너희들은 하나님이 너희들을 사랑하셔서 듣게 하셨다.” 하나님이 듣게 하시면 듣고 듣게 하지 안하시면 못 듣습니다. 전부를 다 믿어야 돼.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하시면 듣고 듣도록 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못 듣습니다. 그런데 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듣게 해 주시고 귀가 없는 자에게는 듣게 해 주시지 안하기 때문에 암만 들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 신구약 육십육 권의 도리를, 오전에도 많이 말했는데 도리를 하나님이 이 도리를 듣도록 해 주시면 들어서 알도록 하고 또 어떤 자에게는 듣게 해 주시지 안하시니까 암만 이 말씀 속에 항상 있어도 하나도 못 듣습니다.

오전에 뭐라고 증거했지요? 선천 후천적으로 탁월한 그런 명철과 구비한 지식에 통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그것만 가지고 ‘뭐 신구약 성경도 내가 궁구하면 연구하면 다 내가 파헤칠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들이 인간들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천 명이고 만 명이고 하나님이 딱 못 듣게 해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평생 들어야 제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들을 귀가 있는 자는 하나님이 듣게 해 주신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하나님이 듣게 해 주시지 아니하신다 그말입니다.

들을 귀가 뭐입니까? 신앙 양심이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양심이 뭐입니까? 신앙 양심은 하나님의 도리를 읽든지 듣든지 그 깨닫고 ‘하나님 말씀 보니까 요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들을 때에 뭐할라고 읽고 듣느냐? ‘세상에 말이 많지마는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나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치는 말씀이 없다. 이 성경 말씀만이 나에게 바로 가르친다. 이러니까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내가 신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바로 살아서 바로 구원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신구약 성경에 배울란다, 옳고 바른 것을 배울란다.’ 하는 그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실 이는 신구약 성경밖에는 인생관에 대해서나 만물관에 대해서나 바로 가르쳐 줄 그 지식은 신구약 성경뿐이니까 신구약 성경에서 바로 가르쳐 줌을 내가 배우겠다. 바로 가르쳐 줌을 배워서 바로 배우겠다.’ ‘바로 배우기는 뭐할라고 배우느냐?’ ‘선생노릇 할라고 배운다.

선생노릇 할라고 배운다.' 그라면 그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 말씀 바로 배우면 먼저 제 구원 이루고 다른 사람 구원 이루어야 될 일이지 저부터 고치고 다른 사람 고쳐야 되지 저도 고치지 않는 자가 다른 사람만 고칠라 하는 그것이 얼마나  허영덩어리입니까? 요런 자를 가리켜서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 요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귀 있는 자는 ‘요 신구약 성경에서 바로 가르쳐 주심을 나는 배워 가지고 바로 알겠다.’ 요것만 하면 온전한 양심이 됩니까 안 됩니까? 온전한 양심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녜, 온전한 양심 아닙니다.

‘내가 바로 배우고 배운 그대로 괴롭든지 피곤하든지 되든지 가난하든지 고난을 당하든지 죽든지 살든지 내가 바른 것을  알면 바른 그대로 나는 행하겠다’ 하는 자기가 실행할 요 소원, 바로 알기를 소원하고 ‘아는 대로 바로 실행하겠다 하는 요 마음을 가진 그것이 신앙 양심입니다. 알겠습니까? 신앙 양심을 똑똑히 알아야 돼요. 양심의 정의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말을 하니까 쉽게 생각하지 양심의 정의를 바로 내린 학자가 세계에 별로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보지 못했어. 나는 독서를 많이 못 했지만 사람 접촉에서 내가 들어보지를 못했어. 뭐 박사들 강의하는 것도 많이 들었지마는 양심에 강의하는 데에 나는 이렇게 양심의 정의를 말하는 사람을 나는 못 들었어. 무식한 아주 그뭐, 그런 사람은 별별 그 철학 술어들을 쓰고 또 모든 도덕 술어들을 쓰고 또 역사에 위인들의 모든 큰 사람들의 술어들을 쓰고 이렇게 말하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텅 비었어.

이거 말은 이거 일자 무식 허무한 사람의 말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옳고 바른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가 양심을 가진 자가 아니고 그것이 양심이 다 남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고 ‘나는 신구약 성경 하나님 말씀에서 옳고 바로 배워서 알겠다, 옳고 바로 배워서 알겠다.’ 요 사람이 자기 양심의 반쪼가리를 가진 사람이고, 옳고 바르게 배워서 옳은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옳은 그대로 괴로와도 즐거워도 피곤해도 손해가 가도 감옥에 갇혀도 죽어도 살아도 ‘내가 옳은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옳은 요대로 나는 하겠다’ 하는 요것이 반쪼가리 양심이 아니고 온전한 양심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이 온전한 귀입니다. 요게 온전한 귀요.

귀의 이 윤곽은 있지마는 속에 그 청막이 잘못됐든지 해 가지고 귀는 있는데 못 듣습니다.  귀는 있는데 못 들어. 나 며칠 전에 봤는데, 얼마 됐어. 우리 ○○○장로님이 뭘 말하니까 멍해. 그래 내가 이거 어째 무슨 고장났나? ‘장로님!’ 눈만 뜨룩뜨룩거리고 있어. 뭐 어짜고 해도 또 눈만 뜨룩뜨룩 뜨고 있어.

그래 내가 있다가 ‘이게(주:귀를 손으로 가리킴) 고장났느냐?’ ‘안 들립니다.' 영 안 들려 그만 어짜든지 그만 고장이 나 안 들린대요. 그라면 보청기를 사 가지고 이거 좀 대야 되든지 하지 그래 가지고 어찌 사느냐고.

그래 며칠 전에 내가 전화를 하면서,  양산동 자꾸 기도 가서 며칠 뭐 산에도 있고 자꾸 이래 쌓아서 이게 뭐 치료를 받았는가 해서 내가 살며시 ‘○장로님’ 하니까 `예!' 이래. 그래 내가 있다가 ‘어째 귀가 인제 들립니까?’ `예, 치료 받았습니다.' `그래요? 어데서 치료받았읍니까?’ ‘양산동 병원에 가 가지고 치료받았습니다' 이래. 그래 내가 있다가 ‘치료비 냈습니까?’ `예, 냈습니다.' 하나님이 그거 고쳐 주셨어. 귀가 있지마는 그만 속에 고장나니까 못 들어.

이 귀는 암만 있어도 하나님 말씀 듣는 거 아니오. 여게 귀로 비유한 것은 비유입니다.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주지도 안하고 행할 능력도 주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번에 우리가 대구집회 가기 때문에 자꾸 내가 이 말 합니다. 귀 없으면 헛일입니다. 신앙 양심 없으면 헛일입니다. 집회 암만 가도 소용 없고 오전 오후 여기 예배 시간에 암만 참석해도 소용 없습니다. 안 들려. 안 들리는 거는 뭐? 녹음기 모양으로 안 들리는 거 아니라 녹음기 모양으로는 다 들려 가지고 외우기도 하고 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마는 속에 깨달음이 그에게 없고 실행할 능력이 없어.

깨달음과 실행할 능력은 하나님이 줘야 되는데, 깨달음과 실행할 능력은 하나님이 줘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배우든지 할 때에 깨달을 수 있는 능력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이 되는데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능력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은 뭣이 있어야 받는다 했습니까? 뭣이 있어야 받습니까, 다 모두 큰 소리로? 양심이 있어야 받습니다.

양심 없는 자는 하나님이 주지 않습니다. 제가 선천적으로 누구보다 명철하고 후천적으로 광문 다학해서 많은 학을 통달했다 할지라도 양심 없으면 하나님 말씀은 저는 한 마디도 못 듣습니다. 한 마디도 못 듣는다, 못 받는다 그 말은 한 마디도 깨닫지도 못하고 실행할 능력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아는 것으로 망하고 맙니다.

그래 하나님의 이 말씀, 일곱 교회에 대한 것도 들었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되는 것도 들었고 했는데 다 귀가 문제라. 귀가 있어야 하나님이 깨달음도 주시고 실행할 능력도 주십니다.

요거 어누리하면 안 돼. 요것도 듣는 데에 솔직하게 ‘그 사실이다’ 그렇게 믿고 행하는 자는 되는데 이 마귀 지식을 많이 들은 인간들은 마귀란 놈이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거는 백지 사람에게 지금 저렇게 된다고서 꼬우는 소리다. 꼬우는 소리다. 저렇게 사람에게 말하지만 말은 저래 하지만 참 그대로 될까?’ 자, 여게서 대학 졸업한 사람들 한번 손 들어 봐요, 대학 졸업한 사람들. 뻐뜩 한번 들어 봐요. 그거 괜찮아. 수치 아니라. 대학 졸업한 사람 다 뻐뜩 한번 들어 봐요,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많지도 못하기는 못 하지마는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지금 속에서 ‘저 말 하는데 저게라도 조그매라도 좀 어누리가 좀 있고 과장이 좀 있고 분금이 있고 말은 묘하게 한다.’ 고 사실 같으면 제가 죽고 사는 것이 거기 달렸기 때문에 막 매여 달릴 건데 요렇게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 길바닥이오, 길바닥.

이러기 때문에 공부 많이 한 게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공부를 많이 하게 하면 할 것이지마는 하나님 말씀을 어겨 가면서 공부할라 하는 그자는 미친 자라.

자식을 하나님 말씀을 어겨 가면서 공부시키겠다는 그 애비와 어머니도 미친 인간이라. 자녀에게 ‘믿음을 팔아서라도 공부해라. 믿음은 없어져도 네가 공부만 하면 된다.’ 그것도 부모가 들어서 자식을 망치는 미친 인간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내가 미친 인간이라 하는 이 말이 틀린 말입니까? 저 우리 대학 졸업한 ○집사님 좀 한번 대답해 보이소. 하나님의 믿음을 팔아서 공부를 해야 된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면은 그 부모가 미친 부모요 정신 있는 부모요? 저 우리 ○집사님? 대답해 봐요.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다고 말하는구만. 맞다고 말  안 하고는 못 견뎌. 맞다고 해야지. 맞거든.

이런데 여러분들, 오늘 지금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줘야 실행을 하지 전부 깨닫는 것이나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주시지 않으면은 자기가 못 가지게 됩니다. 못 받아 가지게 됩니다.

못 받아 가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준다고 했습니까? 누가 듣는다 했어? 어떤 사람에게 준다고 했습니까? 귀 있는 자에게 줍니다. 귀 있는 자가 들을 수 있다 말은 귀 있는 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걸 받을 수 있지마는 귀 없는 사람은 못 받는다 그말입니다. 귀 없는 사람은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못 받는다는 말이요 깨닫는 그 지혜를 받지 못한다 말입니다.

귀가 뭐인데? 귀가 뭐인데? 귀는 신앙 양심이니 신앙 양심은 뭐인가? 두 가지.

신앙 양심은 뭐인가? 신앙 양심은 두 가지. ‘신구약 성경에서만 인간과 인간이 되는 것과 인간의 생애와 구원과 신구약 성경에서만 옳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옳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님께서 이 옳은 구원 이루는 옳은 행위 옳은 사람이 되게 해 주실 때에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셔야 된다. 바로 아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되고 바로 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되니 하나님이 주시는 바로 아는 것 주시는 것을 내가 받고 바로 행하게 하는 것을 주시는 것을 내가 받을란다. 성경 말씀 가르침에서 옳고 바른 것을 어짜든지 나는 배울란다.’ 요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요 소원.

‘신구약 성경에서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니까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는 요것을 내가 어짜든지 내가 배울란다.’ 배우기를 원하는 배우기를 원하는 요게 있으면 반쪼가리 신앙 양심이요, ‘또 배운 그대로 나는 어떻게 어려움이 있어도 실행을 할란다’ 요것이 반쪼가리 신앙 양심이오.

요 두 가지가 있어야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실 수 있고 또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이 지혜와 능력을 받는 유일한 우리의 인간 요소는, 유일한 인간 요소는 신앙 양심이니 곧 뭐이냐? ‘옳고 바른 것을 아는 대로 그대로 나는 행하겠다’ 하는 요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 공부를 지난 시간에 많이 했읍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옳다 인정한 그것을 주장을 하고 자기 몸에게 자기 마음에게 시켜서 옳은 그것을 마음 전부가 다 총동원해서 거게 대해서 순종하고 온 몸이 순종하도록 그렇게 시킬라고 하는 그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양심 해석하다 보면은 이거 또 잊어버리지, 이거 해석하다 보면 또 양심 잊어버리지 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고 신앙 양심을 똑똑히 알고 놓지 안해야 양심 한 마디만 말하면 쭉 돌아가야 그다음 것을 가르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양심은 불교인의 양심은 불경을 보고 ‘요렇게 하는 것이 옳다’ 생각하는 고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불교인의 양심이요, 공산주의의 양심은 공산주의 그 지식에서 요렇게 하는 게 옳다 그가 깨닫고 생각하는 그대로 죽어도 공산주의 그대로 할라 하는 그것이 공산주의 양심이요, 그 양심의 종류가 많지. 기독자의 양심은 신구약 성경에서 옳은 것을 배워 깨닫고 깨달은 그대로 실행을 할라고 애쓰는 그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독자들이 신구약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집회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든지 어짜든지 ‘요게서만이 옳고 바른 것을, 금생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내세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육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영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가정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인생데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물질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사업에 대해서도 옳고 바른 것, 모든 만물관에 대해서 옳고 바른 것, 행위에 대해서 옳고 바른 것, 옳고 바른 것은 신구약 성경밖에는 우리에게 가르쳐 줄 이가 없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지금 읽는 데도 듣는 데도 여게서 옳고 바른 것을 나는 들어서 알란다.’ 알고 싶은 요거.

옳고 바른 것 들어서 알고 난 다음에는 ‘요대로 나는 죽어도 행할란다.’ 바른 것을 들어 알라고 하는 마음, 안 바른 그대로 실행할라고 하는 그 마음, 요게 양심이기 때문에 요게 없으면 예수교는 다 헛일입니다. 아무 소용 없어. 아무 소용 없어.

그러면 우리 기독자들이 예수님이 피를 흘렸고, 하나님의 아들이 됐고, 우리에게는 성령이 우리 생명이 됐고 진리가 우리 생명이 됐고 완전한 피공로가 우리의 생명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으로 중생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은 완전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만 지금 원하면 다 될 수 있어. 원하는 게 뭐인데? ‘내가 신구약 성경에서 옳고 바른 것을 나는 배울란다.’ 옳고 바른 것을 배웁니다.

옳고 바른 것을 배워 가지고 알면,  ‘알기만 알면 옳고 바른 그대로는 내가목이 달아나도 뭐 거지가 돼도 뭐 가정이 깨져도’ 내 목도 달아나도 행하는데 뭐 가정이 무슨 큰 일이겠소? ‘가정이 깨지든지, 내가 목숨이 달아나든지, 내가 감옥에 가든지, 뭐 뚜드려 맞아서 내가 맞아 피덩어리가 되든지 어짜든지 내가 옳은 걸 알면 요대로 나는 행하겠다! 나는 신구약 성경에서 옳은 것을 나는 배우겠다!’ 요 두 가지가 있어야 귀 있는 자니 요게 있어야 되지 요거 없는 자는 다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저게는 벙어리구만. 이해가 됩니까!! 안 돼요? 이해 안 돼요? 안 되면 죽어요 망해요. 안 되면 죽어버려. 암만 살아 봤자 결국은 죽어. 망해버리고 말아. 깨달아야 되지. 뭐 세상 거 그까짓 거야 아무리 좋은 거라도 이거 안 하면 저기 있지, 저거 하지. 여게는 딴 길이 없어. 딴 길이 없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가는 요 한 길밖에 없어요. 딴 길이 없어.

요거 두 가지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요것이 귀입니다. 요것이 두 가지가 양심입니다, 양심.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양심 있는 자는 받아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양심 있는 자는 받아라. 양심 있는 자는 받아라.

양심 있는 자라니?  바로 알고 싶고 안 대로 행하고 싶은 자는 받아라 그말입니다. 바로 알고 싶고 바로 행하고 싶은 자는 받아라! 지혜도 주고 능력도 줄 테니 받아라! 그말입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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