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38년된 병자

 

1987. 4. 27. 새벽 <월>

 

본문:요한복음 5장 5절∼18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모든 이 예수님의 도리는 인간 생각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면 주님의 이 도리는 깨닫지를 못하게 됩니다. 자기를 많이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교와 반대가 많고, 자기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가 적으면 반대가 적습니다.

왜? 세상 지식은 배암이 낸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는 언제든지 반대가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 가진 사람이 이용을 하면 선물도 되고 보배도 되고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을 같이 생각하는 자 다 망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에는 우리가 복종을 해야 되고 세상 지식은 우리가 이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미문이라는 데는 솔로몬의 행각이ㅡ별관 말입니다ㅡ행각이 있어서 여러 수많은 병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필 그 병자들 가운데 제일 심한 병자, 제일 오래된 병자, 모든 면이 제일 불행스러워져 있는 그 병자에게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믿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병이 심하게 든 사람, 뭐 병은 육체의 물론 앉은뱅이도 병이요, 누운뱅이도 병이요, 눈먼 것도 병이요, 귀머거리도 병이요 다 병이지마는 이 병을 고치신 것은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의 병난 그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육체의 병난 것을 가지고 모든 우리의 인격의 병, 영과 모든 그 인격 모든 마음 고기덩어리 그 행위 병, 도덕 병, 사상 병, 모든 지식 병, 온갖 병을 고치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육체의 어떤 병 고친 그것을 그 육체의 병 고친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 복음의 깊은 뜻을 모르게 됩니다. 육체의 병 고친 것은 사람에게 이 손이 반신불수 돼서 병든 것도 병든 것이지마는 그 손이 나쁜 버릇이 있어 가지고 항상 그 손이 죄를 짓는 손이면은 그 병은 더 큰 병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눈이 멀어 소경된 것도 병신이지마는 육체의 눈이 멀어서 소경된 것보다 신령한 마음의 눈이 어두워 가지고 아무것도 모든 사리 판단이나 가치 평가나 자기에게 대한 이해나 남에게 대한 관념이나 이런 데 대해서 전연히 모르는 그 미련한 자, 그 심령이 아주 어두운 자, 말하자면 사람의 형상을 가졌지마는 짐승같이 감각이 둔하고 미련해서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더 불쌍하고 가련한 병든 자인 것입니다.

이랬는데 여게 제일 오래 된 중한 환자에게 이렇게 주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은 우리에게 뭘 가르치느냐?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의 불행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있는데 적은 사람은 제가 희망 있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은 희망 없이 생각하고 더 심한 사람은 절망으로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도 생각할 때 그 사람은 가장 못쓰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그렇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가장 그 심하고 못쓸 사람된, 가장 불쌍하고 못쓸 사람, 사람병이 많이 들어서 짙은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찾아가신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에는 보면은 사랑의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에 뭐 건강하고 훌륭하고 씩씩하고 잘난 그런 자녀보다도 병들었고 못났고 병신이고 곧 이래 죽을 거 같은 거, 기형적으로 생긴 거, 아무짝도 쓰지 못할 거 거기에 부모의 사랑과 애착과 긍휼과 동정이라 하는 것은 더 심히 가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여게서 하나님의 사랑의 그 성질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게 병자들이 많이 낫고 이렇게 했는데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래 물으니까 ‘내가 여게서 제일 중한 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낫기가 어렵습니다. 또 나를 아무도 못에다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못이 동할 때 제일 먼저 가는 사람은 낫는 그런 것이 늘 전래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를 갖다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또 내가 갈라고 구불어서라도 이와같이 갈라고 하면은 다른 사람이 그만 얼른 메어다 넣어서 나보다 앞에 가지, 또 병이 좀 가벼운 사람들이 그래도 뭐 구불며 야단치니까 그 사람이 먼저 가지 이러니까 내가 제일 중하기 때문에 나는 희망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돕지 않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또 내가 갈라 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가서 방해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런 조건을 주님에게 말할 때에, ‘그런 것이 내 앞에서는 조건되지 않는다. 너만 낫고자만 하면 된다.’ 그럴 때에 낫고자 한다고 할 때에 그 환자는 일어서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서 나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앞에는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그자에게 주님의 사랑과 동정과 긍휼은 먼저 가는 요것을 깨닫고 예수님 안에서는 이 사랑의 안이요, 사랑의 도라는 것을 깨달아 사랑의 성질을 알고, 또 예수님 앞에 은혜 받는 데에는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또 돕지 않은 것이나 자기가 뭐 자체가 심하게 가련하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나, 그 증세가 심한 것도 예수님 앞에는 상관없고, 또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 것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도 상관없다. 이런 것이 다 초월되어 있다. 상관없다. 다만 네가 낫고자만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신구약 성경에 많은 계약을 해 놨는데 계약된 이 모든 것은 자기가 그 계약대로 은혜를 받고자만 하면 됩니다. 그 계약대로 은혜를 받고자만 해서 계약대로 은혜를 받고서 그 사람이 되고자만 하면 됩니다.

의인 되고자 하면 되고, 권능 있는 사람 되고자 하면 되고, 성결한 사람 되고자 하면 되고, 부자 되고자 하면 되고 뭐이든지 되고자 하면 다 됩니다. 되고자 하면 되는 것은, 되고자 하는 데는 딴것 가지고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이와같이 하나님이 해 주신다 했으니 요 사실을 믿고 거게 관한 그 믿는 행위를 할 때에 됩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는 반드시 그 앞에 어떤 전제가 있느냐 하면은 믿을 수 없는 그런, 자기 은혜 받을 중량이 백 근이면 믿기 어려운 것이 한 백 근쯤 방해를 하기 마련입니다. 또 은혜 받는 게 천 근짜리 은혜를 받을 것 같으면 그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한 천 근쯤 방해를 합니다.

왜? 그 중량을 방해하는 데에 그 중량을 이기고 나야 자기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믿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믿기 때문에 어려운 은혜를 받을라고 할 때마다 어려운 방해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요 성경에서 깨닫고 내가 은혜 받을라 할 때에 은혜 받으면커녕 정반대되는 그런 형편이 몰려올 때 그때가 믿기 어려운 때고 낙심하기 쉬운 때입니다.

그럴 때가 이제 밤중인 것을 깨닫고 그게 고개인 것을 생각하고, 그게 고개. 그게 고개인 것을 생각하고 고비인 것을 생각하고 그럴 때에 낙심하지 말고 믿으면 왁 통과해 가지고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믿는 일에는 아무도 방해를 하지 못합니다. 이랬는데, 성경 보면은 에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서 여러가지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부자 된 것도 있고, 형통한 것도 있고, 또 지위 얻은 것도, 권세 얻은 것도 있고 모든 것 다 있습니다.

있으나, 그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 누구뇨? 자타에게 대해서도 영광스러운 사람이 누구뇨? 요것은 자기라는 그 병을 고친 자입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가 다른 사람 볼 때에 거게서 제일 불쌍하고 가련하다고 아마 구걸도 좀 많이 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잘못 생각하면 ‘이것은 옛날 여기 있던 것들이다’ 하고서 또 더 멸시 천대하고 박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환자 가운데에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 은혜 받고 보니까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제일 인기 집중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다.’ ‘그 사람이 어찌 그리 돼?' `그 사람 같기는 같다마는 그 사람이 저렇츰 뛰고 굴리고 저렇게 하나님을 찬미하고 성전에 들어갈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모든 사람이 놀라서 그 사람의 인인 관계의 평가는 아주 폭등됐습니다. 인인 관계의 평가는 아주 폭등돼서 가장 천한 것이 가장 존귀한 자 됐고, 가장 불행스러운 자가 가장 행복스러운 자가 됐고, 가장 비관하고 낙망하고 슬픈 자가 가장 행복스러운 자 됐습니다.

여게서 오늘 아침에 내가 증거할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가운데에 자기라는 사람병을 고칠라고 하는 그 사람이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입니다. 자기라는 사람병을 고치면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대우하는 것도 다르고, 또 자기를 가치로 평가하는 것도 다르고, 관계하는 것도 다르고, 자기가 사물 관계도 다르고, 또 인기도 다르고, 모든 사람에게 존대받고 행복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어서 오만 은혜의 종류가 뭐 수많은 종류가 있지마는 제일 행복은 자기라는 사람병을 고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사람이 되리라는 그 사람이 제일 요지를 잡았고 제일 행복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제가 뭐 ‘내가 이래 가지고서 좀 뭐 해서 사업이나 뭘 하고, 또 뭐 한번 축복받아서 경제나 좀 나아지고, 또 내가 이래 가지고 뭣이 좀 일이나 형통하고.’ 그런 것도 좋지마는 그런 거는 다 뿌스러기요 그런 거는 진짜는 아니오. 사람병만 고치면 권세도 있고, 지위도 있고, 대우도 있고, 돈도 있고, 뭐 영광도 있고, 존귀도 있고, 평강도 있고, 기쁨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행복을 붙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어짜든지 예수 믿어서 예수님과 같은 온전한 사람 돼 보자. 내 이 마음에 모든 더러운 것을 고치고 또 행위에 더러운 걸 고치고 이 몸에 모든 습성의 더러운 것을 고쳐서 예수님같이 온전한 사람이 돼 보자.’ 하는 요 욕망을 가진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을 가졌고 아주 요지를 가졌고 진짜를 가졌고 그 사람이 제일 행복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런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은 육체의 병 고치는 거 낫지마는, 육체의 병도 고치면 만족되는 줄 알아도 만족 아니오.

처음에 예를 들어서 암병 든 사람이 암병을 고쳤으면 만족이 안 됐겠소? 눈병 든 사람이 눈을 치료해 눈이 환하게 보이면 좋지 않겠소? 그것은 낫기 전에 이제 나을라고 하고 낫기 전에 ‘된다’고 하니까 좋지요. 거지가 부자 되면은 부자가 될 걸 생각할 때에 좋습니다. 세상 축복은 될 것을 소망할 때에 좋고 되고 나면은 좋습니다. 그러나, 된 지 세월이 조금 지내가면 권태나고 재미 없습니다.

여러분들, 병원에서 병든 사람이 다 나으면 얼나마 기쁘고 즐겁겠지마는 여러분들 다 우리가 건강한데 자기 건강에 대해서 기쁘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있습니까? 예사입니다. 건강하면 건강 거기 대해서는 관심 없고 지금 다른 데에 욕망이지 건강에 대해서는 좋은 줄 모릅니다.

아마 정권자들이 정권 잡기 전에는 마구 정권을 잡으면 좋겠다 했지마는 정권을 막상 잡고 난 다음에 얼마 지나고 나서 그 정권에 대해서 탐심을 가지고 행복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정권을 잡고 난 다음에는 정권을 그만 그 기간이 차면은 어서 정권을 내놓고 나올라고 하지마는 밑에 속한 것들이 정권을 잡으면 자꾸 좋다고 정권을 내주지 말라고 이래 가지고, 이거 저거가 잘못했으니까 ‘만일 정권 내놓으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 죽습니다. 각하가 정권 내놓으면 나는 무슨 일 처리할 때에 내가 박하게 했기 때문에 죽습니다.’ 이것들이 정권 내놓으면 ‘나는 죽으니까 각하 나하고 둘이 맞죽읍시다’ 이라기 때문에 내놓지 못하요. 박 대통령이 그 정권 내놓을라고, 삼선 당했습니까? 박 대통령이 당하기를 몇 선 당했습니까? ○장로님 그런 거 잘 아는데. 삼선 당했는데 벌써 이선에는 그분에 그 맘이 조금 있었고 삼선 당할 때는 안 할라고 죽자껏 애를 써도 환경에 있는 사람 때문에, 안 하면 옆에 사람들이 죽일라 하니까.

여러분들, 크나 작으나 지혜 있는 사람은 조그만한 데서 생각해 봐도 알아. 세상 일은 뭐이든지 당할 때는 막 좋아서 이거 지금 욕심이 나서 이것만 하면 제일 상등이다 싶으지마는 나중에 그라고 난 다음에 권태나고 지겹고 싫고 다 싫습니다.

연애 결혼하는 사람 ‘이 연애 결혼만 하면 이만하면 뭐 만족하다’ 하지만 연애 결혼이 될 때까지 그렇지 좋지 연애 결혼 딱 되고 나면은 많이 가 봤자 며칠, 몇 달 안 갑니다. 일반 지혜 있는 사람 통계하기는 일주일이라 합니다. 결혼의 욕망에, 욕망은 일주일되면 권태나고 다 실패하고, 명철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세상 일은 이루어지기, 되기 전에 미래에다 두고서 소망으로 둘 때 좋고 소망이 이루어지면 잠깐 좋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그게 좋은 줄을 모릅니다. 좋은 줄을 모르고 또 딴데, 그 소망은 또 딴데 있어. 딴데 있고, 그러니까 평생 ‘요것 했으면 좋겠다’ 욕망 가운데 있고 욕망이 이루어지면 며칠 잠깐 좋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후회하고 자꾸 그라고 마는 것이지 계속 좋은 게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가운데서도 이 세상 사람에게 속한 거, 뭐 고기덩어리가 병이 낫는다, 뭐 세상에 공부를 해서 지식에 통달하게 된다, 뭐 어찌 된다. 없어질 거 그런 것들을 받은 것은 그것이 받기 전까지는 행복이요 받고 난 다음에는 잠깐뿐이지 잠시 후면 다 권태나서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걸 깨달으십시오. 하나에서 깨달으면 둘 알아야 돼. ‘문일지십이라’ 하나 들어 가지고 알면 열 가지를 아는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한 가지.

‘이거 내가 뭐 조그매, 내가 그래도 천만 원만 자본이 되면 막 족하겠다.’ 그거 되기까지는 천만 원만 되면 좋겠다고 이렇게 하지마는 천만 원이 착 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그것으로 만족이 없습니다. 뭐든지 다 그래.

이러니까 그걸 앉아서 계산 다 해요. ‘나는 정권자가 됐다’ 정권자가 돼도 그것도 이 이치와 꼭 같기 때문에 그것도 좀 있으면 권태날 것, 그라면 부자는 온 세계를 자기 소유물을 다 만들면 족하겠느냐? 만들어도 또 그것도 잠시 후면은 만족하지 못할 것. 그러나 자기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자기를 참사람으로 만든 이거는 권태가 없습니다. 사람 만든 것은 조그매 만들어도 만든 그것이 행복이고, 사람 된 거는 말이오.

고기덩어리 이거는 건강하면 건강한 것도 죄 짓고 또 이렇습니다. 이렇지만 사람이 진실을 만들었든지, 거룩을 만들었든지, 참된 지혜를 만들었든지, 참된 지식을 만들었든지, 선을 만들었든지, 사랑을 만들었든지, 의를 만들었든지 이런 것은, 자꾸. 하나님의 형상은 만들어 갈수록이 만족이 됩니다.

여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이었지마는 자기가 이 병이 낫고 나니까 그 사람들 가운데에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 됐고 제일 기쁜 사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내가 설교하는 것은 우리 예수를 믿어도 권태나지 안하는, 갈수록이 자꾸 행복스러운 것은 자기 믿음 병을 고쳐서 믿는 일, 소망병을 고쳐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 사랑병을 고쳐서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 사람병을 고쳐서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 이거는 갈수록이 얻어갈수록이 부강해 갈수록이 기쁘고 즐겁고 만족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 속한 허영과 허욕 그런 것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자 하는 이것이 우리 기독자의 진수의 소망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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