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38년된 병자의 표적

 

82. 6. 20. 주후

 

본문:요한복음 5장 5절~15절 거기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이 기록은 표적된 것을 기록해 주신 것인데, 38년된 병자로 표적을 삼은 그  실상은 우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이요 이 계시는 하나의 표적으로 그  사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표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이 있는 여기에서 이  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그 실상인 우리들은 이 표적으로 인해서 생명의 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오전에도 말씀하셨지마는 그 중에 우리가 한 가지 계속 가져야 할 것은 이  38년된 병자가 참 자기에게 소망하여야 할 소망, 해결되어야 할 해결은 이 병만  나으면 자기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사람이요 이 가련한 신세를 벗을 수가  있는 것인데 병 하나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병만 나을 길이 있다면, 병만 나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데 이 병이 낫지  않고 오랫동안 가고 점점 심해져 가니까 이제 병낫는 데에 대해서는 소망을 전혀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아니하고 오고 가는 만나는 그 사람들의 덕을 봐서 그날 그날 그저 연명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이것이 이 환자의 소망이었습니다. 가장 가져야 할 이  소망은 가지지 아니하고, 또 가져 봤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지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참 자기에게 필요한 좋은 소망이 있지마는 이 소망은 아예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다 포기해 버리고 그저 인인관계에서 구걸 해 가지고 남의 덕을 봐서  자기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던 이 환자, 이 환자가 누군고? 곧 이 환자가 우리인  것을 이렇게 이것으로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하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가  살았다가 죽고 난 다음에는 죽었다가 다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심판을 받아 영원 무궁을 맞이할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는 참 큰 소망이 있는 우리들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 대리자로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살 수 있는 우리들이며,  영계와 물질계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내것으로 살 수 있는 이런  소망이 우리에게 계약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가 이 생명으로 말하면 암만 살아 봤자 그뭐 백세가 원이지마는 백세  해도 끝이 있습니다. 또 이백세 산다 해도 이백세도 또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소망은 참 온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대리자 되게, 만물 위에  만물의 중보자가 되어지는 이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분명히 할일이요,  여기에 부족한 점을 다 보충하고 또 잘못된 점을 고치고 이것이 우리가 분명히  가질 소망인데, 이 38년된 병자가 병 나을 소망을 잊어버린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이런 소망은 잊어버리고 이 병자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서  구걸해 가지고 그 사람들 덕을 봐 가지고 그저 그날 그날에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이 모든 것에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 주님이 계시지만 주님은  말로만 믿고 그저 또 그런 하나의 형식으로만, 이 습관적으로 행하지 이 주님에  대한 소망을 우리가 실상은 가지지 못한 38년된 병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소망을 가지지 못했으면 우리는 어떤 소망 가졌는가? 그 38년된 병자는  오고가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덕을 봐서, 구걸은 그 사람들에게 덕보는 게 구걸  아닙니까? 그 사람에게 도움받는 게 구걸 아니오? 사람의 덕을 봐 가지고 그날  그날 살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이 구걸하는 행위를  우리가 아직까지 벗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기 쉽습니다.

자기가 제 힘으로 산다고 하지마는 사람을 접촉하면 ‘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된 접촉을 가지겠느냐? 유익된 교제를 하겠느냐? 유익된 관계를  가지겠느냐?’ 이것부터 먼저 생각하는 그것이 구걸하는 거지 행위입니다. 그게  거지 행위요.

또 이런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도 ‘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가지고 내게 좀  이건이 많게 할까? 또 이 물건도 어떻게 작용 활용하면 내게 유익이 많을까?’  전부 물질의 덕을 보고 사건의 덕을 보고 인간의 덕을 봐 가지고 이것 가지고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 볼려고 애를 쓰는 이것은 전부 구걸 행위입니다. 이거 다  거지 행위요.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에게도 주어라. 모든  사건에도 네가 도와라. 또 모든 만물에게도 네가 은혜를 끼치는 자가  되어져라.’ 보디발의 집에 모든 농작물은 요셉으로 인해서 풍년이 되었고, 또  애굽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요셉의 혜택으로서 잘 살았던 것입니다.

너는 사람도 덕 보이고 일도 덕 보이고 물건도 덕 보이고, 하나님에게만 덕을  보고 모든 것에 덕을 보이는 것이 너희 성도들인데, 하나님에게 소망은 아예  그만 절망돼 버리고 이제 피조물 이것 저것에게 어떻게 욕망을 가지고 좀 덕이나  봐 가지고 살까 해서 그것의 덕이 좀 보여지면 상이 쭉 펴이고 그것의 덕이 그만  끊어지면 상이 찡그러지고, 힘이라고 배짱내고 떠들고 큰 소리하고 하는 것이  그게 전부 지저분한 인간 사물 이것의 힘을 가지고 배짱내기 때문에 저는 잘난  줄 알지만 실상 보는 사람은 못났다 그말이오.

네가 그걸 수치인 줄 알지 못하고, 그것이 정함이 없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그것 가지고 네가 며칠 갈 거라고 네가 배짱내니, 참 못났다. 참말로 못났다. 참  못났다. 이 못난 자인데 제가 잘난 줄 알고 떠들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걸 가지고 그저 유지해 나가려는 요 행위를 우리가 고쳐야 합니다.

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소망 가지는 이 소망을, 이것은 암만 가져 봤자 가질수록  병신 노릇 더 하는 것이고, 가질수록 빚 더 지는 것이고, 가질수록 명예는 점점  천해지고,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가질수록 1년 지나면 1년 거지, 10년 지나면  10년 거지. 그 뭐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꼭 그겁니다.

38년된 병자가 병낫는 거는 생각지 않고 엉뚱한 생각만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낫고자 하느냐’ 하는 이 말씀이 엉뚱한 말씀을 하는 것같이 보여지지마는  실은 주님은 바로 말씀하셨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삐뚤어지고 틀렸기 때문에  엉뚱한 말이라 해. 엉뚱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참소망을 가져라 하는 것으로  이제 경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연 내가 이 38년된 병자와 같이 내가 가질 소망, 내게 중요한  문제, 내게 해결될 문제 이것은 다 잊어버려 버리고 암만 해 봤자 해결도 되지도  않고 문제도 잘 풀리지도 아니할 것이고, 이거는 가련한 자가 소망하는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여기에서 절실히, ‘주여! 나는  이런 소망에서 살지 않겠습니다. 결심합니다. 약속합니다. 맹세합니다. 주여!  내가 피조물에게 소망하고 살지 않겠습니다.’  내가 이런 것들의 덕 봐 가지고 살겠다고, 이러니까 서로 이런 것들 덕볼려 하는  것만 주 모아 놓으니까 그거 있어 봤자 전부 가련한 생활이요 비참한 생활이요  다 사망선 이하에 있는 것들이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있기를? 그 감투가 크면  어쩔 것이오? 감투가 작으면 어쩔 것이오? 커도 작아도 정함이 없어. 오늘이  끝날인지 내일이 끝날인지 모른다 그말이오. 이 구걸 생활을 비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구걸 생활에서 이 소망을 바꿔야 됩니다.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는 사람, 낫고자 하는 사람.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니까 육신의 병이지마는 신령한 이스라엘 시대는 심령의 병을 고쳐서 심령이  낫는 시대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무슨 병이 들었든지 예수님 이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낫겠다 하는 이 소망을 우리가 바꾸어 가질 지금 시기입니다.

1절에 보면 유대인의 절기라 하는 이 절기는 무슨 절기인고 하니 옛것은 보내고  새것을 가지는 송구영신하는 절기입니다. (오전에도 자더니만 또 자는구만. 이  능력이 그속에 역사하지 않아. 조사님이지만 속에 능력 역사 안 하면 소용  있는가?)  이렇게 우리는 이미 이것으로서 계시 말씀으로 우리가 지혜를 얻었고 영감으로  빛을 받았고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예수님이 우리 구주라는 것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입으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피조물들에게 덕을 봐서 그날 그날 세상에 있는 동안의 생활을 꾸려  나갈려고 하는 이 소망을 완전히 버리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우리 구주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인신 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제  이 인간병 한번 고쳐 보겠다. 내 심령병을 한번 고쳐 보겠다. 영은 다  고쳤지마는 내 마음병을 고쳐 보겠다. 내 몸의 기능병을 한번 고쳐 보겠다.

이것이 우리 기독자로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소망이요 포부요 가치인 것입니다.

자기 사업이 병들었다 할지라도 병든 마음이 그로 인해서 치료된다면  행복입니다. 자기의 재산이 병들었다 할지라도 그의 양심과 그의 의의 신앙  의지가 살아났다면 못할 것 없습니다. 그런 것은 다 인간의 실력에게 붙어  따라다니는 것이오.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금방 죄수가 총리대신도  되는데. 금방 목동이 일국의 대왕도 되는데.

이러니까 우리가 피조물로 인해서 그것의 혜택을 입어 이 세상살이를 어떻게 잘  꾸려 나가자 하는 요런 근시자 모양으로 짧은 소망을 가지고 힘없는 것, 그까짓  거 비틀거리는 것인데, 어제 있다가 내일 뒈질런지 모래 뒈질런지 떨어질런지  모르는데, 이것을 의지하고 힘입어 가지고, 이 세상살이야 그저 조반석죽으로  근심없이 제 욕심대로 제 취미대로 살아나가면 다이다 생각하는 이런 근시자,  네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심판받을 때 어떻게 할 것이가? 무궁 세계에 네가 어떻게 되느냐? 네 몸에 지금  과거에 살아나온 가운데 네 심신의 기능이 얼마나 죽었으며 얼마나 살아났느냐?  이런 것은 계산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어쩌면 밥 먹을 게 떨어지지 않겠나? 옷  입을 게 떨어지지 않겠나? 어쩌면 마누라 아들 딸 기쁘게 하는 것 자본이  없어지지 않겠나? 어떻게 하면 남편을 봉양할 자본이 없어지지 않겠나? 기껏 해  봤자 송장 준비 외에 딴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거요. 송장 준비. 사람도 송장  되고 가정도 송장 되고 부부도 송장 되고 윤리도 송장 되고, 송장 되고 끝을  마치는 것입니다.

힘없는 것을 의지하고 가치 적은 것의 덕을 봐 가지고 해 봤자 소용없는 그것을  꾸려 나갈려는 이런 비참하고 가련한 이것이 소경 놀음이요, 이것이 참 가련한  신세인 것을 이걸 깨닫고 이제 포부를 옮겼어.

‘낫고자 하느냐’ 하는 이 주님의 음성에 따라서, 나도 이제는 인간병을 고쳐  보겠다. 심령을 고쳐 보겠다. 나도 한번 의지를 가지면 목숨이 끊어지고 또  끊어져도 꺾어지지 않는 의지, 온 천하를 내다 의지 위에 올려 놔도 천하가  튕겨서 도망을 쳤으면 쳤지 내 의지는 꺾을 수 없다. 어떤 사망이 와서 제가  덤벼든다 할지라도 내 의지는 꺾지 못한다. 내 양심에는 근방에 오지를 못할  것이다. 내 정확한 판단 정확한 평가에는 어떤 마귀의 기묘한 미혹이라도 절대로  유혹주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참으로 사람병을 한번 고쳐 보겠다. 이 심신의 병을 한번 고쳐  보겠다 하는 이 소망으로 소망을 바꾸고, 의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이제는 만유의  주로, 해 주고자 하는 그분, 능한 그분이 해 주고 안해 주는데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의탁하고 이래 할 일이지 아무것도 없는 게, 실력이나 있으면 하지만  실력도 아무것도 없는 게 빼기는 쭉쭉 빼고 해줄듯 해줄듯 하고, 또 해 준다고  해 봤자 좋은 것도 못 해주고, 제까짓 게 해줄 힘도 실력도 없는 것 이런 거한테  빌붙어 가지고 거지 노릇 하고 구걸 노릇 할 게 뭐입니까?  해 주기를 원하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해 주기를  원하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분이 계시는데 이분에게 의탁하고 이분에게 의지할 일이지.

바울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내가 걸어가는 걸음을 ‘미련하다,어리석다, 왜 저  고생을 자취하는고?’ 하지마는 내가 이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내가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안다. ‘내가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내가 알기 때문에 그분이 말하는 대로 내가 걸어가는 일이니 어떤  걸음이라도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의탁한 것을 그분이 그날까지 지켜  주실 것을 내가 확신한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고로, 38년된 병자가 이제까지 그와같이 되었던 그 모든 소망과 의뢰의  대상을 완전히 버렸어. 완전히 버렸어. 완전히 버리고. ‘낫고자 하느냐?’  ‘예, 낫고자 합니다.’ 낫고자 합니다 하는 고백이 나왔을 것이오. 이것이  우리가 첫째로 이 계시에서 받을 복음입니다. 이것 못 받으면 그에게는 정죄의  율법이 되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가지면 허무한 것 같고 허영 같고 허욕 같지마는 아니오.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가졌으면 눈을  뜬 사람이오. 깬 사람이오. 구속의 도리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오. 이 사람은  죽은 송장이 아닙니다. 살았습니다, 벌써.

아무런 희망이 없지마는 희망이 없어도 물질이니 권세니 호의호식이니 추접한  행락이니 이런 데 소망을 가지지 아니하고, 희망이 없지만 내가 하나의 참사람이  돼 보겠다 하는 자들이 다 종교 창설자들이오. 그들이 지저분한 인간 지식을  초월한 철학의 사람들이오. 그들이 희망이 없어도 궁극을 바라는 궁극적의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이런 포부 중에 일생을 바쳐서 얼마나 힘썼지마는 힘써도  안됐어. 울어도 안됐어. 계속해도 안됐어. 왜?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는데  그것을 해 줄 중보자가 없었기 때문에 안됐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 주기로 벌써 작정하시고 하나님 앞에서는 다 완성을 해 놓은  중보자가 우리에게 와서 이 해 놓은 것을 받아 가져라 하니까 가지면 됩니다.

이제 가지느냐 포기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서 다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욕망부터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예수믿어 뭐 부자 되겠다, 예수믿어 뭐 좀 권세를 잡아 보겠다, 예수  믿어서 유명해져 보겠다, 큰 사업가가 돼 보겠다. 그것도 좋지마는 아직까지 그  사람은 이 복음을 바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잘하면 하나님 계시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되고, 잘하면 하나님의 계약은 참 진실하다 하는 예수  믿기 시작하는 사람이 되지 그거 예수믿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거 성공해 봤자 끝이 있다 그거요. 성공해 봤자 마지막에는 성공 안 한  것이나 꼭 근본과 같이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의 인생관을  말해 놓은 것 보니까 이래 말합디다.

나는 그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보니까 여우 새끼가 포도원 밖에서 포도를  보고 욕심을 내서 암만 들어갈려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는데 욕심을 내서 여러  날을 애를 쓰다 보니까 조그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들어갈려고 애를 쓰니  아무리 해도 들어가지 못하고 애를 쓰다가 마지막에는 들어가졌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도 마르고 피부도 마르고 바짝 마르니까 그 구멍에 들어갔다.

들어가 가지고 실컷 따 먹고 얼마동안, 한 몇달동안 있으니까 살이 뚱뚱해졌는데  이제 거기 있으면 잡혀 죽을 터이니까 나가야 되겠는데 또 나갈려고 가서, 그  구멍밖에 나갈 데 없으니까 그 구멍으로 나갈려고 하니까 암만 애를 써도 안돼서  꼭 들어갈 때와 같이 바짝 마른 그 근본 상태가 되어지니까 나오게 됐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이 세상에 들어와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해도 세상이 들어올 때와  꼭 같이 세상 나갈 때는 그대로 돼 가지고야 나간다 하는 그 인생관을 정만수,  정 무슨 목사님인가 하는 분입니다.

이것이 눈을 뜨고 인간의 이 세상살이와 세상 오기 전과 세상을 떠나가고 난  다음 이 세 토막을 바로 본 눈이 밝은 사람의 인생관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암만  그까짓 거 성공해 봤자 내나 세상을 떠나야 될 터인데 떠날 때는, 다 빈손으로  와 가지고 빈손으로 갈 터이니까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쫓겨나고  난 다음에 내게 유익될 것을 쫓겨나기 전에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연구하는  데에 번민하고 고민하다가 ‘할일 알았도다’ 하는 이것이 지혜있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암만 말해도 못 들으면 몽둥이밖에 맞을 것이 없어. 몽둥이.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디리 볶으면 그때사 당황해서 날뛰어. 막 떠들고, 간 큰것 아니라 그때  오면 오그라지기를 그뭐 형편없이 될 자들이 공연히 배짱을 내 가지고 큰 소리를  하고 있다 말이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자가 어디 담대한 자가 있으며 어디  기 펼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소망도 이 세상에서 머무는 동안에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을 소망하는 이  소망을 바꿔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거룩하심같이,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같이 깨끗하라 이렇게  하나님처럼 되어져라’ 하는 이 소망보다 큰 소망이 어데 있습니까? 이 소망을  우리가 바꿔야 하고,  또 피조물들을 힘입어서 무엇을 해 보려는 이것을 이제 버리고 나를 위해서  대속하신 이 창조주시며 주재자이신 이분을 힘입어서 이분의 은택을 입어 가지고  내가 지극히 큰 이 욕망을 달성해 보려는, 내가 의뢰 의탁하는 것을 바꾸고  이래야 이것이 이 계시에서 첫째로 복음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가져야 돼요.

원청 녹이 끼이고 너무 죽어서 기진 맥진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요. 또 술이  취해서 취중이니까 본 정신이 없어. 무슨 취중? 세상에 취해서 본 정신이 없어!  세상에 취해서 세상 사람이 됐어. 세상이 뭐인지도 몰라. 이것을 상징해서  술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소망을 바꾸고, 소망을 이루어 줄 그 주를 나를 돕는 그 대상을  피조물을 창조주로 바꿀 것. 내게 대해서 냉정한 자를 내 놓고 무한의 사랑의  분으로 바꿀 것. 주기를 싫어하는 자를 내 놓고 주고 싶어 원하고 원하고  죽기까지 하신 분으로 바꿀 것.

이거 바꾸고 나면 이 소망을 이룰려고 하면 당장에 우리에게 네 가지 문제가  봉착이 될 것입니다. 네 가지 문제가 봉착이 될 것이라.

뭐 네 가지? 내가 이렇게 참 나도 한번 성자가 돼 보겠다. 성녀가 돼 보겠다.

나도 한번 의인이 돼 보겠다. 나도 세상을 이길 만한 의지의 사람이 돼 보겠다.

모든 사이비한 복잡한 이 죄악들을 유혹들을 이길 만한 양심의 사람이 되어  보겠다. 하나님과 나와 동행해서 전 인류가 달려들어도 거기에서 자유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돼 보겠다.

참 이렇게 예수님께서 피흘려 구속하신 기독자의 참 소망을 가지고 이루어  갈려고 하면 난제가 네 가지가 닥치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을 하려고 하면 네  가지가 닥칩니다. 안해 본 사람은 몰라도 할려는 사람은 닥칩니다. 잘난 사람도  닥치고 못난 사람도 닥치고 다 닥쳐요.

하려고 해 보면 잘난 사람도 ‘내가 이렇게 무능하니 어찌 되느냐?’ 하는 것  닥치고, 또 해 볼려고 하니까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하는 것처럼  하려고 들어보면 ‘내가 이렇게 엉망진창의 허무한 자인 줄 나는 몰랐네’  발견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희망없는 엉망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자기는 이것도 해  볼려고 하니까 무능하고 저것도 해 볼려고 하니까 무능하고, 참 쓰지 못할  인간이라. 저를 저주하고 저주하고 바싹 불에 태워 없애 버리면 싶어. 제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것. ‘이런 게 뭐하려고 났는고? 이제 나고 난 다음에  이제까지 수십년 동안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렸으니까 요 꼴이 되지  않았는가?’ 분개함이, 자기에 대해서 분개함이 누구에게 분개함보다도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무능 문제, 자기가 가장 비참하게 타락되어 있는 문제,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돕지 않는 면, ‘사람 덕을 못 본다.’ 사람 덕 볼 게 뭐요? 사람에게 덕을  보이면서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했지, 사람 덕 보고 살지 말라는 말이  이게 하나님의 전체의 부탁이오.

‘나는 사람 덕이 없는 사람이라. 인덕이 없는 사람이라.’ 인덕 없다 하는 그  자가 제일 악자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덕 본 거는 잊어버리고 요만치만  덕을 보여도 그거는 평생 깨 씹습니다. 그자! 자기 주관만 아는 자. 그자의  행동에 상당한 고통의 보응이 저희에게 그로 인해서 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덕이 없다. 인덕이 없다. 물덕이 없다. 사회의 덕이 없다. 나라의 덕이 없다.

나는 덕을 못 보는 사람이다’ 하는 문제가 자기에게 또 이것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하니까 아무것이가 방해하네. 아무 회사가  방해하네. 누가 방해하네. 누가 이간을 붙이네. 누가 간섭을 하네. 나를 매장을  시키네. 나를 억울하게 삣고 깎고 허네. 사람들이 나를 방해하네.’ 방해하네  이것도 당도됩니다.

이 네 가지 문제가 당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문제가, 자기가 소망을  바꾸고 그 혜택의 대상을 바꾸고 난 다음에 이 네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 이 표적에서 요 네 가지 문제가  일어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오. 우리에게 요게 있기 때문에, 실상이 있기  때문에 이 표적으로 요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이 병신의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이 네 가지 문제가  하나나 해결짓고 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네 가지 문제를 해결짓고 난 다음에  이 일이 됐습니까? 이 네 가지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해결을 짓고 난 다음에 이  38년된 자의 이 모든 원인이 해결됐습니까 하나도 해결짓지 아니하고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런 것을 다 초월해서 해결이 됐습니까? 어느 것입니까?  그 어려운 난제 넷을 하나라도 수습을 하고 해결했습니까, 있든지 말든지 거기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아니하고 상관도 하지 아니하고 이 네 가지 문제가 해결이  됐습니까? 그거 상관없이 해결이 됐다고 아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반에는 저기 안 든 사람 더러 있는데? 안 든 사람은 들어요. 남의 머리 뒤에  숨으면 아는가? 이래 들어야 내가 보지. 그러니까 여기 다 들었습니다.

요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굳게 잡으십시오. 요 소망을 바꿔 가지고 갈 때에  자기에게 자기의 현 상태로 오는 모든 절망을 여기에서 완전히 여기에서 해결을  지워 요 절망을 완전히 깨트려 멸해 버리십시오. 자기 자체의 무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염려, 근심, 낙망 이 모든 것을 요 말씀에서 완전히 바꿔 버리고  불에 태워 버리십시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말씀 아닙니까?  내가 살아나갈 때에 누구의 도움을, ‘아, 이 일에는 아무것이가 좀 협조해야  되겠다. 누가 협조해야 되겠다.’ 물론 협조라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무것이하고 의논해라’ 하는 거 하나님의 뜻이면 의논해야 됩니다.

의논하다가 되면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줄 알고 의논하다가 안되면 의논하라는  것만 하나님의 법칙이지 의논하다 안돼 봤자 낙망은 없습니다. 낙망은 없습니다.

왜? 그 도움의 혜택 하나도 없어도 주님과 나와의 하는 일은 상관이 없어.

의논하라 했기 때문에 했지. 믿음으로 순종으로 했지. 그 혜택이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걸 다 초월하는 게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배짱, 기독자의 배짱은 인간이 모르나 그 배짱은 세상이  달려들어도 요동치 못하는 배짱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을 ‘교만하다  어리석다’ 별별 명패들을 붙이지마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습니다.

알속있는 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방해하니까, ‘아무것이가 무슨 무슨 방해를 하니 네가 가서 그래도 말을  해라.’ 말을 하라 하면, 말을 하라고 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순종으로 가서 말을  하라 하는 것이지 이 방해가 중단되지 않으면 이 일이 낭파된다 하는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서 그분에게 서로 화평을 취하고 의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요 뜻이요  이것이 마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교훈이기 때문에 가서 서로 타협하고  ‘이렇게 하자.’ 해서 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해서 된 것 보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이 해 준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해 주는 것인 것을 알고  감사히 받고, 하다가 안 되고 여전히 방해를 합니다. 나는 할 것 다 했으니까 그  방해하고 안 하는 것이 주님이 나와 둘이 하는 그 일에는 방해하고 안 하고  그거는 상관이 없는 것을 요 성구에서 잡으십시요.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 들어가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 있습니까?  발등치기를 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오? 방해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오?  요 네 가지 요 모든 일어나는 난제들을 완전히 요 말씀에서 확고히 잡고 해결을  딱 짓고 다시 재론하지 않아야 신앙의 터를 닦은 사람입니다! 이런 거는 신앙  행위에 터가 되는 것인데, 터를 닦아 가지고 또 새로 터 만들고 터 만들고  이렇게, ‘다시 다른 터를 닦지 마라. 다시 터를 닦지 말아라.’ 히브리서 6장에  “다시 터를 닦지 말아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그러면 할 일이 뭐입니까? 오전에 말씀했는데, 할 일은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이 세 가지만 하니까 다 됐습니다. 요것이 에누리 있는  말 아닙니다. 에누리 있는 말 아니오.

그러면 이 말씀은 인간병을 고치는 것이니까 심령병 고치는 데에만 관한  말씀인가? 네, 심령병 고치는 데에 관한 것이 주체적인 말씀이오. 그러나  심령병을 고치면 다 됩니다. 다 돼요. 심령병을 고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으나 내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것이라. 필요한 것은 그때 그때  다 줘.

이러니까 이 이치는, 여기에 주체로 말하는 것은 심령병 고치는 것을 말했지마는  이 이치는 ,주님은 모든 질고를 담당하셨다. 우리의 모든 가난을 담당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체로 서는 이것이지마는 요 이치는 주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주신 요 계약적 이치이기 때문에 이 이치는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자기 권세가 이렇게 병들었으면 이 권세 치료도, 사업 치료도, 재벌  치료도, 가정의 우애 치료도, 부부간 정리 치료도, 건강 치료도 이 이치는  이치이기 때문에 큰 이치 적은 이치 가치가 다르지 이 이치는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치료 안 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네가 여러 배 백 배를  얻으리라’ 전토가 무슨 심령 운동입니까? ‘전토도 백 배나 얻으리라. 네  가정도 백 배나 좋은 가정 만들어 주겠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헛된 것을 의지하던 것을 당신을 의지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것을 주님이 소원하십니다. 또 인간이 병듦으로 생겨진 그 모든 화만 벗을려고  애쓰지 말고, 참사람에게 속한 행복만 욕심내지 말고, 사람병 고쳐서 참사람  되어지면 인간병으로 말미암아 오는 화 그거는 저절로 물러갈 것이고,  참사람에게 붙어 돌아다니는 행복이라 하는 것은 오지 말라 해도 올 것이고,  이러니까 의지하기는 당신만 의지하고, 나에게 해 주실 이는 당신의 솜씨만  바라보고, 내가 소망하는 것은 화이니 복이니 그까짓 거 소망하지 말고 화와  복이, 화와 복이 원인이 되는 그 사람에게 소망을 둬서 화의 원인되는 사람만  죽여버려 버리고 고쳐버리면 화는 저절로 말라 버릴 것이고, 복의 원인되는  사람만 만들면 복은 저절로 생겨질 것인데.

이렇게 외식으로 껍데기로 속아서 가짜에게 항상 붙들려 속고 속이는 이런 생활  하지 말고 그 참됨에 속하라고 주님이 말했으니까 참됨에 속하면 된다 그거요.

다 됩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됩니까? 아닙니다. 다 됩니다. 다 돼요. 다  되는데, 다 되는데 안 해서 안되지 하면 됩니다. 저 사람은 무엇을 안 해서  안된다 하는 것을 압니다. 나한테 정말로 계약을 쓰고 와서 물어 보면 내가 다  가르쳐 주겠소.

‘왜 나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까?’ 너는, 학개서에 말씀하신 거와 같이  의와 죄가 다르다. 의는 했으면 고것만 의가 되지마는 죄는 하나만 있어도  전체가 다 죄가 된다. 고 비결이 고게 붙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외나  화덩어리도 되지도 못한, 그까짓 거야 있으나 마나 하는 깔따구, 깔따구 같은  그런 죄는 착착 회개를 하지마는 약대와 같은 커다란 죄가 있는데 그놈을  회개해야 될 터인데, 그놈이 복을 가로막고 화를 끌고 오는 그거 덩어리인데  그걸 말하면 당장이라도 분개해서 굉장할 걸! 굉장할 걸. 그거는 뭐입니까?  그거는 너 고치라 하는 말이오, 쉽게 말하면. 한 마디로 말하면 ‘너 그거  고치라.’ 거기에 대면 분발 대발 노발합니다.

오후에 그 장로님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몰라도 그 장로님이 이 5장 설교에서  은혜받은 것은 ‘이제 낫고자 하는냐’ 하는 요것만 있으면 됩니다. 그때는  그것만 하면 됐습니다. 그것만 하면 됐지마는 지금은 이제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낫고자 하는 자에게 그 위에 따르는 조건들이 많습니다. 그분에게 가  가지고 ‘지금 제일 구원을 망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인지 아십니까?’  내가 말하니까, ‘그거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가르쳐 줘도 노하지  않겠습니까?’ ‘네. 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그게 내나 자존심이라는  그건데 그놈을 죽여 버려야 되는데요.’ 이러니까 ‘예, 나는 참 목숨보다도  자존심에 걸리는 일은 이거는 참 못합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자존심에 걸리는’  ‘이제 고놈을 죽여야 됩니다.’ 그 말을 해서 피차에 웃고 나중에 그때  은혜롭게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요렇게 요것을 고칠려고 하는 자에게 네 가지 조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다만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는 요거 하나 가지고 됩니다. 시키시는 대로  순종 요거 하나 가지고 됩니다. 요 네 가지 조건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것을 완전히 해결짓지 않으면 주님 시키시는 대로 요 일을  못합니다. 요 네 가지 난제를 당장에 믿음으로 포기해 던져버려야 되지.

또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요것은 완전히 소망을 바꿔야 되지 소망을 바꾸지  않으면 시키시는 대로 못 합니다. 시키시는 대로 못 하요. 소망을 바꾸지 않으면  시키는 것은 전부 허무한 일뿐인데, 안될 일뿐인데,

주님이 시키시는 것 세 가지 시켰습니다. 세 가지 시키시는 대로 하고 보니까 그  사람이 나았습니다. 38년된 병자니까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은 안면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불쌍하다고 구제 안 준 사람 없었고, 이러니까 다 안다 그거요.

다 아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아 놓으니까 얼마나 좋겠소? 여기에는 다른  것이, 그거보다 딴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 기록하지를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보니까 앉은뱅이가 나아놓으니까 모로 뛰고 옆으로 뛰고  앞으로 뛰고 뒤로 뛰고 뭐 기뻐하면서 뛰면서 성전으로 뛰어갔어. 고것은 기록을  안 했지마는 이 사람도 형편이 꼭 같았으리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소?  이렇게 38년된 병자가 나아 가지고 훌쩍 훌쩍 뛰면서 성전으로 이렇게  감사하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이렇게 뛰어가니까 그때에 어찌 됐겠소? 사람들이  많았든지 적었든지 그 자리에서 인기, 인기는 전부 독차지했습니다. 인기  독점했어. 모든 사람의 인기가 거기에 다 기울어졌을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다 눈이 번뜩번뜩 거리면서 보고 뭐 모든 정신이 다 거기 기울어지고  정신 딴데는 다 잊어버렸을 것이오. 인기를 독점했습니다. 전체가 그분에게 다  주목이 기울어졌습니다.

또 그때에 그 대중 가운데에 제일 기쁨의 소유자는 누구였겠습니까? 제일 기쁨의  소유자는 누구였겠습니까? 그 사람이 아마 제일 기쁨의 소유자였을 것입니다. 또  감사에, 제일 많은 감사의 소유자는 누구였겠습니까? 그 사람이겠지! 이제는  38년된 병자가 나았으니까 별별 희망을 가지고 희망에 넘친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제일 희망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이었을 것이오. 이것이  인간 행복의 다 아닙니까? 인간 행복의 다 아니오? 여기에 빠진 것 있소?  이러니까,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제일 천한 자가 제일 높은 사람 되는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여기에 우리에게 이제 이 표적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세 가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세 가지  순종을 하려고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순종보다 앞서 있는 이 모든 순서와 모든  조건들이 다 구비되어야 됩니다. 이거 구비가 안됐으니까 순종하려고 해야  순종을 못 하게 된다 그말이오. 이제 순종하기 전에 이런 조건들이 다 구비돼야  돼.

뭐 병신살이의 의식주로 유지 생활하는 병신 생활 하는 그 소망, 그 소망을  버리고 이제는 저도, 그 가련한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이 병신돼 그렇기 때문에  이거 다 버려 버리고 원인인 병을 낫게 하는 이 소망으로 바꾸어 가졌다 말이오.

소망을 바꾼 것. 소망을 바꾸고 이제는 피조물의 덕, 혜택을 입어 가지고, 그  혜택을 입어 가지고 살려고 하던 그 답답한 것, 뭐 다른 사람이 올 때에 돈을  적게 줄상바르면 별별 일 다 했을 것이오. 더 병신 노름을 더 했을 것이오. 막  이래 가지고 ‘아야야, 아야야, 아야야! 음으음! 음!’ 이 병신 노릇을 병신이  더 된 병신으로, 진한 병신으로, 더 비참한 병신 노릇을 해 가지고 동정을  받을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혜택을 볼려 하다가 그 사람의 혜택을 안 줄려 하면  ‘안되겠다. 막 더 성을 내야 되겠다.’ 보면 자꾸 이래 놓으니까 성을 내버려.

오랫동안 산 사람은 상다구리가 전부 흉측한 마귀 상다구리가, 나이가  많아갈수록 마귀의 상다구리가 됩니다. 웅크리고 성내고 짜증내고 독함을 부려야  다른 사람이 아예 알아서 길 터이니까, 이게 병신 노릇 많이 해 가지고 동정 더  받을려 하는 구걸쟁이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피조물 덕택 볼려 하던 이것 다 버리고 이제는 나 위해서 창조주가  구속주 됐으니까 이분을 힘입어서, 이분의 도움을 받아서, 이분의 혜택을 받아서  이제는 큰 포부, 나는 사람의 소망 가지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하는  것처럼 이제는 사람 수입에 나는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 보겠다는,  이제 소망을 바꾸고 의뢰하는 것을 바꾸고 두 가지를 하고 난 다음에 난제 네  가지가 나오는데, 네 가지를 이 계약에서 완전히 무시해 버려 버리고, 완전히  이것을 무시해서 완전히 제거해 버려 버리고, 이 여섯 가지를 자기가 갖추어  가지고 나니까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할 용기가 나옵니다.

제 소망하는 것이 인간 가지고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가지고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소망을 둡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합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려고 할 때에 이 네 가지 조건이 달려들지마는 아예 포기했기  때문에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가 구비되지 않으면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낫고저 해도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의 요 세 가지 시키시는 데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첫째 시키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까지는 누웠든지 앉았든지 이것뿐이지  일어서 본 일은 평생 한 번도 못해 본 일이오. 한 번도 못해 본 일이오. 한 번도  못해 본 일을 주님이 ‘일어서라’ 합니다. ‘이제까지 내가 안 해 봤는데,  이제까지 못해 봤는데’ 하는 이것 가지고 제가 어기면 헛일입니다. 평생 안 해  본 거 ‘일어서라’ 합니다.

이러니까 그 소리를 들을 때에, 그 소리를 들을 때에 제 3자들도 말하기를  ‘누가 일어서기 싫어서 일어서지 않았나? 38년이나 된 병자를 보고 일어서라  한다. 저 천치 말이다. 바보 말 하고 있다. 저 사람이 정신 병자가?’ 이렇게  저희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신 이는 전능자시요 하나님이시요 신실한  책임을 지는 분이십니다.

‘일어서라’ 이제까지의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는, 자기 하던 노릇 그것이 아닌  일을 하라 합니다. ‘일어서라’ 이제까지 내가 생활했던 모든 인간 주관, 모든  인간들의 여론, 인간의 법칙, 역사 통계, 인간의 지혜 지식, 세상 법칙, 내가  오늘까지 살아 나오던 그 모든 생애 법칙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하나님의 당신의 법칙 당신의 뜻으로 나에게 명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 세상에 없는 걸음이오. 없는 생애입니다. 당신  시키시는 대로만 내가 하는 것이오.

이제까지 38년동안인지 40년동안인지, 자기가 38년동안 병신으로 살던 그거는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는 것인데,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앉았다가 누웠다가 이제까지의 38년동안 사는 생할 그 생활이  아닌, 그 행동이 아닌 새 행동, 이제까지의 못 본 행동, 이제까지 해 보지  아니한 행동, 보지 못한 행동, 듣지 못한 행동, 이 행동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법칙을 말씀하시면서 ‘이 법칙대로 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성경 말씀에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하고, 먹으라 하면 먹고 먹지 말라 하면 안 먹고,  먹으라면 먹고 하는 이것이 순전히 38년동안 누웠다가 앉았다가 하는 그 생활  속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오. 완전히 이거는 딴  행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과거에 살던 그 행동과 같나 안 같나? 그 행동 비슷하나?  과거에 생활하던 이치에 맞나 안 맞나? 법칙에 맞나 안 맞나? 거기에서  인정하겠나 안 하겠나? 욕을 하겠나 비웃겠나 반대하겠나?’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딴 생애입니다. 딴 행동입니다. 완전히 딴 행동이라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판명지어야 됩니다, 딴 행동.

이제까지 인간들이 하던 그 종류의, 그 본질과 본성의 행동이라면 죽은 행동이요  그거는 망하는 행동이요 그것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행동이요, 주님의 법칙이  우리에게 말씀해 가지고 내가 행동하는 것은 이것은 생명의 행동이요 축복의  행동이요 이는 의의 행동이요 구원의 행동이요 일어서는 행동이라. 이러기  때문에 거기에 비추어서, 거기에 대조해서 그와 어떠냐 하는 이런 것을  상관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이거는 주님이 말씀하신 고대로 하는 것이오. 이것은  이제까지의 하던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일어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까지는 앉아 누워서 병신 노릇 했는데 일어서면  이제까지 못했던 살기 시작한 것이지. 고치기 시작한 것이지. 만들기 시작한  것이지. 성공하기 시작하는 것이지. 보기 시작하는 것이지. 요랬던 것이 조그매  일어나니까, 조그매 일어나니까 일어서기 시작하는 것이지. 되기 시작하는  것이지. 고치기 시작하는 것이지. 생명하기 시작하는 것이지. 낫기 시작하는  것이지. 점점 낫아져 가는 것이지.

일어서는 것이 누운뱅이의 생활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고 앉은뱅이 생활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닌 낫기를 원해서, 낫기를 소망해서 이제 낫게  해 주시려고 하신,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낫기 위한 소망에서, 이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시니까 이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돈벌이 하는 것  아니오. 지위나 권세 얻을려고 하는 것 아니오. 그것은 거기에 따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내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참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이 되어지는 이 순서이기 때문에, 이것이 되어지는 방편이기 때문에, 이것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문서 법칙으로 주신 이 법칙을 이  법칙대로 자기가 하나를 행동하면서 이 행동 하는 것이 이것이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행동이라.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는  행동이라.

이렇게, 이렇게 향방 없는, 목적 없는 이런, 생명 없는 이런 생각으로 하지 말고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칙이, 하나님이 성경 말씀대로 자기 현실에 살라고  하니까, ‘자, 오늘은 주일이니 주일 지켜야 된다’ 하니까, 그 회사에서 주일  지키려고 하니까, 높은 그 위치에서 주일을 지키려고 하니까, 모든 중한 책임을  맡은 데서 주일을 지키려고 하니까, 그 날은 일을 안 하고 쉬어야 되고 주일을  지켜야 되니까 이 주일 지키려고 하니까 이것이 모든 게 거리낍니다.

자기 직장에 거리껴, 가정에 거리껴, 사회에 거리껴, 모든 이웃에 거리껴,  나라에 거리껴, 역사에 거리껴 모든 인류 생활에 전부가 거리껴. 거리끼니까  사람들이 ‘아, 이렇게 천하 사람을 다 모아 놓고 물어 봐도 요 현실에서 이것  버리고 주일 지킨다고 예배당에 가는 것은 틀렸다고 할 건데 이것 시키는 대로  할 수가 있느냐? 말씀대로 할 수가 있느냐? 오늘은, 암만 성경에 그렇지마는  이거 천하 인간에게 다 물어도 이거는 틀렸다고 할 터인데, 현재뿐 아니라  역사에 수천년동안 살아간 사람들에게 물어도 이건 다 틀렸다고 할 터인데  어떻게 내가 오늘 이런 입장 처지에서 주일을 지킬 수가 있겠느냐?’ 얘, 너 과거에 사는 그 사람들 사는 생활과 네가 과거에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은  네가 병신이 38년동안 병신 노릇 하는 생애요, 너는 누운뱅이로 앉은뱅이로  데굴데굴 구불던 그 생애이지마는 지금은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만유의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일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누웠던 생활이 아니요 앉았던 생활이  아니요 일어서는 생활이기 때문에 그 생활에는 새 행동이 아니냐? 새 행동이라는  것, 요 새 행동을 하는 것은 내가 뭐 직장이나 신임이나 이런 뭐 대우나 이게  아니고 단지 병 고치려는 이것 때문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는 것.

이렇게 해서 하나를 지키는 것이 요것이 고만침 조금 일어섰습니다. 일어선다고  그 사람이 일어설 때, 그래도 일어서면 ‘부두두두~’ 이래 일어서지 당장  찰나에 탁 다 일어섰겠소? 일어설려면 다리도 오른다리 힘주고 또 왼다리 힘주고  오금쟁이를 뻗치고 이래 가지고 일어섰을 것 아니겠소? 그것이 오늘 네 현실에서  넷을 버리고 두 가지를 바꾸어 가지고,  이것은 순전히 내라는 이것, 하나님 욕구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이 방편이 돈 만드는 방편도 아니고, 직장을 튼튼케 하는 방편도 아니고,  인간 비위 맞추는 방편도 아니고, 세상 처세에 어떤 것을 도모하는 방편도  아니고 순전히 요거는, 나라는 사람병 고치는 요 고치는 방편이요 고치는  순서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부터라도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를  실행합니다. 고만침 일어섰소. 또 둘을 실행합니다. 고만침 일어섰소. 또 셋을  실행하는 것. 일어섰어.

그러면 자기가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못한, 하지 못한 이 계명 지키는 믿음  생활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하던 것을 이제 하나 시작해서 하고, 할 때에 모든  사람이 틀렸답니다. 모든 사람이 틀렸대요. 이래도 그들은 내가 누운뱅이가  일어설려고 뻐들거리면 ‘저게 저 누웠던 것이 저 일어서라 한다고 그말 듣고  일어설려고 한다’ 조롱할 것이오. 그래도 나는 병 고쳐 새 생활 할 거라. 하나  시작합니다. 둘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면 이것이 뭐이냐? 쉽습니다. 이것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방편 순서 중에 첫째  순서입니다. 일어서라. 일어서라.

일어서고 나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다 일어서고 요게는, 여기에는 요 표적으로  문서로 기록하기 때문에 다 벌떡 다 일어서고 나니까 ‘이제 자리를 들어라. 그  다음에는 걸어가라’ 했지마는 우리는 이것이, 일어서는 것이 첫째 완성되고  자리 드는 게 완성되고 걸어가는 것이 셋째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일어서는 것  자리드는 것 걸어가는 이것이 옆으로 모두 이 세 가지가 처음에는 백분지 일이  되다가 백분지 이가 되다가 백분지 오가 되다가 백분지 십이 되다가 백분지 구십  구가 되다가 백분지 백이 되어지는 이 방편으로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어서는 일을 시작을 하니까, 시작을 하니까 ‘자리를 들고  일어서라.’ 네가 자리를 들어, 네가 병신 노릇 하던 것, 그 자리에 얹혀 가지고  짐이 되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있던 그 자리는 그대로 두고, 네가 이제 주님이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는 대로 너는 자리를 들고, 이제 그 병신 자리에서 떠나서  걸어가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여기에는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요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는 요것을 여기서 특별히 말씀한 것이 요 조직적인  구원 방편에는 요것이 또 한 조건이 들어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 일을 시작해서 순종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공산주의 밑에서 살았지마는 신앙생활을 깨닫고  보니까,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보니까 ‘공산 치하에서는 신앙생활 할 수가  없으니까 공산 치하에 내가 그렇게 죽은 생활, 병신 생활, 저주받은 생활,  가련한 생활 그 생활을 하던 그 자리는 집어던져 버리고 나만 망명해 가지고  월남을 하든지 어디로 가 가지고 예수를 믿겠다’ 하는 것은 자리를 그대로 둬  두고 이제 걸어서 가는 것이 되어지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에도 보면 자기 현실을 도피해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은 네가 보금자리 치던 그 자리를  없애라. 그 자리를 피해서 가지 말고 그 자리에 네가, 그 자리에 네가  소속했지마는 이제는 그 자리에 네가 소속하지 말고 그 자리에 얹혀서  살았지마는 그 자리에 얹혀 살지 말고 그 자리를 네가 들어라. 그 자리에 속해  살았지마는 그 자리를 네게 소속을 시켜라. 그 자리에 얹혀 살았지마는 이제는  그 자리를 네가 들어라. 그 자리에 속해서 살았지마는 이제는 그 자리를 네게  소속시켜라. 그 자리를 두고도 가지 말아라.

과거에는 네 현실 환경 형편 사정에 얹혀 가지고 살았고 이 사정 형편에 속해  가지고 살았고, 그 사정 형편 사정에서는 신앙생활 못 하겠으니까 그 사정 형편  사정을 집어던져 버리고 도망쳐 가지고 이제 신앙생활 하고 그렇게 하지 말아라.

이제는 네가 병신 노릇 하던, 하나님 믿지 못하고 무신론으로, 유물주의로,  세상주의로, 인본주의로 죽은 생활 할 때의 그 현실 처지, 신앙 버리고 살 때는  네가 그 자리에 살았지마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니까 살 수 없는 네가  되었느냐? 네가 과거에 살던 그 자리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그  자리를 피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속해서, 그 형편 사정에  속해서, 그 형편 사정에 따라서, 그 형편 사정에 처지에 붙들려서 그대로 네가  살지 말고, 그 38년된 병신 노릇 하던 그 자리에서 네가 일어서 있지도 말고 그  자리를 피해서 딴데 옮겨 가서도 살지 말고 그 자리를 네가 들어라.

네가 이제는 요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네가 그 현실에게 속해 살지 말고 현실을  네게 소속을 시켜라. 소속을 시켜라. 현실에게 붙들려 살지 말고 현실을 너에게  붙들어라. 네게 속하라. 현실에 얹혀 살지 말고 현실을 네가 하나의 물건처럼  잡아 들어라. 현실을 거머쥐고 네가 흔들어라. 잡아라. 네가 현실에게 피동되지  말고 현실에게 대해서 자유하라. 현실을 주관하라. 현실을 네가 정리하라. 네가  현실에 얹히지 말고 현실을 네 어깨에 둘러메고 해라. 네가 현실에게 네가 삼킨  자 되지 말고 현실을 잡아 삼키라. 현실을 거머쥐고 흔들어라.

너 혼자 신앙생활 했는데 전후좌우가 공산주의냐? 여기에는 안되겠다 그 자리를  집어던지고 피해서 망명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라. 과거에는 거기에 붙들려서,  거기에 속해서, 그에게 얹혀서, 그에게 피동되어서 이렇게 살았지마는, 그의  것이 돼서, 보금자리의 것이 돼 가지고 네가 살았지마는 이제는 자리를 들어라.

이제는 이북의 많은 공산주의가 있는 거기에서 신앙생활을 해도 공산주의를 네가  자리 하나같이 검어 들어라. 공산주의 이놈을 들어서 네 맘대로 잡아 들고  흔들어라. 네게 소속을 시켜라. 네 맘대로 그것을 다스려라. 지배해라. 네  손으로 흔들고 움직이라. 들고 가라. 거기에 대해서 네가 주인공이 돼라. 거기에  대해서 네가 자유자가 돼라. 그것을 네 자유대로 잡아 흔들 수가 있는 자가  되어져라. 그 자리를 뿌리를 뽑아라. 네가 움직여라. 이제는 거기에 붙어 있지  아니하고 그것이 네게 붙게 해라.

이런고로, 이제는 네가 한 말씀 한 말씀 현실에서 시작해라. 이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났다가 주저앉았으면 헛일이지. 일어났다가  주저앉았으면 또 헛일이라. 그 사람은 새로 일어나야 돼. 여기에는 일어난 것이  주저앉지 아니하고 그대로 일어났어. 제가 시작했다가, 시작했다가, 시작한 거는  일어선 건데 시작했다가 버렸으면 또 주저앉았지, 주저앉으면 또 새로  시작해야지. 새로 시작해야지. 요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구원은 보면 일어섰다가 주저앉고 일어섰다가 주저앉고 일어섰다가  주저앉는데 이 구원이 안됩니다. 그래도 구원이 이루어진 것은 일어섰다가  주저앉고 일어섰다가 주저앉고 수많은 수차례 이렇게 겪어 가지고 이제는 일어선  고것만큼은 버리지 않는 담대에 나아갔을 때에 그 면으로서는, 그 단계로서는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밤중을 통과한 행위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열 가지를 시작해도  시작했다가 다시 되돌아갔으면 연습은 했으니까 일어서기 쉽고 성공하기  쉽지마는 아직까지 성공은 안됐습니다.

시작한 것은 그것은 자기 생활이 돼서 버릴 수 없는 사람, 버리지 못하는 사람,  껍데기가 버려질 때는 속은 더 강하게 되는 사람, 이렇게 그 생애는 자기가  버리지 않고 그것이 자기 본능의 생애가 되어졌을 때의 고것이 자기에게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일어서는 것은 시작하는 것,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자리를 들어라. 네가 과거에  죽은 생활 하던, 네 자율 생활 하던, 사욕 생활 하던, 인본 생활 하던, 그 생활  하던 그 처지 형편, 그 처지 형편에서 과거 생활 하던 그 생활을 버리고 이제는  새사람의 생활로, 일어선 생활로 그 자리를 들어라. 그 형편 처지에서 속하지  말고 그 형편 처지를 네게 소속을 시키라. 그 형편 처지에 들어 얹혀서 살지  말고 그 형편 처지를 네가 똘똘 뭉쳐 들어라. 그 형편 처지에 네가 속하여,  붙들려, 거기에 따라, 그 자리의 것이 되어서 살지 말고 그것을 이제는, 그것의  네가 주인이 돼서, 거기에 속하지 말고 그것을 네 자유로 네가 그것을 들어서,  네가 그 네 처지 형편 사정을 네가 들어서 이것을 네 맘대로 움직여 들고  걸어가라. 완전히 자리를 옮겨서 걸어가라. 네 현실을 다스리라. 현실을  지배하라. 현실을 자유하라.

네가 보금자리 치던 그 자리를 피해서, 피해서 가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거기에 붙어서 그 자리에서 살려고 하지도 말고 그 자리를 들고 네가 걸어가라.

자기의 사정과 처지와 형편과 사정에 매이지 말고 그것을 네가 자유하라. 그것을  네가 주관하라. 자리를 들라. 걸어가라. 네가 일어선 데, 일어선, 일어선 그  자리에서 한 자리 옮기면 걸어가지 두 자리 옮기면 두 발자욱 떼 놓았지. 세  자리 옮겼으면 세 발자욱 때 놓았지. 네가 말씀대로 시작한 이 시작을 네가 이런  현실에서 시작했으면 이제는 그 현실의 종이 되지 말고 현실에 지배받지 말고  현실에 네가 자유하고 현실을 주관하는 자가 되어져 가지고, 되어져 가지고  걸어가라.

이 시작한 네 주의 법도 지키는 이 생활을 요 현실에서도 지켰는데 주님이 또  다른 현실 주시니까 고 현실에서도 지켜서 두 다른 바꾸어지는 두 현실에서  지키니까 두 자욱 떼 놨고 세 현실을 지켰으니까 세 자욱 떼 놨고, 열 현실을  지켰으니까 열 자욱 떼 놔도 아무리, 자꾸 그 장소가 달라져. 이 자리가  달라지고 그런데 한 자욱씩 두 자욱씩 걸어가라. 네가 따로 서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 그걸 가지고 이 자리에 섰던 것이 저 자리에 서라. 이 자리에  섰던 것이 저 자리에 서라. 이렇게 해서 네가 선 그것을 장소를 옮겨가라.

선 그것이 네가 어떤 현실이 바꿔 와도 바꿔 올 거기에서도 계속하고 계속하라.

이러면 어떤 천한 자라도 네가 인간의 가장 존귀한 자가 된다! 무능해도 유능한  자가 된다! 가난해도 부요한 자가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가장 비참한 것도  문제없다. 네가 무능한 것도 문제없다. 돕는 자 없는 것도 문제없다. 방해하는  자 있는 것도 문제없다.

네가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시작하고, 시작을 하고 난 다음에, 시작하고 난  다음에 네가 처지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계명을 지키는 이따위 짓 하지  말고,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하지 말고, 형편과 처지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이  계명 지키는 걸로 해라. 네가 이 계명을 지키면서 현실을 다스리고 네 형편과  사정을 이 현실에 맞추어서 그 현실을 내가 주의 계명에게 맞추어서 주의 계명에  지키는 이 계명을 따라서 현실을 변개시키지 현실에 따라서 계명 지키는 걸  변개하지 말아라.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이 현실에서 시작된 계명 지키는 이 지킴을, 이 일어선 것을 내가 또  다른 현실 줘도 그대로 일어서서 있으라. 일어서서 있으라.

이 자리에 선 것이 10리 밖에 가서 섰습니다. 그러면 10리 걸어간 것이지. 5리  밖에 가서 섰습니다. 5리를 걸어간 것이지. 네가 일어선 이것을 어떤 현실이  바꿔 와도 앉지 말고 이 말씀대로 실행하는 이것을 계속해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너희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 이렇게 천한 자가 제일 존귀한  자가 된다. 인기 집중이 되었다. 가장 존귀한 자가 됐다. 모든 사람의 주목은  너에게 끌려갔다.

네가 인간 중에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 됐고, 가장 기쁜 사람 됐고, 소망에 넘친  사람 됐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감화를 준 사람 됐고, 인기에 집중된 자가  되어졌다. 이것이 여기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요대로 믿어서 네가 일어서! 자리 들고! 걸어가라! 하는  요 세 가지로써, 여섯 가지를 완전히 구비해 가지고 이 세 가지로만 옮겨 가면  어떤 비참한 자라도 그 비참한 것이 가장 존귀함으로 변해질 수 있는 이것이  치료하러 오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구원이오!  못난 자가 누굽니까! 가난한 자가 누굽니까! 병신이 누굽니까! 무식한 자가  누굽니까! 인간 대가리에서 나온 그 지식의 유식 가지고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을 감당을 해요? 어림도 없습니다! 무식해도 상관없어. 무능해도 상관없어.

머리가 바보라도 상관이 없어! 이 여섯 가지만 정리해서 간추려 가지고 세  가지만 걸으면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다스리게 하고, 세상에 천한 자로 모든 영광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리라. 이것이 주님이 선포하신 계약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기서 다 잘난 사람들이 꺼꾸러져야 됩니다! 고집을 부려도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 앞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해지지 않습니다! 확정을 짓고 출발합시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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