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된 병자의 표적

 

1982. 6. 20. 주전

 

본문:요한복음 5장 1절~9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자의 구주가 되시는 것을 하나의 이 표적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38년 된 환자를 낫게 하신 그때의 배경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면 그 외곽인 담장을 지나서 솔로몬의 행각이라 하는  별관들이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문 중에 양문이라는 그 문 이름을 가진  양문이 있었는데, 양문 곁에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하는 별관이 있었는데 그  별관에는 여러 종류의 많은 환자들이 신음하면서 출입하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구걸할까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필 거기에 와서 기다리게 된 그 이유는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옆에 있는데  못물이 가끔 동하는 일이 있습니다.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면 그  물이 움직이는데 움직일 때 그때에 다른 병자들이 들어가면 병의 경중을  막론하고 먼저 들어간 자들은 나음을 받습니다. 이러니까 병 낫기를 위해서 모인  환자들이, 또 다른 데보다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가져서 구제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구제도 받기 겸해서 그 행각에서 지내는 환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 성전으로 지나가시면서 많은 환자들을 보았습니다. 환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지마는 예수님은 그 환자들을 찾아가신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미 그런 설비가 되어 있고 또  예수님이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 우연한 일로 된 것이 아니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실 때에 예정된 그 순서 중에 일부가 이루어진 그  사실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런 형식을 만들어 가지고  그 역사 행위가 있었고 또 그것을 문서에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사실인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셔서 많은 환자들 중에 제일 중한 환자, 38년된 환자를  찾아가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때에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을 때에 말 같지 않은 말로 들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병 낫기 싫어하는 환자가 있으며 병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은 환자가 있겠는가? 해서 예수님의 그 묻는 말에 정신없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은 어디까지나 신약 시대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가르쳐 주시는  도리인 것입니다.

그때에 38년 된 병자가 말하기를 ‘물이 동할 때에 나는 제일 중한 환자라 내가  가 봤자, 구불면서 이렇게 가기는 가 봤지마는 벌써 나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못에 들어가서 나음을 받고, 나는 아무도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은 없고  이러니까 내가 벌써 여기 있은 지 오래 됐지마는 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는 간단하게, 다 거기에서 추상 추론 또 영감으로 이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다  그런 것이 다 기록되지를 않았지마는 우리가 그 장면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런  순서가 있었을 것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보다 중한 환자인 그것도 상관없고, 또 네가 힘이 없어서 못에  먼저 들어갈 만한 그런 힘이 없는 것도 상관없고, 또 다른 사람이 너를 메어다가  못에 넣어 주는 그런 도움이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또 다른 사람이 너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네가 나으려 하는 거기에 방해하는 그런 앞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것도 상관도 없으니 네가 낫고자만 하느냐' 하는 것을  물었을 때에 그 환자는 ‘네, 낫고자 합니다.’ 하는 것을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조건에 걸려서 절망된 그 환자에게 그런 조건 상관없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에 그 환자는 ‘예 낫고자 합니다.’ 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낫고자 하면 내가 말하는 대로 순종을  하라’ 하시면서 첫째 말씀하시기를 ‘일어서라’ 말씀하실 때에 그 환자는  이제까지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는 자기의 과거를, 현재를, 자기의 형편 사정을  부인하고 일어서라 할 때에 일어서려고 그는 했습니다. 일어서려고 하니까  일어서졌습니다.

만일 그때에, 일어서라고 할 때에 그가 ‘나는 이런, 이런’ 과거와 자기  현실을, 자기의 그 주관 형편을 말을 하면서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일어설 수가  없다고 말을 했으면 주님이 그 시간 일어서라고 말씀하신 말씀은 다 허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그 사람에게 설명을 해서, 어쨌건 그 사람이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그 모든 상태를 부정하는 그 일을 하기 전에는 순종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모든 순서를 거쳐서 일어서라 할 때에 순종해서  일어서려고 하니까, 일어서려고 하니 일어서졌습니다. 그것이 이제 여기에  첫째의 표적입니다.

다음에는 ‘네가 이제까지 눕고 앉고 그 자리에서 보금자리 치던 그 자리를,  네가 의지하고 짐이 되어서 그 자리 위에, 네 재산이라야 네 자리밖에 없는데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네가 의탁하고 있었지마는 그것을 네가 이제는 한번  들어 봐라. 네가 그 위에 얹혀서 살았지마는 이제는 그것을 네가 들어 봐라’ 할  때에 드니까 들려졌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메어다 줘서 와 가지고는 여러  해 동안을 이 자리에서 머물고 걸음 한 발자국을 걸어보지를 못한 네이지마는  이제는 걸어가라’ 할 때에 그 사람은 과거와 현실까지의 모든 상태를 부인하고  걸어가라 할 때에 자국을 떼 놓으니까 자욱이 떼졌습니다.

이래서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일어서라 할 때에 일어서니까  일어서졌고, 자리를 들라 할 때에 자리를 드니까 들려졌고, 걸어가라 할 때에  걸어가니까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보는 모든 유대인들이 이상스럽게 기이하게 여겨서 온 성전에  출입하는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의 그 주목이 이 38년 된 병자가 나은 이  사람에게 다 주목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이 사람에게  기울어졌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너를 지금 안식일인데, 솔로몬 행각에 있던 병신인데 네 병을  낫게 한 이가 누구냐? 이 안식날 병을 낫게 한 병고친 이가 누구냐?’ 이렇게  물었을 때에 그 병 나은 자가 대답하기를 나를 낫게 한 이가 누군지 내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는데 다만 그분이 와 가지고  자기에게 말하는 그 당석에서 그분의 말을 듣고 순종하고 보니까 나은 것뿐인데,  예수님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이분이라고 가리킬 수 있었지마는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분인지 그는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봉독한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의 표적입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인데, 인간의 힘이나  이제까지의 역사에 있던 힘이나 방편을 가지고 된 일이 아니고 역사에 없었던  초자연의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은 분명히 기적입니다. 기적으로 된 일이라. 그  전에 성경 번역에는 기적이라고 번역을 했었는데 개역 성경에서는 표적이라고  번역을 하게 됐습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더 이 성경이 원하는 뜻에  가깝기 때문에 표적으로 그렇게 번역이 된 것입니다.

기적이라 하는 것은, 이 일은 초자연의 능력으로 이룬 일이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그렇게 번역을 했고, 표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초자연의 능력으로 이룬 이 사실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것은 인간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접할 수 없는 그 어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으로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흔적이라 하는 뜻으로 표적이라 그렇게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38년된 환자 나은 이 배경이라든지 그때의 형편이라든지 그때  순서라든지 또 그때에 예수님과 그 환자의 문답하는 그 모든 것은 곧 오늘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나타낸 것이요 그때에 38년된 환자와 그곳에 각종의  환자가 있는 그 환자는 곧 인간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이 피흘리신 이 대속의  공로를 바라보면서 모인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38년된 환자나 거기에 있는 많은 환자는 곧 우리들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적이요, 그때에 찾아가신 그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나타내는 표적이요, 그때의 성전은 오늘날 교회라고,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를 표적한 표적입니다. 그때의 성전은 오늘 교회를 표적한 표적입니다.

그때의 그 성전은 모든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그  성전에 출입하지 일반 죄인들은 성전에 출입하지를 못한다고 알았고, 또 그  성전에는 아주 거룩한 사람들, 의인들, 하나님의 백성들, 하늘에 소망가진 그런  의인들이 출입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출입하는 거룩한 집이라고 해서 성전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 사람들, 로마인들이나 모든 이방인들이 알고 있기는 그 성전 안에는  참 소망이 넘치고 하나님의 사람들, 의인들, 복있는 사람들만 안에 있다고  그렇게 이방들이 생각을 가졌지마는 그 안에는 상상도 못할 수많은 각종의  환자들이 그 성전 안에 들어 있었다. 성전의 그 울타리 안에 들어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면 성전과 울타리가 따로 있고, 울타리 안에 텃마당이라는, 이방인의  마당이라는 마당이 있고, 그 안에 성전 뜰이 있고, 그 안에 성전이 있고, 성전  안에 각종의 설비가 있지마는 외부에서 볼 때는 다 그 담장 안은 다 성전이라고  이렇게 여겼던 그 모든 형태가 오늘 하나님의 교회의 형태를 표적한 표적입니다.

그렇게 외부에서 보기에는 성전 안에는 참 행복된 사람들만, 의인들만 있는 줄로  알았지마는 거기에는 세상에서도 찾아보기에 드문 흉악한 각종의 환자들이  가득히 있었던 이 표적은 오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죄를 회개한 백성들이요, 의인들이요 성도들이니까. 교회 안에는 다 참사람,  거룩한 사람, 의로운 사람, 진실한 사람, 다 하늘의 소망이 넘치는 이런  사람들만 교회 안에 있는 줄로 이렇게 이방인들은 생각하지마는 실상은 교회  안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각종의 더러운 인간병이 들어서, 온갖 죄병이 들었고,  온갖 가증스러운 것, 온갖 거짓된 것, 온갖 이중 삼중 쓰지 못할 흉측한  사욕들을 가진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른 사람은 다 나는 신자라고, 교회 안에 다니는  교인이라고 이렇게 보지마는 나는 과연 교회 안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인간병이 없는, 죄병이 없는, 가증스러운 주관과 사욕의 이 모든  병이 없는, 시기 질투 원망 시비 미움 각양의 몹쓸 그 모든 욕심들이 과연  내게는 치료가 다 되어 가지고 참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이런  참사람이 되어져 있는가? 나는 이 환자 중에 한 사람인가, 나는 과연 의인인가  하는 이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환자들이 이 성전 뜰, 성전 담장 안에 있는 것을 이렇게 우리에게  그런 형식을 영원 전 예정하셔 가지고, 그 시대에 그런 성전 그런 모든 배경을  하나님이 만드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이렇게 보이신 이 표적은 오늘 교회  안에 이렇게 사람들이 볼 때에는 교회라는 것은 깨끗하고 의인인 줄 알지마는  교회 안에는 이렇게 흉측한, 세상에서 찾아보기 드문 그런 죄인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하나 나타내 보이는 표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앉은뱅이, 누운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눈먼 자, 문둥이 온갖 병자들이 가득 찼으니까 나는 과연,  인간 병이 들어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은 교회 다니는 줄 알지마는 나는 솔로몬  행각과 같은 이  악한 자들이 머물고 있는 이 위치에 있는 내가 아닌가 하는  그것을 여기에서 찾는 자가 이 말씀이 자기에게는 복음이 될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각양의 환자가 있는 중에 38년된 병자가 제일 중한 환자요 오래  된 환자인 것을 아시고 이 사람에게 먼저 찾아가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어떤 낭패를 만들어 놨든지  인간 중에 제일 큰 낭패를 만든 그자에게 주의 관심과 주의 긍휼은 먼저 가고  크다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중에 제일 절망되어 있는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는 이 표적이요,  또 인간 중에 제일 자기의 명예적으로, 권위적으로,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사업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가장 낭파되어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주님의 긍휼은 더 크다는 것을  여기에 보이는 표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표적 앞에서 자기는 어떤 행동을 해 가지고 이제는 희망 없는 참,  어떤 자리에 떨어져 있을지라도,- 박대통령 살해당했을 때 그때에  비서실장이라고 하는 그분이 장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에 그분은  ○○○씨가 사형을 받는데 같이 받을 만한 그런 동참한 사람이지마는 그때에  제가 권찰님들과 같이 앉아서 말한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참 38년 된  병자로서 그는 살 희망은 하나도 가지지 아니할 것이고 아마 지금 이제  하늘나라의 소망이나 가지고 회개를 단단히 할 것이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먼저 나음을 얻었다. 그가 인간으로서는 다시 복구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처지에,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지마는 주님은 거기서도 능히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구주를  모신 장로라고 하니까 그이의 회개 여하에 하나님의 능치 못하심이 없는 구원은  그에게도 갈 수 있다’ 하는 그 말을 제가 그때 앉아서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그는 무기징역으로 언도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래 모두 손뼉을 치면서 ‘과연 성경 말씀 그대로의 것이 하나 이루어졌다’  했는데, 그가 회개에 따라서 그는 의인 중에 의인이 돼 가지고 다시 어떤 정권의  이것을 잡을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38년된 환자에게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찾아온 이것은,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 중에 사람들 보기에는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지마는 남이 모르는  흉측한 죄악을 가진 사람도 있고, 회복 할 수 없는 타락 가운데 빠진 사람도  있고, 온갖 면으로 다 자기의 잘못이나 선조의 잘못으로 인해서 희망이 전혀  없는, 인간 중에 경제면으로나 권위면으로나 지위면으로나 명예면으로나  위신면으로나 도덕면으로나 사상면으로나 가정면으로나 사회면으로나 제일  참혹하게 불쌍하게 빠져 있는 그런 사람도 교회 안에 있다 하는 말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도 낙망하지 말고 능히 구출하고 남음이 무한하신 구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 주신  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환자에게 물으신 것이 ‘낫고자 하느냐?’ 하는 이 말씀이 제일  첫째로 거래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좀 우스꽝스러운 말 같지마는 벌써 그  환자는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 병이 낫지 않는 데 대해서는 아예  다 고정되었기 때문에 나을 희망이나 소망이나 그런 소망은 전혀 그에게  없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뭐, 내가 이제 나아서 인간 중에 하나로 무슨  존귀한 인간으로, 영광된 인간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인간으로 그런  희망이라 하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벌써 그는 고정되었고  그는 요동치 않고 벌써 고체처럼 되어졌던 그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그날 그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생명이 끊어지는 날까지 연명이나  하려는 것이 그의 생애에 전부였습니다.

이것을 주님은 아시고 ‘네가 이렇게 네가 지금이라도’ 병만 낫고 또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 주시면 인간 중에 가장 행복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이 주님 앞에  나타난 그 사람인 것인데, 이 사람은 그것은 전혀 알 수가 없고, 또 자기의 병에  대해서는 그 처지에서 벗어나거나 희망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 벌써  이것은 변함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인이 알고,  이러기 때문에 자기는 그런, 이렇게 위대해서 만물 위에 인간 위에 뛰어난  사람이 된다, 인간 위에 뛰어난 사람이 된다, 경제적으로 모든 재벌가 중에  뛰어난 재벌가가 된다, 이렇게 무능한 것이 위대한 정치가가 된다, 권위자가  된다, 이 무지한 자가 지혜있는 자가 된다, 아주 허무한 자가 권위있는 자가  된다 하는, 희망이 있는 자이지마는 이 사람은 그 희망을 전혀 모릅니다. 그  희망을 모르고 그저 인간 중에 보편적인 그런 사람이라도 병이 나으면 할 수  있지마는 이 소망도 전혀 끊어지고 없던 사람이요, 다만 그날 그날에 다른  사람에게 구걸해 가지고 그저 연명해 나가는 그것이 저의 소망이요 그것만이  희망이고 그것만이 저의 생애로 알고 살았던 그 사람과 같이,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국은 있다고 하니까 그저 믿어서 천국은 행여나  있으면 천국 가지. 또 내가 이래 근근히 연명이나 하면서 천국 있다 하니까  행여나 천국 있으면 천국이나 갈 요량하고 위로나 받고 이렇게 교회 나오니까  돕는 사람도, 좀 구제하는 사람도 있고 동정하는 사람도 있고 이러니까, 내가  교회 나오니 전주가 돈도 대 주고 또 내가 교회 나오니 다른 사람이 좀 돌봐도  주고 또 외로운데 다른 사람들이 위로도 해 주고’ 이러니까 구걸해 가지고 자기가 연명하려 하는 것같이 교회 다니면서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인간을 힘입어서 인간에게  도움 받아서, 인간에게 도움 받아 근근 생활하는 이 생애로 자기의 생애를 삼고,  아예 인간 중에 뛰어난 인간이라든지 인간 중에 행복된 인간이라든지 인간 중에  큰 재벌가가 되는 것이라든지 인간 중에 어떤 큰 권세를 가지는 것이라든지 이런  거는 아예 소망도 가지지 못하고, 인간 중에 아름다운 가정을 가진다든지 이런  것은 전혀 소망하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  이런 병 저런 병, 이런 절망 저런 절망, 이런 저런 낙망 이것을 다 가지고 이  속에서 근근이 이 사람의 도움을 입고, 이 사람의 도움을 입고 이 사람에게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보고 인간 인간끼리 이래 가지고 근근이  생활하려고 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 당장에 비참한 자가 거기 있는, 천 명이 모였는지 만 명이 모였는지 그거는  모르지마는 아마 몇  백 명은 몇 천 명은 모였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중에  제일 인기 있었고 제일 주목자가 되었고 제일 영광있는 자가 되었고 제일 존귀한  자가 되었고 제일 행복된 자가 된 이것이 38년된 환자인데, 이렇게 이 문제를 정  바꾸어 놓는 이 예수님이 오늘 교회에 찾아와 계시지마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38년된 병자와 같은 이런 환자 처지의 사상에서, 사상에서, 입장에서, 욕망에서,  그런 생애에서, 그런 관념에서, 그런 정신에서 살고 있는 자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에 얼마나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적인 것입니다.

이 표적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기 때문에 다시 경성시켜서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이  환자는 잊어버렸던 내가 참 병 나아야 된다는 그 소망이 하나 생겨졌습니다.

이제 구걸한다는 이제까지의 가졌던 욕망은 없어져 버리고 이제 병 나아야  되겠다는 그 소망이 예수님의 한 마디에서 그에게 생겨졌습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마는 어떻게 하면 인인관계에서 덕을 볼까, 이익을  볼까, 다른 사람을 해를 보여도 자기가 유익을 볼려고, 인인관계에서 그  사람보다도 접촉하는 가운데 그 사람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뭐 상업적으로나  공업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모든 것에서 인간에게 자기가 인간 인인관계에서  유익을 보려는 그런 인생관에서, 생활관에서, 행복관에서, 이해관에서 살고 있는  이것을 버리고, 이것을 이 시간에 버리고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 하는 이  말씀에 그는 따라서, 구걸하는 그런 욕망은 다 없애 버리고, 싹 없애 버리고  낫고자 하는 이 욕망으로 기울어져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표적인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인간으로 인하여 어떤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이 욕망 가졌던 자가  예수님의 이 음성에서 그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이제 자기는 참 온전한 사람이  되어져 보겠다는, 인간 욕망으로 바꾸어져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암만 이래도 너무 죄를 많이 지어서, 너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죄만 지었기 때문에 깊이  파묻혀 있어서 아무리 쓸어 봐야 나오지를 않아.

이 환자가 자기의 생애의 욕망을 다 포기하고 잊어버렸던 욕망을 다시 가진 것이  이 환자가 존귀하게 되는 첫걸음입니다. 나는 누구하고 거래하고 어떤 인물과  교제하고 어떤 인인관계를 가지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어떻게 피조물 인간이나  물질이나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자기의 생존을 보존하려는 이 욕망에 가득찼던  자가 그런 것 다 포기하고 어쨌든지 ‘나는 인간병을 고쳐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깨끗해서 흠없는 참사람이 되어져 보겠다’ 하는 이 욕망으로 욕망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오늘 예배보는 것이 다 헛일입니다! 다 헛일입니다. 이것이  초보입니다. 첫 발자욱이 이것이오.

모든 세상 행복과 하늘나라의 행복은 (저 조는데, 저 사람 이름을 부르면 명예  관계돼 내가 부르지 않겠는데 막바로 그 병에 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세상과 하늘나라에 모든 행복이라 하는 영광이든지 명예든지 부강이든지 모든  행복은 어떤 자의 것이냐? 실력있는 자의 것입니다. 실력있는 자의 것이오.

실력있는 자는 어떤 자가 실력있는 자이냐? 실력있는 자는 그 사람의  사람됨입니다. 실력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썩어질 실력도 사람에게 있고 신령한  실력도 사람에게 있습니다. 참 실력은 참사람에게 있고, 썩은 실력은 썩은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사람은 어디서 나옵니까? 참사람은 인간병 고침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도덕성이 고쳐졌을 때에, 그 사람의 의지성이 고쳐졌을 때에, 그 사람이  비판성이, 그 사람의 평가성이, 그 사람의 지성이 고쳐졌을 때에, 그의 욕망성이  고쳐졌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모든 불행은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행복은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 사람에게 붙들린 행복은 떠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인인관계 사물관계에서 자기를 어떻게 좀 더 낫게, 좀 더 좋게, 좀 더  크게, 좀 더 영광스럽게 행복 되게 이렇게 하려고 하는 이것을 인인관계  사물관계 여기에서, 그러면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그자가 38년 된 병자의  이자입니다. 이자를 곧 나타내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으로 해결 짓는 것은 미신같이 생각하고 어리석은 것같이 생각하고, 어떤  유력한 인물이 절 돌봐 준다면 철통같이 믿고, 아 믿지 말라! 의지할 것이 못  된다! 코에 호흡이 있는 자는 수에 헤아릴 것이 없다. 그까짓 게 무슨 가치  있느냐! ‘아! 나는 일국의 유력한 사람을 의지한다. 세계 유력한 사람이 나의  배경이다.’ 야! 코에 호흡 있는 자를 수로 헤아리지 말아라! 그까짓 거 힘없다.

오늘 부르면 네가 다 허무할 것이 아니냐! 그거는 지혜 있는 거 같고,  이제 38년 된 병자가 이와 같이 모두 인간의 덕 봐 가지고, 구걸해 가지고 자기  연명하려고 하는 이 사상에 있는, 이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예수님이 볼 때에 그 비참한 환자가 살 길이 있고 존영한 길이 있건마는 그것은  다 잊어버리고 이렇게 구걸하는 여기에서 자기의 여생을 계획하고 있는 그  비참한 그것을 경성시킨 예수님의 음성이 ‘낫고자 하느냐’ 하는 것인 것을  말씀한 이 사실을 오늘에 우리가 바로 들어서 이 표적이 내게 대한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데에는 인간으로 인하여, 사건으로 인하여, 물건으로 인하여, 자기  힘으로 인하여 자기를 어떻게 행복되게 해 보려는, 자기의 처세의 행복을 가져  보려는 이것은 예수님 앞에서 지극히 큰 은혜를 가로막는 원수 중에 원수요 방해  중에 방해인 것입니다. 이것을 제거하신 주의 음성이 ‘낫고자 하느냐’ 병  나았으면 그 형편은 다 벗어나 버립니다. 다 벗어나 버려요.

여기에서, 이 말 한 마디에서 38년된 병자는 완전히 예수님의 음성 듣기  전까지의 모든 저희의 인생관 소망관 생활관 그 모든 것은 다 포기했습니다.

그때에 누가 와 가지고, 옷 잘 입은 사람이 와도 눈을 돌이켜 가지고 손 내미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요, 낫고자 하느냐 하는 그 말에 지금 문답이 낫는다는  데, 낫는다는 데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여기에는 마음이  기울어지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38년 된 환자가 분명히 그 자리에서는  제일 행복 된 사람이었습니다. 제일 불행한 사람이 행복 된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행복 되는 사람이 되는 데에 첫 발자국이 이것이 발자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첫 순서가 이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38년 된 병자는 자기가 모든 것을 돌이켜 가지고 낫고자 하는  데에 욕망을 가지고 보니까 ‘나는 부자 되겠다, 사장 되겠다, 유명한 정치가  되겠다.’ 모든 것 다 해 봤자 부끄러울 것뿐이고,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 하는 것뿐이고, 내가 참으로 한번 의인 돼 보겠다, 나는 참 의인이 돼  보겠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돼 보겠다, 참사람이 한번 돼 보겠다,  나는 한번 성자가 돼 보겠다, 성녀가 한번 돼 보겠다,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 돼 보겠다. 하는 이 욕망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이,  38년 된 병자가 이제 병 낫고자 하는 이 욕망으로 욕망이 바꾸어진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욕망이 바꾸어져야 된다는 이것을 표적으로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이 38년된 환자가 낫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보니까 어려운 난제가 자기가  고백하는 대로 네 난제가 생겨졌습니다. 어려운 난제가 네 가지 생겨졌습니다.

어려운 난제가 네 가지.

하나는 뭐이냐? ‘내가 여기 환자 중에 제일 극심한 환자이니’ 하는 그 난제가  나왔습니다. 그 난제가 나왔어.

오늘 이 자리도 이렇게 자기가 참 의인이 될려고, 성자가 될려고, 성녀가  될려고, 하나님이 온전타 참되다 인정하는 무궁세계가 있는데, 인정하는 참  거룩한 사람, 참 권위있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을 때에 제일 문제는 ‘나는 이렇게 인간 중에 제일 비참하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 하는 그것을 여기에 말했습니다. 무슨 면으로 비참하든지  이 38년된 환자는 인간 중에 제일 중환자입니다. 제일 중환자요. 제일 비참한  자요. 제일 희망이 없는 자요. 제일 고칠 수 없는 자요.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자요.

이자이지마는 예수님이 그 환자를 고치는 데 그것이 조건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조건이 주님이 제일 먼저 찾아와서 긍휼을 많이 베풀게 되는 대상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죄악이 많은 곳에 은혜도 많으니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실질로 이와 같이 비참하게 되어 있는 것도 좋고 상관없고, 또 다른 사람보다  자기의 잘못을 깨달음이 많아서 깨달음으로 인해서 그 희망 없음이 많은 것도  관계없고, 이렇게 자기의 비참한 것이 상관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우리를 고쳐  주시고 행복 되게 해 주시려고 하는 데에는 이것이 상관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가 이 표적에서 잡아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사업에 실패를 해 가지고 낙망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잠깐 동안 실수로,-○○○씨입니까? 비서실장 이름이 뭐이요?  ○○○이오? ○○○씨와 같은 그런 일이 있어도, 억만 배의 큰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기의 신의적으로나 어떤 면으로서  제일 비참한 이것을 먼저 조건을 말했어. ‘내가 이 중에는 제일 중한  환자입니다.’ ‘그것도 상관없다.’  ‘이런데 내가 갈려고 하면 나는 굼벵이 모양으로 구불러가야 되는데 다른  사람은 환자라도 기어서 갑니다. 이런데 나는 이 가운데 제일 힘이 없는 제일  무능자입니다. 제일 무능자입니다.’ 무능도 상관없다. 이 환자 낫는 데는  무능이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서는 무능이 상관이 없습니다.

또 그에게 난제가 또 하나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업어다 줄 사람도  없습니다. 날 업어다가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난제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가 낫는 데는 돕는 사람 없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관이 없었습니다. 돕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한 문제를 다시 내놨습니다.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달려가서 먼저 들어갑니다. 아무도 없으면 열흘이 걸리든지 보름이 걸리든지  내가 들어갈 터인데 나를, 다 내가 가는 것보다 앞서 가서 나를 방해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내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방해하는 자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우리가 이제 인인관계에 욕망을 가지고 살던 자가 이 세상에서  죽는 날까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인간에게 구걸해서 인간에게 덕  봐서 인간으로 인해서 유익 봐서 그 유익 가지고 먹고 자고 또 그 이튿날 또  그일 해야 되고 이것으로 되풀이하는 이 인생살이를 하고 있는 이자가, 나그네  세상에서 영원무궁을 바라보는 자가 인간 병을 고칠 수 있어 인간으로서 의인이  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    병을 고쳐야 되겠다는 이  욕망을 바꾸어야 하는 이것이 이 표적의 첫째 자욱이요, 이 욕망을 바꾸는, 이  욕망을 바꾸는 욕망 전환이, 욕망 전환이 첫째로 우리가 받아야 할 표적이요  욕망을 바꾸고 보면 ‘나는 일자무식이라, 나는 병신이라, 나는 늙어서 쪼그라져  남은 때가 얼마 되지 않는 자라.’ 별별 자기의 가장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자라는 것이 첫째 난제가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자기에게는 힘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약자라는 것이 이것이 난제가 될 것입니다. 아무도 돕는 도움이 없다는  것이 난제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경쟁 많은 세상에서 방해한다는 이것이  난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난제가 난제되지 않았습니다. 그것 다 내 앞에서는 난제되지 않는다!  예수님 앞에는 난제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려고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은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 가지고 너를 나 있는 영광의 세계로  데려갈려고 성화시키려고 구원시키려고 찾아왔는데 내 앞에는 그런 것이  난제되지 않는다.

네가 어떠한 처지까지 타락했을지라도 난제되지 않는다. 네가 어데까지 가장  무능하고 비참한 자라도 난제되지 않는다. 너를 돕는 자가 없어도 난제되지  않는다. 너를 방해하는 자가 아무리 많아도 난제되지 않는다! 너와 나와의  관계는 이런 것이 난제되지 않는다. 다만 네가 나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주여! 주여!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주여! 명하시옵소서!  일어서라! 예 일어서겠습니다! 일어섰습니다!  자리를 들어라! 예 듭니다! 드니까 들어졌습니다.

걸어가라! 예, 걸어가겠습니다! 하니까 걸어가졌습니다.

이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이요 그 사실은 이와같이 된다는 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이렇게 표적으로  해서 우리의 이 실상의 처지를 보여 주는 생명의 도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 다음은 오후에 계속합니다.

오늘 오전 시간에 받을 표적, 첫째 표적, 우리가 이 비참한, 하나님의 교회에  있지마는 참 비참한 중에 있다는 이거 이 표적을 우리가 받아야 되겠고,  인간에게 구걸하던 생활, 만나면 웃는 웃음도 구걸하려고 웃고, 성내는 것도  구걸하려고 성내고, 친절한 것도 구걸하려고, 바쁘게 뛰돌아 다니는 것도  구걸하려고, 아 구걸하는 생활! 추하고 더럽고 용욕스러운 생활! 여러분들! 이렇게 구걸하는 이 생활에서 완전히 낫고자 하는, 인간병을 고치려  하는 이 욕망으로 바꿔야 할 것이오. 바꿀려면 난제 너이 나올 것이오. 난제  너이가 관계없다는 이것을 이 표적을 받아야 할 것이오. 세 가지 순종에서 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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