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6가지 구원 도리


1988년 3월 3일 목새

 

본문 : 눅 16:9-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 신앙의 준비는 언제 있는 고 하니 평소에 있습니다. 평소에 신앙준비를  해야 되지 아주 과도기에는 신앙 준비를 못 하는 것입니다.

 또, 신앙의 성공과 실패, 신앙의 성패 결정은 언제 되는 고 하니 모든 일에  비상시요 과도기요 절정인 그때에 성패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성공한 사람은 성공하고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이거 참 하나님 다음으로는 기묘하게 만들어진 것이  사람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뭐 안팎이 같지를 않습니다. 물론 물건같은 것도  그런 게 있지마는 사람은 안팎이 다르다는 것은 그거 측량 못 합니다. 꺼풀이 백  꺼풀도 넘습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또, 그 커풀이 없는 것이 좋다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위대 할수록 이  커풀이 많습니다. 이런 데는 이런 꺼풀로 나타나고 저런 데는 저런 꺼풀로  나타나고 거짓만 없이 그 꺼풀이 심히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꺼풀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천인 만인에게 상대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요 사람의 정도에는 요런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저 사람의 신도는 저런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외부에서 말하면 하나님은 천인만인을 대할  때에 그 사람에게 적당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또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는  것도 층어리 있고 또 등용하는 것도 층어리 있고 동행하는 것도 층어리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신앙 인물들이 약간 있는데 그 인물들 보면 하나님이  취급하신 것이 각각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가운데에 어떨 때는 한  제자만 데려가시고 어떨 때에는 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고 어떨 때는 세 제자를  데리고 가시고 어떨 때는 여러 제자를 데리고 가시고 그것이 전부 그 신앙의  층어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은 왜 사람을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셨느냐?  수많은 종류, 수많은 성질, 수많은 계급 이런 모든 피조물들이 있는 그 피조물을  다 예수님의 대리자로 왕이 되어 가지고 다스려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은 심히 다각적이며, 또 다형적이며, 또 다지다능(多知多能), 지혜도 많고  능력도 많고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되면 막바로 하나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꼭  같이 됩니다. 그러면 창조주 된다 말인가? 아니오. 언제든지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창조주와 꼭 같은 언행 심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지체라, 하나님의 몸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런고로, 이렇게 되어 있는 것만치 악령은 사람의 이 구석 저 구석, 이 이면  저 이면 여러 이면을 관계해서 미혹시키기 때문에 사람의 이 신앙생활로써  건설구원, 기본구원은 같고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꼭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이것이, 조금 되어졌으면 건설구원이 조그매 이루어졌고 많이  되어졌으면 많이 이루어지고, 이라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부활한 자의  영광은 이와 같다. 뭐와 같으냐? 육체가 종류가 많지마는 육체의 그 가치는  다르다.

 그러면, 똥구덩이에 있는 구더기도 육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똥구덩이에  있는 구더기의 그 영광과 지렁이의 영광과 또 큰 아주 물고기의 영광과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육체의 영광과 또 사람의 육체만 해도 천층만층의 그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또, 형체마다 그 영광을 가지고 있으나 땅에 속한 '아, 저 바윗돌은 참 잘  생겼다. 저 수석, 저 돌은 잘 생겼다. 또 저 산은 잘 생겼다.' 이물질에  대해서도 그 형체마다 각각 영광이 다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는데 하늘에는  별의 형체도 있고 달의, 해의 형체도 있어서 그 형체마다 영광이 다르다.

 땅의 형체도 있다. 땅에 그러면 수많은 바다의 모래알 그것도 형체가 있습니다.

모래알 그것의 형체의 가치와 또 하늘에 있는 태양의 형체의 그 가치와가, 태양  한 개가 바닷가에 모래알을 몇 개나 당할 수 있겠어요, 몇 개나 당하겠어? 여기  한 번 대답해 봐. 여기 ○인가, 몇 개나 당하겠어? 해 한 개가 땅에 바닷가에  모래알 형체와 같은 거, 형체는 각각 다르나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영광이  얼마나 달라요? 십 배 다를까? 저거 봐. 역부러 충성하는 그것 가지고는 안 돼.

 자, 저 ○, 얼마나 달라? 한 백 배 다를까, 이 배 다를까? 또 그 옆에 있는,  그래. 무한히 달라. 무한히 달라.

이러기에, 건설구원 이룬 것은 무한히 다르다 그 말이오. 무한히 차이가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에, 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잣대를 삼아 가지고 신앙생활할  건가? 신앙생활하는 데에도 이 세상에서 모든 과학이나 인간 지식을 잣대로 삼아  가지고 그대로 해서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한사람은 그것은 다 썩어진 것이 되고  맙니다.

 노아 홍수 때에 세상 것 가지고 준비해 가지고는 다 헛일했어. 하나님 말씀대로  준비한 그것만 가지고 승리했어. 이 모양으로 세상 지식 그거 가지고서 거기에  따라서 그대로 준비한 건 전부 다 헛일이오.

 그러면, 설교 말씀을 듣고서, 설교 말씀을 듣고 설교 말씀대로 준비한거는 어찌  되는가? 설교 말씀대로 준비한 것도 백점은 못 됩니다. 그것이 한 칠십점이나  팔십점이나 될까 백점은 못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한 것이 백점이 되는가?  말씀대로 준비한 것이 백점됩니다.

 왜 설교 말씀 듣고 준비한 것은 백점이 안 되는가? 그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외나 성패가 결정되는 그 절정, 과도기. 참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내놔야, 다 바쳐야, 이것을 다해야 그때에 신앙을 유지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는 그런 절정, 그런 어려운 역경에 딱 도달한다 그 말이오.

 그럴 때는 어찌 되느냐? 자기가 지금 신앙생활하는 것이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하는 설교 소리를 듣고 지금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결심했으면 그때에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네가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 목사 말이 다 하나님 말씀이냐? 목사 발이 하나님 말씀이냐?' 마귀란  놈이 요렇게 꾀운다 말이오, 꾀울 때에는 '과연 내가 들은 것이 목사님이  설교한, 성경 가지고 설교 했지마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지 이 꼭 하나님 말씀인 줄 알면 뭐 죽어도 순종해야 되지마는  하나님 말씀인지 하나님 말씀이 아닌지 알 수가 있겠나?' 이래 가지고서  그때부터 의심이 나기 시작해서,   의심이 나기 시작하면 어찌 됩니까? 의심이 나면은 벌써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버립니다. 의심이 나면 능력이 떠나요. 베드로가 배에서 뛰어내릴 때에 바다  위로 걸어갔지마는 의심하니까 그만 빳지지 안했소! 걸어갈 때는 뭣으로  걸어갔소? 걸어갈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갔습니다. 이라다가 의심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데에 같이 하시지 의심하는 데는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심하니까 그 능력이 떠나버리니까 그만 묵물에 빠져 들어가게 됐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의심이 생기면 그래 됐는데, 자기가 설교말씀을  듣고서 하는 것은 '이게 하나님의 말씀 보고 설교했지마는 이게다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 목사가 해석을 잘못했는지 알 게 뭐이냐?' 이래 됩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그만 차차차차 의심이 들어오기 시작해가지고 나중에 가서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 말씀이 어데 필요한고 하니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이  성경 말씀과 같나 안 같나? 과연 이 성경을 바로 해석한 바로 이 설교가  성경이요 성경이 설교냐? 틀림없이 이러냐 다르냐?' 하는 그것을 발견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성경 말씀과 이 설교가 하나라' 설교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성경 말씀을 자꾸 이래 상고해서 보면 '과연 이 성경을 요렇게 해석한  것이 틀림없다' 자기가 성경을 몰랐던 것을 성경을 똑똑히 뜻을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된 그 설교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곧 설교로 가지고서 찾아 들어가서  설교로 찾아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만납니다. 그러면 설교는  중매쟁이요-비유컨대 중매쟁이요 안에 있는 하나님 말씀은 신랑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설교 말씀을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자꾸 이렇게 맞나 안 맞나  상고해 봐 가지고서 틀림없이 '이 설교 말씀과 하나님 말씀은 보니까 하나다. 이  설교 말씀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다. 이 하나님 말씀이 속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것을 바로 깨닫게 해 주신 바른 해석이다,' 하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딱 잡았을 때에는 어떤 환난 때 마귀가 와 가지고 '야, 네가 설교 말씀  듣고 그와같이 하는데,' '설교 말씀을 듣고 하는 게 아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붙들어서 이제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다.

보라,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안했으냐?' 이렇게 할 때에 자기 속에 의심이  들어왔다가 의심이 물러가고 자기 속에 확신이 생겨집니다. 확신이 생겨지면은  어떤 시험이라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확신이 생겨지면 시험을 이길 수 있는데 확신 생겨질 때에 어떻게 해서 시험을  이깁니까? 시험을 이기는 그 힘이 무슨 힘으로 시험을 이깁니까? 저, ○선생?  확신이 있을 때 시험을 이기는데 시험을 이기는 그 능력이 무슨 능력이요? 그래  무슨 능력으로 이겨요?  믿음이 있으면 시험을 이기고 믿음이 없으면 시험에 뚝 떨어지게 되는데,  믿음이 있으면 바다 위로 쩌뻑쩌뻑 걸어가게 되고 그만 믿음 떠나니까 물에 푹  빠졌는데 물에 걸어가기를 무슨 힘으로 걸어갔어? 저, ○집사, 말하나? 왜  대답이 없어? 나는 그거 아주 얌전이고 아주 진실되게 나는 보고 있는데 이 대답  못 하면 인제 폭락이다. 한 번 대답해봐요. 무슨 힘으로 걸어가? 저거 참  멍충이네.

 ○○○ 보니까 외모는 좋은데 속에는 멍충이 데리고 사는구나. ○○○, 멍충이  데리고 살아. ○○○ 한 번 말해 봐. 믿음이 있으면 시험을 이기고 믿음이  끊어지면 시험에 패전하는데 그 이기는 것은 무슨 힘으로 이겨? 확신으로 이겨?  그거 참 나는 놀랬네. 저것들은 아주 영 아주 인제 뭐 아주 목사라도 일등  목사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야.

 ○○○, 하나님의 능력!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같이하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안 해. 믿음 잊어버리면 하나님 능력  잊어버렸어   믿음 무슨 믿음인데? 하나님 계약했기 때문에 계약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해 주신다 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해 주셔야 되고,  '이렇지마는 해 주시겠나? 안 해 주실 거다.'하고서 의심하면은 하나님이 해 줄  걸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해 주실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런데 참 몰라?   이래서, 우리가 설교 듣고 믿으면 믿는 믿음이 가다가 아주 이제 추수 때,  신앙의 추수 때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중요하고 요긴한 그때에 가면은 그만  믿음이 '이 설교 말씀 듣고서 했으니까 목사의 말이지 이거 하나님  말씀이겠느냐?' 이렇게 의심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만 능력 잊어 버려  버립니다.

 이러니까, 꼭 설교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설교 말씀을 자꾸  들으면서 성경을 읽고 해서 '성경 말씀과 이 설교는 하나다. 과연 이 해석은  성경을 바로 해석한 것 이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신 있게 알고 있어야  아주 절정기에 가 가지고서 믿음이 계속되고 요동치 않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불의한 재물은 뭘로 해석을 했으며 친구는 무엇으로 해석 했으며,  또 '저희가 영원한 처소에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대우하리라 그 말인데, 영접한다 말은 대우한다 말인데 영원한 처소에서 영원한  대우를 하기는 누가 대우하는가? 대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거는 저희라고  했으니까 꼭 사죄받은 그 사람으로 알지마는 그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죄 이것은 예수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어떤  사람에게든지 죄를 없이 하는 것은 예수님을 돕는 일이라.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짐을 지우는 사람이라.

 또, '지극히 직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이 뜻은 무엇인가? 지극히 작은것. 지극히 큰  것, 또 여기에 충성과 불의라 말이 있는데 충성이라 말은 무슨 뜻인가?  충성이라 말은 종이 주인에게 대해서, 부하가 상판에게 대해서, 신하가 왕에게  대해서, 또 성도가 주님에게 대해서 그런 데만 쓰는 말입니다. 아내가 그  남편에게 충성한다는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충성한다  그런 말은 쓰지를 않습니다.

 여기에는 주님을 생각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 주님을 위하고 섬기고  하는 것이 성심성의, 전력을 기울여서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충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것, 작은 것에 충성한다는 그 작은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켰겠습니까? 작은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켰소 '돈 작은 것을 가리켜서  말했소, 덩치 작은 것을 가리켜 말했소, 집이 작은 걸 가리켜 말했소? 여기에  작은 건 뭘 가리켜서 말했소? 작은 것은 뭣을 가리켜서 말했지요?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해서 충성된 자는, 충성은 알뜰히 성심성의가 있게  전심전력 기울여서, 이렇게 성심성의 있게 알뜰하게 충성되게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작은 것에' 이렇게 말했는데 지극히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작은 것은 무슨 일이요? ○○○집사, 충성은 그건 그 말이지.

'작은 것' 하는 작은 것 그것 말이오. 어떤 것에 대해서 소홀하게 하고 성심성의  있게 하는가?   작은 것' 하는 그것은 무슨 물건을 말합니까? 인간을 말합니까? 뭘말합니까.

사건을 말합니까, 뭘 말하요! 작은 것?  이거 오르면 안 되는데. 어제 내가 해석을 몇 번이나 했는데. 작은 것은  뭐이요? ○○○, 작은 것이 뭐이지? 네. 작은 것 그 말은 그 사람을 지극히 작은  죄에서 구원해서 죄인을 지극히 작은 의인으로 구출하는 그것이 곧 작은  것입니다. 빚 탕감한다고 말하지 안했어? 빚 탕감하는 거라 내나, 빚 탕감하는  것. 죄빚을 탕감하는 것.

 또,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하다, 여기에는 또 불의라고 말했어. 불의라고  말했는데 지극히 작은 불의는 뭐입니까? 불의가 뭐입니까? 죄입니다. 내나.

불의가 죄요.

 지극히 작은 옳지 못한 것을 그것을 애써 가지고서 아주 의롭게 만들면은  그것은 지극히 작은 불의를 그 사람을 제가 힘써 가지고서 의롭게 만들게 되면은  지극히 큰 불의를 큰 의로 만들 수도 있다, 또 지극히 작은 불의를 그것을  무심하게 버려두는 그런 사람은 큰 것도 버려두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주겠느냐' 불의의 재물은 뭐인가? 요것은 없어질 물질계의 것을 말합니다. 위에  불의라는 것 말하지 안했소? '불의의 재물로' 하는 내나 그 불의나 꼭 같은  말이라. 불의의 재물은 뭣이냐 하면은 없어질 물질, 없어질 물질이라 말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없어질 물질들입니다. 우리 몸도 없어질 물질이요 우리  마음도 없어질 것들이요, 이것이 변화가 돼야 되지 변화되지 안하면 다 없어질  것들이오.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간다고 해도 이 육체의 형체만 있지 속에 기능은  아무것도, 싹 빠져서 마치 그뭐 아무것도, 속에 알맹이는 빠져나가 버리고  껍데기만 있는 것이라 그거요.

 없어질 물질계의 것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잘하지 안하면은 누가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없어질 그것도 욕심을 부려 가지고 막  그거 욕심을 내 가지고 그거 주를 위해서 살지 안하고 저. 위해서 날뛰는 그  자가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걸 줘 놓으면은 그래 하겠습니까? 더 그렇지.

 곧 없어질 것 가지고도 주를 위해서 충성하지 안하는 그자에게 없어지지 안할  것을 줘 놓으면 그자가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까? 더 안한다 그 말이오. 그자에게  안 밑긴다 그 말이오. 무궁세계에서는 그자에게 아무것도 맡기지 않는다 그  말이오.

 또, '네가 남의 것에 충성치 안하면 누가 너의 것을 너에게 주겠느냐' 여기에  남의 것이라 말은 누구의 것을 말합니까? 남의 것이라 말은 누구의 것을 말해?  ○○○씨, 주님의 것. 남위 것이라 말은 주님의 것이라. 네가 주님의 것에  대해서 알뜰히 성심성의있게 하지 안하고 이와같이 아주 꾸심하게 소홀히 그렇게  등한히 여기고 그와같이 하면 누가 네것을 그렇게 알뜰히 해 주겠느냐 그  말이오.

 그러면, 남의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일을 알뜰히, 주님의  소원을 알뜰히, 주님의 유익을 알뜰히, 주님을 아주 유익되게 성공하고  승리하게, 주님의 성공 승리가 뭐인데? 주님의 성공 승리는 죄를 멸하고 의를  건설하는 것이 주님의 성공입니다. 또, 마귀를 멸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주님의 성공입니다. 사망을 멸하고 다 영생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성공이라 그 말이오, 네가 주님의 일 이 일을 알뜰히 하지 안하면  주님은 네게 알뜰히 해주겠느냐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남을 구원할라 하는  그게 바로 자기구원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욕심쟁이들이 세상과 같은 줄 알고 다른 사람이 일등이 되면 내가  이등된다. 그러니까 저거 일등 안 되구로 하고 내가 일등돼야 된다. 그 욕심자  그자는 주님의 적입니까 뭐입니까? 주님의 적이오.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꺼꾸로 깨닫는 자는 참 불쌍하고 가련하요.

 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여기에 비유한 이 주인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요것만 알면 잘 아는데, 주인은 누구를 가리켜요? ○○○조사님  여기에 주인은 누구를 가리켰지? 한 송이 두 주인을 성기지 못한다. 거기에  본문에 있지 안해. 하나님?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했는데 주인은  누구라고요? 하나님, 또? 하나뿐이라? 두주인이라 했는데 주인 하나는 뭐이야?  물질계. 한 종이 두 주인이라 했으니까 한 주인은 하나님이요 한 주인은 물질계  이 세상을 가리켜 말합니다.

 인생이 제가 두 주인을 섬기는 척 하고서 이래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렇게 범벅  일 하지 않습니다. 구별하기 때문에 제가 하나님을 섬기느냐, 구속하신 주님을  섬기느냐 물질계를 섬기느냐 둘 중에 하나이지 둘 다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물질계 모든 것을 하나님 섬기는 데 다 투자하게 되고  또 이 물질계, 다시말하면 세상을 섬기는 자는 예수 믿는 것까지도 세상을  섬깁니다. 예수믿는 것까지도 세상에서 복받기 위해서 섬 깁니다.

 또, 복받기 위해서 섬기는 사람은 잘못 섬기는가? 복받기 위해서 섬기는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있고 세상 섬기는 사람 있습니다. 복받아 뭐할라고? 이  복받아 가지고서 전부 하나님 섬기는 복음에, 다른 사람 구원하는 데에, 또 내가  이와같이 장 거지인데 예수 믿어서 부자되는 것은 부자가 돼야 다른 사람들이  '어째 가지고서 자네는 그렇게 부자가 되는가?' '예수 믿어 봐라' 슬그머니  이갈다' 말이오. 이라면 사람이 보고 '아, 그 사람 예수 믿으니까 부자가 되고  모든 일에 형통한 것 보니까 나도 예수 믿고 형통해야, 되겠다.' 다른 사람을  예수 믿어 하나님 섬겨서 그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부자되는 것도 부자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은, 자, 그 사람은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요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세상을 잡는 사람이요?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세상을 잡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신앙생활하지마는 두 주인이 있는데 하나는 세상이고  하나는 하나님이니 하나님 섬기는 사람과 이 물질계를 섬기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러면, 물질계를 잡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물질계를 잡아  가지고 잡은 물질은 전부 하나님 섬기는 데에 다 투자하는 사람 있고.

하나님까지 이용을 해 가지고서 물질계를 섬겨서 물질계를 취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 있다. 이렇게 하늘나라는 구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런 것도  읽어 가지고서 자꾸 요렇게 깨달아야 돼요.

 그러면,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어떤 게 빚을 탕감해 주는가? 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로 그 사람을 회개라 하는 것은, 회개라  하면 두 가지 방편밖에 없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하나는 두려워서 회개하는 것 있고, 또 하나는 감화 감동이 돼  가지고 회개하는 것 있고 회개 방법은 둘뿐이오.

 내가 그러면 말로 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가지고서 그 사람이 참 그  이치를 깨닫고 난 다음에 두려워서 회개하도록 하는 그런 것 있고, 내가 그  사람을 감화 감동시켜서 회개하는 것 있고 둘 다 있는 것인데 둘 중에 감화  감동하면 그것이 더 그 수술이 더 잘됩니다. 그것이 더 치료가 잘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 말 있지 않소? 베드로전서 3장에 '그  아내의 두려워함을 보고서 남편이 회개했다' 뭐 두려워하는 것보고? 남편에게 막  절절절 매는 것 보고? 아니요. 무슨 두려움이겠소? 그 아내가 두려워하는 것  보고 남편이 회개했다 했는데 아내의 무슨 두려움입니까?   우리 저 ○○○집사님 한 번 물어 볼까? 세상에서는 박사가 될 건데. 남편이  아내의 두려워하는 걸 보고서 남편이 회개했습니다. 아내 두려워하는 걸 보고  남편이 회개했어. 그거 뭘 두려워하는 거겠지? 그래,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

 그 사람 아내가 보니까 이 남편은 하나님을 욕을 하고 뭐 하나님은 없는 걸로  보는데 그 아내는 보니까 하나님을 죽음보다도 두려워하고 뭐 세상에 어떤  자기에게 무슨 암병 걸리는 것보다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는 걸  보고 '아내 저거는' 처음에는 '눈에도 보이지 안하는 거 하나님 뭐 어데 하나님  어데 있노?' 이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니까 '저거는 하나님이라 하면 뭐 사지를  못쓰고 겁이 나서 절절맨다'.

 그래도 자꾸 두려워하는 것 보고 '야, 저 아내가 자꾸 두려워하는 것보니 참  진정 저 아내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이래서 저거 천치 바보라  이랬지마는 얼마 동안 지나가니까 나중에 보니까 그 아내의 하나님 두려워하는  걸 보고서 '하나님이 참 계시기는 계시는가보다, 저 아내 두려워하는 것 보니까.

 또 보니까, 그 아내가 뭐 보니 감정도 소용없고 다른 사람이 촉분을 질러도 또  억울한 꼴을 당해도 물질 문제가 있어도 어짜든지 뭐 죄 안지을라고 벌벌벌벌  떨면서 그만 죄짓는 것은 바로 자기 모가지 끊겨지는 거와같이 그렇게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고 죄 안 지을라고 뻘뻘떠는 것을 보고서, 죄를 지을까 뻘뻘 떠는  걸 보고서, 죄 안 지을라고 지금 뻘뻘 떠는 두려워하는 걸 보고 '그 이상하다'  또 보니까, 이 세상에서 뭣이 좋은 일이 있으니까 좋아서 '여보 이일이 이리  됐어' 쫓아해도 그저 그 아내가 살짝 웃고 방긋 웃고 말지마는 하늘나라에  소망되는 것을 뭣을 보고서 하늘나라에 소망되는, 수입되는 거는 보고서 막  좋아서 못 견딥니다. '저 여자는 땅에 거는 보고 좋아하지 안하고 순전히  하늘나라의 것만 보고 좋아한다' 그 아내의 두려워하는 것 이런 것 모든 것 그것  보고서 남편이 감동이 됩니다. 그거는 막 두렵게 만들어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감동돼 가지고서 비로소 깨달아지게 된다 말이오.

 감동으로 다른 사람을 죄에서 회개세, 또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서 남편이나 다른 사람이 보고 감동케, 또 자기가 항상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서 뭐이든가 하늘나라의 소망만 위해서 그 사람이 모두 다 수고 하고  저축하지, 하늘나라 저축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그 모든 보응 그것을 보고 살지  뭐 딴거 보고 살지 않는 그런 걸봐서,   모두 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죄에서 쇄개시키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전부를 빚 탕감해 주는 것, 친구의 빚 탕감해 주는 것, 형제를 죄에서  벗어나도록 의를 준비하도록 그렇게 하는 그 일을하기 위해서, 말로만 그렇게  하면은 다른 사람이 보고서 그만 안 된다 그 말이오,  어데 회사에 들어갈 때에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저거 예수 믿는 것' 뭘 좀 잘하면 '저 자식 예수 믿는다고 저거 제 딴에는 저래  지금 한 번 뽐낸다고 저와같이 하는가 보다. 에이 외식하는 놈.'  또, 뭘 말을 조심해서 하니까, 또 친절하게 하니까 '저게 예수 믿는다고, 아이  그게 야 예수 믿는다고 어북 그게 얄궂게 그게 원숭이 노릇 하더라.' 이라며  그만 다른 사람이 조롱하고 뭘 아무리 무슨 착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자식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 아니야' 덕이 안 된다 말이오  아무 말도 안 하고 들어가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니까 '그 사람?' '그 사람  괜찮아, 그 사람 참 겸손해, 그 사람 친절해, 그 사람 정직해.' 자꾸 소문이  난다 말이오. 소문이 나고 이와같이 친절히 하는데, 그만 주일날이 돼서  주일날은 딱 안 나온다 말이오. 안 나오고 이라니까 그때사알았어  '그 사람 그거야' 괜찮다고 모두 다 며칠 동안에 칭찬을 하고 다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거든. 나중에 가서 '그러면 그렇지. 그거 예수  믿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 달라.'이리 된다 말이오. 욕얻어  먹을 게 욕 얻어 먹지 안하고 효력을 봤아요. 이라고 난 다음에 어찌 됩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처음에 예수믿는 줄 모를 때에는 하는 것 보고 다른 사람이  놀라지마는 예수 믿는다는 것을 딱 표시해 놓고 난 다음에는 파 하는 일을  보고서 다 같이 그렇게 평가합니까? 그만 그 평가를, 가치를 적게 봅니까, 크게  봅니까? 믿는 것이 표시가 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의 하는 그 의로운 행위를  작게 봅니까 크게 봅니까? 크게 본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작게 본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이라.

 예수 믿는 표시가 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옳은 행위를 할 때에 칭찬받을  만한 행위를 할 때에 그 칭찬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고 난 다음에는 꼭 같은  일을 한다 해도 칭찬이 많습니까 칭찬이 적습니까? 칭찬이 많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칭찬이 적다고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안 드네. 들어. 칭찬이 적어,  '야, 그 사람 그거 아주 그 사람은 겸손해.' '야. 예수 믿는다고 그런단다.' 또  '그 사람이 뭐 그래도 나쁜 일을 같이 하자 하니까 안 하고 그래 그 사람  정직해.' '정직한 게 예수 믿는다고 그란단다' 칭찬이 적어져요 많아져요?  적어져요.

 그러면, 또 그 다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실수를 하면은 실수에 대한 그 조롱이나 실수에 대한 훼방이나 실수에 대한  욕이나 그런 것은 실수했을 때는 그 욕이 커집니까 적어집니까?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커져요.

 이러기 때문에, 어데 가면은 예수 믿는 말을 하지 하지 안하고 들어가가지고서  이래 척 그렇게 일을 하면은 그게 빛이 됩니다.

 이것이 뭐이냐?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 말이오. 빚을 탕감해 주는데에는  감동과 두려움 두 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옆에 다른 사람을 어짜든지  죄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지 안하고 내  행동으로, 내 행동으로 그 사람을 돌이키게 하고. 내자체의 인간됨으로써  돌이키게 하고, 내가 또 말을 함으로 돌이키게하고 이 일을 관심 가지고서  자기의 없어질 물질 가지고서,   없어 질 물질이면 몸은 들어갔어요 안 들어갔어요? 몸은 들어갔어 안들어갔어?  ○○○씨, 보니까 산에 가서 기도하고 와서 졸면 소용없는데, 불의의 재물이면  몸은 들어갔어 안 들어갔어? 마음은? 마음도 들어갔어? 졸며 들으면 소용없어.

속에 능력이 가나요? 산에 가서 기도하고 왔지마는 졸면 안 돼. 저 뒤에  식구들은 하나도 안조네, 보니까.

 그거는 그래요. 구역장이 저게 교인들을 데리고 저 산에 가서 기도하러 가든지  낮이나 밤이나 가면은 그 구역장은 참 '아, 다 데려다 놨으니까 됐다.' 하는  구역장 있고 데려다 놓고 난 다음에 그것이 은혜를 받나 안 받나, 기도를 하나  안 하나, 무슨 좀 변화가 되나 안 되나?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막  녹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해 본 사람이라야 알아. 그게 다 뭐인고 하니 그것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 이라.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

알겠습니니까?  그라면, 갚아 주기는 누가 갚아 주요? 없어질 때에 친구가 갚아 준다했는데,  영원한 처소로 영접한다 했는데 그 친구는 누구라요? ○○○장로님, 그 친구는  누굽니까? 주님 이야, 주님. 죄인의 죄를 탕감해 줬는데, 빚을 탕감해 줬는데 왜  예수님이 갚아요?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도운 것은 그 사람을 도운게 아니라  예수님을 도운 거라. 예수님의 일을 한 것이야! 인간이 세상에서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우는 싸움, 마귀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은 누구 싸움을 내가 가담해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까? 그 싸움은 누구  싸움이요! 그 싸움은 누구 싸움입니까? 저 한 번 대답해 봐.

 그래, 주님 싸움이라.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은 주님의 싸움이요, 마귀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도 주님의 싸움이라. 마귀와 싸움을 싸워서 자기 생명  바쳤으면 누구 싸움에 생명 바친 것입니까? 주님 싸움에 생명 바친 거라. 이걸  바로 알아야 예수를 믿지 바로 모르면 예수를 못믿는다 그 말이오.

 앞으로 자꾸 읽어요. 여러 번 읽고. 이러기 때문에 한 설교를 여러분들이  깨달을라고 하면은 백 번 재독을 들어야 됩니다. 백 번 듣기만 할 게 아니라  들으면서 또 실행할라고 들으면 실행하고 자꾸 이래 해보면 비로소 깨달아져.

그렇게 하나님의 도가 알기 쉬운 것 아니라.

 또, 제가 성경 보고 연구해 가지고 안 것 아니고 성경도 보지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알려 주신 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전해 주도록 했어. 이거는 백 목사 깨달음이 아니야, 하나님이 저에게 선지직을  맡겨 가지고서 이 시대에 가르치게 됐어. 가르쳐 증거하게 됐어.

 그러기 때문에, 내가 뭐 무식한 사람인데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안 한사람인데  뭐 하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신학자들이 연구한 그것이 틀렸지 이게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말하게 된다 말이오. 그게 내 힘이요? 나는 아니요. 나는  설교하는 가운데서 그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대로 말해.

 그래 나는 애쓰는 것은 주님이 꼭 나를 붙들고 당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지  내대로 하지 안할라고 애를 써. 이러기 때문에 설교를 어느것 할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라 하는지 그 선택에 다 진액이 다 기울여져.

선택만 하면 뭐. 했으면 당신이 설교해 줄 거기 때문에 그만 나서면 하나님이  설교를 해 주시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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