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가지 3가지

 

1986. 12. 28. 주일새벽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나 남녀 권찰님들이나 모두 다 신앙의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공과를 준비할 때에 거게 대해서 기도하고 또 자기가 실행할라고 이렇게 노력을 하고 그 공과를 늘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 그 공과에 대해 자꾸 깨달음이 나옵니다.

여게서 뭐 가르치는 그것만 되는 건 아니고 자꾸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깨달음이 생겨지고, 또 이렇게 해야 되겠다 저렇게 해야 되겠다 할 자기의 소원이 생겨지고, 또 자기 결심이 생겨지고 이렇게 자기가 그 공과가 자기가 그대로 살아야 되겠고 그대로 구원을 이루어야 되겠다는 그런 것이 자꾸 자기 속에 그 윤곽이 잡혀집니다. 자기가 이래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 소원과 모든 작정과 힘이 거기서 생겨나옵니다.

이렇게 준비한 사람이 학생들 앞에서 가르칠라고 할 때에 그때그때 성령이 인도하셔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가르칠 때에 자기의 아는 것이 그것이요,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가치로 여기는 것이 그것이요, 또 자기가 소원하는 게 그것이요, 힘쓰는 게 그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과 자기 몸과 행동에 배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자유 자재로 그 사람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쓰실 수가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이런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저런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가르칠 수가 있고 하나님이 참 당신의 모든 그 지체로 자유롭게 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에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말하지만 그 말하는 건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고 전지 전능하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이 그저 딱 녹음기 모양으로 그것만 틀어 가지고 그대로만 외우고 그라면 자기가 그 사람을 가르칠 때에 그때에 하나의 기계적으로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이렇게 하지 하나님이 와 가지고 자기를 마음대로 쓰셔서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가르치면 아무리 가르쳐 봐도 거게 미쳐지는 그런 구원의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꼭 여러분들이 이거 공과를 이렇게 보고 읽고 생각하고 자꾸 이렇게 그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실지로 내 생명의 법칙으로 삼아야 그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걸 보면 ‘저 사람은 저거 하나의 지식적이다. 기계적이다. 또 저 사람은 자기의 생애 법칙을 자기가 삼아서 삼고 있는 그 법칙을 가르친다. 저 사람은 어느 정도의 소원을 말하고 있다. 또 어느 정도의 저거 가치를 알고 말하고 있다.’ 이런 걸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통 빈 깡통같은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면 밑에 배우는 사람들에게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탄일 때도 이 공과를 가르쳤는데 그러면 공과를 가르치되 한 가지로 이래 말하나 여러분들은 그걸 가지고서 자꾸 자기가 살라 하면은 자기가 맡은 그 학생에게는 하나님께서 또 인제 필요한 걸 아십니다. 아니까 필요한 대로 가르쳐 줍니다.

이래서, 자기가 그 어데를 가서 설교를 하든지 또 무슨 심방을 가든지 권면을 하든지 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그분에게 피동되어 하는 그 일을 자꾸 자기가 할라고 애쓰고 자기 대로 하지 안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가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 말 할라 했는데 주님이 나를 붙들고 저 말 하십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고 보면 그 말 함으로 그 사람이 구원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언행심사가 자기가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자기를 붙드시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그것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은 다 학생들 가르치는 데는, 여러분들만 알아야 되지 학생들 가르치는 데는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여러분들 공과 준비하는 걸 지금 말하느라고 하는 것이지 학생들에는 그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

학생들에게는 그런 때는 자꾸, 자루 말이요, 쌀자루, 자루 모양으로 자루 속에다가 뭘 자꾸 집어넣으면 자꾸 들어가서 나중에 자꾸 집어넣다 보면은 나중에 한 자루 됩니다. 이거 모양으로 사람들이 시기가 있는데 그저 한 이십 한 사오 세, 이십여 세 될 그때까지는 뭣이든지 그 가운데 자꾸 주 집어넣어서 주입식으로 그 안에 집어넣으면 들어가서 채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까지의 글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이라 하는 것은 깜깜 어두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이오. 세상에 박사도 학사도 이거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물질에 대해 그런 건 알아도 사람에게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런 건 하나도 모른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책은 읽어야 된다. 많이 읽어야 된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책 몇 권 읽었다’ 그 권수 읽은, 책 권수 읽는 그것이 제일 되는 줄 알고 권수 많이 읽을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제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책을 자기가 짓는 것, 만드는 것, 만드는 게 이게 사람인 줄 알고 ‘아무것이는 저서를 했다, 그 사람 저서가 있다.

저서를 십 권 저서했다, 백 권 저서했다, 몇천 권,’ 몇억만 권 저서했으면 뭐 할 겁니까, 그까짓 게? 그래 가지고 다 그라는데 어쨌든지 우리는 이 부대와 같기 때문에, 우리 심령이 부대와 같기 때문에 자꾸 집어넣어요. 스물대여섯 살까지는 뭐든지 집어넣으면 들어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독서를 자꾸 이래 하는 그 사람은 속에 마구 잡탱이가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나중에 제가 속에 들어 있는 그대로 입에 나오고 행동에 나오고 생각이 나옵니다. 생각이 그게 나오고, 마음이 그게 나오고, 욕심이 그게 나오고, 소원이 그게 나오고, 지혜도 그게 나오고 자꾸 이라기 때문에 순잡탱이가 나오니 그 사람이 막 잡탱이 사람이 돼. 어짤 줄을 모릅니다. 이래 어짤 줄을 몰라.

이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 지식이 둘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이 주인이 되고 세상 지식은 거기 종이 되어 있으면 세상 지식 많이 가질수록이 좋습니다. 이거 잡아 부리면 필요하고 유익합니다.

그러나 이거 세상 지식 하나님의 지식 이 두 가지 지식을 서로 서로, 나중에 가서는 세상 지식은 위에 올라가고 하나님 지식은 저 파묻혀 버리면 그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지식 아는 것은 하나 참고로 살고 세상 지식이 자기를 주관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세상적이기 때문에 세상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입니다. 그외에는 딴걸 못 합니다. 암만 그래도.

이것도 이거 대단히 귀한 말이오. 이거 지금 이 말이 나가면 나중에 가서 이 말로 인해서 죽을란지도 모릅니다. 이 말 한 사람이 죽을란지도 몰라. 그러나 세상 지식 모든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만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다 죽는 생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학생 때는 자꾸 속에다 주입을 시켜서 똑 쌀포대에 뭐 집어넣는 거 모양으로 자꾸 하나님의 진리를 집어넣어 놔요. 그래 놓으면 그것이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한다 할지라도 뒤에 ‘이런 말이 있는데’ 그러면 세상 지식 모두 배우면 그 말의 뜻은 대개 껍데기는 알 수 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이 가르칠 때에는 여게 첫째 가르칠 게 뭐이냐 하면 구원이 있다. 구원을 못 받으면 멸망하고 구원 받으면 다 영생하고 금생과 내세에 행복되다. 그 구원이 있다 하는 그거, 구원이 있다 그것만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 또 좋겠습니다. 구원이 있다. 구원 없는 사람은 아무리 어떤 행복을 취해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고, 금생도 자꾸 멸망할 것만 만듭니다. 멸망할 것만 만들어요.

세상 떠난 사람에게 말할 건 좀 거석하지마는 과거에 우리 이 정권 때에 그때에 제일 권리 있고 세력 있고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들이 열심히 그래 했지마는 마지막에는 다 가족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거는 우리에게 하나 보여주는 하나 형식계시라. 모든 게 다 그래.

모든 것이 이 구원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영원히 멸망합니다. 박사라도 멸망하고, 왕이라도 멸망하고, 대통령이라도 멸망하고, 그뭐 개인도 그러하고, 부자도 그렇고, 병신도 그렇고, 잘난 사람도 그렇고, 남자고 여자고 어린 아이고 어른이고 이 구원 없는 사람은 전부 멸망입니다. 요것을 아이들에게 꽉 인식을 시켜 놔야 돼. 구원 없는 사람은 멸망이다.

그러면 이 구원은 누가 만들었느냐? 이 구원은 아무도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만도 못 만드요. 인간만도 못 만드요. 꼭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신인양성일위이신 이 예수님 한 분만 만들 수 있지 아무도 만들 수 없어. 이 구원은 신인양성, ‘신’ 하는 건 하나님이고 `인' 하는 건 사람인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만 이 구원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구원을 만들면 이 구원을 만드는 데에 세월이 얼마나 걸렸느냐? 그 세월 걸린 것은 뭐 몇만 년이 걸렸는지 몇억만 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천지 창조는 얼마나 됐습니까? 천지 창조는 얼마나 됐습니까? 그거는 압니다. 그거는 아직 육천 년이 좀 못 됐습니다. 뭐 세상 과학자들이 떠들어 쌓는 그거는 등신들이라 하는 거라, 등신들이라.

‘이 지질학을 보니까, 이 모든 동물 곤충 이 모든 생물 무생물 이런 것들을 보니까 이 창조가 여러 수억만 년 걸리겠다.’ 등신이라. 하나님은 일 초에 만든 거 오늘 만든 걸 너거 지식으로 볼 때에는 억억억억만 년 걸렸다 그렇게 보여지도록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인 것을 네가 모르느냐? 이 바보야.

등신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렇게 이 만든 것은, 이 구원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이분만 만들 수 있는데 이분이 구원을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여러,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수억만 년이 걸렸는지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면 이 구원을 만들 때에 시간이 그렇츰 걸렸으면은 또 이 구원을 만드는 데에 얼마나 힘이 들어서 만들었느냐? 신인양성일위이신 이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이 소유 전부, 영광과 존귀 전부, 지위와 권세 전부, 몸 전부, 목숨 전부, 전부 다 해 가지고서 이 구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구원은 이렇게 시간도 많이 걸렸고, 또 자본도 많이 들었고, 그분 외에는 만들 수가 없어. 하나님만 돼도 못 만들어요. 사람만 돼도 안 돼요. 하나님과 사람이 일위되신 이분만이 만들 수 있는 구원이라.

그러면 이 구원을 만들었으면 이 구원이 몇 가지 구원을 만들었느냐? 일곱 가지 구원 만들었습니다. 일곱 가지 구원 만들었는데 이 일곱 가지 구원을 만드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일곱 가지 구원을 만들어 가지고서 우리에게 공짜배기로 주셨습니다. 왜 공짜배기로 줬느냐? 이 구원의 댓가는 인간에게는 억만분의 일도 댓가될 만한 것이 없소.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은 공짜배기로 주시는데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믿는 자의 것이 돼. 믿는 자에게는 은혜로 주시요.

믿는 자에게는 은혜로 주시지 이거는 뭐 달리는 받을 수가 없어. 사람들이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그것도 안 되고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이 일곱 가지 구원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 이 구원은 그러기 때문에 내것이 됐다.’ 요것을 믿는 믿음으로만 자기 것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이 구원을 자기 것 된 것을 믿어서 자기 것 만드는 방법은 믿으면 만드는데, 믿으면 그다음에 이 구원이 내것 됐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것 돼요.

나는 주님의 것 돼. 주님의 것 되니까 아무리 구원을 내것으로 믿어도 내가 내것 되어 있으면은 소용 없어.

우리가 간단하게 말해서 이 시장에 가 가지고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을 남의 손에 있는 것은 남의 물건을 내 물건 만들라 하면 내가 댓가를 줘야 되지 않습니까? 댓가를 줘야 되지 안해요? 주님의 신인양성일위이신 그분이 자체와 모든 소유와 영광과 존귀와 지위와 권세 모든 걸 다 해 가지고 만든 그 지극히 보배로운 구원, 지극히 큰 구원 일곱 가지를 나에게 주시니까 나는 주님의 것이 된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주님의 이 구원을 내가 받는 데에, 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나는 그 댓가가 뭐이냐 하면 나는 내가 주님의 것 돼야 된다 말이오. 내가 주님의 것 돼야 돼. 주님의 것 되면 이 구원이 내것 되지마는 이 구원은 내것인데 내가 이 구원을 내것으로 믿기는 믿으면서도 ‘나는 내것이라’ 이라면 안 된다 그말이오. `나는 내것이라' 이라면 구원은 구원대로 주님의 구원돼 가지고 있고 나는 내것 돼 가지고 되는 거라. 내가 내것 돼 있으면 나는 이거 사망이요 멸망이요 마귀의 것이라.

이러니까, 그러면 이 구원은 나를 위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내가 믿기만 하면 내것 되니까 이 구원은 내것, 이 구원을 내것 받으니까 주님이 나를 이 구원하기 위해서 있는 것 다 들였으니까 남은 나는 이제 당신이 다 들여 이 구원 만든 거 나를 줬으니까 나는 이거 당신에게 드려야 될 수밖에 없다 말이오. 나는 당신의 것이라.

당신의 것이면 이제는 이 구원을 받은 내가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구원을 받은 내가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당신의 것이 됐으니까 이제 당신의 것 된 나, 당신의 것 된 나는 내가 나를 주장할 권리가 없어. 내가 나를 주장할 권리가 없어. 이러니까 주님만이 내 마음도 주장할 권리가 있고, 내 눈도 주장할 권리가 있고, 입도 주장할 권리가 있고, 또 수족도 주장할 권리가 있고, 안팎에 뭐 전체 내 고기덩어리의 전부 세포까지 주님이 주장할 권리가 있지 나는 주장할 권리 없어.

왜? 주님이 이렇게 다 들여서 만들어 놓은 그 일곱 가지 구원을 내것 만들었으니까 내 모든몸뚱이, 내 마음의 생각이나 뜻이나 내 모든 그 마음도 몸뚱이도 다 주님의 것 됐다 그말이오. 내 영도 주님의 것 됐다 그말이오. 내 영 마음 몸 전부 주님의 것 다 돼 버렸어. 또 내 소유도 다 주님의 것 다 돼 버렸고.

이러니까 내것은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은 당신의 모든 것 다 들여 가지고 만든 건 내것 됐고 이러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됐어. 주님의 것 됐기 때문에 이제는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일곱 가지 구원을 주고 나를 사신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사는 것은 주님이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주관대로 주님 마음대로 살지 내 마음대로는 이걸 사용할 수가 없어.

그러면, 내것 이것이 주님의 것이 됐을 때에 주님의 구원이 내것 되고 주님의 것 된 이것을 내가 찾지 안하고 주님이 요것을 당신 주권대로 요것을 사용하게 되면은, 주님의 것 된, 주님의 것 된 나를 주님이 전부 다 주관하시면 이 일곱 가지 구원은 다 내가 주관할 수있다 그말이오.

내가 만일 주님의 구원을 일곱 가지 구원을 받았다 이렇게 말해도 주님의 것 된 나를 주님은 하나도 주관하지 못하고, 주관하지 못하고 내가 주관하면은 이 일곱 가지 구원은 내것 됐다 하지마는 이 구원은 실질적으로는 내가 하나도 주관하지 못하게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요걸 믿을 때에 기본구원인 영구원이 되어지고, 영구원 되고 난 다음에 영은 요대로 사니까. 영은 순전히 주님이 주관하시지 이 영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영의 구원은 완전 됐고 이제 이 심신의 구원은 이렇게 이 믿지마는, 믿지마는 내가 주님의 것 된 이것도 실행을 안 하고 또 주님의 것이라고 말로만 하지 그것을 나를 주님이 주관하지 안하고 내가 주관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 구원이 다 건설구원은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인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이 있나 없나 하는 게 이게 제일 중요하다. 구원이 제일 중요하다.

이 구원은 아무도 만들 수 없는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만드셨다. 얼마나 힘들여 만들었느냐? 기간으로 말하면 수없는 수억천만 년인지 모르는 그런 긴 기간을 영원 전부터 시작했다. 영원 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 또 들이기는 뭐 얼마나 들였느냐? 당신의 그 자체 전부와, 소유 전부와, 영광 존귀 전부, 지위 권세 전부를 다 해서 투자해 가지고서 만드셨다.

그러면 이거 만드실 때에 그때 무슨 그때 그 만드실 때에 혹은 그때 같이 쓰여진 필요한 거 그런 거 없었느냐? 당신이 신인양성일위의 당신과 당신의 전부를 다 들여 가지고 만드시면서 이 구원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우주와 영계 모든 것을 예정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예정했다. 예정도 이 구원 위해서 예정했고, 창조도 이 구원 위해서 창조했고, 또 이 모든 걸 이 구원 위해서 관리하고 섭리하고 보존해 가지고 비로소 다 예수님이 들여 가지고 이 구원을 만들었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는 다 들였다. 다 들였는데, 다 들이기는 들였는데 이것만 가지고 구원 반밖에 안 됐다.

안 됐는데 다시 사람으로 신인양성일위가,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우리 사람이 똥구덩이 구더기노릇 하는 것보다도 더 무한히 천해진다고 안 했습니까? 이렇게 사람으로 부활하심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러니까 이 구원은 우리에게 공으로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이 구원은, 공짜배기로 받은 이 구원은 내것, 이 구원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또 주님의 것이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건 내가 주관하지 안하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말씀했어. 이건 내가 사는 게 아니고 이제 주님이 내 눈도 귀도 입도 다 주관한다. 내가 주관하는 게 아니고, 주관해.

그러면 암만 내가 말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그말이오. 내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못 봐. 내가 아무리 욕심내고 싶어도 못 내. 내 마음도 주님이 주관하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그 마음만 가지고, 주님이 말하는 그 말만 내가 하고, 주님이 보는 그것만 보고, 주님이 좋아하는 그것만 좋아하지 나라는 건 완전히 죽어서 무덤 가운데 매장한 송장과 같이 완전히 내라는 주관이 하나도 없어야 된다 말이오. 요렇게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는 거라.

요것이, 내가 내게 대해서 하나도 자유 없는 것이, 자유 없는 것이 뭐입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일곱 가지 구원에 대해서 자유 없는 것입니까 있는 것입니까? 내가 내게 대해서 자유가 하나도 없으면 주님이 내게 주신 그 일곱 가지 구원에 대해서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있는 것입니다.

요 자유 내가 없이 요것을 주님이 혼자 다 자유하시면 요 일곱 가지 구원은 내가 자유합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내게 대해서 자유하는 게 이거 공연히, 내가 자유하지 주님이 자유 하나도 못 하면 일곱 가지 구원은 내가 암만 자유한다 해도 말뿐이지 자유가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다 인제 여러분들만 알지마는 학생들에게 가르칠라면 ‘이 구원이 제일이다. 구원 외에 딴거는 소용이 없다.’ 아무리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든지 무슨 언행심사를 하든지 어떤 걸 하든지 거게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다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이고 구원에 상관이 없는 것이면 천하를 차지해도 그거는 멸망이지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이 구원의 가치를 크고, 이 구원은 뭐이냐? 구원은 일곱 가지다. 일곱 가지 이 구원은 누가 만들었느냐? 인간 아무도 만들 이 없고 하나님도 못 만들고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이 만들었다. 예수님이 만드셨다.

이 만드는 데 그라면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 무한히 힘이 들었다. 또 자본은? 있는 걸 다 투자했다. 또 그래도 모자라서 이거 만들기 위해서 이 모든 창조와 예정 전부 이 구원 위해서 만드셨다. 요걸 아이들에게 말하고, 그러면 구원은 몇 가지? 구원 일곱 가지. 그러면 이 일곱 가지를 나 위해 주셨기 때문에 일곱 가지는 자기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때에 이 구원 일곱 가지가 자기 것 된다.

자기 것 됐는데 자기 것 됐으니까 또 이 일곱 가지 구원이 자기 것 됐다는 것을 믿을 때에 되는데 이 믿을 때에 된 이 구원의, 구원에 나는 주님의 것이라 하는 걸 요것을 두번째로 믿어야 됩니다. 두번째로 믿어야 이제 이 구원이 든든해진다.

또 믿고 난 다음에 나는 주님의 것이라 하고 난 다음에 주님의 것 된 나는, 주님의 것 된 나는 내가 주관하지 못하고 주님이 주관하셔야 된다 하는 요걸 또 믿어야 된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러면 자, 통틀어 말해서 구원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일곱 가지. 이 구원을 이루는 방편의 순서는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뻐뜩 들어 봐요. 저 ○○○집사님 한번 들어 보지. 모르는가배. 들어 봐, 이래 이래. 서이를 들어, 서이.

주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의 구원은 내것, 하나 아니요?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둘 아니요? 이제는 주님의 것 된 나는 주님이 주권하고 나는 주권하지 못해.

이라면 인제 주님이 완전 주권하면은 일곱 가지 구원은 완전히 내것 돼 버리고 맙니다. 법적으로는 내것 돼 있지만 실상으로 내것 되지 못해. 실상으로는 말이지.

그러니까 자, 구원은 몇 가지야? 구원은 일곱 가지. 그러면 이 구원은 어떻게 이루었느냐? 주님의 신인양성일위가 죽고 산, 사활이라 말은 사라 말은 죽었다 말이요 활이라 말은 살았다 말이라.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사활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 이 구원은 일곱 가지인데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이루는 내것 만드는 방편은 그 순서가 몇 가지냐? 세 가지라. 하나는 주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 이 완전 영원은 내것, 하나. 또 둘째로 이것 내것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것, 이제 둘 아닙니까, 둘? 주님의 것 된 거는 내가 주장하지 안하고 주님이 주장해 가지고서 사시도록 하니까 그래야 됩니다. 그라니까 셋.

그라면 우리 구원은 몇 가지입니까? 또 한번 연습합시다. 구원은 몇 가지요? 녜, 구원을 이루는 순서는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요걸 똑똑히 가르치라 말이오.

가르치고 조금 여유 있으면 말이지요, 가르치고 조금 여유 있으면은, 이 구원은 아무도 못 만든다. 이 구원은 신인양성일위로 되신 예수님만 만들 수 있다. 이 구원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여러, 뭐 영원 전이니까 여러 억천만 년인지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이 구원을 만드는데 자본은 얼마나 들었느냐? 당신의 소유 영광 존귀 다 들었는데 그러면 우주와 영계 이것도 다 이 구원에, 당신의 소유기 때문에 우주와 영계도 다 이것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다 사용하고 만들었다 그말이오.

소유를 다 들였으니까 그분의 소유가 뭐입니까? 우주와 영계 그게 다 그분의 소유라. 이 구원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지. 어데 여기 이 기독교에 불교니 회회교니 무슨 교니 그따위 그런 걸 여게 어데 댄다 말이요, 대기를? 그런 것 다, 그런 종교 이종교 그런 것이 뭣 때문에 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뭣 때문에 있습니까? 우리 구원 때문에 그거 만들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걸 알아야 돼요. 이래야 사람들이 이 구원에 도인이 돼지지.

이렇게 구원은 일곱 가지인데, 구원은 일곱 가지. 또 내것 만드는 순서는 몇 가지? 셋. 하나는 주님이 이렇게 힘들여 만들어 놓은 그 구원이 내것이 된 것인 것을 믿을 것, 첫째 그 순서.

둘째는 이 구원 내것 만들었으니 내것 삼았으니까 나는 주님의 것 돼야 되고, 주님의 모든 것 들여 가지고 만든 것 내것 했었으니까 나는 또 주님의 것 돼야 안 됩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된 것을 믿을 것.

셋째로는 주님의 것 된 나는, 이 구원 가진 나는 주님의 것 됐는데 주님의 것 된 나는 내가 주관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언제든지 주관해야 된다는 것, 요래야 됩니다. 그라면 셋 아니요? 그라면 일곱 셋, 요것만 강령적으로 가르치고, 이것 만드는 데는 얼마나 만들었느냐? 또 그렇게 힘들여 만들었다. 그러면 나중에 시간 있으면 이 일곱 가지 구원이 어떤 구원이냐? 그 구원에 대해서 한 가지만 한다고 말해도 말이지요, 이 구원에 제일 처음이 뭐입니까? 자유. 자유. 세 가지 자유. 또 하나님의 공심판,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된 하나님의 의, 또 절대 영원 자존자인 하나님 대주재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이분하고 완전한 친합, 이라면 몇입니까? 다섯 가지지요? 이제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대로 사는 영생 진리대로 사는 영생, 요 영생, 두 가지 영생, 이래 가지고 일곱 가지라.

이것은 도무지 아무 종교에 이런 게 없는 것입니다. 이런 보배로 크는데 우리가 못나서 이러나 이제 앞으로 자라가면 자꾸 알아져요. 예수를 믿어갈수록이 자꾸 알아져갑니다. 가치를 알아져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은 칠삼만 가르치면 됩니다, 칠삼, 칠삼. 일곱 가지 셋, 일곱 가지 세 가지, 구원은 일곱 종류의 일곱 가지고 구원을 이루는 순서는 세 가지고, 이루는 순서는 세 가지고, 요것을 아이들에게 자꾸 집어넣어서 그 속에 그것만 주관돼 가지고 있으면은 앞으로 자라가는 데 따라서 이거 자꾸 깨닫게 됩니다.

그라고 내가 어제 저 천막에 가니까 다른 교회는 벌써 탄일 샌다고 떡국 끓여먹고 다 하고 목사도 그렇고 교인도 다 ‘후유 이제 다 했다, 할 일 다 했다.

참 큰일했다.’ 그까짓 구원이 아니라. 이런데 이래 놓고 나니까 그만 지금 턱 퍼드러져 가지고 마음 턱 놓고 이래 가지고 있습니다.

이랬는데 ○○○교회는 보니까 ‘이거 지금 이래 가지고서는 지금 큰일 나겠다.’ 이러니까 어제 보니 다른 교회는 언뜻 눈에 보이지 안하는데 ○○○교회 교인들은 전부 중간반 또 중간반 이부 또 장년반 많이 왔어. 산에 와 가지고, 물론 그 사람들도 다 우리와 같이 했겠지요? 이래 와 가지고서 열심히 거석하고 오니까 그 보니 내려오는데 보니 팔팔 살았어.

그 사람들은 이렇게 지금 구원 운동을 해 놨었기 때문에 이 결실을 잘해야 된다 하고서 열심히 지금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고 이제 턱 퍼드러진 사람은 구원 받은 게 아니라 구원 다 팔아먹고 있는 거라.

그뭐 탄일 축하에 그 짜다라 떡 나눠주고 떡국 끓여주고 하는 그게 전도지 나눠준 게 그게 구원인가? 그건 구원 운동이지 구원 아니오. 구원은 이 세 가지가 자기 속에 있는 게 구원이라. 이 운동 함으로 이 세 가지가 자기 속에 강하게 느껴져야 되는데 이 떡국 끓여먹다 보니까 이 일곱 가지 구원은 다 잊어버려 버렸어. 그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 급하니까 이제 새벽기도도 으례히 나와야 되고, 철야도 해야 되겠고, 산기도도 해야 되겠고, 금식기도도 해야 되겠고, 그래 제가 한 서너 가지 작정을 하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교인들에게 이거 억지로 시켜도 시켜야 되겠다. 시켜야 되는 건 성경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

이래서 좀 주일학교 부장들도, 주일학교 부장들도 반사들 있지 안해? 반사들을 이래 어찌 동원해 가지고서 ‘야, 오늘은 우리 무슨 한번 예배당에 모여 철야하자.’ 이라며 뭐 하다 못 해 안 되면 빵을 한 조각씩 주고라도 모아 가지고서 그 철야도 하고 ‘자, 오늘 우리 반사들만 모여 가지고서 이제 산기도 가자.’ 자기 직장 있는 사람들은 안 되면 학생들 지금 모두 방학 한 사람은 다 될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아침 일찍 먹고 도시락 싸 가지고 오너라.’ 지금 자꾸 움직이는 거라. ‘도시락를 싸 가지고 오너라.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 가지고 아무데 가자.’ 그라면 차비를 좀 당한다 할지라도 이래 가 가지고 산에 가서, 다른 거 하면 안 돼요. 산에 가서 재독이나, 산에 가 들으면 재독 잘 되거든.

재독을 한 두 차례 듣고 이래 가지고 기도하고 이래 하면 그게 운동이라. 갔다 오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요. 힘을 주시요.

이래 가지고 뭐이 좀 움직여서 좀 이끄는 힘이 있어야 돼. 중간반 반사도 그렇고 부장도 그렇고 주일학교 부장도 그렇고 이래서 뭣이 운동이 좀 있어야 되겠다.

그런 운동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운동이오. 어떤 데서 뭐 총동원이라 하는 그런 운동이 아니라. 이 운동은 성경적이고 이 운동은 참 좋은 운동이니까 이걸 가져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 가졌습니다.

오늘 주일학교 부장들이 다른 말 자꾸 하지 말고 학생들에게 일곱 가지 세 가지 요것만 단단히 가르쳐요. 거게다가 조금 거게다가 조금 가미를 할라면은 일곱 가지 그게 구원이라는 것, 구원 일곱 가지, 그 구원 이루는 데에는 어떻게 됐다는 것, 그 구원 그라면 가치가 어떻다 하는 것 그런 거는 뭐 해석할라 하면 잘 모를 거라. 약간, 반사들이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 부장과 반사들이 알고 있으면 그걸 말 안 해도 그 속으로 들어가요. 알겠습니까? 어머니가 이 음식을 먹고 이라면은 그 아이에게 그걸 안 먹여도 그거 다 들어가는 것이라. 어머니가 시퍼런 채소 먹고 아이 똥을 누면은 똥이 어떻습니까? 아는 사람 손 들어. 아이 어머니들. 저 ○○○이 알아 봐. 뭐 어떻지? 아이 몇 키웠지? 봐, 키워도 몰라.

어머니가 새파란 채소를 먹고 아이를 젖을 먹이면 표가 뭐이 나지? 어때? 몰라? 저 참, 새파란 똥 누지. 인제 그래 뭐, 요새는 기저귀가 싸 가지고 내버리니까 그것도 모르는 거라. 어머니가 누른 색깔 먹고 젖을 먹여 놓으면 아이가 누른 똥 눕니다. 새파란 거 먹으면 아이가 새파란 똥 눕니다. 그게 어머니가 먹었는데 그리 나온다 그말이오. 이거는 뭐이냐? 반사들이 자기가 확실히 알고 믿고 있으면은 그것이 말 안 해도 그 속에 가르치는 가운데서 속에 들어간다 그말이오.

이거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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