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

 

1987. 9. 27. 주일오후

 

본문: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전에,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일곱 가지를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어찌 들으면 우스운 소리같이 들리지마는 실상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일곱 가지에서 성공했고, 또 모든 사람이 이 일곱 가지에서 실패했습니다. 이 일곱 가지를 중요한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까지 그 사람은 철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경험 없는 사람이요 벌판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무심히 생각하고 마지막 죽을 때야 비로소 약간 깨닫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도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아무런 마음 깊이 느낌이 없이 세상을 끝마치는 그런 사람들이 대개 많습니다.

일곱 가지 중에 첫째는 자는 것, 둘째는 먹는 것, 셋째는 영감의 도리를 먹는 것, 넷째는 기도하는 것, 또 다섯째는 일하는 것, 또 여섯째는 사람과 사물을 접촉하는 것, 또 일곱째는 노는 것,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오전에 네 가지는 약간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지식과 또 활동과 경험과 모든 경영에 따라서 그 범위는 넓어지고 좁아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고 또 넓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깊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자는 데 대해서 자기의 일생 생활이 여기에 성패의 원인이 달렸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무절제의 사람이요 아직까지 자기를 완전히 연구해서 확정짓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깊이 연구해서 확정이 됐다면 이제까지에 모든 실패는 잘못 자는 데서 일어났고, 또 자기가 원하는 그 성공은 바로 자는 데에 거게서 발생되는 것인데 그것을 무시해서 실패했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경험하면 알기 쉽고 경험하지 못하면 말만 듣고는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이렇게 다 건너다 보고 그 사람의 아는 대로의 남을 정죄하기 위해서 논평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모든 사람과 사람의 생애를 연구해서 바로 알아 자기가 바로 살기 위해서 연구하는 그런 것이 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 연구하는 사람은 해 보면, 저 사람은 그래도 제대로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천물이 되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안하고 제 자리를 잘 자기가 감당해 나간다 하는 그런 사람들 중에 보면 이 잠을 잘 자는 그것으로써 그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또 저 사람은 아무리 봐도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모든 일이 탁월한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이고 활동도 탁월하다. 그런 귀한 사람이 잠을 잘 줄을 몰라서 일생을 망치는 것을 또 얼마든지 봅니다.

이 자는 것이 사소한 일 같아도, 사람의 생활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은 자는 것이요 반은 깬 것입니다. 반반입니다. 자는 것이 반이요 깬 것이 반인데, 바로 잠으로 바로 깬 일 할 수 있고, 또 바로 깬 일을 함으로써 바로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 깨서 살고 잘 잘 수 없고, 또 잘 자고 깬 일을 잘 하지 못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는 것을 굳히면 눈 뜨고 깨서 하는 일 다 굳히고, 또 눈 떠서 깬 일을 바로 하면 자는 일 다 바로 하게 됩니다. 이 둘은 성패가 하나입니다. 자는 것 잘되면 깨어 사는 것 잘되고 깨어 사는 것 잘되면 자는 것 잘되고, 자는 것 잘못되면 깨어 사는 것 잘못되고 또 깨어 사는 것 잘못되면 자는 것도 잘못됩니다.

이래서 그뭐 넓고 깊은 그 범위는 심히 많으니까 그것은 다 각각 정할 것이로되 아주 외부적으로, 아주 외부적으로 간단하게 각자들이 ‘나는 그만 자는 장소와 자는 시간부터 나는 정해 봐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자는 장소와 시간을 정해 놓고, 평소에 정하려면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해 놓고 그대로 실행을 해 볼라 하면 여기에 방해물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지장이 여간이 아닙니다.

방해가 여간 아니오.

이럴 때에 비로소 자기 눈이 뜨여서 ‘내가 작정한 이 잠 자는 장소와 잠 자는 이 시간에 대해서 방해물이 이렇게 많구나’ 그 방해물을 발견할 때에 그 사람의 인격은 깨고 인간의 지능은 새로워지고 그 사람이 비로소, 그러면 경험 있는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은 철학이 있는 사람이요, 모든 것에 다 외식자가 아니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이라 심사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해 나가면 알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말해야 해당치 안하니까 잘 이해 못 할 터이니 그만 자는 시간을 한번 작정해 보고 자는 장소를 작정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면 거게서 모든 지혜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이미 행해 온 것을 정확히 계산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 일곱 가지에 대한 구별을 해지지, 일곱 가지에 대한 거룩. 이 구별을 이미 자기가 행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계산을 해야 되지 이 계산이 틀려 놓으면 자기는 여게 대한 구별은 안 됩니다.

구별이 첫째 여기 대해서 이미 내가 행하고 있는 것, 과거 현재 이것을 정확히 계산해야 됩니다. 정확히 계산을 하고, 또 그 다음에는 과거에 대해서는 그 결말을 잘 계산하고, 또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그 결과를 예산해야 됩니다.

‘이러면 어떻게 이 계산이 되겠다’ 그러면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이미 한 것과 지나간 일은 정확히 결산을 해야 되고, 계산. 결산을 해야 되고 또 현재로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거게 대해서 예산적인 계산을 해 봐야 됩니다.

이러면 앞으로 어떤 그 결산이 나오겠느냐 하는 것을 예산적으로 계산을 해 봐야 됩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또 거게 하나 더 있는 것 셋째로는 이러면 여게 대해서 내가 다시 이런 것들을 다 종합해 가지고서 자기의 이 일곱 가지에 대한 조정이 생겨집니다. 조정이 생겨져서 거게 대해서 새로운 계획이 거게서 생겨질 것입니다, 새로운 계획이.

나는 여게 대해서는 과거는 이리이리 했고 또 현재 이리이리 했는데 그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계산하니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모든 예산이 바로 잡혀집니다.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을 자기가 하나의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자기의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게다가 붙여서 하나님 말씀에게 그를 붙여 가지고서 그렇게 한번 심사 숙고하고, 또 모든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그 통계, 통계 이것을 가지고서 한번 다시 참고적으로 삼고 이렇게 하면 여게 대한 정확한 구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 일곱 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을 가지게 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모든 일에 복잡하지 아니하고, 주저하지 아니하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자기 걸어갈 길을 아는 길 찾아가듯이 똑똑히 알고 가기 때문에 방황 주저하는 일이 없고 또 이렇게 나아가려고 할 때에 그때에 이제 비로소 경건이 자기에게 큰 능력이 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이런 계산을 대고 가는 사람, 이런 계산을 대고 간다 할지라도 경건이 없고 경건 대신에 돈이라든지 혹은 권세라든지 무슨 공명이라든지 이런 것이 그 구별한 구별의 목적이 될 때에는 거기에 인간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다 그런 것들에게 삼키워지고 맙니다. 왜? 그것들이 세상이요 이것도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세상은 자기보다 강한, 객관은 주관보다 강하기 때문에 객관인 그 세상에게 삼켜지고 맙니다.

그러나 경건, 하나님을 위함이 되는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거게는 간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어떤 것도 거게 대해서 방해하지를 못하는고로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룩 생활을 할 때에 경건이 큰 원동력이 된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참 위하는 경건을 하려고 할 때에는 거룩이 없이는 경건을 할 수가 없다 하는 이 둘이 곧 말은 딴 말이지마는 이로 인해서 저가 있고 저로 인해서 이가 있고 둘이 하나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는 데 대해서, 자기가 공간이라고 말하면 뭐 이곳 저곳을 말합니다. ‘오늘은 산에 가 자겠다, 오늘은 예배당에 자겠다, 오늘은 우리 안방에 자겠다, 오늘은 또 어데 가서 여관에 자겠다.’ 자기는 평소에 요것을 정해 놓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나는 자기는 몇몇 곳에 가서 자겠다. 내가 자는 곳은 어데 어데 몇 군데를 내 숙소로 정하겠다. 또 나는 시간은 언제로부터 언제까지로 시간을 정하겠다.’ 평소에 이렇게 정할 때는 그래도 자기에게 이성이 들어서 이것을 다 정하기 때문에, 판정하기 때문에 거개가 다 올바른 판정이 되어집니다. 평소에 이것을 딱 정해 놓으면, 악마의 마귀가 우리를 다급하게 그 비상시를 틈탑니다. 또 과도기를 틈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현실을 주는데 비상의 현실도 주시고, 과도기의 현실도 주시고, 복잡한 현실도 주시고 이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 주시는 것은 그 현실이 이 거룩보다 귀한 게 아니고 그 현실에서 내나 거룩 만들려고 주는 것인데 그런 현실이 오면 그만 자기는 미리부터 이런 것을 아주 확정지워 놓고 거게 대해서 기도하고 또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참 이 중요성, 그 탈선되면 절단난다는 것을 자기가 느껴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럴 때에 자기도 모르게 악령이 유혹하는 모든 미혹에 자기는 쏠려서, 자기가 그걸 정해 놨으면 그런 장소를 정하지 안할 터인데 이제 평소에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에 되는 대로 이렇게 가서 자고 또 시간도 되는 대로 살고, 이런 데에서 그것이 곧 사망 행위입니다. 그것이 생명 없는 행위요.

미리부터 이것을 판단할 때에는 그래도 자기가 성경을 알고 또 이성이 판단하고 또 자기 양심이 판단하고 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소욕이 다 판단을 하고 이러지마는 이걸 미리부터 이걸 정해 놓지 안하면 그 다급한 때에 악령의 온갖 유혹이 와 가지고서 침투할 때 자기는 꼼짝 못 하고 거게 피동돼 가지고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장소 잘못 정해 가지고서 일생을 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남녀 이성 문제 그런 것만이 아니고, 그런 것 문제가 아니고 인인 관계에 온갖 면에서 그렇게 됩니다.

그 사람은 하루 밤 어떤 사람하고 잘못 잔, 어떤, 남자와 남자끼리도 잘못 잔 그게 일생을 망치는 원인이 되는 그런 일 많습니다. 여자도 그런 일도 많습니다. 남녀 이성면에는 더욱 그런 일 많습니다.

언제 신문에 나기를 뭐 여기 제주도에, 부산 사람이던가 서울 사람이라던가 그 모두 부자들 또 모든 고관대작들 마누라들이 저 제주도 관광 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가정이 뭐 아홉 가정이 파괴를 당해서 아홉 가정은 이혼을 당하고 뭐 파괴를 당하고 지금 몇은 시비 중에 있고 한다 하는데 그런 것 다 하나 예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것 다 잠 자는 그것을 잘못 계획해서 그런 것입니다.

만일 자기는 어찌 해서 하다가 그걸 계획해 놨는데 의외에 ‘아무래도 우리가 관광을 가야 되는데 같이 일행이 가자’ 이럴 때에 그 사람이 자기가 평소에 양심을 써서, 이성을 써서, 자기는 또 성경을 또 인용을 해서 자기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을 모두 다 거게 참가시켜 가지고 비판 평가해서 결정된 그 정한 숙소에 장소에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 자기는 쭉 따라갈 수 없고 ‘이 문제가 문제다’ 하고서 그 문제를 생각해서 ‘내가 이것 하나님 앞에서 이것 작정해 놓은 이것을 아무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데에 변개하는 것은 이것이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함이 된다.’ 이런 걸로 가지고서 그런 것을 얼마든지 극복해 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평소에 요걸 따져 놓은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거 뭐 천 가지 만 가지도 넘는데 그것을 종별할 수는 없고 어쨌든지 자는 것에 대한 그 장소와 시간 요것을 그 둘만 가지고 자기가 비판해서 잠을 잘 자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한번 미리 계획을 세워 놓고 세운 그 계획대로 그 일을 성취해 보려고 노력을 해서 성취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경건이라, 이 지금 계획한 것이 이것이 거룩이라, 이제 성취 달성하는 것이 경건이라 요렇게 알고 한번 해 보면 신앙 생활 하는 것이 맛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도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래 내가 그 얘기를 듣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본인도 아마 알아듣기는 알아들을 것인데 말하기를 ‘오, 그래 참 좋은 신앙 경험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걸 당신이 원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목석같이 생각지 안하고, 당신을 목석같이 생각지 안하고 당신에게 지정의의 감각이 있고, 또 비판이 있고, 또 감정이 있고, 서로 교제하는 맛이 있고, 그분을 무시함을 그분이 알고, 그분을 존대함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는 걸 알고, 하나님을 살아 있는 어떤 이 세상의 인격 가진 인간같이 생각하여, 그분은 인간을 무한이 초월한 분인데 ‘그는 인격을 가지신 분이라’ 이것을 깨닫고 인격적으로 그분을 대우해서 사귀는 것을 그분이 좋아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 믿어도 예수 믿는 맛을 모릅니다.

그분을 아주 인격 대 인격 교제로 상대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면 그분같이 세밀한 분이 없고 그분같이 감정이 빠른 분이 없습니다. 그분같이 다정다감한 분이 없습니다. 다정하고 다감하고 이렇게 그분을 이렇게 대우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시고 이렇게 대우한 자마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뭐 그분과 사귀는 것이 좋지 다른, 그분과 사귀어서 조금 이래 본 사람들은 사람은 그저 살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이지 사람하고 말하는 것을 아무리 다정다감한 사람을 데리고 얘기를 해도 그것은 똑 토막나무 같아서, 말하자면 여기 피아노 저런 것은 옥타아브를 뚜드리면 땡그랑 땡땡 땡땡 이래 쌓고 뭐 여러가지 소리가 나는데 이것 커단한 토막나무 하나 갖다 놓고 이렇게 손으로 암만 때려 봤자 그뭐 털퍽털퍽하지 아무 맛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아무리 세밀하고 다정다감해도 사귀어 봐야 그렇게 다정다감한 분이 없습니다.

그렇게 세밀히 알아주는 분도 없고, 그렇게 또 세밀히 깊이 섭섭함을 느끼는 분도 없고, 또 내 하는 일에 세밀한 감정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를 해서 그저 조금 뭣하면 상이 달라지고 조금 뭣하면 상이 좋아지고, 조금만 하면 삐꾸고 조금만 하면 홱 돌아서고, 조금만 하면 좋아하고 뭐 그분을 사귀어 보면 그분은 참으로, 아가서에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 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창틈으로 나를 지금 내다보고 있다” 창 안에서 바늘 구멍으로 똑 뚫어놓고 요 안에 보면 뭐, 밖에서야 보입니까? 안 보이지만 안에서는 보면 다 보인다 말이오. 다 보이요. 저 행동이 어떤가 다 보면 다 보이요.

이 모양으로 주님이 지금, 자기 혼자 하면서도 ‘저 창틈으로 지금 나를 엿보고 계신다’ 하는, 엿보고 계시는데 아무 감각이 없으면 하지마는 ‘내가 요렇게 민첩하게 하는 것이야 그분이 알고 섭섭해 하겠나?’ 했는데 그분이 알고 섭섭하셔서 참 뭐 말할 수 없이 섭섭해 하시고 있다 말이오. 또 ‘요렇게 내가 숨어서 한 것이야 그분이 알 리가 있나?’ 아니, 알고 좋아서 벌써 예물과 선물을 사서 벌써 준비한다 그 말이오.

그분을 사귀어 보고 난 다음에는 그분보다 참 사귈 만한 분이 없고 또 그분 앞에서 뭐 모든 걸 다 털어놓고 그저 믿고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 해도 그만 이 자는 것, 자는 데 대해서 장소, 또 시간 그걸 정해 놓고 그렇게 실행을 하려고 할 때에 우리가 세상에 방해물이 어떤 게 있다는 것도 알고, 나를 사랑하는 자도 알고 나를 미워하는 자도 알고, 내가 실패하는 것도 알고, 또 하나님이 축복해 줄 것도 알고 하나님이 징계할 것도 알고, 거게서 뭐 그만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그 수십 가지라도 깨달을 수 있고 수백 가지라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은 실행을 해 봐야 되지 지금 앉아서 뭐 논리로 가지고 암만 해 봐야 그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요걸 한번 자는 시간 요걸 한번 딱 정해 보십시오. 저는 여덟시로 정했는데 여덟시 정한 여덟시에 그만 등불 끄고 나면, 등불 끄고 나면 다른 사람이 뭐 불끄고 자는데 뭐 어찌 오겠습니까? 전화는 딱 꺼 버려 놓고 이래 있으면, 그동안에는 뭐 자기 신앙 정도대로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주님 앞에 의논도 하고, 또 문의도 하고, 또 주님에게 이제 간구도 하고, 또 감사도 하고 그렇게 이 주님하고 속삭거리다가 이제 잠들면 잠드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홉시로 정한 사람도 있겠고 열시로 정한 사람도 있는데 자기 형편에 따라서 아무래도 그저 ‘요래 됐으면 좋겠다’ 하는 걸 정하지 말고 ‘요래는 안 자면 안 된다’ 최소한으로 정해 가지고서 암만 늦게 잔다 해도 `요 시간까지는 자야 되지 요 시간까지 안 자면 안 된다’ 그걸 정해 놓으십시오.

정해서, 그걸 정할 때에는 이미 자기의 과거 현재를 정확하게 계산을 하고, 그래 살았더니마는 그 결과가 어떤가 하는 그 결산을 정확하게 하고, 그러면 그 둘만 하면 그 다음에는 ‘내가 앞으로는 어떻게 계획을 가지고 출발해야 되겠다’ 하는 출발이 거게 나섭니다. 어떻게 지금 계획을 짜야 되겠다 하는 것이 나선다 그거요.

그러니까 각각 다르니 그것을 한번 생각해서 작정을 하시고, 그렇게 작정한 그것이 거룩이요 그렇게 해 가지고서 이루는 데에 딴걸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지마는 딴걸 생각하고 해 가지고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못 합니다.

환경에서 몰아쳐서 못 하게도 할 뿐 아니라 나중에 가 얼마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그 가치감을 가지지 못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참 가치 있다’ 하는 가치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할 때에는 바꾸게 돼 버려. 바꾸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경건이라. 그것이 주님을 위함이라, 그것이 경건이라. 우리 준비 중에 거룩과 경건인데 그게 경건이라 하는 것을 잡고 해 보면 ‘요게 경건이라.

요게 주님을 위함이라.’ 그게 주님을 위함이요 그것 버릴 때에 주님이 섭섭해 하시고 물러가시는 것과 그렇게 할 때 주님이 기뻐하셔서 자기에게 환영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것을 그걸 자꾸 해서 그게 경건이 된다는 것을 안 사람은 경건을 인하여 그것을 이행을 하려고 할 때에 아무리 땅위에 중요한 가치 있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경건에다 비하니까 가치가 경건만 못해.

이러니까 모든 가치보다 능가되니까 이제 그 거룩을 잘 이행할 수 있습니다.

또 먹는 것도, 먹는 것 이것도 오전에 말했는데 먹는 것 이것도 종류, ‘나는 어떤 종류를 먹어야 되며 이제 나는 어떤 시간을 이용해야 되겠느냐?’ 자기 정도에서 아주 자기로서는 있는 지능을 다 가져 가지고 과거를 살펴보고 현재를 살펴보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그 결과에 계산을 보고, 이미 과거 현재 이것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것들의 결산이 어찌 됐나 하는 그 결산을 계산하면 먹는 데에도 ‘새로 나는 이렇게 먹고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 계획이 확실히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계획이 틀리면 그만 실패요 그 계획이 맞으면 맞습니다.

제가 다른 데서 예수 믿다 온 사람들을 이래 더러 접촉해 보면, 이 서부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안하고 못된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서부교회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도 못된 교인들이 많아. 그거 나는 그 교인을 못된 교인이라 해, 못된 교인. 염소 같은 교인, 염소. 염생이 새끼같은 염소 같은 교인이라. 염소는 자꾸 못되게 날뛰는 게 염소라.

그래서 아가서에 보면 “네가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먹이면 주님이 기뻐하신다” 했어. 그 염소 새끼라 밉상이지마는 그걸 그래도 거머쥐고 잘 먹이면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님 보고 염소 새끼 기르는 사람은 기르지마는 염소 새끼 고것 행세 보고는 기를 사람 없습니다. 다 치워버리고 이렇지.

염소 새끼 있는 것은 시키는 대로 안 해 가지고 어짜든지 제 분수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서 일곱 가지 도적질 다 했지, 일곱 가지 도적질 다 했어.

소유권 도적질도, 제것이다, 남의 것이다, 뭐 사람의 것이다, 뭐이다. 다 주님의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소유권 도적질 두 가지 다 했지, 또 거게서 머리 떼서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것도 다 도적질 했지, 또 감사함으로 그걸 사용해야 되는데 감사 도적질 다 했지, 또 십일조 도적질 다 했지, 또 씨는 심으라 했는데 씨까지 다 볶아먹고, 씨는, 때가 있어서 심을 때 심어야 되지 심을 때 심지 안하고 그 씨앗을 똘똘 뭉쳐서 천장에 달아 놓으면 묵은 씨가 돼서 안 나든지 또 묵은 씨는 심으면 못 씁니다. 안 돼요. 무우도 묵은 씨 심으면 전부 장아리 다 올라오고 안 돼요. 이거 모양으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안하고 심을 것은 심어야 되는데 심을 걸 제가 다 먹어버리는 자, 또 심을 것을 심지 안하고 꽁꽁 묶어서 당글아 매 놓고 ‘우리 아들 a이도 안 낳은 게 아직, 아이도 낳지도 안했는데 a들 낳으면 대학 공부 하려면 뭐 하겠다.’ 그런 준비 하고 이러니까 그때 그때 이 영원한 내세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의롭게 쓸 건 다 쓰지 안하고 똘똘 뭉쳐 놓는다 그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 씨를 뭉쳐 놓지, 도적질.

또 양식은 저 먹을 양식인데 저 먹을 양식도 어떤 것은 애껴서 영양실조가 돼도 저 먹지 않는 그것도 틀렸다 말이오. 또 너무 많이 먹는 것도 탈이고.

또 양식 준다 하는 것은 그건 저 먹을 양식인데 저 먹을 양식을 먹지 안하고 저 다른 사람 또 불쌍한 사람 도와 구제해 준다고 이래 가지고서 다른 사람 몇 가지 구제하고 난 다음에 저는 영양실조가 돼 가지고서 병이 들어서 나중에 가서 복음을 막고 ‘예수 믿는 게 왜 마르기는 저렇게 말랐노? 병이 들었노?’ 이것도 또 도적질 하는 거라 말이오. 요런 것 잘 하기 어려워요.

그런 것 다 바로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현재 부모 처자가 있으니’ ‘나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이니' 자기 혼자뿐이면 양식이 좀 적을 거라 그 말이오. 또 있으면 또 양식이 좀 식구가 많으면 많을 거라 말이오. 그런 것을, 나는 또 이 국가의 의무, 사회 의무, 교회 의무 또 이런 걸 다 계산을 잘해 가지고서, ‘그러면 나는 지금 먹는 것은 나는 십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백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나는 천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그 모든 종류 계산이 나온다 그 말이오. 그게 잘 먹는 거라.

그러고, 또 시간도 조절해야 되고, 시간도 조절하고. 이것 연구하는 것이 ‘먹는 것 그것 추접하다’ 하지만 아니오. 이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시험을 받을 때에 제일 뭣이냐 하면 먹는 것 가지고 제일 먼저 시험했어.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는 주인 하나는 하나님이고 주인 하나는 재물이라 말이오. 먹는 재물이라. 그것 그렇게 중요해요.

이래서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요 또 신앙 실패는 경제 실패 된다’ 그 성패가 한가지라. 이러기 때문에 경제 성공을 바로 했다면 신앙 성공도 바로 됐어요.

이러니까 그것을 잘 연구해서, 사람이 그뭐 천태만상의 그 모든 형편과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생활 정도도 형편도 종류도 각각 달라요. 그러니까, 꼭 밥을 잘 먹는 것은 하나님이 네가 그것 먹는 게 마땅하다, 하나님이 옳다 인정한 그 밥 먹는 게 잘 먹는 것이지 고기밥 먹는 게 잘 먹는 게 아니라. 꼭 자기 먹을 것 먹는 그게 잘 먹는 거라 말이오.

요것을 연구해서 ‘나는 요것 먹는다’ 그걸 잘 먹으면 거게 대해서 그만 그 사람이 이 세상 생활에 그저 한 반은, 아마 반 정도는 해방될 겁니다. 자기 전생활에 백분지 오십, 천분지 오백, 만분지 오천, 어찌됐든간에 반은 안정이 됩니다. 요것을 바로 딱 정해 가지고서 했다고 하면 그게 자기 전생활에 반은 안정이 된다 그 말이오. 이만치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계산하기가 복잡해요. 그 계산하는 것은 이미 행하고 있는 기행의 계산을 정확하게 해. 또 그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것을 또 확실히 정확하게 해.

그러면 그 두 가지 계산을 정확하게 하면 ‘앞으로 어떻게 출발해야 되겠다’ 하는 출발이라는 그 계획이 정확히 나옵니다.

이것 뭐, ‘오늘은 교회 가니까 뭐 자는 것 밥 먹는 것 그런 것 말하는 것 보니까, 그 무슨 엘리야를 말하고 뭐 다니엘 말하고 이래야 설교 같지 밥 먹는 것 자는 것 그거 말한다. 이러니까 재미 없다.’ 하는 그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 믿는 사람 아니고 또 세상에도 찌끄러기로 살 사람이지 머리로 살 사람 아니라.

요것을 잘 알면 그 먹는 것만 바로 먹으면,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돈만 바로 쓰면 그만 다 됐어. 잠만 잘 자면 자기 처소만 잘해서, 처소 처세. 처소 처세만 잘하면 됐어. 그만하면 다 성공이오.

이러니까, 인제 아직까지 초보니까 그래 한번, 이 먹는 것은 일곱 가지 도적질 회개하고 자기 분수, 그만 ‘자기 분수’ 하면 일곱 가지 도적질까지 다 들어갔어요. 다 들어갔으니까 자기 분수 그것을 지나치지도 말고 미달하지도 말고 그 정확한 계산을 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시간 따라서 그렇게만 하면 그만 다 됩니다. 요것 아주 재미 있는 생활이오. 한번 그래 봐요.

그 다음에 셋째는, 이제는 육의 양식을 먹었으니까, 육의 잠을 잤으니까 영의 면을 해야 될 터이니까 이제는 성경 먹는 것입니다. 영감과 성경 먹는 거라.

성경 먹는 데에 이것도 먹는 것이 각각 달라요. 그저, ‘나는 하루 한 장씩만 정했으니까 한 장씩 먹겠다.’ 한 장씩 정해서 그것 먹는 사람도 있고, 다섯 장 정한 사람도 있고, 열 장 정한 사람도 있고, 요 사람은 또 암만 줄줄 다 읽어도 그것은 양식이 안 돼. 꼭 성경은 읽고 기도하고 모든 것 생각해 가지고서 거게서 참된 진리를 깨달아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그걸 발견하면 그만 살이 퉁퉁 찌고 심령이 그만 건강해지고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평안해지고 하지만 그걸 찾기 전에는 성경을 암만 읽어 봤자, 읽어도 안 되고 외워도 안 돼요. 또 그런 사람은 양식 먹는 게 각각 달라. 젖 먹는 사람, 뭐 아이들 키우면 다 그래 안 있습니까? ‘나는 성경을 어떻게 먹으며 어떤 때에 먹겠느냐?’ 자기로서 갈 수 있는 길을 걸어요. 남의 길을 부러워하지 말고. 남의 길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천태만상으로 이 사람들을 만들었는데 그 만든 것 뭐 백 명 두면 꼭 같습니까? 백 명 봐도 다 각각 달라요.

만일 저게 역에 가 가지고서 만 명이 나옵니다. 만 명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맞으러 갔습니다. 만 명이 나오니까 만 명 가운데 자기 아버지가 섞여 나오는데 우리 아버지인가? ‘아버지’ 또 저게 보고 `아버지' 이럴 수 있겠습니까? 오니까 `저것도 아니다 아니다’ 그 하나 나오는 저거 아버지를 딱 보고서 ‘아버지' 이래 한다 말이오.

그것 그렇게 만 명 가운데도 같은 모양이 아니고 꼭 각각 달리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천국 인격도 그렇습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각각 다 거게 대한 모든 형편과 사정과 또 요소와 순서와 또 기를 것과 갖출 것 구비할 것 그런 게 각각 달라요.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의 입장을 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것이는 뭐 성경을 얼마든지 보려면 볼 수 있고 참 재독을 얼마든지 들으려면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남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그것은 마귀의 유혹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말고, ‘나로서는 이 영감의 도리를 먹는 데에 어떻게 먹어야 되느냐?’ 자기로서 먹을 수 있는 그것을 바로 찾았다면 그것만 하면 그만 그것도 큰 보배라. 그것이 거룩이라 그 말이오. 그게 거룩이라.

그걸 그래 가지고 잘 구별해 가지고 찾아야 그게 주님 구름타고 오실 때 맞이할 수 있고 세상 떠날 때에 행복스러운 사람 돼지지 뭐 거룩이라 하니까 뭐 구별한다고 입술만 하지 실상을 모른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이런 걸 말하는데.

다른 사람 입장과 자기 입장을 다르다고 해서 남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너는 너대로, 하나님이 요것 만들고 조것 만들고, 이 건축이 되어지는데 등도 있고, 문도 있고, 뭐 창도 있고, 또 집게도 있고, 오만 것 다 있으니까 그게 다 제대로 돼야 이 집이 건축이 되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건축 가운데 나는 이런 분자라 저런 분자라, 이런 소속이라 저런 소속이라, 이런 지체라 저런 지체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생각지를 말고 자기는 자기대로에 만들도록 하나님이 그 현실은 주신 것이니까 현실을 만족하면서 ‘나는 성경 양식은 어떻게 먹어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각각 다 거게서 연구해 보면 맛이 있어요.

연구해 가지고서 그걸 바로 딱 맞췄다고 하면 반드시 바로 맞추고 난 다음에는 주님이 응답할 겁니다. 바로 맞추고 나면 ‘야, 네가 잘 찾았다. 잘 찾았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돼.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 주님이 섭섭해 하시는 것, 또 주님이 그만 삐꾸고 돌아가는 것.

주님같이 잘 삐꾸는 이가 없어요. 이것 좀 여러분들이 알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마는 잘못 하면 망언이라 하지만 여러분들 알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치 잘 삐꾸는 이가 없어. 뭐 조금만 거석하면 삐꾸고 돌아가면, 돌아오기는 힘드는데 삐꾸고 돌아가 놓으면 돌릴려고 애를 쓰면 참 힘이 듭니다. 힘이 들어.

뭐 어떨 때는 밥도 좀 굶어야 되고 뭐 산에 가 봤자 그게 됩니까? 안 돼요.

그래서, 뭣 때문에 주님이 삐꾸고 돌아가셨다는 그걸 찾아 가지고서 해야지 그것 찾지 안하고 주여 주여 암만 해 봤자 껍데기지 그것은 소용 없습니다. 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오.

그걸 찾으면 주님이 싹 돌아오시면서 우리 심령에 기쁨을 주시요. 그러면 그때 주님이 오시면 환하게 기쁘고 즐겁고 그만 모든 게 환해지거든. 광명해지거든요.

담대해지고 평안해지고.

그래서,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거룩을 잘 사용합시다. 사용해서 거룩의 결과를 맺도록.

그 다음에 넷째로는 기도, 기도에 대해서도 각각 달라요. 어떤 사람은 처음 믿는 사람은 ‘너 밥 먹을 때 하루 세 번 기도해라’ 또 어떤 사람은 `잘 때 깰 때 두 번 그러면 다섯 번 기도해라’ 자꾸 이래 차차 차차 가르쳐 가지고서 이제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산에 가서 기도, 또 들에 가서 기도, 또 예배당에 와서 기도, 몇 번 기도, 이렇지마는 또 어떤 사람은 그 기도 가지고 안 돼요.

안 되니까,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기도, 나는 이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구별해야 되느냐? 이 기도는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느냐? ‘다른 사람 산기도 가니까 산기도 따라가야 되겠다. 다른 사람 철야기도 하니까 나도 철야 기도 해야 되겠다.’ 남 따라가지 말고 자기로서의 기도해야 되는 그 기도를 잘 구별해 가지고서 기도해야 될 기도의 종목도, 기도의 제목도, 자기가 잘 구별해서 가려야 될 것이고 기도할 장소도 기도할 시간도, 길게 해도 안 되고 짧게 해도 안 돼요.

어떤 사람은 또 공중 기도 하면 그만 기도하면 처음부터 저 창세기서부터 쭈욱 내리 훑어 가지고서 요한계시록까지 쭈욱 그만 강령을 외워서 쭉 늘어댑니다.

이러니까, ‘하마나 가다가 기도하는 것 이제 중지 됐는가 다 됐는가?’ 한참 자다보니까 또 기도하고, ‘아이고 아직 멀었다’ 또 자다 보니까 또 기도하고.

그것은 거룩한 기도가 아닙니다. 거룩한 기도가 아니야.

그것 거룩한 기도 하나님이 정해 주기 때문에 정확해요. 짧을 때는 짧고 길 때는 길고, 또 요런 종류 할 때는 요런 종류 또 저런 제목으로 할 때는 저런 제목으로 해서 어쨌든지 기도에 대해서 내가 거룩을 가져야 되겠다. 기도에 대해서 정확한 그 구별하여, 거룩이라 하는 건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하나만 되는 것 참에게 딱 명중해야 그것이 거룩이기 때문에 이 기도에 대한 이 거룩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 이래서 기도에 대한 거룩을 가지고.

가지는데, 그걸 얼마든지 이상 하게 하면 좋다, 좋게 하면 좋다, 많이 하면 좋다.

잘하면 좋다. 그것은 제 정도 이상의 것을 계획하면 그것은 허욕입니다. 기도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또 성경 보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또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연보하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이 허욕과 허영은 다 그것이 바로 맞히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죄라 이럽니다.

죄는 뭣이 죄이냐 하면 바로, 죄라 하는 근원이 나오기를 활 쏘는 사람들이 저게다 표를 해 놓고 동그라미를 요래 놓고서 그 안에 점을 딱 찍어 놓고서 여기서 활을 쏘는데 그 돌뱅이 안에 들어갔으면 낙제는 아니고 돌뱅이 안에 들어가도 한 가운데 점 찍어 놓은 데 거게 콕 꽂히지 안하면 그것은 일등이 아니고 거게 콕 꽂혀야 되는데 이 의는 거게 콕 꽂혔다 그 말이오. 죄는 거게 삐뚤어진 것 탈선된 것, 그 돌뱅이를 벗어난 걸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까, 기도에 대해서도 각각 자기 형편, 사정, 자기 분수, 자기 건강, 자기 시간, 자기 또 입장, 처지, 모든 자기 사회, 이런 것이 있으니까 그 전체에 따져 가지고서 ‘나는 내 기도는 시간은 요래 잡아야 되겠고, 장소는 이래 잡아야 되겠고, 나는 또 기도의 제목은 요래 잡아야 되겠고’ 요런 것을 다 각각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옳은 데에 딱 명중한 그것이 이제 거룩이라 그 말이오. 그것이 거룩이라.

그리고 또 다섯째로, 자기 일하는 것 ‘나는 무슨 일을 할까? 나는 무슨 일을 할까?’ 그러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러면 ‘무슨 일 할까?' 구별을 세 가지로 하라 했지요. 하나는 ‘내가 과거에는 이런 일 이런 일을 했다. 또 현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되나?’ 이러는 데는 물론 사람이 과거 현재가 다 짜여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짜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데, 과거의 일은 벌써 지내갔기 때문에 그건 결산이 나왔다 말이오. 추수가 됐다 말이오. ‘과거에 이런 일을 했는데 그 결과에 결산이 수입이 있었나 손해가 갔나?’ 이제 과거 것을 다 따져보면 계산이 결산이 나왔다 그 말이오.

내가 요래 가지고서는 요 일 하다가는 내가 물질에 손해봤다, 요 일 하다가는 인격에 손해봤다, 요 일 해 가지고서는 권위에 손해봤다, 신임에 손해 봤다, 요 일 하다가는 신앙에 손해봤다, 가정에 손해봤다, 요래 가지고는 어떤 사람을 사귀었다.

그만 과거 그거, 자기 과거 한 일, 사람과의 한 일 또 모든 사물과의 관계된 일 모든 과거에 일을 낱낱이 조사를 해야 그것 구별할 것 아닙니까? 조사 조사 하는 이게 구별 구별, 조사하고 조사해 가지고서 ‘그런 일 하니까 요 일에는 결산이 손해다. 요 일에는 어떤 면은 결산에 유익이 됐는데 요게 거게 다른 또 손해가는 그 길이 하나 있었다.’ 그러면, 과거를 따져보고, ‘현재는 내가 요와같이 지금 살고 있으니까 요렇게 살면 요 앞으로 나올 계산은 어떻게 나오느냐? 요래 살면 요 앞으로 나올 그 계산 그 결산은 앞으로 나올 결산은 뭐이냐? 이미 나온 결산은 이런데, 과거 생활에서 나온 결산은 이런데 앞으로 요래 살면, 요렇게 일을 하고 있으면 나올 그 결산은 어떤 것이냐?’ 그것을 자꾸 따져서 그래 보면 거게서 ‘이것은 안 해야 되겠다’ 그것이 거룩에서 요것은 못쓸 거다 버려야 된다는 그거라 말이오.

거룩을 하는 데는 몇 가지로 해야 된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거룩을 하는 데는 몇 가지로. 두 가지면 돼요, 두 가지. 우둥지도 끊어내 버리고 꼬랭이도 끊어내 버리고 끊어내 버리면 돼. 한 토막만 하면 돼, 한 토막만.

이제 너무 위에 초월해 가지고서, 못 올라갈 나무에는 쳐다도 보지 말라 하는 말 있는데 제게 너무 과대 평가해 가지고서 과장해서 과대 평가한 그런 계산하고 나면 실패가 돼요. 꼭 자기 실력에 딱 맞도록 해야 되는데 자기 실력보다 조금 가벼운 것을 하면 별로이 실패가 없어요.

이래서, 일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앞으로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따져보면 안 해야 되겠다 아는데 그만 현실을 닥치면 모릅니다. 현실을 닥치면.

사람들이 앉아서 비판할 때는 거의 정확한 모든 계산을 하게 되고, 자기 일이 아니고 남의 일로 볼 때에는 뭐 계산은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계산한 것만치 정확해요. 남의 일을 볼 때는 계산이 정확한데 그만 제 일로 돼지면 그 계산이 흐려져요. 왜 그런가? 인간은 더러워서 저를 사랑하는 악이 있거든. 저 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것이면 그것 틀렸다 이러는데 제게 와 붙여 놓으면 ‘그렇지마는 혹 그래 동정할 수가 있지 않겠나, 혹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자꾸 이래 틀려진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자기가 정확히 비판을 해 가지고서, 그러면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이 일은 해야 되겠다.

해야 되는데도, ‘나는 이 일을 하기는 해야 되지마는 힘써 하면 다섯 개는 하겠다. 내가 암만 수월하게 해도 하나는 하겠다. 하나는, 하나도 안 하면 죄가 되겠다. 놀면서도 하나는 해야 되겠다.’ 그렇게 아주 수월하게 할 그걸 계산 대라 말이오. 그래 가지고 계획을 세워요. 어려운 걸 계산 대지 말고.

그러기 때문에 계산할 때는 위로 하지 말고 아래로 말단으로 그렇게 계산 대라 그렇게 말했어. 그러면 자기 할 일이 정확히 나옵니다. 그것이 뭣이냐? 일에 대한 거룩이라 그 말이요, 일에 대한 거룩.

그러면 인제 다 그러면 앉아서 ‘내가 이 일은 안 해야 될 일이다 해야 될 일이다.’ 이거 뭐 심각하게 조사해 가지고 그러면 안 해야 될 일 해야 될 일 그걸 또 기도한다 말이오. ‘주님이여 이것 안 해야 될 일인데 내가 자꾸 이것, 이것 앞으로 닥치면 어찌 됩니까?’ 이러면 안 해야 될 일이다 하고서 기도를 하고서 명상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그 일 할라 하면 누가 찾아오고 누가 찾아오고 누가 찾아오고 무슨 건이 있고 무슨 건이 있고’ 자꾸 주님이 대 주신다 말이오. 대 주시면 ‘주님 이거 어째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이래 치우고 저래 막고 저래 막고 다 막을 것을 주님이 또 가르쳐 주신다 말이오.

그래서 단단히 따져 놓고도 턱 닥쳐 놓으면 그만 깜짝 잊어버렸어. 깜짝 잊어버리고 그만 푹 빠져버렸다 말이오. 그 일을 또 안 할 일을 또 해 놨다 말이오. 해 놓으면 또 원통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주여, 어짜든지 이 일을 고치게 해 주옵소서.’ 이래 또 기도하고 이라면 다시 그런 때를 또 줘요.

또 주면 또, 이제 처음에는 실패가 백프로 실패지마는 두번째 오면 한 오십프로 성공 오십프로 실패라. 세번째 오면 그만 백프로 성공할 수가 있어. 그래서 우리에게 같은 현실을 자꾸 거듭거듭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 연성해 가지고 이래 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일에 대해서 우리가 거룩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는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일 안 하고 나는, 다른 일을, 다른 일을 안 해야 되는데 합니다, 다른 일은. 이것 교회 행정이니 하는 것도 그것 내가 안 하고 그만 설교 말씀만 가르쳐 주고 저거끼리 뭐 싸우든지 어짜든지 하든지 삐갱이 싸우듯이 싸우면 나중에 싸우다가 나중에 얼마 싸우고 나면 안 싸웁니다.

왜 안 싸웁니까? 화목이 돼 안 싸웁니까? 화목이 돼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좀 싸워 놓으면 이 엄지 손가락 다음 손가락 또 이게 다 나와. 크고 작은 게 다 나왔기 때문에 그만 거기는 다시 싸움이 안 나요. 좀 큰 것 작은 것 그만 이게 다 그만 다 나타났기 때문에 싸움이 안 나와요.

이것 모양으로 ‘이래 두고 그만 그것은 내비두고 나 할 일은 꼭 주님 부를 때까지 내가 열한 가지 요걸 내가 해야 되겠는데.’ 그 열한 가지 일은 일곱 새벽기도회 때에 설교를 하든지 내가 나와서 재독을 하더라도 일곱새벽 기도 나와서 강단에 서는 것과 또 일주간 동안에 주일 오전 오후, 삼일, 오일, 네 번 서는 것. 일곱하고 넷하고 열하나라.

‘열한 차례 이 예배 인도하는 것이 이것 나 할 일이라’ 이것은 확실히 결정이 됐는데 이 일을 실행을 못 해. 실행 못 하는 것은 어데서 실행 못 해지느냐 하면 이 안 할 일 하는 데서 그만 틀려지고, 잠을 잘 안 자는 데서 틀려지고, 또 밥을 잘 못 먹어서 틀려지고, 그만 또 영적 밥을 못 먹어서 틀려지고, 기도하고 성경 봐야 될 터인데 그 시간에 뭣이 와서 성경 못 보고 기도 못 하면 다 헛일이라.

이러니까 뭐 그런 데서 다 원인이 돼져요.

이러니까, 나 할 일은 열한 가지로 이래 작정해. 열한 가지만 하면 실패가 없는데 열한 가지 이걸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일호가 제일 중요하다, 꼭 여덟시만 자면 내가 열한 가지는 틀림없이 계속하는데 이 계속 못 하는 건 전부 일호에서 제일 사고가 많이 났다. 제가 그걸 느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혹 여러분들 자기 생활에 같은 형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섯째는 사람과 일과 물건을 접촉하는 여게 대해서 이제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사람, 일, 물건 이 세 가지를 접촉하는 데. ‘어떤 사람은 내가 접촉하니까 이런 유익이 있고 이런 손해가 있더라. 어떤 사람은 접촉하니까 이런 미혹이 있고 이런 또 도움이 되더라.’ 사람이 보면 이상해요. 똑 장단점이 있어요. 도움이 있는 것만치 손해가 있어요.

도움되는 면 손해 면 이게 있고, 손해가 둘 있고 도움은 하나되는 것도 있고, 이제 도움은 둘 있고 손해 하나되는 것, 도움은 또 서이고 손해는 하나되는 것, 그것 사람 접촉을, 이미 많이 접촉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에 접촉한 그것을 자기가 잘 살펴봐서 그러면 그 결산이 어찌 나왔노? ‘그 사람 접촉하는 데에, 그 일 접촉하는 데에, 그 물건 접촉하는 데에서 내가 그 결산이 어찌 나왔노?’ 결산을 따져보면 환하게 다 알아요. ‘거게는 공연히 허영이 나왔다, 허욕이 나왔다, 또 거게는 공연히 시간과 모든 허비를 했다, 거게는 공연히 우쭐해서 유혹을 받았다.’ 뭐 별별 모양이 살펴보면 오만 게 환하게 다 나와. 그만 그거 보면 그게 뭐이냐 하면 성경 연구고 그게 지혜고 능력이고 다 돼요. 그것 보면 다 나오고 있으니까.

이래서, 그 사람과 일과 물건에 대해서도 나는 접촉하고 나오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결산을 보고, 또 현재에 대한 앞으로 어떻게 되겠느냐 예산을 한번 따져보고, 또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한다 하는 그것은 어찌 되겠느냐 그것도 예산 따져보면 ‘이것은 할 일이 아니다. 말아야 되겠다.’ 그래 생각하면 백 번 안 해야 될 일로 작대기 딱 그어버렸는데, 작대기 그었는데, 현실을 닥치면 그걸 해야 될 일인 줄 알고 떡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앉아서 이성과 양심과 하나님의 성경 말씀과 그 믿음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서 이래 하는 것은 참 현실 닥쳐 가지고 그때 그때 우리가 이성 판단해 가지고서 취사 선택하는 데에 대해서는 뭐 백 배나 더 정확하게 옳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 현실을 닥치면 이 욕심이라는 미혹 있지, 명예욕 있지, 허욕 있지, 자기를 또 남에게 지나치게 보이게 과시의 욕심이 있지, 명예 욕심이 있지, 또 돈 욕심이 있지, 또 안일 욕심이 있지, 그거 뭐 예술 욕심이, 행락 욕심이 그뭐 굉장한 게 거기 있기 때문에 막 이게 막 이놈이 우 달라들어서, 마치 조금 우스운 말이지마는, 뭐 지금은 그런 일 있는지 없는지, 우스운 말이지만 저 산에 가서 아이들이 용변합니다. 용변하면 어데 파리가 오는지 파리가 어그르르 하며 막 전부 똥파리가 다 올라와서 막 달라붙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떡 우리에게 일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딱 새로 접촉할라 하면 거게 보면 뭐 똥파리들이 마구 거게 오만 그런 더러운 것들이 막 우 달라붙어.

달라붙어 가지고 와서 이 명예 욕심, 공명 욕심, 물질 욕심, 또 감정, 또 애정, 정욕, 또 뭐 공로, 또 자기 자존심 뭐 별별 것이 으그르르 오는데 그게 전부 죄덩어리인데, 그게 마귀인데, 이놈이 와서 쑤석거리니까 자기가 평소에 앉아서 거룩으로 구별해 가지고서 인인 접촉 사물 접촉에 이 구별한 거룩 이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얼토당토 안한 일을 턱턱 해 재낀다 말이오.

그러니 이것을 미리부터 계산대 놓고 살아도 그게 잘못하면 실수하게 쉬운데 이런 계산 대지 안하고 그저 닥쳐지는 대로 산다는 이것은 참 공중에다가 활을 쏴 놓고 잉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오. 도무지 이 거룩에 명중된다는 것은 될 수가 없는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요것을 미리 정해 놓고 따져보고 또 기도하고 또 재심사하고 자꾸 이래 해도 안 되는 것인데 그래 안 하면 안 됩니다.

또 일곱째는 노는 시간, 이 노는 시간을 제일 잘 노는 것은 어떤 것이 잘 노는 것이냐 하면 하나 예를 들면 지금 그 잉어 그놈이 말이지요, 잉어 그놈이 폭포수에 놀다가 폭포수에 훅 뛰어 올라가서 이만치 높은 데도 훅 뛰어 올라갔다가 또 훅 뛰어 내렸다가서 자꾸 이래 하는 것, 사람이 그것 보고 뛰어오를라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막 폭포수에? 이렇지만 그놈은 재미라.

재미라.

자기 하는 그 자기 일, 자기 일, 자기 본분, 자기 본성, 우리로 말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이 세 가지가 우리 본질과 본성이요 본분이기 때문에 이제 이로 인하여서 자꾸 이 생활 하는 것이 되지 않는, 이 생활 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재미있고 수월하기도 합니다.

이 생활 하는 것이 어떨 때는 좀 강도가 좀 높고 또 거기에 좀 결과를 좋은 결과를 바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굉장히 되요. 피의 생활도 되고, 영감의 생활도 되고, 진리 생활도 되고, 되지마는 자기 실력 정도에 이하된 것은 그보다 더 재미 있는 일이 없어.

찬송하고 기도하고 서로 이것 뭐 신앙 이것 신앙 생활 하고 뭐 이렇게 다른 사람 또 구원하고 어짜고 하는 그런 것은 참 재미가 있어요.

이러니까, 여기 반사 선생님들이 자기가 학생을 인도하든지 가르치든지 권찰님들이 그리 하든지 하는 데에 그 일이 하면 된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고, 말하다 보면 어데서 힘이 나왔는지 그것 해 냈는데 그것은 노는 겁니다. 아주 노는 것이고 그것은 피곤이 풀립니다.

피곤이 풀리는데 그 이상 지나치면 그것이 일이 돼 가지고서 심히 되요. 된데 그럴 때는 조금 쉬어 가지고 해야 되지 그것을 절제하지 안하고 지나쳐 가다가는 그만 나중에 과로가 되면 일이 납니다.

일이 되니까 이제 그 노는 일을 잘 해야 되는데 제일 잘 노는 일은 어떤 게 잘 노는 일이냐? 자기 본질과 본성과 본분에 맞은 일을, 다른 것 안 하고, 놀 때에, 다른 것 할 때에 그것을 해서 취미를 붙이면 그것이 제일 잘 노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잘 노는 것.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돼요? 제일 잘 노는 것이오.

잠자리가 우리가 보면 되지마는 이놈이 푹 올라왔다가 내려왔다가 또 물에 꼬리를 질근 담궜다가 또 이리저리 숲속으로 돌아다니고 이게 그것 노는 거고 일하는 게 아니라. 그놈은 그 재미로 노는 거라. 그러니까 제 본분 본질 본성에 맞도록 그래 사는 것이라.

저 개울에 가면 물이 막 콸콸 흘러 내려가면 뭐 어떻게 살이 센지 사람은 거기 부딪히지도 못하는 데도 거기 이 고기들이 살며 훌딱 이래 쌓으면 그것 일하는 게 아니고 재미로 노는 거라.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본질 본성 본분에 맞은 일을 과로가 되지 않게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할 때는 그것이 제 노는 것인데 제일 재미있게 노는 것이요 그것 또 수월한 것이요 그것이 아주 잘 노는 것입니다.

인제 그건데, 그리 안 해도 어릴 때에는 노는 일을 말이지요. 노는 일을 이걸 아주 죽여야 됩니다. 노는 일을 차차 차차 죽이고 노는 일을 바꿔야 돼요.

그저, 사람이 자기하고 누구하고 그 이웃끼리 노는 것, 노는 이것 시간, 시간을 하루 종일 생각하면 노는 데 시간 다 뺏겨버렸어, 노는 데. 그뭐 테레비하고 노는 것, 가족끼리 또 저녁 먹고 나면 테레비 보자 하고서 그래 또 노는 것, 얘기하고 노는 것. 노는 것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 시간에 제일 큰 손해를 봤고 그 시간에 할 일을 못 하고 시간은 다 뺏겼습니다.

이러니까 노는 것을 자꾸 계산해 봐. ‘나는 저녁 먹고 뒷집에 가서 노는 것 앞집에 가서 노는 것 이래 만나서 노는데 요 시간에 나는 큰 손해를 봤다. 이 노는 이것은 제거를 해야 되겠다.’ 그게 거룩이라. 노는 데 거룩, 노는 데 끊어버릴 것을 끊어버리는 것이 노는 데 거룩이라 그 말이오. 또 노는 데에 또 취할 것을 취하는 것이 그것이 또 거룩이라.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이 노는 데 거룩을 가지고서 ‘이 놀음은 우리 할 일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뭐 그것도 죄 짓는 그런 상식도 뭐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필요하지마는 될 수 있는 대로는 그 테레비 거게 나오는 것보다 성경에서 배운 것은 더 낫기 때문에 혹 뉴스, 이 모든 세상 형편에 되어가는 소식 그런 것, 다른 것은 볼 것 없고 혹 뉴스 같은 거 또 뉴스 중에서도 무슨 위생이라 하는 것, 무슨 의료에 대한 것, 또 주부들이라면 또 요리 만드는 것 뭐 그런 것은 상식으로 문화 테레비나 그런 또 소식 테레비나 그런 것은 보지마는 그 연속극이니 하는 그런 것은 봐야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는 그보다 더 훨씬 능합니다.

그리고, 요새 사람들은 이상한 것이 아무리 강단에서 말해도 그것은 안 믿어도 테레비, ‘아, 테레비서 말하더라.’ 테레비에 말한 것은 절대 정확 무오입니다.

그것 미친 인간이요 썩은 인간이라. 여기 그런 사람들 많아요. 아, 테레비에 그러더라고.

테레비에 그 사람들도 좋은 것도 있지마는 그 사람들도 다 그런 수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거게서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그 믿어야 되지 거게서 말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래 하기 때문에, 이제 무슨 곶감이 세월 날라 하면 그 사람들이 ‘곶감이 이렇다’ 하면 곶감 세월이 나고, 또 뭣이 어떻다 이러면 세월이 나고, 저 애굽 나라에서는 검은소 똥이 제일이다 하니까 검은소 똥이 막 세월이 나 있어. 그거 모양으로 그래 하면 안 돼요.

이제 그런 데에 시간을 뺏기지 말고 어짜든지 노는 시간을 잘 구별해 가지고서 그 끊어내 버릴 그런 놀음은 다 끊어내 버리고 또 자기가 가질 놀음은 가지고, 가질 놀음 그거 가질 때에 그 재미가 있어요.

자기 본질과 본성과 본분에 맞는 그 일을 일로 하지 안하고 노는 거, 자기에게 그것을 강제되지 안하게 순조롭게 자기는 그저 그 취미로 하는 거 그것이 노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노는 일을 우리가 잘 취해야 됩니다. 취미로 하는 것은 노는 일이오. 그러나따나 만일 그런 것을 억지로 강제로 하면 그것이 일이 됩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노는 데 끊어버릴 걸 끊어버리고, 또 노는 데에 취할 걸 취하고 이렇게 해서 노는 것도 그 장소와 시간과 종류와 그런 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이래 살면 그것이 거룩이 됩니다.

이래서, 이 일곱 가지 면으로 거룩을 잘 따져 가지고서, 잘 따질 때에는 과거 현재에 결산을 보고, 현재에만 대한 그 미래의 예산을 보고, 또 앞으로 계획하는 그게 그 장래에 예산이 어찌 되느냐 그 예산을 봐서, 그런 가운데서 과거 현재 미래를 결산하고 계산하고 예산하는 데에서 우리는 새로운 그 새 계획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서 사는 그것이 거룩한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 생활을 하려고 하면 여러분들이 뭐 많은 얼마 동안 제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요렇게 오늘밤부터는 좀 이 자는 것만 좀 잘 조절하면 내일 아침에 이 자리가 거뜩 차게 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데, 그 모두 왜 여게서 나오겠다고 약속하고 그리 안 하면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내일 아침 굶겠다고 이렇게까지 약속을 하고서 왜 새벽기도 못 나오느냐? 대개는 자는 데 먹는 데 두 군데 사고 났습니다. 자는 데 먹는 데 두 군데 사고 났어. 이 사고 날 줄 알고, 아예 날 줄 알고 미리부터 기도하고 자꾸 이래, 여간 단속, 그걸 단속해 보면 알아요.

이거 단속해 보면 마귀 역사도 알 수가 있고, 성령의 역사도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안타까움도 알 수가 있고, 또 자기의 갈 길도 알 수가 있고, 거게서 또 모든 그 사리와 가치 평가가 바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정직하게 들어, 거짓말 하지 말고.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아따 내일 아침에는, 한번 더 들고 있어 봐요. 내일 아침에는 이 자리가 뻑뻑할새. 그런데 만일 못 나오면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내일 아침이라도 굶기로 그래 약속할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내일 아침에 양식은 많이 남겠다.

여러분들 이럴라면 잘 자야 됩니다. 잘 안 자면 안 됩니다. 자기로서는 어짜든지 잘 자야 돼요. 그런데 요것 방해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게 귀신이라. 귀신인 줄 알아야 돼. 자꾸, 내가 알아야 귀신을 떼지요. 남편이 직장에는 한 일곱시면 다 마치고 오는데 떡 그래 가지고서 뭐 거짓말로 이러니 저러니 말해 가지고서 ‘오늘 뭐 무슨 일 있고 무슨 일 있고’ 해 가지고 실컷 친구들하고 돈 쓰고 술 먹고 돌아다니고 이래 노라리 하고 돌아다니다가서 떡 늦게 오면 그것 기다리고 앉았다고. 이래 앉아 가지고 꼬박꼬박 졸며 이래 가지고 기다리고 앉았고 이러다가, 그러면 그걸 말은 안 해도 ‘우리 남편이 마귀에게 붙들려서 이것 신앙 생활에 마귀 놀음 많이 한다’ 요렇게 알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어리석은 기도를 하나님이 듣지 안해요. 이래 가지고 우리 성도가 ‘아니라’ 하고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기도하면 그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안 이루어지지 안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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