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교회-에베소교회-8가지행위

 

1987. 10. 4. 주일오전

 

본문: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를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에 대한 이 본문 설교를 금주간에 계속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기억하는 것은 이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 마음과 자기의 몸에 행동이 변동되기까지 되어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암만 듣고 외우고 알아도 자기 마음도 변화가 안 되고 자기 행동도 변화가 안 되면 그 사람이 성경을 아는 것은 자기를 정죄하는 일만 되지 구원되지는 않습니다.

왜? 네가 이렇게 알고 왜 이렇게 하지 안했느냐? 모르고 범죄하는 자는 법 없이 심판을 하나님이 하실 것이요 알고 행치 안한 자는 이 말씀의 법을 가지고 그를 정죄해서 심판하십니다.

그러기에 먼저 들어서 깨달을 때에 자기의 마음과 몸의 행동이 변화되기까지의 듣고 깨달음이라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기억이나 하고 자기 마음과 행동에 대한 변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그 지식은 진리 지식이라도 자기를 교만케만 하지 유익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것을 제가 어느 새벽부터 시작했습니까? 월요일날 새벽부터 시작해서 삼일 오일, 오늘 아침은 딴 말씀을 증거했지만 계속했고 또 주일날 오전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데 여러분들이 한 번만 들어도 총명이 있어서 잘 기억을 하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계속해서 증거하겠습니까? 이유는 여러분들이 아는 줄 알지만 실상은 모르기 때문에 자꾸 증거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지식으로 안다 하면 알면 반드시 행동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알고 행하지 않는다 그 말은 아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해 그렇지 바로 알았다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이지 둘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불에 들어가면 타 죽을 줄 아는 그 지식을 가졌다면 자기 힘 있는 대로는 불에 안 들어가려고 애를 쓰지 불에 들어가면 타 죽을 줄 알면서 자기 죽기 싫은 사람이 불에 들어가서 타 죽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의 본능의 힘 있는 데까지는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지행은 합일이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여게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일곱 교회를 기록했는데 이 일곱 교회에 대해서 무책임하고 벌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곱 교회는 지방의 순서가 그랬기 때문에 그렇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일곱 교회는 이 시대 순서로 제일 시대에 에베소 교회의 내용, 제이 시대에 또 서머나 교회의 내용, 이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본문에 맞추어 봐서 맞지를 아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교회 일곱 교회나 되는데 일곱 교회 가운데에서 에베소 교회를 제일 첫 순서로 기록한 것은 에베소 교회에 문제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를 먼저 기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약 시대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제일 신앙 운동에 중요한 점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에 말한 중요한 점은 뭐인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네가 가져라, 처음 사랑을 버렸으니 네가 하나님과 완전 상관없이 절단돼 있다, 네가 하나님 암만 불러봤자 하나님과 너와는 상관이 없다.

또 촛대를 옮기겠다. 교회를 옮기겠다.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과 너와는 상관없이, 예수님과 너와는 상관 없이 끊어졌다, 또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네게 있는 교회를 옮겨서 너는 교인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네게서 완전히 건설구원을 이룰 교회 은혜를 네게서 완전히 옮겨서 네게 교회 은혜가 하나도 없도록 하겠다. 뭐 이만하면 예수 믿어도 다 멸망인데 이보다 더 큰 게 어디 있습니까?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버린 처음 이 사랑의 행위를 네가 가져라. 가지면 내가 너를 하나님과 동거 생활하는 은혜를 네게 주겠다, 또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로 인해서 네게 해당되고 분담된 구원을 완전히 이루게 하겠다 약속했습니다 이러니까 기독 신자는 누구든지 제일 중요한 것이 처음 사랑의 행위요 이것 버리면 다 멸망이고 이것 가지면 모든 것이 다 성공이요 승리입니다.

거게 대해서 2절에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이랬는데 이 행위는 나쁜 행위라 말이 아닙니다. 그 밑에 내리 읽어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이거 보면 위에 행위가 나쁜 행위가 아니고 좋은 행위입니다.

“내가 네 옳은 행위를 알고, 또 네가 옳은 수고한 수고도 알고, 또 네가 참고 견디는 그런 인내도 알고, 네가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그것도 내가 안다. 자칭 사도라고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해 가지고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도 안다. 또 네가 범사를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견딘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네가 이 믿는 일에 게으르지 안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거 하나만 해도 서부교회 교인이라면 큰소리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다 존경할 것입니다.

‘그 사람 행위가 미꿈하고 그 사람 행위에 흠점이 없다’ 하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귀하게 여길 것입니까? ‘그 사람은 복음 운동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한다’ 수고 많이 했으면 얼마나 그걸 다 귀하게 여길 것입니까? 또 악한 자를 그런 자들을 다 용납지 아니하고 그것을 척척 처리해 버리는 이런 행위가 얼마나 이거 귀합니까? 거짓 선지자 참 선지자, 참 지도자 거짓 지도자를 이와같이 구별하는 거 그런 것도 얼마나 귀합니까? 또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렇게 모든 면이 훌륭한데, 하나 둘만 훌륭한 게 아니라 여게 훌륭한 그 위대한 행위를 여덟 가지를 들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도 가지기 어려운데 여덟 가지 옳은 행위를 가졌으니까 참 칭찬할 만하고 자랑할 만하고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하고 기념할 만한 그런 훌륭한 행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다” 이거 참 모를 노릇입니다. 일반 교인들이 어떤 교회라도 뭐 칭찬한다는 것이 다 이런 종류의 칭찬입니다. 여덟 가지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굉장히 칭찬할 것이고 그 사람을 자랑할 것이고 높일 것이고 교계서도 자랑을 할 것입니다. 이런데 이 여덟 가지나 구비했는데 주님은 “책망할 것이 있다” 책망했습니다. 이 여덟 가지 하지만 주님은 아름답게 보지 않습니다. 싫다는 것입니다. ‘그 여덟 가지 한 거 싫다. 보기 싫다.’ “네가 어데서 떨어진 것을 알아라” 네딴에는 여덟 가지 행위가 훌륭하니까 이만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어데서 떨어진 것을 네가 알라” 뭐 현 정부에서 떨어진 거, 세상 과학에서 떨어진 거, 세상 노벨상에서 떨어진 거, 세상 시험에서 떨어진 거 그런 것을 말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끊겨진 것을 말합니다. 여게 뭐 세상과 떨어진 거 그게 크지만 여게 비하면 그까짓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떨어졌거나 말았거나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됐으면 됐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여덟 가지 행위가 훌륭한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회개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에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자들은 세상 도덕가들이 보고 그 사람을 ‘아주 도덕이 훌륭하니까 위대한 신앙이라’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고난을 많이 당했으니까, 고난을 많이 당했으니 위대하다.’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이 도를 위해서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했다’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거 싫다’ 그 말이오. ‘나는 그거 싫다.' “네가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나와 너와는 상관이 없다. 처음 사랑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상관이 없다. “그런고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하던 그 행동을 네가 다시 가져라. 처음 예수 믿을 때에 가졌던 그 행위를 네가 찾아 가져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안하면, 처음 행위가 뭐인데? 사랑의 행위, 사랑의 행위, 행위와 사랑이 하나입니다. 이 사랑을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고 이 사랑이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를 없애버리겠다 그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없애버리겠다. 네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이 처음 사랑의 행위가 뭐인지 요것이 중요합니다. 요것이 누구에게든지 있어서 처음 사랑의 행위 요 처음 사랑으로 인한, 처음에 자기가 가진 요 사랑으로 인한 온갖 행동도 주님은 기뻐하시고 이 사랑으로 인한 우는 것도 당신은 좋아하고, 웃는 것도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뛰는 것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성내는 것도 좋아하고, 웃는 것도 좋아하고, 처음 사랑으로 인하여서 하는 행동은 다 주님이 기뻐하시지만 이것이 아닌 것은 생명을 바쳐도 그까짓 거 주님은 더럽다고 던져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인생을 다 만들어 냈는데 인생의 생명이 뭐 큰 줄 압니까? 노아 홍수 때에 얼마나 됐는지 숫자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마 수십억이 됐거나 그리 안 하면 수억이 됐거나 됐을 것입니다. 왜? 그때는 아이 낳으면 죽지 않습니다. 낳은 대로 다 큽니다. 죄악이 덜하고 이 모든 더러운 모든 공해가 없기 때문에 많은 그 숫자가 불어날 수 있는데 노아 홍수 때에 그 많은 사람들, 노아 여덟 식구 외에 모조리 홍수에 다 넣어서 죽었으니까 뭐 후둘후둘하다가 죽고 하는 그거, 물론 온 천하에 천지 개벽할 때니까 그 개벽한, 물이 많아서, 사람도 많지만 어데인지 모르기는 모르지만 뭐 만당으로 나중에 올라가다가 만당이 마지막에 물에 파묻힐 때에 죽을 때는 막 후둘후둘하며 굉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부르짖기도 많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 지끈 감고 ‘잘 뒈지거라. 이 강퍅한 놈들 다 뒈지거라. 내게 필요 없다.’ 싹 모조리 여덟 식구 외에는 죽여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인간을 크게 여기지 안하요. 다만 귀하게 여기고 크게 여기는 조건에서 거게 맞아야 귀하게 여기고 크게 여깁니다.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이것은 주님과 뜻이 같습니다.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데 나도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했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는 버가모 교회에서 잘 해석되어 있습니다. 거게 보면 차차 차차 속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차차 차차 속화되는 것. 점점 교회가 속화돼서 세상화되는 이것을 주님이 미워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에는 예수 믿는 목사들이, 장로들이, 모두 유식하고 유력한 자들이 세상 권세를 배경삼아 가지고, 세상 권세의 앞잡이가 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점점 세상화시키니까 어리석은 인간들도 죽는 줄 모르고 좋다고 따라가고 높여서 회장이니 총장이니 이렇게 들어 세우지만 앞으로 그런 자들의 당할 형벌이 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점점 속화시켜서 세상화시키는 그것을 주님이 미워하십니다.

제가 다른 산에는 가 보지 안했는데 계룡산에 가 봤고 속리산에 가 본 것은 계룡산에는 종교 유사 단체 유사한 많은 종교들이 거게 모여 있다 하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모였는가 구경하려고 제가 계룡산에 한번 갔었고, 우리 직원들과 같이 한번 갔었고. 속리산에 가는 것은 그 이름이 ‘세속을 떠났다’ 세속 속자 떠날 리자, 세속을 떠났다는 속리산이라는 그 이름이 좋아서, 세속을 떠났다는 것으로 제가 한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를 나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뭐 이긴다 말입니까? 왜 기독자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는가? ‘안 버리면 죽인다, 안 버리면 네 사업을 뺏들겠다, 안 버리면,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안하면 너를 면직을 시키겠다, 너를 직장에서 제명을 시키겠다, 이혼을 하겠다, 너를 감옥에 가두겠다.’ 별별 마찰들이 있기 때문에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이래서 이기는 자라 그 말은 이것을 깨닫고 버렸던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지든지 처음 사랑을 어떤 위협과 협박과 난제가 있어도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든지 하는 그자가 이긴 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게 하겠다. 하나님의 낙원은 천국을 가리켜 말한 것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수천 명이 모여 앉았지만 껍데기 보면 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과 지금 동좌석하고 하나님 계시는 곳에 하나님과 같이 있는 사람도 있고 마귀하고 같이 있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 없이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낙원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낙원에는 불만이나 불평이나 고통이나 모든 죄악들이 없는 세계입니다. 이 자리에서도 그런 낙원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마귀하고 동거 동행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도 뺏기고 마귀에게 고난 당하고 있는 자들도 있고, 있는데, “하나님의 낙원에 너를 있게 하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와 너와 같이 있게 하겠다 하는 말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생명나무라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생명이라 말합니다. “생명나무라”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의 결과, 과실이라 말은 연결의 결과, 연결의 결과를 네가 먹고 살게 하겠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의 결과로 너를 먹게 하겠다.

먹는다는 것을 고기덩어리는 입으로 먹고 인격은 무엇으로 먹습니까? 영은 무엇으로 먹습니까? 영이나 인격이나 같은 것인데 인격은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인격은 마음으로 먹고 생각으로 먹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주님의 피와 살을 생각하는 것이 곧 피와 살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먹는 것은 진리와 영감과 의를 먹는데 어떻게 먹는가? 입으로 먹는가?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있으니” 사마리아 여인이 아마 떡을 갖다 줬는가보다 이러니까 “내가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있으니 곧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과 온전히 완성시키는 것이 이것이 나의 양식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으니 이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여인으로 하여금 회개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게 하는 그것이 나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생명나무라,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 나무ㅡ나무는 비유입니다ㅡ연결된 연결로 인한 그 결과로 네가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 네가 받은 하나님의 사명, 네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요구, 네 의무와 책임과 본분의 신앙 행위를 다 이루어서 네 구원을 다 이루게 하겠다 말씀한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찾아 가지는 데에서, 하나님과 연결되니까 전지와 연결되니 전지자가 되고, 전능과 연결되니까 전능자가 되고, 완전과 연결되니까 완전자가 되고, 하나님의 평가의 사랑과 연결되니까 평가의 사랑이 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연결되어 그에게 피동되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여 자기에게 해당된 구원을 다 이루어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밤에는 각처에 교역자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따져서 ‘이 해석이 너희들에게 의연하나 안 하나, 맞나 안 맞나, 이 해석 외에 또 딴 해석이 다른 해석이 있겠느냐?’ 물론 성경 학자들이 많이 해석해 놨습니다. 뭐 주석이 수십 종류 있습니다. 그래도 요것이 아니라면 그 주석이 틀림없이 틀렸습니다. 요 해석이 맞다 했으면 맞고 틀리면 틀렸습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사랑, 또 다른 말로는 “처음 행위” 이랬습니다. 사랑이 행위요 행위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의 행위가 나타나고 미워하면 미움의 행위가 나타나고, 두려우면 두려움의 행위가 나타나고 교만하면 교만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행위니까 행위 그것이 사랑이요 사랑 그것이 행위요 둘은 하나입니다.

이런데 이 처음 사랑, 이 처음 사랑을 버리면 두 가지,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버리면 두 가지가 절단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하나님과 완전히 절단됩니다. 또 촛대를 옮겨서 그 사람의 건설구원의 교회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건설구원이 없어지니까 피의 은혜도 영감의 은혜도 진리의 은혜도 그에게는 완전히 없어지는 걸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 영 구원은 중생됐기 때문에 얻지만 그의 성화구원은 하나도 안 됩니다. 우리가 뭐 영 구원이야 애쓰나 안 쓰나 영 구원은, 이 영 구원은 버리려 해도 버리지 못하고 영 구원은 또 사람이 노력한다고 가질래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 구원이 네 건설구원이 완전 절단나고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진다 절단난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네 건설구원은 절단난다. 두 가지 절단나는 걸 말했고, 이 처음 사랑을 네가 도로 찾으면 내가 두 가지를 주겠다. “하나님의 낙원에 네가 거처할 이 권세를 주겠다” 하나님과 동거 동행을 하도록 해 주겠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겠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그 충만은 원동력이 되고 너는 거게 속해서 피동이 되어서 하나님의 충만에 피동되어서 네가 충만되어서 네게 해당된 구원, 네가 만 명을 구원하기로 됐으면 만 명 다 구원할 것이요, 억만 명 구원하기로 됐으면 억만 명 다 구원할 것이고, 열 명 구원하기로 됐으면 열 명을 구원할 것이요, 네 구원도 완전하고 네게 속한 본분과 의무와 책임과 모든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을 다 완료하게 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처음 사랑을 버림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연결 이 중요한 거, 이보다 더 중요한 거 없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절단나지 건설구원이 절단나지, 이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서 가지면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게 되지,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충만이 다 자기 것 되어서 자기 구원이 다 이루어지고 자기에게 책임을 몇 명을 하나님이 책임지웠든지 자기에게 관련 소속 예정되어 있는 자를 전부 다 구원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처음 사랑을 버려 완전 멸망이요, 중생된 영만 하늘나라 가 있기는 있지만 영광의 구원은 완전 멸망이요 세상에 있으면서도 조만간에 비참한 자가 될 것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 버리고 꺼들거리면서 좋으니까 우줄거리지만 우줄거려서 하나님의 은혜가 올 때 그때 조심해야 되지 벌로 날뛰면 비참하게 망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정계에 나서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로 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안하고 벌로 우줄거리다가 망한 사람 많고, 사업가로서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받아 가지고서 처음에 말씀 지키다가 은혜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말씀을 어기고 우줄거리다가 비참하게 망한 사업가들 많고, 재벌가들도 많고, 미인도 많고 미남도 많습니다. 다 비참하게 가련한 송장 같은 그런 다 문둥이 되고 더럽게 그래 돼 버렸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나님은 인간보다 예민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명철합니다.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그들은 잘 모르지만 ‘신목 여전이라’ 하나님의 눈은 번개 같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르는 게 없어. 그분을 거슬리고 어겨서 속여 나가 볼라고, 어리석지 말아요.

이런데 오늘 오전에는, 처음 사랑을 버린 자는 아무리 제가 신앙 행위를 다른 사람에 칭찬받고 존귀하게 해도 헛일입니다. 완전히 헛일이오. 하나님과 끊어졌는데 제까짓 게 무슨 구원이 있소? 교회를 옮겨 버렸는데 제게 건설구원이 어데 있겠소? 교회라야 건설구원을 이루는 건데.

처음 사랑 버려 완전히 멸망하고, 버렸던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짐으로써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고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의 것 되니까 모든 면에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 됩니다. 완전 성공이오.

처음 사랑 버려 완전 멸망, 버린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져 완전 구원, 요것만 알고 가십시오. 오전에는 요것만 말하고, 시간이 됐기 때문에 오후에 처음 사랑을 계속해서 증거하겠습니다.

이 처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여게 대해서 나는 내가 본 주석대로는 이 주석에 대해서 처음 사랑이라 하는 이것을 바로 해석해 놓은 주석을 나는 구경을 못 했습니다. 나도 금년에사 깨달았습니다. 나도 이것을 금년에사 깨달았어. 여러분들은 여러 날 이래 듣고 하지만 또 못 깨달을 것이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면 깨달을 것이오.

이런데, 먼저 오십여 년 연구해 가지고 안 거 여러분들이 들으니까 복은 복입니다, 가속도로. 하지만 들어도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한다” 말했습니다. 말한다고 귀에 들린다고 들리는 게 아니라.

이 처음 사랑 버림으로 완전 멸망, 처음 사랑 도로 찾음으로 완전 구원, 처음 사랑 버리고 성자라, 성녀라, 훌륭한 목사라, 훌륭한 장로라, 훌륭한 권사라, 훌륭한 교인이라 얼마든지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고도 칭찬받을 수 있어.

에베소 교회에 아홉 가지가 훌륭했어. 이렇게 훌륭해. 이래도 주님은 싫어서 “너와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네게서 교회를 옮기겠다.” 멸망한다 그 말입니다.

처음 사랑을 도로 찾을 때에 “낙원에 같이 살겠다. 내 충만은 다 네것이 되어서 네 본분과 의무와 책임, 네가 구원하기로 담당한 자 다 구원할 것이고 네 구원도 완전히 이루게 되리라.” 주님이 보내신 사명을 다 감당한 것처럼 너는 내가 보낸 네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처음 사랑이 문제입니다, 처음 사랑.

다 같이 통성으로 잠깐 기도합시다.

오늘 오전 기도할 때는 처음 사랑이 뭐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게 있는 여러분들이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안한 사람도 약간 있고 모두 다 집사 장로들은 처음 사랑을 다 버린 사람들이오. 몇몇만 있을런지 모릅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안하고 예사롭게 여기는 사람은 그의 귀가 있어도 들을 은혜가 없어 그런 것입니다.

<기도> 우리들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제일 중요한 것, 하나님과 연결이요, 우리의 성화구원이요, 하나님과 동거 동행이요, 하나님의 충만으로 자기 것을 삼는 이 귀중한 보배를 저희들이 잊어버리고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헛된 것으로 우리 시선을 돌려서 많은 허비를 하고 온 저희들입니다.

오늘 오전에도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후에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참석하여 이 중요한 것을 바로 찾아 이제부터는 우리의 영육에 금생 내세의 성공이 요 요점에 있는 것을 확실히 잡고 놓지 아니함으로써 모든 면에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인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사오니 모든 어려운 것을 주님에게 고하여 주님과 의논하여 해결받고 사나웁고 어둡고 거짓된 이 세상에서 염려없이 평강 가운데서 사는 이 생명길을 저희들이 찾았사오니 이 길에서 탈선되지 말고 영육이 성공하는 이 생명길을 뿍뿍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나하나에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 종들에게도 더욱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에 전력을 기울이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56 7가지 구원 순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28주후 선지자 2015.10.21
5455 7가지 대접 받은 우리의 할 일/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223화새 선지자 2015.10.21
5454 7가지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70828금새 선지자 2015.10.21
5453 7가지 중대한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70823주새 선지자 2015.10.21
5452 7가지 화/ 시편 91장 14절-16절 / 870103토새 선지자 2015.10.21
5451 7가지에 대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70927주전 선지자 2015.10.21
5450 7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70927주후 선지자 2015.10.21
5449 7교회-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29화새 선지자 2015.10.21
» 7교회-에베소교회-8가지행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4주전 선지자 2015.10.21
5447 7교회-에베소교회-이기는자/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새 선지자 2015.10.21
5446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30수새 선지자 2015.10.21
5445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야 선지자 2015.10.21
5444 7교회-에베소교회-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6절/ 871001목새 선지자 2015.10.21
5443 7대속 받는3방편/ 마가복음 10장 22절-31절/ 870108목새 선지자 2015.10.21
5442 80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0. 1. 7. 하오 2시 30분 선지자 2015.10.21
5441 87년 11월 교역자회의록/ 1987. 11. 2. 19시 선지자 2015.10.21
5440 88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8. 1. 4. 19시 선지자 2015.10.21
5439 8가지 알아야 할 것/ 요한복음 8장 43절-45절/ 871025주전 선지자 2015.10.21
5438 가견적 교회 불가견적 교회/ 학개 2장 20절-23절/ 820609수야 선지자 2015.10.21
5437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태복음 15장 21절-23절/ 810115목새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