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교회-에베소교회-이기는자

 

1987. 10. 2. 새벽 (금)

 

본문: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여기 에베소 교회에 순위로 첫째 기록한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점이 에베소 교회에 있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제일 중요점은 뭣인고 하니 거기에 여덟 가지 행위, 그 아홉 가지 행위 그 행위 그것이 물론 신앙 생활은 신앙 생활이지마는 그것만이가 신앙 생활이 된다고 이런 잘못 깨달음을 우리는 완전히 고쳐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덟 가지 말했고 나중에 하나 더 붙여서 아홉 가지를 말했는데 처음에 말한 이 여덟 가지, 이 여덟 가지 이것이면 자기는 신앙 생활 다인 줄 알고 이것이면 신앙 생활에 온전함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이것에만 힘을 쓰는 그런 교회가 그런 성도들이 되기 쉬운 이 무서운 위험성에 빠지는 이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그 물론 신앙 행위는 하지마는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 이랬는데 이 처음 사랑 이 사랑을 가지고 이 여덟 가지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 처음 사랑을 가지고 처음 사랑으로 인해서 처음 사랑의 동기, 또 사상, 욕망, 소원, 간절, 어찌됐든지 처음 사랑에 이것이 들어서 이 여덟 가지 행위를 했을 때에는 이 여덟 가지 행위가 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마는 처음 사랑 이거는 버려버리고 이 여덟 가지 이것이 신앙인 줄 알고 하는 것은 전부 껍데기지 다 멸망이지 하나도 가치 있는 게 없습니다.

사람이 연보하는 것도 연보하는 그것이 주님의 구속을 인하여 연보할 때에 그 연보가 가치 있다는 것이지 구속은 다 떠내려 보내 버리고 잊어버리고 제가 연보 많이 해서 하면 어쨌다는 그것만 생각하고 연보하는 그까짓 거는 아무 소용 없어.

주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들었는데 제가 연보를 많이 하면 얼마나 할 것입니까? 우주를 다 한다 해도 주님에게는 기쁘지 않습니다. 왜? 우주를 이 처음 사랑, 이 구원을 위해서 우주를 만드셨는데 이 큰 구원은 등한히 여겨서 떠내려 보내 버리고 이제 거기서 만든 물질 그걸 하나를 , 제가 무슨 전도의 일이나 봉사의 일이나 또 희생 일이나 그런 것 이것을 큰 줄로 알고 처음 사랑은 버리고 그런 거 하는 그런 것은 주님에게 아주 모욕이요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노동력이 모자라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주님은 뭐 이 인간이 봉사해도 그런 희생해서 봉사하는 것이 얼마든지 충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당신의 제일 일호의 움직임으로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그 목적이 귀해서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도성인신도 하셨고, 신인양성일위로서 사활의 대속도 한 것이지 그것 뭐 이것 우주에 있는 것, 또 노동일, 엿새 동안에 우주 만들었는데 그분에게 노동력이 얼마나 있습니까? 또 만들어 놓은 것 제까짓 게 암만 일생 동안 연보한다 해도 부산시 하나의 댓가를 연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큰 이것을 인해서 예정도 했고 창조도 했고 모든 것 다 했는데, 하나님이 사람 되시기까지 되어 왔는데 이것은 집어던져 버리고, 이것은 예사로 여기고 이제 껍데기 그런 것만 하는 것은 마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 첫째로, 여덟 가지 행위가 에베소 교회에 구비해서 이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옮긴다 했습니다. 촛대를 옮긴다, 교회를 옮긴다. 좋지마는 이것이 교회도 아니요, 이것만으로써는 교회도 아니요 또 이것이 교회를 붙드는 것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요, 교회가 돼 가지고 교회 행위로서 이런 것 할 일이지 이것이 교회는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다음에는 둘째로는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 “버렸다” 버렸다 말은 제가, 버렸다는 그 속에 뜻은 뭐인고 하니 이 처음 사랑을 무시했다 하는 말과 한가지입니다. 버렸다 말은 지금 여덟 가지 행위 이것은 아주 귀중하고 보배롭고 이 처음 사랑 이것은 그렇게 무시했다 말이오.

그렇게 존귀하게 가치있게 중요하게 크게, 이렇게 참 하나님께서 사랑하기도 무한히 사랑했고, 힘도 무한히 들었고, 수고도 무한히 들었고, 애도 무한히 썼고, 우주를 만든 것이나 예정하신 것이 다 이것 때문에 했는데, 이렇게 큰 구원, 큰 사랑, 이 사랑을 네가 버렸느니라. ‘네가 잊었느니라’ 하지 안했고 “버렸느니라” 버린 것은 제가 고의적입니다. 버렸다 말은 버린 것은 제가 귀중히 여기면 버리지 않습니다. 보배로 여기면 버리지 않습니다. 이제 여덟 가지 하는 이것은 보배로 여기지마는 주님의 이 대속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보배롭게 여기지 안하기 때문에 이것을 버리고 이 여덟 가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가지라” 그러면 제가 가지려면 가질 수 있고 버리려면 버릴 수 있고, 가지려면 가질 수 있고 버리려면 버릴 수 있고, 이것은 우리들의 그 주관을 말합니다.

우리 주관이, 내라는 내 주관이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자기가 깨닫고 이 사랑에 대해서 크심을 알고, 이 사랑의 크심을 알고, 또 이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이 사랑을 인해서 기뻐하고, 이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그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또 생겨지고, 이로 인해서 모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고, 이로 인해서 만물까지도 사랑하고 싶은 이 사랑이 생겨지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요게 대해서 자기 주관이라면 자기 인격이요 자기라는 것인데 자기라는 자기가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크심을 깨닫고 영영하심을 깨닫고, 이 사랑에 대한 수고를 깨닫고, 자기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고, 또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과 만물을 사랑하여 원수라도 이 사랑을 인해서 사랑하지 안할 수 없고 아무리 미운 원수라도 미워할 수가 없는 요 발동되는 것을 요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요 발동을 원하시는데 요 발동이 네게 없다. “처음 행위를 버렸다” 요 발동이 네게 없다.

이러니까 너는 “어데서 끊어진 걸 알아라” 이는 하나님과 자기와는 끊어졌습니다.

또 “촛대를 옮기리라” 말은 네게 구원을 옮긴다 그 말입니다. 이 촛대는 교회인데 교회는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을 옮긴다 그 말이오. 주님도 옮기고, 영감과 진리 역사도 옮기고, 법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적 창조적, 법적인 그 구원은 우리에게 있지마는 행위적인 구원은 없다 그 말입니다. 요 행위적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 영 중생된 중생이 뭐 변동된다 말은 아니오. 네게 역사의 능력은 없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촛대 옮긴다는 이것이 큽니다.

그러고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요 끄트머리 결론에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한다” 하는 그것을 따로 불거뜨려 가지고서 거기다가 칭찬해 놨습니다. 앞에 여덟 가지를 말해서 ‘요런 줄 안다’ 요렇게 해 놓고 마지막에 결론으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한다” 요건 따로 똑 떼 가지고, 그러면 여덟 가지에다가 보태서 아홉 가지를 주르르 말하지 안하고 맨 뒤에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한다. 나도 이걸 미워한다.” 니골라 당의 행위가 뭣입니까? 그것은 버가모 교회 가서 보면 압니다. 요것은 속화 행위입니다, 속화. 점점 속화되어 나가는 것. 속화되어 나가는 것인데 거기 보면 발람을 하나 예를 들어서 발람의 교훈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발람은 유물주의자입니다. 물질계로 되어 있는 물질계,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말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말은 모든 물질적인 것은 다 풀과 같다 그 말이오. 물질적인 것.

우리 마음도 물질적인 것이요, 우리 몸도 물질적인 것이요, 이 모든 세상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인데, 이것은 다 “풀과 같다” 생존에 제한이 있다. 없어진다.

그 영광도 없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신령한 것으로 다 변화받아야 되는 것인데,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주님이 이렇게 세상주의로 나가서 속화되는 것, 속화되는 이것을 주님이 미워하십니다. 요것을 마지막에 결론으로 둬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하도다. 나도 이를 미워한다.” 속화주의, 요 속화주의를 미워합니다.

지금도 우리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는 이 속화주의를 미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속화주의를 지금 미워하면 별스럽다고 뺄쭉나다고 하면서 요새 온 세계 교계에 미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속화주의를 반대하면 그는 외로와집니다. 그는 독보의 신앙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주님이 따로 불거뜨려 가지고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한다. 나도 이를 미워한다.” 하는 이것은 곧 그 안에 촛대 옮긴다는 것만은 못하고 또 처음 사랑을 버린 그것만은 못하고 하지마는 그 위에 여덟 가지 행위 그런 것보다는 큽니다. 크기 때문에 그 한 동류로 싸일 수가 없고 따로 불거뜨려서 마지막에 “니골라 당의 행위를 네가 미워하도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러면 창세기 3장에 보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못하도록 그룹들로써 지키고 쫓아냈습니다. 생명 과실을 먹고서 영생할까 해서. 이 생명 과실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되므로 그에게서 나오는 것이 생명 과실입니다. 생명 과실.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와서 우리에게, 그 본성에 피동되어 우리도 하나님의 그 속성과 꼭 같은 그 속성 행위를 할 수 있는, 전능에 피동되어 전능할 수 있는, 전지에 피동해서 전지할 수 있는, 얼마든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에 피동되어서 사랑할 수 있는, 곧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걸 가리켜서 “생명나무의 과실이라” 이랬어. 과실.

생명나무라 말은 그분과 연결된 그 원인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맺어지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과실이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낙원에 있다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이 세상에 있는 낙원이오.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래 말씀하신 이제 죽어서 영원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낙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그 낙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기는 자는” 뭐 이기는 자가 뭐인데? 이기는 자가 무엇이 이기는 자입니까? 여기 이기는 자가 뭐입니까? ○ 뭐꼬? ○○교회? 처음 행위를 가지는 그게 이기는 것이라.

주님의 이 대속의 구원,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구속해 주셨다.’ 구속해 주신 이 구속의 구원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이러고 보니까 뭐 어쩔 줄을 모르고 감사하고 기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역사하고 또 원수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고, 이것이 본능적으로 자동적으로 생겨지는 것입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는 다 이것이 있어요. 믿을 때는 처음에 도를 받아 가지고 예수 믿기로 작정할 때는 이것이 어려서 그렇지 이 작용이 있었는데 차차차 믿어 가면서 삐뚤어지기를 어데로 삐뚤어졌느냐? 삐뚤어지는 것이 제 행위에 이것 치우쳐서 행위하려고 하다가 그만 잊어버렸다 그 말이오. 또 주를 위해서 수고하려고 수고하다가 그만 잊어버렸다 말이오.

행위도 좋고 수고도 좋지마는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연결돼 가지고서 그분을 모시고 그분을 기뻐해서 그분 때문에 뭐 행위하는 게 좋지 그분 집어던져 버리고 행위하는 그까짓 것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남편 집어던져 버리고, 남편 대접한다고 뭐 시장 보기 위해서 어떤 잡놈하고 전부 가 가지고서 다 그것 다 히야까시 다 당하고 또 뭐 물건 좀 싸게 사기 위해서 오만 것 잡질 다 하고 또 남편 대접하기 위해서 돈벌이 할려고 시장비 벌려고 이렇게 저렇게 하며 모든 춤추고 돌아다니며 자기 정조와 모든 것을 다 팔아 가지고서 그것 팔아 가지고 와 가지고 대접하는 그건 남편이 등신 바보나 그것 먹고 앉았을까. 누가 그걸 거석해? 그것 가져오면, 만일 그걸 몰라 그렇지 오면 저 시장 봐 가지고 오는 걸 그걸 어떻게, 그냥 내 던지겠소? 그놈을 어떻게 해야 이 시장도 이것 시장 보고 오는 걸, 막 시장 본 걸 매로 뚜드려서 막 뭐 생선 같으면 생선이 뭐 전부 다 물이 돼 가지고 다 도망쳐 버리고 없도록 그렇게 분할 것입니다. 분하지 않겠소? 안 분할 남자 있거든 해 봐. 안 분할 남자 있거든 손 들어 봐. 이와 꼭 같습니다. 이것 하다가 그만 주님 잊어버렸다 그 말이오.

행위 하다가 수고하다가 또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이 견디는 것도 주를 위해 견뎌야지 주님 잊어버리고 견디는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인내와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는 것과” 그것 주님 위해서 그렇지 주님 잊어버리고 악한 자 용납 안 하면 저도 악한 자가 교만하지 뭐. 그 좋을 게 하나라도 있소? 밉상스러워.

또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해 가지고서 드러낸 것” 이것 모두 전부 건너다 보고 하는 거라. 저는 봐서 살피지 안하고. 주님 잊어버리고 자기 잊어버리고 건너다 보고 다른 사람만 보고서 야단을 지기는 거라, 이것.

주님 잊어버리고 자기 잊어버리고 상대방 보고 이러니 저러니 시비하고 또 일 보고, ‘일이 필요 없다. 일보다 내가 귀하다.’ 주님이 하시는 거라. `일보다 내가 귀하다. 일보다 내가 귀하다. 나 버리고 일을 하면 네까짓 게 무슨 일 하며 무슨 소용 있느냐? 나 버리고 일하는 그것 내게 소용 없다. 나 버리고 봉사하는 것도 소용 없다. 나 버리고 그뭐 사랑하는 것도 소용 없고, 나 버리고 희생하는 것도 소용 없고, 나 버리고 진리 보수하는 것도 소용 없고, 나 버리고 모든 이단을 방지하는 것도 소용 없고, 아무 소용 없다.’ 당신 버리고는 소용 없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처음에 믿을 때에는 본능적으로 이게 있었고, 본능적으로 그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하고 어쩐지 기쁘고 그 구원에 대해서는 뭐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되고, 이러고 주님이라면 사랑하고 싶고 또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싶고 영광 돌리고 싶고, 모든 원수들도 주님을 인해서 사랑하고 싶고, 또 만물도 사랑하고 싶고 이렇게 하는 그 본능적으로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이성 비판으로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 공작이요 이성 비판으로 판단된 것을 또 그 의지로 그것을 계속합니다. 의지로 그 일을 계속합니다.

그것도, 이러다가 나중에 자꾸 그 일을 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배고프면 물 먹고 싶은 것처럼, 그게 본능이라. 추우면 따신 데 가고 싶은 것처럼, 이렇게 본능으로, 본능으로 주님이 사랑하고 싶고 감사되고 주님으로 기뻐하고 즐겁고 본능으로 주님을 위해서 뭘 하고 싶은 그것이 있는 것이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이기는 자는” 네가 주님의 이 구속의 사랑을 생각하고 또 주님의 크심을 생각하고, 주님이 내게 구속 주시기 위해서 어떻게 광대한 섭리를 하셨으며, 그분이 우리 구속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 예정했고 창조했고, 하나님이 사람 되셨고, 사람 돼서 오셨을 뿐 아니라 당신이 또 이 우리의 형을 대신 담당하셨고, 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고 이와 같이 나타나신, 뭐 새기고 새기고 하면 참 못 견딜 만치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또 마음이 뜨거운 열심도 나오고 본능적으로 나오는 이걸 원하십니다. 이게 무슨 결과를 맺느냐? 이게 들어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돼.

“낙원에 있는” 낙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있습니다. 14장이가 15장이가? “우리가 와서 거처를 같이 하리라” 하는 거. 14장이가? 나는 이것 자꾸 기억해도 자꾸 잊어버려져요. 14장에 보면 “내가 거처를 같이 하겠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키리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가 또 그에게 사랑한다. 나를 나타내리라.” 이렇게 말했어. 당신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 지키는 것도 소용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는 것이 필요하고 당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계명 지키는 것이 필요하지 당신 떼놓으면 계명 지키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기에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그 말은, 낙원에 있다 그 말은 낙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한다 말이오. 같이 거한다 말이오. 곧 골방을 말하는 것이라. 은밀한 곳을 말하는 것이요 영원한 완전한 피난처를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 계셔.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행하는 그곳에 네가 살게 되고, 하나님과 같이 동거하게 되고, 또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의 그 연결된 결과로 인해서 너희에게 양식이 있다. 너희에게 힘을 돕는 것이 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뭐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 그 물질을 먹는다는 그 말이 아니오. 인격의 양식이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생각으로 먹고 영감으로 먹고 자꾸 이래 먹는 거라.

이래 가지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연결됨으로 인해서 그 연결됨을 인해서 본체인 그분에게 연결됨으로 인해서 본체의 힘이 와 가지고 네게 차차 그 힘이 자꾸 많아진다. 배고파서 이럴 때는 음식 먹으면 기운나고 자꾸 그 음식 자꾸 먹으면 자꾸 자라가지.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구원은 처음 사랑 이것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이 본능적으로 제일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다. 없는 게 아니라.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어쩐지 하나님에게 대해서 정이 들어붙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고, 감사하고, 구원에 대해서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니까 모든 만물이 변해져.

그 구원의 도를 받기 전에 모든 삼라만상의 만물을 볼 때와 구원을 떡 받고 난 다음에 삼라만상을 볼 때에 모든 만물이 다 변해진다 말이오. 세계가 변해지고 모두 변해져. 그래 가지고 어쩔 줄 모르고 기쁘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정신 이상자라고 할 만치 그렇게 뜨겁게 된 사람도 있고 그래 뜨겁게 안 돼도 다소라도 그래 됐다 그 말이오.

복음 듣고 난 다음에 처음에, 지금보다 다른, 지금 없는, 지금 없는 처음에 그때에 그 기쁘고 즐겁던 그런 것을 겪어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겪어본 사람? 다 이것 겪었어. 이랬는데 그것이 자꾸 자라가야 돼요.

자라가는 건 이제 점점 지성적으로 자라갑니다. 아는 범위로 자꾸 자라가요. 아는 범위로 자라가고, 또 자기 이성적으로 자라가고, 이치를 따지는 대로 이치를 따져서 그렇다 그렇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하나 그런 줄 알고 기뻐했는데 지금은 그 ‘아멘’ 하는 것이 열도 스물도 넘습니다. 백도 넘습니다.

인정으로 자라가고,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자라가고, 자기 행위로 자라가서 만일 다른 사람 보기에 그때 그런 것과 같은 그런 일이 없어도 좀 신앙적이고, 더 모든 것이 사회적이고, 모든 것이 전체적이고, 인류적이고, 광대적으로 이러니까 이게 이 나타나는 것이 그때 하나의 일방적으로만 나타나지 안하기 때문에 이것이 보이지 안하나,?마치 물이 그뭐 한 평에 물을 재 놓으면 그 물이 한 석 길이라.

사람 세 길이나 될듯해서 빠져 죽을 만한 그런 옹당샘입니다. 옹당샘이지마는 그 물을 천 평에다가 부어 놓으면 물에 땅도 적시지도 안해. 쫙 퍼져. 그러나 그 물은 그만한 양이 있다 말이오. 이제 넓어져서 이렇지, 그것이, 그걸 잊어버리면 안 돼. 자꾸 생각해야 그게 넓어지고 깊어지고 커지지 그 처음 사랑을 생각지 안하면 그만 잘못하면 처음 사랑 생각지 안하고 돌리기 쉽다 그 말이오.

그래서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졸업 설교를 그것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여기 신앙이라 영감이라 진리라 그것 보고 다 따라왔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모든 교계에 전파하기 위해서, 그래도 다른 것은 할 수 없고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 이 승리의 생애 이걸 파수꾼을 가지고서 이것을 다른 교계에 전파해서 소식을 좀 알려 주고 하는데 그것도 돈 든다고 폐간해 버렸어.

파수꾼을 폐간해서 제가 이 파수꾼을 폐간할 수가 없다 해 가지고 우리 서부교회서 단독이 제가 그래 가지고서 파수꾼을 그때 몇 달 동안인가 계속했습니다. 계속하고 나니까 그들이 이제는 좀 뭐 필요한가 안됐는가 이래 달라 해서 또 줬지요. ‘그래 할라면 하라’ 그런데 그 파수꾼 지금 계속하고 있는지 없는지 제가 모르겠습니다.

‘신앙과 진리와 영감은 다 버려버리고 이제는 사업주의로 거석해, 사업주의로 해 가지고 병원만 차리면 되나? 사업주의로, 또 국제 무대에, 세계 국제 무대에 나서 가지고서 지금 국제에 이름을 날릴랄고 하는 이것이 진리와 영감과 이 신앙은 팔아버리고 그까짓 게 무슨 소용 있나?’ 이것을 내가 그날 강하게 외쳤다 말이오.

졸업 설교에 그것 하니까 졸업이 될 턱이 있습니까? 아니, 졸업 설교가 아니라.

강도사 인허 설교라. 강도사 인허 설교에 그러니까 그만 헛일이라.

설교할 때는 딱 뭐 그만 납작 눌렸지마는 나중에 설교 그치고 나니까 점심 때가 돼서 딱 그만, 내가 설교 그치고 나서 점심 먹기 시작했는데 그뒤에 갔다 와 가지고서 야단이 났어.

한상동 목사님이 대번 올라가더니마는 고함을 지르면서 ‘백 조사 무슨 의도로 그런 설교를 하느냐?’ 두 번 고함을 질렀어. 나는 저 맨 뒤에 의자에 앉았는데.

그래 내가 그 두 번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내가 발개를 딱 앉아 발개를 딱 찌껴트리고 딱 겨눠보면서 내가, 한번만 더 하면 내가 고함을 지를려고 내가 하고 있는데 두 번 하고 세 번 더 말하지 안했어. 그것 다 이거 설교록 나가 놓으면 다 본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

이게 뭐이냐? 보면 진리와 영감 주님보다도, 주님 믿다가 나중에는 주님 버려버리고 사업주의로 나가기 쉽습니다. 공명주의, 사업주의, 세계 무대에 나타나려는, 그러면 벌써 하나님은 떠나버립니다. 하나님은 떠나. 하나님 떠나는 것은 촛대 옮긴다 말이오. 촛대 옮기면 눈이 있으면 알 수가 있어요, 촛대 옮기는 것.

이런 것은 다 욕으로 보지 안하고서 ‘아멘’ 하고서 달라붙으면 삽니다.

그런고로 에베소 교회 문제를 내가 벌써 여러 새벽, 넷 새벽인가 다섯 새벽 했는데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우십시오. 공과를 다 외우고 눈감고 명상하면 이 공과에 대한 설교한 것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고 지하철 공사에 대해서 기도할 것은, 그 쇠말뚝은 빼면 안 됩니다. 그것 빼면 그걸 채울 도리가 없어요. 내가 보니까 채우는 것 보니까 헛일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벌써 여기까지 이 집에까지 무너져 집이 지금 이만치는 그 밑이 비어 가지고 갈라지고 있어요. 갈라지고 있는데 그것 해 버리면 안 돼. 그러니까 그것 안 뽑아야 되기 때문에 뽑지 않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나중에 시비를 할 때까지 가지 안하고 좋게 서로 타협해 가지고 뽑지 안하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될 것이라 말이오.

그러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지 맙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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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56 7가지 구원 순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28주후 선지자 2015.10.21
5455 7가지 대접 받은 우리의 할 일/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223화새 선지자 2015.10.21
5454 7가지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70828금새 선지자 2015.10.21
5453 7가지 중대한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70823주새 선지자 2015.10.21
5452 7가지 화/ 시편 91장 14절-16절 / 870103토새 선지자 2015.10.21
5451 7가지에 대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70927주전 선지자 2015.10.21
5450 7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70927주후 선지자 2015.10.21
5449 7교회-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29화새 선지자 2015.10.21
5448 7교회-에베소교회-8가지행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4주전 선지자 2015.10.21
» 7교회-에베소교회-이기는자/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새 선지자 2015.10.21
5446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30수새 선지자 2015.10.21
5445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야 선지자 2015.10.21
5444 7교회-에베소교회-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6절/ 871001목새 선지자 2015.10.21
5443 7대속 받는3방편/ 마가복음 10장 22절-31절/ 870108목새 선지자 2015.10.21
5442 80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0. 1. 7. 하오 2시 30분 선지자 2015.10.21
5441 87년 11월 교역자회의록/ 1987. 11. 2. 19시 선지자 2015.10.21
5440 88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8. 1. 4. 19시 선지자 2015.10.21
5439 8가지 알아야 할 것/ 요한복음 8장 43절-45절/ 871025주전 선지자 2015.10.21
5438 가견적 교회 불가견적 교회/ 학개 2장 20절-23절/ 820609수야 선지자 2015.10.21
5437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태복음 15장 21절-23절/ 810115목새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