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1987. 9. 30. 새벽 (수)

 

본문: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일곱 교회를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계시했는데 이 일곱 교회에 대해서 시대적으로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게 제일 처음 시대, 또 버가모가 또 그 다음 세대,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가 첫째, 서머나가 둘째, 버가모가 또 셋째’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왜? 제일 처음에도 마지막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순서가 일호 이호 작정된 것이 아니고 우리 신약 교회에서 가치적으로 중요성적으로 제일 첫째에다가 둬야만 하는, 제일 중요하고 제일 요긴하고 또, 제일 중요하고 제일 요긴하고 제일 범하기 쉽고 또 제일 유혹받기 쉬운 이 문제이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를 일호로 우리에게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여게는 어제 아침에도 헤아려 봤거니와 여덟 가지 아주 칭찬할 만한 장점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장점이 여덟 가지가 다 구비하지 안하고 몇 가지만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성자라고 할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을 아주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할 것입니다. 성자나 성녀로 칭찬할 것이고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가짜입니다.

이래서 “네가 이것을 회개해서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촛대를 옮기리라” 그 말은 촛대라 말은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옮긴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옮긴다는 그 말은 교회는 무엇이 교회인고 하니 세상의 빛이 교회요, 교회는 어떤 게 교회인고 하니 영생을 가진 그 산 것입니다. 또 교회는 어떤 게 교회인고 하니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과 모든 성도와 나와 이 셋이 합한 것이 교회입니다. 이게 참 교회인데 그러면 촛대를 옮긴다 말은 교회 옮긴다는 말인데 교회 옮긴다는 말은 너거는 이 구원의 도가 아니고 바로 거짓 기독교 적기독이다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거게 계시지 안하고 주님은 떠나시겠다 하는 말입니다.

영생도 없고, 또 완전도 없고, 영원도 없고, 불변도 없고, 또 능력도 없고, 전지의 지혜도 없고, 하늘나라에 갈 것도 없고, 그 날의 수입은 하나도 없습니다.

죽을 때에 가져갈 것 하나도 없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남아 있을 것 하나도 없고, 또 부활할 때 남아 있을 것 하나도 없고, 심판 받을 때에 남아 있을 것 하나도 없고, 또 영원히 보응받을 때에도 남아 있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성자입니다. 이런데 성자요 이런데 성녀입니다. 모든 사람이 성녀로 인정하고 성자로 인정할 수 있는 이렇게 훌륭한 행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이라면 이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이 이 촛대를 옮겨버리니까,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이 촛대를 옮겨버리니까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거게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또 일곱 별을 잡은 일곱 별이 내나 하나님의 사자인데 일곱 별 잡고 이 운동 산 운동 하려고 이랬는데 일곱 별을 잡은 그 사자의 가치가 없으니까 잡은 분이 놔 버립니다.

일곱 별은 하나님의 사자가 잡았는데 이 사자가 네가 회개해서 그 행위를 돌이키지 안하면은 던져버립니다. 던져버립니다. 주님이 던집니다. 거기에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관리하지 않습니다. 이런데 이 행위는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훌륭합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쭉 내려서 전체를 보면은 행위 그거는 나쁜 행위라 말이 아닙니다. 좋은 행위라 말입니다. 그 밑에 좋은 것을 죽 엮어놨기 때문에 위에 행위 그것도 좋은 것이라 그 말이오.

“네 행위를 안다, 또 네 수고도 안다, 네가 참고 견디고 계속하는 계속성 있는 것도 안다, 또 악한 자를 용납지 아니한 것도 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해 가지고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도 내가 안다.” 거짓사도를 이거 거짓 사도라 이래 드러내 가지고서 네가 정죄해서 그런 것을 모든 사람을 미혹시키지 못하도록 한 것도 내가 안다.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도 내가 안다” 또 네가 이 모든 것을 참고 계속했다. “네가 참고” 하는, 위에 쭉 말하고 나서 “참고”라 말은 제일 처음에도 인내라 말이 있는데 인내라 말이나 참는다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이런데 밑에 참는다 말은 이 모든 것을 계속한다 그 말이오. 이 모든 것을 계속한다. 여섯 가지를 계속한다. “계속하는 그 참는 걸 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는 것도 내가 안다. 게으르지 아니한 것도 안다.” 그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버렸는데 어데서 떨어졌느냐? 어데서 떨어졌느냐? 떨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연결이 끊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다시 들어붙으라 그 말이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 가지면 새로 들어붙습니다. 이 떨어졌던 것이 새로 들어붙습니다.

그러면 이 떨어진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것이요 구주에게서 떨어진 것이요 회개하는 것은 다시 들어붙어라. 처음 행위를 가지면 들어붙는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를 옮겨버리고 그 자리에 촛대가 없다 말이오. 교회가 없다 말이오. 참 교회가 없어진다 말이오. 주님이 안 계신다 말이오. 주님이 붙잡지 안한다 말이오. 주님이 그 관리,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데 촛대 옮겨버리니까 주님이 뭐 하려고 거기 다니겠습니까? 관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또 좋은 것 나옵니다.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제가 요번에 교역자회가 모이면은 이 말씀을 가르쳐야 되겠다, 이 말씀이 아니고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아무래도 증거해야 되겠다. 니골라 당이 뭐인지? 니골라 당을 미워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했습니다.

또 니골라 당도 미워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도 미워했소. 이러니까 뭐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좋은 점이 여덟 가지나 아홉 가지나 됩니다.

이런데 교회는 없애버립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 말은 들을 귀를 말하는 것인데 이거는 마음의 귀를 말하는 것이요 영감의 귀를 말하는 것이오. 영감 받아서 영감이 없으면 듣지 못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큰 대속의 역사가 있어야 들을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지 제가 혼자 제맘대로 듣고 깨달으리라고 생각하면 헛일입니다.

이 은혜가 같이 하지 안할 때에는 뭐 그 자리에서 설교해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이 막 울고 구불고 야단을 지겨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거 다 껍데기요.

아무 생명 역사는 없어. 생명 역사는 순전히 위로부터 내려와 가지고 역사하는, 피조물의 역사가 아니라 자존자 완전자의 그 역사입니다. 이것도 여러분들이 자꾸 들으나 구별 없이 듣고 모르기 때문에 예사로 알아.

이 세계에서 기독자의 구원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자꾸 이렇게 개량하고 연구하고 이래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냐 땅위의 것이 자라나가는 것이냐 순전히 하늘의 것이 내려와 가지고 새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냐 이것이 지금 문제점인데, 온 세계는 땅위의 것이 자라가고 하는 것이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고 해석이다 하는 것이 세계에 십분지 구는 될 것입니다.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새 것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하늘에서 내려온 새 것이 땅에 속한 헌 것을 전부 물들이고 감화시키고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고 성화시켜서 되는 것이지 땅의 그게 되는 것 아니다. 이거는 뭐 땅의 것은 안 될라고 애를 쓰고 방해하는데 하늘에서 나온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 이것이 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은 세계에 십분지 일이 될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도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서 말이 언제 한번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그러면 지금 어느 것을 취택하느냐 할 때에는 강의하는 분도 ‘이것은 세계 모두 정통에서도 이렇게 말하는데’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어느 것을 취한다는 그것은 확정을 지우지를 안했습니다. 그때 그것이 제가 듣고서 좀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어째 그것이 확정이 안 될까?’ 이러니까 이런 것도 여러분들이, 참 힘들게 가치 있게 생각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가르쳐 주시지 안하면 이 예수 믿는 도리는 암만 신구약 성경을 외워도 제 복음은 하나도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는 못하요. 예수 믿어야 되지 이 알고 예수 안 믿는 것은 자기를 정죄하는 것밖에 아닌데 그걸 모른다 말이오.

공산주의의 모든 정치가들이 이 성경을 얼마나 연구한 줄 압니까? 그거 다 명철한 사람들이 연구하기 때문에 성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외우고 있지만 이 성경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모릅니다. 만일 택한 자라면 그 사람이 영감받아 알 것이고 알면 언젠가 무신론주의를 다 버리고서 이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영감이 아니면 영감의 성경 도리는 하나도 깨달을 수 없다 하는 거 요것을 여러분들이 확정을 지우고 단정을 지워요. 요거 이러면 다른 데 구원에 가서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성경에 바른 것을 배워서 알았든지 스스로 깨달아서 알았든지 성경에 바로 안 것이 한 마디라도 있었으면 그 사람은 택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은 벌써 중생됐다는 증거요. 중생되지 안하고는 성경에 대한 도리를 한 마디도 바로 알 수는 없다고 성경이 말씀해 놨습니다.

또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 유한한 게 무한을 알겠습니까? 무한한 것을 아는 것은 무한한 존재가 와 가지고서 내주해야 그분이 아는 데에 어데까지나 피동입니다.

거게 거석하니까 거게 따라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스스로의 능동은 하나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것이 뭘 말합니까?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는 그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는 자, 처음 사랑을 가지고 처음 사랑의 행위, 처음 사랑의 생활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이 있다 말은 낙원이라 말은 우리가 대기할 곳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그 낙원이 아닙니다. 이거는 그 낙원이 아니고 그 낙원과 같은 성질의 같은 종류 것인데 그 낙원이 이 세상에 뻗혀 와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 있는 낙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낙원.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한 자는 한 사람도 이 낙원에는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 못하는 거, 이 낙원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인데 곧 세상에 있는 천국이오.

이러기 때문에 낙원이라 하는 것은 죽음이 없는 곳이오. 낙원이라는 곳은 죽음이 없는 곳이요, 죄가 없는 곳이요, 아픈 것이나 슬픈 것이나 고통이 없는 것이요, 낙망이나 원망이나 시비나 비관이나 불평이나 이런 것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도 우리가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이렇게 하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신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그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상 천국에 있는, 지상 천국이라 말은 요새 이 산업주의들이니 대학생 선교 조직이라 해 가지고서 하는 거 그 사람이 내나 그 사람입니다. 이제는 한국에 와 가지고는 그게 들통이 나 가지고서 그거 지금 그렇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휩쓸고 오기 때문에 그 세력이 은은하게 와 가지고서 결국은 다 삼키고야 맙니다.

진리에 바로 서지 안하면은 삼켜지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이냐? 합리주의입니다. 나는 합리주의라 하는 거 그거 모든 신학자들이 말하는 합리주의 나는 그걸 내가 말하지 안해. 내가 깨달은 합리주의. 합리주의라 말은 피조물들 이치에 맞은 것이라 말입니다. 창조주 자존자 이치에 맞은 게 아니라 피조물들 이치에 맞은 것이라.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과실은 영생합니다. 이 과실만 먹으면 영생합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뭐인가? 나무는 뭐인가?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생명이 있고 영생을 가졌다. 마지막 날에 다 산다.” 마지막 날 다 없어지는데, 죽는 날 다 없어지는데 죽는 날 그때 남아 있다.

예수님의 재림 날 모든 것 없어지는데 재림 날에도 남아 있다. 부활할 때에는 다 땅의 것은 하나도, 홍포 입은 부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때에 다 남아 있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도 다 생생하게 남아서 하나도 정죄받지 안하고 남아 있다.

영원 무궁세계에 보응 받을 때에도 다 남아 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생명나무가 뭐인가? 생명나무가 곧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말하면은 세 가지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이 과실을 먹게 하리라 말은 그로 말미암은 그 결과, 그로 말미암은 거게서 나오는 은혜를 받아서 먹게 하겠다. 이러니까 이 에베소 교회는 이거 못 먹는다 그 말이오. 이거 회개 안 하면 못 먹는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처음 사랑이 뭐입니까? 이 처음 사랑이 뭐인지 여러분들에게 연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처음 사랑이 뭐인지? 왜 이렇게 말하는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 비싸게 할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찍 가르쳐 주지 안하고 자꾸 말합니다. 왜? 여러분들이 너무 천하게 여기기 때문에 비싸게, 이것 잘못 하면, 그렇지 않습니까? 이 처음 사랑 이것 잘못 알면 헛일이라.

이렇게 뭐 행위가 완전하고 구비하고 뭐 칭찬할 만하지마는 이 처음 사랑 버렸으면 헛일이라. 이렇게 중요하지마는 ‘그까짓 거야 뭐 이렇게 말해도 되고 저렇게 말해도 되고 아무나따나 말해도 되지’ 이렇지 이것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안하기 때문에 말해 봐야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것이 기독자로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만하면 여러분들이 다 알 수 있어. 중요하니까 그게 뭐일까? 제가 늘 말하기를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전국학생 신앙운동 할 때 언제든지 새벽기도는 거의 맡아 놓고 제가 인도했었습니다. 제가 인도했는데 그때 내가 말하기를 죄악의 해독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 ‘천하에 가득찬 이 죄악이 나를 해치는 것보다 내 죄 하나가 나를 해친다. 모든 세계 있는 모든 죄를 위해서 울고 불고 하지마는 제 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데 너를 해할 자는 네 죄지 그것들이 해하지 못한다.’ 그때 너무 ‘이 민족의 죄악을, 이 인류의 죄악을, 뭐 이렇게 하지마는서도 제 죄에 대해서는 도무지 까마득히 생각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런 증거를 했습니다.

‘자타가 알고 있는 죄, 네가 네 죄로 알고 또 다른 사람이 네게 그런 죄가 있는 줄 알고 자타가 알고 있는 죄 전부보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너만 알고 있는 죄 그것 하나가 더 네게 해독이 크다.’ ‘너만 알고 있는 죄 전부의 해독보다도 네가 죄인 줄 모르고 있는 그 죄 하나의 해독이 더 크다.’ ‘네가 모르는 죄 모든 것보다 더 큰 죄가 있으니 그거는 뭐이냐? 주격이 바꾸어지지 안한 것이 그것이다. 네 주인이 지금 바꿔지지 안했다. 네 주인이 네가 네 주인이 되어 있다. 그것 되어 있으면 모두 다 헛일이다.’ 그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들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는 것이 그거 몇 절입니까? 요한일서 4장 10절이가? 그런데, 그러니까 요것을 잘 잡아서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자기가 확실히 깨달아서 잡아야 자기에게 구원이 되어지고 복음이 되어지지 이것을 지금 말을 들으니까 그만 지내보내 버리고 지내보내 버리고 그렇다 그거요.

그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게 이제 아침에 세어 본 것이 장점이 몇 가지지요? 여덟 가지. 그 다음에 니골라 당의 무리를 미워한 또 이것까지 세면 몇 가지입니까? 아홉 가지. 아홉까지 이렇게 훌륭한 일이 있었지마는 주님 앞에는 쫓겨남을 당하고 주님하고는 원수입니다. 적입니다. 그게 뭐일까? 그러면 우리 신앙 생활에 무엇을 버리고도, 무엇을 버리고도 이 아홉 가지를 할 수 있는가? 녜, 주님이 원하시는 처음 행위 이 사랑을 버리고도 이 아홉 가지를 할 수 있는 그것만 찾으면 됩니다. 아홉 가지 했기 때문에. 이 처음 사랑은 버리고도 아홉 가지는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아홉 가지를 하되 처음 사랑은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인가? 그걸 찾아 봐요.

이 아홉 가지는 훌륭한 것인데 이 처음 사랑을 버리고도 아홉 가지를 능히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또 아홉 가지를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잘 하는데도 이 아홉 가지 속에는 처음 사랑이 안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 말이오.

처음 사랑을 가지고 이 아홉 가지를 할 수도 있고 또 처음 사랑을 빼놓고 아홉 가지를 할 수도 있고, 또 처음 사랑이 아홉 가지를 할 수도 있고 처음 사랑 없이도 할 수 있고 처음 사랑 아닌 다른 것이 이 아홉 가지를 할 수도 있다. 요게 뭐인지? 요것을 찾으십시오. 그게 뭐인지? 이래서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요리 맞추고 조리 맞춰 보니까 이거는 뭐, 꺼꾸로도 맞춰보고 옳게도 맞춰보고, 위도 맞춰보고 밑에도 맞춰보고, 옆에도 맞춰보고, 앞도 맞춰보고 뒤도 맞춰보니까 ‘요게 빠진 것이 요것이로구나’ 하는 그걸 여러분들이 잡으십시오. 그냥 하지 말고.

그거 내가 어떤 사람한테 들었는데 미국에서 온 아이가 어떤 아이가 여기 와서 강의를 잘하니까 서울에서 내려온 아주 유명하다고 청해 가지고 여기서 강의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인기는 아무것도 아니고 이 사람 인기가 크니까 이제 그 사람이 와 가지고 묻더래요.

‘미안하지마는 하나 물어봐도 좋습니까?’ ‘예' 이러니까 `자기는 어떻게 해서 그 강의를 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다 인기가 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그렇게 따르고 환영하고 그렇습니까?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서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하면 다 나오는데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한테 그 사람 노력해 놓은 것 그냥 말 한 마디 해 가지고서 들어서 가질라 하는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기도 다 연구하고 노력하면 됩니다. 노력을 해 가지고 알도록 하십시오. 나는 안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말했다고.

그거 우리는 그럴 때에 그 박해서 그런 소리 못하겠고 이 복음에 또 뭐 옳은 것 그런 것은 자꾸 이래 가르쳐 줘야 된다 하는데 성경 이 복음 진리는 몰라도 가르쳐 주지마는 세상 일은 참 그래요.

이제 이것도 내가 지금 인제 나도 그런 걸 좀 배워 놔서, 여러분들이 이제 그만하면 다 알아. 이것은 이 아홉 가지가 이것이 이제 처음 사랑 없이도 아홉 가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또 처음 사랑이 아홉 가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 아홉 가지를 하면서 처음 사랑을 박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처음 사랑의 원수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아홉 가지가 구비했는데 이 아홉 가지가 촛대를 옮기니까, 교회를 옮기니까 교회를 박멸하는, 교회 박멸하는 이 아홉 가지라. 이 아홉 가지가 교회 박멸하는 것이라.

이런데 사람은 ‘야, 그 사람은 참 훌륭한 목사다, 그 사람은 성자다, 성녀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훌륭한 장로다, 훌륭한 목사다, 훌륭한 성녀다, 성자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보시고 ‘요것은 나의 적이다. 교회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 둘 수 없으니까 교회를 내가 옮기겠다.’ 이랬으니까 그게 뭐인지? 이만치 중대한 걸 생각지 안하고서 이 처음 사랑이 뭐이라는 데 대해서 관심 없이 뭐 이거 거게 아무거라도 뭐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다 이럴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중요하니 그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 가지지 안하면 촛대 옮기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거 가서 돌아가 가지고 연구하십시오.

그라고 일곱 가지 늘 말했는데, 잘 자는 것, 잘 먹는 것, 또 영적으로 성경 잘 먹는 것, 또 기도 잘 하는 것, 일 잘 하는 것, 또 모든 인간과 사물 접촉 잘 하는 것, 마지막은 잘 노는 것, 일곱 가지인데, 잘 먹는 것은 어떤 것이 잘 먹는 것이냐 하면 잘 먹는 것은 자기 구원에 해될 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먹는 것, 자기 구원에 해되는 잠은 제해버리고, 자기 구원에 해되는 성경 보는 것 제해버리고, 해되는 기도는 제해버리고, 또 해되는 일하는 것은 제해버리고, 해가 되는 그 모든 접촉은 제해버리고, 해가 되는 노는 것 제해버리고 자기 구원에 유익된 것만 이 일곱 가지를 하는 것, 그게 뭐이냐? 그게 자기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것.

일곱 가지 자기 것이 뭐이냐? 요것 아는 사람이면 위대한 사람입니다! 요것 아는 사람 요것 실행하는 사람이면 그는 뭐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여게 대해서 얼마나 부족한지 모르니까 요 일곱 가지를 생각해서, 자꾸 그것도 자꾸 알려고 하면 자꾸 나와. 왜? 알려고 하면 일학년은 일학년으로 알고, 일학년 알고 난 다음에 하고 나면 이학년을 알게 되고, 이학년 과정을 알고 실행하게 되면 삼학년 과정을 알게 되고, 자꾸 올라가고 자라가고 커가지 이 초절적으로, 도적질하는 것 모양으로 이거 모두 남의 것을 끌어들여 가지고 알아지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암만 말해야 알아지는가? 꼭 기독교의 구원은 제가 실행한 것만큼 알지, 우리 지식이 몇 가지라요, 손가락으로? 인제 둘도 가리키고 서이도 가리키는데. 서이라, 셋. 셋. 하나님의 지식, 마귀 지식, 자기 지식 이 셋이라. 셋이라야 돼져요.

그런데 행함이 없으면 자기 지식이 결국은 마귀 지식이 되어요. 마귀 지식이 움난 것 있고, 마귀 지식에 접가지 받은 것 있고 하나님의 지식에 접가지 받은 것 있어.

우리는 하나님의 모형도 될 수 있고 마귀의 모형도 될 수가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언제든지 외우도록 하십시오. 지하철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것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잊어버리면 앞으로 큰 환난 올 때에 당황하고 암만 당황해 봤자 소용없어. 그때 생명 내줘도 소용 없어요.

과거에 우리 전국에, 어느 진영이라고 말할 것 없이 전국에 순교자 유가족에 대해서 전국에 책임지고 일하던 분이 여기 앉았습니다. 여기 ○○○권사님이 안용준 목사님하고 같이 그 일 했습니다. 그 일 했는데 순교자들은 정말로 몇 사람 안 됩니다. 다 그것은 제 욕심 노릇 하다가 다 죽은 것이지 모두 다, 그 좀 상스러운 말이 될런지 몰라도 아이들 말로 그것은 개죽음이지 순교는 아닙니다.

순교인지 개죽음인지 그것도 생각지도 안하고 그래 하고 있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무슨 운동 하다가서, 정치 운동하다가 그래 죽은 것도 그것도 아니라. 내가 지금 공산주의를 반대하는데 이 공산주의 반대하다 죽은 것도 그것도 순교 아니라.

순교는, 순교라는 교(敎)자는 뭐이냐 하면 기독교, 예수님의 이 순전한, 순전하고 깨끗한 주님의 구속을 인해서 죽은 것이라야 순교입니다. 저 ○목사님, 어때요? 순교가 그게 순교입니까? 그게 진짜 순교라.

뭐 이 세상에서 세상 일 하다가 남의 일 간섭하다가 당하는 것, 그래서 제가 지금 많이 회개하고 있는 것은, 세례요한이가 죽었는데 그걸 나는 처음에 의인이니까 순교로 이래 생각했는데, 아니라. 남의 일 간섭하다가 죽었어.

세례요한이는, 헤롯이야 제가 헤롯이 그뭐 하나님 섬기지 안하는 그자야 그 제수를 데리고 살든지 뭐 어떻게 하든지 뭐 그것 상관할 게 뭐라? 그것 간섭하다가 그랬어. 그것 간섭할 필요가 없어. “남의 일을 간섭하다가 고난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귀하다”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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