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교회-에베소교회-처음행위

 

1987. 10. 1. 새벽 (목)

 

본문:요한계시록 2장 2절∼6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많은 좋은 점이 있으나 책망할 것이 하나 있다 말씀했습니다. 이 책망할 것은 이것이 뭐 보통이 아니고 책망할 거 이것을 회개를 안 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라 말은 네 등불을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교회를 가리켜서 금촛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옮긴다는 말이니까 아무리 그 아홉 가지 위대한 행위가 있지만 교회를 옮기니까 그 위대한 행위를 아무리 해도 교회는 아니다 그 말입니다.

교회는 아니다. 위대한 행위를 아홉 가지를 하지만 교회는 아니다.

또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절단돼 있는 것이다. 절단돼 있으면서도 이 아홉 가지 행위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자들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하는 것은, 사도는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인물들인데 이 중요한 인물들은 안 믿는 사람들도 미워할 수 있고 또 공산주의자들도 제일 미워하는 것이 기독교의 그 주동적인 그런 인물들을 제일 미워합니다.

그러기에 그런 아홉 가지 행위, 여게 살펴보면, 여러분들이 가서 많이 읽어 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인본주의 세상주의, 교회에 대마귀노릇 하는 사람들도 이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건너다 보고 단점을 찾아서 정죄하고, 또 자기 명예주의, 자기 주관주의, 자기 공명주의, 자기의 자존심, 자기의 고집, 자기의 교만 이런 거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이 네게 있는 걸 내가 모르는 게 아니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네게 있는 걸 내가 안다. 그러나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너는 교회는 아니다. 그런고로 네가 돌이켜서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이랬는데, 그러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어떤 걸 말하는가? “처음 행위를 가지라” 이랬어.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면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곧 행위를 버린 것이라 그 말입니다. 행위를 버린 것이라.

그러면 무슨 행위를 버렸는가? 행위는 지식이 아닙니다. 행위는 지식이 움직이는 것을 가리켜서 행위라 하는 것인데, 이 처음 사랑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이 구원이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지식적으로 알고 자기가 아주 교리 학자고 신조 학자고 또 신학자고 또 목사고 장로고 뭐 여게 대한 교리와 신조를 아무리 똑똑히 알고 있어도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요게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 행위가 있어야 되는데 행위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행위, 처음 사랑을 버렸다 말은 처음 행위를 버렸다. 네가 돌이켜서 처음 행위를 해라 하는 것인데 그러면 그 행위는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간추려서 말하면 열여섯 가지인데, 기억하고 깨닫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열여섯 가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죄와 칭의 화친 그 속에 다 포함된 것인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깨닫고 실행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열여섯 가지로 우리는 말씀을 했습니다. 또 조금 범위를 더 넓히면 더, 넓혀서 말하면 더 세밀히 말해서 더 깨닫기가 쉽겠습니다.

우리는 열여섯 가지 가운데에 이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구원의 본질이 되는 그 다섯 가지를 우리들이 간추려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유일하신 목적으로 정하신 그 목적 곧 그리스도 안에 예택되는 이 예택 구원 이것을 우리들이 입게 됐습니다. 우리가 존재해 가지고 존재한 후에 이리 돼서 입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존재도 전에, 하나님이 이렇게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안에 우리가 있게 됐다 그 말이오.

또 목적 안에 있는 우리들이 이 목적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셨는데 그 예정에 또 우리 구원이 들었다 말입니다. 그 예정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구원 받을 자로, 구원에 참가할 자로 예정되었고 우리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게 이용하려고 모두 예정하셨다 그거요. 이 예정 구원.

또 이대로에 창조하셨는데, 예정할 때 우리가 예정 속에 들었고, 예정은, 우리가 예정은 존재가 되지 안했지요, 창조 안 했기 때문에. 존재되지 안했으나 예정 안에 우리가 있게 됐고 목적 안에 있게 됐고 또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하셨는데 이 창조 안에 있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는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창조로부터 우리는 존재하게 됐습니다. 이랬는데 이 구원을 “창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택하셨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러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도성인신하신 이 구원,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신 이 큰 은혜를 우리가 참가해서 받게 됐습니다.

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살으신 부활하신 이 두 가지 사활의 이 공로의 모든 설정된 이 은혜를 우리가 다 받게 됐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본질이요 이것이 기초인데 이것을 처음에는 예수 믿는 데에 낱낱이 이래 설명 듣지는 못해도 자기에게 영감으로 감동시켜서 다 처음에 복음을 들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리가 됐다.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 이 몇 가지를 간추려서 말해도 우리 속에는 영감이 역사해서 무슨 행위가 나타났던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멀던 우리가 가까와졌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하고 어떻게 친밀해졌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만족하고 감사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에 대해서 자기가 전도를 들어 예수 믿기로 척 시작하고 나서 보니까 어떻게 감사한지 뭐, 그저 어떻게 돼서 뭐 이 감사하다는 걸 다, 감사의 원인도 깨닫지도 못하면서 그저 감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 감사함으로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감사함으로 기쁨이 충만해져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우리가 들어서 믿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이 사랑에 대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뭐 무슨 조건이나 그런 지성적인 그런 것이 아니고도 그저 감사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그렇게 밀접해지고, 이렇고 보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사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감사하고 기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츰 사랑하셨는데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몰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서로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라 그렇게 하셨다” 하는 이 도리를 뭐 그렇게 구체적으로 많은 공부를 안 해도 어쩐지 그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감격해서 감사와 기쁨이 우리 행동에 나타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이 행동이 나타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원수도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해서 또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요 행동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처음 믿을 때에 다 이것이 다 작용하고 역사한 것을 택한 자라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택한 자라면 예수 믿기 시작할 때에 어짠지 하나님의 사랑을 들을 때에 감사하고 기쁘고 그래서, 그만 뭐 지금보다 오히려 하나님하고, 철이 없는 그런 뭐 무지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쩐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고 또 형제를 사랑하게 된 요 행동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대속해 주신 이 구속의 이 구원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고, 이 구속의 이 구원을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깨달았고 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고 또 형제를 사랑하게 된 그 행동을, 그 작용을 가리켜서 여게 처음 사랑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차차 예수 믿게 되면은 주님의 이 구속에 대한 이 세 가지 사랑, 이것은 식어지고 없어지고 이제 거게 하나의 소속하고 소속해 있는 이모든 다른 법적인 이 행위, 자기가 이 세상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 기독교 복음 운동에 대해서, 이것은 다 하나의 행동이요 자체는 아닙니다.

자체가 살아나고 나면 뭐 숨도 쉬고 또 팔다리도 움직이고 일도 하고 하지만 이것은 자기 생명은 아닙니다. 생명이 오면 그런 것을 하고 생명이 없으면 그런 것 못 하는데 우리의 생명인 이 세 가지 행위가 나타나는, 이 세 가지 사랑의 행위가 나타나는 이 생명, 이 구속, 이 구속은 버렸고 이 구속 없이 그저, 이 구속으로 인해서 우리 행동이 돼야 될 터인데, 이 구속으로 인하여서, 구속에게 피동돼서, 구속으로 인해서 시발돼서 이런 모든 행동이 아니고, 구속은 버렸는데 행동하니까 이것은 한 습관이요, 악령 악성 악습 옛사람 그놈이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거와 같은 그런, 속에 악이 들어서 행동하고 자기가 들어서 행동하는 것이지 자기가 완전히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의 구속하신 그 구속에 피동돼 가지고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 말이오.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 것을 여게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곱 교회 가운데에 에베소 교회를 제일 처음 순서로 놓은 이유는 이것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이 외부에 도덕 생활이 훌륭하고, 사회 생활이 훌륭하고, 또 민족 생활이 훌륭하고, 가정 생활이 훌륭하고, 또 모든 예의 범절이 훌륭하고, 정치 생활이 훌륭해서 뭐 국가 의무나, 가정의 의무나, 사회 의무나, 자기의 직장 의무나, 자기의 모든 이런 행위 의무가 구비하다 말이오.

아주 구비하고 훌륭하지만 그것이 순전히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해서 거게서 자극되어서 구속으로 인하여 구속에 피동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구속은 잊어버렸고 다만 안 믿는 사람에게도 작용하고 있는 악령 악성 악습이 작용하는 그 작용으로 인해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그런 행동하는데 행동이 나쁜 게 아니라 그 행동은 좋은 행동이지만 그 행동이 악령 악성 악습에서 우러나 가지고 거기서 시발돼서 그 힘으로 네가 행동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너와의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의 그 능력에게 피동되어서 그와 연결된 행위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는 “어데서 떨어진 걸 생각해라” 하나님께 너는 떨어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 구원이나, 창조 구원이나, 예택 구원이나, 도성인신의 구원이나, 사활의 대속의 구원이나 이 구원, 이 구원은 변동할 수 없어 그대로 있지만 네 행위적으로는 완전히 여게서 떨어졌다. 네 행위적으로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가 떨어졌다.

“그런고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네가 생각해라. 이러니까 처음 행위를 가지라.” 이 세 가지 사랑을 네가 가지라. 예수님의 이 대속하신 사랑에 감격돼서 내 마음이 감사하고 기쁨이 있는 이 행위가 있어야 되고, 또 그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이것이 있어야 되고, 그로 인해서 형제를 사랑하는 그 행위, 이러니까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돼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 사랑을 인해서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 세 가지 사랑을 인하여서 움직여지는 그 행동이 아니라면 이것은 다 거짓부리요 악의 소산이라. 악의 소행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요게 이해가 안 되면 안 돼요. 이해가 돼야 돼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요 다른 게 아닙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그 말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 말은 법적으로 제가 버릴 수도 없어요. 법적으로도 버릴 수가 없어요. 예정적으로 된 것을 버릴 수가 없어요. 창조적으로 된 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도성인신으로 된 것도 버릴 수 없어요. 도성인신의 혜택도 버릴 수가 없어요. 사활의 혜택도 버릴 수가 없어요. 이런데 자기는 입고 있으면서 행동으로는 완전히 벗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 행위를 가지라. 이 행위를 가지지 안하면 너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다. 그러면 결국은 너는 촛대 옮긴다.” 너는 참된 기독교가 아닌 거짓 기독교가 되고 만다. 요게 중요합니다.

오늘에도, 사람들을 만나서 여게서도 그래 가지고, 기독교 윤리주의를 버리라.

이거는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 윤리주의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돼 가지고 이 처음 사랑을 가지고 윤리도 찾고, 처음 사랑을 가지고 사회도 찾아서 사회의 의무도 감당하고, 이 처음 사랑을 가지고 이제는 국민 의무를 하고 가정 의무를 하고 이 처음 사랑 이것이 제일 시발이요 종자요 요 원동기가 돼 가지고, 원동이 돼 가지고 거게서 나서 가지고 세상 생활 모두 다 해.

이렇게 해야만 요것이 기독교고 구원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가족주의가, 주의라 말은 자기의 사상이나 행동에 제일 주도가 되고 주력이 되고 제일 주장이 되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주’라고 말합니다. 사회주의라 하면 그 사람은 사회에 대한 그것이 제일 자기의 생애 중에 제일 주력이 되고 제일 원력이 되고 제일 거게서 권위 있게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유물주의라 말은 돈 물질을 제일로 여겨서, 유물주의도 뭐 하나님 안 섬기는 거 아니지요.

이러니까 여게 주의라고 말하면 주격을 두고서 시비하는 것입니다. 유물주의라면 그 사람이 물론 기독교도 믿고 하나님의 구속도 다 믿지만 그 사람에게 제일 그 행동에 주체되는 것이 물질이요, 또 그 사람의 사상에 제일 주체되는 게 물질이요, 이 물질이 자기를 제일 주력 있게 제일 주권적으로 관리하고 주권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주의라 말합니다.

이래서 이 처음 사랑을 가지고 처음 사랑의 행동을 하니까 처음 사랑 행동은 처음 사랑 이것이 사회 행동도 해야 되고, 가정 행동도 해야 되고, 국가 행동도 해야 되고, 모든 자기의 직장 행동도 해야 되고, 예의 행동도 해야 되고, 도덕 행동도 해야 되고, 그 힘이 들어서 해야 되는데 그 힘이 들어서 하지 안하고 이것은 꺼꾸로 돼 가지고서 그 모든 세상에서 속한 그 행동을 하는데, 악령 악성 악습이 그놈이 이제 죽어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이 생명,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들어서 하지 안하고 이 세상과 연결된 그것이 하고 있다 말이오.

하고 있는데 세상과 연결된 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척 하고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간판으로 붙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이용을 해 가지고 실상 내용은 세상과 연결돼 있다 말이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연결된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지금 신앙 생활 하고 있다 말이오. 이것은 하나님과는 상관 없으니 이거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 말입니다.

“촛대를 옮긴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 윤리주의를 버리라. 너거는, 너거 성받이는, 과거에 대성받이들은 다 대성이 그것이 하나의 그 민족 가운데서도 대성 그것이 주의가 돼 가지고 주체가 돼 가지고 그거 위주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온 나라의 모든 문벌, 모든 자기 문중, 뭐 백가 문중이면, 이가 문중이면, 김가 문중이면 무슨 문중 하는 문중 있지 않습니까? 문벌. 이제 그것이 주동이 돼 가지고 지금 이 문벌과 문벌끼리 시비하고, 말하자면 문중과 문중끼리 시비하고 성받이와 성받이가 시비하면서 그걸 뭉쳐 가지고 살고 있는 그것이 과거였습니다.

이러니까 너는 윤리주의를 버려야 되지 윤리주의를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된다. 너는 기독교 도덕주의 그걸 버려야 되지 도덕주의를 버리기 전에는 너는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된다. 너는 사회주의와 지금 연결됐으니까 사회주의와 연결된 그걸 버려야 된다. 너는 이 세상주의와 연결된 것을 버려야 된다.

이래서 이것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면 다른 사람이 보고 그것은 ‘이 기독교가 아니라 염세주의다. 이 기독교 염세주의 이는 못쓸 것이다.’ 못쓸 것이다 하지만 그거를 일단 버려야 됩니다.

버리고, 그 연결이 되면 버려집니다. 연결이 되면 버려져 가지고 이제 연결된 그 행동을 하니까 처음에는 연결된 행동이니까 거게까지 충만히 나가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저놈 못쓸놈 됐다. 나쁜놈 됐다.’ 이러지만 하나님과의 연결된 그 행위가 차차 차차 자라가고 보니까 도덕 행위도, 윤리 행위도, 가족 행위도, 또 국민 행위도 이뭐 모든 행위가 다 완전으로 다 이루어 갈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요거 여러분들이 지금 요 말을 요렇게 해도 못 알아들으면 스스로는 깨달을 수는 없어.

이제 좀 이치가 됩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 그러면 “촛대 옮긴다” 말은 교회 옮긴다 말이오.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떨어졌다 말은 예수님과 상관이 떨어졌다 그 말이오. 하나님과 상관이 떨어졌다 그 말이오. 이 구원은 옮긴다, 이 구원은 네게 없다 그 말이오. 얼마나 무서운 소리입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제가 언제, 김재순씨라고 여게 있었습니다. 제가 서부교회에 그때 지금 모두 권사님들인데 같이 심방을 가서 그 신윤필씨 집에 가 가지고 대심방 때인데 거기 가서 설교할 때 내가 설교하다가 그 말이 나왔었습니다. 신윤필씨도 그때 이 세상 행위로서는 모순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안했습니다. 처음 사랑, 하나님과 연결된 행동을 하는데 연결된 행동을 다 하지 못하고 연결된 행동이 뻗혀지지 안한 데는 다른 사람이 보고 욕을 합니다. 이러나 하나님과 연결은 됐습니다.

이래서 그거 내가 쭉 가 가지고 모두 지금 권사님들 된 분들인데 내가 말하기를 ‘자기네들은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다 미꿈하게 모든 일이 구비해서 훌륭한 그렇게 신앙가인 줄 알지만 너거는 아직까지 연결이 안 됐다. 연결이 안 돼서, 그 생활이 내나 뭐이냐 하면 자존심이 하고 있고 자기 주관이 하고 있고 악령 악성 악습ㅡ그때 그 말은 안 했습니다. 그거 나는 그걸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ㅡ옛사람이 들어서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하고 있지 않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은 너거가 없다. 오늘도 오면은 하나님을 떼 버리지 안하면 목숨을 가지지 못하게 될 때에는 이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어도 너거는 목숨의 십분지 일이 위험해도 다 도망쳐 가지고 어데로 갈지 모를 인간들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게 외식이다.’ 하는 그걸 말했었습니다.

말하고 그때 또 하나 말하기를, 여기 김재순씨로 말하면 죽었습니다. 그는 폐병 환자로 죽었었는데 그 사람이 폐병 환자로 있으면서 다른 행위는 거석했지만 이성 행위에 대해서는 뭐 아무것도 아니게 그렇게 했었습니다.

했었는데, 그래 내가, 그분이 거기 없었어. 그분을 들기를 ‘그분을 너희들이 볼 때는 죄인 중에 죄인으로 그렇게 보고 있지만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성은 너거는 연결이 안 됐는데 그분은 연결이 됐다. 만일 지금이라도 순교할 일이 있으면, 주를 위해서 생명 내놓을 일 있으면 그분이 너거보다 앞서 가고 이제 하지만 너희들은 전부 도덕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 윤리주의, 가족주의, 체면주의, 예의주의 이런 것이 들어서 신앙 생활이라고 하고 있지 하나님과 연결된 거기에 붙들려서, 그로 인해서 피동되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는 그런 말을 제가 강하게 그때 좀 했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처음 사랑을 버렸다” 처음 사랑 버린 거는 뭐이냐? 지식으로 버린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지식으로 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행위로 버렸다. 네가 하나님의 이 구속의 사랑에 감격된 그 행위가 없다. 네가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그 사랑하는 행위가 없다. 그 사랑에 피동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없다.

네가 무슨 이거 도덕적으로 이 세상에 빛노릇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명예 얻기 위해서, 예의와 체면 얻기 위해서, 아니라! 예수님의 이 대속, 구속 거기에, 구속의 구원을 인하여 네가, 독사와 같고 냉정스럽던 사람이 네가 형제를 사랑하게 됐다. 형제를 사랑하는데 뭐 사랑하는 게 조그마치, 형제를 사랑하는 게 쌀내끼만치 있어도 그 있는 그것은 예수님의 구속이 동기되고 구속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이 집채만치 사람을 사랑해서 톨스토이와 같이 박애주의로 인간을 그렇게 사랑하고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하고 한다고 할지라도 여기에 피동돼 가지고 하지 안하는 그것이니까 그거는 생명이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생각하면 자꾸, 너는 도덕주의 신앙을 버리라, 뭐 사회주의 신앙을 버리라. 너는 예수를 잘 믿는 척하고 있지만 너는 정치주의다.

과거에 우리 나라에 처음 선교사들이 온 분들도 그분들도 정치 사상을 띤 정치주의의 신앙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가지고, 또 초기에 우리 한국에 있는 기독교가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일본으로 더불어 합병되고 난 다음에 그 이후부터 너무 식민 생활에 고달파서 거게 충격 많이 받다 보니까 기독교가 하나의 정치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3 운동은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위대한 운동이지만 우리는 거게 대해서 세밀히,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지 안하고 민족 운동, 애국 운동 그것이 주체가 됐다고 하면 그것은 가짜요 껍데기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한 그 운동에서도 민족을 또 국가를 얼마든지 사랑하고 하는데 거게서 동기돼 가지고 그 역사가 이루어졌는지 혹은 그것이 아니고 원동이 뭐인지? 원동이 뭐인지가 문제입니다.

원동이 만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원동이 아니고 다른 게 원동이 됐다면 다 그거는 가짜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서 구별해서 따져야 된다 하는 것을 제가 벌써 한 사십여 년 전에 그것을 많이 말하다가 ‘이거 도로, 한번만 말해 주지 뭐 이거 그렇게 자꾸 말하면 도로 오해받기 쉽다.’ 해 가지고 그때는 안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대로는 거기 대해서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면 내가 촛대를 옮기겠다.” 네가 하나님에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그 말이오. 연결이 끊어진 것은 법적으로 연결이 끊어지지도 안했고, 예정적으로 연결도 끊어지지 안했고, 창조적으로 연결 끊어진 것도 아니고, 선택적으로 연결 끊어진 것도 아니고, 중생적으로 연결 끊어진 것도 아니고 다만 행위적으로 끊어졌다.

행위적으로 끊어졌으면 이 행위에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 구원은 지금 행위의 구원, 행위구원을 이루려 하는 것인데 행위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다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되는가? 이해가 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해가 돼야 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지난밤에 증거한 그 말씀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계속할라 하다가 아무래도 이제까지 쌓아 나왔기 때문에 이게 더 중요하니까 이것을 지금 오늘 아침에 증거하고 그건 또 뒤로 돌려야 되겠다 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듣는 것이 다 우습게 생각하지만, 우습게 여기는 것은 여러분들과 거리가 먼 도이기 때문에 우습게 여깁니다.

여게서, 도덕적으로 양심을 살리라, 다른 사람을 봉사해라, 희생해라, 뭐 어째라 하는 그런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잘 들리는 것은 그거 여러분들과 가깝고 하나님의 도는 여러분들과 멀기 때문에 좀 먼 감을 가지게 된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결혼 상담회 오늘 아침에는 모이지 안한답니다. 공과를 다 외우도록 하시고, 다 그걸 외우고 난 다음에 자꾸 눈감고 생각하면 지난밤에 제가 증거한 것이 거게서 떠오르게 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잃지 말고, 자기와 자기와의 관련된 모든 것에 앞으로 대환난이 있을 터인데 그 환난을 기쁨으로 평안으로 잘 이겨서 그 환난이 들어서, 다니엘에게 닥친 환난이 다니엘에게 환난이 아니라 크게 영광스럽게 한 것이 되었고 만일 그렇지 안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만 평생 영원한 사망과 같은 그런 큰 해가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앞으로 환난이 우리에게는 큰 영광이 되고 평강이 되어지고 우리가 기도하지 안하면 앞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큰 환난이 되어서 영원한 수치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요. 깨달아야 돼요. 처음 요걸 구별해서 알고 나면, 똑똑히 알고 나면 그 다음에 없어지지 않고 살기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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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56 7가지 구원 순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28주후 선지자 2015.10.21
5455 7가지 대접 받은 우리의 할 일/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223화새 선지자 2015.10.21
5454 7가지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70828금새 선지자 2015.10.21
5453 7가지 중대한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70823주새 선지자 2015.10.21
5452 7가지 화/ 시편 91장 14절-16절 / 870103토새 선지자 2015.10.21
5451 7가지에 대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70927주전 선지자 2015.10.21
5450 7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70927주후 선지자 2015.10.21
5449 7교회-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29화새 선지자 2015.10.21
5448 7교회-에베소교회-8가지행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4주전 선지자 2015.10.21
5447 7교회-에베소교회-이기는자/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새 선지자 2015.10.21
5446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30수새 선지자 2015.10.21
5445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야 선지자 2015.10.21
» 7교회-에베소교회-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6절/ 871001목새 선지자 2015.10.21
5443 7대속 받는3방편/ 마가복음 10장 22절-31절/ 870108목새 선지자 2015.10.21
5442 80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0. 1. 7. 하오 2시 30분 선지자 2015.10.21
5441 87년 11월 교역자회의록/ 1987. 11. 2. 19시 선지자 2015.10.21
5440 88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8. 1. 4. 19시 선지자 2015.10.21
5439 8가지 알아야 할 것/ 요한복음 8장 43절-45절/ 871025주전 선지자 2015.10.21
5438 가견적 교회 불가견적 교회/ 학개 2장 20절-23절/ 820609수야 선지자 2015.10.21
5437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태복음 15장 21절-23절/ 810115목새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