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가나안 여자의 믿음

 

1981. 1. 15.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15장 21절∼23절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렇게 뒤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예수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지나가시니까 그대로 걸어가시니까 이  제자들이 보기에도 너무 이 여인에게 대해서는 아주 냉대하는, 아무 상관없는,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이런 냉대한 일을 하시니까 냉대하게 이렇게 하시니까  제자들 보기에 너무 답답해서 ‘저 여인이 우리 뒤에서 이렇게 부르짖는데 무슨  말이든지 뭐 안 된다든지 된다든지 그러면 꾸중을 한다든지 무엇이든지 응답이  있어야 되지 아무 응답 없이 그래 가십니까?’ 보기에 너무 답답해서 그  냉대함에 대해서 답답해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에서 고함을 지를 때에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면 이제는 됐다  하고 좀 안심을 하고 헐떡거려 달려오던, 헐떡거려 오면서 뒤에서 부르짖던 그  여인이 좀 마음이 안정이 되겠고 또 좀 마음에 든든해질 터인데 그렇게 예수님이  하시지 아니하시고 못 들은 것같이, 보기에 모든 제자들이 보기에 답답할 만치  냉정스럽게 이렇게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때에 왜 그렇게 했을까? 예수님은 전지자이신데, 예수님은  전지자이신데 예수님이 그 제자들이 소리를 들었는데 예수님은 소리를 못 들어서  그리 하셨을까? 전지자이니까 못 들을 리가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보다 마음이 자비하지 아니해서 마음이 강퍅하고 완고해서 그리 하셨을까?  예수님은 그렇지 아니하시지요. 그러면 그 사실에 대해서는 예수님은 상관이  없어서 그리 했을까? 그렇지도 안하지요.

영원 전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시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영원 전에  그것을 예정하시고 온갖 섭리 끝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셔 가지고  그 예정대로 지금 성취하려고 하시는 이 참 광대하고 영원하고 아주 견고한 그런  경영을 가지시고 하시는데 거기 대해서 상관없지도 아니하지요.

예수님은 그러하시고, 그러면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와같이 사람들 보기에  냉대하고 아주 냉정스럽게 하시는 여기에서 그 여인은 어떻게 됐던가? 거기에는  그것 보고 욕하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낙망하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참 분개해서 하는 그런 사람도 있을 터인데 여인아 네 믿음이 크다고  하신 이 여인은 어떻게 했던가? 이렇게 예수님이 냉정스럽게 하시니까 자기 딸 그 흉악한 병든 그 문제가  예수님이 정말로 냉정스럽게 하시든지 말든지 체면이고 예의고 뭐 염치고 그게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 딸을 예수님에게 고침 받아야 되겠다는, 예수님이  냉정스럽게 하니까 도리어 자기 딸을 낫아 주지 아니할까 하는 여기에 대한 그  소원이 더 강해집니다.

예수님이 그래도 멈추어 섰으면, 멈추어 섰으면 ‘이제는 내 소원을 들어  주실란가보다’ 하고 조금 낙관할 수 있을 터인데 좀 안심할 수 있을 터인데  예수님께서 냉정스럽게 자꾸 이렇게 그만 그대로 앞으로 가시니까 이제는 그  소원이 더 도수가 강해졌다 그거요.

이 세상에서도 참 병을 고칠 어떤 의사가 왔는데 그만 그 의사가 아직도 지금  모두 사람들을 받고 있다 하면은 하지마는 지금 사람을 안 받고 벌써 문을  닫았다 하면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다급해질 것이고 마음에 이것 이제 떨구고 시기  놓치고 못 고치는가보다 해서 소원이 더 불붙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도  소원이 불이 붙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렇게 냉정스럽게 하니까 아무래도 예수님이라야 고쳐 주시겠다  하는 그 소망이 아주 강해졌습니다. 그 소망이 예수님이 냉정스럽게 감을 인해서  ‘예수님이라야 고치지 내가 어느 데 다 돌아다녀도 안 됐는데 아무래도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 욕망이 뜨거워졌습니다.

또 그가 예수님이 냉정스럽게 그대로 여전히 가니까 이제까지 달려오던 그  걸음이 아니고 예수님이 가시니까 더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서 예수님에게 뒤를  쫓아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냉정스러운 것같이 보여지는 그런 걸음을 걸으신 그것으로  인해서 이 가나안 여인에게는 소원하는 소원이 뜨거워졌고, 욕망하는 욕망이 더  견고해졌고, 또 주님을 향하는 그 열심이 그 힘이 더해졌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셔서 하신 것이고 또 예수님이 그  소원하신 그대로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상관하는 그 상관이 이 세 가지가  뜨거워지고 열심 있은 그것을 예수님께서 칭찬해서 여인이여 네 믿음이 크다  하는 그 크다는 믿음의 시발이 이것입니다. 이 시발의 믿음을 가진 것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고 그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여인이 예수님에게 호소할 때에 소원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사람이 볼 때에는 냉정스러운 것같이, 들은 척 만 척하는 것같이, 아주  무심한 것같이, 상관없는 것같이 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여졌다 그말이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여지기 때문에 답답해서 예수님께 그 제자들이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여지나 실은 예수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참으로 상관이 없었을까?  냉정스러웠을까? 들은 척 만 척했을까? 그 일을 모르실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아는 대로 예수님은 목적이 당신의 사랑과 기쁨과 온전하신 뜻으로 목적을  정했는데 이 여인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 보면 이  여인이 예수님의 목적 안에 들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해서, 이것이 목적이고, 이것을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셨고, 또  거기에 관련된 것들을 다 창조하셨고,  또 예수님이 섭리로 그렇게 하셨고, 또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다른  데 가지 안하고 가나안에 요 시간이 됐을 때에 가나안으로 가서 그 여인이  나오도록 하는 이 모든 것이 이것이 절대성 있게 이렇게 된 것인데 예수님이  과연 거기에 대해 관심 없었을까? 또 냉정스러웠을까? 그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이 모르시는 길일까? 듣지 못했을까? 우리는 그 추후에 생각해 볼 때에  거기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의 부르짖음과의 관계는 절대성 있는 관계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 있는 것이 참 인간이 측량 못할 영원 전에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섭리, 도성인신, 당신이 그 자리까지 찾아가신,  이것은 인간이 상상 못할 이렇게 지극히 넓고 큰 범위를 가지고 있는 이 절대성  있는 일이지마는 인간 보기에는 그렇게 아주 냉정스럽고 관계없는, 들은 척 만  척하는 그런 아주 모르는 것 같은, 모르는 것 같은, 냉정스러운 것 같은, 아무런  상관없는 것 같은 이렇게 보여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여기에 나타냅니다.

이렇게 보여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런데 예수님이 칭찬한 믿음은 이렇게 보여지는데 예수님에게 대한 이 세  가지가 더 강해졌습니다. 이 여인은 그 인간이 그럴 때에 그만 ‘에, 헛일이다.

아마 나는 가나안인 이방 여인이기 때문에 나는 안 됐는갑다.’ 별별 해석을 해  가지고서 낙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별별 오해를 해 가지고서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별별 해석을 해 가지고서 그만, 그만 두고 자기는 따라오다가 뒤에  그만 쳐져버리고 중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 그거요.

그런데 그 여인은 이런 것을 다 능가한, 이런 것을 다 능가한 그런 강한 소원,  요동치 않는 견고한 소망, 이런 것을 능가한 그 열정, 그것이 소원을 이루었고  그 면을 예수님께서 칭찬한 그 큰 믿음의 시발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무슨 일을 하셨을까? 이 세 가지를 원해서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왜? 이 세 가지 이게 그것을 능가할 수 있어야, 이런 현실을 능가할  수 있는, 이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이런 현실을 초월한, 이런 현실을 밟고  올라서는 그 소원, 이렇게 이 소원이 강해야 되지, 또 이렇게 주님에게 욕망하는  욕망이 견고해야 되지 이래도 주님 앞에 더 열심이 뜨거워졌으면 뜨거워졌지  ‘아이고, 그러면 말아라.’ 하는 그런 정도의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 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은 그것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오. 그렇게 되도록 일으켜서 그게 속에  그 사람의 인격에, 그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에게 온갖 그, 그보다 더 큰 것은 죽인다면 그 여인이 그것 안  했을 것입니다. ‘네가 너 죽으면 너 딸 낫는다.’ 너 그러면 죽이고 딸  거석하려 하면은 그 소원 안 할 것이오.

그 중량에 비해서 자기에게 자기 자체가 낮아지는 것, 또 낙망할 만한 그런 그  전제 조건이 일어나는 것, 그것을 예수님께서 일으켜 가지고서 그것보다 능가한  것이라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서 그게 이루어질 수 있는 믿음이라 말이오. 요것을  지금 여러분들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 안 됩니다. 요것 알아들어야  됩니다. 지난밤에도 암만 말해야 모르는데.

요것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 일을 일으켰어. 그럴 때에 그 여인은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이 소원을 이룰 만한 그 칭찬 받은 그 믿음이 그것이  생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서 여인에게 그 세 가지가 생겨졌어.

그것은 다 모두 다 제자들도 다 답답하다고 ‘아주 냉정스럽고 이는, 이것은 안  됐다. 무슨 말을 해서,’ 고쳐 주라 말이 아니고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해  보내십시오’ 하는 그말은 낫아 줘서 보내라 말이 아니고 그렇게 냉정스레  가니까 ‘그러면 안 된다든지 된다든지 무슨 말해 주라’ 그말이오.

그렇게 보여질 만한 예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그렇게 허무해지는 그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로 인해서 그 소원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그게 참 소원이오.

뭐 자기에게 비위 틀리면 안 하고, 자존심에 걸리면 안 하고, 자기의 감정에  걸리면 안 하고,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돈 얻으러 갔더니마는 ‘아이고 그  사람 태도 보니까 에, 내가 그만 뭐 그까짓 것 곤란 당하면 곤란 당하지 내가 돈  달라 소리 안 하겠다.’ 태도 보니까 그만 그 갔던 소원이 좌절되는 사람도  있고, 또 거기에서 냉대 보니까 그럴 수도 있고, 또 그쪽에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하게 우쭐하니까 그만 그럴 수 있고, 그런 것은 안 해도 될 일이라 말이오.

이는 뭐 뭐라고 하든지 모욕이 되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이것은 해결이 돼야  되겠다는 요 소원 요 강한 것, 돈 얻으러 가니까 빈정빈정거립니다. 돈 얻으러 가니까 빈정빈정거려.

‘빈정거리고 말고 아무래도 이것은 있어야 되겠다.’ 그것 또 아주 쭉쭉  뺍니다. 빼든지 말든지 어쨌든지 지금 내가 이 돈 안 얻어가면 내가 지금  절단나고 신세 가니까 아무래도 지금 뭐라 하든지 얻어야 되겠다는 그런 강한  소원과 같이 주님에게 대해서 그 냉대하고, 자기에게 대해서 냉정스럽고, 아무런  관계를 가지지 않는 그런 형편과 그런 조건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그런 강한  소원이라야 그 소원이 참 소원이지, 요 도수를 알아야 된다 말이오. 그 소원이  참 소원이지 그것 아닌 그런 소원은 주님에게 상관없는 것을 여기서 지금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니까 그만 ‘에, 이것 안 됐다.’ 그만 주님에게 대해서 절망이  되는 것, 낙망이 되는 것, 뭐 주님이 참 안 주더란대도 자기는 그것 낙망을 안  한다 말이오. ‘아무래도 얻어야 되겠다. 아무래도 얻어야 되겠다.’  주님에게밖에는 딴데 얻을 데가 없으니까 주님에게 대해서 꼭 얻어야 되겠다는  그 소망이 그럴수록 더 강해졌지 약해지지를 안했다 그거요.

예수님이 앞으로 가시니 자꾸 가실수록, 뭐 걸음을 빨리 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래 걸어 가실수록 이제는 놓치면 안 되니까 마구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갔어.

요 세 가지를 극복한 소원, 능가한 요 욕망, 요런 것을 침략한, 요런 것을  정복하고 지금 달라든 그 열심 요것을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실은 주님이 그 여인에게 냉대한 게 아니고 그 여인에게 요 세 가지를 불러  일으킨 것이라 말이오. 요 세 가지를 불러서 일으킨 거라, 요 세 가지를.

불러 일으킨 것인데 그 성공을 할 믿음은 예수님이 요 세 가지를 일으키실 때에  되어지고 성공하지 못할 믿음은 요 세 가지를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그 방편으로  냉정스럽게 그대로 못 들은 체하고 걸어가시는 그 걸음에 낙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만 그 주저앉든지 그만 뒤로 돌아서 버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그런 믿음 없는 것이요 그럴 때 이 여인이 이룬 그것이  예수님이 믿음을 더 소생시켜서 일으키려고 하는 그 믿음이 그에게는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요것을 꼭 알고,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가는 가운데에 제삼자가 봐도  ‘저 사람은 예수 믿어야 아무 효력이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데 저 사람 참 교회  다니네. 저런 사람은 뭣 때문에 교회 다니는고 몰라. 예수 믿어야 아무 예수  믿는 효력이 하나도 없고 저런 사람은 택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볼 만치 이렇게 돼지는 그것은,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저 사람은 예수 믿어야 아무 거석이 없어. 아무 효험도  없고 효력도 없고 참 아무것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은혜가 하나도 없고 돌보심이  없고 저것은 아무 소용없는 것을 우리가 보고 또 아무 상관없이 그런데 예수  믿는 데 아무 효력이나 무슨 역사나 뭐 그런 게 하나도 없는데 저 사람은 뿍뿍  그래도 교회 나오니 그것 참 답답하다.’ 이렇게 보여지는 그런 장면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아주 도수가 낮을 때는 낮은 도수대로 있고 또 높은 도수에는 높은 도수대로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는 그렇게 보여지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순위가 있어.

예수를 잘 믿는 사람도 자기가 어떤 문제를 두고서 하나님에게 그 역사를  한다든지 기도하든지 이럴 때에 요 여인이 첫째 순서에 당한 것과 같은 요런  경위가 토막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 생각으로 볼 때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고, 제자들이 말한 그게 뭐이냐 하면 인간 생각이라 말이오. 인간 견해라  말이오. 인간 비판이라 말이오. 인간 비판 인간 견해로서는 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때에 이 여인과 같이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상관없는 것입니까? 주님이  거기 대해서 아무런 역사하지를 아니하십니까?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역사하시면 주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소원이 뭣이겠습니까? 뭣을  지금 가지도록, 무엇을 일으켜 가지도록 우리에게 당신이 요구하시고 당신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람이, 어떤 태도가, 무엇이  되라고 당신이 역사하시는 것이겠습니까? 그것 뭣이지요? 그것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무엇을 소원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정말로 아무 상관하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상관하지  않습니까? 냉정스럽습니까? 들은 척 만 척하십니까? 관심이 없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당신이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 하나 부딪치는 것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리가 요렇게 자꾸 되는 것 그것 예정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성공할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말로 대답해 보십시오. 남반에? 뭣이지요? 이제까지 말하지 안했소? 뭣입니까?  틀려도 돼, 뭐? 믿음. 믿음 그래 믿음인데, 뭣이요? 믿음을 소원이 더  간절해지고, 소망이 더 견고해지고, 주님에게 향한 열심을 더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요 세 가지를 가지는 그것이 주님 앞에 칭찬받을 믿음이요  이것이 주님이 주실 수 있고 우리는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인간 생각으로는 다 그렇소. 이 여인은 인간 생각을 이겨났소. 이것을  초월하고 벗어났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것이 그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믿음이 어릴 때만 이런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자기  앞에 생명을 잃게 되는 공산주의를 앞에 놓고 지금 공산주의에 붙들려 가지고  이렇게 되고, 다니엘처럼 이렇게 되어지는, 우리가 또 사업적으로, 모든  활동적으로, 자기가 나가 가지고 교회를 일으키려 할 때에 교회가 안 된다  그말이오.

‘야, 너는 뭣하다고 목회 한다 하노? 네가 주님이 보내지도 안한 것인데 너  혼자 온 게 아니가?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나? 주님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노,  보니까? 아무런 역사가 없지 않느냐?’

모든 종류에서 요런 순위의 단계가 우리에게 옵니다. 그럴 때에는 주님이 내게  상관 없는 게 아니고 주님은 내게 당신이 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랬어.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 공작이 우리 속에  이루어지도록,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 모든 조건이 구비해지도록,  주님께서는 그 조건을 구비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 그것이 그 냉정스러운 것이  그게 그 역사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뒤에 말하니까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섰어  보이소. 돌아보고 섰으면 그 여인이 뛰어가겠소? 이제 좀 되니까 설렁설렁  걸어가겠지. ‘이제는 됐다.’ 모든 면에 대해서 낙관시할 것이고 그 간절한  심령적인 자극이 그것이, 그것이 식어졌을 것이라 말이오. 그럼으로 더 강해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대하시는 것이 다 광대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무한하시고, 모든 것이 절대성 있게 하시는 요것을 우리에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그 순서를 가야 공산주의 앞에서도 성공하고, 공산주의 앞에 대할 때도 우리가  이런 일이 있고, 자기가 사업을 할 때에도 이렇게 암흑기가 우리에게 올 때에  요것을 극복 능가해서 ‘요 무엇을 주님이 요구하시는가? 요 암흑 주는 것이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나에게 요 실패를 주는 것이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내가  말할 수 없는 죄 가운데 깊이 푹 빠진 그것이 하나님 예정이요 나를 구원하려고  섭리했는데 요것으로 인해서 뭘 되게 하려고 하시는가?’우리는 어떤 실수나  했으면 ‘잘못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 이런 야비한  이런 외식은 하나님이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요게 있었느냐? 그 없게도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요게 있게  하셨느냐? 왜 있게 하셨느냐? 여기에 당신이 예정하신 요 예정이라야 내 구원이  이루어지고 요걸 통해 요구하시는 것이 있으니 그게 뭣이겠느냐?’ 그걸 찾아서  가지는 그것이 우리가 주의 광대하신, 아주 작은 것 같으나 아주 넓다 말이오.

광대하신, 영원하신, 불변하신, 참 절대성 있는 변할 수 없는 가감할 수 없는  진리성 요것으로써 섭리하시는 요 주의 섭리에 우리가 응해 가야 성공을 하지, 이것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요런 성질의 암흑이 있습니다. 요  암흑이 뭐이냐? 요 암흑이 우리에게 절망케 하는 것이 아니고 낙망케 하는 것이  아니고 소원을 더 강하게 하려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욕망을 더 견고케  하려는 것이고, 더 주님에게 대해서 열심을 더 가하라는 것인데 인간 생각은  정반대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치 않고는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56 7가지 구원 순서/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28주후 선지자 2015.10.21
5455 7가지 대접 받은 우리의 할 일/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223화새 선지자 2015.10.21
5454 7가지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70828금새 선지자 2015.10.21
5453 7가지 중대한 문제/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70823주새 선지자 2015.10.21
5452 7가지 화/ 시편 91장 14절-16절 / 870103토새 선지자 2015.10.21
5451 7가지에 대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70927주전 선지자 2015.10.21
5450 7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70927주후 선지자 2015.10.21
5449 7교회-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29화새 선지자 2015.10.21
5448 7교회-에베소교회-8가지행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4주전 선지자 2015.10.21
5447 7교회-에베소교회-이기는자/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새 선지자 2015.10.21
5446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0930수새 선지자 2015.10.21
5445 7교회-에베소교회-처음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71002금야 선지자 2015.10.21
5444 7교회-에베소교회-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6절/ 871001목새 선지자 2015.10.21
5443 7대속 받는3방편/ 마가복음 10장 22절-31절/ 870108목새 선지자 2015.10.21
5442 80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0. 1. 7. 하오 2시 30분 선지자 2015.10.21
5441 87년 11월 교역자회의록/ 1987. 11. 2. 19시 선지자 2015.10.21
5440 88년 1월 교역자회의록/ 1988. 1. 4. 19시 선지자 2015.10.21
5439 8가지 알아야 할 것/ 요한복음 8장 43절-45절/ 871025주전 선지자 2015.10.21
5438 가견적 교회 불가견적 교회/ 학개 2장 20절-23절/ 820609수야 선지자 2015.10.21
»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태복음 15장 21절-23절/ 810115목새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