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글성경 번역 존 로스 묘지를 가다

2010.06.12 20:27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첫 한글성경 번역 존 로스 묘지를 가다
선지자선교회
영국 에든버러 달케이트 거리 뉴윙튼 묘지공원, 이곳에 135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한 존 로스(1842-1915) 선교사의 무덤이 있다. 그가 번역한 ‘예슈성교젼셔’(19887)는 한국교회 형성기 민중의 신속한 복음 수용과 교회 팽창의 디딤돌이 됐다. -중략-

“여깁니다.”

중국 만주지역 개신교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한국어 성경 번역자 로스의 무담이었다. 이끼가 낀 2m 높이의 묘비엔 로스가 74세의 나이로 1915년 8월 7일 에든버러에 묻혔으며, 그 아래엔 4명의 자녀가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기술돼 있었다.

로스는 스코틀랜드에서 1842년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낫다. 그는 1865년 에든버러 연합장로교회 신학부에 입학해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1872년 4월 중국으로 향했다. 당시 30세였던 로스는 이듬해 3월 아내 수튜어트가 출산 후 숨을 거두는 아픔을 겪는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대 월리엄슨 목사로부터 6년전 토마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로스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아시아의 마지막 땅 조선에 복음의 문을 열겠다고 결심한다.

로스는 한국인 번역자들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험난하기만 한 신약성경 번역 작업을 마친다.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성경번역을 위해 함께 했던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 등은 서울 이북지역 교회와 소래교회, 새문안교회의 설립멤버가 된다. 물론 성경은 복음 전파의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한국에는 몇 명의 크리스찬이 있습니까.” 마카이씨와의 문답이 이어졌다.
“10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아닙니다 당신 같은 스코틀랜드인 로스선교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군요”

로스의 묘 주변엔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비석이 즐비햇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말씀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3:20), 로스는 오늘도 묘소를 찾는 이들에게 ‘짧은 인생, 어떻게 주를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글: 국민일보 2010년 6월 11일자 금요일  
     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