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예수축제’ 만든 박영목씨

2012.02.28 14:41

김반석 조회 수: 추천:

  “6년 고시공부 끝에 겸손 배웠어요”…
선지자선교회
                 ‘고시촌 예수축제’ 만든 박영목씨


  지난주(2006년 8월 25전후) 열린 신림동 고시촌 ‘예수축제’를 12년 전에 주도한 당시 고시생은 고시에 붙었을까. 고시촌 예수축제를 처음 열었던 박영목(온누리교회·42)씨는 국내에서 유명한 영화투자배급회사인 ‘시네마서비스’의 부사장이다. 사법 연수를 받을 때 선배의 영화 관련 일을 도와준 것이 직업이 됐다.

“저도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생이었어요. 열심히 공부했고 기도했어요. 예수축제도 만들었으니 금방 시험에 합격할 것 같았죠. 하지만 6년을 공부했어요. 그 시련을 통해 겸손을 배웠어요.”

당시 그의 실력은 매우 뛰어났었다. 중학교 이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고 서울대 법대도 어렵지 않게 입학했다. 신앙도 그랬다.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신림동의 독서실에 처음 등록하던 날,기도모임을 만들자는 전단 300장을 만들어 독서실에 뿌렸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기도모임을 열었다.

  하지만 시험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1차에는 붙었으나 2차에는 줄줄이 떨어졌다. “하나님 제발 붙게 해주세요. 합격만 하면 뭐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이어졌다.

  “그땐 기도 순서가 문제였어요. 심인성 질환으로 공부는 고사하고 앉지도 못해 하루종일 누워 있게 되니까 기도 내용도 달라지더라고요. ‘불합격도 좋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 줄 아는데 그것이 뭐 대수입니까’라고요.”

박 부사장은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해에 합격했다. 하나님의 셈법은 달랐던 것이다.

고시촌 예수축제도 그가 시험공부하던 때 기획되고 개최됐다. 그가 시작한 기도모임은 처음에는 현직에 있는 김선화 검사와 단 둘이 모였으나 점점 부흥해 최고 30명까지 늘어났다.

“우리끼리만 기도하지 말고 부흥 축제를 만들자는 기도제목이 나왔어요. 10명이 주축이 돼 교회와 지인, 고시원의 주인들까지 설득하러 다녔어요. 전단과 다과 등을 준비하고 교회를 빌렸죠. 첫 행사 때 좌석 450여개가 꽉 찼어요.”

박 부사장은 최근에도 기도모임으로 바쁘다. 시네마서비스에 오자마다 기도모임을 만들었다. 문화적 영향력이 큰 영화계에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벤허나 쿼바디스처럼 복음을 직접 드러내는 영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내뿜는 영화를 한번 만들고 싶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내 희망사항일 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과 일이라면 만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