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

2010.01.22 23:51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살아남는 것
선지자선교회
“조금은 비굴하지만 일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일제는 반드시 망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남은 백성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일 인물을 길러 놓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 총독부에 고개를 숙이면서 신학교 허가를 받아 서울에 세워진 신학교가 조선신학교이다. 이것이 참 사랑 참 성서의 뜻이다.”
이 말은 작년 기장측의 서재일목사 총회장 당선 감사예배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공로목사 A목사 설교의 한 부분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신학연구소(소장 이재천목사)의 계간지 ‘말씀과교회’의 최근호(47호)에 실린 이 설교를 보면 기장신학과 조선신학교(현 한신대)의 정통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A목사의 설교가운데 나온 이 같은 발언은 마치 일제 치하에서 순교를 당하고 신사참배 거부로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치른 많은 신앙 선진들의 피와 눈물을 평가 절하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설교자도 일제치하 신앙 선진들의 노고와 피와 땀을 무시하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방법론적 측면에서 조선신학교를 설립한 이들의 수고를 강조한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조금은 비굴하지만 핍박자를 향해 신앙적 양심을 접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게 자랑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반드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만이 한국교회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과연 그럴까?’라는 것이다.
일제의 신사참배 핍박에 조직적인 항거를 펼치고자 했던 이들 가운데는 순교적 고난속에서 살아남아서 신학교를 세운 이도 있었다.
기장은 지난 2007년 92회 총회에서 일제의 핍박에 굴복 신사참배를 한 죄를 회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A목사의 설교에서는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보다 ‘신사참배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당연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겨진다.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사참배를 했다는 1937년 장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를 주도한 이들의 변명처럼 들린다.
소속 교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하는 한국교회의 아픈 역사를 굳이 새롭게 해석하고 포장하는 시각이 어색해 보이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교회연합신문 김신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