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에 쓴 한상동 목사 편지 공개

2007.05.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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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117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6/03/12 (일) PM 10:10:27     조회 : 91  


■ 60년 전에 쓴 한상동 목사 편지 공개


[기독교보 2006-03-10 09:54:25]조회 : 41


해방 직후와 고려신학교 설립 상황 보여줘


고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이상규 교수(신학과)가 최근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한상동 목사가 60년 전에 직접 쓴 친필 서신을 공개해, 해방 직후의 한국교회 상황에 대한 한 목사의 인식과 고려신학교의 설립과 관련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소상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교계와 교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편지내용


■ 60년 만에 공개된 한상동 목사의 서신


필자가 호주에서 유학하던 1987년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자료를 섭렵하던 중 멜버른의 연합교회 고문서관에서 한상동 목사가 쓴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호주장로교회 소속의 여선교사 허대시(Miss D. Hocking)에게 한글로 쓴 이 편지는 고려신학교 초기의 상황과 호주선교부와의 관계에 대한 한 목사님의 인식, 특히 새로운 신학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신학교가 설립되던 1946년 12월 24일자로 해군용 편지지에 쓴 이 편지는 호주 선교사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우선 서두의 사적인 인사를 제외한 이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맞춤법은 되도록 현대어로 고침).




“ ....... 항상 위하여 기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이렇게 편지하여 소식을 알려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지요. 믿음으로 위로를 받으시는 줄 아옵니다. 팔십이 넘으신 어머님 모시고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어머님께 문안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남동생 내외분께 문안합니다. 큰 조카 둘 다 전쟁에 나갔다가 큰 고생하였으나 주님의 은혜로 잘 돌아왔으니 참 감사합니다. 진실로 누님 보내주신 성경말씀대로 어지러운 세상이외다. 어서 주님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곳 동생 명동은 부산 영도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남에서는 제일 재미있게 은혜롭게 나갑니다. 매일 새벽기도회 때 4,50명이 모이고 주일 예배시는 예배당이 좁아서 새로 지어야 되겠는데 물자가 없어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교생은 작년 8월 17일 밤에 평양감옥에서 나와 평양 산정현교회(주기철 목사님 계시던 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금년 3월에 경남으로 왔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불행이도 내가 옥에서 나온 지 1개월가량 되어 어머님 얼굴도 뵈옵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된 나로서는 너무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다시 평양으로 가야 될 사정입니다만 38선이 가로 막혀 잘 가지 못하고 임시로 부산 초량교회에 시무하고 있습니다.


평양 있다가 경남으로 와서 형편을 보니 아무리 하여도 조선교회의 장래를 생각할 때 목사가 목사다운 목사라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산진 일신학교를 장소로 정하고 전에 평양신학교 교수 선생 되신 박형룡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미국 가서 8년 이상으로 공부하고 온 명신홍 목사님과 김진홍 목사님을 모시고 고려신학교라 이름한 신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9월부터 박윤선 목사님을 모시고 개교식을 하고 개학 중 공부를 하여 왔습니다. 내년부터는 박윤선 목사, 명신홍 목사, 김진홍 목사, 한부선이란 미국선교사, 이자익 목사 이렇게들 다 모아서 신학생 한 50명 되는 학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금일 호주선교사의 선교한 결과로 경남에 신학교가 설립됨은 호주선교사의 영광이요 우리의 기뻐할 것인데, 호주선교사인 안다손, 라례인 두 선교사는 우리의 하는 일을 반대하여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빌려줄 수 없다 함으로 우리는 무례함을 생각하고 내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시작한 신학교를 그만 두겠느냐 아니올시다. 아무런 난관이 있을지라도 하고야 말 것이외다. 왜 그런고 하니 조선 서울에 있는 신학교란 우리가 믿는 신앙하고는 다른 까닭이외다.


전라도와 대구에 가서 미국선교사들과 이야기할 때에 그들은 벌써 미국에서부터 우리 고려신학교의 소식을 듣고 기쁨으로 환영하여 조선으로 가면 이 신학교를 도우리라 하였답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선교본부에서 허락만 하면 우리 신학교에 교수까지 올 마음이 간절한 선교사도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우리 경남에 설립되는 신학교를 반대하는지요. 아 참 답답합니다. 물론 우리의 유치함이 많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아무리 하여도 우리 신학교를 하고야 말 것이외다. 물론 경남로회가 지금 반대합니다. 이는 김길창 일파가 과거에 일본 정치 때 춤추던 무리들이 당을 지어 우리를 밀어내어 우리를 방해하지만 우리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조선교회는 우리의 책임이 있음을 깊이 생각합니다.


누님 한번 우리 조선으로 다녀오실 수 없을까요? 편지로는 자세한 사정을 다 말 못합니다. 아- 참 세상은 불의가 이렇게 동하는 세상인지요.


일본정치 때 춤추고 덤비던 그들이 또 미국에 붙어 춤추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에 고독의 생활에서 진리로 더불어 싸우려 하나이다. 많이 기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신학교는 집도 없고 설비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다만 내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로 시작하였으니 기도로 성공할 줄 믿고 나갑니다. 부산진 일신여학교에서 우리 신학교가 쫓겨나올 때 나의 가슴 심히 아픕니다.


나는 새벽마다 내 주님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누님도 필연코 안다손 목사님 말씀 들으시고 우리를 오해하겠지요. 오해하시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염려하여 하시는 줄 우리는 알고 감사할 것이외다. 할 말이 많사오나 우선 이만 그치나이다. 잘못된 것 용서하옵소서.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한상동

나는 성공하리라. 나는 성공하리라. 주님이 같이 하여 주시니 나는 실패하나 주님은 성공하리라.


                               1946년 12월 24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