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부로시어스(Ambrosius)

2007.05.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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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32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9/09 (월) PM 10:24:20     조회 : 62  

■ 암부로시어스(Ambrosius)


● 서방제일의 성직자. 독일에서 출생. 374년 북부 이태리의 지방장관이 되나, 곧 재산과 권력을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밀라노의 감독이 되었다.

● 성품은 온화하나 대적자에게는 단호하였음.
그리스도인인 데오도시우스(Theodosius)황제가 데살로니가인 7,000명을 학살하였을 때, 성찬식 참여에서 쫒아 냄. 나중에 황제가 죄를 회개하고 8개월 후에 성찬에 참여시킨 확실한 신앙의 지도자.

● 니케야 신앙에 철저히 서서, 추호도 아리우스파와 타협을 않했다.
로마제국의 몰락에서 오는 충격 속에서 교회가 힘차게 살아남는데 없어서는 안 될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다. 어거스틴에게 세례를 주었다.  397년에 사망하였다.



■제 4세기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가 암부로시어스이다. AD 373년 이태리 북부의 가장 큰 도시인 밀라노교회의 감독이 사망하였다. 그런데 그의 후임자를 놓고 도시 안에서는 큰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왜냐면 밀라노의 감독의 위치가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기에 당시의 교회 (아리우스파와 정통파)는 서로 자기들 편 사람을 주교로 선출하려고 필사적으로 경쟁을 벌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격렬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감독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때 밀라노 도시의 총독으로 있던 '암부로시어스'는 유능하고 공정한 행정가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암부로시어스는 선거 현장에 나가 시민들이 질서를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뛰어난 연설을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어린 아이 하나가 "암부로시어스를 감독으로"라고 외쳤다.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암부로시어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암부로시어스 자신은 감독직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곧 고위관직으로 임명될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중들을 설득하고 회유시키다 못해 그 도시를 탈출할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암브로시어가 감독으로 선출된 것을 황제가 기뻐하였고, 이를 어기면 황제의 분노를 살 가능성이 있었다. 이리하여 373년 12월 1일에 밀라노감독이 되었다.

■감독이 된 후 사제의 도움을 받아 신학을 공부한다. 원래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방교회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가 된다. 암부로시어가 감독이 된 후 얼마 안 되어 야만족인 고트(Gots)족이 밀라노를 쳐들어와 많은 시민들을 포로로 잡아간 후 몸값을 요구하였다. 이에 암부로시어스는 교회 소유의 금은 기명과 장식품을 녹여 피난민들과 포로들의 몸값을 마련하였다.

이때 그의 약점을 노리던 아리우스파들은 감독이 신성모독을 하였다고 비난하였는데, 이 때 암부로시어스는 "주님을 위해 황금보다는 영혼들을 보존하는 것이 더 낫다--- 교회는 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황금을 소유하고 있다.--- 금 그릇 보다는 살아있는 질그릇이 더 소중하다."고 하였다. 암부로시어스의 뛰어난 설교가 전 세계적으로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밀라노를 찾아왔다. 그 중에 어거스틴도 있었다. 그리하여 암부로시어스의 설교를 듣고 그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는 황제와도 미묘한 관계를 유지한 때가 많았다. 당시 서로마제국의 황제는 '발렌티니안 2세'(Valentinian II)였는데, 그 황후가 아리우스파라 아리우스적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암브로시어스에게 강요하였다. 그러나 암부로시어스는 교회가 오염되는 것을 용납 않았다.

그러자 황후와 오랜 세월 동안 대결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암부로시어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황제의 병사들에 의해 예배당에서 포위된 채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병사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감독을 위협하였으나 그는 찬송가를 부르며 조금도 굴하지 않았었다. 또 정통신앙을 가진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데살로니가시의 폭동으로 그곳 경비 사령관이 군중들에게 살해되었다.

■이에 분노한 황제는 데살로니가 시민 7천명을 살해하였다. 그 후 황제가 교회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암부로시어스는 황제를 가로막고 "그 자리에 멈추어라. 양손에는 불의의 피가 가득한  자, 죄로 더럽혀진 너 같은 사람은 회개하기 전에는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 거룩한 성소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막았다.  

이때 경호원들이 칼을 뽑아 들고 암부로시어스에게 대들었다. 그러나 암부로시어스의 인격과 권위 앞에 황제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앞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하였다. 위대한 밀라노의 감독이며 신학자요, 성자였던 암부로시어스는 397년 4월 6일 부활절 주일날 숨을 거두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같은 시기에 황제에 대항하여 승리한 암부로시어스가 일한 서방교회는 그 후로 라틴어 사용과 함께 크게 강성해갔고, 심약한 황제에 순응하여 지위를 박탈당하고 유배의 길을 따른 크리소스톰의 동방교회는 그 뒤로 계속 약화되고 말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