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 백영희목회설교록

2007.05.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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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도문 강해 - 백영희목회설교록
선지자선교회


● 주기도문 강해(1)


일시:1988. 1. 15. 금요일 밤예배
본문:마6:5-1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기도에 대한 일반 주의 말씀 - 외식기도 하지 말라)

5절로부터 8절까지에는 이미 여러 새벽을 거쳐서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오늘밤에는 9절로부터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대해서 증거를 할 터인데 먼데서 온 교역자들 때문에 간단하게 5절로부터 간단하게만, 집에 가서 연구하면 깨달을 수 있도록만 증거하고 주기도문의 해설로 끝마치겠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를 조심해서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상대해서 기도하는 것이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런 것을 그 밑에 여러 가지로 말씀해 놨습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랬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을 상대해서 사람이 알아 주기를 또 사람에게 들으라 봐라 사람에게 인정받고 또 사람 상대해서 사람이 자기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을 소망한 기도이기 때문에 이런 기도는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고, 그러니까 기도한 효력을 다 받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갚아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말입니다. 이것을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사람이 사람 상대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상대하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잘해 주든지 못해 주든지 할 일이지 하나님이 무슨 상관 있습니까? 외식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은 상관이 없습니다. 고것만 알고,

또,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여기에는 저희니 너희니 이렇게 복수를 쓰지 안하고 단수를 썼습니다. ‘너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렇게 단수입니다.
그러면, 골방에 들어가는 것도 천인 만인이 골방에 다 들어가도 제게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제가 들어가야 됩니다. 또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도 제가 만나야 되지 뭐 서부교인들이 다 만난다고 그 중에 그 도매금에 자기가 쓸려서 함께 무슨 효력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도에 대해서 갚아 주실 때에 개인 개인에게 갚아 주시지 다른 사람들이 다 받는다고 해서 저도 거기서 동참해 가지고서 받지 못합니다.
‘네 아버지가’ `네게' `너는' 여기에 특별히 단수로 말씀한 데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집에 가서 연구를 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말은 찾기 어렵게 계신다 그말이오. 깊이 계신다. 계시기는 계시는데 깊숙이 계신다. 잘 보이지 않고 찾기 어렵게 계신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네 골방에 들어가서’ 네 골방에 들어가서 만나라. 네 골방이라 하는 것은 네 양심 속에 네 하나님이 계시니까 네 양심 속에서 네 하나님을 찾아라. 또 네 진리 속에서 찾아라. 네 영감 속에서 찾아라.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고 또 소개해 주고, 진리가 소개해 주고 영감이 소개해 주는데 거게서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네 양심 안에서 네 양심을 찾아 가지고 양심 안에 들어가면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데 양심을 찾아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 못 만난다.
네 진리를 찾아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 못 만난다. 신구약 성경이 많이 있지마는서도 사람 사람마다 그 현실에 그 사람에게 대한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징계하겠다. 내가 네게 대해서 섭섭하다. 네게 대해서 이것을 회개해라.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나? 왜 이것을 하지 않나?’ 사람마다 주님이 지금 자기에게 대해서, 입법해 놓으신 그 진리가 자기에게 자기 현실에 해당되는 그 법칙이 있으니까 그 법칙을 찾으면 네 아버지가 거게 계신다.
또, 네게 대한 영감 안에 네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영감을 만나야 그 안에 계시는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7절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어쨌든지 말만 하면 되니까 말 한번 하면 안 되니까 또 두번 하고 자꾸 많이 말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를 말해야 되고 말만 하면은 다 하나님이 들으실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하고 뭐 한 가지를, 자꾸 계속 기도하라 했으니까 한 가지를 백 번 기도하지, 한 가지를 천 번 기도하지, 또 많이 기도하라 했으니까 이것 저것, 저거 이거 모든 것 천 가지나 기도하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실 줄로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은 이방인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종교가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너희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그말입니다.

8절에,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저희를 본받지 말라」 그런 식으로 기도하지 말아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가 아시느니라」 네가 구하기 전에 너에게 있어야 할 것, 너한테는 몽둥이가 있어야 될란지, 너한테는 위로가 있어야 될란지, 너한테는 지금 어떤 감옥이 있어야 될란지, 너는 병이 있어야 될란지, 너는 네게 있어야 될 것, 네게 있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지가 다 알고 계신다.
아버지는 지금 매를 들고서 매를 칠라고 하고 있는데 제딴에는 지금 상받을 줄 알고 ‘주님이여, 나에게 이 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에게 무슨 영광스러운 이 승리를 하게 해 주옵소서. 내 소원 성취를 하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는 그에게 채찍을 때려야 되겠는데 이거 엉뚱한 것 기도합니다.이래서, ‘구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 네게 있어야 할 것 다 아시느니라’ ‘있어야 될 것 다 아시느니라’ 네가 기도하기 전에 네게 대해서 아버지가 똑똑히 알고 있다. 네 성질도 알고 버르장머리도 알고 있고 네 장점도 단점도 네 강퍅도 악독도 거짓도 죄도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으니까 네가 중언부언으로 말만 하면 되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골방 안에 기도’ 그대로, 네가 네게 대해서는 아버지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고것을 알아서,
아버지의 노를 푸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고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게 뭐인지 그걸 알아 가지고서 그래 해야 돼지지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자체가 아버지에게 자꾸 달라고만 하면 될 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을 듣지 안하고 아버지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지금 ‘저놈은 과거에 내가 돈 준 게 후회다. 그놈에게 좋은 뭘, 우리 나라에 없지마는 좋은 승용차를 하나 사 줬더니마는서도 공부 잘하고 어짜든지 학교 잘 다니라고 했더니마는 그거 사 준 게 후회다.’ 지금 준 것이 후회가 자뿍 돼 가지고 있는데 뭐 자꾸 달라 하면, 자꾸 달라 하면 주겠습니까 더 밉상이라고 준 것까지 다 뺏들겠습니까, 어떻게 해요? 저 ○ 목사, 준 것도 뺏들어.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중언부언으로 그렇게 말만 하면 되는 줄로 하지 말아라.

‘먼저 너는 네게 뭐 있어야 될란지 아버지께서 뭘 주기를 지금 원하고 계시는지, 폭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사탕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너에게 평강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그리 아니면 모진 질병으로 개갈개갈 거리도록 그렇게 질병을 주시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시는지 그걸 알아 가지고서 네게 불의한 거 있으면은 그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다 해결짓고 사유함을 받고 노를 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되지 그런 거 아니면 구해도 소용 없다 그말입니다

(주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9절에, 이제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이 주기도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주기도문을 예배 순서에도 같이 외우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면 주기도문에 간단하게 가르쳤지마는 주기도문의 이 뜻을 깨달아서 순서도 그 순서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순서로, 또 주님에게 기도하는 그 종류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 종류도 그대로 또 기도하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그대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다 이 말씀은 저 영계에 계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다 말은 지극히 높으신 데 지존하신 데 계시는 아버지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에, 또 지극히 큰 그 전능의 위치에, 전지의 위치에, 대주재의 위치에, 창조주의 위치에, ‘하늘에 계신다’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높으심을 표시해서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라 말은 여게 복수인데 우리 아버지라 말은 내 개인 아버지는 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 아버지로 복수의 단체의 아버지로 이래 하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한덩어리가 돼야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되지 주님과 끊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대하면 멸망받지 아무것도 은혜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은 우리의 대속주, 우리의 구속주, 주님과 나와의 하나된 이 복수를 가리켜서 여게서 우리라고 그렇게 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화친으로 아버지가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기도할 때에 기도는 서로 대화하는 것인데 서로 상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게 기도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상대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 지극히 완전하신 분, 모든 면이 완전하셔서 지혜도 그 이상이 없는 완전하신 지혜, 완전하신 능력, 완전하신 성결, 완전하신 공평 이렇게 이런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만치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바로 아는 것만치 그 기도할 자격은 있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암만 해 봤자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래서,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의 대상,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우리의 대화자가 되는 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지존하신 분인 것을 깨닫고 이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는 것으로 상대해야 되지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면서 아주 저거 동무 상대하듯이, 얼러 키운 호로자식이 부모에 만만하게 대하듯이 이렇게 버르장이 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서, 기도할 때에 함부로 입을 벌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우리가 구하는 상대, 이 하나님은 이분은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는 기도를 하게 되고 또 조금 알면 조그만 기도할 수 있고 많이 알면 많은 기도할 수 있고 다 알면 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제목: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법(주기도문)
외식 기도하지 말라(골방에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상대자가 누구인줄 바로 알고 기도하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합격이 되도록 기도하라)
나라이 임하옵시며(모든 교회가 천국되기를)
뜻이 이루어 지이다.(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자본을 주옵소서)  





● 주기도문 강해(2)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자꾸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말씀하신 그것은 복수인 모든 다수가 합해 가지고 하나가 된 것이 그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돼야, 자기는 전체에 분자요 세포요 한 지체요 이런 것인 것을 알고 대아인, 대아인 이 전부,

하나님이 택한 자는 육천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자도 있고 또 지금 우리 뒤에 나올 것이 아직 나오지 안한 자도 있고 또 동양에 있고 서양에도 있고 세계에 이와 같이 흩어져 가지고 있는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택한 자는 한 몸을 이루어 가고 세워져 가는 것이라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래야, 전부가 합해서 네라는, 택한 자는 많은 숫자이면서 이것이 하나의 단일 생명으로 살고, 단일 생명으로 산다 말은 단일 연결로 산다, 대상이 주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 모든 것이 살아나기 때문에 이렇게 단일 생명으로 산다는 이것을 확실히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노력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지체는 저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고 저 지체는 이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다 합해서 바로 되어져야 되는 요 감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되지 거게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면은 안 된다 그것을 엄하게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하나님이 저희 아버지 될 수 있다 말입니다.

우리라는 것은 복수인데 천하에 역사에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는 다 그것이 내라 그것입니다. 그것이 잘돼야 내가 잘되지 그러니까 그것이 내라는 깨닫고 여기에서 있어야 이제 하나님이 아버지가 돼지지 그 복수에는 예수님도 안에 들었고 또 성령님도 내나, 예수님이 들었다 하면 성부 성자 성령 다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들어 있고, 성령님도 들어 있고, 진리도 들어 있고, 또 모든 우리 믿는 신자들도 다 들어 가지고서 하나인데 이 전체가 하나인 것인 것을 제가 지식적으로 알든지 자기가 무슨 소망적으로 알든지 알아 가지고서 하나인 것을 알고 하나가 돼 가지고, 내가 하나가 돼 가지고 ‘아버지’ 이래 불러야 아버지가 대답하는 것이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할 때는 내 아버지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내 아버지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지.

2)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주기도문에 하나님이 가르친 것은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과 신령한 양식을 다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 날에, 내일 일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내일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날 사는 데는 신령한 양식도 육체의 양식도 있는데 육체의 양식이 신령한 양식 되고 신령한 양식이 육체의 양식 되고, 심신은 이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가 오늘 하루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에 요소가 되어지도록,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의 요소가 되어져서 모든 역사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빚지지 안하고, 요것을 빚지지 안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해서 이것이 지금 할 바를 하지 못한 바가 되지 안하고 빚을 하나씩 벗어넘기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자기가 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되어져야 비로소 그 마음부터 가지고 해야 그날 하루 종일 먹는 것이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영감의 생활을 할 수가 있지 벌써 거게서 자기 개체로 나타났으면 그것은 무엇으로 변해집니까?

우리가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하지 안하고 ‘오늘날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내게라고 내라고 돼져 버렸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습니까?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소? 예,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3)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도 우리가 돼야 아버지가 된다.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영적 양식이나 육적 양식이나 그것이 하루에 참으로 내 양식이 되는 것, 육이 먹은 그 양식이 우리가, 저는 밥기도를 할 때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좋은 식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구미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미도 있게 해 주시고, 또 소화도 잘되게 하시고, 또 영양도 또 잘되게 하시고, 또 건강한 몸도 되게 하시고, 이래 가지고 이것이 의의 병기로 주님에게 드려서 주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결과를 맺게 해 주시고, 결과를 맺고도 주님의 구속이 크기 때문에 이 큰 구속을 내가 깨닫는 자 되어서 어떤 자리에서라도 무익한 종이라 하는 것을 알고 무식한 자로 알고 주님의 구속을 깨달아서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식기도 할 때는 대개는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밥을 먹은 그것이 참으로 육체에 건강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건강이 돼서 힘센 사람 아무리 있어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제가 어떤 약수탕이라 하는, 이름이 약수탕이요, 좋은 물이 아니고. 목욕탕 값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약수탕인데 한번 거기 가니까 어떤 사람이 젊은 사람인데 자기가 서서 다리를 쭉 뽑아보고, 다리가 생기기를 잘생겼어요. 아주 쪽 곧은 것이 참 아주 매꿈하게 잘생겨. 그래 그것을 한번 쭉 펴보고 또 팔을 한번 쭉 내보고 그거 아주 자랑스런가 그렇게 많이 해요.

그렇지만 그것도 좋기는 좋지만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려서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육체가 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참 하나님 앞에 벌받을 것뿐이지 하나의 빚진 것뿐이고. 하나님의 것을 먹고 그 나쁜 짓 했으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이러니까, ‘잘 생기기는 생겼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병기가 돼야지 죄에 병기가 되는 날이면 그거 좋지 못하다’ 그런 말 나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육체의 양식을 먹는 그것이 ‘오늘 내 육체의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것이 오늘 육체의 양식 먹는 그것이 참으로 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게 있는 것이면,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양식이라면 그렇지만,

밥을 굶으면, 내가 어떤 사람들 보면은 소화가 안 되면 좋겠고, 그 사람에게는 소화가 안 되면 좋겠고 몸이 좀 약하면 좋겠는데 이게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 놓으니까 그 건강한 것 가지고서 자꾸 죄만 짓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뭐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까?

그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이것이 구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구원은 뭐인데? 구원은 주를 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를 위하는 것이 돼 버렸으면 구원이 됐다 그 말입니다.  주님을 위하는 것이, 피조물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만 됐으면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조물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조물주를 위하고 조물주로 말미암아 살고, 그분으로 피동 되고 그분으로 또 모든 것을 얻어서 가지고 또 그분을 위해서 살고 그분을 이리 이 연결이 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래야 참 그 양식이 가치 있고 또 그날 심령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의 역사를 주셔 가지고서 진리와 영감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과 진리와 영감과 중생된 영은 합해 가지고서 우리의 몸을 주관하고,

그러면 성령과 우리 영과 또 진리와 영감에 붙들린 마음과 육과 이 넷이 합해 가지고서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접촉하는 만물을 그것도 진리화 영감화, 또 영화, 또 내 육체화, 내 마음화돼져야 그것이 내가 산 것이 이긴 것이라 말입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가 돼야 되지 우리가 안 되고는 기도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랬다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가 원수돼 가지고서 자기 개적으로 돌아가는 것,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 ‘나 나, 내 것 내 것.’ 그리 되면은 그것이 무엇이냐? 옛사람으로 돌아갔다 그 말입니다.

옛사람으로 돌아갔으니까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행동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 해서 모으니까 그것이 악습이 됩니다. 또 자기 중심의 그 성품, 자기 중심의 사상, 자기 중심의 성품, 하나님 중심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음을 주신 우리들인데 우리가 타락해서 변질이 돼 가지고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속성이 자기 중심의 속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변질된 것이요 그것이 타락이요 그게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악성. 또 악령.

그러면 악령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제 악성을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하는 믿음으로, 또 악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의의 행위 이것으로써 이제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 새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새사람으로 되는 첫 입문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입문이라 그 말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입문이 우리가 입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 그것이 우리가 돼야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고 그에게 아버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되는 것이 입문이요, 우리가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화되는 것, 우리가 되는 그것이, 우리인 줄 알면 그것이 그만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제일 악하고 독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좋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한 분의 중심화시키려는, 중심화시키려는 그것이 무엇이냐? 사죄 운동이요 칭의 운동이요 하나님과 화친 운동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화시키는 그것이 돼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4)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돼야 죄가 사해지지 그것을 밑에 해석을 하기를 “네가 남의 죄를 죄를 사해 줬으면” 이것 봐, 우리 ○○○목사님, 순전히 잠마귀한테 붙들려서, 이 앞에 ○○○목사님도 앞에 앉았기는 앉았는데 이거 내가 보니까 눈이 빨가이 해 가지고서 벌써 잠마귀한테 사로잡혀서 꼼짝을 못 하고 있구만. 그거 내가 덤비는 것 보니까 그렇겠어, 보니까. 속았다 그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죄사함을 받는 그것은 죄에서 해방받는 겁니다. 죄에서 해방받는 것은 첫째는 어데서 해방받아야 되느냐 하면 악령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성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습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니까 악령 그놈은 내가 아니고 딴데 따로 있는 악령이지만 악령 악성 악습은 내가 아닌데 나를 죽인 그자가 둔갑을 해 가지고서 내인 척해 가지고 나타나니까 이 심신은 어리석어. 눈도 없고, 심신은 눈이 없습니다. 심신은 겨우 눈이 있다 하는 것이 겨우 조그매 당달봉사 모양으로 아삼하게 짐작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으나 그것은 밝지를 못하다 그 말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이제 총합해서 악령 악성 악습을 합해서 그것이 무엇이 됐습니까? 그것이 무엇이 됐지요? 저 한번 뒤에 대답해 봐. 그게 무엇이 됐습니까? 옛사람이 그게 뭣 됐습니까? 우리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나, 나, 나.

따라 합시다. 나! 나! 나를 죽여야 된다! 나를 죽여야 된다!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나 그것이 벌써 변해서 나를 죽이고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우리가 돼야 아버지도 영접할 수 있고,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도 있고, 또 죄사함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시험 드는 것,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시험은 모든 닥치는 현실을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현실에게 사로잡혀서 현실에 피동 되고 현실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그 말은 현실을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그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고 그 현실을 정복하고 현실에 대해서 나는 위에 지상 명령인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그 현실에게 탁 펴쳐서 이렇게 놓으면 그 현실이야 내게 대해서 저거 할 일 저거 하니까 나를 죽이든지 말든지 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바의 그 피동으로 현실에게 딱 선포하는 이것이 이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돼야 시험에 들지 안하게 해 달라는 기도하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 말입니다.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하는데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그자가 내가 돼 가지고서 이기게 해 달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현실 지고 안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는 누가 원수입니까? 하나님 원수는 누가 원수요? 나 그놈이 원수입니다.

나 그놈이 원수기 때문에 그놈이 들어서 하나님에게 간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들을 수가 있소? 하나님이 듣지를 못하고 애가 터져서 ‘저 아이가 저렇츰 지금 저놈한테 삼켜 가지고 있으니까 저거 어떻게 구출해야 되겠느냐?’ 지금 하나님은 땀을 흘리면서 분개도 하시고 노력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우리라는 것.

소개: 이 설교는 83년 8월 9일 화요일 새벽 집회시에 창세기 설교를 하시면서 중간에 하신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