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22. 한국에서의 미 정통장로교 선교와 한부선

  선지자선교회

233-234>미 정통장로교회의 한국선교는 1884년부터 시작한 미 북장로교회 선교부 소속의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적 전통과 선교정신을 그대로 전수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특히 1936년부터 1947년까지 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사참배 강요문제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핫지 - 위 필드 - 메이첸으로 이어지는 구 프린스톤 신학에 충실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미 북장로교단과 프린스톤 신학교 내에서 일어났던 미국의 종교개혁운동에 앞장섰던 메이첸이 한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와 현대주의에 대한 반대운동과 전국적으로 일어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한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을 목격햇던 한부선은 프린스톤신학교의 개편, 웨스터민스터신학교의 설립, 장로교해외독립선교부의 태동, 그리고 메이첸 박사의 제명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미 북장로교 한국 선교부 안에 아주 비극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당시의 소감을 적고 있다. 구 프린스톤 신학을 신봉하던 “20여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미 북장로교 안에서 일어났던] 현대주의에 대한 용납과 전통적 신앙을 배교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한국 선교부로부터 철수했다. 미 북장로교 선교부를 떠낫던 선교사들은, 황호리(H. C. Whiting) 선교사 부부, 배의남(Roy M. Byram), 한부선(Bruce F. Hunt), 함일돈(Floyd E. Hamilton), 허대진(J. Gordon Holdcroft), 배위량(William Baird), 최이손(William Chisholm), 마두원(Dwight Malsbary), 에드윈 캠프벨(Edwin Campbell), 소열도(T. Stanley Soltau), 그리고 한선(Marjorie L. Hanson) 등이었다. 그 중에 적어도 6명의 선교사들(바람, 헌트, 해밀톤 부부)은 메이첸이 1936년에 미 북장로교로부터 징계를 받고 제명되었을 때 북 장로교 한국 선교부를 탈퇴하였다. 탈퇴하지 않은 다수의 선교사들도 프린스톤 신학교의 개편과 신학적 입장의 병화에 비판적이었다. 이미 언급한대로 한부선의 부친이자 프린스톤 출신인 한위렴 선교사도 신학적 포용주의를 허용하는 것은 프린스톤 신학교의 역사적인 신학 전통에서 벗어나고 잇음을 지적하는 편지를 수 차례에 걸쳐 교장인 로스 스티븐슨(J. Ross Stevenson)에게 보냈다.

 

235>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위렴은 북장로교 선교부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모독하였을 때, 그의 구속사역을 그만 두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사역을 마치셨다. 우리가 현대주의에 대항하는 증인의 역할을 계속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우리 사역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배격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축출될 수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몫을 찾기에 급급 한다든지 우리의 형제들에게 불필요하게 거침돌이 된다고 외쳐서는 안되리라고 믿는 바이다. 만약 우리가 사임한다면, 선교부는 우리 자리에 자유주의자들을 더 쉽게 앉힐 것이다. 나는 결코 후원비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으며, 내가 선교지에 오게 되었을 때에도 그 문제에 대해 문의 조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곳에 왔을 뿐이다. 내가 문제삼는 것은 결코 그 문제가 아니라 선교부의 현대주의를 허용하는 처사에 대해 항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장로교 해외독립선교부의 유용성과 그 존립의 정당성을 확고하게 믿는 바이며, 장로교 헌법을 정당하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불법으로 간주할만한 하등의 근거가 전혀 없다.

 

236>그들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일 뿐 아니라, 전적으로 이질적인 다른 종교들에 속해있다. 로마의 교회가 기독교 종교를 왜곡했다면, 세속적인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메이첸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었다.

 

241-242>미 정통장로교회 해외 선교부는 일제치하와 해방 이후에 한국 장로교회와 가능한 손잡고 개혁신학의 파급을 위하여 선교활동에 임하였다. 구 프린스톤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교적 전통을 바르게 계승하는데 매우 적절한 신학적 입장으로 간주하였다. 정통장로교단은 설립 초기부터 성경 중심적인 기독교 신앙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한국 장로교회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해방 이후의 교회재건 운동, 자유주의 신학과의 논쟁,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을 교육하는 신학교 양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정통장로교단은 규모 면에서 매우 작을 뿐 아니라 재정적 후원도 충분하지 못했지만, 한부선을 중심으로 한국과 만주에서 펼쳤던 선교사역이 한국교회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중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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