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29. “장로교 언약문서한국의 청교도들

  선지자선교회

298-299>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391월에 장로교 언약문서를 한부선과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숙고하는 가운데 완성하였다. 한부선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누가 그러한 모임의 지도자로 초청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었다. 타협한 교회와 공식적으로 단절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자들이 모임을 인도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가? 나중에 옥에 갇힌 김윤섭, 전도부인 김신복과 박명순 등이 우리 집에 몇 일씩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토의하였다. 스코틀랜드 언약파들의 몹범을 따라 우리도 신사참배와 우상숭배를 인정하는 자들과 철저하게 단절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성경적 교훈을 기초로 하여 장로교 언약문서를 작성하였다. 그 후부터는 이 문서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으며, 이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도 예배를 인도할 수 없었다.한부선과 만주의 한인 성도들이 모범으로 삼은 것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이었다. 1560년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확정되고 칼빈주의적 신앙고백인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이 작성되었는데, 그 신앙고백에는 통치자가 직무의 한p를 벗어날 경우에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칼빈의 신학적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불의한 통치자를 공박하는데 있어서 더 단호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실로 독재자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독재와 공모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300>스코틀랜드 언약파의 모범을 따라 작성된 장로교 언약문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요, 또한 위기 속에서도 만주에 거주하고 있는 성도들을 잘 인도하기 위하여 한부선의 인도 하에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토대로 만들어진 하나의 신조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장로교 교리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참조하면서 이 언약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들은 전적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신앙과 장로교적 교리와 신조를 중시하는 신앙을 통해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할 수 있었다. 그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형편을 살펴볼 대에 우리는 배교와 권징에 대한 혼란을 목격할 수 있다. 우상 숭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이미 타협한 기존의 교단에서 나와 새로운 신앙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선포하고자 한다.”

 

301>종교 개혁의 원리 중의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인 규범이 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아래에 서명한 우리들은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모든 진리를 수납하며 성령께서 이 성경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천명한다. 우리는 이것이 참 종교,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잇고 구원을 주는 유일한 종교,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들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다고 간주했고 이 신앙 문서가 제시하는 교리체계를 성경적인 교훈으로 인정하며 신앙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고백을 하면서 개혁신학의 전통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한부선은 그의 조상 비국교도 청교도였던 존 헌터(John Hunt)가 성경대로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성도를 박해하고 성경적 신앙을 포기한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낫듯이, 우상숭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고 오히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교회는 더 이상 참 교회가 아니며 그런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었다.

 

302>언약의 문서는 7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주된 내용은 신사참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되며, 우상 숭배를 행하는 교회는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하고 참된 교회이기를 포기한 교회이기에 이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배교의 상태는 성경적인 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장로교의 신경과 헌법에서도 떠났음으로, 우상숭배자들과 교제를 단절하고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303>이러한 가운데 한부선 선교사의 선교구역의 성도들이 194010월에 일경에 의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검거되었고, 후에는 한부선과 배의남 선교사 내외도 검속되었다. 한부선은 자신이 일제에 의해 투옥된 이유는 신사참배가 우상이며, 십계명의 제일, 제이 계명에 위배된다는 가르침 때문이라고 밝힌바 있다./ 일제는 한부선과 그의 동료들에게 주님의 죄수들이라고 칭하면서 공판에서 네 가지 죄목을 그들에게 부과하였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죽음으로 맹세한 비밀결사대를 결성했다는 죄목이고, 둘째는 천년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려고 시도했다는 죄목이고, 셋째는 일제에 반역적인 운동을 전개한 죄목이며, 넷째는 평화를 방해한 죄목이다.

 

304>감옥에서 혹독한 고문과 갖은 위협에 시달리는 가운데 언약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10차례나 구금되는 시련을 겪었던 전도자 김윤섭과 맑고 순수한 신앙을 지켜 나갔던 여신도였던 안영애 같은 이들은 순교하였다. 감옥에서 순교한 김윤섭이 마지막 남긴 말은 나는 이제 천국에 갑니다였다고 한부선은 증언하였다.

 

306>이러한 한부선의 활동을 일제는 그냥 좌시하지 않았다. 전 세계를 경악케 했던 1941127일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의 진주만 기습공격이 감행되기 한달 보름 전인, 동년 10 22일에 한부선도 일경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그 날 아침 한부선의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한 후 아침 식사를 막 시작하려할 때, 무장한 일제의 경관들이 그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가족과 생이별을 앞둔 한부선은 시편46:1-3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는 말씀을 식구들에게 권면하며 일경이 보는 앞에서 아침 예배를 드리고, 모두 무릎을 꿇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고통을 이겨나가도록 어린 자녀들과 함께 서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310>또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의 고백교회 성도들에 의한 신앙운동에 대한 증언을 오토 사무엘(Otto Samnel)히틀러의 명령 속에 있는 최면적인 힘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권능이 존재하고 있다. 그 말씀은 분명코 히틀러의 악마적 명령의 힘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듣게 된다. 독일에서도 복음주의의 신학에 근간을 둔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 1934)에서 교회에 대한 통제를 확산하려는 나치 정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 하는 대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경청하며, 살 때나 죽을 때나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말씀 외에 어떤 사건이나 권력, 인물 등을 하나님의 계시로 혹은 계시 선포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모든 거짓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기독교회는 형제, 자매로 이루어진 회중이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말씀과 성례전 가운데 성령을 통해 주님으로 역사하신다. 용서받은 죄인들의 교회인 이 곳은 죄악 된 세상 한 가운데서 믿음과 순종, 선포와 의식을 통해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그 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그로부터 오는 위로와 인도를 따라 살며, 또한 살고자 함을 증거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선포와 의식의 형식을 마음대로, 혹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신념에 순응하여 저버릴 수 잇다는 거짓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311>만주 하얼빈에서 작성된 장로교 언약문서는 만주의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내의 여러 신앙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은 이인재(1906-2000)였다. 그는 평양신학교 재학 중에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이때부터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으며, 특히 남한과 북한 두 지역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정보를 전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1940218일부터 평양 근교에 있는 이노리교회를 목회하면서 반대운동에 참여하였고, 5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과 더불어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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