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신조

2007.05.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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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01/12/23 (일) PM 10:03:41  (수정 2001/12/25 (화) AM 02:01:01)    조회 : 201  
선지자선교회
■ 니케아 신조

초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최대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초대 기독교의 배경 속에서도,
그리고 속사도, 변증가, 교부들의 글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핵심 주제였다. 과연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정말 하나님이신가?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창조주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라면, 성부와 성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이러한 문제들은 초대 교회 수세기 동안 줄곧 쟁점이 되어 왔다. 그러던 중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Alexander)와 장로 아리우스(Arius) 사이에서 시작된 성부와 성자 관계에 대한 논쟁은 초대 교회 역사상 가장 큰 논쟁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이른바 아리우스 논쟁이다. 니케아 종교 회의는 바로 아리우스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회의였다. 그런데 니케아 회의는 이 논쟁의 불씨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 결과 이 문제는 진일보하여 성령과의 관계 문제까지로 확대됨으로써, 결국 콘스탄티노플 종교 회의에 이르러서야 삼위일체 교리 정립으로 매듭지어지게 되었다.


니케아 신조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신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전능자시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노라.

우리는 또한, 유일하신 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이는 성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로부터 태어나신 독생자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된 하나님이시고,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 성부와 동일본질이시고, 이를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은 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사,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 당하신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 하늘에 오르셨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노라.
그러나 "성자께서 안 계신 때가 있었다"든지, "그가 태어나시기 전에는 그가 계시지 않았다"든지, "그가 무로부터 생성되었다"고 말하거나, "성자가 다른 본체나 본질로부터 유래했다"든지 "피조물"이라든지, "가변적"이라든지,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보편교회가 저주하노라.]  




니케아 신조 분석

니케아 신조는 그 후에 첨가된 부분들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 귀 절의 저주 부문을 삭제한 형태로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모체를 이룬다. 원래 로마에서 기원하였던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으로부터 비롯된 서방에 기원을 둔 교회들 사이에서만 알려지고 사용되었다. 반면 니케아 신경은 이러한 서방 교회들뿐만 아니라 동방 교회, 즉 그리이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에 의해서도 인정되었다.


이 신조에서 주목을 끄는 귀 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과 동시에 "유일하신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곧 아버지라고 해서 아들이 제외되는 것이 아니고 "유일하신 주"이시요 같은 하나님이다.


둘째,

성부는 불가견적이고 성자는 가견적이라는 말이 없다. 이것은 그노시스 이단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터툴리안보다도 일보 진보한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처럼 플라톤적인 이데아에 관한 언급이 아니라, 성경대로 말한 것이다(골 1:16).


셋째,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라고 하지 않고 "보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지음 받음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로고스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터툴리안까지만 해도 로고스의 영원 전(前) 존재에 대한 사색을 했으나, 여기서는 그것이 전혀 없고 로고스라는 용어까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아들이 말씀이심을 부인코자 함이 아니고 스토아 철학이나 누스 혹은 무인격적 사유나 논리와 혼동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될 수 있다.


다섯째,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독생자"이심을 강조한 점이다. 홀로 나셨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성부에게서 나셨다고 한 후, 홀로 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성부와도 다르고, 성령과도 다른 위 격임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독생하심은 성부와 성령에게 없고 성자에게만 있는 특성이다. 이로서 사벨리우스의 동질 동격설을 완전히 배격한 것이다.


여섯째,

이 독생하심이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셨다는 것, 즉 신성의 근원이 성부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  '는 근원을 의미한다. "성부에게서" 독생하셨다고만 하다가 이것을 다시 해석하여 성부의 "본질로부터"라고 한 것은 본질은 불가분리하나 위 격은 나누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일곱째,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된 하나님"은 무에서 지음 받은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라는 것, 그러나 보통 흔히 재판장에게도 붙여지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강하기 위해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된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오해를 할 우려가 있었음인지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라고 덧붙여서 피조물이 아님을 완전히 못박았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피조설을 뿌리부터 제거해 버렸다.


여덟째,

피조물이기는커녕 오히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을 강조하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포함된다는 것을 덧붙였다. 이것만 고백해도 충분하나, "성부와 동일본질"이란 말을 덧붙인 것은 니케아 신조 전체의 상징(symbol)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단어는 모호하고 비전문적인 단어이어서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으며, 따라서 장차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다시 말해, 본질의 동일성을 어떠한 의미로 이해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오리겐이 의미하는 바대로 성부와 성자가 하나라는 뜻인가? 아니면 오리겐이 단일신론자들을 반박하면서 주장했던 대로 성부와 성자는 숫자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구별되지만 본질의 동일성으로는 하나라는 뜻인가? 아니면 본질의 숫자적인 동일성의 의미에서 이 표현을 이해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니케아의 결정은 두 번째의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경우 "성부와 동일본질"이라는 표현은 신성의 각 위격들이 공통적인 신적 존재로서 하나임을 뜻한다. 이러한 해석은 후기 정통 이해와 일치하지만, 이 표현이 지닌 본래적인 의미와는 일치하지 않게 된다. 3세기 신학자들 사이에서 동일본질이란 "똑같은 본질"을 의미했다. 이 때까지는 숫자적인 동일성이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니케아 회의에서 갑자기 그리고 준비도 없이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는 추측할 수 없다.

니케아 회의는 "아버지와 동일본질"이라는 표현을 채택함으로써 다시 한번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다"는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결국 성자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회의는 신성의 통일성과 각 위 격의 독특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일종의 반신(Demigod)으로 만들었던 아리우스와 그의 주장들에 대한 반대로서 아들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하려고 했다.

니케아 신조는 철학적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양태론적 단일신론과 역동적 단일신론으로 인하여 교회가 약 120년간 연단을 받은 후 계속해서 성경을 상고하는 가운데 집약된 신앙고백으로서, 단순히 아리우스주의만 배격한 것이 아니고 오리겐주의의 종속설도 완전히 극복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신조는 세 위 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별성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비록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했지만 이 정죄만으로는 아리우스주의를 교회 밖으로 몰아내는 데 충분하지 못했으며, 교회가 아리우스주의를 결정적으로 정죄하기까지는 또 다시 5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에 걸친 논쟁을 계속해야만 했다.  

니케아 신조는 성령의 신성 문제는 다루지 아니했으며, 후미(後尾)에 아리우스파에 대한 정죄문을 포함하면서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