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8 21:47
■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①②③④⑤
이 자료는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①∼⑤를 한권으로 합본한 것이다.
2020. 7. 18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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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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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글의 제목은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다. 왜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교리를 보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보다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본문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반증한다.
반증하는 방식은 다음의 표시와 같이 ‘주권욱의 논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김반석의 반증’을 제시한다.
‘▼ 주권욱의 논문’
‘● 김반석의 반증’
안내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에서 말하는 부분은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로써 총 5건이다. 이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 5건을 한 몫에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아니하고 각각 1건씩을 별도 정리를 해서 게재한다. 그리고 총 5건 정리를 마치면 합본해서 별도로 게재할 예정이다.
(본론)
▼ 주권욱의 논문
첫째, 이근영은 백영희의 구원관에서 구원을 수정 보완하였다. 백영희는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분하는데 “건설구원”의 개념을 “성화구원”으로 바꾸고 “영화구원”을 추가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시켜나가는 방편(方便)을 “기본구원”, “성화구원”, “영화구원”으로 분류하였다. 백영희의 "건설구원"은 사람의 노력을 많이 강조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근영의 "성화구원"은 신인협력으로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의 방편으로 이용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인 성신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정의한다.
● 김반석의 반증
1. 이근영의 ‘기본구원과 성화구원과 영화구원’에 대한 김반석의 반증
1)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다음은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 성구이다.
(고전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가 ‘기본구원’이라면, 그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공력은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 도리적으로나 대비적(對比的)으로 맞는 표현이다.
2) 성화구원
다음은 ‘성화구원’ 교리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 성구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교리용어로 ‘성화구원’이다. 그렇기에 성화구원은 건설구원에 대한 하나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욱 목사가 이근영 목사는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하여 기본구원과 성화구원으로 대비시킨 것은 성경의 진리의 도리를 잘 모르고 적용한 오류이다.
3) 영화구원
다음은 ‘영화구원’ 교리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 성구이다.
(요일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이 곧 ‘영화’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우리가 이 땅에서 받고 이룬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주님 재림하실 때에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근영 목사가 ‘영화’가 아닌‘영화구원’이라고 하면서 영화구원을 우리의 구원에 분류하여 추가하는 것은 진리적 교리에서 합치되지 아니하는 오류이다.
2. 이근영의 ‘백영희의 "건설구원"은 사람의 노력을 많이 강조한 면이 있다.’에 대한 김반석의 반증
1)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엡1:6) 값없이(롬3:24)받은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터(고전3:11)라 하셨다. 이것을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기본구원’이라는 교리용어로 표현하셨다.
2)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공력(고전3:12-15)으로써 이것을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건설구원’이라는 교리용어로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믿는 ‘믿음’은 우리가 힘쓸 것이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그의 성령을 선물(행2:39, 엡2:8)로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힘써(벧후1:5, 유1:3) 믿음으로 살도록 강조하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을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교훈하셨다. 그런 것은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엡2:8)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주권욱 목사가 그의 논문에서 ‘백영희의 "건설구원"은 사람의 노력을 많이 강조한 면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백영희 목사님의 ‘건설구원’ 교리에서 믿음에 대한 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그리고 주권욱 목사는 ‘그러나 이근영의 "성화구원"은 신인협력으로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의 방편으로 이용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인 성신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정의한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백영희 목사님의 건설구원의 교리가 바로 이런 교리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 본인이나 그를 가르친 이근영 목사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건설구원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증표이다.
3) ‘행함’에 대한 성구
다음의 약2:14-26은 ‘행함’에 대하여 말씀하신 성구이다.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 곧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요14:16-17, 요14;26, 요15:26)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눅4:18) 때문이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 곧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요14:16-17, 요14;26, 요15:26)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눅4:18) 때문이다.
약2:14-26에서 ‘행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을 말씀한다.
4) 힘써
(벧후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하셨다. 즉 너희가 더욱 힘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아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힘써 믿음으로 사는 신앙생활을 교훈하신 것이다.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하셨다. 그러면 ‘믿음의 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 곧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요14:16-17, 요14;26, 요15:26) 주의 성령이 임하신다(눅4:18).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요일5;10-11)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요일5:10-11)이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믿음의 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즉 기본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거저 값없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힘쓸 것이 없고, 다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곧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 곧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요14:16-17, 요14;26, 요15:26)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눅4:18)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데는 힘쓸 것을 강조하시는 교훈을 하신 것이다.
5) 율법의 행위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하셨다. 그러면 율법의 행위는 무엇인가?
(막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셨다. 이것이 율법이며, 이것을 행하는 행위가 율법의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고, 다만 율법을 범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까닭이다.
그렇기에 ‘율법의 행위’와 약2:14-26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행함’은 완전히 다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믿음의 행함을 말하면 율법의 행위로 오해하여 율법주의라고 오류적 규정을 하는 실수를 법하고 있다.
(결론)
주권욱 목사를 가르친 이근영 목사는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백영희 목사님께서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 믿음으로 사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강조하는 믿음에 대한 도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고 하면서 4건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 해당되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주권욱 목사가 주장하는 4건 중에 첫째에 해당되는 글에 대한 김반석의 반증이다.
2020. 07. 14∥1차 원고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선지자문서선교회∥http://seonji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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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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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글의 제목은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다. 왜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교리를 보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보다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본문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반증한다.
반증하는 방식은 다음의 표시와 같이 ‘주권욱의 논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김반석의 반증’을 제시한다.
‘▼ 주권욱의 논문’
‘● 김반석의 반증’
안내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에서 말하는 부분은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로써 총 5건이다. 이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 5건을 한 몫에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아니하고 각각 1건씩을 별도 정리를 해서 게재한다. 그리고 총 5건 정리를 마치면 합본해서 별도로 게재할 예정이다.
(본론)
▼ 주권욱의 논문
둘째, 이근영의 구원의 핵심은 백영희가 강조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건설구원에 맞추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생명”이 주체가 되는 구원관을 가지고 “아들의 생명”이 성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발전된 구원관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좀 더 깊은 세계인 성부세계와 생명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 김반석의 반증
1. 백영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백영희 목사님께서 정립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는 무엇인가?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이 둘이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구원의 요소가 둘로써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것이다.
‘중생의 씻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음(엡1:7)이며,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엡1:13)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씻음’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예수 믿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거저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백영희 목사님은 ‘기본구원’이라는 교리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이것을 백영희 목사님은 ‘건설구원’이라는 교리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와 교리용어에 합치되는 대표적 근거 성구는 다음의 고전3:11-15이다.
(고전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 기본구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하셨다. 그러므로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에 대한 교리용어를 백영희 목사님은 ‘기본구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2) 건설구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공력에 대한 교리용어를 백영희 목사님은 ‘건설구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의 구원의 핵심은 백영희가 강조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건설구원에 맞추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곧 이근영은 구원론을 고전3:11-15 말씀에 맞추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같다.
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 아들 안에 있는 생명
(요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셨다. 즉 말씀 곧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말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즉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아들의 생명’이 아니다. 한 번 더 강조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러면 ‘말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곧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은 무엇인가?
2)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5:10-11)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하셨다. 그러므로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있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무엇이며,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엡1:7, 엡1:13)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다.
②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엡1:7, 엡1:13)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18) 것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아들의 생명”이 주체가 되는 구원관을 가지고 “아들의 생명”이 성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발전된 구원관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좀 더 깊은 세계인 성부세계와 생명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으로써 공상적이며 궤변적 주장이다.
(결론)
백영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는 성경적 구원론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의 구원의 핵심은 백영희가 강조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건설구원에 맞추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곧 이근영은 구원론을 고전3:11-15 말씀에 맞추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같다. 그러므로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론을 아직 명확히 잘 알지 못하고 있고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도 명확히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말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즉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런데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것은 성경에 성문적으로도 없고 도리적으로도 없는 ‘아들의 생명’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의 자기 안에 증거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이에 대한 성경적 해석은 위에서 자세히 하였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는 비성경적 ‘아들의 생명’이라는 교리를 주장하는데 이는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아래에 첨부한 2건의 자료를 보면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얼마나 비성경적 곧 공상적이며 궤변적 주장을 하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2020. 07. 15∥1차 원고
-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 선지자문서선교회∥http://seonjija.net
※ 다음은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주장하는 비성경적 ‘아들의 생명’에 대한 반증을 위해서 요1:4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이 성경을 근거하여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성경을 근거한 해석’이라는 것은 해석할 성구에 대하여 해석해주는 성구를 성경에서 찾아 제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최소한 첨부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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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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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서문)
이 글의 제목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이다. 즉 ‘태초에 말씀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이다.
이 글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한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리하면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가 주장하는 비성경적 ‘아들의 생명’에 대한 반증도 되겠다.
다음의 글은 이근영 목사가 주장하고 주권욱 목사가 정리하여 학위를 받은 ‘아들의 생명’에서 교리용어와 교리의 개요를 말한 것인데 이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근영이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the Being of the Son)이라는 용어는 창세전 세계에서 실제로 있었던 상황을 근거해서 만들어 낸 용어이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아들의 생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다음과 같은 용어에서 찾는다. 즉 “하나님께로 난자”(born of God), “하나님의 씨”(God's seed), “거룩한 씨(Holy seed) “거룩함을 입은자(those who are holy made), “신(The Spirit)”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근영은 “아들의 생명”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신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신의 씨”(God's Seed)로 나왔다고 말한다. 이 신의 씨는 생명을 가졌고, 성부 하나님에게서 “생출”(히2:11)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성립되어 “아들의 생명”이라고 호칭 한다고 주장한다.」
위의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가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교리용어와 교리는 전적 비성경적 오류이다. 이렇게 확정하는 근거의 대표적 성구 중에 하나가 요1:4에 ‘그(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이다.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가 ‘아들의 생명’에 대한 교리용어 근거는 저들 스스로도 말하지만 성경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생명’에 대한 교리의 개요를 말하는데 이 또한 성경에 없는 공상적인 말이다. 성경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하셨다.
그러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는 무엇인가?
(본론)
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셨다. 즉 ‘태초에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무엇인가?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요일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하셨다. 이것이 곧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는 무엇인가?
3.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5:10-11)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는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이것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이며, 이것이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는 무엇인가?
그리고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는 무엇인가?
(본문)
1장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1.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중생의 씻음: 딛3:5)을 받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❶예수님의 대형벌의 대속으로 우리가 사죄의 구속, ❷예수님의 대복종의 대속으로 우리가 칭의의 구속, ❸예수님의 대화평의 대속으로 우리가 화목의 구속을 받은 것이다.
2.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딛3:5)을 얻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무엇이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것인가?
1) 그 안에서 또한 믿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❶죄 짓 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❷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❸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다.
참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그리하여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❶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요14:16, 요14:26, 요15:26)과 ❷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것이다.
2장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하셨다. 이것이 곧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에 대해서는 위의 1장에서 논설하였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요일5:10-11)이다. 이것이 곧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창1:26-28)이다.
○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는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을 말씀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이다.
2.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❶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이것이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요일5:10-11)이다. 이것이 곧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갈4:19) 것이다.
○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곧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말씀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다.
(결문)
문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는 무엇인가?
답: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요일1:1-2)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10-11)’이다.
문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는 무엇인가?
답: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이다.
문3: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는 무엇인가?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곧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선지자문서선교회∥김반석 e0691@hanmail.net
2020. 06. 29∥1차 원고
※ 다음은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주장하는 비성경적 ‘아들의 생명’에 대한 반증을 위해서 히2:11에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이 성경을 근거하여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성경을 근거한 해석’이라는 것은 해석할 성구에 대하여 해석해주는 성구를 성경에서 찾아 제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최소한 첨부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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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의 ‘아들의 생명’에 대한 반증적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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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2:11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이 2단락이다.
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②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위의 2단락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한 해석을 하고자 한다. 성경을 근거한 해석이라는 것은 해석할 단락에 대하여 해석해주는 성구를 성경에서 찾아서 제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최소한의 설명을 첨부하는 것이다. 설명에 있어서 해석해주는 성구의 도리의 범위를 벗어나면 그만큼 그 즉시 자의적 해석 즉 비성경적 해석이 된다.
이근영이라는 목사가 히2:11 말씀을 근거하여 ‘아들의 생명’이라는 공상적 교리를 발생시켰고, 주권욱이라는 목사는 그 자료를 원천으로 해서 논문을 작성하여 신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함은 저들 목사와 신학교의 처사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비성경적 오류이다. 그러한 것은 히2:11 말씀으로는 ‘아들의 생명’이라는 교리용어나 교리가 결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의 본문에서 앞부분은 김반석 목사의 히2:11에 대한 성경적 해석이다. 그러니까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의 ‘아들의 생명’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 되겠다.
아래의 본문에서 뒷부분 □ 안에 글은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가 히2:11을 근거한다면서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비성경적 해석이다.
(본문)
● 김반석 목사의 히2:11에 대한 성경적 해석
본문: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서론)
본문 히2:11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서문에서 언급한대로 다음과 같이 2단락이다.
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②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본론)
1장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1.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하셨다. 이것이 곧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너희는 아래서 났고’는 무엇이며, ‘나는 위에서 났으며’는 무엇인가?
1) 너희는 아래서 났고
(롬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셨다. 이것이 곧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무엇인가?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무엇이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무엇인가?
-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❶죄 짓 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❷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❸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그렇기에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❶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요14:16, 요14:26, 요15:26)과 ❷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다.
○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 주의 성령의 임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❶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2) 나는 위에서 났으며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셨다. 이것이 곧 ‘나는 위에서 났으며’이다.
그러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무엇인가?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곧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❶예수님의 대형벌의 대속으로 우리가 사죄의 구속, ❷예수님의 대복종의 대속으로 우리가 칭의의 구속, ❸예수님의 대화평의 대속으로 우리가 화목의 구속을 받은 것을 말씀한다.
2.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하셨다. 이것이 곧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는 무엇이며,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는 무엇인가?
1)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롬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셨다. 이것이 곧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무엇인가?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무엇이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무엇인가?
-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❶죄 짓 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❷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살고 ❸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그렇기에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❶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요14:16, 요14:26, 요15:26)과 ❷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다.
○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 주의 성령의 임하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❶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2)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셨다. 이것이 곧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이다.
그러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무엇인가?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곧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❶예수님의 대형벌의 대속으로 우리가 사죄의 구속, ❷예수님의 대복종의 대속으로 우리가 칭의의 구속, ❸예수님의 대화평의 대속으로 우리가 화목의 구속을 받은 것을 말씀한다.
2장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 맏아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다. 이것이 곧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이다.
그러면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은 무엇인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셨다. 이것이 곧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하나님의 아들
(롬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셨다. 이것이 곧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이다.
그러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는 무엇인가?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곧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은 많은 형제들이다.
(문답)
문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는 무엇인가?
답: ❶‘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요8:23)’ 하신 것이다. ❷‘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하신 것이다.
문②: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는 무엇인가?
답: ❶‘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하신 것이다. ❷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4-16)’ 하신 것이다.
(첨부1)
●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하셨다.
그러면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는 무엇인가?
(골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하셨다. 이것이 곧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이다.
(첨부2)
※ 아래의 글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이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붉은 글은 부족한 종 김반석이 체크한 것인데 비성경적 곧 공상적(空想的)이고 궤변적 부분이다.
●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의 ‘아들의 생명’ 부분발췌
◯이근영이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the Being of the Son)이라는 용어는 창세전 세계에서 실제로 있었던 상황을 근거해서 만들어 낸 용어이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아들의 생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다음과 같은 용어에서 찾는다. 즉 “하나님께로 난자”(born of God), “하나님의 씨”(God's seed), “거룩한 씨(Holy seed) “거룩함을 입은자(those who are holy made), “신(The Spirit)”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근영은 “아들의 생명”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신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신의 씨”(God's Seed)로 나왔다고 말한다. 이 신의 씨는 생명을 가졌고, 성부 하나님에게서 “생출”(히2:11)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성립되어 “아들의 생명”이라고 호칭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서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요컨데 “아들의 생명”을 “하나님의 아들”로 본 백영희는 근원을 ‘아들의 씨’로 생겼다고 말한다. 어원의 근거에 대하여는 ‘아들의 씨’라고만 표현하여 구체적이지 않으나, 반면에 이근영은 “아들의 생명”의 어원에 대하여 성경에 표현된 여러 가지 이름을 제시하였고, 신의 본질을 가졌다고 표현하였으며, 그의 근거를 히브리서 2:11을 제시하므로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표현하였다고 본다.
◯이근영에 의하면 “아들의 생명”의 출처와 근원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부에게서 성자가 발생되고 성신이 발출 되어 목적과 능력과 영광과 지위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며, 세분의 위가 일체로 역사 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신의 씨”(God's Seed)로 생출 된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이지만, 완전한 신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자신에게 있는 모든 능력과 영광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나라에서 부자 관계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이런 교제를 원하셨다고 한다.
◯이근영에 의하면 피조물의 세계에서는 부부관계를 통해서 자식을 낳을 때 이것을 “출생”이라 하지만, 부부관계가 아니면서 낳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것을 “생출”이라고 표현한다. 사람의 영이나 육체는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로 난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근영이 “아들의 생명”이 성부 하나님에게서 “생출” 된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a. 히브리서 2:11 해석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논평자가 생략)
2)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논평자가 생략)
3) “다 하나에서 난지라”
“‘다 하나에서 난지라’[ejx eJno;" pavnte"]<엑스 헤노스 판테스>는 이 두 거룩하게 하시는 성자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아들의 생명”들이 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졌다는 말이다. 성부 하나님은 신의 세계의 원천이시며, “아들의 생명”들에게 자기의 거룩한 능력과 영광을 입혀주기 위한 목적으로 영물세계와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성자 하나님은 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여 거룩한 위적 아들로 하나님 본체 안에 일체로 계시고, “아들의 생명”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생출되어 본체에는 속하지 않으나 아들로서 위적 아들을 통해 능력과 영광을 입히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난지라’를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겠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낳다는 의미이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3)라는 말씀은 영과 육체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낳다고 말할 수 없으며, 생출된 “아들의 생명”만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고전1:30)의 말씀도 피조물인 영과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아들의 생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 하나님의 씨다.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과 본질과 본성이 같은 “아들의 생명”을 상징하는 말이다. ‘씨’는 본질이 바뀔 수 없는 완전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이 생명이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영체와 육체는 하나님의 씨가 될 수 없다. 육체와 영체는 神으로 변할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낳는 것이지 영이나 육이 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로서 생출 된 “아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씨라는 것이다. (롬8:15, 23, 9:4) 이 씨는 성부 하나님께 로서 생출 하였기 때문에 신성으로 죄를 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죄를 범할 수도 없고, 범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 너희는 신이다. “너희는 신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시82:6)의 말씀은 선택 받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생출한 “아들의 생명”의 본질과 본성이 하나님과 같다는 것을 가리켜서 너희는 신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이다.(시82:7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0:34)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기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성도를 가리켜 神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 자체를 신이라고 말했다고 볼 수 없으며, 동시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있는 靈이나 또는 靈肉을 합하여 神이라 한 것도 아니다. 영의 주격인 하나님의 씨, 즉 “아들의 생명”을 신이라 한 것이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한 말씀은 성경을 진리와 성신 하나님의 깨우침을 통해서 받은 신적 능력을 입혀주신 것을 말한다. 신적 능력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영이나 이성은 피조물로서 각각 한계가 있는 유한한 것으로 직접 신적 능력을 받을 수 없으며, 신적 요소를 가진 “아들의 생명”만이 직접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이라고 한 것이다. 요한복음 10:34-36절 말씀은 예수님이 시편82;6을 인용하여 증거 하는 말이다. 시편82:6절은 아삽이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을 택자로 보고 그 택자의 영의 주체인 “아들의 생명”을 신으로 보고 한 말이며, 이 말씀은 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예수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참람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반박하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행17:29)라는 말씀에서 피조물은 하나님의 소생이 될 수 없는데, 소생이라 한 것은 “아들의 생명”을 전제로 한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4)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은 성자와 “아들의 생명”들이 성부에게서 난 것을 전제하는 말로서, 근원이 하나이며 혈통이 하나에서 나왔음으로 형제라 부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는 사람의 몸을 입고 있는 기간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그들에게 구주이므로 형제라 할 수 없다. 이 동안에는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와 구원받은 성도는 양자의 관계에서 자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형제라 할 수 없고 구주로 섬겨야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을 피로 사신 구주이고, 택한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관계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가 육체를 벗고 또 영체를 벗은 후 “아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입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친자로 나타난 아버지 나라에서는, 성자는 본체의 속한 맏아들이고, “아들의 생명”들은 친자로서 형제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부끄러워아니하시고’ [oujk ejpaiscuvnetai]<우크 에파이스퀴네타이>는 신이 피조물을 형제라고 부른다면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본질과 본성이 같은 아들이라면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만약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형제라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형제로 한다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위적 맏아들이나 권능과 영광을 입은 아들 간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근영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아들의 생명”들을, 하나에서의 하나는 성부 하나님을, 난지라는 낳아졌다는 것을, 형제가 되는 것은 이 땅에서가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이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본질과 본성이 같기 때문이라고 주해하였다. 그는 aJgiavzwn(하기아죤)을 신성에서 유래한 거룩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 성별하다란 뜻으로 현재 능동적 주격자로서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는 자인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강해하였다. 이러한 강해는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에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결론)
위의 본문에서 보는 대로 부족한 종 김반석이 히2:11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한 해석을 하였다. 이것은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의 ‘아들의 생명’에 대한 비성경적 주장에 대하여 반증적 논평을 하기 위함이다.
서문에서 언급한대로, 이근영이라는 목사가 히2:11을 근거하여 ‘아들의 생명’이라는 공상적 교리를 발생시켰고, 주권욱이라는 목사는 그 자료를 원천으로 해서 논문을 작성하여 신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함은 저들 목사와 신학교의 처사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비성경적 오류이다. 그러한 것은 히2:11 말씀으로는 ‘아들의 생명’이라는 교리용어나 교리가 결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급한대로 위의 글이 되는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의 ‘아들의 생명’에서 비성경적 주장의 부분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이 붉은 글로 표시를 하였다. 전체 글에서 거의 대부분 글에 붉은 글로 표시하였으나 실은 글 전체가 비성경적 주장이다. 그러한 까닭은 언급한대로 히2:11 말씀으로는 ‘아들의 생명’이라는 교리용어나 교리가 결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근영 목사와 주권욱 목사가 히2:11을 근거하여 ‘아들의 생명’에 대하여 주장하는 것은 전적 공상적이며 궤변적으로써 비성경적 오류이다.
선지자문서선교회∥김반석 e0691@hanmail.net
2020. 06. 24∥1차 원고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③∼⑤」은 아래의 댓글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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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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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글의 제목은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다. 왜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교리를 보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보다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본문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반증한다.
반증하는 방식은 다음의 표시와 같이 ‘주권욱의 논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김반석의 반증’을 제시한다.
‘▼ 주권욱의 논문’
‘● 김반석의 반증’
안내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에서 말하는 부분은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로써 총 5건이다. 이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 5건을 한 몫에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아니하고 각각 1건씩을 별도 정리를 해서 게재한다. 그리고 총 5건 정리를 마치면 합본해서 별도로 게재할 예정이다.
(본론)
▼ 주권욱의 논문
셋째, 이근영은 백영희의 특징 중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크게 부흥 시키는 그런 면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방법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방법이다. 목양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지며,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목회하면 목양관계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교회를 크게 하고 작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 목회자에게 주신 달란트이기 때문에 작게 받은 사람이 크게 하려고 하면 인간의 수단방법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 자체를 싫어했다.
● 김반석의 반증
1. 백영희 목사님의 부산서부교회 부흥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의 특징 중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크게 부흥 시키는 그런 면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방법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방법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의 교회부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교회부흥에 대하여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방법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방법이라 말하면서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의 교회부흥을 연결시키는 것은 사람의 질이 좋지 않거나 아니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회부흥관을 잘 모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교회부흥에 있어서 인간의 인본적 노력이나 인본적 방법 사용한 적이 결코 없다. 그 확실한 증거 중에 하나가 다음의 백영희 목사님의 1988. 7. 31. 주일새벽 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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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교회부흥 비결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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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49:20-22)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 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 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때에 내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데서 생겼는고 하리라
오늘 공과는 마태복음 5장 14절 이하에 있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는 이 말씀을 지금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다 잘 알고 그저 본문을 학생들에게 읽어서 주입을 시켜서 그 기억 속에다 심아 두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교회 부흥되는 그 비결
오늘 아침에 이 봉독한 말씀은 또 다른 교회서 반사들이 많이 견학을 왔다고 하는데 이 주일학교든지 장년반이든지 또 권찰 구역이든지 이 부흥되는 그 비결을 지금 성경대로 간단하게 말할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금 맡긴 비유에는 보면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여게는 '나는 고난 중에 자녀를 얻었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믿음의 자녀를 말합니다. 육체의 자녀를 말하는 게 아니고. 고난 중에 낳은 자녀인데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핍박 멸시 천대받고 심히 외로왔었는데 아주 외로왔었는데 갑자기 이 많은 무리들이 모여드니까 이 무리들은 어데서 왔으며 누가 나를 위해서 길렀기에 이 많은 무리들이 모였는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 많이 모여서 모인 무리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 거처할 곳이 없으니까 좀 거처할 곳을 좀 넓혀서 거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 간구한다하는 것을 여게 말해 놨습니다.
교회부흥은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일을 한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를 교회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든지 또 그 교회 안에 주일학교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든지, 중간반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든지, 장년반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든지 또 그 교회에 각 구역에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든지 하는 데에는 누가 일하는가? 일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일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은 바로 됩니다.
하나는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일을 합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 잘했다. 착하다. 충성된 종이다. 잘했다 착하다 하는 그 말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예수님의 대속을 바로 믿고 그 사람이 영감과 진리로 일하는 것을 말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성심성의를 기울이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은 누가 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 공로가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지혜로운 말로 전하지 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그 권능에 있도록 할라고 내가 애를 쓴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공로를 내가 믿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공로가 와서 일을 하셔야 되지 예수님의 피 공로가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예수님의 피 공로는 세 가지인데, 사죄 칭의 화친의 피 공로인데. 예수님의 피 공로가 와서 인간을 구원하시지 아무도 다른 이는 구원할 이가 없다.
예수님의 피 공로와 또 성령과 진리가 일한다. 성령과 진리가 일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성경대로 가르쳐야 되지 성경을 떠나서 아무리 자기가 청산유수와 뭐 어떤 웅변을 가지고서 가르쳐서 그때에 사람들이 아무리 감화 감동을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되는 것 같지마는 안 됩니다.
이러니까 잘못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설득을 하면 된다 이래서 “사람들을 이해를 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면 된다” 이라는데 그거 좋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해서 그때 뭐 마음에다 납득되고 감동이 돼 가지고서 그들이 어떻게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인간의 열심이라는 그까짓 거는 그저 사흘도 못 갑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이해시킬라고 하는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와서 일해주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피가 와서 일을 해 줄 수 있도록, 진리가 와서 일할 수 있도록, 성신의 감화 감동이 와서 일할 수 있도록, 이 전부 신적 요소인데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일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해야 된다 요게 제일 중요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와서 이 일을 당신이 합당히 여기시고 일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해야 되겠다하는 요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고,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말을 잘해서, 물론 말도 필요하지마는. 말을 잘해서 또 이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설득을 시켜서 또 이 학생들을 재미를 있도록 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며 어떻게 내가 말을 잘하고 또한 그런 수단 방법을 써 가지고서 이 학생들을 이해를 시켜서 뭘 할까 하는 고것이 첫째냐, 고게 첫째냐?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와서 일을 하셔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고것을 첫째로 생각하느냐? 그 둘 중에 이게 아니면 저겁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오.
어떤 사람들은 뭐 자기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때에 말만 잘하고 공과를 가르치기만 잘 가르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인본주의의 사람이오. 사람이 말 잘하고 또 사람들을 많이 감동시켜서 이해 설득을 시키면 된다 요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거 인본주의인데 되는 것 같으나 끝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이라든지 또 그 뭐 행정 하는 것이라든지 그런 거 보면은 아주 교회가 잘될 것 같은데 교회가 부흥이 안 됩니다. 부흥이 안 되고 또 그 사람은 뭐 교회가 부흥될 만한 아무 그런 자격이 없는데 어짠지 가면은 교회가 차차 차차 부흥이 됩니다. 그것은 어데 있는가? 하나는 인본주의고 하나는 신본주의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신본주의는 어떤 게 신본주의인고 하니 어짜든지 예수님의 피 공로를 제가 믿고,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고 성령이 와서 일해 주시도록 해야 되겠다, 진리가 와서 일해 주시도록 해야 된다 이러니까 말을 잘하고 하는 것보다도 더듬어도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지 안한 하나님의 진리대로 말을 해야 되고, 또, 자기가 할 때에 자기 속에 마음에는 없고 이러면서 그 시간에 아주 청산유수의 그렇게 말만 하고서 자기가 참되게 믿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은 성신이 와서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참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진정한 마음으로 성심성의를 기울여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이 돼 가지고 성령님이 협동을 해 줄 수 있도록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 진리대로 요렇게 더듬어 가르쳐도 요렇게 가르치는 그 사람에게 피도 같이 하고 성령도 같이 하고 진리도 같이하고, 이러니까 그 보잘 것이 없으나 그 사람이 진실 된 마음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또 자기가 참 가르치기를 암만 내가 뭐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 말 저 말 어떤 말을 주 댄다 할지라도 진리가 틀리면 안 된다. 진리대로 해야 된다. 내가 진리대로 가르칠 때에 진리가 그 일을 하고 내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바로 믿을 때에 그때에 성령이 감동합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를 참 믿고, 내가 예수를 참 믿고 또 가르치는 것을 더듬어도 진리를 가르치고 요 두 가지를 할 때에 성신이 같이 해 주십니다. 사람을 예수 믿도록 만드는 것은 성령님이 예수 믿도록 만들지 다른 이는 예수 믿도록 만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오신 것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전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오셨는데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하는 데에는 내가 두 가지를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는 요 말씀을 그 본문에 있으니까 요것을 참 믿어서 자기가 세상의 빛인 것을 깨닫고 빛으로 살라고 애를 쓰는 그 본인이 돼야 됩니다. 본인이 빛으로 살라고 하는 참 간절한 마음을 그 진실한 마음을 본인이 가져서 본인이 이 공과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또 하나는 더듬어도 이 성경 진리에 어긋지지 안하도록 가르치고, 그러면 몇 가지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두 가지 했습니다. 이라면 성신이 같이 동행해 주십니다. 성신이 그 일을 협조해 줍니다. 성신이 협조해주는 것, 그러면 내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믿어, 참 믿어서 자기가 참 먼저 믿는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진리대로 가르치고 요렇게 하면 성신이 동행해 주십니다.
동행해 주시고, 요거는 다 신적 요소에 속한 것인데, 내가 참으로 대속의 공로를 믿고 진리대로 가르치는 거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뭐이 있는고 하니 '충성된 종아'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열심을 내서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충성해야 되는데, 충성해야 되고 또 예수님의 피 공로와 그 진리를 가르치면 성령이 동행하고, 그러면 아무리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참 믿는 진실한 사람이 돼 가지고 있고 또 그 사람이 진리대로 그대로 가르치고, 그러면 둘 했습니다. 요라니까 성령이 동행해 주십니다. 동행해 주시지마는 그 사람에게 충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충성. 그러면 충성이 없으면 충성하면은 그 일이 성공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할 일은 무엇이 우리 할 일인고 하니 우리가 이 공과대로 자신이 참 요대로 믿는 사람, 요 대로에 생활을 자기가 실지로 할라고, 요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자기가 먼저 믿고, 요와 같은 사람이 될라고 애쓰는 고게 자신에게 있어야 됩니다.
저는 믿지 안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런 것은 외식하는 자이기 때문에 성신이 같이 하지 안 해. 우리는 그 사람이 아주 입으로 충성을 다하고 또 그 사람이 사람 보기에 이렇게 열심히 하고 이래 하면은 사람은 속습니다. 저 사람이 일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여지는데 하나님이 성령은 속지 않는다 말이오. '야 이놈아, 네가 순 외식 너도 믿지 안하는 놈이,' '또 네가 아무리 말은 잘했지마는' 성경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한 말씀이, 자 성경 말씀대로 요 진리로 된 한 말씀이 큽니까? 천하에 있는 인간들의 말을 다 주 모아 놓은 아주 도서실에 있는 그 많은 책에 기록된 그 말이 권위 있습니까? 성경 말씀 한 진리가 권위 있소? 천하에 있는 책 그 전부 다가 권위 있소? 어느 게 권위 있겠소? 한 진리가 권위 있어.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이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대로 가르쳐야 되지 진리 아닌 거 이런 말 저런 말 암만 주 대 봤자 이거는 안 된다 이것을 깨닫고, 내 자신이 먼저 믿고 요 말씀대로 믿는 사람이 돼 가지고 꼭 더듬어도 요 진리대로 또박또박 가르치도록 요렇게 할 때에 성령이 같이 해주십니다.
그래도 그라고 난 다음에 할 일이 뭐인고 하니 우리의 충성이라. 그래도 심방하고 전도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이렇게 해야 되지 안 하면 안 돼.
첫째는 믿는 사람이 되고, 둘째로는 진리대로 바로 가르칠 것, 셋째로는 충성하는 것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먼저 믿는 사람이 돼 가지고, 또 둘째로는 뭐이요? 진리대로 바로 가르칠 것, 그라면 성령이 동행하는 것은 우리 할 일이요 성령이 할 일이요? 성령이 할 일. 우리 할 일이 아니라.
그러기에 나는 어짜든지 내가 이 바로 믿어야 되겠다 하는 고거, 또 내가 가르치는 데에는 아무리 벙어리같이 해도 성경 말씀대로 토박토박 요렇게 가르쳐야' 되지 달리 가르쳐서는 안 된다 하는 요거, 그라면 성령이 와서 일해 주실 수 있어. 그라고 난 다음에 나 할 일은 뭐이냐? 충성하는 거라.
그러면 우리 사람 할 일이 뭐이냐 하면은 세 가지입니다. 내가 자신이 이 말씀대로 되는 사람, 요대로 사람이 되고 요대로의 행위를 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 또 가르치기를 요 성경대로 똑 바로 가르칠라고 애를 쓰는 사람, 그 다음에 하나 뭐입니까? 충성. 요라면 돼.
그래서 우리 서부교회에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내가 너무 많이 와서 내가 다 대면할 수가 없어서 그만 내가 지금은 전부 주일학교 총무, 부장들에게 다 맡겨 놨습니다. 맡겨 놨는데, 많이 나하고 접촉한 것을 자기네들이 봤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뭘을 하느냐 하면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쳐. 가르치니까 모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래 가지고서 학생들에게 어찌 알아 듣길라고서 그렇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는 거 고것을 제일 중요하게 힘을 쓰고, 또 그 다음에는 반사들이 이 땅위에 있는 무슨 대접이나 명예나 뭐이나 이런 거 바라고 하지 안하고 어짜든지 주님이 이 대속을 믿는 이 믿음, 대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일해서 인도한 그 사람에게 무슨 대접이나 그런 거 대접 없어.
우리 교회 특별히 있는 것은 반사 대접이 없어. 대접이 없는 것은 네가 주님의 대속만 바라보고 하고 대속을 받았으니까 너도 이 대속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너도 전해라 하는 고것을 우리가 말하기 때문에 대접이 없다. 또 진리만 가르친다. 또 전도한 그 사람에게 또 붙여 준다. 고것이 요 세 가지라.
전도한 그 사람에게 붙여 준다는 것은 충성을 말하는 것이고, 꼭 성경대로만 가르치는 것은 진리가 와서 말하도록 하는 것이고,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뭐 명예나 지위나 또 선물이나 그런 거, 다른 교회는 주일학교 반사라 하면은 예물도 사 주고 또 뭐 한 번씩 또 잔치를 열어 가지고서 이렇게 대우도 하지마는 우리 교회는 반사에게 대우 없는 것이 이게 특색이라. 또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이 특색이라. 또 전도하면 전도한 사람은 제게 붙여 주는 게 특색이라. 요 세 가지 특색을 가르칩니다.
O전도사님 지금도 이 세 가지 말하고 있어? 이 세 가지 말해, 이 세 가지가 뭐이냐? 내나 오늘 아침에 말하는 그것이라.
대접받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큰 사랑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해서 또 큰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구원에 감격해서 죽도록 충성하고도 부족하다 하는 것, 주님보고 일하는 그 사람이 돼야 된다. 주님 보고 주님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돼야 되지 뭐 목사에게 칭찬이나 받을라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이나 받을라고 하는 거게는 아무리 충성해도 성령이 더러워서 같이 할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잘하는데 그 사람에게 교회가 부흥이 안 돼. 성령이 동행하지 안 해. 그렇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도 그 사람이 뭐 열심히 심방도 하고 뛰어 돌아다니는데 그 주일학교가 부흥이 안 돼. 또 구역도 권찰이 그렇게 하는데 부흥이 안 돼. 안 되는 것은 성령이 동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안 돼. 성령이 동행하지 안하는 그 이유는 뭐이냐? 제가 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이거 지금 감격된 그것이 없어서 그것으로 하지 안하기 때문에 안 돼. 인간 보고 하고 그런 거는 다 소용 없어.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구속을 보고서 일하는 사람이라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대우가 없어. 또 하나는 요 진리가 와서 일하도록 해야 되겠다, 둘. 하나는 내가 충성을 해야 된다, 셋. 이 셋만 하면, 이 셋만 하면 누가 같이 해주십니까? 성령이 같이 해 주셔. 이러니까 자꾸 부흥이 돼, 꼭 요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 주일학교가 이렇게 해서 뭐 지금은 원청 그 일하는 사람들을 다 내보냈어. 일하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 놓으니까 뭐 일하는 사람이 없어. 얼마 보냈다 하더라, 작년 금년에 내보낸 사람이 얼마나 돼? 이십이 명이라. 일등 일꾼을 이십이 명을 뽑아 버리니까 뭐 있어야지, 뭐? 일등 제일 일등은 다 뽑아 보내 버렸는데, 주는 것이 복이 있기 때문에 많이 일꾼들을 뽑아 보내는 것이 우리 교회는 또 잘될 줄 나는 믿고 있어.
이래도 교회가 유지가 회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꼭 세 가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 가지 세 가지 중에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가 이 도를 참 믿는 사람이 돼 자신이 바로 된다 그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거는 자신이 참 믿으면 사죄를 믿으니까 범죄할 수 없고, 칭의를 믿으니까 의를 보수하지 안할 수 없고, 예수님의 화친을 믿다 보니까 하나님 배반 할 수 없고, 그러니까 그 자신이 참 믿는 사람, 자신이 참 믿는 사람이 되는 요 진실. 참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둘째로는 중요한 것이 충성입니까? 진리가 일할 수 있도록 더듬어 가르쳐도 진리대로 가르쳐야 돼요, 또 셋째는 뭐이요? 아무리 이렇게 해도 충성 없으면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래서 전국에서 그 견학하러 와서 만나면 제가 말하기를 뭐 '다른 데와 꼭 같습니다. 꼭 같고 다른 점은 요 세 가지만 다릅니다.' 요거 말합니다. 세 가지만 다릅니다. 요거 말해. 요 세 가지 다른 걸 옆에서 이 반사들도 많이 듣고 부장들도 많이 듣지만 그 내용이 뭐인지 생각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어. 요 세 가지, 요 세 가지가 달라요.
이러니까 자신들이 참 믿는 사람이 돼야 되고 그러면 자신이 참 믿는 사람이 되지 안 하고 저는 안 믿는 것이 다른 사람한테 말할 때는 성령이 거게서 같이 해 줄 수 있어요? 성령이 낯이 부끄러워서 같이 하지 못해. 암만 자기가 그 일을 도와줄라고 갔다가도 그 하는 행동이 너무 그 인간 같잖고 너무 거짓되면은 점잖은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거게 동참할 수 있어요 없어요? OOO선생님 한번 말해 봐요. 동참할 수 있어요 없어요? 동참할 수 없어. 사람도 자신이 진실하지 안하고 거짓부리로 속은 다르면서 겉어머리로만 자꾸 이래 하는 그거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거 동참하면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사람 되고말고 거기 또 이용당하는 사람이 되고 하기 때문에 거게 부끄러워서 '그만 나는 갈란다' 가 버려. 그 동참을 안 해요, 일하는 것이 옳고 바르면 거기서 하지마는 옳고 바르지 안하고, 사람이 부족한 거는 있어요. 부족해도 바로 할라고 애를 쓰면 그거 도와 줄 마음이 있어. 이렇지 마는 자기가 거짓부리 가지고 속마음은 딴 데로 있으면서 껍데기만 이라고 있으면은 그 어떻게 거룩하신 성령님이 같이 일할 수가 있겠어? 일 못 해요. 이러니까 자신이 참 믿는 사람이 되어지는 그것이 중요해.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뭘로 하느냐 하면은 우리 교회서는 반사들을 대접을 하나도 안 해요. 대접 안 하는데 나는 가르치기를 그래 말했어, 그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내가 경험해 보고. 이 반사 노릇하다가 나중에 어째 그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형편에 자꾸 변동될 때 있으니까 삐꿔서 돌아가 가지고서 도무지 일어나지 안 해. 가 가지고 그걸 그 뭐 뭘 대접을 해도 안 되지 예물을 줘도 안 되지 안 돼요. 안 되는데 그래 내가 '왜 그러노?' '내가 뭐 어데 뭐뭐라 하더라? 뭐 내가 뭐 빵 뭐 주는 거 빵 내가 거기 지금 떡국 끓여 주니까 뭐 거기 내가 혹해 그런 줄 압니까? 내가 떡국 보고 내가 일합니까? 뭐 보고 일합니까?' 이놈은 암만 말해도 안 들어. 이거 내가 방편을 잘못 썼다 그래서 대우를 그 다음부터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안 하고 그저 '네가 예수님이 너한테 어떻게 한 걸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네가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네가 일해라' 이래하고 난 다음에는 그 뒤에 삐꿔 돌아간 걸 치료하기가 쉬워.
가 가지고서 '너 왜? 왜 지금 그라노?' 이게 뭐 옆에 누가 뭐 어짜고 누가 어짜고 인제 속에 감정이 있어 가지고서 서로 인간끼리 감정 대립이라. 이래 가지고 안 하는 거거든. 그래 '너 네가 예수님의 대속하신 주님보고 일했나 목사보고 일했나? 그 부장 보고 일했나? 뭐 보고 일 했노? 예수님이 변해지더나?' 이래 뭐 큰소리 할 수 있다 말이오. '예수님이 변해지더나? 임마 예수님이 변해지더나? 네가 변했나? 예수님이 변했나?' 허, 그 사람이 '아이고 내가 잘못했습니다.' 영 그만 옳게 하니까 치료제가 돼.
그래서 내가 저 전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그걸 많이 말해 줬어요. 첫째 그걸 많이 말해. 많이 말하고 그 다음에는 꼭 진리대로 가르쳐. 그 다음에는 인도하는 사람을 인도하는 그 사람에게 붙여. 인도한 사람에게 붙이는 건 뭐이요, 그거? 그거는 뭐이요? 충성. 그거는 충성이라. 또 어려워도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은 가르칠 때에 그래 가르쳐요. 이 성경을 가르쳐야 못 알아들으니까 동화를 해 가지고, 동화. 동화는 전부 거짓말입니다.
그래 언제 내가 동화 선생님이 전국에 하기아동성경학교 강습한다고 온 전국 교파를 망라해 가지고가서 그 가르치는데 갔다 말이오. 가니까 동화를 말하는데 그 뭐 '신구약 성경 구구절절을 다 가지고 동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라면서 창세기 1장 동화를 떡 말하면서 에덴 동산에는 걸어가면은 장그랑장그랑 장그랑장그랑, 걸어가면은 발에서 장그랑 장그랑하고 또 앉으면 바바바바 바바바바 이렇게 이란다고, 이런데 순 이 성경 뭐 거짓말만 그 말해. 그러니까 그날 강사 온 사람이 일등 거짓말쟁이라. 그래서 나는 중간에 그만 나와 버렸어. 중간에 나오고 '너거 가지 마라' 그거 반사들 가지 말라 했어요. 거게 성령이 같이 할 수 있겠어? 점잖은사람도 거게 부끄러워서 낯이 간지러워서 못 있는데 성령이 같이 할 수 없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고 또 자기가 충성해야 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도를 참 믿어야 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일이삼으로 말했으니까 세상의 빛이란 걸 깨닫고 자기가 참 빛이 될라고 애를 쓰고 빛으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이 빛으로 사는 이것이 인간의 가치다. 우리 사명은 빛으로 사는 것이다, 이걸 자기 속에 확신한 믿음을 가지고서 전할 때에, 믿음을 가지고서 전할 때에는 믿음만 가지고 이 사람이 빛으로 살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돼 가지고서 가르칠 때는 어짜든지 아이들을 설득 시켜서 거짓말이고 참말이고 막 이렇게 끌어대 가지고 또 이와 같이 하면은 거기 성령이 갈이 할 수 있어? 같이 못 해요. 떠나요. 진리대로 가르치고 자기가 참 믿고 또 그라고 충성을 하고 이라면은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반사들이 다 그라면 모두 되어져요.
제가 안 믿는 것을 암만 해 봤자 성령이 같이 안 하니까 제 골만 빠졌지 일이 안 돼. 또 아무리 제가 믿는다 할지라도 진리대로 말하지 안하고 거짓말을 주 끌어다 대면 수단 방법이기 때문에 또 성령이 같이 할 수 없어.
첫째는 제가 믿고 그 성경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그 제 자신이 회개를 해서 바로 믿는 사람이 돼져야 되겠고, 또 둘째로는 진리가 와서 일할 수 있도록 진리대로 말해야 되겠고, 셋째로는 요 두 가지가진 다음에는 충성이라.
이번에 O교회서 여러 분이 왔다 하는데 O교회서 온 반사들 손 한번 들어 봐요. O교회 반사들 손들어 봐요. 뻐뜩 들어 봐요. 저기 앉았구나.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남자는 하나도 없나? 남반은 하나도 없어? 그 남반 없어. 여기 서부교회는 남반이 많아. 반사들 남반이 많고 여반보다 남반이 많아. 차차 차차 그리 돼져요. 남반이 많아져요.
이러니까 이제 오늘 아침에는 주일학교 하는 방식을 가르쳤으니까 오늘 공과는 여러분들이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안하고, 세 가지가 있어야 돼. 세 가지. 첫째는 자신이 참 믿는 사람이 돼야 돼요. 자신이 참 믿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돼요. 그 진실이 그거 참 믿는 사람, 자신이 참 믿는 도를 가르쳐야, 요 공과를 자신이 참 믿고 요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고 요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자신이 돼 가지고 고게 첫째, 또 둘째로는 뭐이야? 진리대로 가르칠 것, 또 셋째는 뭐이요? 충성할 것, 요것 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여기 모두 목회 나갈 사람 많은데 아무리 해도 이거 없으면 일이 안 돼. 이러니까 저게 말은 잘하는데 교회는 부흥이 안 돼. 잘 부흥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거 뭐이냐 하면은 그 요 세 가지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런 거라. 그러니까 반사들도 요 세 가지를 꼭 힘써야 됩니다. 요 세 가지를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아주 또 거짓부리는 교회가 이 세 가지 하나도 없는데 수단 방법 가지고 또 주 모으는 거 사기성 가지고서 모으는 거 많이 있어. 암만 그거는 모아 봤자 뿌숴질 때는 바싹 뿌숴져 버리고 없습니다. 환난 오면은 다 쭉정이 돼 버리고 알맹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오늘 아침에는 세 가지 말했는데 우리 반사들도 본 교회 반사들도 요 세 가지를 새롭게 하도록 하면, 또 딴 데서 견학 온 반사들도 요 세 가지를 기억해 가지고 언제든지 내가 안 믿는 것을 전하는 것은 거짓부리기 때문에 저만 일했지 성령은 같이 해 주시지 안 해. 성령이 같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부장들도 다 그래요.
그러니까 먼저 자기가 믿는 사람 되도록 노력을 하고, 그 다음에는 그저 더듬어도 성경 말씀대로 틀림없이 가르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열심과 충성을 가해야 됩니다. 뭐 목사든지 구역장이든지 부장이든지 반사든지 꼭 같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설교: 백영희 목사 1988. 7. 31. 주일새벽)
2. 작정
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다.
그러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무엇인가?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하셨다. 즉 미리 택하신 그들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게(엡1:7) 하셨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은 영생을 주시기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게(엡1:7) 부르시는 것을 말씀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작정은 주권욱 목사와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목양에 대한 말씀이 아닌 것이다. 목양에 대해서는 성경에 충성을 말씀하셨다.
2)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예정하사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목양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지며,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목회하면 목양관계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하나님의 작정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과 예정하심으로 자가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목양에 대한 예정이나 작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목양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충성을 말씀하셨다,
3. 충성
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마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2)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마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을 말씀하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목회하면 목양관계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교회를 크게 하고 작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 목회자에게 주신 달란트이기 때문에 작게 받은 사람이 크게 하려고 하면 인간의 수단방법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 자체를 싫어했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하나님의 작정을 말하면서 목양에 대한 충성을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3)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4)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5) 모든 일에 충성 된 자
(딤전3:1-1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하셨다. 이것은 감독의 직분과 집사의 직분에 대한 말씀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6)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히3:1-6)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7)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이것은 목양에 대한 충성을 말씀한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목회하면 목양관계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교회를 크게 하고 작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 목회자에게 주신 달란트이기 때문에 작게 받은 사람이 크게 하려고 하면 인간의 수단방법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 자체를 싫어했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하나님의 작정을 말하면서 목양에 대한 충성을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것은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주께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하는 것이나 같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는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하셨다.
- 2020. 07. 17∥1차 원고
-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 선지자문서선교회∥http://seonji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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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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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글의 제목은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다. 왜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교리를 보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보다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본문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반증한다.
반증하는 방식은 다음의 표시와 같이 ‘주권욱의 논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김반석의 반증’을 제시한다.
‘▼ 주권욱의 논문’
‘● 김반석의 반증’
1. 백영희 목사님이 중점을 둔 것은 ‘믿음’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
3. 이근영 목사가 중점을 둔 것은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
안내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에서 말하는 부분은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로써 총 5건이다. 이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 5건을 한 몫에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아니하고 각각 1건씩을 별도 정리를 해서 게재한다. 그리고 총 5건 정리를 마치면 합본해서 별도로 게재할 예정이다.
(본론)
▼ 주권욱의 논문
넷째, 백영희는 성도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행위에 중점을 둔 반면에, 이근영은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진 “신앙의식(信仰儀式)”을 몸에 길들이고, 마음을 바로 쓰는 양심생활을 하게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 즉 성신의 깨우침을 통해서 은혜 안에서 사는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 되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차별을 보여 준다.
● 김반석의 반증
1. 백영희 목사님이 중점을 둔 것은 ‘믿음’
위의 주권욱의 논문의 글에 보면 이근영 목사는 백영희 목사님이 “성도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행위에 중점을 둔 반면에”라고 이근영 목사의 왜곡적 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께서 교인들에게 제일 중점을 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짖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행위(롬3:20)가 아니고 믿음의 행함(약2:14-26)이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교인들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죄 사함(엡1:7)을 힘입어 사는 믿음의 행함(약2:14-26)을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교훈하셨는가? 그런 것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시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시고(요14:16-17, 요14:26, 요15:26)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눅4:18) 때문이다. 그리하여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요일5:10-11)이며, 그리고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심은 곧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요일5:10-11)이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이다.
- ‘중생의 씻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엡1:7) 육체(창6:3) 곧 육신(롬7:5) 곧 육(연약한 자, 죄인 된 자, 원수 된 자: 롬5:6-10)의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중생(창2:7, 요20:22)된 영육(요3:6)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음이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엡1:13)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18)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중생의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값없이 거저 은혜로 받은 것이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중생의 씻음을 받은 그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 그런 것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살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셨던 것이다.
3. 이근영 목사가 중점을 둔 것은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는 성도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행위에 중점을 둔 반면에, 이근영은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은 백영희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살도록 교훈한 성경적 구원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기에 주권욱 목사나 이근영 목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론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단정 지을 수 있다.
(결론)
1. 백영희 목사님이 중점을 둔 것은 ‘믿음’
백영희 목사님이 신앙생활에 중점을 둔 것은 ‘믿음’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에서 ‘중생의 씻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만,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기 때문이다. 즉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즉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영희 목사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믿음을 제일 중점을 둔 것은 성경적이다.
2. 이근영 목사가 중점을 둔 것은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진 “신앙의식(信仰儀式)”을 몸에 길들이고, 마음을 바로 쓰는 양심생활을 하게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 즉 성신의 깨우침을 통해서 은혜 안에서 사는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 되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차별을 보여 준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적 구원론의 도리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이근영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만약 성도가 1차 믿음으로 살면서 2차 부수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을 말다면 우리 신앙생황에서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근영 목사는 백영희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사는데 중점을 둔 것을 못마땅해 하면서, 저는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둔다고 하는 것은 결국 성도가 믿음으로 사는데 중점을 둔 신앙생활에 대하여 배척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이근영 목사가 중점을 둔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는 말은 좋아 보이나 실제로는 믿음으로 사는 신앙생활을 떠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 없는 것이다. 그리되면 ‘신앙의식과 양심생활과 하나님과 교제’라는 것은 결국 인간적 수도(修道)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신앙생활관은 성경적 구원론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 2020. 07. 17∥1차 원고
-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 선지자문서선교회∥http://seonjija.net
(첨부)
※ 다음에 자료는 부족한 종 김반석 목사가 이 글을 쓰기 며칠 전(2020. 07. 05)에 정리한 것으로써 제목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이다. 이 글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경적 구원론이다. 즉 우리가 받은 구원과 우리가 이루는 구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루는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할 것은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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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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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가?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고 또한 구원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요소는 2가지인데 곧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이다.
그리하여 ‘중생의 씻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이미 받았기(엡1:7)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엡1:13) 의롭다 함을 얻기(갈2:16)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본론)
1장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1. 중생의 씻음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요소는 둘이다. 하나는 ‘중생의 씻음’이며, 또 하나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러면‘중생의 씻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것이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이미 받았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두 요소 중에 ‘중생의 씻음’에 대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중생의 씻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음’은 무엇인가?
2.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이미 받았다. 즉 중생의 씻음을 이미 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은 무엇인가?
3.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
1) 대형벌의 대속으로 사죄의 구속
① 대형벌의 대속
(롬5:6-7)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지 않는 육신의 연약한 자로 있을 때에(롬5:6-7)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시는 대형벌(代刑罰: 골1:22)의 대속을 하셨다.
② 사죄의 구속
(요20:19-22)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주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오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즉 육신의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영(롬8:9)이 거하시는 생령의 사람으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죄의 구속이다.
2) 대복종의 대속으로 칭의의 구속
① 대복종의 대속
(롬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로 있을 때에(롬5:8-9)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대복종(代服從: 빌2:8)의 대속을 하셨다.
② 칭의의 구속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즉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칭의의 구속이다.
3) 대화평의 대속으로 화목의 구속
① 대화평의 대속
(롬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골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아직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로 있을 때에(롬5:10-11)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대화평(代和平:골1:19-20)의 대속을 하셨다.
② 화목의 구속
(엡2:15-16)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하나님과 화평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화목으로 말미암아 원수 된 것을 소멸하셨다. 즉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화친의 구속이다.
참고: 우리가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평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요14:16-17, 요14:26, 요15:26)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눅4:18)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것을 말씀한다.
2장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
1.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요소는 둘이다. 하나는 ‘중생의 씻음’이며, 또 하나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러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엡1:13) 것을 말씀한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갈2:16) 것을 말씀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두 요소 중에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하여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의 새롭게 하심’ 곧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은 무엇인가?
2.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곧 구속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곧 구속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야 한다. 즉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은 무엇인가?
3.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
1) 그 안에서 또한 믿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다음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행13:39) 사는 것을 말씀한다.
① 사죄의 구속을 믿는 믿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이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② 칭의의 구속을 믿는 믿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것이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③ 화목의 구속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은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다.
①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② 주의 성령의 임하심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❶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문답)
문1: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가?
답: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두 요소 중에서 ‘중생의 씻음’은 이미 받았다.
‘중생의 씻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엡1:7) 것이다.
문2: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가?
답: 예수 믿는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두 요소 중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이루어 가야 한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엡1:13)이다.
2020. 07. 05∥1차 원고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선지자문서선교회∥http://seonji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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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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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글의 제목은 「주권욱 목사의 ‘이근영과 백영희 비교’에 대한 반증적 논평」이다. 왜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까닭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말하는 이근영 목사의 교리를 보면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보다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이근영 목사가 말하는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공상적이며 궤변적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본문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반증한다.
반증하는 방식은 다음의 표시와 같이 ‘주권욱의 논문’을 소개하고, 그 아래에 ‘김반석의 반증’을 제시한다.
‘▼ 주권욱의 논문’
‘● 김반석의 반증’
1. 이근영 목사의 편향된 구원관
2. 이근영 목사의 자칭 신학발전은 비성경적 타락
3. 이근영 목사의 신학은 백영희 목사님의 지도와 상관없는 독단
안내하는 것은,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에서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에서 말하는 부분은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로써 총 5건이다. 이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 5건을 한 몫에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아니하고 각각 1건씩을 별도 정리를 해서 게재한다. 그리고 총 5건 정리를 마치면 합본해서 별도로 게재할 예정이다.
(본론)
▼ 주권욱의 논문
다섯째, 이근영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구원관을 가졌다. 그러므로 인간의 열심은 신앙의식의 발전이며, 실제로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해서 진리와 영감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의 열심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보고 말씀과 자기를 비교하여 자기를 고치는 그 면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근영은 백영희의 직접적인 지도와 그의 신본주의 사상과 청빈사상의 영향으로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그가 성경을 깊이 깨닫게 한 연경은 오늘날 Q/T의 진정성(眞正性)을 판단하는 표준잣대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근영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성도의 열심은 신앙 의식의 발전이라고 주장하였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성장을 이루는 신앙생활과 땅 끝까지 선교하여 열방을 복음화 하는 것과 목양할 때 목회자가 지혜를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다소 운명론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위와 같이 백영희의 신학적 영향이 오늘날의 이근영의 신학을 만들게 된 근본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이근영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 김반석의 반증
1. 이근영 목사의 편향된 구원관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구원관을 가졌다. 그러므로 인간의 열심은 신앙의식의 발전이며, 실제로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해서 진리와 영감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의 열심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보고 말씀과 자기를 비교하여 자기를 고치는 그 면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대하여 부족한 김반석은 ‘이근영 목사의 편향된 구원관’이라고 비판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근영 목사는 성도의 구원을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에 두는 편향된 구원관을 가졌다. 그리하여 목회자의 목양이나 성도의 신앙을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에 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목회자의 목양에 대하여 ‘죽도록 충성(계2:10)’을 말씀하셨고,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는 ‘힘써 믿음(벧후1:5)’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는 예정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작정이다. 그런데도 이근영 목사는 목회자의 목양과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에 두는 것은 성경 진리에 배치되는 편향된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문을 써서 석박사 학위를 통과했다고 하니 이것은 논문 제출자나 논문심사 지도교수의 총체적 오류의 부실이다. 주권욱의 논문 즉 ‘이근영의 “아들의 생명”에 대한 연구’를 대략 몇 군데 읽어보면 진리적 사실과 먼 한편의 공상적 소설을 보는 듯하다.
2. 이근영 목사의 자칭 신학발전은 비성경적 타락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의 직접적인 지도와 그의 신본주의 사상과 청빈사상의 영향으로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그가 성경을 깊이 깨닫게 한 연경은 오늘날 Q/T의 진정성(眞正性)을 판단하는 표준잣대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근영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성도의 열심은 신앙 의식의 발전이라고 주장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근영 목사의 자칭 신학발전은 비성경적 타락’이라고 비판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말은 비양심적이라 할 수 있다. 주권욱 목사가 그의 논문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주권욱의 논문 즉 ‘이근영의 “아들의 생명”에 대한 연구’에서 ‘아들의 생명’에 대한 주장은 비성경적 교리로써 백영희 목사님의 지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근영 목사의 독단적 주장이다. 그런데도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교계에서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나 성경 깨달음의 깊이를 인정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이근영 목사가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이 평가하는 것은 이근영 목사는 백영희 목사님께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 증표는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의 성경 깨달음의 교리와 전혀 상관없는 비성경적 교리 즉 ‘아들의 생명’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진영 목회자들께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는지를 물어본다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진영이 세워진 초기에 이근영 목사가 백영희 목사님께 와서 잠깐 머문 과거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3. 이근영 목사의 신학은 백영희 목사님의 지도와 상관없는 독단
주권욱 목사는 이근영 목사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성장을 이루는 신앙생활과 땅 끝까지 선교하여 열방을 복음화 하는 것과 목양할 때 목회자가 지혜를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다소 운명론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위와 같이 백영희의 신학적 영향이 오늘날의 이근영의 신학을 만들게 된 근본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이근영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대하여 부족한 종 김반석은 ‘이근영 목사의 행보는 백영희 목사님의 지도와 상관없는 독단’이라고 비판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근영 목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은 성도가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어 믿음으로 사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면 이근영 목사가 중점을 둔 것과 백영희 목사님이 중점을 둔 것과는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가?
‘이근영 목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는 결과는 인간적 수양을 하는데 이르고 만다. 그런 것은 백영희 목사님이 중점을 둔 믿음이 있어야 믿는 자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거하시는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성도의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즉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므로 말미암아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즉 하나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도의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면 믿음을 제일 중점에 두는 것은 필연적이다.
부족한 종 김반석이 주권욱 목사가 그의 학위논문에서 말하는 이근영 목사를 평가하라면 다음과 같다.
이근영 목사는 성경 구원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칼 쓰는 법을 조금 배우다 말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행태라 할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막 떼고 나서 찻길인지 뭣인지도 모르고 아무데나 팔짝대는 위험이라 할 수 있다.
이근영 목사가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은 비성경적 이단설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교계가 이근영 목사가 주장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논단을 성경을 근거해서 제대로 한다면 이단으로 규정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그리되면 이근영 목사의 ‘아들의 생명’에 대하여 학위논문을 작성한 주권욱 목사 또한 이단설과 이단으로 규정 받을 소지 또한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권욱 목사의 학위논문 즉 ‘이근영의 아들의 생명 연구’와 그의 세미나 소식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또한 비성경적 오류의 자료를 홍보하는 폐해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 2020. 07. 18∥1차 원고
- 김반석 목사 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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