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의 형제호칭에 대한 논평

  선지자선교회

예전에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그 즉은 중국 조선족 목회자가 남방지역 가정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들은 교인들 간에 전부 형제 또는 자매로 호칭하더란다. 즉 육신의 아버지에게도 형제님어머니에게도 자매님이라 부르더란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성경을 근거하여 말해 준적이 있다. 아마도 저들은 지방교회이거나 아니면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형제의 대한 도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의 직분은 무엇인가?

 

1. 형제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라 하셨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자들은 주 안에서 형제이다.

 

주를 믿는 자들 가운데는 육신의 부모도 있고 또 교회의 목사도 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믿는 자들이면 전부 다 형제로 불러야 하는가? 아니다. 비성경적이다.

 

2. 목사

 

(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주신 직분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직분의 명칭이 분명히 있다.

 

3. 감독의 직분과 집사의 직분

 

교회 안에서 다 같은 성도이지만 목사’ ‘집사직분이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감독(목사)의 직분(딤전3:1-7)과 집사의 직분(딤전3:8~13)을 말씀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직분의 명칭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형제로 통일해서 호칭 한다면 이는 비성경적이다. 이런 사상은 무교회주의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이런 사상을 세상에서 예로 들면 공산혁명 시 노동자와 농민이 대지주와 자본가를 상대로 계급투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성격이다. 그러므로 지방교회의 형제호칭은 비성경적이다.

 

(참고)

 

1. 구약 시대

 

1) 목자(제사장)와 양(여호와의 회중)

 

(27:15-2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2)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2. 신약 시대

 

1) 사도와 집사와 형제

 

(6:2-6)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2) 두 사람에게 안수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4.02.19-173 김반석 2023.05.03
114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의 '반론'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7.03.24
113 쉐마교육연구원의 ‘쉐마’에 대한 반증적 논평 김반석 2017.01.29
112 「쉐마교육연구원」을 연구 검토하다 - 관련자료 10건 하단에 첨부 file 김반석 2017.01.08
111 관상기도에 대한 논평 file 김반석 2016.10.01
110 새한중앙교회 김석곤의 비성경적 이단설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9.27
10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자유의지’에 대한 小考 선지자 2016.08.28
108 이영인목사 ‘연구부’의 오류적 답변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7.29
107 지방교회의 ‘인간의 본성’ 교리에 대한 논평 file 김반석 2016.07.01
106 지방교회의 ‘삼일 하나님’ 교리에 대한 논평 file 김반석 2016.07.01
105 김영채 목사의 「세례문답해설」에 대한 논평 및 반론 file 김반석 2016.06.15
104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 김반석 2016.04.25
103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에 대한 성경적 반증 김반석 2016.04.25
102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4.22
101 ‘개역개정판’의 개악적 번역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4.04
100 ‘십일조 폐기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증적 논평 김반석 2016.03.19
99 해설 김영채, 편집 김윤수의 「세례문답해설」에 대한 논평 file 김반석 2016.02.22
98 ‘개역개정판’ 성경의 개악성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1.18
97 김철수 목사의 ‘성경은 독재주의인가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1.17
96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 대한 논평(1) 김반석 2016.01.15
95 ‘자유 의지’에 대한 논평 김반석 201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