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권욱의 학위논문에서 ‘백영희와 관련된 부분’ 논평
선지자선교회
(서문)

주○○의 학위논문에는 아래와 같이 이근영이 백영희 보다 신학에서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이근영은 백영희와 그 교리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나타낸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글에서 ‘●’는 주권욱의 견해이고 ‘▶’는 김반석의 논평이다.  

(본문)

●그러나 이근영은 백영희가 가진 교리와 신조 그리고 그의 신학보다는 조금 발전된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근영은 백영희의 구원관에서 구원을 수정 보완하였다. 백영희는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분하는데 “건설구원”의 개념을 “성화구원”으로 바꾸고 “영화구원”을 추가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시켜나가는 방편(方便)을 “기본구원”, “성화구원”, “영화구원”으로 분류하였다. 백영희의 "건설구원"은 사람의 노력을 많이 강조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근영의 "성화구원"은 신인협력으로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의 방편으로 이용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인 성신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정의한다.

▶논평: 이근영은 구원관에 대해서 하나님 면만 말하는 것이고, 백영희는 이근영이 말하는 부분 까지 다 말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시는 구원면과 우리 사람이 힘써야 하는 구원면을 다 말했다. 그러므로 이근영이 말하는 것은 부분적인 구원관을 말하는 것이므로 치우친 면이 있다. 그리고 미숙한 면이 많다.

●둘째, 이근영의 구원의 핵심은 백영희가 강조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건설구원에 맞추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생명”이 주체가 되는 구원관을 가지고 “아들의 생명”이 성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발전된 구원관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좀 더 깊은 세계인 성부세계와 생명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논평: 이근영은 ‘아들의 생명’이 주체가 되는 구원관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는 비성경적 깨달음이므로 발전된 구원관이 아니라 오류 된 구원관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근영은 백영희의 특징 중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크게 부흥 시키는 그런 면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방법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방법이다. 목양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지며,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목회하면 목양관계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교회를 크게 하고 작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 목회자에게 주신 달란트이기 때문에 작게 받은 사람이 크게 하려고 하면 인간의 수단방법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 자체를 싫어했다.

▶논평: 백영희는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충성할 때에 주신 것이다. 백영희는 단지 받은 달란트만큼 충성했을 뿐이다. 백영희는 우리가 알고 교계가 아는 대로 인간의 수단 방법을 일체 배제 했다. 그의 목회가 그 증거이다. 이근영의 목양관은 주관적이지 객관적에 미달이다.

●넷째, 백영희는 성도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행위에 중점을 둔 반면에, 이근영은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진 “신앙의식(信仰儀式)”을 몸에 길들이고, 마음을 바로 쓰는 양심생활을 하게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면에 중점을 두었다. 즉 성신의 깨우침을 통해서 은혜 안에서 사는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 되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차별을 보여 준다.

▶논평: 아무래도 이근영은 백영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근영이 백영희에 대한 말은 거의 전부가 정확하지 않다. 제 주관적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백영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이근영의 말에 시시비비를 가릴 가치가 전혀 없다. 거의 전반적 오류다.

●다섯째, 이근영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구원관을 가졌다. 그러므로 인간의 열심은 신앙의식의 발전이며, 실제로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해서 진리와 영감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의 열심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보고 말씀과 자기를 비교하여 자기를 고치는 그 면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근영은 백영희의 직접적인 지도와 그의 신본주의 사상과 청빈사상의 영향으로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그가 성경을 깊이 깨닫게 한 연경은 오늘날 Q/T의 진정성(眞正性)을 판단하는 표준잣대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근영은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성도의 열심은 신앙 의식의 발전이라고 주장하였다.

▶논평: 성도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근영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면만 말한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사를 누락시켰다. 그리고 백영희에 대해 성결주의, 청빈사상, 등으로 말하는 것은 그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연고다. 성결주의, 청빈사상, 등은 나타난 외적 부분 중에 한 부분들이다. 이근영의 구원관이 본래 그런지 주권욱이 이근영의 구원관을 오류 되게 표현했는지 잘 모르지만 나타낸 것을 볼 때 성경 깨달음도 미숙하고 치우쳤고 또 백영희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무식하다.    

(결문)

주권욱의 학위논문에는 어느 분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흔적들이 보이는 것 같다. 이근영은 백영희에 대해서 제대로 잘 모른다. 또 주권욱은 이근영의 주장을 근거해서 백영희를 비교한다. 그러면 그 평가는 전적 오류다.

이영인은 백영희를 이근영이나 주권욱 보다는 잘 안다고 본다. 그러한데도 주권욱의 논문을 제공하는 현재 그 논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영인은 이근영이나 또 이근영 글을 그대로 나타내는 주권욱의 오류에 대해서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영인은 백영희를 말하지만 그에 대한 보수성은 의문의 연속이다. 만약 보수성이 있다면 판별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차후로 미룬다. 담 밑에서 아직 담은 넘지 않았지만 한쪽 다리를 올리고 있으면 곧 담을 넘는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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