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의 '제자훈련'에 대한 논평

2007.05.2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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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계의 '제자훈련'에 대한 논평
선지자선교회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는 교인 숫자적으로나 신앙 질적으로 많이 부흥하고 있음을 확연히 봅니다.

그러면 제자훈련이 시행 되지 않았던 그 이전의 한국교회는 부흥이 없었는가? 부흥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제자훈련을 많은 교회가 도입하여 교회부흥의 제일의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훈련을 하면 왜 부흥이 되는가?

제자훈련을 하는 그 방편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훈련을 하는 그 방편 속에 알맹이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그 알맹이라는 것은 목회자가 말씀으로 목양하고 또 죽도록 충성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도 교인을 말씀으로 목양하되 죽도록 충성하면 그 교회는 부흥이 되겠습니다.

제자훈련은 다만 목회자가 말씀으로 목양하되 죽도록 충성하는 하나의 계기와 또 말씀으로 목양과 죽도록 충성하는 일정을 프로그램화하여 거기에 따라서 시행하는 외부적 방편 도입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교회부흥 방법 중에는 외부적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내부적 부흥의 진리적 이치는 말씀으로 양육과 그 양육을 충성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훈련의 외부과 내부, 그리고 방편과 그 방편 속에 실상을 구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제자훈련이라는 외부적 교회부흥의 방편을 몰라도 교인들에게 말씀으로 교훈하고 양육하고 또 교훈으로 양육을 죽도록 충성하면 반드시 교회는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데 어떻게 말씀으로 양육하고 충성할 것인가 하는 그 방편을 모를 때는 제자훈련 과정을 도입하여 적용시키면 말씀으로 양육하고 충성한 것만큼 교회는 부흥이 될 것임에 틀림없겠습니다.

제자훈련의 방편을 소개하고 또 그 방편을 도입할 때에 제자훈련이라는 교회부흥의 외부적 요소를 교회부흥의 내부적 요소로 혼돈되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 봅니다.

성경 사도행전1:8에 말씀하시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교회에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교회부흥의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제자훈련이 성경적으로 바로 제자훈련이 되었다면 그 교회는 성령충만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가 있는 그 표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다 맡기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 같이 주님께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을 다 맡겨서 순생 순교가 있기 까지 다 맡기는 것이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제자훈련이 되었다면 성경적 제자훈련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참 제자훈련이 되지 못하고 하나의 운동이 되고 말겠습니다.

자칫 그리고 혹 제자훈련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참 제자훈련의 도구가 되어야지 제자훈련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제자훈련 곧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그 권능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훈련 그 진리를 벗어나서 그 진리 위에 서는 제자훈련은 곤란하겠습니다.

제자훈련 합시다.
제자훈련을 하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여 성경적 제자훈련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