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관'에 대한 논평
선지자선교회
글: 김반석
<서문>
최삼경 목사님은 그의 삼위일체론 곧 삼신론 시비에 있어서 해명의 글을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에 개제 하였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본인에게 제기된 ‘삼신론 시비에 답한다.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은 무엇인가.’ 입니다.
최삼경 목사님의 삼위일체론 곧 삼신론 시비가 된 그 본래 글은 현재 구해 보지 못하여서,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을 근거 삼아서 ‘최삼경의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논평 하고자 합니다.
논평의 글은 최삼경 목사님이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에 기고 한 글에서 논평이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 표를, 그 아래에는 또 '○' 표를 붙여서 論評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삼경 목사는 삼신론 시비에 있어서, 교계의 몇 분 신학자들의 월간 <교회와 신앙>에 기고한 삼위일체론 변증문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부분 발췌하여 인용하였는바, 이렇게 전문(全文)을 요약하거나 부분 발췌하다보면 본래 내용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르게 전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면을 감안하지만 논평할 때는 최삼경 목사가 인용한 글 그대로를 두고 논평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그러한 내용일 때의 논평으로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본론>
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1월호
본인에게 제기된 ‘삼신론 시비에 답한다.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은 무엇인가.'
최삼경 목사
◎ 註: 全文 중에서 논평할 부분만 부분 발췌하였습니다.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영,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인격으로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 39, 281, 283쪽).
○論評: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은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다보니 삼위가 옅어지는 교리가 되거나 아니면 삼위의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의 한 인격으로 주장하는 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래서 삼위일체 하나님 되시는 성경적 교리를 벗어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 오류적 표현의 원인은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격위를 바로 구분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입니다. 위트리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영,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인격으로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이 교리 표현은 하나님의 본체 면에 한한 교리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이 한 분되신 하나님의 본체에서 그 격위로는 삼위의 하나님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성구는 다음과 같이 몇 성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눅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 이 삼위의 하나님은 그 격위가 각각 있습니다. 격위라는 말은 인격 '격'과 직위 '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는 각각 격위 대로의 인격과 격위 대로의 직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인격은 어디까지나 셋 격위적 인격이지, 세 하나님으로서의 인격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혼동하는 것은 격위적 인격과 본체적 인격을 바로 구분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삼위일체 중에 삼위는 격위의 세 하나님을, 일체는 본체의 한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잘못 혼동하면 삼위는 세 하나님으로, 일체는 한 하나님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할 것은 삼위는 세 하나님으로 표현할 것이 아니라 세 격위의 하나님으로 표현해야 맞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세 하나님'과 '세 격위의 하나님'은 그 말의 뜻에 있어서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총신대 전 총장이고 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차영배 교수는 ‘윗트니스 리’ 측을 이렇게 비판했다./ "몇 해 전에 최삼경 목사와 ‘윗트니스 리’ 측이 교리논쟁을 했다. 그 때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이 변형된 양태론 임을 밝히자, 반대로 윗트니스 리 측에서는 최삼경 목사를 ‘삼신론’ 자라고 주장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결국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최목사가 논쟁 중에 '윗트니스 리의 주장처럼 한 분 하나님(성자)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고 한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태론이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만 육신을 입었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태론적 눈으로 보기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 아닐 수 없다."
○論評: 위트리스 리의 ‘한 분 하나님(성자)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 라는 교리 표현은, 격위적 삼위는 두고 한 분 하나님만 말한 것이 되겠습니다. 행7:55-56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각각 격위 곧 격위적 인격과 격위적 직위를 나타내고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격위는 각각의 격위이나 그 격위의 본체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부하나님의 별도로 대하고, 성자하나님을 별도로 대하고, 성령 하나님을 별도로 대하지 않습니다. 또 별도로 대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하면 삼위 하나님이 다 들고, 예수님! 하면 삼위 하나님이 다 들고, 성령님! 하면 삼위 하나님이 다 듭니다. 삼위 하나님을 세 하나님으로 여겨서 각각 세 하나님의 인격으로 별도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다만 이러한 실제를 교리로 표현하는데서 오는 오류가 거의 대부분이지 실제로 세 하나님으로 여겨서 성부하나님 따로 대하고, 성자하나님 따로 대하고, 성령하나님 따로 대하는 성도는 보편적 교회에서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1. 무엇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는가?
◀첫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하신 기도라고 하면 삼신론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런데 윗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냐고 윗트니스 리 측에게 반문했더니 그것을 가지고 본인을 성부와 성자의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삼신론자라고 비판을 하였다. 그러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였다고 해야 하고, 그래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믿는 것이 된다면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 이단이고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은 정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무지의 극치요, 미련의 극치이다. 이는 양태론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다른 인격(위격)이시기 때문이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의 이 첫째 글은 표현에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둘째, 인격(위격)으로 하면 성부도 영이시고, 성자도 영이시고(비록 육체를 입으셨지만), 성령도 영이시고,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영이신 세 영들이시다고 하면 삼신론인가?/ 본인 편에서 볼 때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나 총회 상담소장인 김창영 목사가 본인을 삼신론자로 생각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 말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무엇이 잘못이란 것인지 모르겠다. 삼위 하나님은 항상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복수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인격(위격)으로도 한 분이요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윗트니스 리와 같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의 ‘인격(위격)으로 하면 성부도 영이시고, 성자도 영이시고(비록 육체를 입으셨지만), 성령도 영이시고,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영이신 세 영들이시다고 하면 삼신론인가?’ 하셨는데, 이 삼위일체론을 논하는 장에서는 ‘영’이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론에서 논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영이신 세 영들이시다' 라는 그 표현은 삼신론 시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끝에 말에서 '세 영들이시다'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루에 물건을 넣고 그 자루를 꼭 묶어야 되는데 묶어두지 않으면 다른 이가 다른 말을 추가해 넣을 수 있는 소지를 주면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삼위의 하나님이시나 한 분 일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끝말까지 꽁꽁 묶어 두어야 시비의 빈틈이 생기지 않겠습니다.
2. 바른 삼위일체를 알게 하는 데 혼동을 일으키는 것들은 무엇인가?
◀첫째, 삼위일체는 신비로운 교리인가 아닌가?/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로운 교리이다. 우리가 어떤 교리를 신비롭다고 할 때 그 진리의 깊이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신비롭다는 말은 맞다. 특히 '삼(3)위 일(1)체' 중에서 구분성을 나타내는 '3'에서보다 단일성을 나타내는 '1'에서 신비로운 교리가 삼위일체이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의 ‘구분성을 나타내는 '3'에서보다 단일성을 나타내는 '1'에서 신비로운 교리가 삼위일체이다’라고 하셨는데, ‘구분성’은 ‘격위성’으로, ‘단일성’은 ‘일체성’으로 그 어휘를 교체해서 사용해야 맞는 말이 되겠습니다. 왜냐 하면 ‘구분’이라는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또는 맞느냐 아니냐? 할 때 사용하는 말이고, 또한 ‘단일’이라는 말은 존재나 종류가 하나의 성격을 가질 때에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삼위일체에서 셋(3)의 의미와 하나(1)의 의미를 혼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1)를 말하면 양태론이라고 하고, 셋(3)을 말하면 삼신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되는, 마치 손오공 같은 교리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셋의 의미와 하나의 의미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이고 셋은 셋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의미로 셋이라고도 하고, 셋의 의미로 하나라고도 하는 것이다. 특히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본인을 삼신론자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같은 부류로 이해된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의 ‘하나(1)를 말하면 양태론이라고 하고, 셋(3)을 말하면 삼신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되는, 마치 손오공 같은 교리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그 근본적 오해를 해소하는 교리가 있으니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1)를 말하면 ‘일체’로, 셋(3)을 말하면 ‘삼위’로 하여서, 삼위일체론으로 해결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다. 치우침으로 오해가 있는 것은 본체와 격위를 바로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둘째, 삼위 하나님은 한 영인가 세 영들인가?
◀아니면 '세 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표현한 그것도 삼신론일 것이다. '세 분'이란 표현은 문제가 없고 '세 영들'이란 표현은 문제가 있다는 말은 네모난 삼각형 같은 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로 기록하였다(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되어 있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이 '세 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표현한 그것도 삼신론일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은 삼신론으로 시비 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럴 때는 ‘세 영’이나 ‘세 분’이라 해서는 안 되고, '세 격위의 영'으로, '세 격위의 분'으로 말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은 세 영, 또 세 분이라 말하면 하나님이 셋이라는 말이 되어서 마치 삼신론으로 오해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 격위의 영, 세 격위의 분이라 말하면 세 인격의 세 직위로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말하는 것이 되므로 오해나 혼동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성경을 부분적으로 대하게 되면 오류가 생기게 되는데,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어떤 성구에서는 삼위 하나님으로 나타낸 성구가 있고, 또 어떤 성구는 이 삼위가 한 본체이심을 나타내는 성구도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들이 한쪽 성구만 내세우다보면 치우치는 편벽의 고장이 생기게 되어 그에 따른 오해와 시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본인이 윗트니스 리 측과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제한적 의미로 한 말이었다. "(윗트니스 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영'이라고 했던 것이) 삼위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역시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을 세 영이 아니요 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과(하나님의 경륜, 16쪽), 그리고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의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 하나님, 52쪽), 또한 Daniel Towle와 조동욱 씨는 그것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본다"(교회와신앙 1998년 5월호, "윗트리스 리의 사상으로 한국에는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논쟁시 본인은 분명히 "인격(위격)으로 하면"이란 말로 여러 번 제한하였다. 그러함에도 본인이 삼신론자라고 한다면 인격(위격)으로 해도 '한 영'이라고 하는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주장이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본인은 윗트니스 리가 '한 영'이라고 한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하기에, 단지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영들이라고 변증한 것이다.
○論評: 윗트니스 리 측은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격위를 구분하지 않는 오류가 있고,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 측의 주장을 오류라고 판론 할 때, 최삼경 목사 역시 하나님의 본체 곧 일체와 하나님의 격위 곧 삼위를 성경 성구를 근거하여 바로 명백히 변증하지 못한 미달이 있다 하겠습니다.
◎ 삼위 하나님 성구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눅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일체 하나님 성구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엡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셋째,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한 분'이란 말도 가능하고 '세 분'이란 말도 가능하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측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 가능한 말이다. 칼빈도 '한 분'이란 말도 하고 '세 분'이란 말도 하였다(기독교강요, 13장 2. 16. 17.). 즉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분'이라고 할 수 있고,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는 '한 분'이란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칼빈도 하나님이 '한 분'(Oneness)이심도 강조하지만 또한 '세 분'(Threeness)이심도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다. 세 분은 독특한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2).
○論評: 칼빈이 표현한 삼위일체론은, 삼위일체론에 대한 총론적 교리로서 흠잡을 것 없는 성경적입니다. 그리고 이 단원에서는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론 교리 사상이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삼경 목사는 윗트리스 리가 삼위의 격위를 배제하고 한 하나님, 한 인격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 삼위 하나님의 격위를 중점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하다보니 '세 영' '세 분' ' 세 하나님'으로 표현이 되었는바, 그러므로 다른 문제는 없고 다만 그 어휘 적용에 따른 문장 표현에 좀 문제가 있다고만 하겠습니다.
◎ 본지 전 호(2001년 10월호)에 기고한 학자들의 글을 다시 인용해 보자.
◀"야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세 분으로 계신다. 세 분이라는 말의 원어는 '트레스 페르소나에'(tres personae - 서방교회)라는 말인데 한국을 위시하여 한문문화권에서는 '페르소나'를 위(位)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다. 한 인격적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야웨로서의 부신과 그리스도로서의 자신과 영으로서의 성령이 각기 고유의 존재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이종성 교수, 기독교학술원 원장).
○論評: 이종성 교수는 ‘야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세 분으로 계신다.’ 하였는데, 이 표현도 삼신론의 시비를 불러올 소지가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부신(父神)’ ‘자신(子神)’ ‘성령(聖靈)’ 세분으로 계신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교리를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삼위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 들 수는 있겠으나, 글 그대로의 표현만으로는 삼신론으로 오해받기 충분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것은 한국 교리사 적으로 지금껏 전통적으로 소통해 오고 있는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는 용어를 두고, ‘(父神)’ ‘자신(子神)’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하면 이방신과 비슷하게 말하는 것으로 들릴 소지가 있다 하는 점입니다.
◀"요컨대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는 것,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면서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그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므로 '일체' 곧 '하나'이시다"(차영배 교수, 전 총신대 총장).
○論評: 차영배 교수는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고 하였는데, 그 표현이 맞는 말이나 엄밀히 따지면 그 표현도 오류적 표현이 들어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하는 여기까지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 하는 말은 좀 틀린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체 면을 두고서 그 성질과 성품에 대한 면을 말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영배 교수는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면서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하였는데, 그 표현 또한 삼신론으로 오해받을 만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체는 하나’라 해놓고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라고 했다면 교리적으로나 문장적으로나 그 논리가 맞아지겠습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 해놓고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면서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라고 표현을 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 계시는데 그 세 분이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하는 말로 들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성부), 아들 하나님(성자), 성령 하나님(성령) 세 분이시나 한 하나님이시며, 한 하나님이시나 세 분으로 계시며 일하신다"(김영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論評: 김영재 교수는 한 하나님이신 것을 명확히 전제하고 삼위로 계시며 일 하신다‘라고 표현하였으므로 정통적 삼위일체론의 바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전 세계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통 신조인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믿음과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즉 성부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이 세 분 하나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신조는 이 세 분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어느 곳에서도 선포하고 있지 않다. 정통 삼위일체론의 결정적인 신조인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김명용 교수, 장신대).
○論評: 김명용 교수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표현의 오류뿐만 아니라 교리 사상의 오류까지 있는 분으로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표현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말입니다. 이사야9장6절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한 아이 곧 성자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났는데 그 이름이 영존하시는 아버지 곧 성부하나님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성자하나님의 본체도, 성부하나님의 본체도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엡4:4-6과 요1:1과 빌2:5-8 말씀을 보아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삼위로 역사하시나 한 본체 한 분이심을 말씀합니다.
(엡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참고로 말한다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그 당시에 삼위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단설을 배격하는 그 중심의 신조라 볼 수 있습니다. 또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삼위 하나님을 세 하나님으로 보는 것을 유의시키는 신조라 할 수 있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뒤 부분에 수록을 하였느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일하시고 '본질적으로' 여러 분이 아니고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 측과의 논쟁중에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런데도 양태론자로 판명된 윗트니스 리에 대해 변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한적인 말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이단을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연구가를 정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세상에 기독교 안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가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부정한단 말인가? 본인은 칼빈의 "삼위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삼위의 각자가 바로 완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라는 우리의 확신은 결코 허물어뜨릴 수 없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3.)는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 본인의 신앙으로 고백한다.
○論評: 이 단원의 글도 최삼경 목사님의 삼위일체론의 교리 사상이 아주 건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표현 중에서는 좀 명확한 구분적 표현이 되지 못하므로 인해 오해를 삼을 수 밖에 없는 표현들을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원의 맨 앞글에서도 보면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일하시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 또는 오류적 표현으로서 오해받을 수 있는 표현이 된다 하겠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일하시고’ 하는 말이 더 바른 표현이 되려면 ‘삼위 하나님이 세 격위로 일하시고’ 해야 됩니다. 만일 ‘삼위 하나님이 셋으로 일하시고’ 해도 표현의 미숙 내지는 교리 정립의 미달적 표현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정립해서 발표할 때나 교리를 변증할 때나, 등에 있어서 진리적 이치와 문장적 표현에 있어서 정확성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원칙은 교리를 논하는 신학자라면 다들 알고 있지만 그 범위를 다 충족시키려면 그 범위가 너무 넓어지기 때문에 그 핵심 사항만 다루고 있을 줄 압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다루는 학자라면 이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면을 다 충족시키지 못하고 글을 기고 내지는 발표하는 이런 면에 대해 글을 대하는 분들께서 그러한 면을 헤아리고 대해달라는 응당 바램이 있을 줄 압니다.
◀넷째, 그렇다면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註: 앞글은 생략했습니다.) 이 신조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본질의 단일성을 뜻하는 것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알 수 있고, 삼위일체의 분리성과 단일성의 관계만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직접 살펴보면 그것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르키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論評: 최삼경 목사님은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에 대하여 '본질의 단일성을 뜻하는 것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알 수 있고' 하였는데, 이 표현에 있어서도 '본질의 단일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체가 한 분이라는 것을 피하는 표현이 된다 하겠습니다. 그러함은 본질이라는 것은 본체의 질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삼위하나님이 한 분이냐?(한 쪽은 격위의 인격이 하나로 또 한 쪽은 격위의 인격이 셋으로), 세 하나님이냐?(한 쪽은 격위의 하나님을 세 하나님으로 또 한 쪽은 세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을 삼심론으로) 하는 이 논쟁 선상에 있기 때문에 '본질의 단일성'이라 하지말고, '본체의 일체성'이라고 해야 이 시점에서는 명확한 표현이 되겠습니다. 아다나시우스 신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이와 같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주님이고, 성자도 주님이고, 성령도 주님이다.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기독교 진리가 우리에게 세 분이 각기 신이며 주님임을 인정하도록 요구하지만, 동시에 세계교회의 신앙은 우리에게 세 신이나 세 주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금한다.」이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주후 420-450년, 지금으로부터 약1,500여 년 전에 작성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 진리가 우리에게 세 분이 각기 신이며 주님임을 인정하도록 요구하지만, 동시에 세계교회의 신앙은 우리에게 세 신이나 세 주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금한다」하면서 그 유의성에 대하여 명백히 요구하는바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를 비롯하여 몇 분 교수들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인용의 글을 보면 다는 아니나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그렇게 유의할 것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여, 오해받기 좋도록 '세 영이 있다' '세 신이 있다' '세 하나님이 계신다' 이렇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물론 세 격위의 하나님을 강조하다보니 그럴 수 있지만, 그 표현의 앞뒤에는 반드시 일체 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꼭 보조해 주는 말을 붙여야 하고, 그 보다 더 명확은 '세 격위의 영' '세 격위의 신' '세 격위의 하나님' 이라 해야 삼신론 오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위격)과 본질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인격(위격)과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동방신학에서는 구별성의 의미로 '위격'이란 말을 사용하였고, 서방신학에서는 '인격'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 구별성의 의미로 사용한 위격(인격)이란 말을 단일성을 가리키는 본질이란 말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論評: 최삼경 목사는 '인격(위격)'이라 하였는데, 인격과 위격은 그 말의 성격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인격'은 그 자체를 말하고, 격위는 그 자체가 가진 직위를 말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를 가진 '격위'라는 말은, 인격과 같은 인격을 가졌고 또 직분 맡은 직위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격위라는 '격'은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고 '위'는 직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본질은 본체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격은 셋, 본체는 하나, 이래서 삼위일체.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삼위 곧 세 격위의 하나님이시나 일체 되신 곧 세 격위의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교리가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구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 인격)과,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본질)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면 삼위일체 교리는 쉬워지고 또 명료해진다고 본다.
○論評: 최삼경 목사는 '구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 인격)과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본질)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본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앞에서도 언급하였고 또 그에 대한 논평을 하였습니다만, 다시 재론한다면 '구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 인격)'에 대해서는 '격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로 고쳐야 하고, 또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본질)'에 대해서는 '일체성을 나타내는 말(본체)'로 고쳐야 맞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한 것은 빌립보서2장6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새삼 말하지 않더라도 교리는 성경을 근거하여야 하고, 또 교리사의 신조나 그 신조에서 사용된 단어를 우리가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그 당시 그 단어가 사용 된 성격을 잘 파악하고 적용해야 되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밝혀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본인은 본인의 문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바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과를 지켜보려고 한다.
○論評: 최삼경 목사의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밝혀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 믿는'라고 하셨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최삼경 목사님의 삼위일체론을 논평하고 있는 부족한 종도 이심전심이라 할 수 있어서 이점 적극 동감하는 바입니다. 바라기는 이 부족한 종의 부족한 논평이 이 시대에 필요한 삼위일체관 교리 정립에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결론>
무한 완전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유한 된 우리 인간들이 교리적으로 나타내려는 것은 그 자체가 무한 대 유한입니다. 하나님은 무한 완전하시고 우리 인간은 유한 부족입니다. 이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 이치적으로 교리를 나타내려는 것은 무한 완전을 향하여 나아 갈 뿐 그 무한 완전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교리를 완벽하게 정립한다는 것은 무한과 유한의 그 만큼의 가능이라 하겠습니다.
이래서 교회사 초기부터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단론이 많았고 그 중에도 신인양성일위 되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이단론이 많았다 하겠습니다. 그 이단론을 대표적으로 말하면 가현설과, 양자설과 양태론과 삼신론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교회사에서 발표하지 않은 묵언적 이단론도 많았을 것이라 짐작을 해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과거와 지금 현재에서 늘 대두되는 것이 하나님이 한 분이시냐? 아니면 세 분이시냐? 삼위의 세 격위이시냐? 한 분 한 인격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한 인격 한 분이심을 강조하다보면 양태론 쪽으로 기울게 되고, 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세 분이심을 강조하다보면 삼신론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치우침을 조화되게 하려면 앞에 언급한 대로 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성구와 삼위 되신 하나님에 대한 성구를 근거하여, 한 분을 말할 때는 반드시 격위가 세 분이심을 말해야 하고, 또 세 분 격위를 말할 때는 반드시 본체가 한 분이심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한 분을 말하고 삼위를 말하지 않거나 또 세 격위를 말하면서 세 분으로 말하게 되면 양태론과 삼신론으로 오해받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떨 때는 하나님 아버지!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과 계획과 긍휼을 구하고, 어떤 때는 주님! 하면서 죄를 속하는 구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구하고, 또 어떤 때는 성령의 감화감동의 충만한 은혜를 구합니다. 이래서 때에 따라 기도의 중에 그 성격에 따라 삼위 격위의 인격의 하나님으로 대하며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 삼위 하나님의 격위적 인격을 그 격위를 떠나 각각 셋 하나님으로 상대하여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 삼신론적 세 분 하나님이 아니심을 우리 인격으로 실제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바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삼위로 역사 하시나 한 분 일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 인격 본성으로 이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신앙 선조들이 성경을 근거하여 정립한 삼위일체 교리는 무딘 언어의 한계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위대한 용어 선택과 교리 확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지금까지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시비에 대한 논평을 하였으나 오히려 이 논평이 미숙하므로 인하여 또 다른 오해와 혼동과 시비를 일으킬 소지를 하나 더 제공하는 일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요소가 보이거든 표현의 오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단언하건데 우리 하나님은 완전 무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 근거되는 성구를 한 번 더 첨부하면서 부족한 종이 평론한 부족한 표현의 삼위일체관을 이 성구에 의지하며 맡깁니다.
◎ 삼위 하나님 성구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눅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일체 하나님 성구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엡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 아래는 최삼경 목사가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에 기고한 全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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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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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제기된 삼신론 시비에 답한다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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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sam5566@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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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문제가 제기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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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트니스 리 측에 의하여 제기된, 본인에 대한 삼신론 시비가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결국 본인이 속한 예장 통합측 교단에서까지 공적으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제기된 자세한 배경과 과정은 후에 때가 되면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본 호에서도 간단히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가 왜 본인을 삼신론자로 몰아가는가를 살펴보고, 이어서 과연 본인의 삼위일체관이 삼신론인가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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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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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처음으로 주장한 자들은 윗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측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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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1996년 8월호부터 1998년 5월호까지 본 <교회와신앙>을 통해서 윗트니스 리 측 사람들(다니엘과 조동욱)과 상호 6차례씩 지상 논쟁을 한 바가 있다. 그 때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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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 사상은 변형된 양태론이기 때문이다.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양태론으로 규정한 것은 예장 통합측과 고신측은 물론 국내외 여러 학자들까지 일치한다.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이란 무엇인가? 비록 삼위일체란 말을 사용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일신론이다. 그렇다면 일신론자가 정통 삼위일체관을 삼신론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삐뚤어진 자로 바른 자를 바르게 잴 수 없고, 거짓된 눈으로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이단자가 주장한 것을 근거로 해서 본인에 대하여 정통교회에서까지 시비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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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통합측 교단 안에서 문제를 제기한 첫번째 사람은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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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후에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윗트니스 리 측이 본인에 대하여 삼신론자라고 시비를 한 후로 통합측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가 본인 앞에서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가 속한 노회에서 무려 3회에 걸쳐 본인에게 삼신론 사상이 있는지 연구해달라는 취지의 질의를 교단 총회에 하게 되었는데, 총회 임원회에서 그 문제의 질의 건을 다시 서울북노회로 반송해 버린 일이 있다. 그 후에 이것이 이단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본인을 공격하는 근거로 수없이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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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1년 총회를 앞두고 갑자기 부산동노회와 진주노회가 같은 문제로 본인에 대하여 연구해달라는 질의서를 제출했고 이단대책위원회는 이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 전개된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공식적인 발표도 있기 전에 성락교회 김기동 씨가 대표인 <주일신문>에 때로는 가장 먼저 소상하게 보도되는 등 이단신문 또는 이단옹호 성향의 교계 신문에 중계방송이 되듯이 연거푸 대서특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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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동노회가 총회에 질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현재 총회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장인 김창영 목사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본인의 문제를 총회에 올리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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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인의 삼위일체 사상을 삼신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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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윗트니스 리 측의 이유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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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으로 보면 정통교회 삼위일체관은 삼신론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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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밝힐 것이다. 그러나 우선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영,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인격으로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 39, 281,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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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통합측에서도 그의 사상을 변형된 양태론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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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으로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것이다"(77회 통합측 총회 보고서,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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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교회와신앙>을 통한 논쟁중에 윗트니스 리 측이 자신들의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정통교회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였다. 그 중에 한 분이 이종성 교수요, 그리고 또 다른 분이 차영배 교수이다. 그런데 총신대 전 총장이고 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차영배 교수는 윗트니스 리 측을 이렇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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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에 최삼경 목사와 윗트니스 리측이 교리논쟁을 했다. 그 때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이 변형된 양태론임을 밝히자, 반대로 윗트니스 리측에서는 최삼경 목사를 삼신론자라고 주장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결국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최목사가 논쟁 중에 '윗트니스 리의 주장처럼 한 분 하나님(성자)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고 한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태론이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만 육신을 입었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태론적 눈으로 보기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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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윗트니스 리 편에게 정통이라고 인정받는 삼위일체관이라면 반대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탄에게 인정받은 선은 하나님에게는 악이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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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공격함으로 자신들의 삼위일체관의 이단성은 물론 다른 이단성들까지 은폐하는 데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계산된 주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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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논쟁시 본인은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상대편에서도 인정하였다. 그것은 지상논쟁을 한 목적이 오직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양태론이냐 아니냐를 밝히자는 것이었으며 정통교회 삼위일체관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했던 말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시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취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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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윗트니스 리 측에서는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공격하면서 그들의 다른 이단성들 즉 인간관, 교회관, 기독론, 세례론 등에 나타난 이단성들을 은폐하는 데 효과를 거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윗트니스 리의 다른 이단성은 숨겨지고 계속해서 삼위일체 문제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측 교단 내에서 본인을 공격하는 몇몇 사람들이 계속해서 본인에게 문제를 제기함으로, 다른 이단들을 돕게 되는 것은 물론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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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통합측 교단 내부 사람들의 이유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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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단자들이 제기한 문제가 왜 교단 안에서도 제기되어야 했는가? 그 가능성을 분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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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이 문제로 교계가 시끄러우니 진실을 밝혀달라는 순수한 요구일 가능성이다. 형식적으로 맞다. 또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이단성이 있으면 연구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법관도 경찰도 죄를 지으면 똑같이 처벌 받아야 한다.
>
>그러나 이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총회에 질의를 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믿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교단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진리 문제를 편가르기 식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요, 인간관계를 내세워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은폐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교단 안에서 20여 종의 사이비 이단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으로 일하였고, 6년 동안 총회에서 어떠한 사례비도 받지 않고 상담소장직을 수행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이겼지만 무려 이단들로부터 20여 회의 고소를 당하였고, 현재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직을 맡고 있고, 그리고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가 본인의 연구를 최소 최대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렇게 함으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이단들에게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 계산하지 못할 만큼 미련한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것일까, 아니면 이단자 윗트니스 리를 이롭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본인을 제거하려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일까, 본인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인내로 그 결과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
>2) 이단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나, 적어도 이단을 유익하게 하더라도 어떻게든 본인을 매장하려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일 가능성이다.
>
>이단과 관련되어서 그렇게 했든, 본인이 미워서 그렇게 했든 그들은 교단에서 본인의 삼위일체 사상이 삼신론이라고 규정된다면 기뻐할 것이고, 불행하게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온다면 속으로는 애석해 하겠지만 겉으로는 자신들이 본인의 혐의를 벗겨주었다고 생색을 낼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고 본다.
>
>① 윗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삼위일체관의 문제점도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관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
>이들 중에 아무도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말하지는 않았고, 설사 윗트니스 리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주장할 용기와 진실이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든지 상관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
>②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들이 바른 삼위일체론을 모르고 있거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벗어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다.
>
>본인이 볼 때 이들은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만일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그렇게 이단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김창영 목사(통합측 부산동노회 소속 목사, 총회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장)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목사가 <연합공보>라는 신문에 한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김창영 목사는 이번 총회때 왜 이단대책위원회가 이 문제를 연구하려고 했는지 설명하려고 했다(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는 혹시 본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하여 강경한 발언을 하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김목사의 의도가 일면 순수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다음의 기사를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
> "통합 사이비이단대책상담소장 김창영 소장은 '97년 6월호 교회와 신앙에 실은 글로 인해 타교단이나 본 교단으로부터 신학적으로 의심받고 문제 제게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총회가 최 목사의 주장에 대해 아무 조치 없는 것은 총회를 매도하고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됐다'라며, '이번 연구 결의는 삼신론에 대한 최 목사의 분명한 해명과 신학적 입장을 밝혀달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소장은 '만일 최 목사가 연구진행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는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연합공보 2001년 9월 10일자 기사).
>
>이 기사가 정확하다면 김소장은 본인의 삼위일체관이 삼신론이거나 삼신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만일 최목사가 연구진행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는 다를 수 있다"고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인은 김목사가 정통적인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소장도 윗트니스 리처럼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을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도대체 본인이 무슨 주장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문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다려 보겠다. 이 점에서 김소장이 원하면 지상논쟁이든 공청회든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그도 본인의 후임으로 상담소장이 되어 많은 상담을 하였을 것이니 적어도 기독교의 기본 진리인 삼위일체만은 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에게는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대해 시비할 권한이 있고, 본인에게는 이렇게 공청회를 제의할 권한이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기회가 되면 이 점을 공론화하여 진행하도록 하겠다.
>
>교단 안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중에 구체적으로 본인의 무슨 주장이 삼신론에 해당된다는 것인지 그 내용의 구체성을 적시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없었는데, 이번에 그나마 어느 정도 내용을 말한 사람으로 김소장이 유일하다고 본다. 그러나 교단 외부에서 오직 내용 있게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한 사람은 이단신문 외에 삼위일체에 대하여 무지한 한 언론인밖에는 없었다. 그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와 비교하여 본인의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이 문제는 본론에서 밝히겠다.
>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양태론적 이해를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다. 본인도 양태론적 이해를 벗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본인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주장했는지 알지 못하고 또 삼위일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본인에게 삼신론 시비가 있는 것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 측은 그 틈을 이용하여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인터넷을 통해서 벌어지는 토론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여러 이단측의 글이나 평소 이단옹호 성향을 보였던 신문을 보아도 그들이 요즘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번 일이 삼위일체에 오해된 부분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하고 믿는 바이다. 그러면 삼위일체가 무엇이며, 본인은 왜 삼신론자가 아닌지 밝히겠다.
>
>
>본론: 본인을 삼신론 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
>1. 무엇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는가?
>
>먼저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두 가지였다.
>
>첫째, 윗트니스 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본인이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냐?'고 반문했더니 그것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다. 본인의 그같은 반문은 성부와 성자의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말로서 삼위의 분리를 주장하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
>둘째, 윗트니스 리가 한 분 하나님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고 주장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에, 본인이 '만일 한 영이란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맞다고 볼 수 있으나 윗트니스 리는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양태론이며,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고 성자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고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다'고 하였다. 그러자 '인격으로 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니라 세 영들이시다'고 변증한 본인의 말이 삼신론이라고 윗트니스 리 측에서 주장한 것이다.
>
>과연 이것이 삼신론인가? 아직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
>첫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하신 기도라고 하면 삼신론인가?
>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런데 윗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냐고 윗트니스 리 측에게 반문했더니 그것을 가지고 본인을 성부와 성자의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삼신론자라고 비판을 하였다.
>
>그러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였다고 해야 하고, 그래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믿는 것이 된다면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 이단이고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은 정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무지의 극치요, 미련의 극치이다. 이는 양태론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다른 인격(위격)이시기 때문이다.
>
>다시 강조하지만 이 문제를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한다면 본인은 기꺼이 삼신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는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이 삼신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만이 아니라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삼신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본지 전 호(2001년 10월호)에서 삼위일체에 관해 글을 쓴 모든 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그리고 본인이 삼위 중에 예수님만 육신을 입으셨다고 하자 윗트니스 리 측에서 또 그 말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하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성부수난설도 이단이 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 하나님만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라고 하면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아버지도 죽고 성령님도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역사적 교회는 성부수난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하여도 무관하게 된다.
>
>물론 예수님이 성육신하실 때 거기에 아버지 하나님이 참여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거기에도 참여하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이시지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데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에 의해 보면 성부수난설이 이단이 될 이유가 없게 된다. 윗트니스 리든 교단 안의 어떤 사람들이든 본인이 겟네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하신 기도가 아니다고 말했던 것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주장한다면 2000년 교회사에 가장 미련한 소리일 것이다.
>
>둘째, 인격(위격)으로 하면 성부도 영이시고, 성자도 영이시고(비록 육체를 입으셨지만), 성령도 영이시고,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영이신 세 영들이시다고 하면 삼신론인가?
>
>본인 편에서 볼 때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나 총회 상담소장인 김창영 목사가 본인을 삼신론자로 생각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 말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무엇이 잘못이란 것인지 모르겠다. 삼위 하나님은 항상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복수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인격(위격)으로도 한 분이요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윗트니스 리와 같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들을 해결하면 자연히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또한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으로 믿는다.
>
>
>
>2. 바른 삼위일체를 알게 하는 데 혼동을 일으키는 것들은 무엇인가?
>
>첫째, 삼위일체는 신비로운 교리인가 아닌가?
>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로운 교리이다. 우리가 어떤 교리를 신비롭다고 할 때 그 진리의 깊이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신비롭다는 말은 맞다. 특히 '삼(3)위 일(1)체' 중에서 구분성을 나타내는 '3'에서보다 단일성을 나타내는 '1'에서 신비로운 교리가 삼위일체이다. 그래서 루이스 벌콥도 "이 삼위가 그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하나라고 하는 여기에 삼위일체의 참된 신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신복윤 역, 루이스 벌콥, 기독교신학개론, 성광문화사, 1985, 71쪽).
>
>그러나 본인은 삼위일체 교리보다 예수님의 양성 교리가 더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한 인격(위격) 속에 양성(신성과 인성)이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반씩 나누어져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변하지도 않고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
>그러나 삼위일체가 신비롭다는 말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가 있다. 즉 신비롭다는 말로 삼위일체 교리를 알 수 없는 불가지론적 교리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그 동안 알 수 없는 교리로 수많은 이단을 규정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삼위일체 교리라면 삼위일체 교리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
>특히 삼위일체에서 셋(3)의 의미와 하나(1)의 의미를 혼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1)를 말하면 양태론이라고 하고, 셋(3)을 말하면 삼신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되는, 마치 손오공 같은 교리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셋의 의미와 하나의 의미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이고 셋은 셋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의미로 셋이라고도 하고, 셋의 의미로 하나라고도 하는 것이다. 특히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본인을 삼신론자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같은 부류로 이해된다.
>
><교회와신앙> 2001년 10월호에 기고한 김명용 교수의 글에 본인도 동감한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 되는 극난한 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삼위일체론을 무언가 잘못 알고 있다. 삼위일체론은 사변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되는 극난한 어떤 교리도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삼위일체론이 무언가 잘못 왜곡되어 전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
>둘째, 삼위 하나님은 한 영인가 세 영들인가?
>
>본인이 '인격으로 하면 아버지도 한 영이고, 예수님도 한 영이고(육체를 입으신), 성령도 한 영이요, 결국 인격으로 하면 세 영들이시다'라고 했던 말을 가지고 윗트니스 리 쪽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고, 또 교단 안의 몇몇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최소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씩 살펴보자.
>
>먼저, 성부 성자 성령을 영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인가?
>이종성 교수는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서 첫째는 "야훼신이 참 신이요, 영원자요, 완전자라면 물질적 존재일 수 없다. 그는 영적 존재라야 한다"고 했고, 둘째는 "영은 모든 존재의 생명의 근원이다"고 했고, 셋째는 "영은 삼위일체 신의 존재 형식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신은 처음부터 그 존재 방식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삼위일체라는 형식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야웨신이 영적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질이 가지는 모든 제약성을 벗어 버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야웨신은 가장 순수한 영적 존재다"고 했다(이종성, 조직신학개론, 종로서적, 1986, 63-65쪽).
>
>칼빈도 기독교강요 제1권 13장 2절에서 "하나님의 본성은 측량할 수 없으며 영적이다"고 하였다. 그렇게 볼 때 성육신 후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라는 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에 대한 삼신론 시비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
>아니면 '세 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표현한 그것도 삼신론일 것이다. '세 분'이란 표현은 문제가 없고 '세 영들'이란 표현은 문제가 있다는 말은 네모난 삼각형 같은 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로 기록하였다(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되어 있다.
>
>더욱이 본인이 윗트니스 리 측과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제한적 의미로 한 말이었다. "(윗트니스 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영'이라고 했던 것이) 삼위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역시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을 세 영이 아니요 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과(하나님의 경륜, 16쪽), 그리고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의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 하나님, 52쪽), 또한 Daniel Towle와 조동욱 씨는 그것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본다"(교회와신앙 1998년 5월호, "윗트리스 리의 사상으로 한국에는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
>논쟁시 본인은 분명히 "인격(위격)으로 하면"이란 말로 여러 번 제한하였다. 그러함에도 본인이 삼신론자라고 한다면 인격(위격)으로 해도 '한 영'이라고 하는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주장이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본인은 윗트니스 리가 '한 영'이라고 한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하기에, 단지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영들이라고 변증한 것이다.
>
>이것이 삼신론이라면 인격(위격)으로 해도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양태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윗트니스 리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변증할 때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변증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통교회에서 삼위일체를 '영들'이니 '영'이니 하는 그런 소리를 별로 하지 않는다. '영'이라고 하면 주로 성령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은 단지 윗트니스 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변증하기 위해서 했던 말인 것이다.
>
>셋째,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
> '한 분'이란 말도 가능하고 '세 분'이란 말도 가능하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측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 가능한 말이다. 칼빈도 '한 분'이란 말도 하고 '세 분'이란 말도 하였다(기독교강요, 13장 2. 16. 17.). 즉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분'이라고 할 수 있고,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는 '한 분'이란 말도 사용할 수 있다.
>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다. 먼저 '분'이라는 우리 나라 말이 인격(위격)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되기 쉬워서 혼동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내 집에 왔을 때 우리는 "세 분이 왔다"고 한다. 각각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람 셋이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한 분이란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원문에는 한국 말의 '분'이란 개념이 없다. 단지 'Oneness' 이며 'Th- reeness'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나라 말로 '분'이라고 하기 때문에 '일신' 내지는 '유일신'과 삼위일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칼빈도 하나님이 '한 분'(Oneness)이심도 강조하지만 또한 '세 분'(Threeness)이심도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다. 세 분은 독특한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2).
>
>본지 전 호(2001년 10월호)에 기고한 학자들의 글을 다시 인용해 보자.
>
> "야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세 분으로 계신다. 세 분이라는 말의 원어는 '트레스 페르소나에'(tres personae - 서방교회)라는 말인데 한국을 위시하여 한문문화권에서는 '페르소나'를 위(位)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다. 한 인격적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야웨로서의 부신과 그리스도로서의 자신과 영으로서의 성령이 각기 고유의 존재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이종성 교수, 기독교학술원 원장).
>
> "요컨대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는 것,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면서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그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므로 '일체' 곧 '하나'이시다"(차영배 교수, 전 총신대 총장).
>
>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성부), 아들 하나님(성자), 성령 하나님(성령) 세 분이시나 한 하나님이시며, 한 하나님이시나 세 분으로 계시며 일하신다"(김영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
> "전 세계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통 신조인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믿음과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즉 성부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이 세 분 하나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신조는 이 세 분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어느 곳에서도 선포하고 있지 않다. 정통 삼위일체론의 결정적인 신조인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김명용 교수, 장신대).
>
>본인은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일하시고 '본질적으로' 여러 분이 아니고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 측과의 논쟁중에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런데도 양태론자로 판명된 윗트니스 리에 대해 변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한적인 말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이단을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연구가를 정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세상에 기독교 안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가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부정한단 말인가? 본인은 칼빈의 "삼위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삼위의 각자가 바로 완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라는 우리의 확신은 결코 허물어뜨릴 수 없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3.)는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 본인의 신앙으로 고백한다.
>
>넷째, 그렇다면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
>본인에 대한 몇몇 비판자들은 요즘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본인을 공격할 좋은 말을 찾아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의 "세 영들"이란 말과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라는 말을 비교하여, 아다나시우스 신조로 볼 때 본인이 마치 삼신론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사람은 강춘오라는 교계 언론인인데, 그가 발행하고 있는 <교회연합신문>이 그같은 내용으로 보도한 기사가 요즘 특별히 인터넷 상에 유포되면서 이단들의 귀를 달콤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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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두 가지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삼위일체의 구별성의 의미와 단일성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의미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교회연합신문>의 보도는 삼위일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말과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비교하여 그같은 기사를 쓴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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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인격(위격)의 측면에서 한 말이 아니다. 이 말을 '인격 또는 위격으로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로 이해했다면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이 신조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본질의 단일성을 뜻하는 것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알 수 있고, 삼위일체의 분리성과 단일성의 관계만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직접 살펴보면 그것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르키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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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을 혼동해서도 안되고, 본질을 분리해서도 안된다. 한 분 성부와 또 다른 분 성자와 또 다른 분 성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한 신성과 동등한 영광과 함께 영원한 위엄을 가진다. 성부의 본성이 바로 성자와 성령의 본성이다. 성부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자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령도 피조되지 않았다. 성부도 무한하고, 성자도 무한하고, 성령도 무한하다. 성부도 영원하고, 성자도 영원하고, 성령도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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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원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그와 같이, 피조되지 않은 본질이나 무한한 본질도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성부도 전능하고, 성자도 전능하고, 성령도 전능하다. 그러나 전능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주님이고, 성자도 주님이고, 성령도 주님이다.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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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의 말에서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이나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만 형식적으로 보면 본인의 말과 상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위의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의미가 인격(위격)이 하나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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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먼저 통합측 교단의 윗트니스 리에 대한 정죄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윗트니스 리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윗트니스 리의 말에 잘못이 전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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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벨리우스도 이단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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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된다는 귀신 같은 교리란 말이 된다. 삼위일체 교리를 말하면서 인격(위격)으로 해도 '셋'이라고도 하고 또 '하나'라고 해야 한다면 삼위일체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교리가 된다. 한 마디로 귀신 같은 교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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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정통 교회의 삼위일체를 믿고 주장하는 학자들과 신자들도 다 삼신론자란 말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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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인격(위격)과 본질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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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위격)과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동방신학에서는 구별성의 의미로 '위격'이란 말을 사용하였고, 서방신학에서는 '인격'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 구별성의 의미로 사용한 위격(인격)이란 말을 단일성을 가리키는 본질이란 말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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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남자와 여자가 인간으로서 차별이 없다는 말을 할 때 "남자와 여자는 인격적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 말을 삼위일체에 적용하여 본다면 분명히 단일성의 의미로 인격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 된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비록 인격이란 말을 본질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로 잘못 사용하여 결국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이 되어 버리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서방신학의 근본 정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위격이란 말도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면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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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방신학과 동방신학이 나누어지기 이전에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명한 것은 동방신학이나 서방신학이나 모두 양태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구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 인격)과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본질)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면 삼위일체 교리는 쉬워지고 또 명료해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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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밝혀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본인은 본인의 문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바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과를 지켜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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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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