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승우 목사의 '교리관'에 대한 논평

2009.11.10 16:17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변승우 목사의 '교리관'에 대한 논평
선지자선교회
<서문>

예장합동정통(총회장 장원기 목사)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김학수 목사)는 지난달 25일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에게 “본 교단의 교리를 따를 것을 재차 촉구하기로 결의했다.”고 통보했고, 이에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는 답변서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총회장님과 이대위 위원장에게 제출했습니다. 아래의 1. 계시관으로부터 4. 칭의와 성화의 관계의 글은 변승우목사님이 제출한 답변서 전문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입니다.


<본문>

1. 계시관

  성경에 대한 계시는 이미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무엇을 가감하거나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계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그러나 요엘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라고 예언한 대로 오순절날 성령이 부어졌으며, 예수님의 공중재림이 있기 전까지 성령의 은사가 계속 역사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교단의 교리보다 우위에 있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꿈과 환상과 예언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제가 알기로 이대위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과 같이 완전무오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말씀과 열매를 보고 잘 분별해서 바른 것만 받아들여야 합니다(고전 14:29).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계시관입니다.

● 論評:

계시에는 성경을 기록하는 성령의 감동이 되는 계시가 있고 또한 각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 각 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이 되는 계시가 있습니다.

우리 보편적 교회가 계시라 함은 성경기록 영감으로 나타낸 것을 계시라 합니다. 또 성경도 복음을 나타낼 때 계시라 하였습니다. 개인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에도 계시성이 있고 그 계시에는 예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계시라 또 예언이라 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계시와 예언에 대해서 치우치는 표현이 됩니다.

영세 전 복음의 비밀을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을 계시라 하고, 그 계시대로 이루시는 성격을 가리켜서 예언이라 합니다.(롬16:25-26 참조)

(롬16:25-2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변승우 목사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는 성령의 감동이 되는 계시와 또한 각 성도의 구원을 위해서 각 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이 되는 계시에 대해서  그 표현을 구분하지 않고 같이 사용하므로 교계에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복음을 성경으로 나타낼 때는 ‘계시’로 표현하고, 성령의 감동이 성도의 구원으로 나타낼 때는 ‘영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이라 논평합니다.  


2. 성경관

저는 성경 66권은 성령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리와 신앙의 유일한 표준이며,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비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책이나 계시도 존재할 수 없음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 論評:

성경관은 간단하게 답변되어서 논평할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3. 구원관

첫째,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구원의 공로는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전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렇다고 전 인류가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믿는 사람만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공로적인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지만 그 구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원의 수단은 회개와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어도 그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막 1:15).

  셋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 참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공로를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는 가치가 없는 것처럼 가짜 회개와 믿음 역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회개와 믿음입니까?

  가짜 회개는 죄를 자백만 하는 것이요, 진정한 회개는 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겔 18:30-32). 가짜 믿음은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요, 진짜 믿음은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고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약 2:14). 저는 이런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합니다.

  저는, 일부 사람들이 저의 가르침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에다가 행함을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 論評:

교계는 대체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합니다. 그리고 변승우 목사님은 이 믿음의 위에 진정한 회개와 그리고 믿음만으로 충만하나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변승우목사님의 구원관은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하나 구원관이 성경적이지 못하고 상충되는 점이 보입니다. 그러함은 ‘둘째’ 글에서도 나타나고 그리고 4번 글에서도 나타납니다.

고전3:10-15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값없이 거저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와, 그 터 위에 세우는 성도의 공력에 대한 말씀으로 근거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공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로 그리고 공력은 진정한 회개와 참 믿음으로 연결시키면 상충되지 않고 잘 맞습니다.

우리 진영이 가진 구원론으로 말한다면 교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기본구원)면만 말하고, 변승우목사님은 터 위(기본구원)에 공력(성화구원 곧 건설구원)면도 말하는데 그 표현이 성경적에서 미달됩니다. 미달이 성경적으로 보완되지 않고 지나치게 계속 나가버리면 비성경적 오류가 되게 됩니다.


4. 칭의와 성화의 관계

  저는 견인의 교리에 있어서 존 웨슬리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 論評:

변승우 목사님은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견해는 비성경적 오류입니다. 구원관이 성경적이지 못하면 먼저 표현에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또 실제에 있어서 판단을 받게 됩니다. 표현의 오해라는 말은 마치 삼위일체관을 바로 표현하지 못하면 시비에 거리는 것과 같은 맥락을 말합니다.

딤후1:9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구원 받은 자의 각 사람의 행위는 그 공력에 따라서 상과 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3:10-15)

변승우 목사님의 구원관을 고전3:10-15을 근거해서 말씀드린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터와 각 사람의 공력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각 사람의 세우는 공력에 따라 상이 있고 해가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성화는 각 사람의 공력입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견해는 칭의가 성화를 바로 이루지 못하면 그 칭의에 변동이 생긴다는 말이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는 비성경적 견해입니다.


<결문>

변승우목사님은 교리 표현에 있어서 미숙과 그리고 성경 깨달음에 있어서 오류가 있습니다.


<첨부>

위의 논평은 답변서에 대한 논평이며, 실제 교훈과 목회에서는 그 실상이 어떠한지 파악을 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에 대한 논평은 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