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진 목사의 백영희 삼대교리 문제점 제기에 대한 論評
선지자선교회

(서문)

정우진 목사님은 고신 진영에 속한 목사로서 ‘총회유사기독교 연구위원회’의 위원이 되는 목사입니다. 정우진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이 1950년대 초반에 정립한 우리 진영이 가진 대표적 삼대 교리라 할 수 있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설’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에 대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신학자 간의 활발한 연구로 더 밝혀져야 할 과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김반석 목사는 성경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검토와 논평을 해보고자 합니다.

정우진 목사님의 글 전문은 우리 진영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소개를 하면서 삼대 교리에 대해 문제점을 제시하였는바 문제점을 제시한 부분만 발췌하여 그 글 밑에 ‘論評’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논평 부분은 ‘문제점’에서 1. 중생론 2, 삼분론 3. 삼분론이든지 삼분설이든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4. 고려신학대학원 유해무 교수의 입장과 그리고 ‘결론’ 부분입니다.



(본문)


정우진 목사 : 제3영도교회 유사기독교 연구위원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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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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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나누는 3분론에 있어서 죄를 짓는 것은 영이 아닌 마음과 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인데 영과 영혼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몸과 마음이 죄를 범하는데 어떻게 영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하는 의문에 명쾌한 답변을 기대할 수 있을까? 동시에 초기에는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총공회의 주장을 “중생한 사람의 마음이 죄짓지 않는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생된 영(영혼이 아닌)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많은 부분 설득력과 이해가 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요 오해의 소지가 많은 주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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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정우진 목사님은 ‘영과 영혼이 어떻게 다른가’ 또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문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영과 영혼의 차이’에 대해서와 ‘중생된 영이 범죄 하지 않는다’는 그 근거 성구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간략한 해석을 붙이겠습니다. 그러면 의문은 풀리게 되고 이해는 하게 되겠습니다.  

○ 영과 영혼의 차이점

▪ 영에 대한 성구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으니,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마음과 몸),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산 영) 하는 말씀입니다.

고전15:45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하셨으니, 첫 사람 아담의 산 영이라고 하셨으므로 영혼과는 다른 말입니다.

사57:16에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하셨으니, 영과 혼은 별개임을 말씀하십니다. 즉 영이 영혼이고 영혼이 영인 것이 아니라 영은 영대로 영혼은 영혼대로의 별개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고전14:14-15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하셨으므로, 영과 마음(혼)을 구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롬8:16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셨으니, 성령이 친히 주의 피로 중생 된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셨으니, 흙으로 지음 받은 그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그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습니다.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곧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하는 말씀과 같은 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영과 영혼은 같은 것이 아니라 별개이니 영혼은 무엇인지 그 성구를 찾아보겠습니다.

▪  영혼에 대한 성구

삿5:21에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 하셨으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또 그 영이 우리 심신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 그 영과 마음을 한 말로 표현할 때 영혼이라 합니다.  

시23:3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셨으니, 영이 심신으로 더불어 소생시킬 때 그 영과 마음을 영혼이라 표현합니다.

잠20:27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하셨으니, 영이 심신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그 영과 마음을 합해서 영혼이라 합니다.

벧전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하셨으니, 영이 심신으로 더불어 진리를 순종할 때 그 영과 마음을 영혼이라 하셨습니다.

벧전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셨으니, 영이 심신과 더불어 육체의 정욕과 싸워 이겨 제어한 그 영과 마음을 영혼이라 하셨습니다.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셨으니, 몸과 영혼(영+혼)을 말씀합니다.

약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셨으니, 영혼(영+혼)과 몸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혼은 무엇인가? 혼은 이성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  혼에 대한 성구

전3:21에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셨으니, 인생의 혼이 있고, 짐승의 혼이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유1:10에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하셨으므로, 짐승의 혼은 이성 없는 본능이라 하셨고, 인생의 혼은 이성 있는 즉 지정의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혼은 지정의 마음이라 하는 말씀입니다.(짐승은 지정의가 있는 것 같으나 이성 없는 본능, 사람은 지정의가 있는 이성있는 마음)

영과 영혼에 대한 성구를 발췌하여 영과 영혼에 대해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정우진 목사님이 ‘영과 영혼이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영과 영혼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을 근거하여 입증해 보았습니다.  

○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

영과 영혼이 같은 도리의 같은 단어가 아니라 각각 별개의 도리가 있는 것을 성경을 근거해서 그 차이를 조명해보았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범죄한다’
‘중생된 영혼은 범죄한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은 범죄한다’는 말은 주의 피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은 범죄한다 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석을 하면 그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된 사람은 영이 마음과 몸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 산 사람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중생된 영혼은 범죄한다’는 말은 중생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범죄한다 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석을 하면 그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된 영혼은 영이 심신으로 더불어 마귀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의 그 영과 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은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영이 중생되었기 때문에 한 번 중생된 영은 다시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다시는 심신이 범죄 함으로 그 주격 책임에서 하나님과 끊어지는 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영이 범죄 함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심신이 범죄 함으로 영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죽었으나 이제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 심신이 죄를 짓더라도 주님의 대속이 그 죄를 사유하여 주셨기 때문에 심신이 지은 죄의 삯이 되는 사망을 영이 주격 책임에서 다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롬6:10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하셨으니, 주님의 십자가 대속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몸의 범죄에 대하여 단번 속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영은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음과 몸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책임을 질 주격 범죄의 죄책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히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셨으므로, 주님의 대속의 피는 우리 마음과 몸이 지은 죄에 대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이므로 그 대속은 단번의 효력을 가진 것을 말씀합니다.

정우진 목사님이 ‘몸과 마음이 죄를 범하는데 어떻게 영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하는 의문에 명쾌한 답변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말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해서 조명하였으니 그 의문에 대한  입증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2. 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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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설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삼분론이라고 표기하는데 교회사적 삼분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것이며, 마음과 몸은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분설은 인간은 영과 몸(육체)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교회사적으로 아타나시우스의 삼분설이나 마음을 물질이 아닌 영물로 보는 삼분설이 아닌 건설구원을 밝혀 나가는 "백영희 삼분론“임을 알아야 공연한 오해와 혼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백영희 목사는 세계의 유수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흔적이 미흡하다. 그러므로 고려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한 결과 구원론과 중생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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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백영희 목사님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조사 시절 때에 고려신학교에 제 1회 입학을 하였다가 목회 및 고신 진영 부흥사로 전국적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시간상과 그리고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진리 성경보다는 학문 신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거기에 열중할 수 없어서 그 뒤에 제 8회 졸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거의 마찬가지로 신학교는 진리 중심의 성경보다는 학문 중심의 신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성경연구에 주력을 하셨습니다.

정우진 목사님이 말하기를 ‘고려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한 결과 구원론과 중생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것 같다’ 하는데 그 말도 맞는 부분이 있는 것은, 처음에는 신학을 배웠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연구하였을 것이고 그 과정의 결과 성경적 교리를 정립하셨을 것입니다.  

○ 인성구조 삼분설

살전5:23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으므로, 영과 혼과 몸으로 삼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구는 인간의 인성구조 삼분설의 대표적 성구입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셨으므로, 혼(마음)과 영과 관절과 골수(몸)으로 삼분을 말씀하십니다. 또 혼은 마음으로서 생각과 뜻을 가진 속성임을 말씀합니다.

▪  영에 대한 성구

고전15:45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하셨으니, 첫 사람 아담의 산 영과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으로서 그 영만을 말씀하셨습니다.  

롬8:16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셨으니, 성령이 친히 주의 피로 중생 된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영이라고 그 역할을 말씀하십니다.  

▪ 마음에 대한 성구

창6:5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셨으니, 마음은 생각과 계획을 가져서 선하게도 또 악하게도 가질 수 있는 지정의를 가진 마음을 말씀합니다.  

마9:4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하셨으니, 악한 생각을 가지는 마음을 말씀합니다.

마9:21에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하셨으니, 구원을 받으려는 선한 생각을 가지는 마음을 말씀합니다.

갈5:16-23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셨으므로, 마음이 성령의 소욕도 가질 수도 있고, 육체의 소욕도 가질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고후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하셨으니, 육의 심비 곧 육의 마음에 세운 비라는 말씀이니 마음은 육이라고 밝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마음 곧 혼은 육에 속한 것이므로 영과 영혼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영이 영혼이고 영혼이 영이라는 혼동을 가지면 안 됩니다.

▪ 몸에 대한 성구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셨으니, 몸이라 함은 사람의 고깃덩어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몸은 피와 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의 주격체는 마음으로서 마음의 인도에 따라 고깃덩어리가 되는 몸은 전적 피동으로만 움직입니다.  

약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셨으니, 믿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낙원에 가고 몸은 주님 재림 때에 부활합니다.  

육신

신5:26에 ‘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하셨으니, 육신은 이목구비를 가진 몸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나 그 몸이 마음과 관련성이 있을 때를 육신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따라 몸이 피동 되는데 이렇게 마음에 따라 가지는 몸을 나타낼 때 육신이라 표현합니다.

롬8:5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셨으니, 마음이 몸을 쫓는 자는 마음이 몸이 쫓는 육신의 일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

창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으니, 마음과 몸이 영으로 더불어 살지 않고, 마음과 몸으로만 사는 사람을 가리켜서 육체라 하셨습니다.

벧전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셨으니, 마음이 영으로 더불어 사는 그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 곧 마음이 육으로 더불어 사는 것을 제어하라 하셨습니다.



>3. 삼분론이든지 삼분설이든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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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범하는 것은 영이 아니고 마음이나 몸이라고 할 때 영은 몸과 마음의 주체라고 할 때 죄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사람이 범죄할 때 영은 탄식만 하고, 몸과 마음이 범죄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완전히 타락하지 않고 일부분 즉 몸과 마음만 타락하였는가? 완전히 분리가 가능한가라는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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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정우진 목사님이 말하기를 ‘죄를 범하는 것은 영이 아니고 마음이나 몸이라고 할 때 영은 몸과 마음의 주체라고 할 때 죄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하는데, 앞에 ‘중생론’에서 논평한대로 영이 마음이나 몸의 범죄에 대한 주격체로서의 죄책을 지지만 그 죄책은 주님이 보혈의 피로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 죄로 오는 삯에 대한 죄책은 사유함을 받았습니다.  

또 ‘사람은 완전히 타락하지 않고 일부분 즉 몸과 마음만 타락하였는가?’ 하는데, 사람은 영과 육으로 지음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즉 육은 흙으로 지음 받은 땅에 속한 것이며, 영은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산 영이 되어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죄는 땅에 속한 육이 범죄하고 영은 육이 범죄한 주격 책임을 지지만 그 영 자체가 범죄 하는 속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또 ‘영과 그리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분리가 가능한가라는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게 된다.’ 하는데, 영은 영의 격위가 있고, 마음은 마음의 격위가 있고, 몸은 몸의 격위가 있습니다. 이 셋 격위가 각각의 격위를 가졌으나 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이 영으로 더불어 살 때도 있고, 마음과 몸이 그 육체로만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과 마음과 몸 그 자체가 분리 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그리고 마음과 몸의 그 행위가 분리 됩니다.



>4. 고려신학대학원 유해무 교수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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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삼분설(론)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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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 창조하실 때 전인으로 창조하셨다. 성경은 인간의 내면성과 육체성에 대하여 다양한 용어와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내면성을 표현하는 용어로는 마음, 지각, 영 등이 있으며, 육체성은 몸, 육, 혈 등이 나오는데 이런 용어들은 통일체인 인간의 내면성이나 육체성의 어떤 측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분설이나 삼분론이 근거로 삼는 인간을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다. 시30:2, 시23:20,22, 시84:2등의 구절에서 전인을 통칭하지 부분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살5:23의 영, 혼, 몸이란 표현은 3분설의 기초로 이용될 수 없으며, 전인을 3번씩이나 반복하는 의미중첩적인 표현방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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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정우진 목사는 유해무 교수의 입장을 대변하여 말하기를 몸, 육, 혈 등은 인간의 육체성에 대해서 또 마음, 지각, 영 등은 인간의 내면성에 대해서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인간의 인성구조에 있어서 한 성격면을 말하는 것이므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육은 흙으로 지으시고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지으신 것을 말씀합니다.

또 살전5:23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영과 육으로 지으셨는데 그 육은 혼 즉 마음과 몸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과 육으로 지으셨고 또 육은 혼(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면을 말할 때는 이분설이 되고, 사람이 가진 인성면을 말할 때는 삼분설이 됩니다. 그러므로 창조면과 인성면을 구분해서 각각 이분설과 삼분설을 가지면 성경적 교리 정립이 됩니다.



>2) 요한일서 3:9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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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본문에서 ‘중생된 영’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표현이다. 요일3:6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안에 거하는 자요 그리스도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요일3:24) 따라서 진리로 거듭난 영이기 때문에 범죄할 수 없다 라기보다는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에게 거하는 자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지 않는다. 삼분설에 입각하여 “중생된 영”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중생된 자” 곧 “중생된 전인”은 “그리스도가 그 사람 속에 거하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고 유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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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정우진 목사님은 유해무 교수의 입장을 대변하여 ‘요일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본문에서 ‘중생된 영’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표현이다’ 하는데, 그 말은 맞는 말로 받습니다. 그러나 요일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씨는 무엇을 가리켜서 말씀하는가?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속성이 되는 사람의 영으로서 곧 중생된 영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셨습니다.

또 요일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셨으니,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지키시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말씀함이니 예수를 믿는 영과 마음과 몸 그 전인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좀 더 세부적으로 살피면 중생 된 자라고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마음과 몸은 악한 자가 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중생 된 영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일3:9과 요일5:18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에 대한 근거 성구로 삼아도 틀린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또 정우진 목사는 ‘삼분설에 입각하여 “중생된 영”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중생된 자” 곧 “중생된 전인”은 “그리스도가 그 사람 속에 거하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고 유교수는 말한다’ 하는데, 이는 문제가 되는 발언이라 봅니다. 왜냐하면 ‘중생 된 자’ ‘중생된 전인’은 지금 우리 믿는 자를 말하는데 그러면 우리 믿는 자가 범죄 하지 않는다 하는 말이 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된 자는 그 영이 범죄를 하지 않고 또 마음과 몸이 영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는 범죄 하지 않는다’로 말해야 보다 정확한 말이 됩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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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목사의 경건성은 성도와 목사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성경에 해박한 지식과 성령 충만한 산 증거들과 사심 없이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다간 훌륭한 신앙 선배임에 틀림이 없다. 한때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운영하였고, 장년 주일학교도 5천명(예배 회집 수)을 헤아렸던 대형교회를 만들었던 분으로 여러 가지 좋은 영향력을 끼쳤지만 구원론에 있어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확립시키기 위해 삼분론을 주장하고, 중생론에 있어서는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죽는날까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백영희 삼분론을 주장하여 교계에 혼동과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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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중생된 영(영혼이 아니고, 者도 아니다)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요일3:6, 5:18)해석은 ‘하나님께로 난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인데 혹자는 성도 즉 중생한 영이라고 보나 하나님께로서 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는 지키신다는 의미로 보며,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에서 ‘범죄치 아니한다’는 의미는 앞절과 연결시켜 ‘범죄’는 ‘사망에 이르는 범죄’ 곧 회개를 통해 용서 받지 못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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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난 그리스도인들 일지라도 연약하여서 죄는 지을 수 있다. 즉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성도라 할지라도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만큼은 결코 짓지 않는 법이다. 그것도 하나님께로서 나신 예수께서 굳게 지켜주시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무난하다고 본다. 중생한 영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는 백영희 구원론과 중생론(삼분론)은 신학자 간에 활발한 연구로 더 밝혀져야 되겠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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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評 :

정우진 목사님은 말하기를 ‘구원론에 있어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확립시키기 위해 삼분론을 주장하고, 중생론에 있어서는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죽는날까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백영희 삼분론을 주장하여 교계에 혼동과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우진 목사님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에 교리에 대해서 아직 연구하고 검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 삼대 교리는 위에 그 근거 성구를 제시하면서 조명한바와 같이 성경적 교리입니다.

○ 기본(적)구원과 건설(적)구원

기본적 구원과 건설적 구원 교리에 대한 근거 성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3:10-15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택함을 받은 구속 받은 성도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기본적 구원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속 받은 성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공력은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를 기본적 구원이라 표현하였고, 그 터 위에 세우는 각각의 공력을 건설적 구원이라 표현하습니다. 그렇기에 구원론을 이원화 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나 그 믿는 공력에 따라서 성화가 다르다는 것을 성경대로 세밀하게 나타내는 교리 정립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지은 존재이므로 영은 본래부터 범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과 몸이 되는 육이 범죄 하므로 그 주격 책임에서 하나님과 끊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말하면 중생된 영은 다시는 마음과 몸의 범죄로 인한 그 죄책을 지고 죽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면의 이분설과 인간 인성면의 삼분설은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창조면을 말할 때는 이분설로 말해야 구원도리에 합치가 되고, 인성면을 말할 때는 삼분설로 말해야 구원도리에 합치가 됩니다. 영육 이분설만 말해도 한부분만 말한 것이 되고, 영과 마음과 몸 삼분설만 말해도 한부분만 말하는 것이 되어서 성경 전체에는 상치가 됩니다.    

또 정우진 목사는 말하기를 ‘하지만 성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만큼은 결코 짓지 않는 법이다.’ 하는데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롬6:23 전반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셨기 때문에 성도가 죄를 지으면 그 죄의 삯은 반드시 사망입니다. 또 계2:11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므로, 이기지 못하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계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하셨으니, 범죄 하는 자는 둘째 사망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요일5:16-17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는 말씀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와 그리고 사망의 이르는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믿는 자가 죄를 범했으나 주님의 대속공로로 그 사람 자체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씀이며, 또 믿는 자가 범한 그 죄의 행위는 사망에 이른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하셨고,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가 죄로되’ 하신 것은 믿는 자가 범한 죄의 그 행위에 대한 말씀이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는 것은 죄에 대하여 어린 양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범죄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일5:16-17 말씀은 레16:21과 요일1:9과 같은 뜻의 말씀이므로 연관 지어 상고하면 해석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레16:21)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결문)

교회사나 교리사에 있어서 성경을 앞서 깨달은 선지자는 거의 배척의 고난과 이단의 이름을 붙여서 죽였습니다. 성경에는 사울이 주와 복음을 바로 알지 못하여 주와 복음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눈이 열려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대표적 삼대교리가 되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도 교계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여 그동안 박해를 받는 교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발표한 초기부터 성경적 교리라고 인정한 신학자들이 있었고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정우진 목사님처럼 이 교리들에 대하여 연구 검토하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성경을 근거하여 연구하고 상고하며 검토를 하는 과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이 교리가 성경적이면 갈수록 성경과 합치가 될 것이고, 이 교리가 성경적이지 못하면 갈수록 성경과 배치가 될 것입니다.

처음에 성경과 상관없이 이 교리를 대하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성경을 깊이 상고하면서 연구하고 검토하면은 점차 성경에 합치되는 교리 정립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우진 목사님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성경을 근거하여 제시하였으니 한 번 더 이 삼대교리에 대해서 연구 검토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부 진영의 정우진 목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진영 분들도 이 논평을 참조하셔서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하신 우리 진영의 대표적 삼대교리를 더욱 성경적 논리가 되도록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삼대교리는 우리 진영 또 어느 진영이 가진 독특한 교리 중에 하나라고 여기는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함은 이 삼대교리는 구원론과 중생론과 인간론으로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핵심이 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연구하고 상고하여 이 삼대교리를 어떻게 하든지 성경적으로 밝히 깨달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