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보고 (2008년 12월)

2009.01.01 00:2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중국선교보고 (2008년 12월)
선지자선교회

◎ 인사

주은 중 공회와 교회와 가정에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외지 순회

이 달 초순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와 그리고 중순에 일이 있어서 외지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료도 전하였습니다.

◎ 성경적 요한계시록 주석 2차 수정과 보완

그런데 전하는 목회자료 중에서 ‘성경적 요한계시록 주석’ 그 1차 정리한 자료에서 수정과 보완 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보완할 부분은 그래도 좀 나은데 수정할 곳은 오류가 있어서 수정을 하지 않고는 더 이상 목회자료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래서 외지를 다녀오고 나서는 곧장 요한계시록 주석을 1장부터 수정과 보완을 하고 있습니다. 12월 31일 현재 9장까지 그 2차 정리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22장까지 그 2차 정리를 마치면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는 일과 목회자료를 전하기 위해서 이곳저곳 어느 곳이든지 쌩-하고 달리려고 합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성경해석 원리 그 중 하나

요한계시록 해석은 각 단어와 각 어휘에 있어서 각각 그 해석이 안 되면 그 절은 고사하고 각 단어와 각 어휘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이며 또한 전체가 난해절로 여깁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외에도 다니엘서와 같이 계시적 성구는 상징적이며 또한 난해절로 여깁니다. 그렇게 난해절로 여기는 것은 각 단어가 무슨 말인지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어휘에 대해서도 또 그 구절에 대해서도 무슨 말인지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구는 읽지만 그 성구에 대한 일차 문자적 해석을 가지지 못합니다. 문자적 해석을 가져야 진리적 해석에 들어 갈 수 있는데 그 문자적 해석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한데도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면이냐 하면 문자적 해석을 가지면 성경과 성구에 대해서 해석을 어느 정도 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7:25에 ‘창수와 바람’에 대해서와 또 고전 3:12의 ‘나무나 풀이나 짚’에 대해서와 그리고 이와 같은 단어와 어휘에 대해서 그 문자적 이해는 명확히 하므로 그것에서 그치고 더 이상의 그 단어와 어휘에 대해서 진리적 해석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붙잡아’ ‘해롭게’ 등과 같은 말에 대해서도 우리들이 가지는 일반적 문자 해석과 또 그 문자적 윤곽 해석에서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말에 뜻은 각각 그 명확한 진리적 도리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해석이 어렵다고 여기고 그 외 성경은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요한계시록 보다는 그 외 성경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 어렵지 않다는 말은 문자적 해석에 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한 단어와 한 어휘를 문자적 해석에 일차 이르고 그리고 또한 이차적으로 진리적 해석에 이르러야 그 해석에 이릅니다. 요한계시록 외의 성경은 문자적 해석은 거의 해석이 되므로 그 진리적 해석에만 이르면 됩니다.

그러하므로 언급한대로 문자적 해석에 이르면 성경에서 각각 명확히 그 성경적 진리의 도리가 있는 진리적 해석에 대해서는 그만 간과하여 지나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 공회 노선

조직신학은 성경 교리를 연구하기 위한 보조적 조명 자료입니다. 이래서 성경을 연구하면 조직신학은 저절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집중 연구하는 것보다도 조직신학을 집중 연구하면 성경은 점점 모르게 됩니다.

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은 영감과 진리대로 신앙하기 위한 보조적 조명 신앙노선입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의 신앙노선은 저절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감과 진리를 집중하는 것보다도, 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을 집중하면 영감과 진리는 점점 모르게 됩니다.  

◎ 성경대로 교회행정

신약 성경에 보면 ‘백성들의 장로’라는 말씀이 있고, 또 ‘교회의 장로’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회’라는 말씀이 있고, 또 ‘장로의 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15장은 백성들의 장로의 모임인지? 아니면 교회의 장로들의 모임인지? 그리고 공회인지? 아니면 장로의 회인지? 심사연구가 필요합니다.

어찌하든 현재 우리 공회의 근본성은 사도행전 15장의 교회행정을 향해 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보수 계대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 달란트와 청지기

(마25:15-18)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우리들은 각자 주님께 받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직분과 분량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다 같은 것은 주님이 주신 달란트에 대한 청지기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이 땅 세상을 파고 그 속에 저축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축복주의로 살지 않고 저축주의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땅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기려고 우리들은 기도로 동역하고 연보로 동역하면서 선교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 성구로 인사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의지하여 부족하고 미약한 종이 선교보고를 올립니다.
중국에서 김반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