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비유의 교훈목적


선지자선교회 1985년 12월 8일 주일오후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 겨자씨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심은 그 목적이 세 가지에 있습니다.

하나는 산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요, 둘째는 초자연의 주권의  믿음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세째로는 초인간의 결실을 하는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지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산 믿음은 뽑는 것과 옮기는 것과 심는 일에  있어서 다 초인간적인 초자연적인 그 전지하는 주권의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  산 믿음의 행사입니다. 또 산 믿음은 뽑고 옮기고 심는 일에 초자연의 전능한  결실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산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전지요  전능이요 완전이요 영원이요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산 믿음을 주신 것은 모든 면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의 모든 것을 다 우리의 것을 만들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대리의 통치자와 시은자가 은혜를 베푸는 시은자가 되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일차 창조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땅을 정복하고 통치하는 그  권세를 맡겼지마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 까지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다 아담 앞에 두고서 그의 영원한  본질과 본성을 작정하고 그 이름을 작정하라 할 때에 아담이 다 작정시켰습니다.

작정시켰을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잘 되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한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지위를 다 버리고 본 지위에서 타락되어  만물에게 다 저주 받는 저주거리가 됐습니다. 처음에 세울 때에는 사람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들이 다 복받게 하려 하셨는데 사람들이 타락으로 인해서 만물은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만물들도 사람을 저주했다고 그렇게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것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복구되어서 잊어 버렸던 사람의 본  지위를 도로 찾되 영원히 타락이 없는 그 지위를 다시 받게 되고, 이래서 에베소  1장 끝 절에 보면 교회를 만물 위에 두고 만물은 교회 아래에 두고 하나님만이  교회의 위에 계시도록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나타내실 때에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과  수족같이 역사하게 되고 만물들은 발등상이 되고, 이래서 교회는 만물 안에  있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온갖 은혜로 충만케 해서 만물은 영원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는 그 섬김을 다 받아 가지고 하나님에게 돌려  영광을 돌리게 하는 그런,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하게 한  것이 그것이 교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창조주 대주재인 하나님과 피조물과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하는 이 제사장의 직책을 예수님과 함께 가진 것이요, 또  하나님의 모든 뜻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온갖 필요한  충만한 은혜를 주실 때에 그것을 받는 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뜻으로 주시고  당신의 뜻을 받아서 이행할 때에 그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셨는데 선지직을 우리에게 맡겨 주셔서 하나님의 그 모든 비밀의 사실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함으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대로 이행함으로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 가지도록 그렇게 하는 선지 직책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하나님이 단일 정치를 하시는 그 정치를 우리들이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 정치대로 움직이게 하는 통일 정치를 이루어 모든 조직과  질서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정연하게 되어지므로 아무런 불의가 없는 다  영생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그 나라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선지, 왕의 직을 받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산 믿음을 가지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발표해 주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맺은 계약의 모든 조문들인데 하나님이 당신의 그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고 영영하신 뜻을 우리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실 때에 그  전달하심이 문서 계시로 성경에 발표한 그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그러면 전달해 주시고 문서 계시 그 이면에 성신의 감화인 영감 계시가  있어서 영감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그 알려 주신 그 뜻을 따라서 우리가  순종할 때 그것이 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감 계시를 주실 때에 그  무한의 모든 복잡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고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고 심위의 조문, 그 규범 이내에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명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명령을 지켜 그대로 행하는 것이 곧 산  믿음입니다.

 그것을 요한 1서 2장 27절에는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있어서' 기름부음이라  말은 우리를 중생시킨 성령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너희 안에 성령님이 내주 해  계셔서 너희들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나니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대로 행하라. 사람에게 너희들이 어떻게 행할 것을 물을 필요가 없고  또 가르칠 사람도 없다. 그러기에 오직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만 피동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을 구약에 신명기 28장에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조심 있게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것은 고 현실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네가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호와라 말은 계약을 선포하시고 그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육체의 이스라엘 때는 이해를 잘못 했으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것은 그것은 믿는 사람들은 다 그러합니다. 모든 세계 민족들은  예수 밖에 있는, 모든 있는 민족들은 다 사망의 그 수평선 이하에 있고, 또 정죄  아래에 있고, 모두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다 보이는 그 세계에만 속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하셨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많은 것을 위해서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가 얻는 것은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이로 인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를 중생시켜서-죽은 것을 다시 살려 중생시켜서-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더럽지 안하고 낡아지지 아니하는 산소망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다 썩지 아니할 것들을  얻고 쇠하지 아니할 것들을 얻고 다 완전한 것 영원한 것, 무한한 데 속한 것들을  우리가 얻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세계 모든 민족들이 생각도  못하는. 그런 것을 무한히 초월한 고차원의 것들인 것입니다. 여게는 다 생명선  이상의, 불멸선 이상의, 영원선 이상의, 완전선 이상의 것을 우리들이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 1서 3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게 깨끗이라 말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이  그대로 창조된 거기에서 변질되지 안한 것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원하시고 계획하신 그대로 잡 것이 섞이지 안하고 그대로의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을 가리켜서 깨끗이라 그렇게 말씀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의  본질과 본성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본질과  본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완전 지혜성, 완전 지식성, 완전 중심성,  완전 거룩성, 완전의 성, 완전 진실성, 완전 주권성, 영원성, 불변성, 단일성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1권 17편에 말씀하시기를 땅에 분깃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얻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배불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가 남은  것이 있으면 자기의 자녀라고 해서 자기의 자녀에게 그 남은 것은 상속시켜 주는  것으로써 만족을 하고, 그것을 자기들의 성공이요 자기들의 할 일로 이렇게 하고  있으나 하늘에 소망을 가진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그런데에 가치를 두지  아니하고, 그런데에 소망이나 소욕을 두지 하니하고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깰 때라 말은 이 세상에서도 올바른 정신을 차리는 것은 깰 때인  것입니다. 또 참 깨는 것은 세상에 이 모든 불의한 꺼풀을 다 벗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 앞에 가 가지고서 검사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부활하는 그때를 가리켜서 깰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깰 때에 주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심판 받기 위해서 부활했을 때에 예수님과 꼭같은 자가 되어지는  요것으로써 만족하고 요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꼭 같이 되는  자는 내가 이기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거와같이 이긴 자들도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되리라 말씀하신 그 약속대로 그 지위를 차지하고 거게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또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서 중보자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직책이요 위치요 가치인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다른 것 가지고는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전부 산 믿음  가지고만 이루어집니다. 산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동하라 할 때에 동하고  정하라 할 때에 정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과 완전과의 연결 결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가복음 9장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은 다 실패자다 그렇게 그런 뜻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잃는다는 말은 현실을 닥쳤을 때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악령 악성 악습인,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 우리가 안 믿을 때에 자기로 산 그 자기는 다 자기는 죽여  버리고 죽인 원수가 와 가지고서 그 가장을 해 가지고 우리의 주인인 참 마음과  몸의 주인으로서 그렇게 연극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6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고  하면서 이 옛사람은 죽이라 그랬습니다. 옛사람은 뭘로 된 게 옛사람이냐 하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것이 옛사람입니다. 악령이라 말은 타락한 천사가  제 중심으로 살다가 타락한 그것이 악령이고, 악성은 에덴 동산에서 배암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인간이 인간의 본성이 악성이 됐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성됐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데  배암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  배암에게 유혹 받은 그때부터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은 죽여 버렸고  고기덩어리와 마음의 이 모든 요소의 기능들만, 악령 악성 악습이, 순전히 죄악의  뭉텅이가 이것을 사로 잡고 있었던 그것입니다. 그것으로서 살았습니다.

 이래서,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요' 하는 말은 영은 죽었고 영이 주격되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순전히 심신이 주격되어 움직이는 그 모든 생활은 사망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육체의 욕심은 사망이라. 성령의 욕심은 생명과  평강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도 보면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들과  같이 할 수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육체가 됐다 말은 영은 파묻어 버리고  자기를 잊어 버렸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제까지는 하나님 중심에서 움직이다가 여인들의 아름다움의 그 미에 미혹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제 마음대로 여인을 택하는 고 일을 한 고것이 제  맘대로 하는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새로 움텄습니다. 그것이 새사람은 파묻어  버리고 옛사람이 주격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영은 다 죽여 버리고 심신 그것이 주격이 돼 가지고 움직이니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기한을 일백  이십 년을 정했다.' 하고서 그 다음에 홍수로 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전부 옛사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죽은 영과 심신과 이 둘이 합해 가지고서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심신은 기능 작용을 했지마는 영은 존재는 하지마는 기능 작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죽은 영이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입음으로 이제 중생됐습니다. 다시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중생한  중생은 영생하는 것으로 중생 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피는 예수님의 공로를 말하는데 중생된 우리는 다 영생하는  우리요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가진 새사람으로 살 때도 있고, 사망을 가지고 있는 옛사람으로 살 때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옛사람으로 살았으면 스물 네 시간 산 그 생활은 다 죽는  생활했습니다. 스물 네 시간 살았으면 스물 네 시간 산 것만치 저는 그 생명이  줄어졌습니다. 생명이 끊어졌습니다. 생명이 감소돼 졌습니다. 영생으로 살면  그만치 그 생명은 강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하면 손해라 그말은 새사람은 잊어  버리고 새사람 자기는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살면 너는 다 실패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실패했으면 천하를 들어 말하는 것은 무슨 연고인가?  사람들이 땅 위의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 우리는 이사 갈 사람들인데 나그네  생활인 이 세상 이것이 영주처인 줄을 알고 이 세상에 있는 그것을 탐해서  날뛰다가 참사람 자기를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야  참사람 너를 잊어 버리고 네가 온 천하를 얻어도 손해인데 네가 참사람 너를  잊어 버리고 세상을 차지하려고 해 봤자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큰 빌딩 하나도  차지 못 합니다. 날뛰어 봤자 이 우주에다 비하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만도  못한 것이 한 지구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그것도 차지 못 합니다. 지구 땅덩어리  중에도 고게 몇천분지 일쯤 되는 한 지역의 조그만한 한 지역, 조그만한 한 나라.

한 민족. 그것도 차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거 차지 할 게 아니라 지구를  차지하고 우주를 다 차지한다 할지라도 참사람 너, 새사람 너 그 너를 잊어  버렸으면 너는 손해 갔다. 온 천하를 주고라도, 비유컨대는 온 천하를 주고라도  참사람 너를 찾아 가지고 참사람으로 하루 사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네게는  큰 수입이 된다.

 또, '자기를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빼앗긴다고 말했습니다.

뺏긴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우리의 심신의 이 기능을 영생하는  기능으로, 전지의 기능으로. 전능의 기능으로, 완전의 기능으로 영원히 하나님에게  쓰여지고 만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이런 기능으로. 영생하는 기능으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이 기능으로 살려낼 수 있는 건데 그것을 세상 거  탐하다가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에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으면, 자기를  잊어버리면, 자기 것 될 것을 뺏겼다 말입니다. 무슨 소용 있겠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겨자씨 믿음으로 말씀하신 것은 산 믿음을 가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말은 산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명령하시는 그 명령대로 한 그것은 뭐이든지 다 되는 것이, 전지 전능자, 대주권  개별 섭리자가, 주권을 가지고 지극히 개별 개벌을 다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당신의 뜻 그대로 하는  거게는 전지 전능의 명령이요 전지 전능이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상스러운 말이나 별스러운 말이나 사람들이 과장한  말로 그렇게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그런 걸 많이 봅니다. 어떤 조그만한 회사라도 그 회사의  총책임자가 이렇게 해라 하고서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라 하는 대로했으면,  하라 하는 대로 해서 거게 몇억 대가 손해가 간다 해도 그것은 하라고 명령한  그분의 명령에 틀림없이 고대로만 했으면 그것은 몇억이 손해가도 그분이 책임질  것이요, 또 하라는 대로 고대로 했으면 그 명령한 자가 실력이 있는 한은 명령한  고대로 한 고 일을 달성시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온  일반 인간들도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신 주권자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요렇게  해라 고 현실에서 시킨 고대로 하는 것은 그 일은 실패해도 그분이 책임질  것이요, 성사도 그분이 책임질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은 전지 전능의 완전의  행동이요, 다 영생의 행동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그분에게  피동된 자마다-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말씀을 했습니다. 내나 그게 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이라는 것을 구별해 가지고 깨닫고 보면 전성경은 산  믿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거반 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산  믿음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셔서 이 겨자씨 비유를 말씀해 주셨고,  뽑고 옮기고 심으는 것, 뽑고 옮기고 심으는 이 일에 대해서 온 세상이 부인하는  것이라도 이거는 온 세계 인류가 다 달라 들어서 안 되는 것이라도, 역사에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라도 그것을 명령할 수 있는 이런. 명령할 수 있는 이런  전지의 권세자가 되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고것을 바로 알아 가지고  고대로만 딱. 하나님이 명령하라 하셨기 때문에 명령했으면 안 되는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창세기 1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 바다에 명령하시기를 '네가 모든 생물을  내라' 이렇게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에 그때에 그 바다 물이 항거하지 안하니까.

반대하는 것이 없었어. 반대하지 안하니까 명령하신, 그분이 그 바다를 통해서  모든 생물들을 다 순식간에 창조해 냈습니다. 단 번에 창조해 냈어. '모든 육지도  모든 그 생명 있는 식물들을 내라' 할 때에 그때 명령하신 그분이 모든 이 땅을  통해 가지고서 그렇게 모든 식물들을 다 내신 것입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뜻 그 뜻은 무슨  뜻이냐? 일차 창조의 것은 다 진동될 것이요 변동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차  창조의 것은 영원히 변동되지 안하고 진동되지 안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것을  이차적으로 창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고 이차  창조를 지금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이차 창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차 창조의 명령을 당신이 일차적으로 다 완전히 순종을 했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해 다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 심판에서 우리는 무죄라,  의롭다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라 해 가지고서 지공 심판에 통과가 돼서 영원히  사망이 우리를 해할 수가 없는 지공 심판을 통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에 그 지공 심판을 우리는 통과하고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심판, 네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얼마나 입었으며 얼마나 믿었으며 얼마나 그 대속을 네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검사 해 가지고서 무궁세계로 옮기려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현실 현실을 만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그것을 입고 사느냐 벗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현실마다 우리가 이 현실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현실을, 돈을 취할 현실인가, 권세를 취할 현실인가, 썩고 없어질 것들을 취할  현실인가 몰라서 이 현실을 다 남용하고 오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내 마음이나 몸의 이 기능이 전지의 기능, 전지의 기능. 완전의 기능 이 기능을  받아 가지고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요소 요소가,  우리의 요소 요소가 하나님 앞에 영생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영생을 주시는 내  기능이 하나님이 주시는 그 영생을 내가 현실에서 받아 가지고서 내 기능의  영생으로 삼는 그 영생이 내 현실에 와 가지고서 부딪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걸 취하지 안하고 온 천하를 얻었다 할지라도 너는 실패자라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영광도 우리 현실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도 영원한 존귀도. 영원한 지위도, 영원한 권세도, 영원한 평강도 영원한  칭찬도. 영원한 쾌락도. 영원한 평강도, 영원한 만물의 환영도 영원히 만물에게  봉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들도 이런 것들이 다 주님이 이 현재를 통해서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재에는 주님 이 주시는 이 오만 것들이, 이  현실에는 주님이 이거 주시는 것이 와 있고 저거 주시는 것이 와 있고 모든  필요한 것이 우리 현실에 주님이 손에 들고 주신다 했습니다. 빌립보 3장에는  '손에 들고 주신다' 이랬어, 손에 들고 주시는 이거는 다 승리자만 얻는 것입니다.

손에 들고 주시는 이것을 내가 현실에서 받아 가지고 영원히 내 것을 삼는 것이,  이것이 현실의 이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 주의해야 할 것은 '때가 악하니라' 그 말은 모두  다 인간 중심으로 사는 데에 다 패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너는 인간 중심, 자기  중심, 네 중심 암만 해 봤자 죽는 것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현실에 주님이 영원하고 보배로운 것을 너희에게 주시니까 이 보배로운 것을  현실에서 받아 가지고 네 것을 영원히 삼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주님이 주시는 보배로운 것을 내가 받기 때문에 이 보배로운, 것을  받아 가지고 내 것 삼는 것은 믿음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후서 1장 1절  이하에는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랬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을 우리가  가지기를 원하고 원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과  진리의 능력으로 인해서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걸 가지고 뽑고 옮기고  심으는 이 일에, 사람들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그런 거 일반적인 뽑고 옮기고  심으는 그런 것만 네가 할수 있는 자 되지 말고, 그런 것만 할 수 있는 자 되지  말고, 전인류가 역사에 아무도 '그 뽑는 거는 못 한다. 누가 하겠느냐? 그 옮기는  걸 누가 하겠느냐? 그 심는 걸 누가 하겠느냐?' 전인류가 다 달려들어도 할 수  없는 이 씨 가지를 네가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권세 있는 전지 전능의 믿음을  가지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 믿음을 가지고, 명령한다 말은 시작한다 말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든지 네가 하든지 명령이라는 것은 시발하는 것이오. 네가  믿음으로써 안심하고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의심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자가  되고. 시작한 그것이 시작한 고대로 결실을 하나도 에누리 없이 고대로 다 완전히  성취되는 그런 능력 있는 그런 믿음을 가지라 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이  비유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뽑는 일에 있어서 간단하게만 말하겠습니다. 이 뽑는 것은  어떤 것을 뽑을 것인가? 크게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위반 된 것을 다  뽑아야 됩니다. 주님이 사죄를 주셨는데 이 사죄를 우리에게 벗게 하려고, 이  사죄를 손해 보이는 이런 것을 다 뽑아야 됩니다. 사죄 손해 보이는 것을 다  뽑아야 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해 주셨는데 의를 해치는 것을 다 뽑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친을 했는데 이 화친의 장애물들을 다 뽑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이질적인 것, 하나님과 이질의 것, 하나님과 이성의 것. 하나님과 나와의  다른 것 그 모든 것을 우리 가 다 뽑아야 합니다. 이 뽑는 능력은, 산 믿음은, 산  믿음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그 뽑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렇게 조렇게 현실에서 요래 해라 조래 해라 당신이 현실에서  요렇게 시키시는 것은, 시키시는 것은 내게 뽑을 것, 고 시키시는 대로 하다가  보면 내게 뽑을 것이 필요한데 내게 뽑을 것을 뽑을 때에 내게 뽑을 것이 확  뽑혀지고 시키시는 대로 고대로 하면은 나와의 관련된 다른 사람에게 뽑을 것을  뽑히게 돼지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산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현실에서  순종하는 요 순종은 자타에게 이 멸망을 완전히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멸망을  완전히 뽑아 버리는 것 우리가 옛사람도. 옛사람도 요 산 믿음을 가졌을 때에  옛사람은 뽑혀 나갑니다. 악령. 악성, 악습, 그 놈은 뽑혀 나갑니다. 악령, 악성,  악습 그것이 들어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예수님의 대속을 방해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싹 뽑혀 나갑니다  또 우리가 산 믿음을 가질 때에 옮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에게, 나에게 모든  죽고 썩고 망하고 약하고 더러운 것 이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썩을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이 더러운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약하고 못쓸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못쓸 이것을 옮겨서 주님 안으로 옮기면. 그리스도의 피  속으로 옮기면, 주님의 대속 안으로 옮기면 주님 안으로 옮기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깁니다. 우리는 옮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내게 있는 더러운 것은 다 주님의 대속에다가 옮겨  가지고서 이것을, 재생시켜서 말할 수 없는 완전으로 재생시킵니다.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재생시킵니다. 약한 것을 전능으로 재생시킵니다. 내게 있는  모든 이 썩을 기능을 주님에게 옮기면 전능으로 재생을 시켜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옮기는 것이 얼마나 급급하고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내 음성을  듣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랬습니다. '내 음성을 듣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고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대로 행하는 것은 모든 죽은 것들을 다 생명세계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이라는 이것은 산 믿음은 말할 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주고 뭘 팔겠습니까? 이 믿음이면 다 됩니다  또, 그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진 오만 좋은 것을 내가 지금 옮김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좋은 것을 지금 내가 옮겨 받아야 돼. 전능도 지금  받아야 됩니다. 전지도 지금 받아야 됩니다. 완전도 지금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온갖 속성의 사랑이든지 지혜든지 능력이든지 이것도 지금 내가 받아서 내것  삼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뭐 입으로 암만 많이 말해도 그 진리는 제 진리되는  것 아닙니다. 다만 현실에 주님이 고 진리를 가지고 '네가 요와 같이 해라. 네가  요와 같이 알아라. 요와같이 증거하라. 할때에 고 현실에 주님이 주시는 진리를,  주시는 영감을 제가 고 현실에 받을라고 하면은 많은 십자가의 애로가 있기  때문에 고 현실에 사람들이 받지, 좋은 줄 알아도 받지를 못합니다. 고럴 때에,  고럴 때에 고 말씀대로 내가 딱 지켜 행하면 고 진리가 그때에 자기 것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만 영감이나 진리나 능력이나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있지 현실을 벗어나 가지고는 자기 것을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오늘 믿는 사람들이 왜 이래 빈약하고 허무해져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알기는 알지마는 그 받는 것을 전부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현실을  삐뚤트립니다. 현실을 삐뚤트려서 과거로 삐뚤트리든지 미래로 삐뚤트리든지 해서  미래에 대해서는 다 성자 성녀가 다 됩니다. 또 과거에 대해서는 다 잘못된 것을  후회를 많이 하니다. 이렇지마는 후회 그거 암만 하고 미래에 암만 결심해도 소용  없고, 요 현실에 요게서만 받을 수 있는데 요게서 요것을 옮겨 받지 못하기  때문에 탈입니다. 현실에 그 전지 전능을 내가. 하나님의 모든 보배롭고 좋은  것을 내가 옮겨 받아 가지고서 내가 받아서 내것 삼는 것은 현실에만 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옮기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에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그것도 어렵기야 어렵지마는 그것보다도  전지 전능의 그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내가 내것으로 옮겨 받아서, 옮겨 가지고서  내것 만든다는 그거는 더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것 요량하면 억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옮겨 받을 수 있다 그말이오. 옮겨 받을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보배입니다. 산 믿음은 심우는 초자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내 속에 심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영생을  내게 심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을 내게 심습니다. 예수님의 사죄를 내 속에 심어  버립니다. 사죄는 내 속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칭의는 내 속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 결합은 내 속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친밀된 것이 점점 자라서 견고해지고 이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된 것이 자라서 나중에는 옆에 사람에게까지 그늘이 쬐이다가 그 다음에는  천 명 만 명에게 그늘이 쬐이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 은택의, 혜택의 그늘이 다  비추어서 쬐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속이 우리 속에 심어져 가지고서  우리 속에서 자랍니다. 사죄가 자라고 칭의가 자라고 화친이 자라고 생명이 내  속에 자라고 전지 전능이 내 속에 자라고 있습니다. 내 속에만 자랄 뿐 아니라  이것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어서 그 속에서도 이제 자라서 '생명 강가에 생명 나무가 심기워  있는데 그 생명 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는데 그 잎사귀가 청청하고 청청하더라',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내 속에도 심우고 다른 사람  속에도 심을 수 있는 그것이 오직 산 믿음이라는 요 방면 하나로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산 믿음의 가치를 우리가 깨달아서 우리의 욕심이  전부 산 믿음에 다 기울어져야 됩니다. 우리 욕심이 뭐 돈에고 뭐에 고 아무 데고  우리 욕심 전부는 산 믿음에 막 기울어져야 됩니다. 우리가 이것도 가치 있고  금도 가치 있고 보석도 가치 있고 지위도 가치 있고 권세도 가치 있고 뭐 직장도  가치 있고 사업도 가치 있다 하지마는 이제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보는 가치는  그것도 저것도 가치는 아니다. 그거 다 없어질 것이다. 가치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만 가치를 위해서 그것들이 있는 것이지 가치를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이 가치는 산 믿음에만 가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주위 환경 그게 필요 있지 산 믿음에만 가치 있다 해서 가치도  산 믿음에, 내 소욕 전부도 산 믿음에 내 소원도 산 믿음에, 내 전심 전력도 산  믿음에 요게 전부이 결합돼야 됩니다. 요게 전부이 집중 돼야 됩니다. 이러면 내  심신의 모든 전심 전력의 모든 것은 산 믿음만이 소원하고 그 산 믿음만  이룰라고 욕심을 내고 탐을 내고 있으니까 산 믿음에 반대되는 것이 악령, 악성,  악습인데 산 믿음에 요렇게 내가 자꾸 소원이 돼지고 하면은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은 저절로 말라서 빠짝 말라 죽어 버립니다. 빠짝 말라 죽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산 믿음이 이렇게 보배롭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터인데  산 믿음은 그 능력이 크다. 그러면 산 믿음의 그 지극히 보배로움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극히 보배로움을 어떻게 알 건가? 그 거는 산 믿음  노릇을 해 봐야 압니다. 산 믿음 노릇을 해 봐야 아요. 산 믿음 노릇을 해 보면  산 믿음의 결과가 '아이쿠 산 믿음을 하고 보니까 그 다음에 결과가 이렇츰 좋은  결과가 있구나' 산 믿음을 해 보고 나서 그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는 사람의  욕심이 거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그물을 바다 깊은 데 던지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 하나님이신 주님의 명령에게 직접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고거는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 하나님의 뜻에 직접 순종했다 말이오. 순종한 산 믿음  아닙니까? 믿음인데, 산 믿음을 한 번 써먹고 보니까 산 믿음의 결과에서 자기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많은 고기가 잡히니까 그때사 '아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이렇게 지극히 큰 전지 전능이 역사하는 것이라 못 할 것이 없는데 나는  오늘까지 주님의 말씀을 다 등한히 여겼고 배반하고 고기 잡으러 왔었다.' 하는  그것을 깊이 탄식하면서 '얼마나 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고대로 이루어지는데  내가 이 말씀 가지고 심판 받을 때는 내가 어찌 되느냐?' 기절했던 것입니다.

기절하니까 주님께서 이제 위로를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이제부터는  고 마음 가지고 있으면은 모든 천하의 온갖 수입보다도 사람 수입이 제일 크다는  것을 네가 이제 알게 됐고 사람 수입을 네가 하려고 이제 남은 때는 이 사람  수입하는 사람이 되리라.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 수입을 네 수입으로 삼으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베드로가 하나님의 확고한 명령에 순종하니까 순종한 그  결과가 큰 걸 보고서 놀래서 변화가 됐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이렇게 보배라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 보면 알 것이라 말이오. 복종해 보면 알 것인데 하나님의 명령 그  복종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복종을 하지 안하고 전부이 성경 말씀 성구 복종만  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을 하지를 안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만 하면 산 믿음이 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큰  역사가 드러나는 것인데,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는 것인데, 틀림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면 복종하면 되는데 틀림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알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중에 모를 것도 많지마는 틀림없이 요거야말로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삼분지 이 이상이 될것이고 그저 하나님 명령인가 명령 아닌가 그거 우리가  잘 모르는 구별 못 할 그런 것이 한 삼분의 일이 못 되게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확고히 의심 없이 알 수 있는 고것을, 알 수 있는  고것을, 알 수 있는 고것을, 알 수 있는 고것을 내가 순종해서 이 행해야 할 고  시기와 장소는 언제인고 하면은 고 현실입니다. 현실 고때입니다. 현실 고때인데  사람이 그것을 알지마는 현실에는 그거 할라 하니까 좀 어려움이 있고 약간 좀  손실이 있고 좀 안 되겠다 이래 싶으니까 사람들이 고만 고 현실에는 삐끌트려  버리고 고 현실 지나고 나서 전후로, 미래로 과거로 사람들이 지키지 현실에는  지키지 않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지켜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지 못했고. 또 지킨 사람들은  지킨 사람들은 지키고 난 다음에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가 자기에게 분명히  나타나기는 나타났건마는 나타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된 것을 제가 잘나  됐다고 영광을 제가 따먹어 버립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니까  제가 잘해 된 것으로서 전부이 그 영광을 제게 돌리고 능력을 제 능력이라.

요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니까 지극히 큰 능력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는 나타났으나 그것을 제가 한 것으로 그렇게 봤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한 이 복종은 참 다이나마이트다, 이 명령 복종은 큰 폭발  능력이다. 폭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폭발 능력인 것을 모르고 제가 제 능력으로  됐다고 이렇게 해 버리고 보니까 그거 제 능력으로, 하나님 영광 가로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그 복종의 능력이 여하하다 하는 것은  제가 경험하지 못하고 맙니다. 인간들이 이래 가지고 여게서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게서 다 망하고 맙니다. 된 것은 그렇게 하고, 또 제가 의심 없이 그  하나님 명령에다가 복종을 한 것은 반드시 나타나는데 나타나는 것은 영광을  제게다가 돌리고 요 보배로운 믿음으로 말미암아 됐다고 생각지 않는 데에서  고게서 삐뚤어져 가지고 헛일되는 것입니다  또, 확실한 명령이 있는데. 확실한 명령이 있는데 고 명령을 지킨 자는 고래  삐뚤어지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확고한 명령을 순종하는 순종을 하고 난  다음에 고 사람이 하나님이 역사해서 됐다는 것으로써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사람은 자꾸 올라갑니다. 영광을 돌려서 아, 그 산 믿음 지키니까 이렇게 된다. 산  믿음 지키니까 이렇게 된다. 자꾸 그 사람은 산 믿음을 자꾸 지켜 자꾸  올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올라가는 자는 자꾸 올라가고 떨어지는  자는 자꾸 떨어져 마지막에 그 껍데기만 가지고 살고 다 헛일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이 확고하기는 확고하지마는 고 명령이 고 현실에  거게가 생명이 있는데 현실에 거게서는 하지 안하고 고 현실을 지나 보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뭘 합니다. 그 다음에 고걸 지킵니다. 고 다음에 고걸 지키요.

 예를 들면은 그 다니엘이 그때 '딴것에게는 기도하지 말아라. 다리오 왕 내게만  기도해라. 딴 데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요렇게 할 때에 그때에 딴 데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할 그때에 '아, 나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그걸 안할 수 없습니다 딴 데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양보하지 못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양보하지 못한다고 하는 고것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게 복종입니까 복종  아닙니까? 하나님 명령에 복종이오. 고 장소가. 또 장소가 다 들어맞지  안했습니까 장소가 들어맞았습니까? 장소가 맞았습니다. 또 시기는 맞았습니까 안  맞았습니까? 시기도 맞았습니다. 시기도 장소도 환경도 딱 들어 맞았습니다. 딱  들어 맞았으니까 맞은 고대로 이제 고 산 믿음을 지켰습니다. 산 믿음을 지켜서  그 사자굴 속에 들어갔지마는, 들어갔지마는 다니엘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절대로 산 믿음은 피조물이 해하지 못한다. 순교당할 시기가  됐으면은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명령 복종을 위해서 그 생명이 끊어졌으니까 죽을  생명 폐물될 생명이 이제 폐물 이용으로서 보배로운 그 죽음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래만 그렇지 피조물이 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고하게 경험하고 체험해서  얼마든지 해 봤기 때문에 그런데 대해서 주저하지를 안한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주저하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경에 있는  선진들은 다 이것으로써 증거를 받았습니다. 선진들은 그 산 믿음을 지킬 때는  피조물이 해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확고히 알았습니다. 산 믿음을 지킬 때는  피조물은 해하지 못하고, 산 믿음을 지킬 때는 하나님이 영광의 뜻만 달성한다  요것을 확고하게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저하지를 안했습니다. 아. 그런 사람  어떻게 그런데 순종했을까? 순종한 그것은 과거의 경험에서 그들에게는 받은  증거로써 그와같이 된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뽑고 옮기고 심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전부이 산 믿음으로만 뽑는 일 되고 또 옮기는 일 되고  심는 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을 단행을 해서 시작할 수  있는 이런 경험과 체험이 있어야 되겠고 그 결과를 많이 봤어야 이제 얼토당토  않은 그런 일이지만 하나님 명령이면 된다, 하고서 단행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단행은 수많은 그 결과를 보고 경험과 체험이 있는 데서 그와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시작은 됐지마는, 시작은 됐지마는 그 확실의  결실을 맺어야 되는 것이지 확실의 결실이 맺어지는 것은 전지 전능이 맺는  것이지 않게 맺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시작을 해서 명령을  순종했지마는 그분의 명령에 순좋하는 것이 의심이나 에누리하지 안하고 확고한  신앙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그 전지 전능이 끊쳐지지 안하고 전지 전능이 거기서  약화되지 안 하고 전지 전능이 그대로 가 가지고서 백 프로 가 가지고  역사하니까 그것이 다 결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믿음은 능치 못할 게 없는데 이 믿음을 다 버리고 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 성공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은 썩을 것을 구하지 안하고 썩지 않을 것을 구합니다. 하늘의 것을  얻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아,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왜 부자가 안 되는가?  부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부자를 원하지 안 해요. 썩지 안할 거와 영원한 것을 다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기에 그러 것을 날마다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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