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관


선지자선교회 1982년 9월 25일 토새

 

본문 : 딤전 6:3-10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세상은 모든 것을 말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20세기는 과학 만능이라 하여  신발명된 그 과학들이 나라를 주장하고 세계를 주장하고 있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은 어느 시대나 말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제일 권위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지식에 따라서 그 희로애락과 모든 소원과  경영이 생겨지고, 모든 그 지식에 따라 그 사람의 영원한 성패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이라는 것, 지식은 말로 나타나는데 그 다음에는 모든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이 다른 교훈은 그 밑에 말해 놓은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바른 말입니다. 그 외에는  바른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과학도 물리에는 맞지마는 인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맞은 그 물리는 다 심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바른 교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신구약 성경에 계시해 놓은 이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경건에 관한 교훈은 어떤 말씀인가? 경건에 관한 교훈이 곧 바른  말이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경건은 구주의 구속받은 것이기  때문에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하여, 그에게 피동으로 그의 뜻만을 이루는 그것이  경건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하는 말은, 이 신구약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고 하니 경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건할 이유, 또 경건에 대한  방편, 경건에 대한 성과외 가치,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어떻게 보배롭고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가르쳐 그분에게로  모두가 다 귀속되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하려는  것이 신 구약 성경이요 또 은밀 영감입니다.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왜? 자존하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이 한 가지를 목적으로 하시고 이를 위해서  당신 의지 안에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그 의지 안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이루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당신이 이렇게  원하신 이 원하심의 하나 이것을 인하여서 모든 것이 생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생겨지지 아니한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문서로  가르쳐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이요, 또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감동시켜 알게 하고 이루게 하시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바른 말' 이 말씀은 삐뚤어진 말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른 말 그 밖의  것은 전부 다른 말, 바른 말 외에 다른 말은 전부 속이고 속고 하는  반거짓말입니다. 사람을 어지럽게 복잡하게 해서 솔직한 곧은 좁은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저렇게 넓혀 갈랫길을 내는, 복잡하게 해서 사람의 지식이  복잡하고 비판과 평가와 욕망이 심히 복잡하게 만들어, 참은 고 속에 하나밖에  없는데 수많은 가짜를 만든 것, 어떤 것은 참 하나는 제해 저리고 거짓부리로  복잡하게 만든 것.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면 모든 지식이 다 불타집니다.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이 바른 교훈 외의 것은 다 불탑니다. 바른 교훈 이 교훈에 착념해서 이 교훈대로  한 것만 영원히 남아 있지 그 외의 것은 세계가 노벨상을 줘도 그까짓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온세계가 똘똘 뭉쳐서 이것이 제일이라 해도 그것이  절대자이신 이분에게는 비웃게 됩니다. 가련하고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물론 세상에 수많은 지식들이 있으니까  그런 지식들을 알아야 세상을 알고 죄를 알고 마귀를 알고 미혹을 알고 멸망을  알고 허사를 알지 그것을 모르면 모릅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다른 교훈이 있는  이런 교훈을 자기가 배울 때에 '이것 배우면 내가 인간이 가치 있고 인간이 권위  있고 인간 성공하겠다' 하는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한 사람 된  사람입니다.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언제든지 그 동기와 목적이 바른 교훈 바른 말 외에  삐뚤어진 말들이 세상에 가득차 있으니 그 삐뚤어진 말들이 무엇인가 그것을  아는 것은 내가 그 삐뚤어진 데 빠지지 아니하려는 것으로써 알아야 되겠고, 내가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이것은 이렇게 이렇게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위험성과 멸망 속에 들어 있다 하는 이것을 말해 주지 않으면 저는 거짓  증거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래서 제가 양성원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언제든지 교훈할 때에 '이 바른 말  외에 다른 것은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 이것은 이런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절대성  있는 것이 아니다.' 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인간을 범죄케 해서 죽인  악령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지식이요 그 지식이 아닌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이  바른 말이 분석 돼 나온 이 지식이니 지식은 둘뿐입니다. 두 가지 종류뿐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이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이 지식은 이런 위험성이 있으니 이 지식 속에는 이런 위험의  탈선성이 있고 이런 미혹성이 있다 그것을 언제든지 자기가 말해 주고, 그것을  모르면 말했다가는 뒤에 심판 받습니다.

 악령이,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인간의 자율이라는 이것 조짜배기 아무 절대성 없는 이것이 생겨지게 되었는데,  세상에는 이것 저것 마구 섞여서 혼잡되어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지식이 첫째로 바른 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경건에 관한 것을 말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앎으로써 점점 경건의 사람이 되어져 가게  하는 교훈인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 말씀 곧 이 경건에 관한  교훈인지, 이것을 어지럽게 해서 밖으로 품어 내서 자꾸 흩어 가지고 흐트러지게  만드는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시켜 똘똘 뭉쳐 경건에게 전 욕망과 주력이  기울어지게 하는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로 이렇게 집중해서 그와 결합되게 하는 것인지, 땅위에 수많은 말이  있는 것은 그것이 다 길입니다. 인생 생활의 길이오.

 그런데 수많은 길이 있어 수많은 역대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이 옳다고 떠들고  여기가 좋다고 떠들면서 다 달음질 쳤으나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 주님의  피와 살 그 외에는 바른 길 참 길이 없습니다.

 생명의 양식이라 말은 생명이 예수님의 공로로만 힘을 얻고 자란다 말입니다.

생명이 자란다 말은 피조물인 우리와 하나님과의 결합 이것이 생명인데, 결합된  지식이면 산 지식이요, 결합된 능력이면 산 능력이요, 결합된 행동이면 산  행동인데, 생명의 양식이라 말은 자존자이신 절대자와 피조물인 우리와의 그  결합이 힘 있어지고 그 결합이 더 강해지고 커지는 이것은 피와 살 외에는 없다  그 말이오. 예수님의 구속 외에는 없다 그 말이오.

 참된 양식이라 말은 수많은 갈래길이 있으니까, 밀림 속에 들어가서 길 잃어  놓으면 여기도 저기 같고 거기도 거기 같고 제가 평생 해도 맹수 밥이 되고  맙니다. 세상은 눈을 감고 명상하면 밀림보다도 더 사납고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더 무서운 맹수들이 가득찬 세상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어떤, 이자가  무신론을 말하니 무신론 이것을 한번 연구해서 타도를 해야 되겠다, 어떤 철학을,  어떤 사상을, 어떤 학문을, 어떤 과학을 연구해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

그것들도 세상이기 때문에 저거 일 하는 것은 있지마는 그런데 헤매다 보면 그  길도 평생 가도 끝을 못 보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 밤이나 낮이나  이래도 예수 그리스도! 자, 이것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한 그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되고 창조되고  섭리하신다. 거기 맞추어 보자. 거기 어떠냐? 그 목적이 어떠냐? 그 목적과  관련된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냐 뭣이냐?  이렇게 피와 살을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그 일이 거기서  나오고 나오고 계속해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로 완성을 했습니다. 완성했기 때문에  그 완성된 그 절정을 가리켜서 피와 살로 말한 것이오.

 이랬는데 엉뚱이같이 '예수님의 피를 어떻게 우리에게 먹여 주겠느냐' 이와 같이  말하는 것 모양으로 오늘도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썩은 것 그것 더 유익하도록, 그것 더 잘되게, 그 썩은 것, 산 것이 썩은 것 그것  위해서 있는 줄로, 썩은 것과 산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죽은 것과 산 것을  구별하지 못해 산 것이 죽은 것을 위해서 희생될 필요가 없는 것이라. 산 것이  죽은 것을 살리기 위해서 하지 죽은 것을 더 커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 그게  됩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 길 저 길 찾지 말고, 예수님의 이 대속과 이제 구속으로  나타난 이 줄기를 잡고 자꾸 들어가라. 왜 만물이 있나 어떻게 섭리하나, 이  결과가 어찌 되나, 예수님이 누구냐, 어떻게 대속했나 그분이 어떤 자이지? 모든  존재와 그분과의 관계는 어떠하지? 이렇게 복잡하게 이루어 나가는 수많은 이  예정과 그분과는 어찌 되지? 우리의 구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지? 그리만 파고  들어가라.

 그리만 파고 들어가라! 그 길을 파고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그로 인해서  결합되는 것은 절대자와 결합되는 것이다! 거기서 얻은 지식은 산 지식이다!  거기서 얻은 능력은 산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라! 예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영원전 하나님이 목적  정하시기 전 자존하신 직책의 이름으로 나타낸 그리스도 그분 그분에게로  들어가라, 그분에게로 연결해라. 이길이 바른 길이요 곧은 길이다.

 이 길을 평생 찾아도 다 못 찾고, 찾아서 또 걷고 또 걷고 걸어가고 걸어가도  끝이 없는, 절대자며 무한자를 향하여, 내가 그를 향하여 달려가고 배워 가고  따라가고 얻어가고 충만해져 가는 것이니 끝이 없는 것인데, 네가 참된 양식  이것을 버리고 다른 교훈, 암만 해 봤자 사망에 속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만  만들지, 사람을 허송 세월만 만들지 가치 없는 여기에 네가 속해서 움직이면 바른  길을 잊어 버리고 곧은 길을 잊어 버려 놨으니 복잡한 밀림에서 네가 맹수의  밥이 안 될 수가 없다.

 거기는 석가모니가 말한 그 길도 인생이 수많은 사람이 따라가도 끝을 못 보고  그 무저갱 속으로 들어가다가 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다 들어 보고 거기서 돌아  서겠다.' 안 돼요. 혹 돌아서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이 고렇게 돌아서게 해서  불교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신부가 회개하고 돌아오고  하는 이런 것이 하나님이 그 길을 얼마 보여 주고 '여기 봐라 멸망 가운데 있다가  돌아온 사람이 거기 가 보니까 이래 허무하더라. 안 됐더라.' 말하는 것처럼 모든  다른 지식은 그런 거라. 아는 데까지 약간 알았으면 이것은 '여기에서 인간이  멸망을 받는 것이다.' 멸망의 것이니까 거기서 멸망을 발견하고 그 멸망을  인간에게 증거를 하고,  내가 며칠 전에, 얼마 전에 어떤 신학교 철학과에 들어갔다 하기 때문에 '왜  들어갔나?' '목회하려고...' '네가 썩었다. 네가 바른 길을 못 택했다. 철학은 알고나  해라.' 인간이 이 철학에서 죽기 때문에 철학을 배울 때는 이것이 먼저 죽이는  구멍이요 죽이는 길인 줄 알고 '아, 죽이는 길이 여기 또 있구나. 이렇게 넓구나.

이렇게 깊구나.'  네가 그 기존 지식을 바로 가지고 그 지식 가지고 '요래서 죽고 요래서 죽고  요래서 죽는구나.' 철학을 공부하면 그 철학은 인간을 죽인다는 그것을 이래  죽이고 저래 죽이고 사람이 이래 죽는다 그것을 네가 증거하면 인간들이 죽음의  길로 가는, 그 철학의 구멍으로 죽어가는 그 길을 가로막은 것은 되어지지마는  그것보다도 생명 길로 끄는 것이 낫지 않느냐? 생명길로 끌지 죽는 길을 못 가게  막아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생명길로 끌지? 그것을 내가 그 사람 어떤 신학생을  꽃마을에서 만나 가지고 한 30분 그에게 얘기를 해 줬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다른 교훈을 할 때는 이 교훈은 이렇기  때문에 해독이 있다, 이 교훈 속에는 이 해독이 있다, 이 교훈 속에는 이  위험성이 있다, 이 교훈 속에는 이런 미혹성이 있다 이 교훈 속에서 이 교훈으로  인해서 누구 누구가 망했고 속혔고 허사를 얼마 했다 그것을 말하지, 그 다른  교훈 멸망 교훈 이것이, 교훈은 다 한 교훈이라 이것도 한 교훈이니까 인간의  대가리에 넣어 주면 되겠다 해 가지고, 자 미혹하는 사망의 것을 넣어 주고  이것이 사망이라고, 이것은 네가 그런 것인 줄 알고 이 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지 이것이 너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너에게 생명의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놓지 못하면 그는 모르고 죽습니다. 이것이 쑥물이오.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는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해서, 소개해서 무엇하려고? 경건 만들려고, 경건. 경건 만들려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한 행실은 경건을 만드는 모든 방편이오. 경건은  이것은 영생하는 하늘나라의 완전한 것이라. 하늘 나라는 당신으로 지음 받은  그것만이 아니고 지음 받은 것이 지음 받기 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목적한  바 되어 거기서부터 발원되어 가지고 이렇게 지음 받기 전 목적으로 존재할 때에  그의 것으로, 십자가의 대속으로 그의 것으로, 그가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해서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의 것으로, 그의 것이 아닌 것은 털끝만한 것도  없어.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그의 것이고 그로 위해서, 영원토록 그로 피동되어서  그와 일치되는 이것을 이루게 하는 이 외에는 이치가 없어 이 외에는 건설도  존재도 없소. 그 동안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이것을 위해서, 우리 집 지으면서  저런 것이 있지만 짓고 나면 뜯어내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 버리고 이것만 남습니다. 딴것은 하나도 없이 다 태워 버리고  이것만 남아.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경건만 남는다 그 말이오, 경건 영생하는 그 모든  영생하는 영생은 다 경건이라. 이 사람도 경건 저 사람도 경건, 무생물의 만물의  새롭게 된 만물도 다 경건, 전부가 경건이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하니하면" 착념이라 말은 거기만 생각을 붙이라  말입니다. 거기만 생각을 붙여 놓으라 말이오. 다른 데 생각 붙이지 말고 거기만  생각을 붙여. 거기 생각을 붙이면 정확한 근원도 알고, 정확한 결말도 알고,  정확한 영원도 알고, 정확한 방편도 알고 해서 죽는 것 사는 것 다 알아. 정확히  알아. 이런데 이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어찌 되느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 교만하다 말은  여기 착념 안 하면 하나님도 모르고 저도 모르고 인간도 모르고 만물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예를 들면 깜깜한 소경이 지금 날뛰는 것 한가지요. 빠져 죽을  데인지, 거기는 지금 제 천 배도 넘은 세력이 있는데 거기다 주먹을 내두르는,  주먹을 내두르는, 이것 마치 대가리 끊긴, 목이 잘려진 생명 있는 것이 벌로 뛰는  것이 지척을 분별 못하고 목적도 아무것도 없이 마구 훌훌 뛰는 것처럼 이것  한가지라.

 '교만하여' 그 말은, 교만하다 그 말은 모르는 것이 뛰 논다 그말입니다.

겸손이라 하는 것은 바로 알고, 바로 알고 거기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겸손이오. 겸손은 인간끼리 지절거리는 그까짓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첫째 바로  아는 것이 자존자 그 분에게부터 바로 알고 거기서 내려와야 돼. 그게 겸손이라  교만은 아무것도 몰라 모르고 벌로 날뛰고, 산 닭을 목을 끊어 놓으면 이것이  지척을 모르고, 그거는 저의 힘은 있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없으니까 있는 힘 가지고 벌로 뛰지 교만하다 말은 이렇다 그 말이오.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이제 여기 착념치 아니하고 인간들이 아는 그  지식은 다 거짓부리라 그 말이오. 이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 없습니다.

있으면 거기 죽는 길로 아요. '아이구' 그것 모르면 안 되니까. 사는 길 아는  동시에 죽는 길 알아야 돼. 이리 가면 죽는다 이리 가면 빠진다 이리 가면 지뢰가  있다, 여기 가면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 맹수가 기다리고 있다, 이리는 가지 마라.

 다른 교훈을 하려면 명패를 써붙이라 그 말이오. 이리 가면 죽는다 이리 가면  어찌 되느냐? 그래서 내가 양성원에 교훈 할 때에 언제든지 거기서 사망의  해독이 있는 것을 말을 하고 '여기서 주의하라. 이것은 미혹의 길이요 위험성이  있고 요거는 참된 길이다.' 이래서, 사는 길과 죽은 길을, 죽는 길이라는 표시를  똑똑히 하고 여기서 사는 길은 이길이라는 것을 해서 그렇게 교훈해라. 그렇게  교훈하지 않으면 뒤에 가서 심판받는다. 우리가 그까짓 거 세계에 유명한 자가  되면 무엇합니까, 좀 있으면 심판 앞에 설 터인데?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까 뭣 합니까? 변론합니다.

변론이라 말은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어리석은 말이오. 시험 치러 간 학생이  시험에 대해서 정답이 되어 가지고 있는데, 정답이 되어 가지고 있는데 시험 치고  나와 가지고 이것의 답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니까, 이거 뭐 내 답이 옳으니 네  답이 옳으니 시비 할 것이 어디 있소? 좀 있으면 답안에 나오는데 시비할 게  뭐이야? 말하면 '아이쿠, 이게 틀렸나? 다시 한번 상고해 보자' 절대는 아니지마는  그것도 정확한 답안이 있으니까 정확한 답안에 맞았나 틀렸나 거기다 지금  관심을 가지고 조사할 일이지 네 답이 맞았다 내 답이 맞았다 그거 시비하면 뭣  할 거라? 제답이 들렸다고 모든 학생이 다 말해도 정답이 되었으면 합격이지.

거기에서 시비할 것이 뭐 있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절대자의 절대자의 인생길이 있는데 이 길에 바로 들어 섰나 바로 가나 이것이  문제이지 이 길이 옳다 저 길이 옳다 시비하는 것은 절대자를 무시하는 것이오.

절대자를 모르는 것이오. 거기 안 맞으면 탈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나 안 맞나  그게 문제이지.

 이런데 그 무서운 절대적인 이 변할 수 없고 요동할 수 없는 이 참이 있는데  거기에 맞았나 안 맞았나 이거는 생각지 아니하고 저거끼리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이게 옳다 저기에 옳다 하는 그것이 다 아무 것도 몰라서 하는 것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아, 그분의 말한 거기에 맞으면, 틀렸다는 사람이 많으면 영광이 더  커지지. 언젠가 나타나기는 나타날 터이니까. 영광이 더 커지지. 틀린 것이 역설을  해 가지고 인정을 많이 받았으면 많은 사람을 미혹했기 때문에 심판이 더 커지지.

논쟁이 날 것이 있어야지? 변론이 있을 것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벌써 '바른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바른 교훈을 잊어버리면 말이오.

모든 문제 나거든 여기 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과 경건으로 들어가라.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과 이 경건을 해야 된다는 여기 어찌  되었느냐, 거기 삐뚤어지면 다시 고칠 일이지, 저거끼리 천하 인간을 다 정복을  시켰으면 소용이 있습니까, 절대자의 그이의 정확한 진실이 있는데?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이 나와, 변론. 변론할 것이 없어. 변론을 뉘가 하면  어서 그리 들어 가. 어서 그리 들어가서 거기 틀렸나 맞았나 그걸 대조해서  거기서 지금 고치고 바로 하고 다 고쳐 놨으면 나는 몰랐는데 그 사람이  말함으로 내가 고쳐지게 되었으면 말 한 그 사람은 내 선지자로 모셔야 됩니다.

선지자로 모셔야 돼. 위험성을, 그 사람의 미친 말로 말미암아 내 위험성이  방비가 되었으면 그는 내게 대하여 일종의 선지자로 모셔야 돼. 여기만 착념해서  날마다 지금 걸어갈 일이지 이러니 저러니 하는 변론이 어디 있으며,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제 언쟁 말로 다투는 말다툼이 생겨져. 외나 절대자의  법이 있는데 거기일랑 맞추지 아니하고 저거끼리 틀렸다 아니다. 시비한다  말이오.

 언쟁이 있다가 나중에는, 결국은 모든 게 언쟁입니다. 절대자가 있는데 서로  유익되겠다고 싸움을 붙어서 피를 흘리기까지 시기하고 다투고 욕심을 냅니다.

절대자가 있는데, 모든 인류가 이렇게 절대자의 절대적인 예정과 주권적인 이  섭리 역사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제 힘대로 해 보겠다고 이래  싸우다가 박살된 자 저래 싸우다가 박살된 자, 이래 박살된 자 이렇게 경영하다가  박살된 자 그래 가지고 모두 인생이 다 박살된 것이 그것 때문에 다 박살되었어.

그러다가 죽었어. 거기서 다 박살 되었어.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그때부터 이러면 이제 미움이 생겨집니다. 미움이  생겨지는 것은 뭐이냐? 절대자 중심이라면 너도 그분 중심 나도 그분 중심  이러니까 회개나 할 것이고 달리기나 할 터인데 저거끼리 미움 생기는 그것은  벌써 자기 중심이 생겨진 그거라. 이것이 원죄라. 자기에게 속하면 좋고, 자기와  하나 되면 좋고, 자기 도우면 좋고 자기의 의견에 어긋나면 그만 대적이라.

 투기가 미워하는, 투기는 미워하는 것인데 미움이 생기고 나중에는 시비 분쟁이  생기고 이러니까 틈과 기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삣고 깎으려고 하요. 틈과  기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삣고 깎으려고 해.-안 들으면 죽어.-다른 사람을 헐고  저는 북돋우고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이제는 마지막에는 자기 중심뿐이라. 악한 생각은  자기 중심의 생각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이제는 마음이 완전히  썩어져 버려. 마음이 썩어져 버려.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이제 참된 이치를 잃어버렸다 그 말이오.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나느니라' 예수  믿는 것도, 예수 믿는 것도 세상 유익 위해서 예수 믿어. 예수 믿는 것도 세상  유익 위해서 예수 믿어. 예수 믿는 것, 예수 믿어 가지고,  그러기에 내가 그 전에 듣기를 삼팔선 이북에서 교훈하기를 '예수 믿은 지 십  년에 세상에서 부자 안 되면 예수 잘못 믿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유물주의에게 삼켜져서 다 안 죽은 것은 월남했고 그리 아니면 죽어서 다  유물주의에게 삼켜지고 만 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 경건 생활한다고 모양만 경건, 주의  구속받았으니 주의 것으로, 주에게 피동되어 그의 뜻을 이루는 이 모처럼 신앙  생활 하면서 이것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목적이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 이것 가지고 목적은 세상 유익 위해서 해. 세상 소망 위해서.

그거는 벌써 썩은 지, 썩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썩어진 지 오래 후에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세상과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썩은 지 오래 되었어.

 이 절대자의 예정의 이 결박이 있는데 이 결박을 세상 모든 관원들이 군왕들이  이 결박을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라 했어 그분의  절대적인 결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이 예정한 대로 이 길 저 길 오만 길을  당하는데, 거기서 이래도 경건 저래도 경건, 엎어져도 경건 자빠져도 경건, 아파도  경건 병들어도 경건 아무래도 경건 그것밖에 없어. 다른 것 암만 해 봤자  소용없어.

 자, 세계에서 요새는, 이것도 미혹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요새는 스포츠라  하나 뭐라 하노? 경쟁하는 것 요것 뭐라 하노? 스포츠? 나는 그거는 말도 듣기  싫어 해. 스포츠? 이래 가지고 막 이래 하니까 세상에 이것이, 마귀란 놈이 이게  좋다 이게 좋다 이러니까 사람이 그리 쭉 쏠리고, 이게 좋다 이게 좋다 사람이  그리 쭉 쏠리고 이게 야바우 놀음하는 것이 저거끼리 짜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사람 마음을 끌고 가는 그것입니다. 그까짓 것 암만 연습해서 해 봤자  무가치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을 미혹시키려고 하는 것과 복잡하게 하려고 하는 것과 또  하나님은 이런 위험한 길이 있으니까 이 길도 가지 마라 저 길도 가지 마라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마귀란 놈을 거머쥐고 이용해 가지고 사망의 길이라 하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이러는데 그것을 마귀란 놈은 살짝 돌려 가지고 사망의 길  그것을 사용해 가지고 살 줄로 알고 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대가리에서 나온  모든 지식입니다.

 절대자는 거기서 그리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했는데  에덴동산에서부터 배암이란 놈은 반거짓말 고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 요것이 저  잘되기를 원하는 딱 만들어 놓고 '네가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될까 해서'  그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말은 바른 말이라. 말은 바른 말이지마는 실은 고 중심이  하나님 안 생각하고 저를 생각하니까 자기 중심으로 선악 중심이 되게 하려는 고  목적으로 고 말했어. 마귀는 이렇게 간교하고 굉장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으면 벌써 많이 타락했소. 그러고 나면 부자  되려고 해. 그러고 나면 돈 사랑해. 돈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했어. 일만 악, 일만 악이라 말은 일만 자기 중심이라 말이오. 일만 자기 중심을  무슨 힘으로 하려고 하느냐? 황금 만능으로 하려 해. 우리가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교훈이 우리 속에 뚫고 들어와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참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말씀. 뭣 하려고? 경건 이루도록 하려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바라보고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이 무슨 소용 있소? 경건의 조성의 것이 되기  때문에 가치 있지.

 이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야 우리 속에 이 모든 우리를 죽이는 해독이 녹아져  나갑니다. 이 교훈이 들어가야 녹아져 나갑니다. 이 교훈이 들어가야 내 원수  그놈도 이 교훈이 자꾸, 이 교훈에 착념하면 이 교훈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이게  되면 내 원수 그놈은 자꾸 녹아집니다. 그놈이 녹아지면 하늘나라가 욕심이 나고,  하늘나라보다 마지막에는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 자존자 그분에게만  소망이 걸려 딴 데 아무것도 없어져.

 이렇지마는 이 교훈이 그 속에 없게 되면 인간만 보여. 썩을 인간들의 웃고 뛰고  굴리고 뻔들뻔들 해 봐야 곧 송장 될 것. 좋아서 마구 우리 가정은 콩이 볶아지고  깨소금이 볶아진다, 좋아 봤자 좀 있으면 울고 슬퍼서 야단을 지길 것, 네가  좋으면 며칠 후에 울면서 야단을 지기겠느냐!  눈을 넓게 뜨요. 멀리 뜨고. 마음을 좀 키워! '참된 양식 참된 음료로다' 깨닫고  우리가 어리석지를 말아야 합니다.

 이 교훈에 자꾸 착념해요. 자기가 세상에 갈급해서, 세상에 갈급해서 마구  세상이 부럽고 세상이 갈급해서 그게 없어 죽을 지경인 이 번민, 고통, 고민 불안,  모든 공허, 텅 빈 공허, 모든 쓸쓸, 모든 불쾌 이 모든 것이 쏵 녹아지고 영원한  참된 것으로 기쁨이 충만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는 것도 원하고 원하는 이  영원한 참된 인생의 기쁨이 나오지 이것 외에 딴것으로 그놈을 볼수록 제가 '아,  돈 좀 벌어 보자. 권세 가져 보자 좋은 데 결혼 해 보자.' 암만 해 봤자 불 난 데  석유 붓는 것 한 가지입니다. 불이 났는데 석유를 부으면 텀벅 꺼지지만 좀  있으면 배나 일어납니다.

 이러기에 세상 이것을 보고 이래 가지고 기뻤던 자가 기쁜 것 몇 배나, '네가  고난과 애통으로 갑절이나 갚아 주라' 세상에서 부부로 기뻤으면 기뻐한 것만치  마지막에는 배의 슬픔이 나옵니다. 돈이나 권세로 제가 행복을 누렸으면 행복을  누린 것만치 배나, 암만 적어도 배는 됩니다. 배나 그만큼 불행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먹어도, 마셔도,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가정도 부부도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했다면 하나도 썩어지지 아니하고 멸해지지 아니하지 사는  길이 있는데 왜 사는 길을 버리고 죽는 길을 택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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