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교회


선지자선교회 1986년 5월 6일 새벽집회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지난밤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일반인과 다른 데 대해서 일부분을 증거했습니다.

일반인은 일반 은총 곧 자연 은총 이것으로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속을 받은 특수인들입니다. 그런고로 특수 은혜 곧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한 은혜를 우리가 받지 아니하면 못 사는 것입니다. 살아도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정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공중의 권세 잡았던 악령의 감화를 받아서 사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새사람 생활은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는 살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옛사람과 새사람을 잘 구별해 가지고 옛사람을 죽이기를 힘써야 하고 또 새사람으로 살아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인데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된 존재요 육은 심신으로 된 존재입니다. 영의 구원은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없이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하나님이 입혀 주셔서 영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중생관도 세상에는 너무도 복잡하게 돼 가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중생관을 우리가 성경대로 바로 알아야 되지 중생관이 삐뚤어지면 교리 중에 중요한 교리가 삐뚤어진 것이 되기 때문에 거게서 돋아오르는 그 모든 미혹의 이단들을 감당 못 하게 됩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의인된 자들을 성령님의 은혜와 진리로 중생을 시킵니다. 이 중생되는 것도 본인은 모릅니다. 다만 중생 후에 그 사람이 부르심을 받아 가지고 중생된 그 새사람의 행위를 시작할 때에 그 행동을 보고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생되는 것은 마치 바람이 불 때에 육안으로 볼 수 없으나 그 동풍인지 남풍인지 그 모든 바람에 부딪혀진 그런 것들을 볼 때에 이것은 무슨 바람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중생된 것은 그러하다고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중생한지 오랜 후에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사람들도 있고 당장에 시작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중생되기 전에 사람들에게 끌려서 신앙 행위가 시작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된 영으로 인 하여 행동하는 행동이 아니면 그 행동은 믿는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의 구원은 이미 하나님과 완전한 연결을 가진 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에게도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전혀 그 영과는 상관없이 악령, 악령은 인간을 타락케 한 그 영을 말합니다. 악령은 하늘나라에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하다가 쫓겨난 것이 악령입니다. 그 악령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악령이 에덴동산에 들어와서 사람을 유혹해 가지고 사람이 악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원죄입니다. 악성이라 말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의 본성이 돼서 변질된 인간성이 된 것입니다. 그 변질된 게 뭐인고 하니 성경에 말하기를 이들이 선악에 정의를 내리기를 삼위일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우리가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야 되겠다. 쫓아내지 안하면 생명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면서 쫓아냈습니다.

우리 중 하나와 같다는, 뱀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될 줄 알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 했다' 하는 그 말은 뱀이 그 바른 말을 했으나 그 말의 동기와 목적이 하와를 꼬와서 저와 같은 멸망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요 그 말을 들을 때에 아직까지 어린 그 하와의 마음으로서는 넓게 깊게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은 좋고 크신 분인데 그와 같이 됐으면 자신은 존영하게 되겠다 해서 그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뱀이 사람의 십리의 어린 것과 좁은 것과 그 모든 비판과 평가력이 심히 편벽돼서 원만하게 전체를 알지 못하는 줄 아는 그 약점을 이용해서 유혹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는 그만 하나님은 떠나고 제가 하나님 대신이 돼 가지고 독립자가 됐습니다.

사람은 순응의 존재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이제는 제맘대로 독립하는 독립자가 됐는데 저 보기에만 제맘대로 하는 독립자이지 실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던 것이 악령 그 뱀에게 피동되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모든 비판이나 평가하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됐다 하는 우리라는 복수는 삼위일체를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자를 중심하고 완전자를 위주해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합니다. 그분과 멀면 틀렸고 그분과 가까우면 됐고 그분 좋아하면 됐고 그분 싫어하면 틀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옳고 바른 것을 이렇게 선악을 이렇게 구별 하는데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자기 중심이 아니면, 모든 사람을 자기 중심으로 해서 자기 중심이 아니면 적입니다. 자기 위주가 아니면 적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그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중 심해서 살고 나를 위주해서 살지 안하면 다 적대시합니다. 이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은 원죄가 사람을 주장하게 돼서 열 사람이면 중심 위주가 열이 됩니다. 천 사람이면 천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의 인간의 본성이 악이 됐습니다. 천 인이나 만 인이나 다 하나님 한 분히 중심, 한 분의 위주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이것들이 다 하나님의 위치에 앉아 가지고 그렇게 됐기 때문에 생명 세계와 자유의 세계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미개한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거처하게 한 처소인데 그것으로서 하나의 형식을 이루어 형식 아래 있는 신령한 참 것을 이루어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에덴동산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의 시공으로서는 우리의 현실을 모형한 것입니다. 우리 현실이 우리의 에덴동산이요 또 하나님과 우리와의 밀접한 교제를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만을 보시고 사랑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딿는 요 신인 관계에 온전함을, 이루어 살고 있는 신인 관계의 위치를 모형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뱀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타락해서 본 위치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타락했다 하는 말은 다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타락이라 말은 본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본 위치에서 떨어진 본 위치는 어덴가? 하나님과 자기와의 밀접한, 그 사이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안하고 틈이 없는 밀접한 친교를 가지고 있는 그 위치에서, 또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고 있는 그 위치에서, 하나님으로만 움직여지는 그 소망하는 그 위치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고 난 그후부터 생명과 자유와 소망은 완전히 박탈당해서 사람이 변질된 사람이 됐습니다. 영은 단번에 죽었지만 심신으로 된 육은 정죄만 받았지 단번에 다 죽지 아니하고 많은 시간을 걸쳐서 죽었습니다. 상고 시대는 구백여 세까지 시간이 걸려서 사람이 죽었지만 차차 변질이 심하고 악령이 주관하는 데에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됐기 때문에 가속도로 그 육이 죽게 돼서 수명이 점점 짧아진 것입니다.

이래서, 영은 단번에 죽었지만 그 심신은 많은 세월을 거쳐서 시들시들 그렇게 죽게됐습니다. 이유는 영은 단일성이요 단일체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도 몸도 이것은 다 종합체요 종합성입니다. 수많은 것들이 주 모여 가지고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수많은 분자로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요 몸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이 단번에 죽지를 아니하고 수많은 현실을 통해서 죽습니다. 한 현실을 지나가면 그만치 죽었고 두 현실 지나가면 그만치 죽어서 점점 죽어갑니다.

마치 나무를 베어 놨는데 그 나무의 성질에 따라서 그 체질에 따라서 베어 놓으면 며칠만에 죽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베어 놓고 난 뒤에도 삼 년까지 삽니다. 그새서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아무리 베어 놔도 어떤 독한 놈의 집에 가도 내가 삼 년이야 살지, 베어서 서까래 밑에 처마 밑에 비 안 맞는데 들여다 놔도 삼 년까지는 그 둥치 큰 오동나무는 거게서 움이 터 나옵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하루 살면 하루 사는 줄 알아도 하루 죽었습니다. 점점 죽어져 가는 것이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리 대속을 받아서 중생을 입고, 구속을 받는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그 현실에서 옛사람대로 죽는 생활도 될 수가 있고 새사람으로서 구속을 받아 가지고 사는 생활이 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중생된 영을 통해서 나타나는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생명을 가지고 역사하는 그 영에게 피동되어서 저의 주격이 되는 영에게 피동되어 영을 따라서 살면 곧 그 생활이 중생된 영을 따라서 산 생활이 성령 따라서 산 생활입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에 영을 따라 살면 하는 그 영은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데 곧 성령 따라 사는 그것이 중생된 영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이라면 생명과 평강이 된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 닥치는 이 현실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났던 것이 이 심신이, 내 심신이 산 거는 아니고 예수님이 내 심신을 대신해서, 모든 죽음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할 만한 그 산 자로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대속 입은 그 자는 산 자입니다. 오늘 이제 이 사데 교회에 대해서 '살았다는 이름' 그 이름 '살았다는 이름' 말입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 보면 '산 자로 여길지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로 여길지니라' 말씀하신 것은 산 자로 네가 알아라 하는 말입니다.

이 산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산 자로 살 수 있으면, 현실을 산 자로 살 수 있으면, 산 자로 사는 것은 하나님으로 산다 말이요 중생된 영으로 산다 말이요 또 분석하면 예수님의 피공로로 산다 말이요 성령과 진리로 산다는 말입니다. 산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 가지고 산다 그런 말도 됩니다. 그러기에 사는 이 생명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많이 말을 해 놨습니다.

현실에서, 이렇게 죽은 내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나는 산자 된 이 대속을 현실에서 산 자로 그 현실을 통과하면 그는 다시 변동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거는 영생이 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이 현실로 더불어 싸워서 시험되는 이 현실을 이겨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산 자가 죽지 아니하고 산 그대로 현실을 승리했기 때문에 고 토막은 영생이 됐습니다. 그러나 고 현실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산 자이나 산 생활을 버리고 죽는 생활을 현실에서 하면 죽습니다.

산 생활을 버리고 죽는 생활을 하면 죽는 자 된다. 그러면 산 생활은 뭐이며 죽는 자 생활은 뭐인가? 산 생활은 내나 세 가지로 사는 것이 산 생활이요 죽는 자 생활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 죽는 자 생활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우리는 유한한 자유성이나 자유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 수도 있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살 수도 있습니다. 횐옷을 입으리라 하는 이 횐옷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으면 휜옷 입고 살았으니까 영생이 돼 버렸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었으면 대속으로 산 자가 죽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이랬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너는 살았으니 피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아라. 이 살이를 할라면 네가 생명 내놓고 결사적으로 죽도록 충성해야 된다. 네게 있는 것은 다해서 해야 되지 누구든지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누가복음 14장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다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 영생이고 또 부인하고 내나 옛사람 그대로 현실을 살았으면 고 현실 산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 이룰라고 하는 것이 영이 살아나거나 영의 구원을 이룰라 하는 것 아니고 우리의 심신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았는데 이것이 다시 안 죽을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 죽는 것은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안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에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됩니다.

우리의 심신이라 하는 이것은 그 심신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데 따라서 죄의 도구도 될 수 있고 의의 도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신의 이 형태의 부활은 꼭 같은 부활을 가졌으니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형태 부활은 꼭 같은 부활을 가졌지만 기능 부활은 천태 만상으로 각각 다릅니다. 이래서 빌립보 3장에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 가지고 부활의 권능에 이르려 한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현실을 통해서 영생이 되느냐 현실을 통해서 다시 죽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의 심신 기능의 행동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중생된 영의 힘은 뭐인가? 영의 힘은 순전히 예수님의 피의 힘입니다.

어제 피 노래를 부를 때에 참 힘이 났는데 피 노래를 부르는 것이 피 노래를 불렀지 피 찬송한 거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고걸 알아야 됩니다. 피 노래를 부르고 했지 피 찬송한 거는 아닙니다. 피 노래를 부르고 나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니까 마구 막 땀이 나기까지 하는데 그것은 피 노래 부르니까 홍이 나서 옛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지 새 사람이 그래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깨야 됩니다. 그라면서 자기의 회개와 가까운지, 잘못된 거 고치는 회개 은혜와 가까운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가까운지 뭐인지 하는 그런 것을 좀 짐작해야 됩니다.

피의 능력과 영감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 이것이 우리 중생된 사람의 힘입니다.

생명이요 힘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힘이라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그뭐 시간 없어 다 못 하지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힘이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죄와 완전히 관계가 끊어졌고 또 하나님에게 피동 돼서 완전히 의를 이루었고 또 마귀 배반하고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의 힘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 찬송할 때에 예수의 피의 능력은 알지도 못하고 신명이 나 지딱지딱 지딱지딱 뚜드려라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이라니까 지금 하는 그것은 다 죽여야 될 정의 힘이지 그것은 영의 힘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을 죽이라 했습니다.

피의 힘은 죄를 완전히 청산한 힘이요 죄와 원수가 된 힘입니다. 죄와 원수되는 힘이오. 이러기 때문에 다시는 죄하고는 원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는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고 죄만 보면 피 흘리기까지 해서 죄 그놈을 죽입니다. 죄가 안 죽으면 내가 죽고 죄가 죽으면 내가 안 죽고 이렇게 유혈적인, 피 흘리기까지 대적해서 싸우라 이랬습니다. 이것이 피의 힘입니다. 피는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죽은 것이 피입니다. 흘린 것이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이 물질적으로는 완전히 죽었고 하나님의 계약적으로는 살았습니다.

죄를 완전히 멸해 버린 이 힘이 피의 힘이요 하나님의 전지자의 입법한 그 율법을 온전히 다 성취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다고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있습니다. 이 힘입니다. 하나님 율법을 완전 이행한 힘입니다. 이것이 피의 능력입니다.

또, 하나님과 하나가 돼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은 내 안에 나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과 하나된 이것은 외부적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영이 있는데 여호와의 영, 성부의 영, 성자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 이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이면서 그 본체는 하나입니다. 한 하나님입니다. 삼위라 말은 격위, 직위, 신인양성일위가 돼 가지고 그 격위와 직위와 다시 말하면 의무와 책임과 본분이 다 하나를 짊어지고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삼위 일체의 해석도 고게 이단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의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의 힘은 뚱땅거리고 신명 풀이하는 그런 데에서 예수님의 피의 힘은 천리 만리 거리가 멉니다. 벌써 떠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주관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그분에게 피동되는 자가 되어지는데 예수님의 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사는 데는 자기가 완전히 부인돼야 되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또,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우리에게 성신의 감동이 왔고 또 이 신구약 말씀의 이 진리가 왔습니다. 이 셋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 셋만을 자기의 힘인 것을 알고 이 힘으로 살라고 해야 되지 어떤 사람들은 광문 다학, 광문이라 말은 넓을 광(廣)자 들을 문(聞)자 많이 듣고 많이 배웠다 그 말이오. 광문 다학한 그것이 저의 힘인 줄 아는데 그것을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고 그보다 더 어렵다 이랬습니다.

그 부자는 거기는 사람들이 물질로 타락됐기 때문에 물질을 보였지만 물질 부자만이 아니고 지식 부자도 권세 부자도 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부요한 자는 그거 가지고 할라 하기 때문에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식 그것이 제힘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힘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알아야 힘이 되지 하나님의 지식을 모른 그 외의 지식은 자기에게 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힘을 까뭉케는 것입니다. 요런 거 다 깨달아야 돼요. 이런 거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오. 그러기에, 인간 지식은 그라면 필요가 없느냐?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주격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에게 인간 지식이 종이 될 때에, 그 위치를 바로 잡아서 종이 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모시고 그에게 복종해야 되고 하나님의 지식을 모시는 데에,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하는 데에 인간 지식이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거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치가 바로 됐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유다서에 말하기를 지위를 떠난 천사를 하나님이 결박해서 영원한 어두움에 가두셨다 하는 것이 그 지위를 위치를 떠나면 무엇이든지 가치에도 위치가 있고 권위에도 위치가 있습니다. 이러기에 이거는 똥도 그 가치의 위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위치, 가치의 위치의 이상을 하면 그것은 다 틀려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권세도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위치는 아무리 훌륭해도 진리 아래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진리 아래에 있습니다. 진리에게 지음 받았습니다. 진리 아래 있습니다.

이래서 진리가 우리의 힘이오. 그러기에 진리는 문서 계시가 진리요 문서 계시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이 문서 계시가 우리의 힘입니라.

문서 계시에 저촉이 안 되도록 해 놓으면 하나님의 심판에 가 파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정죄할 때에 만일 정죄되면 우라는 다시 거게 대해서 불복을 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문서 계시에 이렇게 이렇게 해 놓지 안했습니까? 하나님이 율법에 이리 이래 해 놓지 안했습니까? 이 율법을 근거해서 내가 이렇게 했습니다. 할 때에 하나님의 이 계약과 하나님의 율법이 근거가 되져야 되지 근거가 안 되면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를 둬서 요 보자 이 생활 어찌 되느냐? 성경에 요게 근거가 돼 있다 이럴 때에 그 근거의 토대 위에서 그 말을 하고 그 주장을 하고 그 사상을 가지고 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말씀의 이 진리가 우리의 힘이요 영감이 우리의 힘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피의 이 능력이 우리의 힘이요 이 셋을 자기의 힘으로 삼아서 사는 자는 천인 만인이 대적해도 그를 해하지 못합니다. 해 했으면 존영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이 생활 법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완전히 죽여서 완전 전멸했습니다. 완전 멸망시킨 것이 그것이 완전 승리요 완전 영광이요 완전 목적 달성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요것도 다 구별을 해야 돼요. 그 사람이 아주 설교를 합니다.

할 때에 보자 저 사람의 지능이 무엇이냐? 저 설교의 지혜는 무엇이며 능력은 뭐이냐 할 때에 지혜도 이 셋이요 능력도 이 셋입니다.

이 셋이 아니고 이 셋은 파묻혀서 저 밑에 종이 돼 버리고 다 파묻혀 버리고 이제 이 셋이 아니 이 뱀에게서 나온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된 이것이 그 주격 지능이 돼 가지고 있으면 거기는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단번에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거 눈이 밝아야 되지 잘 배워야 되지 단번에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거는 죽이는 설교다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저것은 죽여야 될 정과 욕심을 강건케 하는 것이다.

땅의 욕심은 우리 욕심 아닙니다. 성령의 욕심이 우리 욕심이지, 육체의 소욕이 죽어야 성령의 소욕이 힘을 쓰지. 육체의 소욕만 자꾸 기른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부흥회하고 나면 공연히 좋아서 야단입니다. 왜 그리 좋으노? 순전히 하늘나라는 아무 행함 없이 공짜배기로 받기 때문에 죽자 살자 하고 지사 충성으로 구원 이룬 사람이나 제맘대로 먹고 마음대로 돌아다닌, 어떤 교파에서는 뭐 술 먹는 것도 또 주일 뭐 안 지키는 것도 상관없는 그런 교파 있습니다. 술장사도 상관없고 사창굴 해도 상관없고 그저 사람만 사랑하고 구제만 하고 구원만 하면 된다 하는 그런 교파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는 교파에 대해서 말 안 할라고, 왜? 이거 자꾸 말해 쌓아니까 도로 자꾸 마찰만 오고 대적만 되지 그릴 필요가 없다 해서 안 할라고 해서 안 합니다.만 여러분들은 알아야 돼. 내가 말 안 해도 '저런 교파가 이 세상에서 뭣 뭣 있노?' 하는 것을 좀 생각해서 알아야 돼요.

이래서, 이 셋이 자기의 힘이 아니고 엉뚱한 힘을 가지고 목회하면 안 됩니다.

엉뚱한 힘을 가지고 증거를 하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증거하고 이 세 가지 힘 입어서 증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몇 가지 종류로 이제 말했지요? 자연인 특수인.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세상에 없던 사람이오. 이거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전에는 없었던 사람인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제 특수인이 됐습니다. 또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은 자연인이라 일반인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은, 일반 은총 이것도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준 것입니다. 일반 은총으로 살 수 있지만 특수인은 특수 은총을 받지 못하면 내나 일반 은총 가지고는 다 사망과 정죄 아래에, 정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그 생활밖에는 못 합니다. 이제 특수 은총을 받아야 은혜를 받아야, 우리가 말하는 은혜를 받는다 그 말은 돈받는다는 많이 아니오. 땅에 있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이 중보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것이 이것이 특수 은혜입니다.

그러면, 이 특수 은혜 이 은혜를 받지 안하면 못 산다 지난밤에 그런 말 했는데 은혜 받지 못하면 못 산다. 은혜를 받아야 살지 은혜를 받지 안하면 우리는 살지 못한다. 안 믿는 사람들도 배부르고 고관 대작으로 잘 사는데 뭘 못 살아? 은혜받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아야 된다. 그러면 은혜를 받으면 사는데 왜 은혜를 받지 안하면 살지를 못합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그 이유를 지난밤에 둘로 말했습니다.

이거 자꾸만 말할 게 아니라 배운 걸 뭐 알아야 되지 모르면 자꾸 그것만 가르쳐 줘야 되지. 특수 은혜를 받지 안하면, 특수 은혜는 뭐 별스러운 은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 말입니다. 인제, 이 특수 은혜라 하면 또 가 가지고 또 조롱하기를 뭐 특수 은혜 특수 은혜 뭐 별스러운 소리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특수 은혜입니다. 일반 은혜는 이 비오고 바람 불고 모두 이거 다 땅에서 채소 나오고 뭐 곡식 나오고 이래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이 사는 그것이 일반 은혜로 사는 것이요 우리는 그 은혜 아닌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특수 은혜요.

그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살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인가? 몇 가지로 엊저녁에 가르쳤는가? 깨달음 다섯 말했어. 깨달음 다섯 말했는데.

그라면, 이 은혜를 받지 안하면 우리가 못 사는 그 이유를 말했는데 몇 가지로 말했소? 은혜받지 안하면 못 사는 그 이유. 둘이야, 둘. 이거 알아야 돼요. 둘.

왜? 우리가 지금 이루는 구원은 다 무한한 무한성 가진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의 것이요 영생의 것입니다. 완전의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우리가 가서 구원 얻는 것은 다 그것이오. 예수님이 대속한 것은 다 이것을 한 것입니다. 완전을 이룬 것이요 영원한 걸 이룬 것이요 불변의 것을 이루었습니다. 이랬는데 이제 이분이 이룬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가는 게 아니오, 땅에 있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오는 새 창조의 것들입니다.

이러기에, 사람이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시리라 하는 그것도, 사람이 죽도록 충성하면, 인간이 다하면, 예수님이 '네 가지를 다하면' 말했는데 그걸 다하면 영생이 됩니다. 그걸 다하면 그게 영생 만드는 것 아니오. 그게 영생 만드는 것 아닌데 그것 다하면 하늘에서 내려 온 하나님의 은혜가 동잇이를 해 가지고 거게서부터 순전히 무한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이차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차 창조. 이차 창조.

일차 창조의 것은 변동될 것이지만 이차 창조의 것은 영원히 변동되지 안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이 조성됩니다. 창조됩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그걸 받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인고 하니 이 은혜를 받아야 이 은혜 가지고 죽은 것을 살립니다.

이 은혜로 죽은 것을 살립니다. 썩은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그것을 다시 살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서 받아 가지고 새로 창조된 그것을 받아야 하고 또 우리가, 죽은 것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대속을 입어서, 이 구속을 받아서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 가지고 대신했기 때문에 이거 살 수 있다 말이오.

대신 죽었기 때문에 이거 살 수 있다 말이오. 예수님의 구속을 하나 하나 받아 가지고 죽은 것이 살아나고, 썩은 것이 깨끗하게 되고, 약한 것이 강하게 되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성화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은 것이 영원한 것으로 살아나는 것도 이것도 구속을 입어야 되고 또 하늘의 것이 새로 내려온 것을 새로 받아 가지고 새로 내가 지음을 받아야 되고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 산다 하는 것을 지난밤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해서 깊이 강직해야 되지 엊저녁에 여러분들 통성 기도하며 막 주여 이래 쌓던 그 힘 가지고는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독침 가지고 이놈의 새끼 죽인다 하면 그만 뻘뻘 떨면서 그만, 그때 뭐 주여 이래하며 떠들며 떠드는 그 흥분과 기분과 그 용기가 그때에 나서서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그때 밤아 있겠소? 똑똑히 정확하게 생각하고 살아요. 그만 그건 딱 오그라지고 죽어 버리고 없어요. 그때, 흥분이나 기분이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흥분, 기분, 주관, 모든 정서, 감정 이런 거는 다 죽어 버리고 그 속에 하나님의 이 진리의 힘 성령의 힘 예수님의 피의 힘이, 한참 생각하니까, 껍데기로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니까,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니까 말씀에서 힘이 나옵니다. 말씀을 생각하니까. 그러면 말씀을 생각하는 이거는,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큰소리, 큰소리만 하면 그만 거석하는데 큰 소리에 놀래나면 안 돼요.

큰소리에 피동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왜정 말년에도 보면 이 몽둥이를 가지고 마구 책상을 뚜드리면서 구두를 신고 꽝 이라면 꺼뜩 이라면서 그만 벌벌벌벌 떱니다. 아예 그걸 펑소에 연습해서 꽝 소리가 나거나 뭐 폭탄이 떨어지거나 소리 그깟 놈의 것한테는 내가 피동되지 안할란다 소리 그놈에게 나는 피동되지 안할란다 이라고 그저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게만 피동되고 영감에 피동되고 예수님의 피의 이 대속에 피동될란다 한 사람은, 이거 고함을 지르고 뚜드리고 이라는데 가만히 이래, 눈 감고든지 눈 뜨고든지.

그 사람들은 눈을 감지 못하게 합니다. 눈감으면 만나기 때문에 눈감으면 뭣 만나요? 눈감으면 진리 만나지 뭐 눈감으면 영감 만나지 눈감으면 예수님의 대속 만나지. 못 감구로 해요 감지를 못하구로 해요.

그러면 눈뜨고도 관계없어. 눈뜨고도 이래 떡 이라면 이래 떡 진리의 말씀을 이래 가지고 생각하니까 진리의 말씀이 주는데, 속으로, 뚜드리니까 그만 말씀 잊어 버리고 '아야'해 버리는데 '아야'해 버리면 헛일이야. '아야' 하면 헛일이라.

주여! 해야 되지 제가 이 개싸움 하는 데 가서 이거 뭘 하나 배울 게 없나 싶어서 저 운동장에서 개싸움을 시키는데 한번 갔습니다. 개싸움하는 그거 나는 뭐 잘 모르니까. 이 큰 도사가 나오고 쪼끄만한 도사가 나오는데 두 놈이 나왔는데 큰 도사 이놈이 작은 도사 이놈을 물고 막 들고 돌아다녀요 막. 이래 흔들고 돌아다니고 막 이래 돌아다니는데. 쪼끄만한 게, 나중에 뭐이 깽 그라니까 그만 그만 벌어트려요.

벌어트리면서, 그래 내가 있다가서 '그놈 참 개 그 큰 놈 아주 힘세고 좋습니다.

어느 개가 이겼지요?' '조 쪼그만한 조게 이겼습니다.' '물고 이래 돌아다녔는데 쪼그만한 게 이기요?''그게 이겼습니다. 어째 그렇습니까?' 큰 개가 쪼그만한 개에게 어째 걸려 가지고 한번 꽉 무니까 그만 '깽' 그랬다 말이오. '깽' 그라니까 그만 잔 거라. 항복이라. 그래 그만 졌다 하고 그만 그래 그거 갈라트리니까 큰 개가 지고 작은 개가 이겼다고 거기다가 막 뭣을 목에다 걸고 이 야단을 지깁디다.

그래 내가 그때 거기서 깨달은 것은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깽 그라면 헛일이다. 깽 그라면 헛일이다. 아야 하면 헛일이다. 이러니까 그때 아야 소리 나오기 쉬우니까 아야 하면 벌써 진 거기 때문에 이제 그럴 때 주님 부르지. 주여, 아파도 주여 좋아도 주여 이래 그때 그 주님 부르면 또 성경 말씀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그러면 그때 막 주여! 고합을 지르고 이래 버리면 그만 그게 개미같이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거같이 보입니다. 주여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래 가지고 주님 고난에 내가 동참하게 되니까 얼마나 좋은지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된다 그 말이오.

이래서 말씀을 생각하고, 한참 들어가면 영감 생각해.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16장에 사도 바울이 옥중에 가 가지고 뚜드려 맞고 다리에도 착고 채였고 손에도 채이고, 수갑도 채우고 족갑도 채우고 이래 전부 채여 가지고 있는데 옥 깊은 속에 갇혀 가지고 있었는데 밤중 되니까 그만 고함이 터졌다 말이오. 주여 하고 그만 그거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그거 찬송 뭐 무슨 찬송했든지 그때 찬송 자꾸 나오지. 찬송했다 말이오. 그라니까 어찌 됐습니까? 그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전부 수갑질러 놓은 구속이 완전히 풀려지고 마구 큰 변동이 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룻밤에 교회 세운 것이 빌립보 교회요. 아주 아름다운 교회 좋은 교회 세웠습니다.

그 힘이 어디 나왔는가? 어디 나왔는가? 고함 소리 지르는 데 고함 소리서 나온 힘이라요? 지딱지딱지딱 이래 쿵창쿵창 쿵창쿵창하는 아주 신명나는 그 힘입니까? 막 춤추면서 이래 하는 이 힘인가? 아니야. 고요히 완전히 자기의 정을 초월해서 정과 욕을 다 부인하고 깊이 말씀에 잠기고 영감에 잠기고 주님의 대속에 잠겼을 때에 그때에 이제 그 감사와 기쁨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렇게 크신 분이 나한테 이렇게 해서 주신 것을 내가 이 은혜를, 미약하지만 요만침이라도 당하면서 전하고 나도 요 고난에 동참하면서 전하고 이 동참하는 생활하게 되었으니 이거 하나님이 당한 이 일에 이 천한 죄인이, 동참했으니까 그 영광의 보좌에 동참했으니까 기뻐 못 견딘다 말이오. 그러니까 고함을 지르니까 그거 믿음이지. 그라니까 믿는 대로 하나님이 와서 역사했지.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특수인인고로 은혜 안 받으면 안 됩니다. 특수 은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요. 요한1서 3장에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으로 삼지 이는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이 모르는 은혜를 받고 모르는 권능을 얻고 모르는 생명을 얻고, 세상이 알고 있는 생명은 그것을 성경이 말하기를 죽음이라 합니까 생명이라 말합니까? 그게 죽음입니까 생명입니까? 정직하게 말해요. 죽음인데 그것도 내가 믿나 안 믿나, 정말로 육의 생명은 그거 죽음이요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믿는가 안 믿는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네가 믿는지 안 믿는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시험해 가지고 확정해라. 아이고 나는 껍데기 믿음이다 안 믿는다, 나는 믿는다, 좀 믿을라고 시작한다. 이거 판정해 나가야 되지. 그러면 예수 믿기 아무나따나 그만 뚤뚤 뭉쳐 가지고 도매금입니까 낱낱이 세밀해야 됩니까? 세밀해야 돼. 세밀하게 안 하면 안 돼요. 못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특수 은혜를 받지 안하면 하늘의 것을 받지 못하니, 세상이 모르는 걸 우리가 받는데. 세상이 모르는 거. 우리 힘은 세상이 모르는 힘이요 우리 생명은 세상이 모르는 생명이요 우리의 승리는 세상이 모르는 승리요, 다니엘이 승리했는데,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승리했는데 거게는 세상이 아는 승리도 있고 모르는 승리도 있었습니다.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계약대로 진리대로 영감대로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산 그것이 세상이 모르는 승리입니다.

이랬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사자 구덩이에서 살아 나온 것은 세상이 아는 승리입니까 모르는 승리입니까? 아는 승리. 아는 승리 그것은 그대로 천국갑니까 못 갑니까? 못 가. 새로 시험을 받아 돼. 시험받아 가지고 합격이 돼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그때 순교했으면 다시 완전 승리인데 순교 안 했기 때문에 다니엘이 그 다음에 현실에서 실족했으면 또 실족으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야 돼요. 고 부분적으로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것을 우리가 받고 있고 모르는 것을 지금 소망하고 있고 모르는 것을 위해서 모르는 방편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한 것이요, 또 구원 얻은 우리들이 볼 때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그것은 없는 건데 공연히 공상이요 허망입니까? 아니오. 이 세상 것을 다 초월한, 그것을 다 이기고 난 초월한 것들입니다. 평가적으로 초월이요 또 비판적으로 초월이요 다 심판을 이긴 것들이요. 그래서 은혜를 받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런 말했습니다.

그래 들을라 하니까 복잡합니까, 재미가 있습니까? 아이고, 이러니까 내가 대구 와서 그전에 집회할 때에 이 대구에 있는 몇몇 목사님들이 따라다니면서 말하기를 아이고 우리가 이제까지 예수 믿는 거는 헛 예수 믿었다, 새로 다시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 이라면서 따라다녔습니다.

따라다니니까 이거 새로, 이제까지 믿은 거는 선생님이 됐었는데 이제 학생으로서 입학을 해 가지고 새로 예수를 믿을라 하니까 이거 뭐 해 놓은 것도 다 틀렸고 또 증거한 것도 이렇고 이러니까 이거 큰 문제가 돼서 머리를 앓고 있는데, 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그만 여기 OO노회에서, 내가 또 이렇게 말하네.

서로 그래인제 OO노회하고 친하다 그 말이오. 우리가, 하늘나라 갈 사람은, 하늘나라는 하나인데 교회는 하나뿐인데, OO노회에서 중생된 영이 범죄 안 한다 하는 그것은 이단이다 이래 그만 전부 결의를 해 가지고 딱 정죄를 해 버렸다 말이오. 그런데 그것은 백영희 목사가 그와 같이 주장하는 그거는 시단이다 이라니까 그때 따라다니던 사람이 '할렐루야! 그라면 그렇지! 이제 우리 하는 것이 다 옳고 그거 '하는 게 틀렸다' 틀렸다 하니까 그만 좋아서 그만 춤을 주고. 그 다음부터는 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여기 참석 안 해요.

그러나,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된 영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범죄하고 고기 덩어리가 범죄하지 중생된 영 자체만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범죄하면, 죽습니다. 범죄한 영은 죽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범죄하면 죽습니다.

그러니 중생된 영이 범죄하면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고 만날 그거로구만.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영이 다시 범죄하고 또 죽는 다면 예수교는 다 박살이요 다 박멸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어. 뭐 희망이 있습니까, 있기를? 우리가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그러기에 영으로 난자는 영이라고 똑똑히 요한복음 3장에 밝혔습니다. 또 로마서 8장에도 밝혔습니다. 성경에 많이 밝혀 놨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의 사람의 가진 그 고기 덩어리와 마음은 범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이 범죄한 것은 영이 범죄한 게 아니라 내 마음 요놈이 육이 범죄했다 말입니다. 육이 범죄했다는 거는 내 마음이 범죄해.

또 육이 범죄했다 하는 그 말 듣고 '제가 범죄해 놓고 이 손가락 이게 범죄했다' 육이라면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합해서 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범죄에는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이놈만 단속하면 됩니다. 이놈만 단속해서 이놈만 진리에 순종 영감에 순종 예수님의 피의 것이 돼 가지고 살면 됩니다.

심신만 그래 되면, 그라고 나니까 그만 '아이쿠 됐다. 그라면 그렇지' 하고 이제는 안심하고 그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됐으면 하나님 심판에 가서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배울라 하면 까다롭지요? 까다롭고 좀 안 됐지요? 까다롭고 안 됐지만 안 사람은, 깨달은 사람은, 자꾸 깨닫는' 사람은 아멘 아멘이 돼. 아멘 아멘이 자꾸 되져요. 진실한 사람은 좀 아멘이 속히 되져.

내가 OO에 있을 때에 저 김천, 그거 내가 오래 돼서 모르겠습니다. 지명은 거게 가 가지고, OO신학교 다닐 때인데 OO신학교에서 거기 가서 아마 좀 집회 인도를 하고 오라 이래서 제가 갔었는데 거기 가서, 교회. 는 큰 교회 아니야.

OOO목사님의 동생 목사님이 거기 시무하는 교회야. 교회 이름은 몰라요. 그 목사님 이름도 모르는데 그 형은 내가 친해서 잘 알아요.

이런데 그래 거기 가니까 집회하니까 어떤 사람이 아주 잘 생긴 사람이 깔끔하게 잘 생겼는데 아주 훌륭하고 뚱뚱하게 잘생겼는데, 양반질을 딱 해 가지고 설교하는데 영 설교하는 사람을 막 꼴아 보기를 아주 인상 나쁘게 해 가지고 이와같이 꼴아 봅니다. 이래 꼴아 봐요. 이래서, 아마 저 사람이 뭐인가 지금 그 속에 아마 오해가 있는가 보다 하고 나는 그라거나 저라거나 증거했지요, 그라는데, 이 구원에 대해서 구원론을 증거를 했습니다. 구원론을 증거하니까, 그 사람이 그래 있던 사람이 뻐뜩 일어나더만 그만 무릎을 딱 꿇고 요래 가지고 뭐 그만 아주 양같이 그만 머리를 숙이고 요래 가지고 겸손히 꼭 꿇고 그 집회를 끝나도록 이래 가지고 이라 면서 그저 끄떡거리면서 이래 참, 말은 안 해도, OO교파에는 아멘을 못 하게 해요. 아멘을 못 하게 해 안 해요.

아멘 하는 게 좋아요. 자기의 의사와 같으면 아멘 이라면 설교하는 사랸도 힘이 있고 또, 힘은 무슨 힘이냐? 모든 사람이 찬성해 힘이 있는다는 게 아니고 그라면, 저것도 깨달았는갑다 하니까, 설교하는 사람이 제일 기쁜 것은 그 청중이 깨달았다 싶으면 첫째 좋고 믿는다 싶으면 둘째로 좋습니다.

이런데 그래 좀 이상하다 아마 뭐인가 지금 의심이 풀리는가보다 이랬는데 이제 딱 마치고 나니까 강사 방으로 쫓아왔어요. 쫓아와서 무릎 딱 꿇고 아주 최경례로 절을 하면서, 그때 저는 전도사입니다. 강사 선생님 이라면서 내가 오늘 살았습니다. 내가, 뭐 말을 해요.

유명한 사람 다 말해요. 어느 집회에도 어느 집회에도 어느 집회에도 다 갔었는데 전부 다 기만적이고 거짓말이고 이래 사람을 고민만 주고 마는 것이고 이래서, 이래서 내가 지금은 부흥회 가는 곳마다 가 가지고 부흥회 인도하고 나면 반드시 그랬다가 나중에 가서는 질문해 가지고 강사를 혼을 내서 지금 나는 지금 기독교의 반대 입장에 지금 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라면서, 이 집회에 가니까 회개해야 천국간다고 이래서 또 회개를 하고 나니까 죄를 또 자복해야 된다 해서 그 부끄러운 죄를 다 자복을 다 하고, 자복을 다 하고 나면 또 저 부흥회 가니까 또 모르던 죄가 또 나오니까 또 자복해야 되고, 암만 돌아다니면서 해도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니까 이거는 뭐 펑생 해 봤자 나는 미결 속에 있고 다 회개하지 못한 자이니까 나는 미결 속에 있다가 다 지옥가고 말 자이니까 이 구원이 안 되는 구원인데 이 구원을 된다고 인간이 어떻게 다 완전자가 되어지느냐? 완전자가 되어져야 구원 얻는다고 하니 이거 다 헛일이라고 이라며 그래 분개했다고.

그래 내가 있다가서 말하기를 '네, 그것은 형님이 잘못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써 우리를 다 대형, 대행, 대화친해서 그 공로로 구원 얻는 그 구원은 행함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써 구원 얻는 것을 말씀한 그것은 기본구원입니다. 그거는 형님도 다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은 내버릴라 해도 못 내버립니다. 천국갑니다. 그런데 회개 안 하면 못 간다 그거는 행위 구원으로서 이 심신의 기능이 고쳐야 되지 고치지 안하면 그 심신의 기능은 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고 영생 얻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라니까 그때 또 그만 깜짝 놀라면서 그 사람이 그래요, 그래 그 사람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 구별하는 데에서 그 사람이 그때에 살아나고 그것을 구별하지 안하고 자꾸 범벅타령으로 이래 말해 주니까 회개해야 천국간다 하는데, 이 심신의 기능은 회개를 해 고쳐야 가지 고치지 안하면 못 갑니다. 고쳐야 간다는 그 말은 사람 듣기 쉽도록 고쳐야 간다 하는 것이지 고쳐야 갑니까 새로 더러워지지 안 해야 갑니까 어느 겁니까? 고쳐야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새로 더러워지지 안해야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이것도 조그매밖에 안 든다. 새로 더러워지지 안하면 가요.

왜 손을 못 들어? 버뜩 들지,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으니 내가 현실에서 이 대속을 벗지 안하면 돼요. 다시 죄의 종이 되지 안하면 돼요. 죄의 종이 되면 둘째 사망하고.

이제, 의의 종이 됐고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 현실에서 죄 이놈이 아무리 와 가지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그것을 아무리 하라고 안 하면 죽인다 안 하면 어떻게 한다 가족 협박, 사회 협박, 이종교 협박, 모든 정권 협박, 시대 협박, 경제 협박, 사업 협박 이런 것들이 막 협박을 해도 하나님 하지 말라는 걸 안 하면 다시 죄인 안 돼. 하라는 것만 하면 의인돼.

이러니까 이제 예수님이 대속해 놓은 것을 우리가 벗지만 안하면 됩니다. 그라면, 내가 의를 만들어야 의인이 돼요. 의를 벗지 안하면 의인 돼요? 네, 벗지 안하면 의인이 돼 가지고 있어요.

뭣이 교리와 신조가 해결이 됩니까? 서로 마찰이 없고 모순된 것이 없습니까? 성경에는 모순된 것을 찾아 가지고 모순 그것이 모순이 아니고 일치인 거게 도달해야 비로소 자기에게 복음이 되는 것이고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가다가 말아요, 사람들은. 자꾸 끝까지 가기는 피곤하고 괴로우니까 그만 중간에 가다가 알기 쉬운 대로 믿기 쉬운 대로 전부 자기 주관 신앙이라. 자기 주관 신앙. 전부 주관 신앙만 가져. 주관 신앙은 사망입니다. 주관 신앙은 객관 신앙을 영접하는 하나의 준비 신앙이오.

주관 신앙은 그 차차차 그라면 나중에 가서, 주관 신앙은 자기 주관이 객관에게 타율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해서 완전히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객관의 것이 되져야 됩니다. 이 타율의 것이 되져야 됩니다. 그래야 거게서부터 이제 생명에 속한 이 생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이 말을 자꾸 하느냐 하면 까다로와도 듣고 배우라 말이오.

세상에서 이 세계에 제일 유명한 과학자가 될라 해도 그거 들어가면 요리도 조렇고 요리도 조렇고 조리도 조렇고 요 사이비한 것이 꽉 차서 요것을 전부 구별해 가지고 옳은 참에 딱 도달해야 되는데 도달하는 그것은 현재에 실험해 보면 나타나기 때문에 그 증표를 알지만 이 기독교는 그게 나타나지만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몰라요. 생활 보면 알 수가 있어. 생활 보면 나타난다 그 말이오.

신사참배 오니까 떠들어 쌓다가 신사참배 다 하지, 공산주의가 오니까 공산주의 시키는 대로 다 하지, 돈이 오니까 돈 시키는 대로 다 하지, 가족이 오니까 가족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제 욕심이 말하니까 욕심대로 다 하지, 제 신경 하자는 대로 다 하지, 근육 하자는 대로 다 하지 뭐 이거 주인이 꽉 찼는데 언제 하나님이 주인될 여가가 있어야지. 그거는 구원이 아니라 그거요.

자, 진리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소 안 맞소? 아멘입니까 아멘 한번 해 봐요. 됐어. 괴로와도 따라가요 자꾸, 떨어지지 말고 자꾸 배우고 배우면, 이 말씀이 우리를 보호합니다.? 말씀이 보호해요.

"지금 내가 너희를 도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데 이 말씀이 지금 우리를, 말하자면 구주를 지금 영접하는 것인데, 구주를 영접하는 것이요 우리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오. 이런데 이 일이 그렇게 힘이 들어도 해야 되지 안해요?

지난밤에,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은혜를 받는 데는 인제 아까 은혜 몇 가지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은혜 몇 가지 말했는가? 아무 때나 두 가지라. 그저 기억됐어. 어디든지 두 가지.

이제 은혜는 어제 저녁에는 깨달음의 은혜를 말했는데 '깨달음의 은혜를 받아야 된다' 그라면 깨달음의 은혜 몇 가지 말했지요? 네, 다섯 가지 말했습니다.

깨달음의 은혜 다섯 가지 받아야 돼고, 요것도 믿어야 돼요. 이제 깨닫고 난 다음에는 믿어야 돼요.

믿는데 믿는 것은 어떤 게 믿는 것이냐? 자기, 요 믿는 데에 반대하는 주관이 완전히 죽어 없어져야 돼요. 하나님이, 다섯 가지 이 깨달은 이 깨달음을 그대로 믿을라고 하니까 방해하는 놈이 자기 속에 있고 자치 밖에 있고 꽉 찼어.

방해하는 것이. 이 방해하는 것을 미리 알고 이 방해하는 적을 다 이겨서 다 이기고 나야 돼요.

그런데 깨달음 가운데에 제일 첫째 깨달음이 뭐이지요? 내가 한번 배워야 되겠어. 첫째 깨달음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산 말씀이요 살리는 말씀이요, 책임진 말씀이요, 전능의 말씀이요, 전지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요 또 세상에 있는 말은, 말이나. 지식 그게 말이요 말이 지식입니다.

세상에 있는 말은? 이제 큰소리 못한다. 앞으로 큰소리하면 죽이요. '세상에 있는 말이 죽은 말이라?' 죽여요 죽여.

하나님 말씀만이 산 말이요 살리는 말이요 세상에 있는 말은 다 죽은 말이요 죽이는 말이지. 결과가 다 그리 되는데. 그렇지 안해요? 그라면 죽이요. 죽여도 죽음 앞에서, 죽어도 하나님 말씀만이 살리는 말씀이요 산 말씀이라 하는 것을 증거하다가 죽으면 그 죽음 무슨 죽음입니까? 개죽음입니까 병들어 죽음입니까 무슨 죽음이요? 순교입니다. 이게 순교라. 이런 걸 다 깨달아 가지고 있어야, 그라면 순교시키면 좋아요 하잖아요? 순교시키면 좋은 사람 손들어 봐요.

좋아요. 이러니까, 좋은 게 오면 섭섭해요 기뻐요? 기쁘지. 네 이놈 너 그라면 죽인다 하면 죽인다 소리가 기뻐요 섭섭해요? 기뻐요.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기쁘지 안하면 승리 못 합니다. 온전히 기쁘지 안하면 승리 못 해. 이거 뭐 자꾸 하나 배워서 깨달으면 모두가 다 저절로 다 깨닫게 다 돼 버려요.

자기만 부인하면, 성령님이 와서 계시면 그만 성령님하고 나하고 하나돼서 성령님이 동하면 나 동하고 정하면 나 정하고 이라면 그만 다 깨닫게 돼요. 이 고개를 넘어야 되고 이 휘장이 열려야 됩니다. 휘장이 열려야 되고 다시 말하면 이 수건을 벗어야 됩니다. 수건이 벗겨지지 안하면 안 돼요. 이것도 중대합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을라고, 배워 가지고 아는 것은 깨달은 것과 달라. 깨달은 것은 어떤 게 깨달음이냐? 깨딸은 것은 '요것이 참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안 것이 깨달은 것이니까 안 요것을 어떤 현실이 와 가지고 부인하게 해도 부인하지 안하고 '요대로라, 요거라.' 하면 이 몸뚱이는 지식을 따라갑니다. 마음을 따라가는 게 몸뚱이야.

그 벌써 불에 들어가면 죽는다 타죽는다 하는 것을 깨달은 그 깨달음을 가진 사람은 불에 잡아 넣을라고 하면, 위협을 하면 불에 들어갑니까 협박을 하면 들어갑니까 어짜면 들어갑니까? 위협한다고 들어갑니까? 들어가면 타 죽을 줄 알기 때문에 위협한다고 들어갑니까? 어떤 위협이라도 위협보다도 타 죽는 게 더 크기 때문에 안 들어갑니다. 끌어 집어넣으면 들어갈지라도. 그렇지 않소? 자기 힘을 두고는, 힘을 두고는 그 불 가운데. 안 들어간다 그 말이오.

힘을 두고는 현실이, 아무리 환경 주위가 현실이 아무리 요 말씀을 부인하게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힘이 있는 한은 부인할 수 없는 요대로의 깨달은 대로 행할 수 있는 그것이 깨달음이라. 고게 깨달음. 이 깨달음이 얼마나 보배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이 인간 지식, 하나님 말씀과 인간 말 요 둘을 정평 정가할 수 있는 요 깨달음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합니다. 요걸 회개해요, 자꾸. 요걸 회개할라고 애를 써요. 짜다라 기도하고 금식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어.

어떤 사람은 뭐 사십 일 금식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사십 일 금식을 정말로 바로 했으면 진리를 깨닫지요. 진리를 깨달으면 사십일 금식했다는 자랑은 입 밖에 나오지도 안할 것입니다. '에이구 다 허영과 허욕으로 날뛰었다. 주여 죄인이로소이다.' 이럴 것입니다. 요거 중요합니다. 말과 말 구별, 지식과 지식의 구별 요것이 첫째로 깨달을 일호의 깨달음입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또 둘째 깨달음은 뭐이지요? 말씀 뭐라고? 말씀이 지켜 줄 것이라고? 넘어가고 지나가 버렸구만. 뭣이? 이 말씀은 내가 지킬 말이요 내가 써먹을 말이요 그게 이 호지? 이 말씀은 내가 써먹어야 될 말입니까? 내가 지킬 말입니까? 예? 순종은 또 엉뚱한 거 순종은 왜? 이 말씀은 내가 모시고, 모시고, 또?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복종, 모시고 복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왜? 나를 없는 가운데서 만든 말씀이요 또 나를 영원 불변의 것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지극히 큰 능력의 말씀이 왔기 때문에 이 말씀은 나보다 무한히 탁월한 높이 있는 영광스러운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내가 모셔야 돼.

이 말씀은 두려워서 뻘뻘하며 이 말씀을 어기면 죽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복종해야 돼요. 이 말씀은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해야 돼요.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이렇게 깨달아야 됩니다. 이게 둘째 깨달음이라. 둘째 깨달음. 맞습니까? 똑똑히 깨달아요. 둘째 깨달음. 이 말씀은 내가 써먹을 말씀이 아니고 이 말씀은 내가 지킬 말씀이 아니라.

전능을, 그러나 전능의 능력을 가진 이 말씀을 내가 뭐 지켜? '내가 안 지키면 이 말씀은 없어진다' 보수파, 보수파, 정신 차려야 되지. '내가 이 말씀을 지켜야 된다' 우리 인간말로 그렇지. 내가 이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 안하면 이 말씀이 나를 지켜 줍니다. 나는 이 말씀에게 복종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내가 모시고 복종해야 할 말씀인 것을 깨닫는 것이 이호입니다. 깨닫는 거.

그러면, 복종해야 되면 이 말씀이 감옥가자 하면 어때요? 이 말씀이 사형받으라 하면 어떻게 해요? 사형받아야 돼요. 사자 구덩이 들어 가라 하면 들어가요.

그러니까 다니엘이 '기도하라' 하는 요 말씀을 모시고 요 말씀에게 복종하는 그 복종을 요동치 안하니까, 요 말씀을 모시고 있으니까, 사자 구덩이 들어갔지만 요 말씀을 모시고 있으니까,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지만 '사자가 크나 내가 모신 말씀이 크나, 사자가 능력 있나 내가 모시고 복종하는 이 말씀이 능력 있나? 보자.' 그 믿음이 그 맹수의 입을 막았던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요거 아주 묘한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믿음이라는 거. 이거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에게는 믿는 거 외에는 더 요구하는 게 없어요.

왜? 당신은 전지 전능자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인데 당신이 요구할 게 없어. 당신을 인정하고 예예로 복종하는 거 외에는 요구가 없어.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오. 하나님은 무식쟁이가 아니라. 뭣이 모자라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런 구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내가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해서,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이 '나는 간다' '아이고 나도 따라갈랍니다.' 이 말씀이 '나는 감옥갈란다.' '감옥 따라갈랍니다.' 이 말씀이 공산주의한테 갈라면 공산주의 한테 갑니다. 이 말씀이 가자 하는 대로 이 말씀이 가는 대로 같이 가고 오는 대로 같이 오고 이 말씀과 동거 동행하고 항상 이 말씀 모시고 떨어지지만 안하면 영생입니다. 아무도 해하지 못해요. 요것을 깨달아서 믿어야 합니다.

요 깨달음은 요 깨달음의 지식을 현실에 어떤 시시비비의 어떤 궤변들과 어떤 술책들 어떤 묘한 말들이 와도, 어떤 묘한 말들이 와도 이 깨달음이 속화 안 돼야 돼. 이 깨달음이 흐려지지 안해야 돼. 이 깨달음이 변질이 안 돼야 돼요. 이 깨달음이 변화 안 돼야 돼요. 이래야 깨달음이지. 그러면 둘째 것 했습니다.

또, 셋째는 뭐이요? 이 말씀은 어디서든지 나를 지켜서 든든히 세우실 권능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둘째로는 내가 모시고 복종해야 되고 모시고 복종해야 될 것을 깨닫고, 셋째로는 이 말씀은 어디서든지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를 든든히 세울 수 있다. 이 말씀은 나를 수호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나의 피난처다. 수호할 수 있다. 이 말씀이, 내가 이 말씀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 나를 수호할 수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또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갔는데, 불가운데 들어갔는데 뭣이 들어서 그 불 가운데서 불내도 나지 안하도록 보호했습니까 뭐이 보호했습니까? 서이 들어갔는데 너이 다닌다 하니까 인자같다 했으니까 주님이 혼자 보호한 줄 알아도 주님은 보호할 권리 없어.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에 복종해 불에 들어왔으니까 이 말씀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호합니다.

보호하니까 이 말씀 속에 누가 들었어요? 이 말씀 속에 이 말씀의 주인공인 주님과 성령과 성부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안에 다 계시요. 이래서 이 말씀이 보호하니까 다 다른 것은 따라서 웅원해. 이 말씀이 보호할 때, 이는 보호해야 된다, 이 말씀이 보호하면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다 따라서 보호합니다.

이 말씀이 보호할 때에 '네야 보호하거나 말거나 네 맘대로 해라, 너 혼자 보호해라. 나는 모른다.' 이 말씀이 보호할 때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보호 안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보호 안 할 수 없어. 이 말씀이 보호 안 하고, 이 말씀이 보호 안 하고 반대를 하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호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못 해요. 그러기에 이 말씀은 전지 전능의 독자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보호를 우리가 확신해야 됩니다.

또 이제 그라면 몇째입니까? 네째는 뭘 깨달아야 돼요? 예? 뭐이 옳게 말하는 거 같다. 뭐이지요? 계약! 계약! 신인 계약! 신인 계약의 말씀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이 계약한 이 계약입니다. 사람이 우리 인류 시조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것이 '뭐이라요? 다른 것은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이 계약입니다. 그 계약 어겨 가지고 손해가 컸습니까 적었습니까? 컸습니다. 전 부정 모혈의 일반인으로 지음받은 이 모든 자연인은 이 인류 시조의 위약한 이 위약으로 전체가 다 사망됐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일반인으로 나오는 부정 모혈로 나는 모든 인간의 대표로 신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왜? 부정 모혈로 난 자는 전부 아담의 허리 속에 다 들어 있었기 때문에 거게서 거게서 나오고 나오고 나왔기 때문에 다 신인 계약의 이 계약에서 아담이 이 계약을 어기니까, 하나 어겼어. 먹지 말라는 거 먹은 그저 어겼어. 어기니까 그 어김의 해독이 큽니까 작습니까? 모든 인류에게 가득 찼습니다. 인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계약을 어긴 위약한 그 처벌받는 것을 전인류가 제일 싫어하지만 위약 된, 이 계약을 어긴 이 위약의 처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계약을 위반한 위약의 처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뭣입니까? 그거 뭐이요? 죽음. 제가 무신론을 주장해도, 네까짓 게 암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신론을 주장해도 하나님의 계약 한 마디 어긴 그 위약에 너는 상당한 그 보응을 받고 있다. 다 거기 매였어.

이러므로 이 계약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 계약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치 않다. 요 계약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요 계약의 신실성, 요 계약의 절대성, 요 계약의 불변성 요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요걸 깨달아야 돼요.

요 깨달은 것이 온 천하가 달라들어 가지고 너 잘못 알았다 천하가 달라들어서 요 깨달음을 부정하라고 할 때 요 깨달음이 부정되면 고 깨달음은 세상을 이겼습니까 세상에게 졌습니까? 세상에게 졌어. 온 천하가 부인하라 해도 부인치 안하고 요 깨달음을 확실히 깨달음을 인정하고 요 깨달음이 변동 없이 이거는 틀림없다. 요 깨달음을 가졌으면 고 깨달음은 세상을 점령했습니까 안했습니까? 우리가 세상 점령하는 게' 이게 점령법이라.

조그만한 빌딩 하나도 지을라 하면 막 땀을 홀리고 이래 가지고 그거 해놓고 '일생 동안 너 한 게 뭐이냐?' '저 커다란 저 빌딩이 우리집입니다.' '더러운 것도 해 놨다. 순 거지.' 세상을 이기는 깨달음만 하나 가졌어도 그만 세상 다 자기 것 되는데.

우리가 깨달음은 요 깨달음을 다른 사람이 '잘못 알았다' 할 때에 그 미혹받지 않고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깨달음을 가진 요 깨달음이 산 깨달음입니다. 요게 영생 깨달음이요. 영생 깨달음. 영생을 가진 깨달음이라. 영생을 가진 깨달음이라 말은 영원히 패전이 없는 영원 승리하는 이 생명의 깨달음이라 그 말입니다. 고게 산 깨달음이라. 죽은 깨달음은 소용없어.

또 다섯째는 뭐입니까? 인제 여러분들이 한번 말해 봐요. 다섯째는 뭐이지? 한번 말해 봐.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 때문에 우리 것만 다하면, 이 계약의 말씀은 둘뿐인데, 하지 말라는 거 하라는 거 크게 말하면 둘뿐인데 이 계약의 말씀은 하지 말라는 것을 인간으로서 절대 못 합니다. 다 못 해요. 하라는 것도 절대 다 못 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 하는 이거 하라 한 것인데 온전한 자가 되라 하는 이거 인간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같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 봐, 이것만 해도 못 해요.

못 하는데, 인간이 다 할 수 없는 이 계약의 말씀인데 이 계약의 말씀을 지난밤에 네 가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요 네 가지 내게 있는 것만 다하면, 요 말을 다른 말로 뭐라 말했지요? 무슨 말했지요? 요한계시록 2장에,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해라 그라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주리라' 내가 네게 준다 하니까 자기에게 있어요 하나님이 주시요? 하나님이 주시요. 생명의 면류관.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저 구라파 지역에서는 뭣이든지 경쟁해 가지고 이기면 면류관 씌워 줘요.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 생명의 힘이지요. 이래서 생명은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의 연결된 것이 생명이지. 이런데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내가 네게 주겠다.

그거는 주님이 주시요. 주님이 주시요. 우리 것만 다하면 주님이 주시오.

이래서, 이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것 다 안 할 수 있고 하라는 것 다 할 수 있다.

내것만 다 바치면 할 수 있다. 죽도록 충성하면 다 할 수 있다. 다 바치면 된다.

다 바치면 되는 이유는 뭐인가? 주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히셨기 때문에 이 공로가 있기 때문에 나만 다하면, 나만 다하면 이 내것 다 가지고 주님을 믿기 때문에, 다 믿기 때문에, 내가 다 믿기 때문에 다 믿으면 주님의 모든 게 내것이 되니까, 내게 요 반 믿고 반은 안 믿는 게 아니라, 십분지 구만 믿고 십분지 일은 안 믿는 게 아니라, 백의 구십 구만 믿고 백의 일은 안 믿는 게 아니라 내게 있는 거 전부가 다 믿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니까 다 믿는 거라. 안 믿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믿어.

다 믿으면 주님은 내것 돼요 안 돼요? 내것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이 비결로 인해서 나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라고 하면 하나님이 금하는 거 다 안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조성하라는 거 다 조성할 수 있다. 요것이 몇째 깨달음이라요? 다섯째 깨달음.

좋은 거 배웠습니다. 여러분들. 귀한 거 배웠어. 귀한 거 배웠어. 요것만 똑똑히 알면 뭐 산에 돌아다니면서 들에 돌아다니면서 야단 지기는 거 일생 동안 해도.

요 하나도 알지도 못하고 근방에, 이 생명에는 가까이 오지도, 근방에 오지도 안한 전부 저거 흥타령 저거 신명 타령 전부 저거 주관만, 주관만 길러.

이러니까. 장로 좋도록 하기 위해서 장로의 기분 맞도록 저 장로는 뭘 좋아하지 저 장로는 뭘 좋아하지 저 부자는 뭐 좋아하지 해서 그 사람 좋은 것을 설교하는 가운데에 다른 거는 몰라도 목사님들 가운데에, 다는 그렇지 않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 그 말이오. 목사님들 그거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할 때에, 요 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조 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요면으로 하나님의 노를 끼치지 안할까 조 면으로 하나님의 노를 끼치지 안할까 그거는 하나님은 상관없고, 요 면으로 저 재벌가에게 걸리지 안하도록 요 한 마디 말해 가지고 재벌가를 기쁘게 하도록 이러니까 전부 사람 놀음판이야.

이러니까, 이제 하면 이 사람에게 안 걸리도록 저 사람에게 안 걸리도록 이 사람 좋도록 저 사람 좋도록 이라니까 좋아서 벙긋거리면서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저를 추켜 주니까 좋아하고 제 기분 맞춰 주니까 좋아하고 제 주관, 제 주관, 그놈은 죽여야 될 놈입니까 살려야 될 놈입니까? 죽여야 될 놈입니까 살려야 될 놈입니까? 죽여야 될 놈을 이 밥을 먹여 가지고 커다랗게 키워서 살려 주니까 좋아서 이랬는데 그것을 죽이느라고 '너 이렇게 이렇고 이거 틀렸다. 이거 고쳐라. 이거 나쁘다 고쳐라.' 강단에서 말하면 그만 당장 일어나서 갑니다. '인신 공격한다 저거 나 들으라고 나를 공격하는 말이구만. 음, 보자.' 보자 하는 거는, 보자 하고 너 회개 안 하고 나가면 너 깨지지 별 수가 뭐 있나? 고라가 산 매장당한 것처럼 너 깨지지 딴거 별 수 없어.

그럴 때에 강사는 있다가서 '보자' 이를 다물고 '보자, 내가 연보 안 내고 내가 그라면 네까짓 게 견디는가 보자.' 나가니까 '나가면 너 깨져서 박살되지 딴거 뭐 있나? 가니까 꼬시다.'그라면 어찌 되지? OO목사님 한번 대답해 봐요. 어찌 되지? 왜 안 돼? 그라면 만족하고 좋지 안해? 예? 그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거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네가 그런 장로를 그 악령과 그 죄악과 악성 악습 그 옛사람에게 사로잡혀 있는 그것을 네가 해방을 시킬 그 간절한 마음과 해방시키지 못한 데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네가 가질라고 해방 운동을 시작하지 안하고 가서 잘 뒈지거라 하니까 나도 네게 대해서 그라겠다. 나도 네게 대해서 그라겠다 이라니까, 그만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목사가 '주님이여 주님이 하라는 말 내가 했는데, 하라는 말을 했는데, 저렇게 돼 놓으니 저거 어찌 됩니까? 내가 쫓겨나겠습니다.' 그게 아니야. 자기는 잊어 버렸어. 자기는 잊어 버려.

이랬는데, 저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붙들려 가지고 그놈이 그만 데리고 나가니까 끌려나가고 있으니까 저거 어째야 됩니까? 주님이여 당신이 살려 주셔야 되지 나는 말만 바로 증거하면 됐지 그 이상 내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당신이 저 돌아가다가 발을 채이든지 그리 안 하면 꼭 찌르든지 어떻게 해 가지고 '아이쿠 이거 뭐인가?' 좀 이라든지 저라든지 반성을 해 가지고 이거 내가 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망령되고 죄 짓는 것이다 해서 그분이 반성하고 회개하고 애통하며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마귀를 이기지 안했습니까? 세상을 이기지 안했습니까? 다 승리했는데 당신의 승리를 딱 갖다 붙이면 그를 미혹시키는 것이 다 도망쳐 버리고 말 것인데 이거 살리는 거는 당신에게 있지 않습니까? 막 시비를 댑니다.

내가 이 말한 게 잘못했습니까? 이제 남은 수습은 당신이 해야 됩니까 내가 해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죽구로 냅둘랍니까? 그러면 당신의 피가 헛일 아닙니까? 자꾸 시비를 조아댑니다. 시비를 대서, 어째야 됩니까? 그러면 내가 또 할 일이 뭐입니까? 한번 더 그렇게 할까요? 한 번 더 가서 말할까요? 내가 뭐 말해야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또 내가 기도할 것밖에 없는데 내가 기도는 안합니까, 지금 기도하는데 어째야 됩니까? 자꾸 들이 시비합니다.

그라면, 주님이 '그래, 네가 그런 말을 해도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 '뭐이 부족합니까? 내가 말이 틀렸습니까?' '네가 속으로 아파하는 그 마음, 눈물이 없이 그랬기 때문에 그거 마귀란 놈이 그걸 이용하기가 쉬워. 그럴 때 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랬으면 마귀란 놈이 그 틈을 타지 못할 터인데 그 방편이 조금 틀렸어.'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내가 바로 증거하지를 못했습니다. 나 잘난 재미로 내 자랑했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됐어.' 그라고 나니까 장로님이옵니다. 장로님이 떡 와 가지고 '목사님 목사님의 염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내가 그만, 그만 잘못 생각해 가지고 내가 그만 그랬습니다.

내가 회개합니다.' 목사 회개하고 나니까 그 장로가 회개해.

목사가 회개하니까 장로가 회개해. 목사가 산더미만치 회개를 하면 장로는 주먹덩이만치 회개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눈꼽재기만한 죄를 지으면 장로는 무슨 죄지어요? 집채 무더기만한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입니다. 이게 비밀이라. 그러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 하나라.

이래서, 자꾸 그라면 장로는 저를 치켜올리는 데만 찾아갑니다. 여기도 장로들 많을 건데 저 치켜올리는 데만 찾아가요. 저 치켜올리는 데. 자꾸 이래 치켜올리는 데. 치켜올리는 데 가야 됩니까 오늘은 자꾸 자기에게 죄를 들어서 잘못된 걸 들어서 자꾸 책망을 하는 데 책망 찾아가야 됩니까? 칭찬 찾아가야 됩니까? 책망 찾아가야 되는 줄 아는 사람 손들어 보시오. 예, 책망을 찾아가야 돼요. 책망을 찾아가는데 책망 받을 것이 있으면 어째야 됩니까? 감사합니다.

나의 선생님이요 지도자요 나에게 선지자입니다.

감사하면서 고쳐야 될 것이고 또 살펴보고 암만 살펴봐도 책망받을 것이 없으면 어째야 됩니까? 없으면 어째야 됩니까? 암만 봐야 책망받을 게 없는데 이렇게 한다 이라면 그때는 어쩌야 되지요? 어쩌야 됩니까? 시비를 붙어야 돼요? 거짓 걸로 핍박받으면 참고 견뎌라. 그라면 뭐이 있다고요? 하늘에 상급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책망받는 데는 이래도 유익 저래도 유익. 고쳐도 유익 고칠 거 없으면 가만히 참으면 유익 전부 복뿐이오, 칭찬받는 데는 칭찬받을 것이 있어도 '이미 세상에서 네가 상을 받았느니라' 하늘나라 받을 거 없느니라 말하지 안했습니까, 성경에? 이러니까 상받을 거 있어서 옳은 칭찬을 받아도 손해 또 거짓부리 칭찬받으면 그 값을 영원히 내야 될 터이니까 그래도 손해 또 그 칭찬받으니까 공연히 우쭐하니까 이거 뒤 후유증이 있어. 뒤 후환이 후환이 있다 말이오. 뒤에 후환이 있어. 우쭐하니까 교만해지지 교만 해지니까 물려침 당하지, 이러니까 이제 바로 요래 바로 배웁시다. 오늘 아침에는 지난밤에 한 거 재독을 했습니다. 다섯 가지 단단히 기억해요. 기억하고 떠드는 게 아니라.

요 다섯 가지를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요거를 실지로 요게서 깨달음을 가지십시오. 깨달음이라 말은 깨달음은 안다 말이오. 요대로의 지식하는 요 깨달은 거, 요렇다 하는 요 지식을 온 세상이 흔들어도 세상 풍조에 흔들려서 요동치 안하는 거. 온 세상이 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안하는 거. 이래야 돼.

하나님이 창조라 했는데 이 진화론이나 가지고 날뛸 때에는 모두 다 진화론 학자들은 창조를 다 부인하고 그때 하나님 말씀이 흔들렸습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흔들리지 안하는 그런 신앙가들이 승리하는 사람이라. 아메바가 사람됐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다 그거는 얼토당토 안 한 말이라 이래 가지고 전부 그때는 요새로부터 한 칠십 세 이상 되는 사람은 전부 다 원숭이 아들이오. 전부 원숭이 아들. 그거 다 믿었으니 원숭이 아들이지. 원숭이 아들 말이지.

그래 내가 조그만할 때에, 예수 안 믿을 때에 학교 다닐 때에 이라니까 가서 뭐라 하면 뭐 아메바가 진화론 아메바가 뭐 어짜고 진화론 이래 말하기 때문에 그때, 사람을 원숭이 아들이라고. 그런데 그때 우리가 알지는 못해도 그때 분해서 말이지 '나는 원숭이 아들 아니오.' 그때 내가. '원숭이 아들은 왜 원숭이 아들이라 사람 아들이지.' 이랬었는데 그때 내가 예수 안 믿어도 하나님이 내 속에 역사했던 모양이오.

요 다섯 가지 깨닫는 거 요것을 아무리 주위 환경이 불이 타 왔어도, 공산주의가 돼도, 독침이 와도, 죽음이 와도, 큰 재벌이 와도, 좋은 직장이 와도, 높은 지위와 권세가 와도 이 깨달음은 변할 수 없는 이 깨달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확고 부동한 깨달음, 변동되지 않는 깨달음, 변동되지 않을 요 깨달음을 가지도록 요 깨달음을 이 산에서 내려가기 전에 만들어야 됩니다. 요깨달음을 만들어야 됩니다.

요 깨달음을 만들어야 될 그 필요성을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놓읍시다. 요 깨달음을 만드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고 요렇게 전심 전력을 이제 요 다섯 가지 깨달음을 확신하는 요 깨달음을 가지기로 요게 전심 전력 전공할 가치 있으니까 요 전심 전력을 투자해서 전공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작정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됐어, 됐어, 이라면 마귀 이놈 막 울고 지금 불고 야단이 날 거야. 이라면 병 다 나아요. 이제 깨달으면 병 다 낫는데 병 그까짓 거 낫는 거 문제가 없어. 이것만 깨닫고 그만 이대로의 사람이 되면 병 다 없어요.

빛이 오면 어두움 다 도망가 버려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산에 가서도 기도하고 해서 어짜든지 이번에 고쳐서 깨끗한 회개하는 사람됩시다. 이제 떠들지 말고, 떠들고 거석하며 분주하게 말고 그저 소리는 살몽살몽하고 옆에 사람만 들으면 돼. 미개한 야만인들이 모 이면 떠들지 문화인들은 떠들지 안해요. 필요 없는 소리를 내지 안해요. 필요 없는 소리내는 것은 필요 없는 양만치 내는 것이 그것이 지성인이요 문화인이요 그것이 신사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596 빛의 직책/ 마태복음 5장 13절-I6절/ 881002 남권찰회 선지자 2015.11.02
3595 삐뚤어진 세 가지 관점/ 창세기 3장 6절-7절/ 890605월새새 선지자 2015.11.02
3594 삐뚤어진 우리의 처소/ 누가복음 9장 57절-62절/ 890226주후 선지자 2015.11.02
3593 사는 동안 제일 다급한 것/ 베드로후서 3장 14절/ 83070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2
»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60506화새집회 선지자 2015.11.02
3591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205012수야 선지자 2015.11.02
3590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50520월새 선지자 2015.11.02
3589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51227금야 선지자 2015.11.02
3588 사데교회/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2년 20 공과 선지자 2015.11.02
3587 사데교회-살리는 법/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51228토새 선지자 2015.11.02
3586 사데교회의 살리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1절-3절/ 820510월새 선지자 2015.11.02
3585 사도신경-거룩한 공회-소속의 중요성/ 창세기 3장 6절-8절/ 861010금새 선지자 2015.11.02
3584 사람 낚는 어부/ 누가복음 5장 1절 11절/ 851006주후 선지자 2015.11.02
3583 사람 낚는 어부/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51007월새 선지자 2015.11.02
3582 사람 낚는 어부/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51007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2
3581 사람 낚는 어부/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40219주후 선지자 2015.11.02
3580 사람 낚는 어부/ 요한일서 5장 4절-12절/ 850909월새 선지자 2015.11.02
3579 사람 낚는 어부/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51006주전 선지자 2015.11.02
3578 사람 사귐을 삼가라/ 마태복음 10장 11절-13절/ 820627주후 선지자 2015.11.02
3577 사람 상대로 주님을 기쁘시게/ 마태복음 18장 21절-35절/ 851030수새 선지자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