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연결 의사연결 활동연결

 

1986. 3. 16. 주일오후

 

본문:요한복음 15장 9절∼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는 참으로 우리에게 큰 소망을 약속해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보면 그 사람이 된 대로 듣는 것도 듣고 깨닫는 것도 깨닫고 원하는 것도 원합니다. 사람이 잘못된 사람은 모든 듣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전부 잘못된 것만 합니다. 또, 사람이 아직까지 어린 사람 모자라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의 좋아하는 것이나 또 원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도 어린 거 모자라는 거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현이라야 능지 성현이라’ 성현이 돼야 성현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하는 말과같이 사람이 되기 전에는 사람의 말을 알아 듣기가 힘듭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씀 하시기를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있는 진리를 알고 싶다고 해 가지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믿는 너희들이 내 말대로 지켜 행하면 너희들이 지켜 행한 것만치 나를 닮은 내 제자가 되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행한 것만치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예수님과 같은 그런 사람이 조금씩 돼 가고 된 것만치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 깨달은 그 진리는 ‘자유케 하리라’ 그렇게 깨달은 그 진리는 그대로 다 실행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암만 말해도 사람이 되기 전에는 못 알아 듣습니다. 그러면, 알아 듣는 것은 제가 사람된 것만치 듣게 되고 알게 됩니다. 또 원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이런 말씀은 아주 우리에게 중요하고 큰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고 자꾸 깨달을라고 애를 쓰고 기도를 하고 또 깨달아 아는 방편을 말씀해 놨기 때문에 깨닫고 아는 방편인 그 방편을 사용해야 깨닫게도 되고 알게도 됩니다.

여기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에 대해서 행하신 것은 사랑한 것뿐입니다. 성부가 성자에게 대해서 행하신 것은 사랑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피조물이 되어 가지고 오신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사랑한 것만 했습니다. 사랑한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하나님이시지마는, 요 삼위 일체에 대해서 요거 깨닫지 못하면 참 곤란합니다.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이 성부도 되고 성자도 되고 성령도 됐습니다. 요걸 지금 교리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지금 방황합니다.

그러면, 성부가 성자 성령 성부요, 성자가 또 그라면 성자가 누구냐? 성자가 성부요 성령이요 성자입니다. 성령은? 성령이 성부요 성자요 성령입니다.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런데, 위가 서이라. 위가 서이라 말은 위라는 것은 지위라 말이요 직위라 말이요 위에는 벌써 의무와 책임과 그 본분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부의 위라 말은 성부의 하는 일이 있고 성부의 책임이 있고 성부의 위치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한 하나님이 이런 일 맡을 때에는 이 하나님이라 저런 일 맡을 때는 저 하나님이라 이렇게 했지 본체는 하나시요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요것을 똑똑히 모르면 안 되는데, 이걸 지금 모르다 보니까, 모두 이 신학자들이 어름어름하이 ‘그거는 모른다’ 이렇게만 자꾸 이래 해 놔 놓으니까 거기 무엇이 들었는가 싶어 가지고 사람들이 자꾸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그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으로서 이와 같으냐 유한한 물건으로부터는 꼭 그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비유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창조주이기 때문에 피조물을 가지고서 이와 같은 것인가 이렇게 해 가지고는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 직분을 가졌을 때에는 호주라 이랍니다. 호주. ‘이 집에 호주가 누고?’ 하니까 어떤 남자가 하나 썩 나옵니다.

이거는 호주. 또 있다가서 ‘이 부인의 남편을 누구냐?’ 하니까 또 있다가 또 그 사람이 옵니다. ‘네가 또 호주고 또 네가 남편이라 말이냐?’ 그렇다고. 또 이제 ‘이 아이의 보호자인 아버지는 누구냐?’ 이라니까 또 제가 나옵니다.

그러면, 남편의 지위가 있고 책임이 있고 호주의 지위가 있고 책임이 있고 또 아버지의 지위가 있고 책임이 있는데 그 아들이, 이 아이가 뉘 아이인데 이래 냅뒀느냐고서 이거 이 아이 아비가 어데 있느냐 하면 제가 나와서 책임 져야 돼.

‘이 여자가 어떤 여자인데 이 남편이 어데 갔어, 이 남편 없나, 이 여자?’ 이라니까 또 그 남자가 나와 가지고 남편의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 가정에는 아무 의무도 책임도 안 하고 이라니까 이 호주가 누구냐 하면 또 그 사람이 거기 나가 가지고서 그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꼭 그와 같은데 그런 것 가지고서 딱 들어 맞는 거는 아닙니다. 왜? 이거는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 면에서 틀려서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게는 아버지가 나오고 아들이 나오고 또 성령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에 혼돈되기 쉽다 그거요.

이래서, 이단이 어데서 제일 많이 나오느냐 하면은 삼위 일체에서 이단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삼위 일체에서 이단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이단이 어데서 많이 나오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그 자유성이라는 이것이 조화를 바로 가지지 못해 가지고서 이단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잘 듣고 기도하고 알라고 애를 써야 되지 그렇게 쉽게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불타고 없어질 그까짓 것을 만드는 데에도 이 과학이라는 그런 것도 그것을 일생 동안 연구해도 다 연구 못 하고 저 사람 아는 거 이 사람 모르고 이 사람 아는 거 저 사람 모르고 이러기 때문에, 그 전공하는 전문 박사들이 다 각각 모두 종류마다 따로 있고 이라는데 하물며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를 만드는 이 일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말을 들어서 지식으로 알아 가지고 지식으로 알고 또 지식으로 알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또 성령으로 감동 받아서, 자기 이성 지성이 들어 깨달은 거보다도 성령의 감동이 오면은 자기 이성을 초월하고 지성을 초월해서 깨닫게 되고, 그라면 믿게 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능력을 받게 되고 이래 가지고 또 실상을 이루고 이렇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쉽게, 제가 의학 박사도 하나 될라고 그래도 국민학교 때까지 치면 얼마나 됩니까? 국민학교 때까지 치면 한 십 이 년 아마, 십 이 년에 육 년이면 십 팔 년 됩니까? 십 팔 년 또 한 이 년 뭐 또 박사 준비해야 될 거고 하면 한 이십 년 가량 걸려 가지고서 그 의학 박사, 의학 박사 된다고 뭐 다 아나요? 요 귀때기 박사도 있고 코구멍 박사도 있고 눈 박사도 있고 이 박사도 있고. 그것도 한정 없이 있는 건데. 그것도 한 이십 년 걸리는데, 예수 믿어서 구원얻는 이것은 그만 하루만 배우면 다 될 줄로 알고 몇 시간 배우면 다 될 줄로 알고, 의사도 자기가 도태당하지 안할라면은 의학계에서 나오는 월보나 이 주간보나 그런 걸 계속해서 읽어서 자꾸 발달돼 나가는 데 자기가 배워 나가고 따라 나가고 이래야 되는 건데, 이거는 일주일 내 있다가서 오전만 딱 와 가지고서 예배 보고 나가면서도 오전 예배 시간도 ‘지루하다’ 너는 예수를 믿되 네 고기덩어리와 마음의 기능은 지옥을 가야 된다. 그 지옥 갈 자이지 어짤 자라? 제가 그래 가지고 무슨, 지옥 가지 어짤 것입니까? ‘나는 그거 다 안다’ 여게 좀 박사들이라 하는 사람들 있으면 내가 설교 똑 해 놓고 그 설교를 문제를 한 다섯 개 내면서 답안 하나만 바로 써도 아주 백점을 주겠소. 그렇게 둔하고 모릅니다. 알기 쉬운 거 같애도.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의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그렇게, 유한이 무한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쉬운 것인 줄압니까? 이종교의 지식이라 하는 그까짓 거는 배울 것도 없어. 그거는 다 인간들 자기 속에 다 있는 것이라. 그거 다 인간들 속에 있는, 인간들 속에 있는 주관을 뽑아낸 것을 가리켜 철학이라 합니다.

종교 쳐 놓고 철학 아닌 종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라.

순전히 계시의 도입니다, 계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없는 하나님의 것을 열어 보여서 받아 가지고 아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종교는 주관의 도요 기독교는 전부 객관의 도입니다.

성부가 성자에게 대해서 행하신 것은 다른 것 아무것도 없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성부가 성자를 사랑하신 것뿐입니다. 사랑 그거 하나 가지고 다 됐어. 사랑하신 것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이랬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처럼 너희도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게, 사랑이라는 그 말은, 사랑의 행사는 인간은 사랑을 가질 수 없는 것이고 사랑은 하나뿐인데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간들에게 있는 사랑은 그것은 다 가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받아 가지고 그 사랑 가지고 이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 사랑이 없느냐 하면 사랑이 없는 이유는, 사랑이라면 자기가 여게도 사랑 저게도 사랑 아무리 공간이 얼마나 넓어도 이 우주 안에는서도 그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변동이 없고 내나 우주 끝에 가도 사랑은 사랑이고 또 이 세상 또 영계 가도 사랑은 사랑이고 지금도 사랑은 사랑이고 억만 년이 지나도 사랑은 사랑이고 이래 돼야 그게 사랑이지 오늘 사랑한 것이 내일 미움이 돼 버렸고 오늘 사랑함으로 좋게 한 것이 내일 멸망시킨 일이 되면 그까짓 게 뭐 사랑이 될 거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전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알겠습니까? 전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요 전능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요 주권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해서 이렇게 했지마는서도 다른 주권자가 있다가서 정반대로 싹 그어 버리면 그만이라 말이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주권자가 돼야 사랑을 가질 수 있고 전능자가 돼야 사랑을 가질 수 있고 전지자가 돼야 사랑을 가질 수가 있고 또 주권자지마는서도 여게는 제가, 권세는, 주권은 잡기는 잡았지마는서도 저 말단의 구석에 가 가지고는 엉뚱한 딴 놀음해도 그거 모르면 안 될 거라 그말이오. 주권 개별 섭리자라야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알아 듣겠어요? 개별 섭리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거,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래 째그리고 저래 째그리는 그것도 주님이 다 개별하셔서 그분이 다 섭리하고 계신다 말이오. 이렇게 물샐틈 없이 딱 이래 가지고 있는 그분이 사랑하지 그분 외에는 사랑을 가질 자가 없어. 다른 거는 사랑을 말하지만 다 거짓부리라.

거짓 사랑은, 배암이 준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혈통 사랑. ‘요거는 내 피를 타고 나왔기 때문에’ 뭐 물은 묽지마는 피는 진하다 그걸 가지고 어떤 말쟁이가 이래 해 가지고 그렇게 말했는데 피 그게 그렇게 큰 일인 줄 압니까? 가인과 아벨이 내나 바로 부정 모혈에서 바로 나온 그 형제간이지마는 서로 죽이지 안했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안했소? 그거 뭐 피가 있다 말이요? 또 뭘 지금 요새 우리 민족 우리 민족 떠들지마는 아무 민족이든지 다 아담 해와의 자손이지 아담 해와 자손 아닌 게 어데 있겠습니까? 조금 위에 가니까 전부 형제간이요 조금 위에 가니까 하나요 이런데, 이제 오랫동안 많이 뻗쳐 내려오면 달라지고 또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고 풍토에 따라서 달라지고 의식주에 따라서 달라지고 생활에 따라서 달라지고 다 이래 쪼개지고 쪼개지는 것인데 그뭐 혈통 사랑 피 그것이 무슨 권세가 있는 줄 압니까? 혈통의 사랑. ‘이거는 내 새끼라. 내 피가 나갔다.’ 이래 가지고 또 사랑. 그것도 다 실은 가짜입니다, 아무 권위 없어.

그거는 어데다가 써먹느냐 하면은 참 사랑을 찾아갈 때에 참 사랑의 중매장이는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혈통의 사랑으로 ‘요거는 내 새끼라. 뭐 내 손자라. 내 족속이라.’ 이렇게 하는 그것이 참 사랑을 찾아가는 중매 역할을 하는 데는 필요하지 그거 외에는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네가 내 혈통이기 때문에 내 말 들으라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연접시켜 주면 참 그거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 되지마는서도 그외에 거는 아무 소용없다 그말이오.

동류의 사랑도, 뭐 친구의 사랑이 어데, 전우ㅡ전쟁하면서 죽고 사는 것을 같이 해서 겪어 나온ㅡ벗 중에는 전우가 제일 참 친밀한 벗인데 암만 전우라 할지라도 그것도 나중에 가서 그만 사상이 달라져 버리면 서로 죽일라 합니다. 또 정욕 사랑, 정욕 사랑은 암컷이 수컷 사랑하고 수컷이 암컷 사랑하고 뭐 떠들어 쌓지마는서도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뭐 뭐이 됩니까? 암컷이 수컷 사랑하고 수컷이 암컷 사랑했지마는서도 하나가 죽어 가지고서 거석해 놓으니까 나중에 그것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아가페 사랑, 평가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게 참 사랑인데 이 사랑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셨으면 이 사랑이란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두 가지 뜻을 말합니다. 하나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안보한다 그말이오. 다 책임진다 그말이오. 상대방을 책임진다. 도덕면도 책임지고, 생명면도 책임지고, 금생면도 책임지고, 내세면도 책임지고, 활동면도 책임지고, 영광면도 책임지고, 권위면도 책임지고, 평강면도 책임지고 모든 면을 다 책임진다. 사랑은 책임진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 사랑을 가질 수 있지 피조물은 사랑을 가질 수가 없어.

뭐 시집 가고 장가가면 이거 외에는 없다, 이 이상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그것도 그저 정욕 사랑 암컷 수컷이 사랑하는 그것이지 나중에 그것도 나중에 늙어지면 그만이고 약해지면 그만이고 병들면 그만이고 정욕이 차차차차 쇠해지는 데 따라서 그 사랑도 쇠해지고 정욕 하나도 없으면 이제 하나도 필요가 없습니다. 도울 수도 없고 그리 되면은 옆에 오는 것도 귀찮게 된다 그말이오. 송장 옆에 있으면 송장이 무서우니까 자꾸 송장을 벗어 나갈라 하지 무슨 소용 있어? 상대방을 모든 면으로 이 공간에서도 책임지고 저 공간에서도 책임지고 어데서든지 책임지고, 어데서든지 어떤 공간에서라도 책임지고 어떤 시간에서라도 책임지고 또 어떤 종류에서라도 책임지고 또 영원히 책임지고, 종류에 책임진다 말은 그 생명도 책임지고 죽는 것도 책임지고 평안한 것도 책임지고 부도 책임지고 가난도 책임지고 약한 것도 책임지고 강한 것도 책임지고 모든 것 책임지니까 이분은 전능자라야 되고 전능자라도 전지가 안 되면 또 헛일이라 말이오. 전지자가 안 되면 잘못 알고 해 놓으면 헛일 아닙니까? 이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또 모든 면에 충만하도록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주는 것이 사랑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것뿐이라. 삼위 일체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인데 한 하나님께서, 성자라는 그 위를 맡은 위에게 이 하나님께서 이 성자의 직분을 맡도록 이 직분을 메워서 보내면서 사랑한 것이 뭐이냐? 성자가 성자의 직분을 행하는 데에 그 모든 것을 다 책임맡아 주신 이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본체인데, 한 하나님이지마는 직분을 갈라서 할 때에는 내나 성부이니까 성부가 책임맡고 성령이 책임맡고 그렇게 다 책임맡은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책임맡으셨다 그말이오. 아버지께서 나를 책임맡으셨다. 그러면 책임맡으셨으면은 예수님을 책임맡으셨으니까 예수님 자체를 책임맡는 것이 책임맡는 것이요 예수님의 의무를 책임을 맡는 것이 책임 맡는 것이요 예수님의 본분을 책임맡는 것이 책임맡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그 일은 대속의 일을 했는데 그 일을 다 완성 완공을 하도록 이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책임맡아 주었다 하는 그말입니다.

또, 사랑은 주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 속성적으로 역사적으로 모든 지능적으로 본성적으로 소유적으로 그 모든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전부를 다 아들에게 다 줬다. 모든 거 아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줬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서 이 대형 대행 대화친을 한 것은 택한 자들을 했고, 택한 자들을 한 것은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들의 처음 열매로 우리를 하신 것입니다. 처음 열매로. 처음 열매이니까 두번째 열매도 또 그와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ㅡ당신이 지으신 모든 만물 중에ㅡ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장 17절 18절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거 그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안했는데, 아들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해 주시는 고 하나로 만족하고 고 하나로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모자라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근본 예수님의 신성은 신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니까 거게 뭐 보탤 것이 있겠소 덜 것이 있겠소? 예수님의 신성에는 보탤 것 하나도 없습니다. 못 보탭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완전이기 때문에 거기는 보태지도 못하고 감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에게 보태고 감하고 잘되고 잘못된 것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이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 인성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도 잘못됨이 없이 다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인 양성 일위인데 일위가 이 세상에 오셔 가지고서 모든 면에 다 완성을 했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성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인데, 피조물인데 피조물 중에서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되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이 예수님의 인성인 피조물 이것이 제일 귀하고 존귀하고 제일 완전하고 권위 있고 제일 가치 있다. 자존자, 창조주, 자존자 다음에는 예수님의 인성이 제일 완전자가 됐다. 피조물로서는 제일 완전자가 됐다. 제일 완전 성자가 됐다.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귀한 자가 되었고 모든 피조물 중에서는 제일 쓸모 있는 것이 됐고 창조주도 제일 좋아하고 피조물도 제일 좋아하는 이것이 됐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한번 아는 사람 말해 보이소.

‘그를’ 뭐라고? 양성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없어? ‘하나님' 그래도 몰라?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하나님 우편이라 말은 사람들 말로 표시기 때문에 그런데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왕이요 그 다음에, 우편에 있다 말은 사람들이 그때 정치 조직을 옛날 하는 그것을 따라서 우편에 있다 말은 하나님 한 분만 위에 있고 그 모든 피조물 위에는 제일 으뜸 가는 자리라.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 우편이라는 그 해석이 어찌 돼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 되고 아버지를 힘입어서 모든 면에 완전 승리를 했다. 모든 피조물을 멸망에서 완전 구원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다 통치하시게 됐다.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그런고로 생사의 모든 주권을 다 가지시게 됐다. 인간이나 천사나 모든 만물을 심판하는 권세를 홀로 가지셨다. 만물은 다 그를 위해서 있고 그에게 다스림을 받고 또 그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됐다. 그것을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우편은 완전 승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단독 받고, 단독 받아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창조주가 다 일으키는데 창조주에게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서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다 공급하고 다 은혜를 베풀어서 시은해 준다. 그 위치를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피조물 가운데에 성공한 것을 골로새서 1장에 읽어 보면은 여러분들이 알 것이고 에베소 1장을 읽어 보면은 여러분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승리와 성공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와 성공은 저 하늘에 있는 것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되고 땅에 것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되고 땅 아래 있는 것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고, 물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은 그거 한 상징으로 말한 것인데, 이제, 영원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그 모든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고 마지막에 거게서도 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한다 이랬습니다. 모든 멸망 가운데 있는 멸망들이 말하기를 주님에게 대해서 주의 심판은 참 지극히 공평되고 거룩하다 이렇게 하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다 성공과 승리를 다 했습니다. 또 그들에게 만족하게 뭣을 다 영원히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졌습니다.

여게서, 남편들은 찍해야 생명도 하나님의 생명이지 또 몸뚱이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제 숨쉬는 것도 하나님의 것이지 전부 제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서 제가 있으면서 저거 가족을 먹여 살려도 막 권리를 부리고 제가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한다고서 아내라 하면 남편이 꼼짝도 못 하게 하고 뭐 숨도 못 쉬구로 꼼짝도 못 하구로 이래 할 수 있는데 그거 찍해야 다 주님의 것을 가지고서 받아 가지고 찍해야 중간에서 중매 역할, 중계 역할하는 것이지 별 게 없지마는서도 그렇게 권위가 있는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영원히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고 생사 화복 모든 것을 다 주관하고 생명 호흡도 다 주고서 이렇게 하는, 예수님이 아니면 천상 천하에 있는 피조물은, 만일 비유컨대 예수님이 없으면은 마치 어떤 큰 공장에 큰 모타가 하나 있어 가지고서 빙빙빙빙 돌고 이래 모든 게 다 살아 움직였는데 그만 그 전기만 딱 끊어져 버리면 그것이 다 죽은 거와같이 꼼짝 못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중보자 되는 예수님만 딱 없어져 버리면 요 모든 피조물은 완전히 동결돼 버리고 완전히 비참하게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위치의 중요한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 실력도 가지게 됐고 또 그 위치를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맡기기도 했고 또 위치를 감당하게도 됐고 만물들은 그로 인하여서 주라 시인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이렇게 모든 완전 승리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그렇게 승리했다. 그러면 완전 승리, 얼마나 승리했는가? 이것도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말해 가지고서 이걸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혼자 생각해 보십시오. 혼자, 예수님이 어떤 승리를 했는가? 이것을 자기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자기 지식의 범위대로 자꾸 이렇게 생각해 보면은 참, 또 생각하면 놀래고 놀래고 참 얼마나 그분의 승리한 그분을 자꾸 연구를 해야 됩니다.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알기 위해서 밤도 새우고 하루도 지내고 이것을 알라고 이래 알아 나가다 보니까 그만 밥 먹을 일도 잊어 버리고 하루도 잊어 버리고 이틀도 잊어 버리고 사흘도 잊어 버리고 열흘도 잊어 버리고 뭐 스무 날도 잊어 버리고 이래 가지고서 밥 먹을 줄 모르고 완전히 이 명상에 깊이 들어가 가지고서, 주님이 어떤 승리를 했나? 주님은 어떤 성공을 했나? 그분을 연구해 가지고 그분이 성공한 그 성공을 연구하면은 땅 위에 모든 것이 다 거게 속했고 그를 위해서 있고 그로 인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고 난 다음에 피조물에 대해서는 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을 알고 난 다음에는 큰 게 하나도 없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피조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 한 분의 비위를 맞췄으면 모든 피조물의 비위는 다 맞춘 게 되고 만다 그말이오. 이 오묘에 이래서, 삼위 일체 하나님을 연구하다가, 성부를 연구하고 성자를 연구하고 성령을 연구하고 아버지의 우편을 연구하고 이렇게 예수님이 승리한 이 승리를 연구하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완전 승리를 했어. 승리했는데, 예수님이 그 승리하신 것이 그것이 아버지에게 받아 가지고 승리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아 가지고 승리했어.

아버지에게 받아 가지고 승리했는데 예수님 단독으로는, 예수님이 단독 한 것이 몇 가지나 됩니까? 예수님께서 단독이 말한 것이 몇 가지나 되며 예수님 단독이 계획한 것이 몇 가지나 되며 예수님 단독이 이라면 좋겠다 저라면 좋겠다 그 의사를 낸 것이 몇 가지나 되며 예수님 홀로 언행 심사에 하신 일이 몇 가지나 됩니까? 저 지하실 부장 ○ 선생.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거지로구만, 그라면.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습니다. 털끝만한 것도 없어. 단독으로 한 거는 털끝만한 것도 없어.

그뭐 그렇게 이 설교를 할 때에 여러분들이 알아서 한 가지라도 알면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성공하셨다는 것이라도 알면 예수님의 승리 성공이 어데서 나왔다 하면은 깜짝 놀래고 ‘그 어데서 나왔노?’ 이럴 건데 예수님의 승리라 하는 것은 여게 공장 차려 가지고서 사탕 공장 사장 승리만치도 여기지 안하고 이 어떤 이 땅 위에 있는 무슨 나라가 강대국 된 것만치도 여기지 안하는, 이러니까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몰라 놨으니 뭐 말이 통해야 되지, 말이 통해야.

이러니까, 이 강대한 것을 보는 사람은 땅 위에 강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부득이 그것을 구원해야 되기 때문에 알아 주기 위해서 ‘예, 큽니다. 큽니다.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이렇지마는 속으로는 뭐이냐 하면은, 속으로 너도 생명이 없다. 죽었기 때문에 이걸 생명에다 붙여야 살지 그리 안 하면 이거 완전히 오늘이라도 불타고 그만, 주님 오시면 불타 버리고 마는데 이걸 구출해야 되겠다. 구출해야 되는 데는 그걸 자꾸 저 좋다고 어어어어 이래야 되지 그걸 사실대로 말하면 원수가 될 터이니까 복음도 전해지지 안할 것이라 말이오.

그러니 막 이렇게 이렇게 하지 땅 위에 이렇게 할 것이 어디 있느냐?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하나도 없어. 가치할 것이 어데 있어? 하나도 없어.

그런데, 공연히 송장이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막 뻐기고 송장이 지금 무슨 권세 있는듯이 야단을 지기지 생명도 없는 게 그래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걸 살릴라 하는 데는 부득이 그것을 설설 얼러서 ‘귀합니다 귀합니다’ 이래 가지고 살려야 되기 때문에 이렇지 그게 살고 나 보지. 살고 난 다음에야, 그전에 여기 ○○○ 장로님, 내가 벌벌 떱니다. 예예 예예, 그때 거창 갔다 와서 막 나한테 시비를 하기 때문에 아이구 예 그렇습니까? 내가 그거 참 잘못했습니다. 절절절 맸지요. 절절절 매고 이래 뭐 뭐라 하면 예예예 그래 하겠습니다. 이랬지마는 요새는 도를 좀 알았어. 요새는 도를 알기 때문에 아주 납작 눌러 버립니다. 납작 눌러요. 도를 알았기 때문에. 왜? 하나님의 도에서 옳은 것이야 삐뚤어진 거 납작 눌러서 삐뚤어진 거 탁 야단을 쳐 버립니다. 지금은 뭐 삶은 나물 모양으로 부들부들하이 누글누글하이, 자기라는 주관이라는 존재는 하나도 없어져 버렸어. 인제, 이거 생절이라 이런 줄 모르고 참 그게 큰 줄 알고 이래 오인을 하고 있다 그거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완전 승리를 하셨는데, 그는 피조물로서는 완전 승리했어.

피조물로서는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중보가 됐습니다.

그러면, 완전 승리를 하신 것은 단독이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아버지로 말미암아 한 것뿐인데 아버지에게서 뭐 받았느냐? 받은 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뭐이냐? 사랑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이와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아버지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고 내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지실 뿐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주셨다. 사랑은 책임과 주는 것이라. 사랑은 책임과 주는 것이라. 자기가 상대방의 것을 책임지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책임져 봤자 그까짓 게 오늘 책임져서 막 내가 뭐이든지 다 한다 이렇게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숨 부르면 그만 아이고 아야 아야 아야 그라다가 그만 깔딱깔딱깔딱 하다가 코르르 팩! 송장이 돼 버리니까 그게 책임지면 무슨 책임지겠소? 책임질 권리 없습니다. 이제 주님이라야 책임을 지시지. 책임지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주시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책임 지시니까 아들의 그 모든 사명 대속에 피조물의 중보가 되는 그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 지시고 그 완수하는 데에 필요한 것을 다 제공해 주셨다 그거요. 다 제공해 주셨어.

제공해 주시고 그 다음에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주님에게 다 맡기셨어.

그러면, 이렇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것같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여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요 같다 말을 여러분들이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요 같다 말을 여러분들이 잘 깨달아야 됩니다. 같다 말은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형태가 같다는 말만이 아니고 또 그 성질만이 같다 말이 아니고 여게 특별히 같다 말은 책임짐이 같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줌이 같다 그말이요. 제공해 줌이 같다.

그러면, 아버지는 전지 전능자이시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신 아버지였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실 때에 가지고 있던 자본, 자본을 가지고, 줄 자본을 가지고 사랑하셨는데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줄 자본을 가지고 사랑하신 거와 같은 그런 자본을 예수님께서 가졌습니까 못 가졌습니까? 가졌습니까 못 가졌습니까? 꼭 같이 가졌다 그말이오. 그것을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으니’ 이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승리했기 때문에 다 받았다 말이오.

그러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실 때의 그 자본과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이 자본이 꼭 같은 자본 가지고서 사랑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 맡으신 것같이 나도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책임을 맡는다.

무슨 책임? 아버지가 나에게 책임 맡은 것은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그 일이 완성되도록,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사랑이 완성하기까지의 책임을 지셨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 대해서 무슨 책임을 지십니까? 너희들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인류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완성을 할 수 있는 그 책임을 내가 지고 있다.

이러니까, 주님의 아래 위의 입장, 주님의 위에와 아래의 입장과 우리의 위에와 아래의 입장, 이 입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것만 해도 녹아집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듣지만, 이걸 알라면은 적어도 몇 해 동안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새기고 새기고 이래야 알아지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알아지는 거 아니라.

그까짓 거 뭐 무슨 철학이든지 의학이든지, 철학 같은 거 천문학 같은 거 뭐 의학 같은 거 그런 거야 이거 기계적으로 이거 뭐 기술이 손에 서투르니까 기술이 그렇지 그 논리라 하는 그까짓 거야 하루는 안 되면 한 달이면 다 알 수가 있어, 뭐. 그거 알면 그거 다 뭐 그게 그건데 모를 게 뭐 있겠어? 그것도 몇십 년이 걸리는데 하물며 이 일이 그래 쉽게 된다는 것이 너무 뚱딴지라 그말이오. 그저, 여러 만 껍데기라면은 만 껍데기 중에 제일 껍데기 껍데기 그것도 지금 알똥말똥 하면서 제가 아는 척 하기 때문에 스스로 속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밑에는 모든 피조물 위에는 아버지 그 중간에 끼어 가지고서 있던 그 위치와 같은 위치를 우리가 가졌고 그 책임과 같은 책임을 우리가 가졌고 또 그 성공과 같은 그 성공을 우리가 지금 할라고 이 성공의 희망을 지금 우리가 가졌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당신이 받아 가지고 당신의 것으로 비용으로 사용해 가지고 일을 성공할 수 있는 그 모든 배경과 그 자본과 꼭 같은 자본을 우리가 가지게 됐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피조물의 중보되심과 같은 그 직책이요 그 입장이요 그 위치요 그 아래 위를 다 가졌다. 그 배경도 가졌고 또 그 의무와 책임의 무대도 가지고 있다. 꼭 같이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데, 이 일을 그라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감당하셨는가? 이 일을, 위에 지극히 큰 자본이 있고 밑에 지극히 큰 이 무대 활 무대의 이것이 있는데 이 중간에서 위에 것 당겨 가지고 아래에 완성을 한 이 성공을 했는데 이 성공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 무슨 방편 가지고 성공했는가? 그 성공한 방편을 거게 말씀해 놨다 말이오.

그 성공한 방편을 뭣 가지고 성공했다고 했습니까? 내가 무엇 가지고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이유를 뭐라 했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 안에 거하면 이 성공하는데 성공하면 예수님과 같은 성공이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기고, 내가 이 모든 것을 성공하고 난 다음에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어누리가 있는 줄 압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공했으니까 예수님이 다 가졌는데 뭐 그러면 우리 가질 것이 뭐 있는가? 요거는, 망할 것은 전부 제한적입니다. 망할 것은 다 제한적이오.

여러분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만했으니까 예수님이 단독 독차지했으니까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있어 없어? 아버지의 사랑을 그라면 주님이 받아 가졌으니까 다른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 가질 수 있소 없소? 천 인도 가지고 만 인도 가지고 억만 인도 가지고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기쁨과 평강을 가졌으니까 혼자 다 차지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그 기쁨과 평강 못 차지합니까? 모든 것이 다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것은 다 그렇습니다. 다 그래. 사랑이면 혼자밖에 못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을 억억만 명이 다 해도, 암만 해도 줄어지지 안해.

나 혼자 사랑했는데 저 사람도 사랑 가졌으면 내 모가치가 적어집니까? 나는 사랑을 가졌는데 저 갑이라는 사람이 사랑을 가졌으니까 사랑이 내 모가치가 적어집니까 천 명도 가질 수 있고 만 명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천 명도 만 명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천 명도 만 명도 가지면 많이 가질수록이 사랑이 내 모가치 사랑이 줄어집니까 많이 갈수록이 사람이 많아집니까? 많아진다 말이오. 이것이 하늘나라에 속한 성질이요 생명에 속한 성질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나는 쓰면은 다른 사람은 쓰지 못합니까? 진리는 내가 다 써먹는데 또 저, 사람도 다 써먹고, ‘모든 사람 이 사람 다 써먹으면 없을 건데 어찌 써먹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사망에 속한, 모든 사망에 속한 것들은 이 사람에게 있으면 저 사람에게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쓰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창조주가 뿌리가 됐기 때문에 반석 위에 세운 집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여게서,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한 그 사랑하신 거와같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이거 하나면 우리의 자본은 다입니다. 우리가 이외에 구할 것 또 있습니까?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거 하나 가지고 족했지 그외에 딴걸 구하지 안했어. 우리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거 하나면 족합니다. 이거 하나면 족해요.

그러면, 내게 대해서 이런 거 저런 거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주님의 것을 다 주면 그거 가지고 모자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그거 가지고 모자랍니까? 모자라는 게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모자랄 게 없어. 모자랄 게 있어야지? 예수님도 그거 가지고 다 됐는데. 하나님 아버지도 그 이상 거는 가진 게 없는데, 그것만 가졌는데. 이러니까 주님이 내게 주시고자 하는 그것으로써 우리의 필요한 것은 족합니다. 그 이상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시는데 보수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요 여수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요 영리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영리적으로 주는 거는 조그만한 거 주고 많이 받는 장사할라고 하는 것이고 또 내가 주니까 너는 또 나를 달라 보수로 주는 게 아니라. 이거는 영리도 보수도 아니요 그냥 사랑하므로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므로. 사랑하므로 주시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므로 주시기 때문에 억지도 아니요 강제도 아니요 주고 싶어 못 견뎌, 주고 싶어 못 견뎌서 평생 줘도, 줘야 만족하고 하는 이 주고 싶어 못 견디는 요 성질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아버지의 충만을 주님에게 다 주셨고 주님이 이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아 가지고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지금 원하고 원하고 계시는 여게 있다 말이오.

이런데, 우리가 딴것을 찾을 필요가 없어. 딴거 찾을 필요가 없는데, 다만 그이의 주시는 것을 내가 받는 데에는 그 받는 법칙이 있으니까 그 법칙이 뭐이냐 하면 그 법칙이 계명인데, 그러면 받아 가지고 우리가 어째 되느냐? 받아 가지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니까 천상 천하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우리는 삼등이 된다 그말이오. 셋째 지위가 돼. 첫째 이제 자존하신 하나님 그 다음에 신인 양성 일위이신, 도성 인신하신 예수님 그 다음에 우리, 이만하면 되지 안했습니까? 이 외에 무슨 지위를 우리가 원하겠소? 이 지위 외에 뭐 원하겠소?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 기쁨은 보니까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니까 나타나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모든 기쁨이라 하는 것은 그 슬픔과 고통을 마귀란 놈들이 줘 가지고 서 모두가 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그 기쁨을 분석해 보십시요. 그 기쁨은, 그 기쁨은 언젠가 그 세력이 바꿔질 때에, 그 지위가 바꿔질 때에, 입장이 바꿔질 때에, 힘이 바꿔질 때에, 환경이 바꿔질 때에 반드시 기쁜 것만치 슬프게 하는 원수가 바짝 일어나 가지고서 복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 춘향전에 그런 말 있어. 춘향전에 ‘고진 감래요’ 괴로운 것이 다 되면 단 것이 온다.

‘흥진 비래라’ 흥이 다 지나가면은 슬픈 것이 온다 그렇게 말했어.

빌립보 3장에 말씀하시기를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부끄러움이라니? 앞으로 모든 만물이 다 전부 자유성을 가지고 나타나면은 이제 영광이라 했는데 영광이라 한 그것은 이제 손가락질 하면서 욕질할 것들이 많다 말이오. 이 세상에서 이다음에 앞으로 욕 얻어 먹을 것이 하나 있으면 영광, 그만치 영광이라.

열 있으면 더 영광이라. 백 있으면 더 영광이라. 영광이라 하는 그 모든 것은 뒤에 욕 얻어 먹을 것이 많은 욕 뭉텅이 많은 것이 영광이라 그말이오. 알아 듣겠습니까? 이것도 못 알아 들어. 알기 어려워.

어떤 종교가가 있는데 그 종교가가 그 종교 창설자가 있어 가지고서, 하나님 도 외에 것은 다 거짓부리라. 종교자가 있는데 그 종교 창설자가 돼 가지고 그 종교의 교도가, 회회교로 말하면 상당히 많은데 그때, 이란에 있는 그 영감 이름이 뭐이요? 호메이니옹인가? 호메이니옹을 숭배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 말이오.

모두 회회교를 다 믿으니까, 그거 영광이 뭐이요? 그 뭐 정치가들이니 뭐이니 그 호메이니옹 그 영감 말하는 대로 줄줄 따랐다 말이오. 얼마나 영광입니까? 영광이지마는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그말이 무슨 말인가? 이다음에 모든 것이 휘떡 뒤집어져 가지고서 모든 것이 다 정상화가 될 때에는 거게 따른 사람들이 ‘이놈의 영감아, 네가 나에게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 해 가지고서 했더니마는 전부이 너 말한 것은 통통 거짓말이고 전부 속인 것뿐이구나’ 이라니까 속혔다고, 지금 천 명이 옹호하고 만 명이 옹호하면은 천 명이 시비할 것이고 만 명이 송사할 것이고 다 복수할 터이니까 그렇지 안한 영광이 하나도 없고 그렇지 안한 지위가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좀 생각해 봐요.

그렇지, 안 그런가? 공연히 말만 아니라. 좀 생각해 봐. 그 말이 과연 그러나 안 그러나 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권세자가 그 권세를 내놓고 하야를 할라 해도 하야를 하면은 이 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내 명을 유지하지 하야만 하는 날이면 복수자들이 와 일어날 터이니까 내 생명이 죽을 터이니까 못 한다는 그것이 다 정권자들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나라에 지금 여기 ○ 대통령이 만기가 되면은 아무 말 없이 평안하게 그렇게 정권을 다 이양을 하고 다 사면하고 하야하고 교체한다 하는데 만일 그렇게 한다면은 그것은 참 우리나라에서 이제 첫째로 있는 그 위대한 일입니다. 과거에는 정권자들이 다 정권을 내놓지 못했었어요. 복수자들이 많아서. 만일 그런 나라가 됐다면은 참 그거는 행복스러운 나라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정권을 내놔도 괜찮지마는서도 저 공산주의 그런 데는 정권을 내 놓은 날 죽는 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잡으면 안 내놓고 장기 정권을 가질라 하는 것이라 말이오.

땅 위에 있는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 부끄럽지 안한 게 하나도 없어.

부끄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아따야 오늘 밤에 결혼식하는 그 부부는 영 참 미남이고 미인이고 꽃 같네’ 뭐 꽃 같다고 그래 사진을 찍고, 막 ‘꽃 같네’ 이랬는데, 눈 밝은 사람이 떡 보니까 ‘어데 꽃이 있노? 보자?' 꽃 같다 하니까.

‘송장이로구만 송장이로구만.’ 나중에 보니까, `송장이 저렇게 꽃이, 아름다운 꽃이 송장이 돼?’ ‘가만 있어 봐 가만 있어. 조금 정신 차려 봐.' 좀 있다 보니까 송장이 옵니다. 송장, 귀신 같은 늙은 할망탕구가 하나 나오고 귀신 같은 영감탕구가 하나 나옵니다. 이래 나오니까’ ‘이게 누구지?' `아이고 그 징그럽다 귀신 같다, 똑.’ 사진 보이며 ‘이거 그거라. 이거 그거라. 이렇게 내가 꽃이라고 보고 놀래던 그게 내나 이 송장 이거야.’ 이러니까,아무것도 깊이 보면은 그렇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거야.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이거 영원합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하나 가지고 했습니다. 하나 가지고 이런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 가지고 이렇게 성공했어, 하나 가지고. 뭐 하나 가지고서 성공했습니까? 예수님은 뭐 하나 가지고 성공했소? 예? 이 또 몰라. 예수님은 뭐 하나 가지고서 성공했어? 저 ○○○ 집사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 그래.

아버지의 사랑이지 뭐 자꾸, 그러면 빵점 맞는다. 양성원에 가 빵점 맞아. 벌로 날뛰면 안 돼. 그래. 사랑은 사랑인데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가 나를 사랑’ 아버지의 사랑 하나 가지고 성공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실력이나 가치나 방편이나 목적이나 책임이나 의무나 성공이나 그 모든 면에 대해서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과 좀 차질이 있습니까.

좀 대소가 있습니까 뭐 좀 차이가 있습니까 꼭 같습니까? 꼭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꼭 같은 사랑으로 사랑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이 사랑 안에 거한 것은 뭐이냐 하면은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주님의 보좌에 같이 앉게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랑 안에 거할라면 어떻게 하면 거하게 되느냐? 거하는 것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거같이 너희들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그러면 주님의 계명이 뭐입니까? 주님의 계명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사랑 안에 거하는 그 계명이 곧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는 그 계명이니까 그 계명을 지키면 된다.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키면 됩니까? ‘그 계명은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도 피차에 서로 사랑하라’ 이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사랑한 것은, 사랑할라면 하나님의 본체시나 본체 거게서 우리를 구출하고 우리로 말미암아 만물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본체에서 거게서 낮아지시고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시고 가난해지시고 이렇게 땅 위에 피조물 같이 낮아지셔 가지고서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역사를 이루는데 온갖 곤욕과 굴곡이 왔었지마는서도 꼭 이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지고서 이 일을 성공을 했다 그말이오. 할 뿐만 아니라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영원히 이 일을 성공한 것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기 위해서 계속 이 일을 하셨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러므로서’ 인제 어찌 돼요? 이라다 보니까 천물 천물이 됐습니까? 이러다 보니까 천물 천물이 됐습니까 어찌 됐습니까? 이러다 보니까 천물 천물 됐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그 천물이 됐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라다 보니까 천물이 됐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우편에 앉아 계시고.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여러분들이 한번 읽어 보십시오. 빌립보 2장, 오늘 오전에 한번 읽어 봤지요.

「이러므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하나님이 높였으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높인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인성을 높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인성을 높였어. 우리도 예수님의 인성과 꼭 같은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성이 높아지는 길이라 말이오. 인성이 높아지는 거.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을 꿇게 하시고」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한다는 것을 예수의 이력, 행정, 예수님의 공로, 설정해 놓은 공로, 그 공로 앞에 다 머리 숙인다 말이오. 무릎 꿇는다 말이 다 머리 숙인다 말이오. 다 복종, 머리 숙여.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누가 강제로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모든 입으로 ‘나는 저분을 내 주로 삼겠다. 뭐 천군 천사도 많고 많지마는서도 모든 존재 가운데 피조물 가운데에 저분은 나의 주로 삼겠다’ 예수님의 인성을 내 주로 삼겠다 했다 말이오. 내 주로 삼겠다. 내 주로 삼겠다. 이렇게 옹호하면 영광이 있겠소 없겠소? 이거 참 장난 놀음이지마는서도 돈을 들이고 이래 가지고라도 우리 이 서구에 국회의원 될 때에 모든 서구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다 지지해서 이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내 보내겠다고서 지지를 해서 몇 명 지지받으면 국회의원 됩니까? 장로님, 몇 명 지지받으면 국회의원 됩니까? 몇 명 지지 받으면 국회의원 되지? 대략 몇 명이나 되는고? 이거, 우리는 천국 사람이라 세상 전혀 모르네. ○○○ 집사. 칠만? 이십만 명? 이십만 명 지지받으면 돼? 이십만 명 지지받으면 된대요.

이십만 명이 다 지지 안 합니다. 이십만 명이 지지하는데 그저 국회의원으로 뽑는 거게만 지지하겠습니다 이래도 영광 있다고 좋아서 야단인데 암만 국회의원으로 투표는 해 줘도 그 사람에게 자기 가정 맡기지 않습니다. 재산도 맡기지 안하요.

지도도 맡기지 안하고 그저 그 사람의 전 생활 가운데서 한 십분지 일이나 이십분지 일이나 삼십분지 일만 신임을 하고 맡겨 줘도 영광이라 영광이라 하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믿고 의지해서 주라 시인하면 그 영광이 있겠소 없겠소? 영광이 있겠소 없겠소? 그래, 이거 영광이라.

아무리 하만이가 온 전국이 다 하만이를 찬양하고 막 이렇게 높이고 하니까 영광이 충만했지마는서도 모르드개라는 사람 하나만 비쭉하게 있어도 영광 되지 안했는갑습니다. 그게 불쾌했어.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좋다고 해도 그게 영광 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도 ‘저게 껍데기로 좋다고 하지 내가 그 사람에게 언제 내가 가책되는 일 한번 했는데, 그 사람에게 해되는 일 한번 했는데, 그 사람에게 내 좀 잔인한 일 한번 했는데 그 사람을 좀 몰인정한 일 했는데, 그 사람에게 잘못된 일 하나 했는데’ 이거 있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좋다 해도 꾹 끼이고 좋다 할수록이 꾹 끼입니다.

꾹 끼이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뭣을 진정 잘했습니다. 잘했는데 그 사람이 오해를 품어 가지고서 날 욕을 합니다. 욕을 해도 ‘저게 언젠간가 나타날 터이니까’ 욕을 해도 언젠간가 나타날 터이니까 욕을 해도 ‘그래 그래 그래 그뭐 나는 그렇게 하지 안했어. 뭐 괜찮아 괜찮아.’ 이래도 그게 있을 때는 그럴 때는 기쁩니다. 기쁜데, 나중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을 진정 위한 게 돼 가지고 있어서 와서 자복을 하며 ‘내가 그때 욕을 해도 왜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도 안 해 줬습니까? 욕을 해도 싱글싱글 웃으면서 괜찮애 괜찮애 뭐 그래도 다 이해하고 있어 이라고 말았었는데 내가 보니까 그때 원통하게 이렇게 애매하고 욕을 하고 이래 애매하고 모략 중상하고 했으니까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할 그때에 우리 마음이 쾌해진다 말이오. 예수님의 기쁨은 다 그런 기쁨이라.

그런 기쁨, 진정 평가적으로 감탄해서 못 견디는 그런 그 영광과 존귀의 기쁨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예수님이 이 하나 가지고 이런 성공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성공한 성공과 같은 이런 성공, 여러분들, 이제 이 세계 어떤 강대국의 대통령 되기를 원합니까? 이제 예수님이 성공하신 거와 같은 이 성공을 원합니까? 어떤 거 원해요? 이 세상에서 온 세계를 통일해 가지고서 거기서 대통령 되고 왕이 되기를 그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요걸 믿어야 됩니다. 이성 비판적으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손을 안 들지마는서도 속으로는 뭐 조그만한 직장만 있어도 그만 예수 내놓고 직장에 도망 칩니다.

조그만한 것만 있어도. 그러기 때문에 뭘로 믿어야 돼요? 지성으로 믿어야 되고 이성으로 믿어야 되고 양심으로 믿어야 되고 감정으로 믿어야 되고 신경으로 믿어야 되고 근육으로 믿어야 되고 피부로 믿어야 되고 움직임으로 믿어야 되고 다 믿어야 된다 그거요.

오늘 이거 뭐 시간이 다 돼서, 그 밑에 여러분들이 자꾸 가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저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이 하나 가지고서 완전한 성공을 했고 그 외에 더 구할 것이 없었다. 그만 하면 다다. 이와같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신 거와 꼭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가지고 사랑하셨으니 이 사랑 하나 가지고 다 할 수 있다.

다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이 존영한 영광이라는 것이 뭐, 세상에 어떤 영광만 못 합니까? 어떤 것만 못 합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나은 영광이 있습니까? 없소. 성공이 있습니까? 성공도 없소. 이보다 큰거 있습니까? 큰것도 없소. 이보다 높은 지위가 있습니까? 지위도 없습니다. 이보다 가치 있는 게 있습니까? 가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제일입니다.

제일인데 이것은, 그러면 예수님의 입장과,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입장과 우리 입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 입장이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입장이 꼭 같애요. 소망도 꼭 같고 입장이 꼭 같애. 배경도 같고 희망도 같고 꼭 같애요.

꼭 같은데, 예수님이 성공하신 성공과 우리가 성공하는 성공이 그 방편이 다릅니까 같습니까? 예? 방편도 꼭 같애요. 예수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키는 거와같이 우리도 주님 계명 지키면 돼요. 예수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킨 거,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계명 준 그 계명이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나 꼭 같은 계명입니다. 꼭 같은 계명이오. 꼭 같은 계명인데, 계명 지키면 돼.

「이러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랑 안에 거한다는 거는 이 모든 걸 다 받는 위치를 네가 점령한다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 네 의무와 책임 본분을 다 완료할 수 있는 이 완성을 네가 가지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고 밑에 오전에 퍼뜩 말씀했는데 고거는 여러분들이 가서ㅡ좀 어려운 말입니다.

그렇게 쉽다고 생각지 말아요 이게 그라면 틀렸는가 자세히 좀 생각해 봐요. 가서 주석을 가지고 자꾸 찾아 봐요. 찾아 보면 거게서도 이리 저리 찾아 보면 여러분들이 깨달을 점이 있을 것이고 알 점이 있을 것이고 그라면 혹 참고가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오전에 몇 가지 연결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라 했어? 몇 가지 연결이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세 가지 연결. 세 가지 연결인데, 첫째는 무슨 연결이오? 사랑 연결, 또 그 다음에는? 의사 연결, 의사 연결이라말이나 하나님의 뜻 연결이라 말이나, 뜻이라 말은 진리라 말이요 진리 연결이라 말입니다. 의사 연결, 진리 연결. 연결, 그 다음에는 무슨 연결입니까? 활동 연결.

연결이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와의 의사도 꼭 같고 활동도 꼭 같고 결과도 꼭 같은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라. 이보다 더 큰 구원이 어데 있습니까? 이것이 안 되는가? 우리가 날마다 받고 있지마는서도 게을해서, 매일 계속 받아야 할 터인데, 매일 하루 수십 번 받아야 할 일을 수십 년 만에 한 번밖에 못 받으니까 앉은뱅이니까 이 구원을 언제 다 이루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빈틈 없이 받아 가지고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생각하라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 위주로 산 예수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인데 너희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길을 너희들이 이와같이 걸으면 예수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은 것같이 너희들은 주님의 우편에 앉아 있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 하는 것을 주님이 최종의 결론으로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사죄 칭의 화친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서 우리에게 완성을 하고 보니까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시고 완전히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할 일이 뭐 있습니까? 사죄와 칭의와 화친 내가 이것을 받아 가지고, 가지는 것은 공짜배기로 가지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내가 받아서 내 자체가 온전하게 되고 난 다음에 요 온전한 것을 가지고서 형제를 사랑하므로서 형제에게 사죄를 주기 위하고 칭의를 주기 위하고 화친을 주기 위해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치는 것인데 최종으로 바치는 것이 생명 바치는 것이 최종으로 바치는 것이니까 이제 이것을 우리들이 하는 것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이게 최고 사랑이라.

이러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이제 내 모든 소유와 정력과 시간과 모든 것을 인간 구원을 위해서 다 바쳐 인간을 사죄를 입히고 칭의를 입히고 화친을 입히기 위해서 이걸 다 바쳐야 되겠고 마지막에, 아무래도 여러분들 우리가 늙어 죽고 병들어 죽는 거보다도 이 생명을 이것을 이제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 생명까지 다 바쳐야만 우리가 될 것입니다. 이거 바쳐야 우리가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바쳐도, 과거에 생각하면 바치지 못하고 헛된 생활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러니까, 요것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고 자기의 남은, 심신의 전 생명과 모든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요 계명 지키기 위해서, 요 계명은 뭐인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니 요 일을 위해서 내 모든 것 다 바치고 생명까지 다 바치는 요것이 나 할 일이다. 요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요보다 더 귀중한 일 없다. 요것보다 더 할 일이 없다. 요게 꼭 잡고 요 일을 위해서 자기의 남은 때를 전부 딱 요게다가 다 가치를 두고서 요게다 다 직결시켜서 요게다가 다 주시해 가지고 마구 아낌없이 기회를 놓지 말고 투자하는 요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이요 영원히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 다음에는 새벽 기도에 나오면은 요것을 다시 계속해서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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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7 사랑의 봉사/ 요한 복음 3장 16절/ 791225화새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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