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이리가운데 보내심


선지자선교회 1988년 2월 21일 주후

 

본문 :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오전에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하는 이 말씀은 보라는  것은 현재로부터 앞으로 주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의 형편을  보라 그 말씀입니다.

 '보라' 하신 것은 과거만도 아니요 현재만도 아니요 미래만도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망라해서 주님이 구속하신 성도를 이 세상에 머물게 하는 동안의  그 모든 형편을 네가 자세히 살펴보라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내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구속의 주가 되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을 가리켜서 당신이 '내가' 그렇게 말씀했고 '너희를' 하는 것은 그  당시 있는 제자들만이 아니고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을 전부 망라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보낸다는 말은 이 세상에 내어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보낸다는 것은 이 세상에 신앙생활을 하도록 내어 보내는 것, 이 세상에서  무궁세계를 준비하는 구원 준비로 내어 보내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보냄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심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낸다는 말씀은 그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세상에 내어 보냄이, 세상에서 구원준비를 하도록 세상살이를  하게 함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거기에 불택자들은 말하기를 염소라고 말을 했고 또 여러 가지 맹수들로 말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여기에 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받은 성도들을  양으로 이렇게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이리는 오전에 말하였거니와 꼭 여기에 세파트  개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서 아주 날랜 맹수입니다. 모진 짐승 맹수, 호랑이 사자  그런 거와 같은 그런 종류에 속한 맹수인데 양을 제일 좋아하고 잘  잡아먹습니다. 양고기를 제일 좋아하는 것이 이리입니다. 양은 이리만 만나면  그만 꼼짝을 못 합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여기에 이리로 비유한 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살 때에 성도들을 해치는 온갖 것을 다 총칭해서 한 말로 이리라 그렇게  말했웁니다. 양을 잡아먹는 이리와 같이 성도들의 행복을 잡아먹는 세상 모든  온갖 화, 또 성도들의 그 모든 재물 그런 것을 잡아먹는 이리, 또 성도들의  지위와 권세를 잡아먹는 이리, 또 성도들의 사업을 잡아먹는 이리, 또 성도들의  온갖 입장과 처지에 형통하고 좋은 것을 다 잡아먹는 이리, 또 성도들의 건강을  잡아먹는 이리, 이런 것을 총칭해서 이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리는 전부를 이리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가 어떤 그 계획을 하는데 계획한 그 일이 성공이 될듯될듯  했는데 그만 그 성공을 딱 잡아먹는 그런 사고가 생깁니다. 또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정치 운동에도 내가 대통령이 한 번 돼 보겠다 해서 대통령 출마를  해 가지고 예를 들면은, 오만 자본을 들여 가지고서 이일을 성공을 할라고  하는데 성공이 될듯 될듯 하는데 그만 엉뚱한 것이 딱 잡아먹어서 그만 안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성도들이 땅 위에 있어서 신앙생활로 구원 성공을 할라고 할 때에 육체의  성공을 할라고 할 때에, 세상 성공을 할라고 할 때에, 또 자기가 학을  연구할라고 하면은 공부를 할라고 할 때에,  뭣이든지 이게 참 학문으로 나가든지, 정치로 나가든지, 공업으로 나가든지,  상업으로 나가든지, 무슨 예술로 나가든지, 또 어떤 뭐 운동으로 나가든지,  목회자로 나가든지, 자기가 무엇으로 나가든지 간에 그것을 해치는 것, 성공하지  못하게 해치는 것, 또 그것을 절단나게 하는 것, 또 건강을 절단나게 하는 것 뭐  이것을 그만 전부 그 전체에 성도들의 금생과 내세에 성공과 행복을 해하는  것들을 총칭해서 이리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속하신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때에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자기 현실 말이오, 우리가 사는 자기 현실 이런 것을  예수님께서 변화를 시켜서 그 현실이 자기에게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유리하도록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갑자기 이것이 확 변해져 가지고서 불리하게 돼집니다.

자기는 또 철통같이 그 사람하고 의논해서 딱 짜 놨는데 갑자기 그 사람 마음이  휘떡 변해가지고서 정반대 자가 되고 맙니다.

 이 세상살이를 살아 보면은 자기가 무슨 일이든지 할라고 할 때에 이런 장애의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호사다마라' 좋은  일에는 마가 많다. 원청 방해하는 게 많으니까 뭐 어느 것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마가 많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리, 이리 이것을 누가 만들어 놨느냐 주님이 만드셨는데 이리  속으로 인도하는 것, 이리 속에 들어가도록, 이리 속에 들도록 한분이 누굽니까?  이 이리 속에 싸잡히도록, 이리 가운데에 이렇게 포위가 되도록, 이리 가운데  이래 푹 둘러 싸이도록 이렇게 한 이가 누굽니까? 요거 알아야 됩니다!  양을 이리 없는 저 넓은 들판에 갖다 놓으면 될 건데 하필 이리가 가득찬 그  이리 속에다 갖다 턱 넣어 버립니다. 이러니까 성도들의 이리와 같은 이 모든  여러 종류의 환난, 재난, 모든 이런 방해물들 이런 것들 속에 집어넣은 이가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환경 주위에 처지에 머물게 되든지 이것은 주님이  요렇게 만드셔서 나로 하여금 이 안에 들도록 했다, 이일을 만나게 했다 하는  요것을 성경대로 꼭 잡아야 됩니다.

 이걸 안 잡고 제까짓 게 암만 수단 방법 부리고 뭐 능력 있고, 실력있고,  수단이 있고, 열심이 있고, 배짱이 있고, 슬기가 있고 암만 해도 결국은  사망입니다. 이 외에는 사는 길이 없어요. 요걸 똑똑히 배워야 돼요.

 이래서 오후에 다시 더, 오전에는 초벌만 주루루 하고 오후에는 지금 똑똑히  말하는데 실제로 신앙을 이룰라 하면은 그보다 더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대충으로, 이리 가운데 들게 한 이리를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라. 이리를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라. 나를 이리 속에 포위되도록 하신 이가 주님이시라. 이런 주위  환경 이런 현실 속에 들게 하신 이가 주님이시라. 요것을 꼭 잡아야 됩니다.

주님이시라.

 그러면, 주님이 뭐할라고 우리를 이런 현실 환경 속에 들게 해서 우리가 눈물을  흘려야 되고 울어야 되고 탄식을 해야 되고 낙망을 해야되고 근심을 해야 되고  불만 불평을 해야 되고 비관을 가져야 되고 이렇게 하는 이 현실을 주님이 왜  주실까 요거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요런 현실에 요렇게 똘똘 몰리게 하신  이가 주님이시오 이렇게 몰리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요것을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몰리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거 오전에 가르켰습니다.

목적은, 우리를 이리에게 잡아먹히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 아닙니다. 이리에게  잡아먹히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 아닙니다. 그러면 뭐 할라고 피로 구속한  사랑하는 당신의 제자요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양이 되는 성도들을 뭣 때문에  이렇게 할까?  그러면, 이 선한 목자가 생명보다 우리를 아끼시는 목자가 뭐할라고 우리를  이리 가운데에 집어넣을까? 이 넣는 목적이 뭐인가? 환경을 만들어서 이런  환경을 우리가 만나고 이 환경 속에 들도록 하신 사랑의 주님의 목적이 뭐인가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목적은, 양이 이리가 없는 들판에 놓으면 제 마음대로 뛰어 돌아다닙니다. 제  가고 싶은 대로 돌아다닙니다. 뭐 가다가 언덕에 빠지기도하고 제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저게 이리가 한 마리만 턱 나타나면 그만 그것들이 마구  소리를 하고 귀가 쫑긋해 가지고서 그만 주 모입니다.

 나는 가보지 안해도 저 몽고에 가 사는 사람 내가 말 들었는데 거기에서  양떼들이, 거기에는 사람이 먹이는 양이 아니고 자연 양인데, 산양인데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떼를 지어 가지고 이래 가다가 저게 지금 이리떼를 만나면 그만  그놈들이 한테 똘똘 몽친답니다. 목자가 없으니까.

 먹이는 양은, 목자가 있는 양은 그만 그 이리떼를 보면 막 죽자살자하고 목자를  향하여서 달려 가지고 목자에게로 오는데 구렁텅이 있으면 구렁텅이인 줄도  모르고 막 빠지며 오고 덤불이 있으면 덤불에 걸려가지고 가죽 다 벗기고 이래도  오고 뭐 죽자 살자 하고 목자에게로 와가지고서 목자의 우리에, 목자의 이 범위,  속에 들면 목자가 그걸 다 물리쳐서 이와같이 지킨답니다.

 내가 그것을 그때에 ○○○목사님이 몽고 생활 오래 동안 해서 내가 그분 보고  물어 봤어요. ○○○집사님의 아버지입니다.

 이거 뭣 때문에냐? 이것은 주님이 이 양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하나가 되어서 이  양들이 주님에게 달라붙어서 주님에게 가까이 와서 주님과 하나 되어서 주님의  품안에 안기기를 원하는 이 목적으로 이렇게 이리 가운데 던지신다하는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크고 작은 것, 개미 한 마리 나고 죽는 것도 그분의 주권적 개별  섭리로 역사하시는 그분이 왜 이 이리 속에 우리를 몰아넣을까? 왜 의외에  파산이 되게할까? 또 이 일을 하는 대에 방해물, 지장물이 생기도록 할까?  죽자고 운동하는 데 그만 당선에 뚝 떨어지도록 이렇게 할까? 이 모든 불행을 왜  이렇게 주실까?  이것은 주님이 이 일을 다 일으키시는데 목적은 주의 구속받은 자로 하여금  주님 앞으로 달려가 가지고서 주님 품안에 안기워, 주님 품안에 안기워, 이 목자  품안에 안겨서 목자하고 밀접하고 친밀하고 목자외에는 딴것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안하고 전적 목자만 의지하고 바라보고 좋아하고 달라붙도록 하기 위한  것이 이 목적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가 아니면  이 목자에게 그렇게 달라붙지 안해요.

 어떤 사람은 보면 자기 하던 일이 낭파가 되니까 그때사 회개하고 달라붙고,  어떤 사람은 자기 경제가 파산이 되니까 달라붙고, 어떤 사람은 자기 신체가  절단나니까 달라붙고 이렇게 해서 어쩌든지 사람은 의지할 것이 없고 바라볼  것이 없고 자기 힘으로 되지 안하고 자기 힘대로 뻐들거려 보다가서 암만 자기  힘으로 뻐들거려 봐도 안 된다는 극단이 이를 때에는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찾게 돼요. 주님을 찾게 돼요.

 주님을 찾아서 '주여, 나는 당신 아니면 못 살겠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주님  앞에 안기는 것을 그분이 원하신다 그 말이오, 만유의 대주재되시는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이신 이분이 우리를 이렇게 원한다면 이거, 이렇게 원하는데  우리가 몰라 그렇지 대통령이 자기를 보호하고 알겠다 해도 좋아서 야단지길  건데 이 만유주 하나님이 이렇게 원하시는 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이게  행복이요 이게 영광스러운 것이요 복있는 것이겠습니까?  이 이리 가운데에 던지는 이런 현실과 환경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주님을  떠나서 돌아다니는 것을 주님에게로 돌아오도록 하기위해서 하는 것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깨달읍시다.

 주님 앞으로 가까이 하도록 하려는 주님의 사랑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라면 몇 가지 배웠습니까? 몇 가지 배웠지, 손가락으로? 몇가지야? 두 가지.

알아야 돼. 두 가지  하나는, 이리 가운데 던지는 것은 주님이 던지셨어. 이리 가운데에 넣게 되는  것, 이리 가운데 포위되게 하시는 것 하나, 그렇게 하시는 목적이 뭐이냐 하는  것 하나, 둘 배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신자는 어떤 그 현실에 뭣이 와도 퍼뜩 깨닫고 '아,  주님의 사랑이 왔다. 나로 하여금 주님 앞에 가까이 해서 주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결합으로써 주님의 그 사랑의 능력의 은혜 속에 그 나래 아래 안기도록  하려는 이 주님의 역사가 왔다.' 요걸 깨닫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요걸 깨닫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됩니다. 가까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둘  배웠지요?

 하나 더, 가까이 나아가야 되는데 셋째로는, 그러면 이 양떼가, 이리 가운데  있는 양떼가 사는 길이 례이나 됩니까? 이리 가운데 있는 양떼가 사는 길이  영이나 됩니까 여러분들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는 길이 명이나  되겠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사는 길이 몇이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사는 길이  명이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하나. 맞았어. 하나.

하나뿐이라는 요걸 알아야 됩니다.

 요걸 아는 것이 우리가 기독자가 성공이요. 왜 짓밟힙니까? 왜 대통령 예수  믿는 사람이 출마해 가지고 왜 떨어집니까, 떨어지기를? 뭣 때문에 떨어져,  떨어지기를? 안 떨어져. 방해물이 많아. 거기에는 또 거기에대로 방해물이 많아.

 우리 ○○○장로님 보니까 저게 ○○지방에 가 가지고는 뭐 표 몇 표 얻었더라?  그런 것이 다 이리 한가지입니다. 이리 한가지요. 그런데 그것도 거기에서  보호를 받는 길이 몇 가지나 되는가? 모든 환경에 이리떼 환경을 다 그것을 다  이기고 오히려 이리떼의 그 주위 환경으로 인해서 그 양이 더 행복스럽게  되어지는 그 행복의 길이 몇이나 되는고? 그 행복의 길이 몇입니까? 형입니까,  손가락으로? 하나야, 하나. 하나. 요걸 알면 다 되는데 요걸 몰라요.

 그럴 때에 주님 앞으로 빨리 달리면 됩니다. 달아나면 됩니다. 달려서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면 됩니다. 이 방법 써 가지고서 안 되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천이고 만이고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이 방법써 가지고서 안  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그 하나밖에 없는데 가까이 가는 방편은  무엇인가? 가까이 가는 방편은 둘뿐입니다. 가까이 가는 방편은 둘 뿐이요.

오른발 왼발 둘만 떼놓으면 안 돼요? 오른발 떼놓고 왼발 떼놓고, 오른발 떼고  왼발 떼고 자꾸 이렇게 떼놓으면, 자꾸만 떼놓으면 빨리 가는 거라.

 회개와 순종입니다. 회개와 순종. '주님과 나와의 가로막힌 게 뭐인가?  주님에게 거리킨 게 뭐인가?'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주님이 꼭 주실 때는,  제자들이 풍랑 만나서 얼마나 혼이 났든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물귀신이다 하는 것처럼 물귀신처럼 그렇게 이해 못 할 정반대 낭패시키는  대적으로 옵니다. 꼭 주님이 구원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지도하는 목사가, 신앙 지도자가 '너는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 된다'하면 '나를 망하라고 하는구만, 나를 망하라고 하는구만.'  망하라고 하는 것 같은 그런 방편으로 올 때에 그래도 망하든지 흥하든지 죽든지  살든지 주님의 뜻이라면 나는 복종해야지, 망하고 흥하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노? 주님에게 순종하는 게 문제지.'  순종 하나, 주님의 뜻에 거리껴서 주님과 가로 막힌 것 있으면 고치는 회개.

주님의 뜻이면 그까짓 거 뭐 성공이 되든지 말든지, 뭐 당선이 되든지 말든지,  대통령이 되든지 말든지, 사업이 실패가 되든지 말든지 주님의 뜻만 찾으면 내가  살든지 죽든지 간에 주님의 뜻만 찾으면 나는 그대로 소유와 몸과 생명 다  바쳐서 복종하겠다.' 요 사람 딱 되면 주님이 하나 둘 연습을 시킵니다. 거리킨  걸 하나 가르쳐 주니까 홀딱 고쳐 버립니다. 또 뜻을 가르쳐 주니까 순종을 척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지막에 성공을 주실 때에는 어떻게 줄까요? 건너다보니까  '아, 조 길로 가면 성공이 되겠다.' 고렇게 보여지는, 성공이 되겠다는 그런 그  길로써 성공을 주실까, '주님은 조렇게 가라하는데 조대로 가면 꼭 망하겠는데  주님은 조대로 가라 하니까' 하는, 저거 생각으로 볼 때에 꼭 망할 것 같고  그래도 주님은 그렇게 하라 하고 자기 주관과 완전히 이질로서 비합리적인  비과학적 인, 성경대로는 성경대로인데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꼭 성경적만  성경적이 되는 고 방편을 딱 가지고 요대로 순종하라 하는 고 방편을 줄까요  자기 주관에 딱 들어맞는 고런 방편을 가지고 줄까요?  그러면, 자기 주관에 딱 들어맞는 그 방편을 가지고 줄는지, 인간의 주관과  방편에는 다 틀리고 하나님 한 분의 뜻에만 맞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그  길을 복종할 수 있는, 자기를 완전 부인하는, 완전 부인하는 그 길로 하나님이  성공을 주실까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먼저 말한 것이 맞습니까 뒤에 말한 것이 맞습니까?  먼저 말한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그러면, 뒤에 말한 그 방편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봅시다. 다  됐어. 핑계 못해요. 이겁니다. 이거면 돼. 뭐 복잡할 것이 없이 이거면 다  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입장에 있을 지라도 다 그러십시오. 무슨 문제든지.

 아, 믿는 사람이 병이 들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주님이 질고를 다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에. 이러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질고가 닥치는 것은 죄값도  아니요, 무지로 오는 것도 아니요, 부주의로 오는 것도 아니요, 뭘로 와? 그러면  뭘로 오는 겁니까? 꼭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질변으로만 준  것입니다. 필요한 질병으로만준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 질병은 과학으로도 낫울 수 있다 하지만 안 돼, 믿는 자의  질병은. 부주의로 과학적으로 된 것 아니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만이 자기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이 질고를 줬지 죄값으로 준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에 유익되도록 하기위해서 주신 질고니까 내가 구원에 유익되게만 해 보자.

구원에 유익되게만 노력하면 그 질병은 간 곳이 없습니다. 간 줄도 모르게  가버렸소. 없어지는 줄도 모르게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기독자가 얻는 평강이요  시온의 대로입니다.

 그러면,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길은 회개와 믿음이라. 회개와 믿음이라.

 그러면, 이런 기독자들이 자기에게 이리와 같은 그 어려움을, 대적을, 원수를  만났을 때에 거기에 목자에게로 안 가고 다른 데로 가 가지고서 구원 얻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목자에게로 안 가고 그 이리 가운데 있는 양이 안  죽고 사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것도 똑똑히 알아야  돼요.

 택한, 구속받은 성도들이 자기에게 어떤 종류의 불행이든지 와서 부딪힐 때에  주님에게로 가야 해결 되지 주님에게 가지 안하고는 제가 아무리 잘나도,  열심으로 세상 과학을 다 쓰고 세상에 인간의 모든 도움의 인성을 가득 차고 그  속에 들어 앉았어도 소용이 없어. 주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거 외에는 해결이  없고 가까이 가는 그 외에는 다 죽고 말지 사는 길이 없다 하는 요것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가까이 갈라고 하면 어떻게 가는가? 두 발로 가거라. 회개와 순종으로  가거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하나님 앞에 또 하니 순종하다가 둘  순종하고, 순종하면 그 다음에 또 순종할 게 나오고 순종하면 또 순종할 게  나오고, 고치면 또 고칠 게 나오고,  이래서, 고칠 것을 자꾸 고치다가 보니까 주님하고 그 사이가 기까와졌고 또  자꾸 순종하면 또 순종할 게 생겨서 자꾸 순종 순종하다 보면은 주님하고 만나게  되고 요것이 우리 기독자의 세상 성공이요 천국 성공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덧붙여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보냄과 같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말이오. '그러므로' 이리가운데 보냄과 갈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배암은 에덴동산  마귀를 가리켜서 말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는 것은 성령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배암같이 지혜롭고 하는 것은 배암 같은 지혜를 써, 말 하지 안했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한 것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했습니다. 비둘기같이 순결은  해야 되고 배암 같은 지혜는 알고는 있어도 쓰면 안됩니다. 배암 같은 지혜를  써서는 안 되고 배암의 지혜를 알고 방어는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요 두  가지 있어야 돼.

 배암의 지혜를 방어하다니? 배암 그놈이 에덴동산에 해와를 이간죄로 유혹을  시켜서 죽였습니다. 이간죄. 이간죄는 해와는 '너 하나님 된다' 막 이래 높여  주고 하나님을 해와하고 그 사이를 뚝 떨어지도록 상대방을 치면서 저를  유익하고 상대방은 해하고 저는 돕는 것같이 하니까 요 어리석은 해와가 이거는  나를 위해 준다 해 가지고 그만 그 이간죄에 똑 떨어져 가지고 망했습니다.

 사람이 이간죄 가지고서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요. 이간죄에 빠져가지고서 저  망하고 저거 남편 망했고 자손 대대 망했고 자기 소유 모든 만물이 다  망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배암같이 지혜롭고' 마귀 요놈이 우리를 유혹 줘 가지고  이간을 붙일 때는 반드시 나를 위하는 것처럼, 나와 관계된 그 사람을 이 사이가  벌어지도록 그 사람을 해하고 제 편이 되는 것처럼 요래 가지고 공연히 자기를  그 이상 추켜 올리고 상대방을 낮추면서 저를 해한다 하면서 이간하는 고  이간죄를 이기는 것이 뭐이냐 하면 배암의 이간 붙이는 그 이간 지혜를 네가  알고 있어야 된다. '배암같이 지혜롭고' 배암의 이간 지혜를 네가 알고 있어야  된다.

 네가 지금 어떤 사업에서 조 사람과 요 사람과 이간을 붙이면 네것이 되어지고  그라면 너와 합작이 되고 어짜든지 저 사람과는 털어지지, 그라면 네 당이  세어지지, 네 일이 형통하지 생각하지 이간죄는 하나님과 적이기 때문에  이간죄를 붙인 마귀는 영원 유황불 구렁텅이로 먼저 망하고 이간죄에 유혹받은  아담과 해와도 다 망하고 말았다. 이러기 때문에,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배암이 가진 고 이간 지혜를 네가 다 알고 거기에 속지 안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배암같이 지혜롭고' 배암같이 지혜를 쓰라 말 아니요. 배암같이  지혜로운 그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말이오. 쓰라 말이 아니고.

 또, 인간의 둘째 죄악, 이간죄로써는 영육이 죽었고, 그 뒤에 4장에 보면은  가인과 아벨 사이에 요 배암이란 놈이 가 가지고서 시기죄를 넣어 줬습니다. 시  기죄 시기죄를 넣어 가지고서 그 시기죄에 가인이 떨어졌습니다. 가인이  떨어졌어.

 가인이 떨어졌으니까 저는, 해하는 자도 칠 배나 벌받는다는 것은 이 가인으로  통한 그 죄는 가인 하나만 멸망시키면 안 되니까 자손을 흥왕시켜 가지고  전멸시키겠다는 무서운 그 죄악입니다.

 이래 가지고 시기죄에는 살인이 생깁니다. 시기죄에서 육체의 살해가  있었습니다. 시기죄에서 육체의 살해가 있었소. 시기죄에서는 육체는 살해를  당했으나 시기죄로 인하여서 영은 잘 됐습니다. 아벨은 영은 잘됐고 그 육체만  살해당했습니다.

 이러니까, 시기죄에 빠지면 살인하고 시기죄에 피동되지 안하면 저는 어떻게  됐든지 유익입니다. 아벨은 영과 육이 다 유익됐습니다.

 그래서, 첫째 이간죄는 영육을 죽이고, 둘때에 시기죄는 육체를 죽이고 창세기  6장에 가 보면은 그 다음에 욕심죄, 욕심죄는 음욕도 욕심이요, 물욕도  욕심이요, 행락욕도 옥심이요, 오락욕도 욕심이요, 공부욕심도 욕심이요 진리를  거스려서 가지는 욕심은 다 욕심인데 자기중심의 욕심은 다 욕심이니 셋째 로는  욕심으로써 전멸을 당했습니다 노아 홍수는 욕심으로 인해서 전멸당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너는 성령과 같이  너는 깨끗하고 온전한 그것이 네니까 항상 깨끗하기를 힘쓰고 곧기를 힘쓰고  바르기를 힘을 써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네가 아무리, 너를 이리 가운데 보내신 이가 주님이시요, 또 그  목적은 주님과 더 친밀되기 위해서 하신 것도 네가 알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면은 구원과 행복이 될 것도 네가 알고 딴데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그래도 네가 배암의 지혜를 다 알아서 배암의 지혜를 대응할 수 있는,  배암의 지혜를 대항해 가지고서 그 지혜에 빠지지 안하고 그 지혜를 대응해서  능가할 수 있는 그 지혜를 가지고, 그것 가지고서 배암의 지혜에 대항해서  싸우다 보면은 잘못하면 네가 성결을 뺏기기 쉽다. 너는 성결은 뺏기지 않고  항상 성결은 가져야 된다 요 다섯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가서 새김질 하면서 현실에서 살아  보십시오. 이만하면 다 아닙니까? 우리의 세상살이에 모든 지장은 주님이 이렇게  주신 것이니까 낙망이나 원망이나 불평이나 불만하지 말고 주님이 이렇게 주신  것이니 주님에게로 가까이 가서 주님의 도움받으면 다 해결됩니다. 가깝게 가는  방편은 회개와 순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고로 필요한 것은 배암의 지혜를 다 알아서 거기에 유혹을  받지 안해야 되고 항상 성령과 같이 순결을 자기는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요라면 모든 것 다 돼요.

 어려운 문제 있는 걸 이것으로 풀이를 할라 해야 풀지 이것이 성도의 모든  생애의 열쇠입니다. 열쇠. 이것이 열쇠인데 열쇠로 끌러야 되지 열쇠로 끄를라  하지 안하고 달리 끄를라 해서는 안 돼. 이거 하나님이 잠가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열쇠로 끌러야 되지 이것은 이 세상 과학이다 달라들어도 안 돼요.

 노아 홍수 그것이 이리인데 이리가 올 때에 노아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니까  오히려 홍수가 들어서 구원이 됐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거 그 외에 오만  과학과 방편을 다 썼지마는 그 사람들은 다 수십억이 물속에, 다 매몰돼서  완전히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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