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천국은 자기가 만들어라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5일 삼일밤 

 

본문 :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과거에 예수님 믿지 아니할 때의 생활과 아주  다릅니다. 소속도 아주 다릅니다. 과거에는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에게  소속하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성령에게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성령님과 진리로 중생되어 가지고 예수님 믿게 되기  때문에 본인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되어서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중생되는 것은 본인이 알고 노력을 해 가지고 중생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중생을 시켜 주시는 것인데 중생해야 참 예수 믿는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껍데기로 믿어지지 않는 것을 그렇게 외식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가 순간이라도 믿어지는 믿음이 한번 있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믿어지고 하나님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 된 것이  믿어지고 지옥과 천국이 믿어졌다고 하면 벌써 그 사람은 중생해서 성령의  역사를 힘 자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지 않고는 순간이라도 찰나라도  그런 믿음의 생각은 우리에게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악령이  강하게 막기 때문에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이라도 지옥과 천국이 자기에게 아무리 부인할라고 해도  인정이 돼지고 또 하나님을 아무리 무신론자와 같이 부인할라고 해도 하나님  계심이 인정이 돼지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 죄와 멸망과 영생이 인정이  되어진다고 하면 그 인정되는 그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계속하든지 잠깐 있다가  없어졌든지 어쨌든지 그런 역사가 순간이라도 있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벌써  중생되어서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과거 믿지 안할 때의 사람과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소속이 다르고, 과거에는 마귀에게 소속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에게 소속하게  되었고, 과거에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 소망하고 그것만 이루려고, 한  우리들이지마는 이제는 세상 것도 소망하지만 하늘나라의 것을 소망하고  이루려는 그것이 우리 속에 생겨집니다. 이래서 올바른 신자라고 하면 세상을  이용해 가지고 하늘나라를 건설하고, 또 육의 생명이 없어지기 전에 영생하는  생명을 마련하려고 애를 쓰게 되고 과거에는 인간들의 모든 지식과 그 말을  표준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표준해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믿기를 시작하면 누구든지 히브리서 10장 32절 말씀입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크든지 작든지 제대로는 여러가지 핍박을 받게 됩니다.

왜? 그 모든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살던 그 세상과 나와의 자연히  충돌이 있고 대립이 되고 그런 일들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런 마찰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데에 그 물을 따라 내려가지 안하고  위로 거슬려 올라가니까 올라가는 그 형체가 작으면 거슬리는 물살이 작을  것이고 그 형체가 크면 거슬리는 물살이 커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여러  가지 어두움에게 핍박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빛을 받았다 말은 예수 믿는 도리 이  진리를 받고 또 영생의 구원 영감을 받고 이렇게 모두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된 이 모든 것을 가리켜서 빛이라. 밝은 것이라 말했어. 이거는 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밝은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옳은 것을 받아 가지고 옳게  살라고 하니까 어두움이 저와 같이 어둡지 안하다고 여러 가지로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단 참고 나오면서 그저 억울해도 참고, 손해가 가도  참고, 또 여러 가지를 박해를 당해도 참고 이렇게 참은 그것을 우리가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 참은 것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되느냐 하면 참은 것은 그것은 잘한 것인데  그러면 자기의 잘한 장점을 자기가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 아닙니다. 자기의  장점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교만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거  잊어버리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하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말씀대로 믿을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서 여러 가지 자기 살던 그 세상,  자기 살던 그 사회, 자기 살던 그 직장 자기 살던 가정 거기에서 여러 가지로  마찰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찰이 크든지 작든지 그것을 내가 참고 견디고 그  마찰에서 죄 짓지 안하고 또 그 마찰에서 내가 신앙을 양보하지 안하고 그대로  신앙을 지켜 가게 된 그것은 이것이 막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그와 같은 결과를 맺은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나를 붙들고 역사하신 그 표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그때 내가 그럴 때에 내가 무슨 세상의 그 인간  중심인 악이 나를 대항할 때에 그 대항할 만한 것을 이길 만한 힘이, 이길 만한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없는데 크고 작고 간에 그것을 내가 끌려가지 안하고  신앙을 유지했다는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와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전능자가  나를 도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 때도 주님의 그 전능자가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그때에 말에나 행동에나  마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기억하는 것은 자기의 뭐 자기가 한 것 같으면 자랑할 것이 있지만  주님이 와서 했기 때문에. 기억하라 말은 자기의 장점이기 때문에 자기 장점을  기억하란 말이 아니고. 그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도우셔서 그 신앙을 유지하게  하신 도우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야 하나님이  내게 와서 역사하셨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되고 그것이 자기에게는 힘이 되고  하나님에게는 대접이 됩니다. '아,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이런  일을 해 주셨습니다.' 할 때에 주님은 그 대접을 받는 것이 되고, 도와 주신 그  은혜의 댓가를 받는 것이 되고 또 그 사람은 그로 인해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3절에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비방받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잘못해 가지고  비방받는 일도 있지만 또 잘못함이 없이 비방받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함이 있어서 비방받을 때에는 그 비방을 인해서 즉시 고쳐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안 고치면 자기는 원수의 탄환에 맞아 상합니다.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혹은 좋은 말로 지적하든지 혹은 냉정스러운 말로 지적하든지 과격한 말로  지적을 하든지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때에는 우리는 귀한 치료의 그 의사가  온 줄 알고 즉시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깊이 냉정스럽게 자기와 자기 행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 가지고 잘못된 그런 점을 즉시 고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악령은, 우리에게 잘못된 그것이 죄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거기는 화살을  가지고 쏩니다. 쏘면 그것 때문에 내가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즉시  주님의 피에 고해 가지고 회개하고 그것을 고치면 악령의 화살은 내게 올래야 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비방이 있으면, 자기를 비방하거든 고칠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참 비방하는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선지자요 선생님이요 나를  구원하는 자이기 때문에 진정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고쳐야 되지 비방  받을 만한 잘못이 있는데 고치지 안하고 나를 욕한다 나를 해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 사람은 옛사람이요 새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남이 나를 비방할 때에 듣기 싫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사람이 바로 내 원수요 나 아닌 내인 줄 알고 그것을 우리는  죽이는 데에 아주 뿌리뽑는 데에 힘을 새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그것이 내인 줄  알고 그만 '아 나를 비방하고 나를 욕한다.' 해 가지고 섭섭하게 이래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순전히 자기 마음과 몸을 악령. 악성, 악습에게 뺏겨 가지고 악령의  사람이 되어 스스로 자기가 자멸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만일 잘못이 없는데 비방이 없으면 그럴 때에는 그걸 가만히  참고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이 됩니다. 그런 잘못이 없는데 비방을  받고 주님을 위해서 참고 있으면 그것이 큰 복이 되고. 또 잘못이 없는데 주님을  생각하고 참는 것도 있지만, 또 상대방이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상대방에게 내가  억울하게 비방받는 것을 만일 내가 대적하고 하면 나를 억울하게 비방한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지 안하고 도리어 믿음에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잘못이 없으면서 참고 있다고 하면 그거는 더 아름다운 것이요,  그건 주님을 섬기는 일이요. 형제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이 또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믿으면 비방이 옵니다. 예수 믿으면 비방이 오는 데 안  믿을 때보다 많은 비방이 옵니다. 많은 비방이 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서 안 믿을 때는 그보다도 더 많은 흠점이 있어도 그저 네가 나나 똑  같다 하면서 그냥 지나가지만 하나님이 믿는 자는 깨끗게 하실려고 하기 때문에  비방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낱낱이 드러내서 비방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깨끗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마태복음 5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산 위에  세운 동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산 위에 세운 동리이니까 밑에서 보면 환하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주목거리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우리의 그 비(非)를 보고 그것을 흠 잡을라고 또 찾을라고. 또 좋게 말하면  본받을라고 어짜든지 수많은 사람들의 상대가 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치기 위한 비방도 우리에게 있고 또 우리의 그 비방받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마련하기 위해서 비방도 오는 일이 있고, 또 거기에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참  참고 견딤으로 형제에게 아름다운 덕이 되어서 믿음의 도움의 양식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비방도 옵니다. 그러기에, 믿고 난 다음에는 비방이 온다는 이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비방이 올 때에 우리는 그만 속단적으로 왜 나를 비방하느냐 하면 그 사람은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 그라지 새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내게 그  비방하는 데 대해서 대항이 나오면 바로 그것이 나를 죽이는 그것이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때에 고놈을 옛사람인 줄 알고 그것을 잡아서 고 기회에 죽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믿고 나면 비방이 있다. 마찰이 있다. 빛이  비추인 다음에는 싸움의 고난이 있다. 마찰이 있다 그 말입니다. 믿고 나면  마찰이 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비방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삣고  깍고 헐고 하는 그런 비방이 우리에게 옵니다. 그 비방이 우리를 고치기 위해서  주님이 비방을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고 사람이 비방하나 실은 하나님께서 그  비방을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비방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비방의 목적이 뭐인가? 하나는 우리에게 비방 받을 만한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있으면 그걸 고치기 위함이고. 그게 없을 때에는 억울하게  비방을 받아도 참고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딤으로 주님에게 영광이 되고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하시는 일도 있고, 또 그것이  조만간에 나타납니다. 진가가 나타나니까 억울한 비방을 자기가 참고 견디고  있었으면 그것은 반드시 그 다음에는 빛으로 나타난다 이랬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에는 제삼자에게 감화를 주는 빛이 되어집니다. 아, 그때 보니까 그는 참  억울한 비방인데도 그때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 때 무슨 죄나 있는 것처럼 참고  견디더라 해서 그것이 그에게 적은 것이지만 그 사람의 양심을 살리고 신앙을  살려서 구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에 비방이 오면, 비방이 오면 이 비방을 그만  속단적으로 우리가 옛사람이 내가 되어 가지고 날뛰는 그런 일을 하지말고  거기에서 옛사람을 잡는 것이 중요하고. 옛사람을 잡고 난 다음에는 새사람으로  살아서 고칠 것 있으면 감사히 고칠 것이고. 고칠 것이 없으면 주를 위해서 참을  것이고, 고칠 것이 없는데 억울하면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참고 견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비방에 대해서 우리는 중요한 그런 수입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옛사람이 거기에는 왈칵 나서기 때문에 옛사람 잡아죽이는 것이 크게  유익이 되고. 또 자기에게 참 잘못된 점이 있으면 그걸 고치니까 심판을 면하게  되니까 그것이 큰 유익이 되고 또 자기에게 고칠 것이 없고 잘못된 것이 없는데  억울하게 당했으면 그것을 주님을 위해서 참으면 주님을 귀중히 대접하는 주님을  참 기뻐서 대접하는 그런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귀한 일을 일으키는 수가 있고  또 그것을 형제 구원을 위해서 참고 견디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이 되기 때문에  중대 수입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그 비방 오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속단적으로 잘못 소화하면 안 되겠습니다.

 또, 환난도 옵니다. 환난 온 것은 예수님만 내놓으면 환난이 대번 중지될 환난,  진리만 어기면 그만 중지될 환난, 죄를 지으면 중단 될 환난 하나님의 어겨진 그  사람들에게 내가 속하고 세상에 속하고 사람들과 하나 되면 당장 그 환난이  없어질 환난인데 내가 주님과 진리와 신앙의 양심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환난이 오고 끊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런 환난이 올 때에 내가 과거에는 나를 지금 환난 되게 하는  그 사람들과 같이 나도 거기에 속해서 옳고 바른 것을 대적하는 옳은 자에게  환난을 주던 그런 자인데 이제는 거기서 나와 가지고 그런 악의 세력에게 환난을  당하게 되니까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입장이며 얼마나 귀중한 입장으로 옮겨 선  것인 것을 생각해서 먼저 기뻐하고 감사하고, 또 그 환난도 한가지입니다. 그  환난에 그로 인해서 우리는 고칠 걸 고치고, 참 환난은 귀중한 것입니다. 환난이  오면 회개가 됩니다. 환난이 오면 자기에게 대해서 냉정스럽게 자기를 살펴서  조사하게 됩니다. 환난은 자기를 깨끗게 하는 아주 좋은 양약입니다.

그래서 환난에서 참 자기가 평소에는 뭐 강퍅하고 담대해서 그 까짓 쯤이야  이랬지만 환난이 오면 자기가 겸손해지고 헛된 간도 없어지고, 자기가 참 약한  자가 되어지고, 자기가 못난 자가 되어지고, 자기가 간 작은 자가 되어지고,  이렇게 됨으로서 자기가 깨끗해지는 이런 유익을 보게 되고, 그런 환난에 주님을  보고 참으면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주님을 아주 기쁘게  대접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 환난은 귀중한 운동인 것입니다.

또 그 환난이 일 때는 반드시 내가 그 환난을 당할 때에 내가 그 환난을 참으면  나에게 환난 주는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안 죽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했더라면 우리는 다 멸망받고 말 것인데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환난이 부딪힐 때에 주님이 가만히 참았으니까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이 올 때에 나를 환난 주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법이  뭐인가? 나에게 환난 줄 때에 내가 그 환난을 주를 생각하고 그 형제들의 구원을  생각하고 참고 견디면 주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 환난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되어지고. 또 나에게는 한없는 믿음의 성화가 되고 심신의 기능의 아주  부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환난도 우리가 속단하면 안 됩니다. 이 환난 속에는 한없는  보배가 들었기 때문에 이 환난도 그렇게 무가치하게 생각하다가는 큰일납니다.

환난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그러면 사람에게 구경거리, 우리가 이것을  의례히 자동적으로 옵니다.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물에 있던 사람이 물에서  나오면 물이 마르는 것 아닙니까? 물에 있던 물벌레가 나오면 물이 마르는 것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 갈수록 세상 사람에게는  조롱거리가 됩니다. 구경거리가 됩니다. 왜?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게 구경거리 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칭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 할라 하면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이제 생각하고 이것을 잘 이용해서 소화를 해야 되지 그만 그것을 속단적으로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속단적으로 날뛰다  보면 좋은 기회 좋은 보배를 다 빼앗겨서 손해가는 그런 일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대체로 믿는 사람들은 핍박도 우리에게 오고 환난도 오고 비방도 오고  또 구경거리도 되고 조롱도 오고 이렇게 옵니다. 오는데 이 오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해서 이와 같이 보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대로 요 사실을 잘  분석해 가지고 우리에게 보배요 참 인격의 영양이 많은 아주 영양제입니다.

영양이 많은 영양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오는 것은 그저 던져 버리지 말고,  박차지 말고 이것을 받아서 잘 소화하면 거기에서 주님과 나와의, 모든  사람들과의, 원수와의 다 이것 신기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그저 허비하지 말고, 소비하지 말고, 이런 것을 폐기하지 말고. 버려서  내버리지 말고 잘 이용해 가지고 거기에서 우리는 양식을 먹고 자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인 것입니다.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내차 이런 일을 당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직접 당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할 때에. 나는 그런 일을 안 당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 때에 나도 그와 같은 입장이 되고, 그와 같은 사상이 되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그들의 동무가 되고, 그들의 동질, 동성, 동 사상, 동 견해, 동 평가.

이해가 돼서 그 사람과 나와 같이 되는. 내가 그런 일 안 당해도 당한 그 사람과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그것을 자기가 알 수 있어서 그이들에게 사귐이  되고 그들과 한 가지 된 그 사람 된 이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불행이라 하지말고 내가 직접 그런 일을 내가 당하지  안했다 할지라도 그런 일 당한 사람과 나와 행동과 사상이 꼭 같이 되어 있다는  그것은 안 당해 도 나도 그이 당함으로 인해서 내가 상급이 마련되고 내게  구원이 되어지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악의 편에 서지 안하고, 내가 악의 편이 되지 안하고 악의  편에 서지 안하고 의의 편에 자기가 서서 있게 되었다는 이것을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무슨 의로 인해서 당하는 어려움을 직접 당하지  안해도 자기의 생각이나 성질이나 견해나 모든 정신이나 그런 것이 어짠지 그 일  당한 그 사람과 나와 한편이고 그 사람과 나와 한 편이고 그 당하는 그 사람에게  나도 대적하는 거와 같은 그런 편이 아니고 옳은 사람을 대적하는 편이 아니고  옳은 사람이 대적을, 박해를 받는 그 사람의 편이 내가 되어 그 사람과 같은  사람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한없는 기쁨을 깨달아야 복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주님과 진리와 영감과 복음을 위해서 욕 얻어먹는  사람에게 동정이 되고 이것 잘 알아야 됩니다. 욕 얻어먹는 사람에게 동정이 되고  진리 때문에 매 맞는 사람에게 동정이 되고, 진리와 복음 때문에 갇힌 사람에게  대해서 어짠지 내가 동정이 되고 내가 그와 한 편 되어 있는 그것을 우리가 느낄  때에 '아. 나도 이 생명 편에 섰구나. 나도 의의 편에 섰구나. 나도 하나님 편에  섰구나. 나도 성도 편에 섰구나.' 하는 그것으로서 우리가 자기의 입장과 소속이  그렇게 복되다는 것을 옳은 편에 생명편에 의로운 편에 서서 있다는 이 사실을  인해서 우리는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믿어 나가면  산업을 빼앗거나 억울하게 상권 빼앗기는 것도 있고, 또 억울하게 자기가 손해  보는 것도 있고, 억울하게 직장 뺏기는 것도 있고, 억울하게 자기가 피해를 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둘이 이 갑론 을론 할 때에, 갑을이 갑이 옳다 을이 옳다  갑론을론을 할 때에 그때에 손해 보는 사람. 그때에 손해 보는 사람 그 사람이  세력이 모자라서 손해를 봤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손해 본 사람 아닙니다. 손해  본 사람 아니고 세력으로 유익 봤으면 유익 본 그 사람이 손해입니다. 또 그럴  때에 자기가 손해를 안 볼라면 안 볼 수 있지만, 딱딱히 말해 가지고 할라면 할  수 있지만 거기에서 자기가 억울하게 손해를 봐도, 손해를 봐도 손해 안 볼라면  안 볼 수 있는 데 손해 보는 그럴 때에 사람이 그래도 잘잘못을 밝혀 놓고 뭐  손해 봐도 손해 본 줄 알지 그것 아주 찰찰하게 그거 깨끗이 개운하게 하는 줄  알아도 그것이 손해입니다.

 자기가 손해를 볼 때에, 다만 자기가 손해를 볼 만한 그런 정당적인 그런 이유가  있어서 정당한 손해를 보는 것인지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것인지 그것을 잘  살펴서 정당하게 손해 보는 그것을 억울하게 손해 본다고 하면 상대방에게  억울한 소리를 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것이 큰 화가 됩니다. 이래서, 고래로부터  그런 말이 있습니다. '천 냥 시주말고 남에 애매한 소리하지 말아라' 천 냥이라  하면 그때는 사람 하나 죽일라면 천 냥만 있으면 그만 해결이 됩니다. 옛날에 천  냥은 사람 하나 값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죽을 사람  하나 살리지 말고 사람에게 억울한 소리를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에게 무슨 손해 가는 일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우리는 어리석게 자꾸 손해 갈 때에 '내가 손해 갔다 억울하게 손해 갔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쳤다.' 이렇게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손해를 자기가 볼 때에 먼저 내가 정당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냐?  정당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냐 참 부당한 손해를 보고 있느냐? 이것을  정평해야 되겠습니다. 정당한 손해라면 그거는 손해가 아 그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 손해를 안 볼라 하니까, 손해를 상대방이 보일라 하니까  상대방에게 공연히 애매하게 노고를 줬고 정신 부담을 줬고 마음 부담을 줬기  때문에 그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당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해서 정당한 손해라 하면 그럴 때는 빨리 상대방에게 위로를 해야  되겠고, 자복을 해야 되겠고. 사과를 해야 되겠고, 그분에게 모든 정신부담이나  마음 부담의 상처를 준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그것을 빨리 배상을 하도록 하고  지나가야 무궁한 세계에서 받을 그 배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네가 옥에서 놓이지 못 한다.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손해 볼 손해를 내가 미리 봤으면 상대방이 말 안  하는데, 손해 볼 손해를 내가 손해 안 볼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니까 그럴 때에는 내 손해 보는 것이 정당한지 부정당한지 그것을  찾아 가지고 정당한 손해라면 내가 자원해서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내가 손해  배상을 했더라면 그에게 마음 부담에나 아무 상처가 없을 것인데, 그동안 마음의  부담과 불안을 줬기 때문에 그것을 속히 가서 사화해라 했습니다. 사과해서  사화해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이 이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배상하게  된다. 그래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그 옥에서 놓이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만침 해친 그 불의에서 그만큼 자유가 없고 권위가 제한된다 하는 그 말입니다.

 또 자기가 산업을 뺏길 때에 그것은 정당치 안하고 억울하게 뺏깁니다. 억울하게  뺏길 때에, 우리는 억울하게 뺏기면 억울한 것이니까 이것은 정당 방위로서 내가  억울하게 뺏기는 이것을 뺏기지 아니하도록 이것을 찾아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거 찾을라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을 빼앗겼을 때에 그때에 그것을  가부를 가지고 따지면 상대방에게 믿음에 손해가 갈 때에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가 손해 보지 아니할 것이라도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손해를 보고  참고. 또 주를 생각하고 손해를 보고 참고, 주님은 하나님으로서 그 모든 것을  손해 봤기 때문에 내 구원이 되었지 당신이 손해 보지 안하고 정당적으로만  했더라면 우리는 멸망이지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 구속을 생각하고 자기가  그럴 때에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는 것은, 그걸 기쁘게 당하는 것은  이것도 우리가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주를 위하고 형제를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손해 보는 것은 주님 대접하는 것이요. 형제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참 귀중히 사용을 했지 절대로 그게 없어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당한 것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기쁘게 당한 것은' 뭐 자기 산업을  뺏기니까 그만 '에헤 뺏겼으니까 좋다' 그래 기쁘게 하는 말 아니요. 산업을  빼앗기는 것은 자기가 살필 때에 정당하게 뺏길 것을 뺏겼으면 우리는 뭐 뺏길  것을 뺏겼으니까 됐다가 아니오. 뺏길 것을 뺏겼으면 내가 뺏기기 전에 뺏길  것인데, 정당하게 뺏길 것 있으면 내가 줄 것인데 내가 그 사람이 뺏들라고 하기  전에 내가 자진해서 줄 일이지 뭐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렇게 부담을 줬느냐 그걸  회개 할 것이고, 또 부정당하게 자기가 빼앗겼으면 상대방의 그 구원과 그 사람을  잃지 아니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참고 주를 위해서 참고 이렇게 하면  그것이 큰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산업 그거 가지고 하나님 대접했어. 자기가  자기에게 있는 재물 가지고, 예를 들어서 만일 만 원을 주님을 위해서 의로운  일에 투자한 그 만 원과 자기가 억울하게 만 원을 손해 당할 때에 주님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참는 것은 그 만 원을 가지고 의로운 일에  투자 한 것의 몇십 배 몇백 배도 됩니다. 왜? 그거는 억울함이라 하는 거기에는  사람의 감정이 붙기 때문에, 감정이 붙기 때문에 그 감정은 자기 인격인데 그  인격을 주를 위해서 이와 같이 희생하고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했기 때문에,  자기라는 그 사람을 희생했기 때문에 물질 유가 아니라 그것은 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낮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영구한 산업이'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손해 본다 유익 본다, 내가 가졌다  뺏겼다, 있다 없다 하는 이것만 실존으로 알지, 이것만 실지로 있는 것으로 알지  성경 말씀 가운데 있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공상이요 하나의 그거는 말뿐이지  실지로 실존하는 것으로 여기지 안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그것도  실존이지만 이거는 잠시 후에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간이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 속에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요. 그거는 변동이  없고 없어지지 안할 영존의 것으로 실존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을 많이 예수 믿으면  당할 수 있는데. 당할 때에 이 세상도 실지로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 속에  있는 것은 영원한 실지이기 때문에 항상 하룻밤 나그네와 같이 그림자와 같은 이  실지의 이것만 보고 우리가 여게 대해서 계산 맞추지 말고 영원한 실존의 그것을  보고 거기에 계산을 맞춰 가지고 우리는 후회 없는 걸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할 때에 우리 한 일이 주님을 위해서 세상에서  자기가 많은 손해를 봤다고 하든지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가지 것을 다  투자했다고 하든지 또 자기의 가진 것을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다  손해를 봤다고 하든지 형제 구원하기 위해서 투자를 했다고 하든지 하면 이는  하나님과 사람에게는 우리가 다 떳떳함을 당할 것이고, 또 환영을 받을 것이고,  그는 참 가치 있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만물들은 사람에게 속했기 때문에  만물에게도 다 환영을 받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거든 좋은 기회라. 우리가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의로운 일을 할라 해도 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런  어려운 일을 하도록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속단적으로 그렇게 그만 남용이나 포기하지 말고 그것을 잘 간직해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래서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 한 것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35절에 '그런고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래서 자기가  세상에서 참 억울하게 당하는 것. 훼방받는 것, 비방받는 것, 압제받는 것,  손해보는 것, 또 조롱받는 것, 구경거리가 되는 것 이렇게 자기라는 것이  세상에서 주님과 복음과 형제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여러가지로, 여러 가지  종류로 자기가 손해보는 그것을 손해를 보지 안할라고 똑똑하게 날뛰어 가지고  손해를 보지 안하고, 오히려 하나 손해 보면 나중에 가서는 둘이나 얻도록 하는  그런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말고 이렇게 주님과 복음과 형제 구원을 위해서 손해  보는 이런 일이 있을 때에 그것을 잘 참고 견디고 소화해 가지고 견디는 그런  것을 네가 견딘 것이 그것이 아주 담대한 일이라. 그게 참 세상에 대해서 담대한  일이요, 물질에 대해서 담대한 일이요. 명예에 대해서 담대한 일이요, 자존심에  대해서 담대한 일이니 그 담대함을 네가 뺏기지 말아라 말했습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내가 어떤 사람으로 더불어 얘기할 때에, 나는 그거 몰랐는데 참 그렇게  억울하고 큰 손해를 받는데, 그걸 그라면 말해야 되겠구만 하니까 '아이구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말해야 도로 안 되고 하니까 뭐 그거다 거기는 또 거기대로  잘했다 하고 나는 나대로 잘했다 하고 그러니까 다 그럴 수 안 있겠습니까?'  하면서 소화를 해서 소화를 잘한다고, 내가 그래 복 있다고 이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이런데 우리는 그런 모든 일에 있어서 세상에서 어떻게 하든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가는 사람은 안 돼야 되겠습니다. 피해를 끼치고 가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털끝만치도 피해를 끼치고 가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또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가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이든지 말 없는  가운데서라도 우리는 꼭 계산이 정확해야 됩니다. 왜. 남에게 억울함을. 공걸  먹겠습니까 공걸 받겠습니까 공것을 우리는 절대 받지 안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꼭 자기의 수고의 댓가로 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를 얻을 만한 수고를 해 놓고 둘을 얻을라 하는 이것이 자기  자살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것을 하지말고 어짜든지 내가 최소한 남에게 손해는  끼치지 않겠다. 요거는 꼭 지켜야 됩니다. 요거는 아무래도 지켜야 됩니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안하려는 이것은 지켜서 남에게 손해는 끼치지 안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힘이 다소라도 있으면 남에게 명예적으로나 또 그 위신적으로나 말로나  행위로나 그에게 인정으로나 다소라도 남에게 유익을 주고, 남을 돋워주고,  북돋워주고, 남을 키워 주고, 남에게 유익되게 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잘  되라고 곡식 북돋우는 것같이 북을 돋워 주는 그 일을 다문 얼마라도 우리가  하고 가야 되지 남에게 손해 끼치는 그런 일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언변을 가지고 악을 잘 변호해서 선으로 변증을 해서 세우고, 또  남에게 있는 선을 내 언변이나 재산이나 세력이나 뭘로 가지고 악으로 이와 같이  다 변증해서 악으로 세운다는 그것이 다 자멸하는 행위입니다. 만유주 대주재  하나님은 그것을 세밀히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참 하나님도 모르고, 심판도 모르고. 자기의 죽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설 것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힘이 있느냐? 무슨 힘이든지 언변의 힘이든지 재물의  힘이든지 지능의 힘이든지 활동의 힘이든지 그 예민과 명철의 힘이든지  무엇이든지 내게 힘이 있다고 하면 그 힘 가지고 서 첫째 할 일은 뭐이냐?  주님과 사람에게 피해 끼치지 안하는, 해를 끼치지 않는 이것을 하도록 우리가  전력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해 끼친 것보다도  사람에게 해 끼친 것이 더 큽니다. 하나님에게 해 끼치는 것은 그분에게 가  가지고 뭐 꽉. 해 끼친 게 많은 데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되지만 사람에게  해 끼친 것은 당신이 용서를 못 합니다. 사람에게 해 끼친 것은 당신이  심판자이기 때문에 고걸 역력하게 판단합니다. 당신에게 해 끼친 것은 당신이  묵인 할 수도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에게 있는 무슨 힘이든지  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안하도록 요 일에 먼저 전력을 기울여서  이것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 남은 힘이 있다고 하면 털끝 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 일을 하고 가야만 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개명 있을 때에 제 처 부모 장인이 예수 믿는 걸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그만 술도가 하다가 치워 버리고 이라니까 와서 술도 못  자시지 이라니까 핍박을 그런 일 많이 했습니다. 많이 했는데 끝까지 핍박을  하다가 마지막 죽을 때가 되었을 때에 제가 가니까 악령이 사로잡아 가지고  송장같이 누웠던 분이 뻘떡 바로 꼿꼿하이 보니 이래 가지고 쭉 올라서 버려요.

새카마이 해 가지고 그라면서 나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협박을 하기 때문에 내가  그때 만일 두려워서 우쭐했으면 그만 삼켜졌을 거라. 그때 하면서 말했어. '사탄아  물러가라 물러가고 이 사람을 내놓고 빨리 나가라.' 이라니까 꿍 그라며 뒤로  그만 넘어졌습니다. 넘어져서 복음을 전하니 그때 회개를 합니다. 회개를 하기  때문에 내가 회개 하는 가운데 회개는 다 뉘든지 온전히 할 수 없으니까 특별히  말을 잘해서. 말을 잘해서 그 지역에서 이 대가리 노릇했습니다. 대가리 노릇했기  때문에 말을 잘하고 권력이 세어 가지고 남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 했겠다 싶어서  그래 내가 말하기를 '말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친 그런 일이 있는 것을 회개를  하십시오' 이라니까 그만 그 혀를 내 가지고 깨무는데 혀가 그만 새카마이  핏덩이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얼른 '회개의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 얻는 것이니까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으십시오. 그  죄가 다 사함 받습니다.' 하고 '그러면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를 잠깐 급하니까 한  일 분 동안 기도했는데 기도하고 나니까 그만 일어나니까 떠났습니다. 떠나서 한  이 분 가량 예수 믿고 구원 얻어 가지고 간 것을 저는 확실히 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참 언변 좋은 사람 지식 좋은 사람 돈 있는 사람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많이 있으면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 부자, 권세 부자, 또 지능  부자. 명철 부자, 많은 부자가 있지 않습니까? 이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힘든다 그 말은 이 많은 것 좋은 것 가지고 그것을 좋은 일 하면 좋지만 이것  가지고 잘못하면 악으로 악용해서 그것을 내 중심으로 이용해 가지고 남을  해치는 그런 데에 활용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변 좋은 사람 아주 조심해야 되고, 명철한 사람 거기에 조심해야  되고, 돈 많은 사람은 돈 많은 데 조심해야 되고, 권세 있는 사람은 권세 있는 데  조심해야 되고. 또 배짱 있고 무력 있는 사람은 그런 걸 조심해서 어짜든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지 안하도록 피해 끼친  것 있으면 그것을 어서 무르고 가야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 끼친 것이  있거들랑 아예 예물을 드릴 때에 예물을 두고 먼저 가 가지고 그 해결을 짓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그거 해결 짓지 안하고 가면 영원한 나라에 가서  호리도 갚기 전에는 그만 한 그것 때문에 거리끼는 제재받는 그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걸 다 갚아야 벗어난다 그것을 결론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힘을 다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최소한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겠다 남에게 손해 보이지는 않겠다. 남에게 빚지지는 않겠다. 이  사람들은 보면 다른 사람에게 말 빚이 빚지는 것을 예사로 여겨요. 그 사람에게  빚지지 안할라고 실컷 애를 쓰니까 그 사람도 보고 '아, 저 사람 그렇게 대접할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아주 높이 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마치 엘리사가  그들에게 빚지지 안할라고 딱 요래 가지고 지금 하고 있는데 게하시가 와 가지고  그만 옷 두 벌과 은 한 달란트를 와 가지고 그들에게 빚지지 안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빚을 지우고, 빚을 지지 안하고 빚을 지웠는데 그 빚지운 것을 게하시가  와서 싹 까뭉케 버리고 오히려 빚을 졌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고걸 진노해서  문둥이가 당장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있는 실력을 가지고. 어짜든지 그 있는 실력 가지고 남의  것을 착취해 가지고 남을 손해 보이고 억울하게도 제가 죄인이지만 남을  죄인으로 정죄시켜 버리고, 자기는 나쁘지만 옳다고 하고 어짜든지 자기에게 있는  실력 가지고 남에게 피해 끼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하도록 우리가 이것을  조심해야 되지 이것을 조심하지 안하면 구원도 안 되고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첫째로 자기에게 있는 실력을 가지고 실력을 가지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그 실력 가지고 자기 중심으로 사니까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에게 있는 실력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안하도록 일을 해서 어짜든지 털끝 만한 피해라도 끼치지 안하고, 남에게 빚지지  안하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빚지면 안 됩니다. 빚지지 안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힘이 있으면 머리털만침이라도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남을 도와 주고 남에게 차라리 받을 것이 있지 그분에게 그  분에게 한 것은 그분이 갚지 못해도 영원한 집에서 영원한 집에서 주님이 갚아  줬습니다. 영원한 집에서 그를 갚아 준다고 청지기 비유에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있는 실력 가지고 첫째는 남에게 빚지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고, 남에게 손해 보이지 말고, 해 끼친 것 그것이 없도록, 있으면 아예  정리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정리해야 됩니다. 안 되면 그 사람이 안 들어도  빌어도 빌어야 되고 말해도 해서 그걸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정리해야 되겠고. 또  그 남은 힘이 있으면 많이 못할지라도 있는 힘 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침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런 사람이 되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억울함이나 그런 걸 당한 것도 주를 위해서 잘 참으면 그것이  큰 상이 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뭐 우리가 이 세상에 억울한 일. 남에게 억울한  일 안 끼칠 수도 없고,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암만 이렇게 깨끗하게 산다 하지만  내 딴에는 깨끗하게 산 자기 주관이지 상대방이 볼 때에는 또 억울한 걸 끼친 게  많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인간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남에게 해  끼친 그런 것을 자기가 생각나는 대로 이것을 자꾸 고쳐서 정리하고 가도록 애를  쓰고, 모르는 것은 주님에게 고해서 이것을 사유함이라도 받아 가지고 가도록  애를 써야 되겠고, 자기에게 있는 힘 가지고는 남에게 다문 얼마라도 돕는 이런  일을 해서 주님을 대접하는 일을 하고 가야만 하겠습니다.

 35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이 되느니라' 이거는 모두 세상에서 억울한 꼴 본 것입니다. 손해 본 거 그걸  참고 견디는 그게 담력이라. 그것이 하늘의 능력이라 말이오. 이 담력은 하늘의  능력이라. 그게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요. 공산주의를  이기는 능력이요, 그게 능력입니다. '버리지 말아라 큰상이 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거들이 이래도 저래도 그저 주만 주를 생각하고  형제의 구원을 생각하고, 또 네가 대속 받은 것을 생각해서 참고 견뎌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너거가 참고 견디는 게 필요하다. 대번 막대기로 고드름  꺼내듯이 그만 그때마다 때깍때깍 그리하지 말고 어짜든지 길이 길이 참고  견뎌서 모든 죄인을 네 속에서 소화 해 가지고 악한 것을 기억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손해 보여서 제 중심으로 네게 손해 보인 것은 네가 손해당한  그런 것은 기억하지 말아라. 그게 다 상급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악한 것을  기억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악으로 너에게 하는 그런 것은 기억하지 말고.

어짜든지 잊어버리지 말고 가만히 덮어 둬라. 그러면 그것이 상이 되고, 네가  남에게 악을 행한 것 남에게 가해한 그런 것은 네가 털끝만치도 그대로 네가  덮어 가루고 다른 사람이 들추어 낼라 하니까 막 성을 내고 시비를 내고 말을 해  가지고 덮어 가루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라. 그거 어쩌든지 하나도  없도록 다 정리해라.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모르고 참고  견디는 건 그렇지만, 알고 주와 형제를 위하고 또 대속을 생각하고 자기 구원을  위해서 범사에 참고 견디는 이것이 있어야 되지 우리는 그것이 없이 말하고 싶은  대로 하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하고 이와 같이 마구 입을 내 벌려서 내 떠들어  놓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입을 마구 풍겨서 이래 놔 놓으면 그 말한 그걸  뭘로 감추고 어떻게 그걸 정리를 할 것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잠시 잠간 후면  주님이 오십니다. 지체하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주의 의인은'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을 믿는 그것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 믿는 것.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억울한 것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해결되는 것. 자기가 무슨 큰 공로를 세웠는데 그 공로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해결되는 것, 자기가 큰 억울한  손해를 당한 것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기는 해결되는 것,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날마다 고치는 이 것이  없으면 못 삽니다. 날마다 고치는, 그러니까 주님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고치면 된 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고치는 이 일을 게을하지 말고  어짜든지 우리는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천국을, 자기가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야 되고, 자기 평안을 자기가 만들어야 되고, 자기 은혜를  자기가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가 은혜 있도록 자꾸 자기가 만들어야 되지  자기에게 은혜 손해 가도록 은혜를 해치는 것이 있으면 자기가 정리해야 되지 이  세상은 내게 은혜가 안 되도록 만들어 주려 하는 것이 온 세상입니다. 또 자기  평강이 없도록 만들라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자기를 범죄케 할라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니까 자기를 구원할 자는 자기뿐인 것입니다. 이래서, 스스로  자기를 건설해 가지고 어짜든지 염려 없이 살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참 바울이  말하기를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한 양심에 자책되는 것을 찾지 못함을 인한  고민을 가지는 요 자리에서 사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되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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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 자기를 부인하는 자의 수입/ 마가복음 1장 14절-15절/ 791231월새 선지자 2015.12.17
1559 자기를 부인하라/ 빌립보서 2장 1절-11절/ 850616주후 선지자 2015.12.17
1558 자기를 속이는 자/ 고린도전서 3장 18절-23절/ 880715금야 선지자 2015.12.17
1557 자기를 연구하라/ 마태복음 18장 7절-9절/ 851028월새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