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님 신앙 사상

2007.05.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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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36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3/03/03 (월) PM 06:03:03     조회 : 656  

■ 손양원 목사님 신앙 사상


"주 만날 준비의 생활도 오늘뿐이다" 손양원 목사는 순교자적인 삶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주님 만날 준비의 생활"이라고 했다. 그는 "주님 만날 준비적 생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 독경(성경 읽기, 성경 연구), 성결, 1일 선행, 성직 충성 생활이 주봉 생활(主逢生活)이다. "라고 했다. 그는 주봉 생활에 충성하므로 한날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한날에 충성에는 괴로움이 있게 마련이며 주께 충성하므로 그날 주어지는 괴로움은 그 날에 자족 대사라고 했다

자족의 삶

주를 위해서 봉사하는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자족의 삶이다. 그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였고 모두에게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한다. 1945년 7월27일, 손 목사는 물질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는 동인이에게 편지하면서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생활의 모든 어려움을 주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고 편지했다.

  "사람의 생사는 임의로 좌우됨이 아니즉, 범사를 주께 맡겨 자연히 태연히 걷는 걸음에서 주의 섭리의 권고가 있을지니 너희들은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의 생애를 보내라. 이것이 기독자니라. 평상 범상시에는 누구나 기뻐 않으리요, 고난과 역경 중에 감사하고 기뻐함이 신앙 생활이다. "

   어려운 가운데서 가정을 꾸려 가고 있는 부인에게도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특별히 생활고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자족은 부자보다 낫고 만족한 생활자라 고 했다.

  "걱정이란 병 중의 병이요 죄 중에 큰 죄가 되는 것이외다. 우리가 보통으로 생각할 때는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니 손이니 발이니 하여 병인 줄 아나 근심이 병인 줄 아는 자가 적고 도적질이나 살인이나 간음은 죄인 줄 아나 걱정이 죄가 되는 줄 아는 자는 별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근심을 이루고 근심이 맺혀 병이 되는 것이요, 영적 생각은 자족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자족한 줄로 아는 것은 일대 거부가 되는 것이올시다. 걱정은 병 중에 큰 병이요 죄 중에 큰 죄가 되는 것이요, 자족은 부자보다 낫고 만족한 생활자외다. "

  그는 가족들에게 어려운 가운데 있으나 자족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자신의 옥중 생활을 말하고 있다.

  "한 덩어리 주먹밥과 한 잔의 소금 국물의 그 맛이야말로 신선의 요리요 천사의 떡 맛이외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식량을 본래 적게 하였사오니 이 밥으로도 내게는 만족이요 나의 키를 작게 하심으로 옷과 이불은 나의 발등을 덮으니 이만하면 만족이 아닐까요."라고 하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영적인 만족이 오고 이 만족 안에서 찬송 하고 기도할 때 주님 주시는 참된 성결의 삶이 있다는 것을 실천하면서 사신 분이었다.

  1943년 5월 20일,무기 구금형을 받고 3개월이 지난 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하루라도 일찍이 가는 것이 자유할 것 같으나 오히려 여기에서 배울 점도 있어서 범사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는 자족자였으므로 그가 당하고 있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만족뿐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만족한 생활자"로 하루 하루의 삶을 이어 나갔다.
그와 같은 손 목사의 사고 방식과 몸에 배인 자족의 삶의 뿌리 깊은 내용을 부친 손종일 장로와 온 가족에게 전했으며, 자족지대복(自足之大福)을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다.

  "구름이 올라가서 비를 이루고 이슬이 맺히면 병이 되는 것이 오며 영적 생각은 자족을 이루어 일대 만족의 생활을 이루게 되는 것이외다. 근심은 병의 근원이요 죄 중 대죄이외다. "

  신애(神愛)와 진리는 기후와 환경을 초월하니 안심하소서. 꽃 피고 새 우는 양춘 가절에만 신애가 있을 뿐 아니라 백설이 분분한 엄동 혹한 중에도 신애는 여전하며 오곡 백과가 성숙하는 양추 9월만에 신애가 있을 뿐 아니라 한천 출배(汗泉出盃)를 이루는 이같은 염천에도 신애는 여전하오며 금전 옥루에서 산해진미를 먹어 신애를 찬미할 뿐이 아니라 수간 두옥(數間斗屋)속의 기한 질고 중에도 신애를 찬양할지니 항상 기뻐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소서."라고 부탁을 하고 있다.

  자족지대복은 주 안에서 주님과 동행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를 하였으며. 1943년 9월 25일, 부친 손종일 장로에게 보낸 편지에 자족지대복하는 길이 잘 나타나 있다.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
밤도 깊고 옥도 깊고 마음 가득찬 수심도 깊다
주와 함께 동거하니 항상 기쁨이 충만하도다
주와 함께 동락하니 하루 같도다.
과거 4년 동안 평안히 보호하여 주신
미래에도 그 같으실 주님이심을 확신하노라

  그는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옥종면 성도들에게도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 1944년 9월 25일 옥종면 성도 들에게 보낸 글에서도 말씀 안에서 자족의 삶을 사는 낙천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육체는 고난으로 단련함이 좋고 마음은 항상 기뻐함이 좋으니라. 피죽을 먹고도 웃는 자가 있고 비단 옷을 입고도 근심하는 자가 있느니라 고로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비관자와 낙관자가 있느니라.육고 심락(肉苦心樂)이 종교자의 실생활이니라"

  1944년 9월 9일, 애양원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옥중 목회 서신을 보낸 일이 있다.

  "밤이 지나가면 낮이 오는 법이요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게 되는 것이오니 광명한 낮을 맞이하기 위하여 어두운 밤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양춘 가절을 위하여 엄동 설한의 고생을 참고 견디지 않을 수 없겠지요 고로 고생을 겁내지 말고 도리어 기뻐 기다리사이다.
자족을 느끼는 자는 한 줌의 밥과 한 숟가락의 물에도 기쁨이 있으리다. 고로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범사에 기뻐하며 항상 즐거워하사이다. 근심은 만병의 근원이나 즐거움은 백병의 양약 되리다. "

  자족자는 감사와 기쁨 속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손 목사에 게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족으로 나타난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자족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가 고난을 이기게 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 자족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족의 절정은 여순 사건 당시 동인, 동신의 장례식에서 고백한 아홉 가지 감사일 것이다.

①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시니 감사.
②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
③ 3남 3녀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였으  니 감사.
④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감사.
⑤ 예수 믿고서 와석 종신해도 복이라 했는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 .
⑥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
⑦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③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써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것을 믿으면서 감사,
⑨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손 목사는 이렇게 아홉 가지 감사를 표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두 아들의 순교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다.

  오히려 손 목사는 자족하지 못한 육신적 근심과 걱정은 죄 중의 큰 죄임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고난을 오히려 달게 받아야 한다고 한다.

  "송죽의 명성은 북풍이 연단 시켰고 황금의 진보(眞寶)는 화련(火練)으로 인함이니, 고로 위의 뒤에 따르는 이법(理法)이니라. 넓은 바다에 파도의 쉴 날이 없겠고 큰 나무에는 바람도 많이 맞게 되리라. 행여나 내게도 고난이 많거든 이를 생각하고 기뻐하라.고난을 꿀같이 달게 먹는 자가 되라.

  지상에서 두 번 돌아오지 못하는 세고 육고의 맛은 하늘의 천사도 부러워 한다더라. 우리가 안락을 도모치 말 것은 내 주님 맛보시지 않으신 세영(世榮)과 육락(肉樂)을 내 어찌 감히 생각 인들 하겠는가!"
더욱이 손 목사는 청주 구금소에서 독방에 수감되어 그것도 감식형을 받아 쇠약해진 몸이 더욱 쇠약해져서 독감에 걸려 사선을 헤맬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비인 방 혼자 지키어 고적을 느끼나
성삼위 함께 지내니 네 식구 되는 구나
갖가지 고난아 다 오려거든 오너라
괴로운 중에 진리를 모두 체험하리라


  손양원 목사의 삶은 자족 그 자체였으며 그 자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사상의 열매인 것이다.

기도의 삶

손양원 목사는 오직 기도로 산 사람이다. 공부를 하던 학창 시절에도 기도를 많이 해서 별명이 "손불"이였다. 그는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며 모든 일을 기도로 했다. 교회의 문제나 개인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 등 무슨 문제가 발생하든지 항상 첫 마디가 "기도합시다"였다.

손 목사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역설했다.손양원 목사는 "우리의 사명감"이라는 애양원 성도들에 대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 대사 중 대사는 기도하는 일이며, 난사 중 난사도 기도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기도는 육정과 세상과 악마로 싸우는 일대 전쟁이니라. 안일과 건강과 생명을 바쳐서 하는 일은 기도니라. 기도하는 일보다 다 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모든 만사 만행에 근본되는 원동력은 기도이다. "

  그는 기도가 일 중에 가장 큰 일이며,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기도 안하는 죄라고 했다. 죄 중에 대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이다. 불순종의 죄, 내가 하겠다는 자만죄는 하나님과의 절교의 죄가 되며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성숙하지 못하므로 대 죄인 것이다. 그는 '기도'라는 설교에서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 이며, 기독교인은 "기도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도가 무엇이고 기도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예수는 기도 자체요, 기도란 그 필요물을 하나님께 얻게 되어야 참 기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의 생활 전부를 기도로 바쳤다. 따라서 그는 주님처럼 그 자체가 곧 기도인 삶을 산 것이 다
.
  기도는 영적 인간의 자연적 호흡이며, 기도는 기독자의 실생활과 부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되려면 생활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하늘에서 행하시는 대로 땅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여 처리하는 것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맛보는 것이고, 머리인 예수와 끊임없이 연락 교통하는 것이다. 기도는 천국의 것을 빼앗아 땅에서 쓰는 것이며, 기도는 날마다 먹고 마시는 양식이라고 했다. 그는 기도는 우상적이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도는 정신을 집중하여 수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성력(誠力)
을 믿는 것이 아니며, 기도는 흥분에 취하거나 주관적으로 기울어지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기도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한 번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으면 자기가 완전히 죽어지고 주님이 완전히 자신을 ,다스리기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손 목사가 사랑의 사도요 순교자가 된 것은 자기를 죽이는 이기도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가 끝까지 기도하는 것만큼은 쉬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교 자리에서도 기도하면서 총에 맞아 순교를 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기도의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기도는 쉬운 일이 아니고, 일대 전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는 전력을 다 바쳐서 희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을 얻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는 모든 힘의 원동력이며, 일 중에서도 가장 큰 일이니 하여간 이유를 불문하고 기도하라고 손 목사는 자나 깨나 강조 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로서 성취되며 인생의 진가는 기도 유무에 관계됩니다. "

   "우리는 한국을 살리는 대동맥(大動脈)의 심장(心臟), 호흡 기관 곧 기도하는 곳이며, 한국을 운전하는 기도의 발전소(發電所)가 되자"

찬양의 삶

손양원 목사는 찬양의 삶을 살았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옥중에서도 그는 항상 찬송하는 사람이었다. 찬양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성신에 취하여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영혼의 숨소리와 도 같은 것이 기도와 찬송이라고 했다.

  "기독자의 찬송은 차세(此世)에 한계를 삼아 무소망의 인간, 눈물의 비곡, 죄악과 죽음에서 뛰어나온 구원의 희감(喜感)에서 솟아오르는 노래와 구원해 주신 구주를 향하여 감사하는 찬송" 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에베소서 2:1∼8에 신자가 불러야 할 네 가지 계단의 찬송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죄의 고통 하에서 신음(呻吟)하던 자가 사죄 득구(赦 罪得救)한 찬송이요, 둘째는 악마의 권세 하에서 노예로 고민하던 자가 신자의 영광에 입참케 된 노래요, 셋째는 잃었던 에덴 낙원을 다시 찾아 평화의 동산을 다시 찾아 얻은 기쁨이요, 넷째는 진리의 영안(靈眼)이 열리며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진리를 찾아 즐거워 부르는 찬송이 있다. "고 했다.

  그는 구원받은 자는 자연히 찬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성신을 취하여 자연스럽게 찬양해야 한다.기독자의 찬송은 죄인이 듣고 회개케 되며, 우는 자는 듣고 웃음이 나게 되며, 낙망한 자가 듣고 소망을 바라보게 되며, 죽은자가 듣고 부활하게 되며,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뻐하시게 하는 것이 기독자의 찬송이다.

다음은 손 목사가 생애 중 늘 부른 찬송들이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찬양의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

◎ 부흥 성가 3곡

①주님 고대가 : 6년 옥중에서 늘 부르신 노래
②꿈결 같은 이 세상에 : 설교 때에 늘 부른 노래
③세상에서 눈물뿐이고 : 순교자적인 생활을 강조하시는
  설교를 하실 때마다 부르신 노래

◎ 찬송가 12곡

①내 평생 소원 이것뿐 (376장)
목사님은 늘 환우들과 함께 지내고, 가난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줌으로 가정이 어려웠다. 따라서 사모님은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문등이 그것들은 최고고, 여편네는 아무 것도 아니제", "또 전부 줘 버렸제"하면서,늘 목사님을 괴롭혔다. 사모님이 그렇게 잔소리를 시작 하면 목사님은 내 평생 소원을 목이 메인 소리로 부르기 시작하여 2, 3절은 울면서 부르고 2, 3번째는 책상을 치면서 불렀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다스릴 때 부른 노래이다.

②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364장)
청주 교도소에서 몸이 몹시 쇠약하고 병이 들어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치료를 해주기는커녕 시체실에다 갖다 버렸다. 시체실에서 의식을 찾아 '아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게 됐구나'라고 생각을 하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 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찬송을 불렀다. 그러자 병이 깨끗이 나아서 다시 감방으로 옳겨졌다.

③ 울어도 못하네 (343장)
손 목사가 일생 동안 가장 무서워한 것은 죄였다. 그는 죄를 생각하면서 울면서 이 찬송을 늘 불렀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빨개져 교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병이 젊은 나이에 들어 비관해서 우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김수남 권사가 목사님은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죄 때문에 운다"고 하시며 죄는 울어도 어찌 못하고,힘써도 어찌 못하고, 착해도 어찌 못하고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를 믿어야만 해결된다고 하셨다.

④ 웬 말인가 날 위하여 (141장)
자기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시면서 늘 울면서 불렀다. 이 노래를 울면서 부르면서 이 몸밖에는 드릴 것이 없다고 하셨다.

⑤ 환난과 핍박 중에도 (383장)
하나뿐인 목숨을 순교 제물로 바치는 것이 목사님의 평생소원이었다. 순교를 생각하거나 이야기하실 때 늘 부른 찬송이다.

⑥ 만세 반석 열린 곳에 (439장)
일제의 핍박과 6·25의 환란 속에서 안전한 피난처는 예수님 뿐이라면서 성도들에게 가르치신 노래이다.

⑦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289장)
여순 사건 당시 두 아들이 순교했다. 두 아들의 순교 소식을 듣고 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이 찬송을 쉬지 않고 힘차게 불렀다.

⑧ 이 몸의 소망 무엔가 (539장)
6·25 당시 성도들과 함께 부른 노래이다.

⑨ 하늘 가는 밝은 길이 (545장)
순교 장소로 끌려가시면서 부르신 노래이다.

⑩삼천리 반도 금수 강산 (371장) : 일제 시대 금지곡

⑪내 주는 강한 성이요 (384장) : 일제 시대 금지곡

⑫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389장) : 일제 시대 금지곡

  ⑩,⑪,⑫ 세 노래는 학생들과 함께 소풍가서 힘차게 부른 찬송들이다. 찬양의 능력 속에서 매일 생활한 손 목사는 우리의 생활이 찬송이 되게 하라고 했다. 우리의 생활이 찬송하는 자가 되어서 개인이 부를 때는 천당이 되리라 했다.

사랑의 삶

손 목사 하면 "사랑의 원자탄", "사랑의 사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에서 시작이 된다.

  손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는 자는 사랑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왜 예수를 믿게 되는가?"라는 설교에서 자신이 사랑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손양원 목사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조건들이다.
①성부의 사랑 : 예정해 주신 사랑,독생자를 보내주신 사랑,성신을 보내 주신 사랑, 성경을 주신 사랑.
②성자의 사랑 : 사람되어 오신 사랑, 인간고를 당하신 사랑,십자가에 돌아가신 사랑,부활하사 중생의 생명을 주신 사랑, 승천하시어 천당 길을 열어 주신 사랑.
③ 성신의 사랑 : 내 일생을 보혜사를 통하여 지도해 주신 사랑, 날마다 탄식하며 대신'기도하시는 사랑,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손 목사는 "나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인내하고 노력해 주시는 사랑, 이상 삼위의 사랑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시행되는 중이다. 또한 미래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니 나는 이 삼위의 사랑을 깨달은 자에 합당한 사랑의 종이 되겠다.

  내가 하는 신앙 생활은 미래에 있을 복보다도 과거에 이미 받은 삼위의 사랑에 감격해서 사랑의 종이 되고자 한다. 내가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의 당하는 수치나 욕이나 지옥에 들어가는 벌 때문이라는 것보다도 삼위의 큰 사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사랑이시며, 성령님도 사랑이시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 사랑을 체험할 때 '사랑의 종'이되어 사랑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누가 손 목사가 누구냐하고 물으면 한 마디로 "삼위의 사랑을 깨달은 자에 합당한 사랑의 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손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은 곧 배은 망덕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삼위의 사랑 때문에 배은 망덕의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사랑의 종으로 살지 않을 수도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손 목사는 사랑은 감언 이설이나 육적 사랑, 지상의 인간들의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는 것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활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의 글은 이러한 손 목사의 사랑 개념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자체가 사랑이시요, 그의 행하는 전부가 다 사랑이시요, 그의 내용이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지배하고 계시는 자이시다. 그리하여 내게 나타나는 모든 사변을 다 사랑으로 운전하시고 계시는 나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 우주 만물은 그 사랑의 발로이며, 나는 그 사랑을 찬송할 자이다. 모든 사변에서 찬송의 곡조가 되어 주를 노래하는 자이다. " 라고 했으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오는 사랑. 둘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셋째,죄인을 위하여 몸바치신 그 사랑을 의미한다. "넷째  손 목사는 그가 사랑하므로 "예수를 보여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가 위에서 사랑을 정의함에 있어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랑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그 사랑을 하므로 예수님이 보여져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사랑은 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시대에 적합한 일꾼이 되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사랑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사랑의 일꾼은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고 한다.

  손 목사는 아가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던 사랑, 베드로가 오순절에 외치던 사랑,주님이 바리새 교인을 책망하던 사랑" 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사랑관은 사랑하므로 의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의의 역사를 이루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그의 본을 받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고, 예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사랑은 '희생'이다 그는 희생 자체가 됨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닮아,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내 주의 영화만을 위하여 내 것을 희생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라는 인간 자체는 내 집을 위하여,내 애양원 교회를 위하여, 대한의 기독교를 위하여, 오직 신영(神榮)만을 위하여, 나 자체는 녹아지고 썩어지고 낮아지고 죽어지는 희생 자체가 되게 하소서."라고 했다.

  손 목사에게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애양원에서 시무하기 시작했을 때 지은 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잠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과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한 자들이옵고,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옵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오! 주여, 그래도 난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 저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지어 나의 일신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된다면 이들과 함께 기뻐하며
일생을 같이 넘기려 하오니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사
어루만지심 같이 내가 잠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잠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약 내가 여기서 쫓겨남을 당하여 나가게 될지라도
나는 이들을 사랑하여 쫓겨난 그대로
남은 세월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잠다운 사랑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로부터 나온 나의 사랑이옵고 또한 주를 위하여
사랑하게 되는 것이매 내 어지 주보다 더 사랑케 되오리까?
그러나 나의 일신과 부모와 처자보다는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되
주를 사랑하는 그 다음은 이 애양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무슨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 위하는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멎 해 일른지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을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중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서 손 목사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곧 애양원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가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사랑하는 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며(롬 5:5), 주님의 모습만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 안에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사랑의 예수님이신데 그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그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사랑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한센병자들을 자기보다 더 사랑했으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맞아들임으로 주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보다 우리를 더 사랑한 사랑이며 자기가 없는 사랑인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애국의 삶

손 목사는 사도행전 17장 24∼25절을 통해서 국토, 국민, 재산 지도자, 즉, 천황까지 전부 하나님이 주셨으며 그 지배 아래 있다고 했다. 로마서 13장 1∼7절의 말씀을 통해서 그는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 말미앙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라를 주재 하시며 그가 원하시는 대로 나라를 줄 수 있음을 말한다. 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통치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재림 전에라도 무궁 세계를 지상에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나라의 제도나 정치 체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제도나 체제로 바꾸어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재림을 통해서 일본의 멸망을 외쳤고, 그것이 국민으로서 불충이지 않느냐는 심문관에게 일본 제국에는 불충하더라도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애국은 국민으로 국민의 의무에 충실하는 것이다. 손 목사는 국민된 의무로서 신사 참배를 못하겠다고 했다. 곧 신사 참배를 안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이면 국가의 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국민된 의무로서 왜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했다.

  "국민된 의무로 못하겠다는 것은 내가 믿는 기독교 성경과 기독교 사기(史記)와 세계 역사를 보면 우상을 숭배하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예수 잘 믿고 흥하고 복받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국민된 자가 우상에게 절함으로 나라가 망할 줄 알면서 신사에 나가서 절하며 동방 허공을 향하여 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국민된 의무로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손 목사는 "이러한 시국에(일제 치하의 어려운 시국)죄를 범치 아니하는 것이 국민의 제일의 길이다. 우리는 기독자니 모든 국민 의무를 다하여 남에게 모범적 행위와 모든 의무에 솔선하여 보국 정신에 미혹치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민의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임을 밝히고있다. 국민된 의무로서 지어서는 안 될 죄로 첫째는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둘째는 경제적인 죄를 지어서는 안 되며, 셋째는 윤리적인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금 돈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황금 만능으로 필요하고 보배가 되었으나 이러한 돈으로 죄를 범하게 되면 보화가 아니라 나의 원수로 알아 대적하여야 하고 또한 좋은 여자, 얌전 하고 훌륭한 여성을 좋아했으나 그 여자로 말미암아 죄를 범할 경우에는 사랑하는 누이가 아니라 나를 대적하는 원수가 되나니 그러므로 돈과 여자는 지옥으로 화함이나 염병같이 피하고 독사 같이 멀리함이 제일 방책이니라."

  어려운 시국일수록 경제 정의가 확립이 되어야 하며, 성적인 윤리가 바로 세워져야 그 나라가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범죄치 않는 것이 참 애국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기독자들아 참 애국자가 되는 길은 참 기독자가 되는데 있는 줄 알고, 진리를 위해서 불의와 싸우고 주를 위해서 세상과 싸워 주 앞에서 죄를 다 쏟아 바치기까지 하자.참다운 애국자, 참다운 애족자(愛族者)는 그 국가 그 민족의 흥망 성쇠의 길을 잘 가르쳐 주는 자다. "

  흔히 순교자들의 신앙을 논할 때 순교자는 하나님만을 열애하기 때문에 종말론에만 집착하고 현세적 세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손 목사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 못지 않게 민족적인 구원을 위해 발을 굴리며 외쳤다.

  그의 설교나 옥중 서신에 나타난 내용들 중에 많은 부분이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민족 구원을 외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우리 민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족 사활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늘의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조선 민족의 근본 정신을 잃게 된 까닭은 무엇이냐, 그것은 이조 5백년 동안의 모든 악법의 이렇게 만들었다. 이기심, 분노,싸움, 당파심, 게으름, 거짓말 등등을 들 수 있는데, 이렇게된 원인은 속국민이 되어서 식민지 정치 하에 지배를 받는데 있다. 자기 민족끼리 싸워서 자멸하도록 만든 정책에 속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시기심이 생기도록, 당파심이 생기도록, 절대로 단결하고 단합하지 못하도록 조종을 했다.

  손 목사는 여기서 이른 바 식민 사관을 비판하고 민족 사관을 펴고 있다. 일본인들의 식민지 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족끼리 서로 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 민족을 새롭게 하는 것이 기독자의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들은 먼저 이 민족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고 한편 나라가 망한 원인을 잘 살펴 시정하게 하며, 앞으로 민족이 잘될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사명은 크다. 우리는 기도로, 행실로, 전도로 속죄 구령의 복음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의 등불이 되고 소금이 되자."고 하였다.

  기독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에만 만족할것이 아니고 죄와 세상을 이기고 민족과 국가의 등불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 목사는 당시의 국가적,사회적,교회적 죄악을 통렬히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미친 화벌의 원인"(애가 4∼5장)1")에서 그는 해방 이후의 흔란 중에 있는 민족과 교회를 향하여 불같이 외쳤다. 그는 여기서 6·25사변을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해방과 자유를 감사치 못했기 때문에 오는 징벌로 이해했던 것이다.

  특히 손 목사는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국가 체계를 복음 전파라는 수단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다. 그는 칼이나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 전파로 인해서 신자가 많아지면 자연히 국가 체제가 바꾸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애국으로서 전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제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기독교 국가의 실현을 계획 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라고 함으로 현 국가 제도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손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천년 왕국으로 말하고 있다.  "현세 국가들은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해서 인류의 생명을 빼앗고 지진, 수해, 악병 때문에도 인류의 생명을 빼앗기는 세상인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그런 전쟁도 지진, 수해, 악병도 없어지고 참으로 행복한 세계가 영원히 계속되어 우리 인간도 이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현대 각국 통치 제도를 변혁하여 행복한 지상 천국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손 목사는 일본 천황 제도는 신사 참배와 전쟁 등으로 인해서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현대 천황 통치 제도인 일본 국체를 어서 빨리 멸망시키고 그리스도 재림 후에 있을 무궁한 세계인 지상 천국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와 같은 하나님 여호와의 뜻에 반역하고 있는 천황 통치제의 국체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따라서 일본은 손목사에 대해서 "말세론을 통해서 반일 사상을 고취하는 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월 듀란트(Will Durant)는 "문명의 역사"라는 책에서 가이사와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혁명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며, 이것이 없는 개혁이란 단지 일시적인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이기적인 욕망, 탐욕,그리고 잔인함을 제거하신다면 유토피아는 애써 건설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악습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법과 강제 수단들은 다 쓸모 없어 질 것이 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혁명이다. 이것 이외의 다른 크고 작은 혁명들은 단순한 계급간의 투쟁이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데타에 불과하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심에 틀림없다. "라고 한 것처럼 손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늘의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하며 복음으로 불의와 대항해서 싸우고 항거했으며 그에게 있어서 투쟁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질 수 있고, 그가 말하는 천년 왕국의 건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치의 삶

손 목사는 말씀과 삶을 일치시켜 가면서 사신 분이었다. 그는 그의 몸으로,그의 삶으로,그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 하였던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하였고, 그대로 살았다. 그의 "신앙 생활의 원리"(마 1:23,28:20),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마 7:15∼27), "시대에 적합한 일꾼이 되라"(마 10:16∼42, 9:3∼38), "성경대로 살자"(롬 2:17∼29, 빌 1:27)등에서는 그의 이런 사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손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천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조하였 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스스로 실천한 사도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생'한 자라야 실천할 수 있다. 특별히 중생자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될 때만 실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사는 실천적 삶의 기초는 구원에 있다.

  "내가 믿게 된 고로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받았으니 믿게 되느냐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원을 받게 되었으므로 믿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 신앙은 완고하고 내 구원도 틀림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게 해 주심으로 믿는 내가 된 까닭이다. 내 구원은 자동적이 아니라 타동적이다. 믿는 것보다 구원받는 일이 앞선 것이다:‥‥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요, 자위적인 것도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구원을 아니 믿을 수 없어서 믿는 생활이다. "

  이러한 그의 구원관은 실천적 삶의 모체가 되었으며 감사와 자유의 차원에서 실천의 삶을 살게 해 준 것이다. 그의 실천은 감사였고, 자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구원해 주신 이에게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서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다.천생만민 하였으니 신자의 임무로 기독자도 아니요, 내세 영죄의 지옥 염려을 두려워하는 기독자도 아니요, 대신 못박혀 죽으신 예수의 은공을 보답하기 위해서의 기독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중생케 되어 영적 생활을 하는 자이다. "라고 하여 중생자의 자연스런 실천적 삶을 밝히고 있다.

  "기독자의 선행은 구원받고자 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복과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해서 나타나는 표현이다. "

이렇게 손 목사는 말씀을 삶으로 일치시켜 나가는 실천의 이유를 밝히고 있으며, 더 나아가 "내가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의 당하는 수치나 욕이나 지옥에 들어가는 벌 때문이라기 보다는 삼위의 큰 사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주님처럼 사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살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삶을 살개 해준 원동력은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므로 매일의 삶에서 순교의 삶을 살았고 순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