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리신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선지자선교회
김반석  2008-03-17 11:21:34 , 추천 : 256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은 개혁주의 장로교가 가지는 교리신조였습니다. 교리신조에 있어서, 교리는 시대에 따라 발전하여 왔고, 신조는 시대와 상관없이 보수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교리적인 면보다는 신조적인 면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1910년대 당시 미국 장로교회에 있어서는 현대주의와 자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습니다. 이 때에 교회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을 교리신조로 보수하느냐 아니 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신앙노선이 결정지어지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 장로교의 프린스톤신학교에도 개혁주의 보수를 외치는 교수들은 에큐메니즘에 대항하여,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그대로 보수하기 위해서, 메이첸 교수가 주축이 되어 웨스터민스터신학교를 프린스톤신학교에서 분리하여 새로 설립했습니다. 이리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이 가지는 개혁주의 교리신조, 그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보수한다는 표명으로 신학교의 이름을 웨스터민스터신학교라 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응규 교수가 저서하고 도서출판 그리심에서 출간한 「한부선 선교사 평전」을 읽어보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이 그 당시 장로교에 있어서는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정통 개혁주의를 가름하는 잣대로 삼았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아래의 P>가 붙은 글은 박응규 저 「한부선 선교사 평전」에서 발췌한 글인데 참조하시기 바라며 그리고 일독을 꼭 권합니다.

P91>프린스톤신학교가 웨스터민스터 표준문서의 근간을 이루는 엄격하고 순수한 칼빈주의를 위해 설립되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윗스타 핫지 박사도 독특하고 남다른 의미의 프린스톤 신학이 아니라 "바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칼빈주의"가 그 근간임을 주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프린스톤 신학은 근본주의가 아닌 "개혁신앙의 순수한 복음주의"라고 규정하였다. 교회는 참 된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신앙고백은 신학의 발전과 함께 복잡해졌고 역사적 배경에 따라 그 표현의 정도가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신앙고백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조나 신앙고백이 성경에 얼마나 충실하며 역사적 시험에 거친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프린스톤 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트 회의에서 제정된 개혁주의 교리를 매우 귀중하게 간주하였다.

P92>한부선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던 교수 중의 한 사람인 메이첸은 1929년 웨스터민스트신학교를 설립한 직후 열린 개회예배에서 프린스톤의 신학적 전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전통이 손상되지 않고 지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속임수와 타협이 아닌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에 입각하여 구 프린스톤에서 유지되던 동일한 신학적 전통을 견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첫째로, 장로교의 신앙고백에 명시된 바와 것같이 기독교는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믿느다. 둘째로, 기독교는 학문적인 방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 장려함을 믿는다. 셋째로, 기독교는 교회 안팎의 그 어떤 반대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지함이 없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길로서 선포되어야 한다./ 철저한 장로교 신학의 변증자이자 신학자로서 메이첸은 성경의 권위에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구 프린스톤 신학을 변호하였으며, 다양한 형태의 현대주의의 도전에 과감하게 맞섰다. 메이첸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P94>당시 시대적인 흐름은 프린스톤신학교가 추구하던 전통적인 장로교주의가 에큐메니즘에 의해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경에 대한 궁극적인 권위나 웨스터민스터 신앙표준에 부여했던 독특하고도 엄격한 기준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었다. 메이첸은 기독교와 그리스도 자신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교리적임을 인식하며 시대적 도전 앞에 의연히 대처해 나갔다.

P95>메이첸은 1920년대의 현대주의의 도도한 파고 속에서도 구 프린스톤 신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메이첸의 신학은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 종교의 진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의 진실성이 개혁신앙의 신조, 특히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서에 잘 요약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신학의 두 토대는 바로 성경의 궁극적인 권위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반영된 개혁신학적 입장이었다.


중세교회에서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으로, 그 개혁주의에서 하나의 결실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이 열매 맺어졌고, 또 그 후 시대의 개혁주의들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이라는 그 교리신조를 보수하는 것이 곧 개혁주의를 보수하는 것으로 삼았고, 또 그 교리신조를 계대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후손들에게 계대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이래서 한국 초기교회사에 있어서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분들 중에 한위렴 선교사님이나 그의 아들 한부선 선교사님은 구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신학을 한 분으로서 곧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계대한 분으로서, 그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그분들이 발 닫는 곳마다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래서 한부선 선교사님의 그 선교사역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어떤 교리신조를 가졌음을 직간접적으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부선 선교사님과 또 그의 부친이 되는 한위렴 선교사님 또 그의 할아버지는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보수하는 종교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였습니다.

청교도는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이었고, 또 청교도들은 그 이전에 중세교회 시대에서도 속화되지 않고 초대교회의 신앙노선을 그대로 계대한 그 신앙 선조의 그 후손들이었습니다.

또한 이 개혁주의 교리신조 중에 하나가 주일성수였음도 알 수 있습니다. 한위렴 선교사님이나 그의 아들 한부선 선교사님, 그리고 그분들뿐 아니라 한국 초기교회 당시 선교사 분들은 한결 같이 주일성수는 곧 신앙생활의 첫걸음으로 삼았습니다. 이래서 주일성수 없이는 세례교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주일성수는 초대교회 시대를 거쳐서, 중세교회 시대에 그 맥을 이어서, 개혁교회 시대에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과 함께 해서 1,900여년 동안을 개혁주의 교회들은 보수 계대 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한국 초기교회에 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 개혁주의 교리신조 요소 중에 하나인 주일성수가 지금은 일제 신사참배와 6.25 환란 중에 주일성수로 순생 순교한 신앙 선조를 가진 그 진영조차도 그 초석에 무관하게 주일성수가 거의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이 한국 교회에서의 주일성수는 불과 몇 십 년 존재하다가 현재는 그 자체가 홀딱 다 타버리고 이제 그 흔적만 재 덩어리로 남았습니다.

한국 장로교 목사님들 중에는 구 프린스톤신학교의 개혁주의 정통성을 보수하기 위해 설립된 웨스터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신 분이 많습니다. 이래서 이 웨스터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신 목사님들은 그 외 다른 신학교를 졸업하신 목사님들보다는 칼빈 개혁주의 신앙노선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셨을 것이며, 이에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이 가지는 교리신조를 보수하는 것이야말로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그대로 계대하는 것이라는 신앙사상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라 여겨봅니다.

사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은 개혁주의 교리신조로서, 꼭 장로교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적 교리신조이기 때문에 교파를 떠나 보편적 교회라면 성경적 교리신조로 받아야 할 것이라 봅니다.

이러므로 장로교 교파에서 그 진영이 가지는 신앙노선을 표시할 때, "신구약 육십육 권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을 교리신조로 삼는다" 할 때에는, 이를 표시하는 그 의미와 의지는 그 특별함이 내포되어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보수하는 진영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공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대마다 교회사에서 그 시대를 감당하는 개혁주의 교리신조가 있어 왔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사도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등이 있었고, 중세교회 때는 '기독교강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프렌시스 튜레틴의 정통개혁신학' 등이 있었으며, 현대교회에는 '찰스 핫지의 조직신학'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 등이 있었고, 또 한국에는 '박형용의 조직신학' '박윤선의 성경주석' 등이 그 시대를 감당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또 그 얼마전과 지금 현재는 '백영희목회설교록'이 이 시대를 감당하는 개혁주의 교리신조로 자리잡아 가고있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때의 개혁주의 교리신조를 꼭지점으로 하여 부채살처럼 펼치면 이 시대의 개혁주의 교리신조가 이렇게 연결되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자체가 가지는 교리신조의 본질성과 그 역사성의 양면을 살피면서, 또한 이 시대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의 교리면과 신조면의 그 양면을 조화롭게 받아들여서, 교리는 발전하고 신조는 보수함으로서, 이리도 저리도 치우치지도 않으므로, 그 결국과 결론이 성경대로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의 교리신조를 바로 보수하고 또 다음 세대에 바로 계대 하는 것이 지금 세대의 개혁주의가 가진 의무이자 사명이리라 믿습니다.

개혁교회 시대 그 시대의 개혁주의 하나님의 종들이 제정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은, 이 시대에도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표명하는 진영이라면, 그 교리신조가 가지는 본질뿐 아니라 그 교리신조와 관련된 그 역사까지도 함께 연구함으로서, 그 시대를 감당했던 신앙 선조의 교리신조에 대해 이 시대를 감당하는 우리들이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의를 가지는 것이 지당하다 고백하는 바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초대교회 개혁주의 교리신조는 개혁교회 개혁주의 교리신조를 낳고
개혁교회 개혁주의 교리신조는 현대교회 개혁주의 교리신조를 낳았습니다.